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테면 무협소설의 한 장면이다. 무고한 사람을 죽인 살인자가 있다. 그래서 그를 단죄하고자 지나가던 협객이 칼을 뽑았는데 무고한 사람을 해치면 안된다며 그를 막아서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둘 중 누가 더 나쁜 놈인가?
민주당 지지자들은 고민정과 김경수만 욕하고 있지만 사실 노무현도 문재인도 성향 자체는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안희정이 주목받았던 이유도 그것이었다. 보수적인 유권자들과도 소통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설득도 해가며 도정을 잘 이끈 리더십에 많은 사람들이 그런 높은 평가를 해 주었던 것이었다. 노무현이나 문재인이 앞장서서 민주당이든 아니면 보수정당이든 특정한 정파나 계파, 정당들을 배제해야 한다고 단 한 번이라도 목소리를 높였던 적이 있었는가?
노무현 정부 당시 열린우리당의 창당도 따지고보면 정동영과 신기남이 주도한 것이었고 노무현은 오히려 그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었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렇다. 어쨌거나 최소한 적극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았다는 건 확실하다. 오히려 대통령이 되고 나서 야당인 한나라당에 많은 양보를 해 주었었고, 심지어 나중에는 정권을 나누자며 대연정을 제안하기까지 했었다. 내가 노무현을 정치인으로서 도저히 지지하지 못하겠다 여긴 순간이었다.
문재인은 어땠을까? 민주당의 체질을 바꾸기 위한 혁신의 과정에서 결국 혁신안을 지키느라 다수 당권파가 탈당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문재인이 나가라고 내쫓아서 그리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마지막까지 최대한 양보하면서 붙잡았었고, 그때 약속을 지켜서 총선직전 당대표에서 물러나서 비대위체제를 받아들이기까지 하고 있었다. 농담처럼 떠돌던 친문좌장 박영선을 떠올려 보라. 진성준도 최재성도 원래는 문재인과 다른 쪽에 있던 정치인들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측근이던 김경수를 잡겠다고 드루킹특검을 제안했을 때도 문재인은 추경을 위해 오히려 민주당을 설득해서 받아들이게 했던 것이었다. 조국도 대통령으로서 자신의 권한을 더 적극적으로 사용했으면 그런 지경에까지 이르지 않았을 테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문재인은 철저히 법과 원칙과 절차와 타협을 앞세우고 있었다. 그래서 민주당 지지자들이 좋아했던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런 문재인을 존경해서 따랐다던 그 측근들의 성향은 과연 어떠할 것인가?
물론 그런 리더십이 필요한 경우라는 것이 있기는 했다. 그렇게 믿었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보수정당이 지금처럼 아예 극단화되기 이전인 한나라당은 확실히 아직은 대화를 통해 합의점을 찾아나갈 수 있는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때는 아직 김문수나 이재오 같은 재야출신 인사들도 완전히 돌아서기 전이었었고, 김영삼을 따라서 합당했었던 민주계 역시 아직 남아서 일정부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 국정의 아젠다를 두고 경쟁하고 토론하고 타협하는 것이 가능했었다. 아니 그렇게 믿었었다. 더구나 민주당이라고 하는 정당은 그저 하나의 정당을 넘어서 그동안 권위주의 정권과 맞서 싸우며 민주화를 이루어낸 상징과도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당에 몸담고 있는 정치인들은 그 고단한 과정을 함께 싸우며 지나온 동지들이기도 했다. 그러니 민주당의 동지들과도 화합하고, 반대편에 있는 한나라당과도 타협하며 민주주의의 원칙에 맞게 공존을 꾀하는 것이 바르고 옳은 것이다. 물론 난 그때도 그게 무척 싫었다. 옳고 그름이 이렇게 명확한데도 어떻게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까지 타협해야 하는가. 그때는 나도 아직 어렸었으니까.
아무튼 그런 믿음은 아마도 문재인에게까지, 그리고 더해서 이낙연을 차기 대선주자로 여기고 지지하던 다수의 지지자들에게 그대로 이어졌을 것이었다. 당시 보수정당은 이미 지리멸렬한 상태였으니 이대로 문재인 정부가, 민주당이 민주주의의 원칙을 지키며 화합하고 타협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국민들도 알아줄 것이다. 그래서 원칙을 지켜 양보하며, 상식을 지켜 자제하고, 보편의 가치와 질서를 위해 후퇴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도저히 안되겠을 때는 독단으로 밀어붙이기도 했었지만 기본적인 국정기조가 그러했었다. 그래서 윤석열이라는 괴물이 나오게 된 것이었다. 그런 태도가 자칫 지리멸렬 와해될 수 있었던 보수정당의 기를 살려주고 만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과정들을 지지자들이 낱낱이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깨닫게 되었다. 문재인 같은 리더십으로는 안된다.
