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어 박정희조차 유신 이전까지 자신을 반대하는 대학생들의 시위를 진압하겠다고 대학 경내까지 군과 경찰을 밀어넣는 걸 주저하고 있었다. 대학에 공권력을 투입하는 행위가 가지는 의미를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이 대학인 이유는 바로 자유롭기 때문이다. 고등학교까지의 중등교육과 대학 이사의 고등교육이 구분되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공공의 통제와 관리 아래 이루어지는 중등교육과 달리 고등교육은 주체들의 자율적이고 자발적인 선택과 판단과 규율 아래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대학은 항상 자유로웠고, 바로 그 자유를 통해 대학들은 학문을 발전시켜올 수 있었다. 그를 위해서 이미 초창기 대학들부터 학생과 교수의 길드가 만들어지고, 대학 스스로가 세속 및 종교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강력한 자치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상적인 경우 그러한 대학의 권위와 자율성을 직접 침해하는 것은 상당한 금기로 여겨져서 어지간하면 지켜지고 있었다. 하물며 자유와 개인을 중요시하는 근대의 민주국가라면 말할 것도 없다.

 

대학에서 교수와 대학생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학문적인 견해와 현실의 문제들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것은 따라서 대부분 시대에 대부분 정상적인 국가들에서 당연하게 용인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대학이 현실의 권력자의 미움을 사서 신변에 위협을 받는 저명한 인사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한 경우도 적지 않았었다. 그러면 또 대학의 보호를 받는 반체제인사들에 대해서도 자유를 중요시여기는 특히 서구의 국가들은 그를 용인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근대 인류의 지성과 양심과 사상과 철학은 인류사회의 근본적인 구조와 체제까지 바꾸는 변혁을 이루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당연하게 대학은 그 중심에 있었고 그것을 알기에 더욱 현대의 정상적인 국가들 대부분은 그러한 대학의 권위와 자율성을 적극 보호하는 편이다. 교육의 내용이나 방식에 대해 공적인 관리와 조율이 가해지는 중등교육과 달리 온전히 대학에 모든 교육을 맡기는 이유도 바로 그래서다. 그러므로 대학은 자유롭고 오로지 자유로워야 한다. 그러니까 박정희부터 대학 경내에 군과 경찰을 밀어넣는 행위 자체가 얼마나 중대한 것인지 스스로도 알고 있었고 알고 있으면서도 저지른 것이었다. 그것이 박정희와 전두환이 독재자라는 이유일 것이고.

 

미국이 내세울 수 있는 수출품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교육일 것이었다. 워낙 자유를 중요시여기는 나라인 탓에 미국의 대학교육은 세계에서도 감히 비교할 대상이 없을 정도로 자유롭고 그때문에 수준 또한 매우 높다. 그래서 세계에서 현대에 최첨단을 달리는 지식과 정보를 배우기 위해 미국의 대학들로 몰려드는 것이다. 그들이 미국의 대학들에서 등록금으로 지불하는 돈과 미국에서 생활하기 위해 지출하는 돈만 생각해도 미국 경제에서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미국의 대학에서 공부하기 위해 비싼 돈을 내고 미국의 대학에 들어간 유학생들을 단지 정부가 보기에 불편한 주장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모두 내쫓는다면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미국 정부가 좋아하지 않는 주장을 하고 직접 행동에 나섰다는 이유만으로 교육받을 권리 자체를 박탈한다. 그들은 이미 미국의 교육서비스를 돈을 내고 이용하는 소비자들일 텐데. 무엇보다 가장 자유로워야 할 대학에 대해 단지 다른 국적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가해지는 강제이고 억압이다. 

 

더 웃기는 건 그럼에도 그런 트럼프 행정부가 하는 짓거리에 대해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대한민국의 현역 대학생이거나 대학교육을 마친 청년들이 있다는 점일 것이다. 하긴 지금 2030 가운데 상당수가 과거 박정희와 전두환의 독재를 그리워하고 있기는 하다. 4050 운동권세대들이 쓸데없이 대한민국을 민주화시켰다며 분노와 반감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었을 것이다. 민주화라는 말이 조롱의 뜻으로 쓰인 것이 벌써 20년 가까이 되었다. 대학도 공권력의 통제 아래에 놓여야 한다. 대학생들도 정부가 허락하는 주장만을 해야 한다. 내가 가장 어이없어 하는 부분이다. 그러면서 납득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했을 때 6070 늙다리들을 제외하고 가장 적극적으로 그를 옹호하고 최소한 침묵했던 세대가 누구였는가 떠올리면 바로 답이 나온다. 그런데도 그들이 내세우는 가치가 공정과 자유라는 것이 어이없을 따름이다.

 

아무튼 흥미롭다. 대학생들이 자유롭게 자기가 주장하는 바를 시위라는 행동을 통해 표출하는 것에 대해서는 정부가 얼마든지 억압할 수 있는데 야동을 보는 것을 억압해서는 안된다. 심지어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하는 성적표현물에 대해서까지 무제한적인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 문득 1970년대 말 일본에서 포르노를 성인비디오라는 이름으로 허용한 배경을 떠올리게 된다. 1980년대 한국에서도 에로영화가 봇물처럼 쏟아지던 이유이기도 했다. 얼마나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인가. 

 

민주주의란 얼마나 취약한 제도인가. 하나의 체제와 구조가 근본부터 무너지는데는 아주 작은 그러면서 너무나 적은 노력과 시도만이 필요할 뿐이다.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니다. 저런 병신짓거리를... 아, 스위치2 가격 비싸진 것 보고 분노하는 놈들이 보이기는 하더라. 딱 그 정도 수준이다. 민주주의란 그런 점에서 인간과 아주 맞는 제도는 아닐 것이다. 병신들이 너무 많다. 한숨만 나오는 것이다.

이른바 2030 남성들이 바라는 청년정책이란 다른 게 아니다. 여성들 취업 못하게 해달라. 4050남성들 좀 직장에서 잘라달라. 그러기 위해서 더 일하기 힘들도록 급여도 줄이고, 일하는 시간도 늘리고, 복지도 없애달라.

