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직은 많이 순진한 모양이다. 달리 말해 내가 아직 많이 병신인 모양이다. 너무 선의로만 이해하려 했다. 그래도 이놈들이 선의로 병신같지만 그런 말을 했었겠거니. 그 왜 있지 않은가? 사람은 착한데 모자란 그런 놈들. 사람은 착하고 좋은데 경우도 없고 주제도 모르고 상황파악도 안되는 한심이들. 그런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김경수가 대선캠프 차린다는 말 듣자마자 바로 떠오른 생각이다. 지난 대선 끝나고 당비 내는 당원도 없다고 매일 우는 소리를 하던 정의당 거지새끼들에게 무려 12억이라는 돈이 한꺼번에 들어왔었다. 그게 진심으로 당원들이 정의당 잘한다고 내 준 후원금이라 생각한다면 뇌가 없거나 양심이 없는 거다. 어째 대선 내내 이재명만 그리 물어뜯고 김건희는 온몸을 던져 방어하더라. 그 돈이 어디서 무슨 목적으로 정의당에 지급되었겠는가?

 

한 마디로 입금이 되었다. 그래도 문재인의 측근으로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지분도 있고 하니까 네가 가서 민주당을 분열시키고 나아가 대선에서도 민주당 표를 좀 빼앗아가라. 빼앗아 오라는 게 아니다. 빼앗아 가라는 것이다. 그러면 한국의 정치지형상 박빙으로 대선이 치러질 경우 이재명의 당선가능성이 낮아진다. 국민의힘이 다시 대선에서 이길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래서 먹는 욕? 대신 돈이 남지 않는가.

 

당내 여론이 이 정도로 쏠려 있으면 대충 눈치 봐서 찌그러지는 것이 정치인이라면 당연히 보이는 정상적인 모습이라는 것이다. 당장 지지자들까지 자기에 대해 부정적인 말들을 쏟아내는데 진심으로 대권을 노린다면 아무리 자기당 지지자들의 미움을 살 수 있는 말을 그렇게 반복해서 읊어댈 이유가 없다. 그래도 지지자들은 달래가면서 뭘 해야지 지지자들과 맞서 가면서 뭔가를 주장하려는 모습은 다른 의도가 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겠는가? 어차피 민주당 당원과 지지자들의 감정이나 의견따위 자기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다.

 

더구나 그렇게 민주당에서 떨려나간 놈들이 어떤 놈들인가 생각해 보라. 문재인 정부 시절부터 윤석열에게 우호적이었던 놈들이다. 심지어 문재인 대통령을 거슬러가며 윤석열의 편에 섰었던 놈들이다. 대선이 끝난 다음에도 마찬가지였다. 김경수와 마찬가지로 민주당과 이재명만 욕하다가 지선 말아먹은 놈들도 거기 포함된다. 윤석열에게는 오히려 아부하다시피 우호적으로 웃음지으면서 민주당과 이재명에 대해서만 가혹하던 놈들이었다. 그 의도가 무엇이겠는가.

 

요즘 살기가 어려웠던 모양이다. 차차기까지 거론하며 자신을 좋게 봐주던 지지자들을 정면으로 들이받을 결심까지 하다니. 아마 김경수 자신이나 주위 어디 쯤 가만 잘 살펴보면 증거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정의당처럼 후불제일까? 성공보수를 약속받고 뛰어든 거면 이건 진짜 병신인데? 아님 말고. 

 

달리 생각할 여지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그만큼 뜬금없고 납득안되는 행보이니. 인간이 병신이라면 그럴 수 있다 치겠지만. 하긴 드루킹같은 사기꾼놈에게 휘둘린 것부터 인증일 테지만. 난 그놈 서프라이즈 시절부터 사짜라고 취급도 안했는데 거기 넘어가는 게 진짜 병신일 터다. 지능의 문제인 걸까? 역시 아님 말고. 아무튼 구리다. 아주 구리다.