말하자면 민주당 안에 수박들이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져 들어온 존재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수박들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민주당의 뿌리 중 몇 가닥이 나올 정도로 그 유래는 매우 깊다. 민주당으로는 안된다고 뛰쳐나와 창당한 열린우리당에서도 그에 못지 않은 안개모라는 것이 있었다. 노무현 쫓아내고 다시 민주당으로 합치고 난 뒤에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그들은 문재인이 당대표가 되고 유력한 대선후보로 떠오르면서 대부분 친문으로 분류되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지지자들도 별 감정이 없었다. 문재인이 대세이니 태도를 바꿔서 친문을 자처해도 어차피 같은 민주당이겠거니. 그런데 문재인 정부를 거치면서 그를 대하는 보수정당과 언론들과 이 사회 기득권들을 보면서 지지자들도 생각을 달리하게 된 것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들을 대하는 태도가 뜨뜻미지근한 민주당을 보면서도 입장이 달라진 것이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대화도 타협도 거부하는 상대를 대상으로 더이상 양보만 반복하는 것은 민주당을 중심으로 모인 지지자들의 지향과 가치를 오히려 철저히 부정하는 것이다. 오히려 저들만을 위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불관용에는 관용이 없다는 선언적 격언을 직접 몸으로 체화하게 된 것이다. 불관용을 관용하는 순간 오히려 불관용이 관용을 잡아먹는다. 차별과 혐오마저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허용하는 순간 그 차별과 혐오에 의해 다양성은 배척되고 부정당하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저들이 대화도 타협도 양보도 합의도 거부하는 이상 그들을 쫓아 그들에 맞추기보다 단호하게 민주당의, 민주당 지지자들이 바라는 지향과 가치를 지켜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아니면 민주당이 존재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 더구나 저들의 불관용은 민주당 지지자들이 바라는 보편적인 가치와 지향을 부정하는 불관용이다. 나아가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공동체가 함께 추구해야 할 보편적인 윤리와 도덕과 정의까지 깡그리 훼손하고 오염시키려 하는 것들이다. 그런 것들에 대해서까지 타협하고 양보하는 것을 과연 관용이라, 다양성이라, 공존이라 인정해야 하는가.
사람이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된다. 사람의 목숨은 무엇보다 소중하기에 어떤 경우라고 다른 사람의 목숨을 함부로 빼앗으려 하는 것은 올지 못한 행동이다. 이상은 옳다. 그런데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나가고 있다. 무고한 사람들이 이미 압도적인 무력을 가진 이들에 의해 무참하게 죽임을 당하고 있는 상황에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이 과연 그가 주장하는 것처럼 바르고 도덕적인 행동일 것인가? 선하고 정의로은 행동이었을 것인가? 사람을 함부로 죽이는 것이 죄악이기 이전에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고 더이상의 피해가 없도록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 그 상황에서는 정의인 것이다. 그 과정에서 설혹 상대가 다치거나 죽더라도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할 대가인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꺼려서 당장의 행동을 삼가야 한다.
그래서 공자도 말했던 것이다. 진정으로 선한 이는 선한 이들로부터 칭찬을 듣고 악한 이들로부터는 원망을 듣는다. 선인으로부터도 악인으로부터도 모두 칭찬을 듣는 이는 절대 선할 수 없고 오히려 기회주의자로써 악을 용인하는 결과만 낳고 마는 것이다. 선한 이를 돕고, 선한 의도에 힘을 실어주고, 선한 행위를 함께하면서도 악한 이를 징벌하고, 악한 의도를 꾸짖으면서, 악한 행동을 막아설 때 그가 선한 것이지 선과 악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에게 좋기만 하려는 놈은 자신은 그러려고 한 것이 아닐지라도 결국 악을 돕고 악에 힘을 실어주어 악을 함께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민주당 안에서 명백한 악들인 국민의힘과 타협하려는 놈들이 바로 그런 놈들인 것이다. 하물며 그냥 이념과 정책적인 지향이 다른 수준을 넘어서 헌정질서를 뒤엎고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파괴하려 한 내란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한 마디로 이미 상황이 바뀌었고 따라서 그에 대한 지지자들의 입장도 바뀌었는데 원래 하던대로 계속 하려는 것이 지금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문재인 전대통령조차 자신의 SNS를 통해 그토록 사람만 좋던 평소의 모습과 달리 내란에 대해서만은 단호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상황인데도 지금 그러고 있는 것이다. 하나로 뭉쳐서 명백한 악인 내란세력과 그에 동조하는 집단들과 맞서싸워야 하는 상황에 그들의 입장을 헤아리며 정작 그와 온 힘을 기울여 싸우고 있는 민주당을 공격하고 있으니 그에 대한 반응들이 고울 수 없는 것이다. 과연 저들이 민주당이라고 하는 같은 정당에서 같은 이념과 지향을 공유하며 앞으로도 함께할 동지들이 맞기는 한 것인가.
물론 그들이 악의를 가지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름의 선의를 가지고 자신의 양심과 신념에 따라 그리들 말하는 것일 터다. 그리고 한때는 그런 말들이 꽤나 듣기 좋게 설득력있게 들리던 때도 있었다. 그래서 멍청하다는 것이다. 상황이 바뀌었는데 예전 방식만을 고집한다. 그들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민주당이 상대해야 할 반대편의 모습이 달라졌고, 그에 따른 지지자들의 태도 또한 달라졌다. 그런데 그런 민주당을 가르치듯 현실을 모르는 고담준론만 앞세우면 그거야 말로 배에 표식을 새기고 검을 찾으려는 어리석음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강물을 따라 배는 어느새 하류까지 흘러왔는데 표식을 보고 들어가 찾으면 과연 칼을 찾을 수 있을까? 정치를 너무 오래해서일 것이다. 혹은 정치를 하는 놈들의 세계에 너무 오래 발을 들이고 있었다. 고민정은 원래 언론인이었으니 주위에 있는 인사들이 모두 그러할 터다.
어째서 저들의 주장들을 다양성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지 않는가? 저들의 선의를 온전히 선의로써 받아들이지 못하는가? 더불어 과연 저들의 저같은 주장들이 어느날 갑자기 단지 계산에 의해서만 악의로 터져나온 것일 텐가? 그래서 더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용납할 수 없다. 상황과 다르다. 맞지 않다. 그러므로 틀렸다. 이미 흘러가버린 정의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