 

중소기업에 취업하는 청년들을 위해 급여도 지원해주고, 목돈 만들 수 있도록 저축도 지원해주고, 청년들을 위한 임대주택도 만들어주고, 다 청년들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그랬었다. 하다못해 비정규직으로 취업한 노동자 가운데 같은 2030 청년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조차 공정하지 못하다고 반대하고 나섰었다. 그러면서 하는 이야기가 오로지 여성과 4050세대들. 저놈들 좆되게 하는 게 바로 자신들을 위한 것이다.

 

심지어 출산률 가지고 그리 민주당 욕하던 놈들이 또 하던 짓거리가 결혼하고 출산도 한 직원들을 위한 여러 지원과 복지정책들에 대해 자기들 차별한다고 집단행동에 나서서 아예 없애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결혼도 않고 아이도 없는 사람들보다 아이까지 낳은 사람들을 위해 국가와 기업이 나서서 여러 지원들을 하는 것을 반대하고는 그냥 예전대로 하자. 한 마디로 남 잘되는 꼬라지는 못보겠다. 그러니까 이준석이 미래의 아젠다를 이야기하는 훌륭한 정치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준석이 말하는 여가부와 국민연금이란 무엇인가? 여성들에 대해 정부가 그동안 해오던 행정적 정치적 지원들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oecd회원국 중 최악이라는 노인빈곤문제를 그냥 손놓고 있겠다는 것이다. 노인들에게 너무 많은 재원이 돌아간다. 하긴 노인들도 박스 줍고 빈캔 줍고 그러다 서로 싸우고 그래야 그들이 바라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세상이겠지. 그러니까 국가가 비전을 가지고 무언가 더 많은 다수를 위해 보편적으로 행동할 방향을 제시하기보다 다른 사람이 그나마 누리는 것들을 빼앗는 것이 바로 그들이 말하는 공정이고 상식이고 정의인 것이다. 트럼프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아마 정치인들이 청년들을 위한 정책이 무엇인가 물어본다면 거의 대부분 비슷한 대답을 들려줄 것이다. 더불어 대기업을 위하고 환경에 반대하고 차별과 평등을 위한 모든 정책을 포기한다면 그것이 바로 청년들을 위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어째서 여성들이 느닷없이 민주당으로 돌아서서 이재명을 중심으로 똘똘 뭉치게 되었는가는 전혀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원래부터 여성들은 민주당 지지자였다. 아닐 걸?

 

아닌 2030도 분명히 있다. 아마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마주하는 심지어 민주당을 지지한다는 2030들 역시 말하는 걸 들어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 오죽하면 페미가 싫다고 윤석열의 내란을 지지하는 놈들이 6070 다음으로 많을까. 그렇다고 실제 2030 남성들이 자기들이 주장한 것처럼 이준석을 정치적으로 지지하느냐면 또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는 게 우스운 것이다. 이준석을 위해 행동에 나서는 놈들이 그 정도만 되어도 그래도 들어주는 시늉 정도는 해 주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지만 입으로만 떠들지 정작 이준석 자신의 지지율만 보면 그냥 이름만 유명한 고만한 정치인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다. 역시나 그래서 남는 게 이재명은 안된다. 페미는 안된다. 4050 몰아내자. 

 

아무튼 그래서 가장 어이없는 것. 어째서 심우정에는 분노하지 않느냐 그랬더니 안 그럴 것 같은 놈이 그러면 더 화나는 거란다. 그래서 원래 그럴 것 같은 놈이어서 지지한 것인가. 사실 논리가 없기는 하다. 문재인 정부에서와 같은 일이 윤석열 정부에서 일어나도 그놈들은 전혀 분노하는 시늉도 하지 않았었으니. 2030 남성들이 가장 조용했던, 아니 심지어 환호했던 시절이기도 하다. 나쁜 건 다 문재인 때문이다. 참 편리한 뇌구조다. 신기하다.

윤석열과 그 잔당들이 이렇게까지 막나갈 수 있는 이유는 다른 것 없다. 이 사회의 기득권이 모두 자기들 편이다. 당장 언론부터 나서서 비판해야 하는데 그럴 리 없다는 것을 모두가 안다. 지식인사회가 움직여서 이를 막고자 나서야 할 텐데도 역시 그럴 일따위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 정작 여론을 움직이는 주류가 자신들에 호의적이다. 그동안 탄핵선고가 나오기까지 어떻게 탄핵반대여론이 높아지고 또한 강하게 결집할 수 있었는가 과정들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심지어 평소 그토록 인권과 민주주의를 부르짖던 2찍 진보들조차 내란에 대해서는 차라리 이재명보다 낫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할 수 있는 건 다 한다. 법도 무시하고 헌법도 무시하고 그냥 하고 싶은대로 다하려 한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가 아니었다. 법에 의해 운영되는 국가가 아니었다. 몇몇 소수가 마음대로 법을 어기고 무시해도 상관없는 그런 나라였다. 그런데 개헌이라고? 내각제라고? 우원식이 병신새끼라는 이유다. 이렇게 헌법을 개무시하는 새끼들이 당당히 자기들 하고 싶은대로 다 할 수 있는 나라에서 헌법이 뭔 소용인가? 중국 명나라에도 일찌기 대명률이라는 것이 있어서 조선의 경국대전에도 영향을 주었었는데 정작 위상은 오히려 미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조선에서는 그래도 왕들도 경국대전은 지켜가면서 통치하고 했지만 중국은 그런 것 따위 없었다. 왕도 헌법은 지켜가면서 통치하는 것이 입헌군주제라면 헌법도 없이 그냥 하고 싶은대로 다하는 게 전제왕조인 것이다. 그런데 뭔 헌법? 지금 명예혁명이라도 다시 일으켜야 하는 상황인데.

 

그래도 덕분에 우원식이 살기는 했다. 개헌을 이슈로 대선을 치렀으면 꽤나 민주당 내부도 시끄러웠을 텐데 한덕수의 헌법재판관 임명 때문에 개헌이고 뭐고 그것부터 해결해야 하게 생겼다. 우원식이 바로 반응한 이유일 것이다. 그나저나 결국은 여론을 등에 업어야 뭐라도 될 텐데 과연... MBC도 JTBC도 윤석열이 문제지 헌법재판관따위 전혀 상관이 없을 거거든. 한겨레도 이재명만 아니면 윤석열이 다시 돌아와도 상관없다는 입장일 테고. 정의당이 그랬었으니까. 결국은 집단으로 드러누워야 한다는 것인데... 역시 또 거리로 나가야 한다는 뜻이려나? 헌법재판소 앞을 가로막고 아예 출근도 못하게 막는 수밖에 없겠다. 헌법재판소를 믿을 수 있어야지. 지랄같은.