박용진이 어떤 경우에도 민주당에 대해서만 반성을 요구하는 이유는 별 것 없다. 자칭 중도라는 것들이 어차피 국민의힘은 그런 정당이라면서 민주당에 대해서만 더 잘할 것을 요구하는 이유와 같을 것이다. 국민의힘을 지지하고 있으면서도 그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을 꺼리는 경우 대부분 중도를 자처하면서 국민의힘을 상수로 두고 오로지 민주당에 대해서만 엄격하게 감시하고 비판하고 요구한다. 그래서 결론은 민주당이 못하기 때문에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것이다. 민주당보다 국민의힘이 뭐라도 더 나아서 지지하는 게 아니라 민주당이 절대평가에서 기준에 미치지 못했으니 그보다 못하더라도 국민의힘을 지지한다. 말이 된다 생각하면 박용진이다.

 

어찌보면 참 불쌍한 것이다. 박용진이 겨우 배지를 달기 시작한 이래 민주당의 지지율은 거의 보수정당 지지율을 상회하고 있었다. 정작 민주당 지지율이 바닥을 칠 때는 박용진과 뜻을 같이하는 놈들이 당권을 잡고 있을 때였다. 박용진과 마음이 맞는 놈들이 대부분이라 딱 정치하기 좋을 때는 지지율이 낮고, 박용진과 전혀 맞지 않는 놈들만 남아있을 때는 당의 지지율이 높아서 차마 당적을 옮기가 꺼려진다. 차라리 조경태처럼 당이 현저하게 흔들리고 있어서 명분삼아 갈아타기 좋은 상황이 만들어져 있으면 모르겠는데 아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기회만 노리다가 아예 민주당에 눌러앉게 생겼다. 그렇다 보니 눈에 보이는 것은 민주당이 잘못한 것 뿐이고, 그래서 국민의힘이 뭘 잘못하든 일단 민주당부터 욕하고 본다. 진정한 마음의 고향이 그곳이기에 차마 국민의힘과 정면으로 맞서지 못하는 것이 정치인 박용진의 비극인 셈이다.

 

그동안 박용진의 발언을 보더라도 바로 드러날 것이다. 처음부터 보수정당에서 정치를 시작했어야 했는데 아다시피 한나라당 시절까지만 해도 거기서 공천 한 번 받기가 무척 빡셌었다. 대부분 지역에서 당선을 목표로 할 수 있다 보니 하여튼 정치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죄다 보수정당으로 몰려들었고, 그래서 거기서 뭐라도 자격이 미치지 않으면 바로 밀려나서 민주당까지 흘러들어오고는 했었다. 더구나 심지어 박용진은 그 민주당에도 발을 붙이지 못하고 진보정당에서 정치를 시작한 경우다. 마음은 원래 보수정당에 가 있는데 정작 보수정당이 자신을 선택해주지 않으니 이리저리 떠돌다가 김종인 눈에 들어서 배지 한 번 한 것이 그를 민주당 정치인으로 만든 것이다. 몸이 있는 곳과 마음이 있는 곳이 다르니 그 괴리가 늘 그 말과 행동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민주당만 잘못이고, 민주당만 문제가 있고, 민주당이어서 안된다. 그러니까 당을 옮기라고. 그렇게 민주당이 싫으면. 

 

그런 점에서 이른바 나민지, 나문지, 나노사들은 얼마나 현명한가 말이다. 대세에 휩쓸려서 자신의 의지와 다르게 민주당과 문재인, 노무현을 지지했다가 결국 자기 원래 자리를 찾아서 지금은 국민의힘을 지지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국민의힘이 뭘 얼마나 더 잘해서 지지하느냐 그러면 그들 역시 대답은 한결같다. 민주당과 문재인과 노무현이 잘못해서 보수정당을 지지한다. 이유 없이도 지지할 수 있는 그것이 곧 신념이고 이념이고 의지인 것이다. 지향이고 성향이고 추구인 것이다. 그냥 자기 자리 찾아가면 될 것을 뭐 그리 구차하게 구는지. 그래서 비루한 것이다. 차라리 조경태처럼 확실하게 넘어가던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민주당은 싫은데 민주당 표는 받아야 하고. 뭐하는 인간인지. 참 인간이 한심하다는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귀신도 안 잡아간다. 더러워서. 

