내게 소원이 하나 있다면 평생 놀면서 돈버는 것이다. 아마 대부분 사람들이 비슷할 것이다. 일은 없고, 그렇다고 잘릴 걱정도 없고, 그러면서 월급도 꼬박꼬박 나오고, 심지어 퇴직하면 연금까지 제때제때 나온다. 얼마나 좋은가? 

 

추미애 장관이 한동훈을 무척 좋게 본 모양이다. 지금 막 카카오맵으로 찾아보니 도심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으면서 주위에 숲도 우거진 것이 무척이나 한적해 보인다. 이런 곳에서 하는 일 없이 월급만 받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러려고 사람들이 그렇게 악을 써가며 사법고시 공부도 했었던 거겠지?

 

백수 석달에 이력서 쓰는 거 지겨워서 걍 노가다 뛰기로 결심하고 나니 그래서 더 부러워지는 것이다. 평소 근력 키우겠다고 고중량저반복으로 운동하다가 노가다 뛰려면 근지구력이 더 필요하다고 고반복운동으로 바꾸고 나니 정말 저 신세가 너무 부럽기만 한 것이다. 출세해봐야 뭐하는가. 일만 많아지지. 그렇지 않아도 사건에 치어 뻑하면 야근에 철야에 주말도 없다는데 저런 데 있으면 그야말로 칼퇴근에 칼휴무 아니겠는가. 아니 근무지가 휴양지다. 

 

추미애 장관이 한동훈을 안좋게 본다거나 그래서 불이익을 주려고 한다거나 하는 주장은 그래서 사실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오히려 아끼고 있다. 더 적극적으로 보호하려 하고 있다. 그러니까 월급도 연금도 꼬박꼬박 챙겨줄테니 거기서 마음편히 퇴직할 때까지 쉬고 있으라. 나도 쉬고 싶다. 연금복권 당첨되면 저 비슷하게 되려나.

 

요즘에는 윤석열 총장보다도 심지어 대통령보다도 더 부럽게만 여겨지는 대상일 것이다. 사람이 살려면 저렇게 살아야 하는 건데. 나도 누가 어디 좌천 좀 시켜줬으면. 연수원에서 손톱발톱 아주 잘 깎을 자신 있다. 머리카락도 한 가닥씩 핀포인트로 염색이 가능하다. 

 

한동훈이 부럽다. 그래서 축하하고 싶어진다. 나중에 더 풍경좋고 한적한 곳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어깨 맞대고 즐겁게 보낼 수 있기를. 수도권은 요즘 재개발한다고 난리더만. 지방이 좋다. 역시.

환관 조고가 어느날 대신들이 있는데 사슴 한 마리를 던져 놓고는 모두에게 말한다.

 

"이건 말이오!"

 

그래서 사슴은 말이 되었다.

 

어느날 임금이 생선이 맛있다고 은어라 부르니 은어가 되었다가, 다시 나중에 생선을 맛보고는 실망해서 도로묵이라 부르라 했더니 생선 이름이 도루묵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권력의 권權은 저울의 권이다. 저울이 무게를 달 듯 서로 충돌하는 사안들에 대해 규준을 정하고 판단하여 분별하는 것이 바로 권력의 역할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도량형도 권력자에 의해 정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아니 정확히 도량형 자체가 징세의 기준이고, 화폐를 발행하는 경우 화폐의 단위가 되는 것이기에 권력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돈 1전의 가치를 은 1냥의 100분의 1로 정했다가 나중에 은의 가치가 오르고 구리가 귀해지면서 돈 400전이 은 1냥의 가치를 가지도록 정한다. 군포는 면 1필로 하되 길이는 포백척을 적용하여 한 척이 46cm 정도이고 길이는 전체 35척으로 한다. 아니면 난리가 난다. 하긴 그렇게 서로 다른 기준을 가지고 계량을 다투거나 하면 그를 판단하는 역할을 하는 것도 바로 권력이기는 했다.

 

내가 정한다. 내가 그리 정했다. 그러므로 내가 기준이다. 조국사태나 정의연과 추미애 장관과 관련한 이슈들에서 김어준은 자신의 뉴스공장에 관련자들을 섭외하여 직접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었다. 언론들이 특정인들의 주장만 열심히 받아쓰는 사이 언론이 주목하지 않는 또다른 관련자들과 당사자들을 직접 스튜디오로 불러 인터뷰를 통해 직접 자신들의 입장을 전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있었다. 당사자로서 이해와 주관이 반영된 주장이기에 온전히 믿을 수는 없다 하더라도 최소한 다른 언론들이 보도하지 않는 또다른 견해와 입장들을 통해 사실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언론들은 무어라 떠들고 있었는가. 정작 자신들은 취재하지 않은 대상들을 출연시킨 자체를 가지고 편향이라 주장하고 있지 않은가.

 

당장 추미애 장관의 경우만 하더라도 사실 논란은 추미애 장관의 아들 서모씨가 복무한 부대의 동료병사들과 간부들을 불러 물으면 이렇게 오래 끌 것도 없이 바로 해결될 사안이었다. 하지만 특정인의 주장만 오로지 받아쓰느라 심지어 중대가 달라도 당직은 같이 서니 같은 부대라는 해괴한 논리까지 내세워가며 다른 모든 증언과 주장들을 무시하기 일쑤였다. 권한을 가진 지원장교가 자기에게 주어진 권한으로 허락했다 말해도, 동료병사들이 별 문제없이 정상적으로 휴가가 연장되었다 주장해도, 국방부에서 원래 규정이 그렇게 되어 있다고 해명해도 절대 듣지 않는다. 오로지 현모씨의 주장만 받아서 당시 휴가연장은 불법적인 것이었다. 정상적인 절차를 거친 것이 아니었다. 그러다 나온 것이 병장회의라는 군대 갔다온 사람이면 어이없어 실소부터 터뜨릴 해괴한 근거였다. 그래서 누가 객관적이냐고? 누가 중립적이냐고?

 

KBS가 김경록PB의 인터뷰를 취사선택해서 왜곡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을 것이다. 당사자가 무어라 증언하든 결국 자신들이 바라는 결론은 하나였다. 자신들은 이미 그렇게 결론을 내렸고, 따라서 그 결론을 위해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서 왜곡한 의도는 정당한 것이었다. 한동훈에게는 광속으로 사과한 KBS가 그래서 아직까지 김경록PB에 대해 잘못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지 않은가. 전혀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 당시 '댓읽기'의 기자들이 보였던 태도를 기억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전혀 문제가 아니었다. 당연히 그렇게 하는 것이었다. 언론의 사정을 모르고 떠드는 것이다. 한겨레 김완도 그러면서 뒤에서 김어준 욕하더만. 원래 언론은 그렇게 기사를 쓰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신들이 제대로 기사를 쓸 수 있도록 너희들이 더 성의를 가지고 협조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이 바로 저리톡에서 김덕훈이 욕먹은 이유 아니던가. 내가 기사를 써주려 하는데 어째서 정경심따위가 인터뷰에 응하지 않는 것인가.