가계부를 쓰는데 적자가 심하다. 그러면 가장으로서 무엇부터 해야겠는가? 일단 가장 먼저 씀씀이를 줄여야 할 테고 그 다음으로는 수입을 늘릴 고민을 해야 한다. 기업도 다르지 않다. 적자가 생긴다는 것은 수입보다 지출이 많다는 것이고, 따라서 적자를 줄이기 위해서는 수입을 늘리면서 지출도 함께 줄여야 한다. 다만 개인이나 기업의 경우 당장 수입을 늘리는 것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기에 지출을 줄이는 것이 가장 쉽기는 할 터다. 그것은 사실 국가도 다르지 않다. 재정적자가 심해서 늘어난 빚과 이자로 고민이라면 가장 먼저 고려할 것은 지출을 줄이는 것일 게다. 그러면서 동시에 수입을 늘릴 궁리도 해야 한다. 바로 세금이다.

 

그래서 지금 미국에서 적자를 줄여보겠다고 벌이는 짓거리들이 우습다는 것이다. 물론 재정적자가 심하니까 낭비를 줄여야 하기는 한다. 불필요한 예산 가운데 줄여야 할 것이 있으면 최대한 줄여서 효율적으로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필요한 최소한은 남겨둘 수 있도록 수입을 늘리기 위한 궁리도 해야 할 텐데 그것을 오로지 관세 하나에만 집중하려는 모양새다. 하긴 트럼프 자신도 대놓고 말하고 있기도 했었다. 관세를 더 많이 걷으면 소득세를 내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니까 다른 세금은 더 걷지 않고 관세만 늘리면서 지출만을 최대한 줄여보겠다는 속셈인 것이다. 이게 어디서 많이 보던 꼬라지다. 지금 삼성이 그렇고 과거 인텔이 그랬고 보잉도 그렇게 기업이 망가졌었다.

 

지금 미국이 너무 세금을 많이 걷어서 더이상 올릴 여력이 없는 경우라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실제 지금 유럽이 그렇다. 유례없이 높은 세율로 인해 돈 좀 있다면 외국으로 거의 빠져나가는 상황인데 여기서 더 세금 올리겠다 하면 진짜 공산주의 하겠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유럽에서 정부가 나서서 주도적으로 뭔가를 해보겠다 하면 사람들이 코웃음부터 치는 이유일 것이다. 과연 유럽의 국가들에 그만한 재정적인 여력이 있을 것인가. 세금을 더 거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미국처럼 국채로 재원을 조달하기에는 한계가 명확하다. 그에 비해 미국은 어떤가? 그래서 웃기는 것이다. 역대 공화당 정부마다 부자들 세금을 있는대로 낮춰 주었었는데, 정작 민주당이 집권해서도 그 세금을 다시 원래대로 되돌려놓지 않았었다. 오죽하면 워렌 버핏마저 자기가 비서보다도 세금을 덜 낸다며 현재 미국의 징세정책을 비판하고 나설 정도였다. 그런데 여기서 더 세금을 낮추면서 재정적자만 줄이겠다 한다. 가장 필요한 부분에서까지 지출을 줄여가면서 관세만으로 그 부분을 보전하겠다고.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일 것인가. 

 

관세는 말하자면 간접세다. 상품에 직접 부과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결국 상품의 가격에 포함되어 소비자가 지출하게 될 세금인 것이다. 그에 비해 소득세와 재산세는 자신이 얻는 수입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산에 비례해서 내게 되는 세금이다. 더 많은 돈을 벌고 재산을 가진 만큼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 그래서 대부분 국가에서 소수의 부자들이 세금수입의 상당부분을 실제 책임지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정작 부자들이 내야 하는 직접세는 그동안 깎아준 것에서 더 깎아주고 모든 미국인들이 공평하게 내야 하는 간접세인 관세는 더 높이겠다 한다. 그러고는 부족한 것은 필요하든 필요하지 않든 가리지 않고 지출만 줄여서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게 가능한 일일 것인가. 그 전에 그것이 과연 옳은 방법일 것인가. 미국답다면 미국답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런 와중에도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 진짜 재정적자가 문제라면서 가장 쉽고 빠르게 상식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세금이라는 대책을 외면한 채 다른 방법만 찾는 것이 과연 현명할 것인가.

 

한 마디로 세금을 더 내야 하는 부자들의 책임은 외면한 채 실제 소비를 해야 하는 미국 국민 다수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미국에 상품을 팔아야 하는 다른 나라들에 그 고통을 나누겠다는 속셈인 것이다. 아메리칸 퍼스트가 아니라 아메리칸 리치 퍼스트다. 미국의 부자들을 위해서 미국 국민과 미국 경제와 미국의 시스템과 나아가 세계의 경제까지도 희생시키겠다. 그래서 과연 미국의 부자들은 지켜질 수 있을 것인가. 가능은 할 것이다. 경제위기란 또한 더 많은 돈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헐값에 더 많은 자본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일 것이니. 대신 그 댓가는 그 외의 나머지가 치르게 될 것이다. 그것이 과연 미국과 미국 국민들에게 얼마나 이익이 될 것인가. 