이를테면 무협소설의 한 장면이다. 무고한 사람을 죽인 살인자가 있다. 그래서 그를 단죄하고자 지나가던 협객이 칼을 뽑았는데 무고한 사람을 해치면 안된다며 그를 막아서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둘 중 누가 더 나쁜 놈인가?

 

민주당 지지자들은 고민정과 김경수만 욕하고 있지만 사실 노무현도 문재인도 성향 자체는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안희정이 주목받았던 이유도 그것이었다. 보수적인 유권자들과도 소통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설득도 해가며 도정을 잘 이끈 리더십에 많은 사람들이 그런 높은 평가를 해 주었던 것이었다. 노무현이나 문재인이 앞장서서 민주당이든 아니면 보수정당이든 특정한 정파나 계파, 정당들을 배제해야 한다고 단 한 번이라도 목소리를 높였던 적이 있었는가?

 

노무현 정부 당시 열린우리당의 창당도 따지고보면 정동영과 신기남이 주도한 것이었고 노무현은 오히려 그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었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렇다. 어쨌거나 최소한 적극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았다는 건 확실하다. 오히려 대통령이 되고 나서 야당인 한나라당에 많은 양보를 해 주었었고, 심지어 나중에는 정권을 나누자며 대연정을 제안하기까지 했었다. 내가 노무현을 정치인으로서 도저히 지지하지 못하겠다 여긴 순간이었다.

 

문재인은 어땠을까? 민주당의 체질을 바꾸기 위한 혁신의 과정에서 결국 혁신안을 지키느라 다수 당권파가 탈당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문재인이 나가라고 내쫓아서 그리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마지막까지 최대한 양보하면서 붙잡았었고, 그때 약속을 지켜서 총선직전 당대표에서 물러나서 비대위체제를 받아들이기까지 하고 있었다. 농담처럼 떠돌던 친문좌장 박영선을 떠올려 보라. 진성준도 최재성도 원래는 문재인과 다른 쪽에 있던 정치인들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측근이던 김경수를 잡겠다고 드루킹특검을 제안했을 때도 문재인은 추경을 위해 오히려 민주당을 설득해서 받아들이게 했던 것이었다. 조국도 대통령으로서 자신의 권한을 더 적극적으로 사용했으면 그런 지경에까지 이르지 않았을 테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문재인은 철저히 법과 원칙과 절차와 타협을 앞세우고 있었다. 그래서 민주당 지지자들이 좋아했던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런 문재인을 존경해서 따랐다던 그 측근들의 성향은 과연 어떠할 것인가?

 

물론 그런 리더십이 필요한 경우라는 것이 있기는 했다. 그렇게 믿었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보수정당이 지금처럼 아예 극단화되기 이전인 한나라당은 확실히 아직은 대화를 통해 합의점을 찾아나갈 수 있는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때는 아직 김문수나 이재오 같은 재야출신 인사들도 완전히 돌아서기 전이었었고, 김영삼을 따라서 합당했었던 민주계 역시 아직 남아서 일정부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 국정의 아젠다를 두고 경쟁하고 토론하고 타협하는 것이 가능했었다. 아니 그렇게 믿었었다. 더구나 민주당이라고 하는 정당은 그저 하나의 정당을 넘어서 그동안 권위주의 정권과 맞서 싸우며 민주화를 이루어낸 상징과도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당에 몸담고 있는 정치인들은 그 고단한 과정을 함께 싸우며 지나온 동지들이기도 했다. 그러니 민주당의 동지들과도 화합하고, 반대편에 있는 한나라당과도 타협하며 민주주의의 원칙에 맞게 공존을 꾀하는 것이 바르고 옳은 것이다. 물론 난 그때도 그게 무척 싫었다. 옳고 그름이 이렇게 명확한데도 어떻게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까지 타협해야 하는가. 그때는 나도 아직 어렸었으니까. 