 

기자가 권력이란 것이다. 그러니까 정치부장 나부랭이가 몇 번이나 전화를 걸어가며 현직 국회의원을 압박하고, 그래도 안되니 원내대표에게까지 직접 전화를 걸어 따져댔던 것 아닌가. 어디 정치인 나부랭이가. 정치인에게도 그러는데 과연 일반 국민에게는 어떨까? 한겨레 기자놈이 그랬다. 덤벼라 문빠들아! 그 전에도 문죄인이라 부르면 어떤가고 페이스북에서 도발을 시전한 기자놈도 있었다. 인터뷰내내 인상이나 쓰며 일베에서 퍼온 질문을 균형을 맞추겠다고 던진 송현정이 그냥 하늘에서 떨어져내린 것이 아니란 것이다. 자기들이 대통령보다도 위에 있는데. 그러니까 검찰과 자기들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특수부가 아니면 검찰도 아니다. 특수부 출신이 아니면 승진도 이상한 것이다. 자기들이 기사를 쓰면 사실이 되고, 기사로 쓰지 않으면 없는 것이 된다. 그렇게 선택함으로써 그들은 스스로의 권력을 확인한다. 박덕흠의 3천억은 묻어도 추미애의 250만원은 대서특필한다. 그래도 된다. 자기들은 기자니까.

 

그것이 바로 기자들이 말하는 객관성의 정체인 것이다. 민주정부는 악이다. 정통성없는 죄의 온상이다. 아니더라도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오로지 민주정부를 공격하는 것만이 언론의 사명이고, 언론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지키는 것이다. 오죽하면 KBS의 기자 하나가 유튜브 채널에서 한국은행에서 내놓은 보도자료를 이해하지 못하겠기에 일단 정부 까는 기사를 썼다고 자백하고 있었겠는가. 왜 정부만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기사를 편승해서 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의사들의 진료거부사태에서도 정부의 정책이 절대 잘못되었을 것이기에 단지 방법만 잘못되었다. 청와대의 범죄와 부도덕을 밝히려면 검찰과 언론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건 한겨레의 입장이었다. 그래서 조선일보는 가장 신뢰받는 언론이 되는 것이고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가장 불공정한 찌라시가 되는 것이다. 왜냐면 자신들이 생각하는 객관성을 추구하는데 방해가 되는 반대편 주장들을 고스란히 인터뷰로 내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어째서 국민들이 객관적인 언론보다 정파적인 언론을 더 선호하는가. 기자들이 생각하는 객관성과 국민들이 생각하는 객관성의 차이가 그만큼 크기 때문인 것이다. 국민들이 생각하는 객관성이란 진짜 아무 주관도 정파성도 개입되지 않은 엄정한 사실과 구체적인 진실 그 자체일 텐데, 정작 기자들이 추구하는 객관성은 그냥 정부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다. 민주당의 반대편에서 그들을 공격하는 것이다. 또다른 정파성이며, 오히려 정파성이라는 인식조차 없기에 극단적으로 편향되어 있다. 그러니까 객관성과 정파성 가운데서 선택하는 것이 아닌, 더 지독한 정파성과 그나마 나은 정파성 가운데 선택한 결과란 것이다. 아니 내가 왜 정의당도 국민의힘도 국민의당도 지지하지 않는데 오로지 그들의 편에서만 기사를 쓰는 한겨레따위나 읽고 있어야 한다는 것인가. 내가 검찰의 입장에서 사물을 보고 싶은 것이 아닌데 뭐 좋은 일 보겠다고 JTBC 뉴스나 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인가.

 

바로 국민과 기자들이 가지는 객관석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괴리인 것이다. 기자들이 생각하는 객관성은 일반 국민들이 보기에 그냥 더 편향된 더 악랄한 정파성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자기들은 객관적이라며 자기들을 비판하는 국민들을 오히려 편향적이라 욕하고 있으니 상황은 더 악화될 뿐이다. 자신들에 동의하지 않는 국민은 모두 편향적이고, 오로지 자신들과 함께하는 국민만 객관적이고 중립적이다. 그 자체가 편향이라는 것을 언제쯤에나 저들은 알아차릴 수 있을까? 국민은 기자를 부정하고, 기자는 국민을 부정하고. 그래서 우습다. 자기들이 부정한 국민을 향해 제발 좀 도와달라고 기사를 써대는 뻔뻔함이. 자신들이 적대하고 있는 그 편향적인 국민들이 원래 언론의 자유와 기자들의 권리를 위해 함께 싸워준 동지들이었다. 선택한 것이다. 그런 것을 객관이고 중립이라 여긴다면 그렇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당위고 정의다. 어차피 자신들도 이전 정권을 그리워해서 그러고 있는 것일 테니.

 

아무튼 웃기는 것이다. 진짜 자기들이 중립적이라 생각한다. 자기들이 보도하는 내용들이 모두 객관적인 사실들이라 믿어 의심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니 자신들과 다른 내용을 보도하는 언론은 정파적이고 편향적이다. 그래서 모든 언론이 진보와 보수, 공중파와 케이블을 막론하고 모두 한 목소리로 떠들게 된다. 언론은 하나다. 그래서 기레기인 것이다. 개별 언론사와 기자와 기사를 구분해서 보라고? 세상에 쓸데없는 소리다. 언론 자신이 그렇게 구분해 사고하고 있지 않다.

 

기레기가 기레기인 이유다. 언론이 버러지인 이유다. 좋은 기자는 오로지 죽은 기자들 뿐이다. 좋은 언론사는 오로지 폐간된 언론사 뿐이다. 언론은 하나다. 언론이란 자체가 언론이 주장하는 객관성과 중립성의 근거다. 언론이 권력이다. 조선일보가 가장 신뢰받는 언론인 이유다. 정의당조차 조선일보의 인정을 받기 위해 노선을 바꾼다. 재미있다.

이명박 때였냐? 박근혜 때였냐? 진짜 10년도 가까이 된 일을 가지고 몇 시 몇 분에 봤는지까지 따져가며 진술의 진위를 따져묻는 자체가 우습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분명 뉴스를 보긴 봤는데 사실 그동안 전혀 기억을 소환할 일이 없다보니 정확한 시기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어차피 이명박근혜가 아니더라도 이전에도 있어 왔으니까. 사기꾼 놈이 자기 대통령과 친척이네 뭐네 돈 끌어다 쓰다가 끝내는 걸려서 경찰수사를 받는다는 이야기가. 

 

원래 사기꾼들 방식이 대개 그렇다. 자기 돈으로 사기치는 놈은 거의 없다. 사기를 칠 때는 꼭 남의 돈으로 친다. 그런데 남의 돈을 거져 끌어올 수 있으니 뭔가 꼬투리를 만든다. 누군가처럼 되도 않는 정당을 만들어 대선에 출마한다거나, 누군가처럼 굳이 자기 사업에 유명인들을 끌어들인다거나.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JU의 경우도 견미리 등 대중에 이름이 알려진 유명한 이들이 여럿 연루되어 있었다. 앤 해서웨이의 전 남자친구도 그런 식으로 유명인들 돈까지 여럿 끌어다 사기를 치다가 제대로 걸려서 감옥까지 가지 않았던가. 괜히 앤 해서웨이까지 연루를 의심받고.