 

그래서 더 어이가 없는 것이 미국도 아닌 한국에서 트럼프의 정책에 열광하는 자칭 단군이래 가장 똑똑한 세대들인 2030 남성들일 것이다. 정확히는 반PC주의자들이다. 트럼프는 똥을 싸도 옳다. 심지어 되도 않는 궤변이나 늘어놓는 대변인마저 쇼츠로 퍼와서 찬양하느라 제정신들이 아니다. 조류인플루엔자로 닭들이 죽어나가 계란값이 오르는 상황에 그를 담당해야 할 공무원들을 자르고 있는 상황에도 오히려 잘한다고 빨아주느라 열심이다. 트럼프에 대해 분석하는 놈들도 다르지 않다. 어째서 트럼프의 재정정책을 이야기하면서 증세 이야기는 빠지는가. 감세가 가지는 모순을 지적하는 놈들이 없다. 미국놈들이야 못배워 먹어서 그런다 치더라도 대부분 대학들도 나왔을 텐데. 하긴 민주주의 국가에서 민주주의를 파괴하려 한 내란을 지지하는 병신새끼들이기도 하다. 남의 욕 할 때가 아니다. 바로 한국에 그런 병신새끼들이 자라나고 있다. 유전자의 문제일까? 하여튼 한심한 것이다.

솔직히 조금 쫄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논리적으로 탄핵이 인용될 것 같기는 했는데 그럼에도 그동안 판사들에게 두들겨맞은 뒤통수가 아직도 무척이나 얼얼한 터라. 공부만 잘하는 또라이들에 대한 기억까지 새록새록했다. 그동안 검사놈들 하는 꼬라지 보고 있으려니 같이 사법고시 치르고 사법연수원생활도 같이 했을 판사놈들이라고 얼마나 다르겠는가. 더구나 지귀연처럼 아예 없는 법조문까지 만들어 판결하는 놈도 있었다. 그러니까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판단했을 때는 분명 탄핵 인용이 맞는데 판사놈들을 믿을 수 없으니 다른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런데 그걸 내가 견딜 수 있을까?

 

박근혜의 경우도 있고 해서 탄핵선고가 오래 걸릴 것까지 예상하고 보지 말까 실제 고민도 했었다. 여기서 기각 나오면 바로 2차계엄이다. 바로 블로그 폭파하고 어디 숨어 있어야 하는 건 아닌가. 그래서 고민하다 유튜브를 통해 보기 시작했는데 벌써 끝이더라. 그래서 선고 내용 전체를 보지는 못했었다. 하긴 다른 게 뭐 소용이겠는가. 윤석열을 대통령직에서 파면한다. 이 한 마디면 충분한 것을. 당연하게 나와야 하는 결과가 나왔는데도 가슴이 벌렁거리는 것은 그만큼 얼마나 상식을 벗어난 현실을 살아왔는가 하는 증거일 것이다. 그 순간까지도 나는 판사들을 믿지 못했었다.

 

한 편으로 생각하면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하면서 한동훈과 이준석까지 죽이려 한 것이 어쩌면 부메랑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한겨레는 한동훈이 아니었으면 절대 윤석열 계엄에 반대하지 않았을 것이거든. 탄핵에도 찬성하지 않았을 것이다. 서울대 법대 윤석열이 날아가도 같은 서울대 법대인 한동훈이 있다. 그래서 계엄해제의 공을 민주당이 아닌 국민의힘의 한 줌도 안되는 국회의원들에 모두 몰아주려 했던 것 아니겠는가. 같은 이유로 경향일보도 존재감은 미미하지만 같은 검찰 출신인 한동훈 때문에 계엄반대의 입장을 보였었다. 그리고 MBC와 JTBC 역시 이준석을 믿고서 윤석열을 날리는데 힘을 집중한 것이었고. 이재명 혼자였으면 과연... 그놈들이 언제 헌법과 사회의 정의를 신경썼다고. 지금도 당장 이준석 빨아주느라 아주 정신이 없는 모양이던데.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보수언론이야 홍준표든 김문수든 될 것 같은 후보에 집중할 것이고, 한겨레 경향은 하던대로 서울대와 검찰에 목숨을 걸 것이다. MBC와 JTBC는 하버드 학벌에 판돈을 걸려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민주당의 시간이 돌아왔다. 민주당과 이재명을 까자. 윤석열 탄핵했으니 이재명도 죽여보자. 문재인 때 그랬던 것처럼. 항상 명심해야 할 것은 한국 언론은 반민주당이라는 하나의 깃발 앞에서는 언제나 하나였다. 더구나 당대표가 서울대 출신이 아닐 때는 더욱. 그러고보니 민주당 당대표 가운데 서울대 출신이 몇 없었구나. 그래서 더 그랬을까?

 

아무튼 나올 판결이 나왔다. 기대한 그대로라 오히려 의외인 느낌이다. 그리고 이제 시작이다. 대선까지 60일. 더불어 개헌도 생각해야 한다. 대통령의 폭주를 견제할 장치가 너무 없었다는, 다시 말해 그동안 너무 착한 사람들이 대통령이 되었었다는 교훈을 이번에 얻게 되었으니. 윤석열 같은 놈이 나오면 대통령을 견제할 어떤 수단도 마땅히 보이지 않는다.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더불어 민주당 내부의 내란동조세력들도 솎아내고. 숙제만 산이다. 문재인이든 이재명이든 꼭 이런 때 대통령이 되어서는. 국민의 잘못이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특히 2030 남성들이 말하는 공정과 상식이란 우리 세대가 생각하는 그것과 상당히 다르다. 게임을 즐긴다면 아마 이해가 쉬울 것이다. 더불어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웹소설들을 본다면 더 직관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인간은 모두가 같지 않으며 개개인의 가치는 어쩔 수 없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더 높은 가치를 지닌 이들은 더 큰 권리와 자유를, 더 낮은 가치를 가지는 이들에게는 그에 걸맞는 권리와 자유를, 그리고 그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은 역시나 가장 객관적인 시험이어야 하는 것이다. 2030 남성들이 공정을 부르짖으면서 성적으로 줄을 세우는 정시와 사법고시의 존치를 함께 주장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다른 요소들이야 어쨌든 당장 드러난 결과를 통해 개인의 가치를 판단하고 그에 따른 정당한 대우가 주어져야 한다. 그래서 곽상도 아들의 50억에 대해서도 검사 출신이고 민정수석이었다는 이유로 그들은 납득하고 넘어갔었다. 나경원의 아들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러면 심우정은 어떨까?