 

아무튼 그런 믿음은 아마도 문재인에게까지, 그리고 더해서 이낙연을 차기 대선주자로 여기고 지지하던 다수의 지지자들에게 그대로 이어졌을 것이었다. 당시 보수정당은 이미 지리멸렬한 상태였으니 이대로 문재인 정부가, 민주당이 민주주의의 원칙을 지키며 화합하고 타협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국민들도 알아줄 것이다. 그래서 원칙을 지켜 양보하며, 상식을 지켜 자제하고, 보편의 가치와 질서를 위해 후퇴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도저히 안되겠을 때는 독단으로 밀어붙이기도 했었지만 기본적인 국정기조가 그러했었다. 그래서 윤석열이라는 괴물이 나오게 된 것이었다. 그런 태도가 자칫 지리멸렬 와해될 수 있었던 보수정당의 기를 살려주고 만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과정들을 지지자들이 낱낱이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깨닫게 되었다. 문재인 같은 리더십으로는 안된다.

 

말하자면 민주당 안에 수박들이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져 들어온 존재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수박들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민주당의 뿌리 중 몇 가닥이 나올 정도로 그 유래는 매우 깊다. 민주당으로는 안된다고 뛰쳐나와 창당한 열린우리당에서도 그에 못지 않은 안개모라는 것이 있었다. 노무현 쫓아내고 다시 민주당으로 합치고 난 뒤에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그들은 문재인이 당대표가 되고 유력한 대선후보로 떠오르면서 대부분 친문으로 분류되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지지자들도 별 감정이 없었다. 문재인이 대세이니 태도를 바꿔서 친문을 자처해도 어차피 같은 민주당이겠거니. 그런데 문재인 정부를 거치면서 그를 대하는 보수정당과 언론들과 이 사회 기득권들을 보면서 지지자들도 생각을 달리하게 된 것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들을 대하는 태도가 뜨뜻미지근한 민주당을 보면서도 입장이 달라진 것이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대화도 타협도 거부하는 상대를 대상으로 더이상 양보만 반복하는 것은 민주당을 중심으로 모인 지지자들의 지향과 가치를 오히려 철저히 부정하는 것이다. 오히려 저들만을 위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불관용에는 관용이 없다는 선언적 격언을 직접 몸으로 체화하게 된 것이다. 불관용을 관용하는 순간 오히려 불관용이 관용을 잡아먹는다. 차별과 혐오마저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허용하는 순간 그 차별과 혐오에 의해 다양성은 배척되고 부정당하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저들이 대화도 타협도 양보도 합의도 거부하는 이상 그들을 쫓아 그들에 맞추기보다 단호하게 민주당의, 민주당 지지자들이 바라는 지향과 가치를 지켜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아니면 민주당이 존재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 더구나 저들의 불관용은 민주당 지지자들이 바라는 보편적인 가치와 지향을 부정하는 불관용이다. 나아가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공동체가 함께 추구해야 할 보편적인 윤리와 도덕과 정의까지 깡그리 훼손하고 오염시키려 하는 것들이다. 그런 것들에 대해서까지 타협하고 양보하는 것을 과연 관용이라, 다양성이라, 공존이라 인정해야 하는가.

 

사람이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된다. 사람의 목숨은 무엇보다 소중하기에 어떤 경우라고 다른 사람의 목숨을 함부로 빼앗으려 하는 것은 올지 못한 행동이다. 이상은 옳다. 그런데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나가고 있다. 무고한 사람들이 이미 압도적인 무력을 가진 이들에 의해 무참하게 죽임을 당하고 있는 상황에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이 과연 그가 주장하는 것처럼 바르고 도덕적인 행동일 것인가? 선하고 정의로은 행동이었을 것인가? 사람을 함부로 죽이는 것이 죄악이기 이전에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고 더이상의 피해가 없도록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 그 상황에서는 정의인 것이다. 그 과정에서 설혹 상대가 다치거나 죽더라도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할 대가인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꺼려서 당장의 행동을 삼가야 한다.