 

너무 간단한 상식인 것이다. 내가 아무것도 없다. 사무실 하나 달랑 있다. 투자자를 모으려 한다. 무엇으로 투자자를 모아야 할까? 뭐 이것저것 투자한다고 포트폴리오는 만들어 놨지만 결국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것은 적지 않은 돈을 믿고 맡길 수 있는 담보 같은 것이다. 그래서 유명인의 이름이 나오는 것이다. 아니 유명인의 이름을 앞세울 수 있기에 사기를 칠 생각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이런 사람과 사진도 찍었다. 이런 사람과 같은 자리에서 대화도 나눴다. 내가 이 사람과 원래 어떤 관계였다. 학연 지연 혈연 아무튼 끌어다 붙일 수 있는 건 다 갖다 붙여서 연관을 만들어낸다. 그러니까 나 말고 이 사람을 믿고 투자해 달라.

 

물론 실제 공범일수도 있다. 혹은 배후일수도 있다. 아니면 대가를 받고 뒤를 봐 준 조력자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건 실제 증거가 나와 봐야 아는 것이다. 돈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갔더라. 누구를 통해 어떤 방식으로 전달되었다더라. 거의 007 수준이다. 청와대 경호원들을 속이고 현금만 5천만원을 가지고 들어가 직접 전달하는 수준이라니. 이런 걸 의혹이라 말하지는 않는다.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이런 것 가지고 의혹을 떠벌리지는 않았다. 심지어 대통령의 먼 친척이라는 이가 사기를 치고 다녔어도 그 친척을 욕했지 대통령까지 욕하지는 않았다. 대통령의 책임 아래 있는 건 처가까지 4촌 이내의 친족관계 뿐이다. 그런데 뭐가 의혹이라고?

 

라임과 옵티머스에 있어 정관계 로비가 어떤 식으로 그들의 범죄를 도왔는가 정황도 전혀 드러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어차피 금융이라는 게 돈을 따면 사업이고 돈을 잃으면 사기인 경우가 매우 많다는 것이다. 실물을 가지고 하는 사업이 아니기에 대부분 뜬구름잡기고, 그래서 정상적인 사업인지 사기인지는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금융사기에 꽤나 이름있는 이들도 쉽게 당하고 하는 것이다. 사업 진행과정에서부터 정부가 일일이 감시하고 간섭하려 들면 그건 더이상 자본주의 국가도 아닌 것이다. 

 

아무튼 뭐라도 근거가 있어야 권력형 게이트니 뭐니 떠들 수 있을 텐데, 언론 버릇 또 나왔다. 언론이 얼마나 민주당을 증오하고 있는가. 정확히 대한민국에서 엘리트라 부르는 이들이 어디까지 민주당을 혐오하고 경멸하고 있는가. 민주당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모든 수단이 정당화된다. 머릿속에 그렇게 각인된 모양이다. KBS 기자들이며 한겨레 기자들이며 민주당과 청와대를 악의 온상으로 아예 단정짓고 이야기하기도 하는 것을 보면. 웃기는 짜장들이다. 짬뽕이나 먹어야겠다.

역시나 아주 간단한 비유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다른 한 사람의 권리와 존엄을 철저히 무시하고 짓밟지만 반대의 경우는 오히려 더 엄격하게 존중되고 지켜지고 있는 중이다. 과연 두 사람의 관계는 어떤 관계일까? 대등하고 평등한 관계일까? 일방적인 위계관계일까? 너무 당연하지 않은가? 세상에 어느 대등한 관계에서 어느 한 쪽 만 다른 한 쪽을 일방적으로 존중하고 지켜주고 하겠는가.

 

내가 살면서 기자가 다른 사람 인권을 존중하고 지켜줬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 태연히 기사로 사람을 모욕주고 절망에 빠뜨리고 심지어 목숨마저 빼앗는 것이 바로 기자란 종자들이다. 그러면서도 단 한 마디 사과조차 없다. 단 한 번도 반성이라는 걸 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사람이 죽으면 자기들이 승리했다고 환호성까지 지른다. 아니 자기들이 그렇게까지 기사를 썼음에도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다면 살아있는 것을 가지고 비난하는 기사를 쓰기도 하는 지경이다. 그런데도 그런 기자들의 인권은 존중해달라?

기자에게는 인권이란 없다 여기는 이유인 것이다. 그냥 우발적으로 어쩌다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와 전혀 다르다. 상습적으로 의도적으로 상대의 존엄과 권리를 철저히 무시하며 그를 짓밟아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는 이들이다. 처벌조차 거의 받지 않는다. 채임조차 거의 묻는 법이 없다. 사람을 고통받게 만들고 그래서 심지어 목숨까지 끊게 만들면 오히려 칭찬받고 승진한다. 더 높고 더 영광스런 자리에 올라갈 수 있다. 그런 놈들의 인권따위 내가 왜 신경써야 하는가? 자신들을 향한 비난과 모욕이 듣기 싫다? 너무 견디기 힘들게 고통스럽다? 자기들이 쓴 기사로 인해 그 이상 고통을 겪어야 했던 이들이 저렇게나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단지 저들이 어리석고 편향되어서 비판하는 것이라 무시할 뿐이다. 자신들이 무시하던 상대로부터 비난을 들으니 그게 그리 더 고통스러웠던 것인가.

 

국제법상 포로를 재판없이 함부로 살해하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아우슈비츠를 점령한 미군들이 포로로 잡힌 독일군을 즉결로 처형한 것에 대해 누구도 책임을 묻지 않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끔찍한 죄악을 저지르고서도 여전히 인간으로서 존엄과 권리가 지켜지기를 바라는가. 의사놈들과 확실히 닮았다. 자기들만 특별하다. 자기들은 얼마든지 사람들을 상처주고 모욕주고 심지어 목숨까지 빼앗아도 성과가 되는데 자신들을 향한 어떤 비판도 비난도 용납되어서는 안된다.

 

사람을 죽이고도 그저 몇 마디 비난을 듣는 게 그리 고통스럽다. 다른 사람들을 나락으로 떠밀고서도 자기를 향한 날선 말들이 그저 두렵기만 하다. 기자질 그만두면 된다. 그따위로 기사쓰고 어떤 책임도 지지 않을 것이면 기자같은 것 그만 두고 더 건전한 다른 일을 찾으면 되는 것이다. 기자 월급 그리 많지도 않다면서? 기자질은 해야겠고, 사람은 죽여야겠고, 책임은 지기 싫고. 그러니까 기레기란 말조차 차라리 하는 짓거리에 비하면 찬양이고 고무라 여기는 이들이 생기는 것이다. 쓰레기에게 미안하고, 구더기에게 미안하다. 기레년이라는데, '년'은 사람에게 하는 욕설이다.