 

사실 그래서 유독 2030남성들 사이에서, 그 가운데서도 20대 남성들 가운데 6070 다음으로 윤석열의 내란에 찬성하고 탄핵에 반대하는 여론이 높은 것이기도 하다. 서울대, 그것도 법대 출신 아닌가. 심지어 그 어렵다는 사법고시에 합격해서 검찰총장까지 된 사람이다. 그저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다는 이유로 대통령이 되고 국회의원이 된 얼치기 정치인보다는 그런 자격있는 이들이 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것이 당연히 그들의 입장에서 더 정의로운 것이다.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고 공무원이라는 것들이 국민의 대변자인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오만 무례와 월권을 저지를 때도 그래서 그들은 오히려 환호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진정 자격이 있는 것은 시험봐서 자격을 획득한 공무원이다. 그것도 어렵다는 행정고시에 합격해서 고위직에 오른 공무원들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국회의원들이 심지어 검사님들까지 탄핵해서 물러나게 하고 검찰이 특활비도 못쓰게 하는데 계몽을 위한 계엄을 하고 그놈들을 모조리 죽이겠다 하는 것을 문제삼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실제 오늘도 일하던 도중 그래도 지금 정치인 놈들 싹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은 터다. 

 

그러니까 자신들에게 가장 예민할 수 있는 취업비리를 두고서도 그 주체가 무려 검사들의 우두머리인 검찰총장이고 관여된 인물 가운데 외무고시를 치러서 합격했을 외교부 공무원이 관여되어 있다 하니 그냥 입다물고 가만히 있는 것이다. 탄핵 때문에 화력을 모은다고 하기에는 정작 탄핵에 대한 이야기도 2030 남성들 사이에서는 그리 크게 오가고 있지 않다. 오히려 탄핵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더 높으면 높았지 진지하게 내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찾아보기조차 힘들다. 그러면 원래 관심이 없었는가? 그러면 조국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었어야지. 문재인 자녀들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었어야 한다. 이재명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다행인 것은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를 거치면서 민주당 정치인들조차 더이상 2030 남성들이 말하는 공정과 상식이라는 것에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습한 것이다. 저놈들이 말하는 공정과 상식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 그것은 저들이 국민의힘을 지지하기 위한 이유에 지나지 않는다. 정확히 민주당이 맞춰줄 수 없는 저들을 위한 레토릭에 지나지 않는다.

 

하다못해 민주당을 지지하고 윤석열 탄핵에 찬성한다는 2030들조차 남성들은 그다지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 같다. 하긴 그들의 경우는 진짜 이해하는 것이 이전 민주당 관련한 이슈들에서도 상당히 신중한 입장이었으니 그러려니 넘어갈 수 있다. 무엇보다 그들 대부분은 굳이 2030 남성이라는 정체성을 일부러 앞세우려 하지도 않는다. 2030 남성이기 이전에 국민으로서 분노할 뿐 그것에 2030 남성이라는 정체성을 뿌리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놈들만 2030 남성들인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주장하는 공정과 상식이란 그렇게 그 정체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고. 조국과 문재인에게는 분노하던 그들이 어째서 심우정과 나경원과 한동훈과 윤석열에게는 관대한가. 그런 놈들이니까. 정권이 바뀌게 된다면 더욱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따위 개좆같은 소리에 더이상 휘둘리거나 해서는 안된다. 그냥 개똥이다. 거름조차 못되는.

사치품의 소비를 줄여보겠다고 부가가치세라는 것을 만들었다. 박정희가 뒈진 이유 가운데 하나다. 그러면 이 세금은 과연 누가 내고 있을까? 사치재를 실제 생산해서 파는 업자들? 아니면 그것을 돈 주고 사서 쓰는 사람들?

 

술도 담배도 해로우니 소비를 줄이고 그로 인한 해악을 조금이라도 해소하고자 수많은 명목의 세금을 붙이는데 그래서 그 세금들은 과연 누가 실제 국가에 납부하고 있을까? 당장 직접적으로 세금을 내는 것은 상품을 생산해서 판매하는 업자들일 테지만 그러나 그 모든 세금은 가격표가 되어 소비자에게로 전해진다. 즉 실제 소비하는 다수의 대중들이 상품을 구입할 때 지불하는 비용 자체가 그 모든 세금이 포함된 가격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누가 낸다?

 

관세의 목적을 생각해 보면 더욱 쉽다. 관세라는 건 애초에 자국의 산업을 보호할 목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었다. 근대 이전 유럽의 국가들은 결국 군주 개인의 사유재산에 지나지 않았었다. 그러므로 내 소유인 영지에서 장사를 할 것이면 당연하게 그에 합당한 댓가를 지불하라. 그래서 지나는 영지마다 세금을 내다 보니 거기에 질려서 부르주아들이 절대왕정을 후원했던 것이기도 하다. 근대 유럽에서 일어난 민족주의의 원인 가운데 하나도 하도 조각조각 찢겨져 있어서 장사 좀 하려 하면 세금을 내야 하는 대상이 너무 많아서 그냥 대충 묶어서 하나로 퉁치자는 목적도 있었던 것이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여기저기에 세금을 내다 보니 당연하게 상품의 가격이 너무 올라서 그러한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토착 상공인과의 경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던 것이 이후 자국의 상공업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로써 관세를 이용하는 정책을 만들어내기도 했었다. 즉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는 것이 최초의 목적이 아닌 자국에서 상품을 판매할 수 있는 권리에 매겨지는 세금이었고 당연히 그 부담은 상품의 가격으로써 자국 국민들에게 전가되는 것이었다는 뜻이다. 관세를 높이면 자국 산업에 유리하다는 것은 그같은 애초의 목적과 이후의 이용을 혼동한 결과라는 것이다.

 

당장 외국의 상품을 수입하는 것부터 해외의 업자가 직접 상품을 들여와서 파는 것이 아니라 국내의 업자가 해외의 업자로부터 상품을 사들여 파는 방식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해외 기업의 현지법인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해외 기업의 현지법인이라 할지라도 결국 그 구성원 대부분은 현지에서 고용한 직원들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니 본사와 별개로 이익구조가 짜여져 있는 경우가 더 많다. 본사의 이익이 얼마이든 현지법인의 매출에서 고용도 이루어지고 직원들의 급여나 처우도 결정된다. 정작 그 나라에서만 실적이 나오지 않아서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대기업인데도 정작 법인은 철수하는 경우가 그래서 심심찮게 보이기도 한다. 혹은 본사와 상관없이 현지 법인의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정책을 세우고 그것이 본사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생겨난다. 그런데 관세가 올라가면 당장 그 관세를 지불해야 하는 것은 바로 실제 그것을 들여와서 판매해야 하는 그들 국내의 기업들이라는 것이다. 물론 해외의 기업들도 상품을 파는데 지장을 받기는 하겠지만 그 피해를 직접 입는 것은 현지에서 해외의 지사에서, 혹은 독자적으로 무역을 하는 업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내는 세금 만큼 당연하게 상품의 가격에도 전가되어 소비자들이 보는 가격표로 돌아간다.