 

그래서 공자도 말했던 것이다. 진정으로 선한 이는 선한 이들로부터 칭찬을 듣고 악한 이들로부터는 원망을 듣는다. 선인으로부터도 악인으로부터도 모두 칭찬을 듣는 이는 절대 선할 수 없고 오히려 기회주의자로써 악을 용인하는 결과만 낳고 마는 것이다. 선한 이를 돕고, 선한 의도에 힘을 실어주고, 선한 행위를 함께하면서도 악한 이를 징벌하고, 악한 의도를 꾸짖으면서, 악한 행동을 막아설 때 그가 선한 것이지 선과 악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에게 좋기만 하려는 놈은 자신은 그러려고 한 것이 아닐지라도 결국 악을 돕고 악에 힘을 실어주어 악을 함께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민주당 안에서 명백한 악들인 국민의힘과 타협하려는 놈들이 바로 그런 놈들인 것이다. 하물며 그냥 이념과 정책적인 지향이 다른 수준을 넘어서 헌정질서를 뒤엎고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파괴하려 한 내란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한 마디로 이미 상황이 바뀌었고 따라서 그에 대한 지지자들의 입장도 바뀌었는데 원래 하던대로 계속 하려는 것이 지금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문재인 전대통령조차 자신의 SNS를 통해 그토록 사람만 좋던 평소의 모습과 달리 내란에 대해서만은 단호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상황인데도 지금 그러고 있는 것이다. 하나로 뭉쳐서 명백한 악인 내란세력과 그에 동조하는 집단들과 맞서싸워야 하는 상황에 그들의 입장을 헤아리며 정작 그와 온 힘을 기울여 싸우고 있는 민주당을 공격하고 있으니 그에 대한 반응들이 고울 수 없는 것이다. 과연 저들이 민주당이라고 하는 같은 정당에서 같은 이념과 지향을 공유하며 앞으로도 함께할 동지들이 맞기는 한 것인가. 

 

물론 그들이 악의를 가지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름의 선의를 가지고 자신의 양심과 신념에 따라 그리들 말하는 것일 터다. 그리고 한때는 그런 말들이 꽤나 듣기 좋게 설득력있게 들리던 때도 있었다. 그래서 멍청하다는 것이다. 상황이 바뀌었는데 예전 방식만을 고집한다. 그들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민주당이 상대해야 할 반대편의 모습이 달라졌고, 그에 따른 지지자들의 태도 또한 달라졌다. 그런데 그런 민주당을 가르치듯 현실을 모르는 고담준론만 앞세우면 그거야 말로 배에 표식을 새기고 검을 찾으려는 어리석음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강물을 따라 배는 어느새 하류까지 흘러왔는데 표식을 보고 들어가 찾으면 과연 칼을 찾을 수 있을까? 정치를 너무 오래해서일 것이다. 혹은 정치를 하는 놈들의 세계에 너무 오래 발을 들이고 있었다. 고민정은 원래 언론인이었으니 주위에 있는 인사들이 모두 그러할 터다.

 

어째서 저들의 주장들을 다양성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지 않는가? 저들의 선의를 온전히 선의로써 받아들이지 못하는가? 더불어 과연 저들의 저같은 주장들이 어느날 갑자기 단지 계산에 의해서만 악의로 터져나온 것일 텐가? 그래서 더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용납할 수 없다. 상황과 다르다. 맞지 않다. 그러므로 틀렸다. 이미 흘러가버린 정의란 것이다.

역시나 다시 슬금슬금들 기어나온다. 지금 2030 남성들 사이에서 국민의힘에 대한 지지가 많이 낮아졌다. 그러니까 이 기회에 민주당이 이들을 잡아야만 한다. 그래서 묻는 것이다. 어떻게?

 

물론 말한다. 페미만 버리면 된다. 그래서 2030 남성들이 페미만 싫어서 문재인을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으로 꼽는 것인가? 페미만 그토록 싫어해서 문재인 정부 내내 문재인과 민주당을 악마화하면서 국민의힘과 윤석열에게는 그렇게까지 관대할 수 있었던 것이겠는가? 그러면 진짜 그들은 민주당의 정책 가운데 페미만 꼭 집어서 반대했던 것인가?