 

확실히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다. 셔먼이 참 좋은 말을 남겼다. 좋은 기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좋은 기자들은 다 죽고 사라졌다. 죽은 기자들만이 좋은 기자들이었다. 멀쩡한 놈들이 아직도 기자질이나 하고 있을 리 없다. 조금 더 솔직한 이야기를 할까 하다가 차마 거기까지는 너무 나간다 싶어서 참는다. 기자는 좀 탄압당해도 된다. 인권같은 것 무시당해도 된다. 그래야 마땅한 존재들인 때문이다. 징징거림이 짜증난다. 세상에 지들만 사는 것 같다. 역겨울 뿐이다.

참여정부 시절 그래도 한겨레와 경향은 믿었던 것 같다. 공중파 가운데서도 MBC와 KBS에 대해 상당한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였다. 모든 언론들이 하나가 되어 쏟아냈던 당시 참여정부에 대한 증오와 저주에 넘어가고 말았던 것은. 물론 노무현 정부가 모두 잘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못한 것도 많다. 실수한 것도 많았고 처음부터 방향을 잘못잡은 정책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명박근혜 시절 심지어 한겨레와 경향의 보도만 보더라도 비판의 정도나 강도는 참여정부 당시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까지 비난만 들었어야 할 정부인가.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언론에 대한 기대와 신뢰가 남아 있었기에 모든 언론이 한목소리로 떠들기 시작하면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언론은 물론 지식인 사회까지 똘똘 뭉쳐 공격을 퍼부어대면 대부분 대중들은 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아무튼 이토록 모든 언론과 지식인과 정치인들이 한목소리로 비판하는데 뭔가 문제가 있지 않겠는다. 더구나 원래 살아간다는 게 고통과 고난의 연속이라 현실의 고단함에 대한 책임까지 자연스레 그런 분위기 속에 참여정부에 전가하게 된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그래서 정권이 교체되었다. 다름아닌 민주노동당과 홍세화와 강준만과 한겨레, 경향, 오마이뉴스, 그리고 열림우리당이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 것이었다. 그래서다. 과연 앞으로도 언론이 떠든다고 그대로 믿고 판단해도 괜찮은 것인가 의문이 들기 시작한 것은.

 

김대중 정부와 참여정부 시절 그토록 날카롭던 언론의 비판의 칼들은 이명박근혜 시절에는 무뎌지다 못해 아예 솜방망이로 전락해 있었다. 최순실이란 이름이 드러나기까지 과연 자칭 진보 가운데 당시 정권의 부정이나 비리들에 대해, 실정이나 오판등에 대해 제대로 비판한 이들이 몇이나 있기는 했었는가. 아마 기억 못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전두환 정권 당시에도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비판은 어느 정도 허용되고 있었다. 대통령만 직접 거론해서 비판하지 않으면 적당히 정부기구나 지자체 등에 대해서 제한적이나마 비판도 할 수 있었다. 그렇게라도 숨 쉴 틈을 만들어 주어야 국민들이 떨쳐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충분히 욕하고 비판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순간 더 이상의 행동까지 않게 되고 마는 것이다. 그게 당시 한겨레, 경향 등 자칭 진보언론들의 역할이었다. 자칭 진보정당과 지식인들의 역할이기도 했다. 이런 정도 정부에 대한 비판도 가능하다. 단, 정부에 진짜 치명적인 것은 절대 보도해서는 안된다. 조선일보가 참전하지 않았으면 한겨레의 국정농단 보도는 처음 몇 번으로 끝났을 거라니까. 그런데 이제 와서 다시 정권이 바뀌니 언론이 참여정부 시절로 돌아가서는 아예 칼에 독까지 묻혀서 휘두르며 날뛰고 있다. 믿어야 하는 것일까?

 

그래서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아무리 모든 언론이 하나가 되어 발광을 해도 40% 밑으로는 절대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그 하한선이 최근에는 40%대 중반까지 올라온 듯하다. 한 마디로 언론이 뭐라 떠들든 듣지 않는 것이다. 아예 나처럼 언론보도 자체를 보지 않거나 - 커뮤니티에 누가 퍼다 나르면 그제서야 조금 보는 정도다. 그래서 정보가 매우 느린 편이다. -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단 의심의 눈으로 몇 번이나 거르고 거른 뒤에도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저 새끼들 또 저 지랄들이로구만. 정파적인 언론을 선호한다는 여론조사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미 모든 언론이 현정부와 여당에 반대하는 정파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데 기왕에 정파적인 언론 가운데 보다 자기에게 유리한 정파성을 찾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다. 아예 대놓고 정치적인 의도를 드러내는 언론을 과연 누가 전적으로 신뢰할 것이며, 그 보도를 믿고 자신의 정치적 판단을 내리려 할 것인가.

 

정확히 문재인 대통령의 불변의 지지율 40%만 그런 것이 아니라 국민의힘의 최저지지율 15% 남짓 또한 비슷한 성향들일 것이다. 언론이 뭐라 떠들든 다 가짜뉴스일 테니 나는 내가 유리한 것들만 듣고 믿으며 오로지 국민의힘을 지지할 것이다. 대통령 지지율에, 국민의힘 지지율에,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쉽게 간과하는 언론이 뭐라 떠들든 정치인은 다 똑같은 놈들이므로 누구도 지지하지 않겠다는 항구적 중도층들도 존재한다. 언론의 보도 가운데 부정적인 것들만을 믿고 받아들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언론의 의도한 바와 다르게 그들의 선택은 문재인과 민주당이 아니더라도 다른 정당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렇게 다 더하고 나니 거의 한 70%는 되는 것 같다. 어쩌면 그보다 더 될 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지금의 지지율이란 언론의 보도와 상관없이 원래 국민들이 가지고 있던 자기의 지지성향이란 것이다. 언론이 뭐라 지랄해도 전혀 일정 이상 영향을 미치는 것이 불가능한 이유다. 딱 여기까지가 언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이다.

 

격세지감이란 것이다. 그보다는 양치기다. 한계효용이다. 그래도 처음에는 민주당도 깐다는 사실에 진보언론에 신뢰를 보내던 사람들조차 원래 진보언론은 민주당을 까는 것이 원래 성향임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자칭 진보일수록 보수정당과 정치인보다 더 민주당과 민주당 정치인들을 혐오하고 증오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차피 한겨레든 경향이든 자칭 진보 지식인이든 조중동이나 마찬가지로 그저 민주당과 민주당 정치인들이 싫어서 저딴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것이다. 처음부터 같은 편이란 인식이 없으니 뒤통수맞을 일도 없고, 따라서 그들의 발언에 휘둘릴 일도 더욱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같은 경향은 강해진다. 저놈들이야 뭔래 그런 놈들이고 그러니 그다지 귀기울일 필요도 없다.

 

노무현 전대통령이 자신의 목숨까지 바쳐가며 드러내보인 저들의 본모습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저들의 본모습에 국민들도 더이상 속지 않고 언론의 보도와 상관없이 자신의 판단을 지키고자 한다. 아무리 욕해봐라. 아무리 지지율 끌어내리려 발광해 봐라. 어쩌면 어딘가 술집에서 한겨레와 조선의 편집국장들이 모여 울고 있을지도 모른다. 대검찰청에서는 경향과 중앙의 기자가 어리석은 국민을 한탄하며 술잔을 기울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동안 너무 자신들의 솔직한 속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었던 것을. 한 번은 속아도 두 번 속으면 바보인 것이다. 그래도 잠시나마 자신들이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의 편이라고 연기라도 해 보이는 성의가 있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지 모르지만.