 

더 큰 문제는 관세가 오르면 수입품의 가격만 오르고 끝나는가 하는 것이다. 아마 1980년대 이전 국내 산업을 보호하겠다고 강력한 보호무역정책을 펴던 당시의 상황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알 것이다. 당시는 개발도상국 이전에 그냥 지지리 가난하던 미미하고 소소한 나라라 그래도 대충 용인해 주었었는데, 아니 그 전에 어차피 자유무역하겠다고 해봐야 구매력도 없어서 그냥 봐주고 있던 상황이었는데, 그래서 한국 제품들은 품질도 한심한 수준인데 가격만 오지게 비쌌던 기억이 있다. 일본제 워크맨에 비하면 성능도 내구성도 한심한 수준이던 휴대용 카세트들이 오히려 더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었을 정도였다. 세운상가에서 밀수로 들어온 워크맨을 웃돈주고 산 것이 삼성제 카세트 정품가격보다 쌌던 기억이 있다. 그때 가장 돈을 벌었던 것은 그렇게 몰래 세금도 내지 않고 들여와서 파는 밀수업자들이었다. 수입품의 가격이 오르면 국내생산품의 가격도 따라서 오른다. 당연하지 않은가. 비교대상이 있다. 그래서 중국산 제품들이 한국 시장을 크게 교란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바로 옆나라인 중국에서 싼 인건비를 바탕으로 터무니없이 싸게 만들어 파는 제품들로 인해 국내에서 만드는 제품들조차 제 값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 비용까지도 모두 소비자가 지불하는 것이다.

 

관세를 내는 것은 그것을 파는 수출국가의 기업이 아니라 소비하는 미국의 국민들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에 대해 자신의 경제학 지식을 과시하는 백악관 대변인의 우기기에 대해 찬양을 쏟아내는 놈들을 보면서 한숨부터 나오는 이유다. 심지어 그 관세정책에서 대한민국 또한 예외가 아닌 상황인데도 그렇다. 하긴 오바마는 극단적이어서 싫고 트럼프는 합리적이라는 인간이 중도를 자처하고 있는 것이 한국 인터넷의 현실이기는 하다. 반PC, 반페미가 바로 이런 수준이다. 안티라는 것이 절대 생산적인 이념이 될 수 없다는 증거일 것이다. 관세가 미국을 부유하게 만든다? 중상주의 시대 그랬던 것처럼 정확히 그 세금을 거두는 주체들만을 부유하게 만들 뿐이다. 더구나 미국은 자신의 필요에 의해 제조업 상당부분을 해외로 옮겨 놓은 상태다. 자기들이 필요하다고 공장도 없애고 기술자들도 해고한 상태로 해외에 생산을 맡겨서 이익을 얻던 것이 미국의 대기업들인데 그런다고 얼마나 이익을 더 얻을 수 있을 것인가. 캐나다와 멕시코로부터 싸게 들여올 수 없으면 그만큼 원가도 올라갈 수밖에 없다. 그 비용은 또한 누구에게로 돌아갈 것인가.

 

그러니까 한국에 사는 노랑 원숭이 새끼들이 미국에 사는 백인님들에 이입해서 흑인과 히스패닉은 싫다고 부르짖는 자체가 웃기는 꼬라지라는 것이다. 흑인과 히스패닉이 싫다고 자기 나라에 관세 쳐매기는 것을 환호하며 지지하는 거도 역시 한심하고 같잖을 뿐이고. 역시 부모세대가 문제인 것일까? 어쩌다 저런 병신같은 새끼들이 한 세대를 이루게 된 것인지. 인터넷만 저런 것일 수도 있다. 게임만 하느라 뇌가 썩은 때문일 것이다. 내가 가장 어이없어 하는 부분이나. 늬들은 미국 사는 WASP님들이 아니라 그냥 한국 엽전 노랭이 새끼들이라는 것이다. 좆도 아닌 새끼들이. 쯧.

아마 전에도 썼던 것 같은데, 윤석열 탄핵이 기각이면 당연하게 이재명 재판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 자리로 돌려놓으면 된다. 이재명이 어쨌건 대통령 윤석열에게 알아서 하도록 맡기면 되는 것이지 굳이 헌법재판소가 괜한 부담을 져가면서 시간을 끌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굳이 헌법재판소가 이재명 재판을 지켜보고 선고를 내리려 한 이유부터가 이재명 재판의 결과에 따라 그 내용이 가지는 의미가 사뭇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무엇이겠는가.

 

만에 하나 윤석열 탄핵이 기각인데도 시간을 끌었다면 이유는 하나다. 1차 계엄이 계획에 허점이 있어서 실패했으니 완전한 성공을 위해서 시간을 벌어준 것이다. 말하자면 윤석열의 석방을 기다려서 윤석열이 2차 계엄을 보다 치밀하게 준비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준 것인데, 가능성은 낮지만 가장 치명적인 경우의 수라 할 수 있다. 아마도 이 가능성 때문에 민주당도 의원들을 대기시키고 있는 것일 테고. 그런데 그러면 헌법재판관이라고 무사하지 않을 텐데? 하긴 공부만 한 모지리들이라 그런 산수도 못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기는 하다.

 

후자의 가능성이 아니면 무조건 전자다. 그런 점에서 지귀연이 참 큰 일을 했는데 윤석열 풀어주고 나서 지귀연에게 쏟아진 비난들이나 이후 오히려 민주당이 더 단합해서 윤석열 탄핵을 압박하는 모습들에서 탄핵 기각이든 각하든 주장하고 싶어도 그러기가 쉽지 않아졌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후자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은 헌법재판관 모두가 서울대, 그리고 한 명 빼고 그 가운데서도 법대 출신이라는 점일 게다. 쓰다 보니 또 불안해지네. 세상엔 참 미친 놈이 많아서. 아무튼.