 

딱 여기까지인 것이다. 그나마도 다시 오르고 있는 것은 언론이 얼마나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뜻인가. 원래 문재인 정부를 싫어하던 15%에, 정치인이라면 다 싫다는 대략 20% 정도를 더하면 고작 지금 언론이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전체 여론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조차도 대선으로 넘어가면 언론이 부추길만한 인물이 거의 남아있지 않아 한계가 뚜렷하다. 어차피 그래봐야 정권을 가져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국민 입장에서 굳이 지지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 더 있겠는가. 언론만 모를 뿐. 그래서 지지자를 욕하는 것일 게다. 다 너희들 때문이다. 안쓰럽기조차 하다.

돌이켜보면 작년 조국사태 당시 언론의 타겟은 조국 전장관의 도덕성이 아니었다. 당연하다. 박덕흠의 수 천억 이해충돌도 아무렇지 않게 흘려버리는 것이 지금 언론의 모습인 것이다. 사모펀드 그거 해봐야 얼마나 된다고. 다른 수많은 의혹들 다 더해봐야 기껏 수 십억 정도다. 물론 적은 돈은 아니지만 이후 언론이 윤석열 총장의 가족을 대하는 것만 봐도 그렇게까지 기사를 쏟아낼 정도는 아니다. 무엇보다 조국 전장관에게 가해진 결정타 역시 사모펀드가 아닌 딸의 고등학교시절 인턴활동이었고, 동양대로부터 받았다는 표창이었다. 자격이 되지 않는데 부모의 반칙으로 명문대에 들어갔다.

 

지금 의대생들 다시 의사고시 볼 수 있게 해달라고 한 목소리로 떠드는 언론과 야권의 모습을 보면서 더욱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의대생들은 엘리트다. 의대생들 자신들이 주장한 것처럼 학교에서 항상 시험만 보면 순위권에 들었던, 수능등급도 높은 우리 사회의 엘리트인 것이다. 그런 우수한 인재들인데 그 정도 특혜는 당연한 배려가 아니겠는가. 의대생들 자신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의대생들의 편에서 정부와 여당을 압박하는 언론과 야권 역시 다르지 않다. 바로 얼마전 대학내 교수들의 부정과 비리가 밝혀진 뒤에도 침묵하는 20대 대학생들의 태도도 그 연장에 있다 봐야 할 것이다. 그토록 공정을 앞세우던 그들이 조국 전장관 때와 전혀 다른 태도를 취하는 이유다.

 

실제 20대 청년들이 주장하는 공정은 우리들 세대의 공정와는 상당히 다르다. 이를테면 정시확대를 요구하면서 수시의 불공정성을 비판할 때 예시로 드는 것이 저소득층과 농어촌 학생들을 배려하는 전형들이었다. 집에 돈도 많고, 부모도 자식 교육에 열의를 쏟을 만큼 여유가 있어 더 유리한 조건에서 공부할 수 있다 하더라도 결과는 곧 자신의 실력인 것이다. 반대로 집에 돈도 없고 부모 또한 여유가 없어서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아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그 또한 자신의 실력이다. 그러니까 실력대로 가자. 굳이 서로 다른 환경과 조건의 격차를 인위로 보정하려 할 때 오히려 불공정이 발생하니 공정하게 자기가 타고난대로 경쟁해서 그 결과에 승복하도록 하자. 부모가 잘난 것도 자기가 노력한 결과이고, 결국 경쟁의 결과 승자가 된다면 누리게 되는 특권 같은 것도 오로지 자격 있는 실력자만이 가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공정이란 그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들어갔으면 정규직이라는 특권을 누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이고, 아니라면 비정규직이라는 징벌을 받는 것이 옳은 것이다. 그래서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대해 그토록 청년들이 분노했던 것이었다.

 

요체는 자격이다. 그리고 그 자격이 중요한 이유는 그 결과로 누리는 것들이 그만큼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특권을 누리려면 그만한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 특혜를 받으려면 그만한 자격을 갖추지 않으면 안된다. 특권과 특혜가 문제가 아니라 자격없는 이들이 그런 것을 누리는 자체가 문제다. 나경원은 그래도 된다. 홍정욱도 그래도 된다. 장제원도 그래도 된다. 심지어 박근혜마저도 그래도 되는 존재였다. 그래서 최순실이 문제가 되었던 것이었다. 자격도 안되는 최순실의 존재가 아니었다면 과연 언론과 청년들이 박근혜의 국정농단에 그렇게까지 분노를 드러냈을 것인가. 손석희나 한겨레가 박근혜의 국정농단을 까자고 기자를 쏟아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지금도 최순실을 차라리 욕하지 박근혜는 오히려 희생양이라며 동정하는 인간들이 저리도 많다. 그래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서울대교수 조국은 자격이 충분하지만 과연 그 자식들까지 자격을 갖추고 있는가.

 

나경원 자녀 입시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언론이 물타기한 방식이 바로 아들의 성적이었다. 이만한 성적이면 그정도는 반칙도 아니지 않은가. 특권도 특혜도 아니지 않은가. 실제 그런 언론의 주장에 바로 넘어가는 청년들이 그리 많았었다. 성적이 그만하니 반칙이 아니고, 조국 전장관의 딸 같은 경우는 성적이 그만 못했다 하니 반칙인 것이다. 그래서 집중적으로 언론과 검찰이 하나가 되어 그 입시과정을 낱낱이 파헤치고 공격했던 것이었다. 과연 제대로 자격을 갖추고 외국어고에 입학했고, 고려대에도 입학할 수 있었던 것인가. 아니라 하니까 분노한다. 반면 일단 정당하게 절차를 밟아 입학했으면 뭔 부정을 저지르든 아예 신경도 쓰지 않는다. 자기들은 그래도 된다. 정의당 장혜영이 자기도 수시 특별전형으로 입학했으면서 조국 전장관의 딸을 비난하는 이유인 것이다. 나는 그래도 되지만 조국 전장관은 그래서는 안되었다. 

 

그렇게 대한민국에서 최고라는 형법학자를 자식을 이용해서 정당한 특권의 자리에서 끌어내린 것이었다. 아니 어차피 경희대 출신 대통령의 아래에 있기로 한 순간 그는 더이상 서울대 출신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이 사회의 엘리트라고 불릴 수 없었다. 하지만 유시민의 전례가 있었기에 이번에는 철저하게 그를 추락시키기로 마음을 모은다. 자격이 안되는 자식을 반칙으로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엘리트의 자리에 올렸다. 바로 조국 전장관이 자신의 자식을 반칙을 사용해서 올린 그 자리란 지금 의대생들이 누리는 그 특권과 반칙들이 허락되는 자리인 것이다. 그런 엄중한 자리를 그렇게 임의로 반칙까지 사용해서 편취하는 행위를 과연 용납할 수 있을 것인가.