웃기네, 박원순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나서기 시작이었는데 장제원은 뒈졌다고 모든 게 끝났다는 분위기로 몰아가네. 죽음까지도 2차가해니 뭐니 하면서 부관참시를 일삼던 놈들이 사자에 대한 명예훼손 운운운운...

 

물론 이재명은 정치인이니까 복수같은 건 하면 안 된다. 그래도 한 나라를 책임질 인물인데 개인적인 감정으로 복수하고 그런 건 격이 떨어진다. 하지만 나는 아니지 않은가? 나는 그냥 개인이다. 따라서 내가 하고 싶은대로 감정이 떠미는대로 행동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저놈들은 그래도 되었는데 왜 이쪽에서는 아닌가?

 

여성단체들도 웃기는 게, 아니 여성 언론인들 역시 박원순 죽고 나서부터 지랄하던 개쌍년들이 장제원 죽었다고 조용한 것 좀 보라. 아니 그 전에 그년들 떠드는 소리를 전혀 들어보지 못했었다. 한 마디로 그녀들에게 여성이란 단지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이나 사적인 이익을 위해 이용할 수 있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자신을 자신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는 직업여성들과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그 사실만 확인시켜준다.

 

아무튼 그 쌍년듯 웃기는 짓거리 아주 잘 보고 있다. 그래서 여성주의란 허상이라는 것이다. 원래 출발부터 그랬었다. 제자들 정신대로 등떠밀어 보낸 년이 여성주의의 대모다. 웃기지? 씨발. 좆까라고 그래라.

원래 사대부란 향촌에 자기 땅을 가지고 경작하면서 유교경전을 공부하던 식자층을 일컬었다. 대충 영국의 젠트리나 독일의 융커와 비슷하다 보면 될 것이다. 세습된 신분이라기보다는 일정한 정체성에 근거한 계층이라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처음 그저 경제적으로 독립된 지식인으로서 향촌사회에서나 영향력을 행사하던 그들이 중앙정부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은 다른 무엇보다 앞서 언급한 그들을 정의하는 정체성 그 자체가 근거가 되었었다. 마땅히 더 많이 배우고 익히고 알고 있는 이들이 천하를 위해서 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위치에 있을 수 있어야 한다.

 

양반이란 단순히 혈연에 의해 계승되는 신분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실제 조선 전기에는 아예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오른 이들만을 양반이라 불렀었고, 양반이 신분화된 조선후기에도 3대가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면 조상이 얼마나 잘났고 대단했든 양반으로서 그 신분을 인정받지 못했었다. 조선에서 유독 과거가 잦았던 이유이기도 했다. 집안에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없으면 신분을 잃어야 했기에 그 기회를 늘려주고자 꾸준히 이유를 찾아서 과거를 열었던 것이었다. 조선에서 음서가 크게 대우받지 못한 이유였었고, 한 편으로 지역사회에서 양반으로 인정받고 대우받기 위해서 대부분이 엄격한 도덕률을 지켜가며 살아야 하기도 했었다. 박지원의 양반전을 보면 양반으로서 살기 위해 지켜야 하는 규칙들이 얼마나 엄격하고 다양한가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신분이 양반이어도 정작 양반들 사이에서는 인정받지 못했고 통혼조차 어려웠다. 그것은 당색을 떠난 그들만의 기득권이기도 했었다.

 

해방 이후 유독 한국사회에서 교육열이 뜨겁게 일어났던 진짜 이유이기도 했다. 특히 판검사가 될 수 있는 사법시험이 무엇보다 중요했었는데, 그를 통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지배층에 단숨에 진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것을 일제강점기의 영향이기도 했었다. 아무리 차별받는 식민지의 백성일지라도 일정한 자격을 갖춰 법관의 지위에 오르면 일본인들과 대등하게 그들과 같은 위치에 오를 수 있었다. 이회창의 아버지가 그렇게 일제강점기 식민지 백성으로서 검사의 위치에까지 올랐던 이였다. 그리고 그들은 해방된 이후에도 여전히 법을 집행하는 위치에서 대한민국의 지배층으로 국민들 위에 군림하고 있었다. 어째서 사법시험을 폐지하겠다 하니까 젊은층들 사이에서 신분상승의 사다리를 치웠다며 반발하는 여론이 크게 일었었겠는가? 사법시험이란 단순히 법을 다루는 전문가를 시험을 통해 걸러내는 과정이 아닌 이 사회를 지배하는 신분을 만들어나는 통로라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현재도 유효하다.

 

진보를 자처하던 한겨레가 어째서 윤석열 이전부터 검찰과 그토록 유착해왔던 이유인 것이다. 한명숙 이전부터도 한겨레는 항상 검찰의 입장에서 그들이 읊는 정의만을 고스란히 대변해 오고 있었을 터였다. 정의당도 다르지 않았다. 정의당은 물론 녹색당과 그 주변에 존재하는 지식인 대부분이 마찬가지로 검찰의 편에서 개혁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당연히 대선에서도 윤석열을 때로는 대놓고 때로는 암묵적으로 지지했었고, 대선 이후에도 민주당만을 공격하면서 윤석열에 대해서는 최소한 침묵을 지키는 경우가 더 많았다. 심지어 민주노총이 간첩몰이를 당하는 와중에도 정작 민주노총 지도부조차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었다. 무엇이겠는가? 서울대다. 그것도 법대다. 심지어 사법고시에 합격한 정당한 자격을 갖춘 인물인 것이다. 그들이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것은 따라서 너무나 당연하다.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언하고 민주당이 탄핵을 시도햇을 때 정의당이 내놓은 첫 공식입장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재명의 대통령 당선을 막기 위해서라도 윤석열 탄핵은 최대한 늦춰야 한다. 