 

대통령의 공부성적을 들먹인 서민의 태도는 그런 무의식을 반영하고 있을 것이다. 박근혜처럼 혈통을 타고나거나, 아니면 의대생들처럼 정당하게 실력으로 특권의 자리에 오르거나. 물론 사법시험이란 엘리트로 올라가는 정석코스였을 것이다. 다만 인권변호사란 그런 엘리트의 길에서 벗어난 이레귤러라는 것이다. 조국 전장관이 사법시험을 치르지 않았다며 비아냥거리는 것처럼 진정 문재인 대통령이 공부를 잘했다면 고작 인권변호사로 만족했을 것인가. 특권을 누렸어야 했다. 특혜를 받았어야 했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실력을 증명했어야 했다. 

 

모든 것이 아귀가 딱딱 맞아 떨어진다. 정의당이 이제와서 국민의힘을 위해 입안의 혀처럼 구는 것이나, 자칭 진보들이 조중동을 위해서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하는 것이나, 결국 언론이 의대생들을 대신해서 그들의 특권을 지켜주려는 행보와 맞물리는 것은 아닌가. 어느 언론의 솔직한 기사처럼 이들은 엘리트이기에 정부가 낮은 자세로 양보하여 봐주어야 한다. 경희대 출신 아닌가. 고작 저 변두리 부산의 인권변호사 나부랭이 아니었는가. 의사들이 현정부를 무시한 이유이기도 하다. 박근혜였다면 감히 그런 행동은 꿈도 꾸지 못했다. 거의 정답에 가깝지 않을까. 학벌사회의 초상같은.

 

저들이 주장하는 공정은 따라서 그렇게 이해하면 된다. 특권을 누리는 공정이다. 특혜를 누리는 공정이다. 그만한 자격을 가진 자들에게 특권과 특혜를 허락하는 공정이다. 월급을 더 챙겨달라는 것도 아니다. 복지를 다른 정직원 수준으로 해달라는 것도 아니다. 그냥 조금만 더 자기들이 살 수 있게 배려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계약기간이 끝나도 일자리를 잃을 걱정부터 않아도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정규직은 그 자체로 신분이고 지위고 특권이 되는 것이다. 그래야 하는 것이다. 그 연장에서 보면 된다. 저들을 절대 이해도 동정도 못하는 이유다. 공정이 공정이 아니다. 

아마 작년 9월 중순이었을 것이다. 한창 조국전장관 이슈로 나라가 뒤집어지던 무렵 느닷없이 안진걸 소장이 뛰쳐나와 나경원을 고발하고 있었다. 이른바 조국사태의 흐름이 바뀐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긴가민가하던 지지자들마저 비로소 검찰의 속내를 알아차릴 수 있었으니. 유시민보다도 빨랐다. 그를 통해 비로소 지지자들은 수세가 아닌 검찰개혁을 앞세운 공세에 나설 수 있었다. 검찰은 지금 정치를 하고 있고 그것은 검찰개혁을 막기 위한 것이다.

 

윤석열이 확실히 정무감각이 많이 떨어지기는 한다. 당시 검찰이 나경원을 수사하는 시늉만 했어도 여권의 지지층이 그렇게까지 강하게 결집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검찰이 편향적으로 수사한다는 인식만 조금만 덜했어도 지지층의 결집으로 인해 이후 모든 검찰의 공작이 무력화되는 상황도 맞지 않았을 것이다. 나경원 하나만 희생시켰다면. 그런데 나경원도 판사출신, 남편도 아마 현직 판사였었지. 법원의 협조가 절대 필요하던 당시 윤석열 입장에서 과연 나경원을 수사할 수 있었을 것인가. 그래서 법관출신 여상규도 패스트트랙 수사에서 기소유예처분으로 끝내주었을 것이다.

 

물론 자신이 있었을 것이다. 자기가 제대로만 털면 정권은 끝장날 것이다. 자기가 검찰력과 언론을 총동원해서 정부와 여당에 대한 수사를 밀어붙이면 바로 정권은 교체되고 자기 세상이 열리고 말 것이다. 그러니까 불리한 전장에서는 바로 발을 뺐어야지. 정의당이 연동형비례대표제를 앞세워 열심히 시간을 벌어주는 사이 어떻게든 검찰개혁법안들의 입법을 막아보겠다고 수사를 밀어붙였지만 결과는 아는 바대로다. 그래서 나경원 수사는 패착이 되고 만 것이다. 수사결과가 지지부진하니 그렇지 않아도 검찰을 의심하고 있던 여론은 움직이지 않았고 결국 정부와 여당이 여전히 상당한 국민적 지지를 받는 상황에서 새로운 법무부장관이 인사까지 단행하고 말았다. 그리고 당시 남아 있던 정부와 여당의 지지층은 오히려 그런 것을 바라던 이들이었다. 그리고 손발이 잘려나가기 시작했다.

 

안진걸 소장이 당시 진짜 큰 일을 했던 것이었다. 안진걸 소장의 고발이 아니었다면 나경원의 자녀문제는 아예 공론화도 안되었을 것이고, 검찰의 선택적 수사로 인한 진짜 의도도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안진걸 소장을 계기로 지지층이 결집하기 시작했을 때 유시민이 나타났던 것이었다. 김어준이 버티고, 안진걸이 치고 나가고, 유시민이 부순다. 진짜 원수는 안진걸일 텐데. 아마 나경원의 고소도 윤석열의 사주가 아닐까. 안진걸만 아니었다면.

 

어쩌면 확신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털어봐야 크게 나올 것이 없을 것 같다. 그러니까 법원의 도움이 필요하다. 정경심 교수의 재판결과에 대해 확신을 가지는 이유다. 아마 최소 구속되어 구금되어 있던 시간 만큼의 징역형이 나오고 끝나지 않을까. 추가로 형을 살리거나 법정구속까지 시킬 사안이 아님을 알면서도 검찰의 체면을 세워줄 필요가 있으니. 그러면 언론도 만족하겠지. 아무튼 두고 보자. 과연 법원이 어찌 나올 것인지. 판사놈들이나 검찰놈들이나.

정당이라면 어찌되었거나 정권을 잡아야 하는 것이다. 내각제라면 다수당이 되어 행정부를 자기네 사람으로 채울 수 있어야 하는 것이고, 대통령중심제라면 더욱 당연히 자기당 후보를 대통령으로 당선시켜 그 의지대로 정부를 구성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지만 정당이 추구하는 지향과 목표를 현실에서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냥 수많은 소수파 가운데 하나로 남아 그저 밖에서 목소리나 높일 것이면 차라리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쪽이 더 선명할 수 있다.

 

당장 1997년 대선만 하더라도 보수후보의 표가 훨씬 더 많았음에도 정작 보수정당인 신한국당은 이회창과 이인제로 분열한 반면 보다 더 보수적인 김종필을 김대중이 끌어안음으로써 결과는 소수파였을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후 한나라당이 다수당이 되어 국회에서 끊임없이 발목을 잡았음에도 결국 대부분 정책들은 김대중 정부가 의도한대로 추진되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대통령중심제에서 대통령이 가지는 위상인 것이다. 거의 대부분 권력이 대통령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기에 대통령 하나 바꾸는 것으로도 상상한 그 이상으로 많은 것들을 바꿀 수 있다. 그래서 대통령 중심국가에서는 누가 다수당이 되었는가보다 누가 대통령이 되었는가로 정치적 시점을 나누게 되는 것이다. 대통령이 노무현이었는가, 이명박이었는가, 박근혜였는가로 구분하지 누가 1당이었는가로 구분하지는 않느다.

 

그래서 문제다. 대선후보 같지도 않았던 정동영 이후 아무리 민주당이 지리멸렬해 있어도 민주당에서 내세울만한 대선후보는 반드시 한 둘 정도는 있어 왔었다. 민주당이 자기들끼리 싸우며 한심한 꼬라지를 보이고 있어도 그래도 대선이 시작되면 저 가운데 한 명 정도는 보수정당 후보와 맞서서 차기 대권을 노려 볼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보면 민주당의 지지율은 민주당의 차기 대선주자의 지지율과 연동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었다. 혹은 거꾸로 정당지지율에 비례해서 차기 대선주자의 지지율이 연동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었다. 결국에 이 정당이 정권을 잡을 수 있는 정당인가. 지금 이 정당에서 대권을 잡을 만한 후보인가. 정의당이 저리 존재감없는 이유인 것이다. 권영길이나 심상정이 대선후보로 거론되던 동안에는 그래도 이름이라도 언급될 수 있었지만 심상정마저 뒷방늙은이가 된 지금은 그마저도 사라진다. 도대체 정의당 가지고 뭘 할 수 있는데?

 

지금 국민의힘이 가진 가장 큰 고민일 것이다. 대선후보가 없다. 민주당이 아무리 삽질을 하고, 언론이 총동원되어 그 작은 흠까지 있는대로 후벼파더라도 도저히 국민의힘이 그 대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지난 총선의 결과가 그것을 말해준다. 황교안이 이낙연을 상대로 대선에서 그래도 경쟁이라도 해 볼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과연 당시 미래통합당이 민주당을 상대로 대선에서 승리를 거두고 정권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 지역구 국회의원이 여당이고 야당이고는 당장 예산이나 정책면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배현진이나 태영호가 종부세 인상을 반대하는 것과 최재성이나 김성곤이 반대하는 것은 정부와 여당에게 있어서도 받아들여지는 의미가 전혀 다른 것이다. 그런데 미래통합당에는 황교안 말고 아무리 살펴봐도 홍준표나 김종인 말고는 사람이 보이지 않은다. 홍정욱도 김무성도 유승민도 안철수도 다 한심한 꼬라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윤석열은 박근혜 잡아 쳐넣은 한 가지만으로도 절대 보수정당의 대선후보가 될 수 없다. 그러면 누가 있는가. 그래서 선택한 것이다. 여당의 지역구가 되어야겠다.

 

아무리 언론이 지랄 염병을 해도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이유인 것이다. 오히려 민주당 지지율은 열린민주당까지 포함하면 거의 과반에 가깝게 유지되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차라리 민주당의 지지율이 빠지는 것은 더 선명한 개혁을 바라는 목소리가 열린민주당으로 향한 결과라 보는 것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여겨질 정도다. 왜이겠는가? 지금 차기 대선후보 지지율 1, 2위가 모두 민주당 소속이다. 그리고 1, 2위의 지지율을 모두 합하면 무려 44%라는 과반에 육박한 숫자가 나오게 된다. 그렇다고 나머지 지지율을 보수정당이 다 가져가느냐면, 조무래기들 다 모아봐야 저 절반이나 될까 싶은 상황인 것이다. 그런 국민의힘에 희망이 있을 것인가.

 

레임덕은 커녕 이낙연이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공무원이든 검찰이든 판사든 죄다 납죽 엎드려야 할 상황이 오게 될 것이란 이유인 것이다. 이낙연이든 이재명이든 대통령에 당선되면 지금 대통령에 게기는 너희들을 절대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다. 검찰의 인사권은 법무부장관에게 전적으로 귀속됨을 추미애 장관이 확인시켜주었다. 더이상 검찰총장의 말을 들어봐야 돌아올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국민의힘에 줄을 설 것인가? 홍남기를 따르는 재경부 관료들 역시 당장은 이낙연이 만만해 보이지만 그만큼 재경부의 내부까지 속속들이 알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이 전직 국무총리 이낙연이란 후보인 것이다. 자 어쩔 것인가. 이번에도 정권교체를 기대하고 말기에 한 번 대통령에게 덤벼 볼 것인가. 아니면 아예 납죽 엎드려 차기에 기회를 노려 볼 것인가. 그러면 국민의힘은?

 

그런 점에서 정의당의 선택을 아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정의당 없어도 된다. 오히려 정의당은 방해만 될 뿐이다. 존재감이 사라진다. 고작 6석짜리, 대선은 감히 꿈도 꾸지 못할 정당 나부랭이가 과연 이 판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이재명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 이유다. 이재명 지지자들도 이낙연 고마운 줄 알아야 한다. 그래봐야 모두 민주당 소속 대선 예비후보들인 것이다. 그 사실을 망각할 때 오히려 두 사람의 경쟁은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에 해악이 될 수 있다.

 

지금을 즐겨야 한다. 그리고 여유를 가져야 한다. 누가 되든 민주당 정권이다. 누가 당선되든 민주당 대통령이다. 결국 민주당이 승리하는 것이다. 민주당의 승리는 곧 문재인 정부의 승리다. 물론 대부분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이러니저러니해도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면 좋은 것이다. 민주당 후보로 정권을 지킨다면 그보다 좋을 수 없을 것이다. 아닌 놈들이 있는 것 같아 걱정일 뿐이다. 민주당이 먼저다. 민주당이 문재인이다. 어감도 좋다. 잊으면 안된다.

굳이 수구언론과 정치권을 욕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원래 저들의 스탠스가 저랬었기 때문이다. 한결같았다. 심지어 피해자가 직접 나서서 진실을 알리기 전까지 아예 없는 일인양 철저히 묻어두고 있었다. 박근혜의 위안부협상은 그같은 수구정권이 지향해 온 연장선상에서 내려진 결론 같은 것이다. 차라리 그런 것 다 알면서 지지한 놈들을 욕하지 지들 그러겠다고 처음부터 떠들던 놈들 욕해 무엇하는가.

 

다만 그럼에도 평소 정의로운 척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에 목소리를 높이던 자칭 진보들이 좋아라 그런 수구의 농간에 가세한 점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그동안 몇 번이나 말해 온 것처럼 사실 처음부터 이 모든 것은 예정된 결과라 할 수 있었다. 여성주의의 뿌리가 무엇인가. 한국 여성주의의 시작에 어떤 이들이 있었는가? 친일파들이었고, 해방 이후에는 친독재세력들이었다. 군사독재정권 시절 여성주의자들이 어디서 무엇을 했는가 돌이켜 보라. 그런데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여성주의가 진보적 지향의 하나로 여겨지면서 여성주의 또한 어느새 진보로 편입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질은 역시 친일, 친독재, 친재벌, 친기득권의 있는 자들의 놀음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래서 기회가 되었으니 원래 자리로 돌아간다. 박근혜의 위안부협상을 정당화하고 친일과 친독재에 부담이 되는 위안부의 역사를 지워야 한다.