 

그동안 진보를 자처하던 2찍 지식인들이 민주당을 혐오하고 경멸하면서 보수정당과만 연대해 온 진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그들이야 말로 자격을 갖췄다. 비슷하게 좋은 대학 나오고 사법고시 합격해서 판검사에 변호사까지 됐어도 서울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벌열과 지방에서 농투성이와 다를 것 없이 사는 잔반은 이미 전혀 다른 신분인 것이다. 서울에서 여전히 권력과 가까이에 위치해 있는 벌열에 비해 향촌에서 그저 농투성이들 앞에서나 행세를 하는 향반나부랭이와는 절대 같이 어울릴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격이 있는 자신들 진보정당은 마찬가지로 자격이 있는 보수정당하고만 소통해야 한다. 민주당과 손잡는 것은 격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그러니까 민주당 2중대라고 하면 발작하던 2찍 진보들도 보수정당 선봉대라고 하면 전혀 어떤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민주당과 정책적으로 공조한 것이 있으면 어떻게든 나중에 반성하는 모습도 보이는데 보수정당과 공조한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문제의식도 느끼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하물며 같은 서울대에 법대에 사법고시까지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을 거친 법관들이라면 어떨까?

 

서울대 나오고 법대 나오고 사법고시 합격해서 검사까지 했는데 대한민국을 마음대로 지배하고 휘두르는 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무지렁이 국민들 몇 명 죽어나간다고 크게 문제가 될 것도 없는 것이다. 이재명이나 문재인 따위야 고작 가천대 경희대이지 않은가. 같은 서울대 출신이라도 고졸에 경희대 가천대 따위가 묻은 놈들은 서울대라 인정하기 싫을 텐데 하물며 자신이 그런 허접한 대학 출신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국가를 위해서도 그런 소수의 하찮은 희생쯤은 감수하고 정당하게 자격을 갖춘 이가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위치에서 국민들을 이끄는 것이 무엇보다 옳을 수 있다. 윤석열의 내란에 대해 문재인 정부에서는 그렇게 말도 많았던 2찍 진보들이 하나같이 입을 다물고 있는 이유인 것이다. 그리고 헌법재판소가 지금까지 선고를 미루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명백하게 잘못이기는 한데 그렇다고 책임을 묻기에는 윤석열의 자격이 너무 훌륭하다. 말 그대로 정당한 성골의 혈통인 것이다. 말 그대로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렀어도 그 책임을 묻기에는 그 출신이 너무 훌륭해서 망설여진다.

 

애초에 이 사회의 정의와 질서를 위해 법을 공부한 놈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은 물론 집안 전체의 부와 명예와 권력을 위해 청춘을 다 바쳐서 법을 공부했고 시험을 치러 합격했던 놈들이라는 것이다. 굳이 사법고시까지 보지 않았어도 서울대 들어간 대부분이 그런 이유에서 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목숨을 걸고 공부했던 것일 터다. 그것을 알기에 2030 남성들도 윤석열의 내란에 대해 그리 큰 죄가 아니라며 서부지법에서 난동을 부리는데 앞장서고 있었던 것이었고. 정당한 자격을 갖춘 이가 그에 걸맞는 신분과 지위와 권한을 누리는 것은 공정이라고 하는 자신들의 가치에도 지극히 맞아 떨어진다. 다만 그럼에도 대부분 법을 공부한 학자들이, 심지어 해외에서까지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 눈치가 보여 솔직하게 선고하지 못하는 것이 지금까지 미뤄지게 된 원인인 것이다. 마음같아서는 기각이든 각하든 하고 싶은데 그런 놈들 답게 당장 자신들의 선고에 대한 다른 이들의 판단이 어떨지 신경쓰고 눈치보인다. 

 

사실 그래서 마음을 놓고 있기는 하다. 헌법재판관들의 판단에 기걱이라면 그냥 윤석열을 다시 대통령 자리에 돌려놓으면 나머지는 윤석열이 알아서 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윤석열이 대통령 자리로 돌아가서 뭔 짓을 하든 헌법재판소가 신경쓸 일따위 없는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선고를 늦춰가면서까지 헌법재판관들이 그 책임을 대신 지고 있는 것은 그럴 수 없는 이유가 있기 때문인 것이다. 원래 자기 속내를 감추는데 익숙한 족속들이다. 그래서 때로 솔직하게 자신의 속내를 드러냈을 때 그 비틀린 내면을 엿보게 되는 경우도 많다. 대부분 학교 다니면서 경험해 보지 않았던가? 쓸데없이 공부만 잘하는 쓰레기들이란 대개 그런 경우가 많았었다. 아니기를 바라지만.

 

한 마디로 더이상 헌법재판소에 행정부를 견제하기 위한 입법부의 권한을 위임하여 판단하는 절차를 유지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시험을 통해 쟁취한 정당한 권한을 공유하는 이들 사이의 특권적인 카르텔이 확인된 이상 다수의 국민들의 판단에 의해 선택된 입법부의 권한을 온전히 그들에게 위임할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탄핵은 오로지 국회의 권한으로만 남기고, 그냥 국회가 탄핵이라는 선택을 한 것에 대한 책임을 선거라는 형태로 국민에게 묻는 방식으로 나가는 것이 어쩌면 지금으로서는 더 옳아 보이는 것이다. 대통령을 탄핵하면 당연하게 국회도 동시에 해산하고 대통령 선거와 동시에 현직 국회의원들에 대한 신임투표도 같이 치르도록 한다. 부당한 탄핵이었다면 대통령 자리는 물론 현재 자신의 의석까지도 잃을 위험을 감수해야 하도록. 탄핵 또한 오로지 주권자인 국민들에 묻어 결정한다.

 

어쩌면 다행이기도 할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선고를 빨리했다면 헌법재판소가 필요없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 힘들었을 테니. 지귀연 전까지만 해도 판사를 믿느냐 그러면 누구를 믿느냐는 반론이 돌아왔던 것과 비슷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지귀연 이후 판사를 믿느냐 물으면 그래도 좋은 판사도 있지 않겠느냐는 대답이 돌아온다. 원래 같은 놈들이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현대판 사대부들일 것이다. 그것이 옳다고 대부분 국민들도 믿고 있었지만 아니라는 사실만 드러나고 말았다. 안타깝지만 그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그 적나라한 실체를 드러내 보이는 중이다. 처참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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