 

설마 한겨레가 몰랐을까? 아무리 정의당이 몰랐었을까? 자칭 진보쪽 인사들이면 어떻게든 시민단체들과 거의 연결되어 있고, 알음알음으로 내부사정 정도는 어느 정도 전해듣는 것이 있는 것이다. 몰라서 수구언론의 공세에 부화뇌동한 것이 아니었다. 이미 알고 있었고 취재까지 했음에도 의도적으로 수구언론과 보조를 맞췄던 것이었다. 왜이겠는가? 바로 베를린에서 소녀상 철거하는 과정에서 정의연 논란이 중요한 근거로 쓰인 정황에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를 끝장내자. 아예 역사로 파묻고 더이상 언급되지 않게끔 만들자. 지금도 대부분 사람들이 정의연 뿐만 아니라 위안부라 하면 정의연의 회계부정부터 떠올리며 부정적인 감정을 내보이는 중이다. 뭔가 불편하고 귀찮다. 그러니까 아무렇게든 시끄럽지 않게 원만히 끝내자. 박근혜 위안부협상 그런 점에서 잘했네. 정의연이 나섰으니 뭔가 문제가 있었겠네.

 

바로 여성주의가 지배하는 자칭 진보의 미래인 것이다. 벌써 정의당만 봐도 차마 국민의힘도 눈치보여서 대놓고 하지 못하는 말들을 대신해서 열심히 떠들어주고 있는 중이란 것이다. 유력 여성주의 지식인인 이수정이 당당히 국민의힘에 몸담는 것을 보라. 여성주의의 아이돌 김재련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 중인게. 김재련 비판하면 모든 자칭 진보가 들고 일어나 공격해댄다.

 

한 편으로 여성주의가 제자리를 찾아가듯 진보 역시 제자리를 찾아가는 중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원래 록이란 무산자들의 음악이었다. 힙합 역시 가진 것 없는 할렘가 부랑아들의 음악이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어땠는가? 돈 많아 해외에 유학을 갔거나, 혹은 외국에서 살다가 돌아왔거나, 한국인이더라도 비싼 오디오 들여놓고 악기도 살 정도 여유있는 놈들이 유희로 즐겼다. 진보는 다를까? 그놈들의 가난에 대한 경멸과 혐오를 보면 참... 

 

베를린 소녀상 철거에 대해 들으며 그저 저들이 바라던 대로 이루어지는구나 싶었다. 그런데도 위안부운동의 역사 자체를 부정하던 놈들이 위안부문제로 다시 떠들기 시작하는 것을 보며 오히려 환멸만 더 깊어진다. 저따위 놈들이 마음대로 떠들 수 있는 것이 위안부문제였던 것인가. 이용수씨의 목적 하나는 확실하기 이루어졌다. 정의연이 주도한 위안부운동은 철저히 부정되기 시작했다. 축하드린다. 이건 저들이 이긴 것이다. 

박노자는 참여정부 때도 한결같았었다. 이전 김대중 정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매우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지식인이었기에 당시 자유주의 정부의 정책 모두에 동의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많이 비판했다. 이건 이래서 문제고 저런 저래서 안좋고 그러니까 당시 정부들에게는 어떤 한계가 있었고, 그러나 자칭 진보들과 차이라면 그러면서도 그런 가운데 이 나라와 이 사회가 어떻게 얼마나 좋아지고 달라지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적절히 인정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래서 차라리 당시 자유주의 정부들이 권위주의 정부보다는 낫다.

 

자칭 진보와 진짜 진보의 차이일 것이다. 가짜 지식인과 진짜 지식인의 차이다. 진짜 지식인이라면 절대 어용이라 불리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당연하다. 내가 얼마나 옳고 바른 주장을 하든 그것을 실제 현실로 이루어내는 것은 결국 정치이고 권력일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권력의 결단 없이 어떤 선명한 이념도 대단한 정책도 현실에서 실제 이루어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정치권력이 자신이 바라는 바와 일치하는, 혹은 그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 충족할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하려 한다면 어찌해야겠는가. 지지해야겠지. 아쉬운 부분은 지적하더라도 결국 그 방향성에 대해서만큼은, 더구나 이전까지 하지 않았거나 못했던 것들을 실현해내는 그 자체에 대해서만큼 인정하고 지지해야 하는 것이다. 설사 그 과정에서 어용이라는 소리를 듣는 한이 있더라도.

 

박노자 교수가 서민을 비판한 글을 보면 그런 맥락이 그대로 드러난다. 역시 문재인 정부의 아쉬움을 지적한다. 어설픔과 모자름도 비판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가 역사적으로 한 발 더 나아가는 진전된 정부임을 인정한다. 완전히 동의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인정할 부분은 인정해야만 한다. 문재인 정부를 부정해야지만 참지식인인 양 떠들어대는 한국의 자칭 진보들과 확실히 구분되는 모습이다. 혹시라도 정부 편든다 할까봐 최저임금인상도 근로시간단축도 심지어 한반도 평화를 위한 노력마저도 저들은 비판하지 않으면 안된다. 한겨레 스스로 자신들의 지면에 올린 기사다. 피살된 공무원을 구하기 위해 정부가 더 강경하고 적극적이었어야 한다. 뭘 어쩌라고? 전쟁이라도 할까? 실제 전쟁하자는 소리다. 감청사실 다 까발리고, 북한 영해 내에서 일어난 일에 무력까지 사용해서 개입하려 한다는 건 그냥 선전포고하라는 소리다. 하지만 그렇게 해야지만 현정부를 공격하면서 진보인 연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결국 이루어지는 것이 무엇이던가. 참여정부 시절 경험했다. 하긴 저들이 진정 바라는 것일 게다. 수구세력이 집권하고 그 아래서 자기들이 진보놀음 하는 것. 거리로 나가 시위하고, 그런 과정에서 사람들도 몇 죽거나 다치고, 그러면 더 비장미넘치게 자신을 희생하며 국민을 위하는 척 연기한다. 실제 희생한 건 아무것도 없다. 자칭 진보 가운데 진짜 이명박근혜 시절 시민들을 대신해서 희생한 이가 누가 있었는가. 오히려 그런 과정에서 더 큰 명성과 영향력을 얻는다. 수구정부에서 한 자리 얻기까지 한다. 이 얼마나 좋은가.

 

내가 이래서 박노자 만큼은 진짜 좌파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사람에게는 친정부니 반정부니 하는 의식 자체가 없다. 친민주니 반민주니 하는 구분 자체도 없다. 민족의 구분조차 모호하게 오로지 자기가 지향하는 방향에만 충실하며 그를 기준으로 엄정하게 세상을 보려 노력한다. 모든 주장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일부 일치하는 바에 대해서는 공감하며 지지한다. 그것이 바로 연대란 것일 게다. 공동체라는 것을 터고. 박노자라는 이름 그대로 이제는 한국인일 테니까. 태생이 어디이든. 때라도 긁어 끓여 먹이고 싶은 심정이다. 비교가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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