 

문재인 정부 내내 그놈들 떠드는 소리를 가까이서 듣고 있었기에 아는 것이다. 아무튼 당시 2030남성들은 페미 이전부터 민주당의 정책 전반에 대해 거의 적개감이 느껴질 정도로 강한 반대입장을 내보이고 있었다. 지금도 2030 남성들이 문재인의 실정으로 꼽는 것 중 하나가 최저임금인상과 근로시간단축이다. 심지어 군인월급 올려준 것도 시비거는 놈들이 보일 정도다. 청년임대주택도 반대였고, 청년들을 위한 급여지원이나 저축지원정책도 역시 반대였었다. 그냥 다 반대였었다. 중대재해법도 반대였었고, 공수처도 반대였었고, 민주당의 대북정책역시 반대였었다. 그냥 민주당과 정책적으로 정반대편에 위치한, 이념적으로 전혀 반대편에 위치한 집단이라 보면 될 것이다. 그래서 그놈들 잡자고 이런 정책들 다 포기하자?

 

청년들을 위한 정책 좋다. 남녀를 불문하고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딛는, 아직 사회적인 기반 자체가 부족한 세대를 위해서 법적으로 제도적으로 지원해주는 정책이 있으면야 당연히 좋다. 하지만 그것도 당사자들이 좋아야 좋은 것이다. 그런 것들 다 반대하면서 2030 남성들을 위한 정책들만 내놓으라. 그래서 2030남성이다. 그러면 과연 그 2030 남성들을 위한 정책들이 무엇이었는가 살펴보자. 그래서 국민의힘은 뭘 얼마나 잘해주어서 2030 남성들의 지지를 받았던 것인가? 그러니까 민주당은 해주지 않았는데 국민의힘은 해주었던 그것부터 찾아보자는 것이다. 결국에 민주당의 정책에 대한 반대 말고 아무것도 없는데 뭘 얼마나 어떻게 더 잘해주라고?

 

심지어 페미조차도 국민의힘이면 황보승희도 신지예도 이수정조차도 하나같이 착한페미가 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페미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당의 페미에 반대하는 것임을 그들 스스로가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준석이 임명했으니 황보승희도 착한 페미, 윤석열을 지지하고 있으니 신지예도 착한 페미, 이수정도 마찬가지다. 아마 기존의 민주당 지지자들이 2030 남성들에 대해 모든 기대를 내려놓게 된 계기였을 것이다. 대선기간 내내 2030 남성들의 지지는 모든 이슈를 무시하며 한결같았다. 거의 6070 대구경북 노인의 지지를 보는 것 같았다. 저기에 뭘 얼마나 어떻게 더 해 줄 수 있다는 것인가? 그래서 끌어온다고 민주당을 위해 얼마나 더 도움이 될 것인가?

 

한 마디로 지금이나 이전에 국민의힘을 지지했던 2030 남성들이란 이미 민주당이 할 수 있는 모든 정책에 반대하며서 국민의힘에 대해서만 맹목적으로 기대를 보냈던, 그것이 민주당에 대한 혐오와 증오 때문이었든 민주당의 정책들에 대한 공포 때문이었든 민주당을 절대 지지할 수 없는 부류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마음을 잡아보겠다고 정책들을 내놓는 순간 민주당의 정체성 자체를 부정하게 될 수도 있는 그런 존재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잠시 국민의힘으로부터 이탈해 있다고 민주당의 정책으로 저들의 마음을 돌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구경북에서 노인들에게 얼마나 잘해준다고 그곳에서 민주당을 지지하는 여론이 얼마나 나올 수 있겠는가?

 

민주당의 정책방향에 동의하면 페미가 됐든 뭐가 됐든 민주당을 더 지지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더구나 그 페미 하나 때문에 민주당을 지지하지 못하겠다는 경우 역시 일단 이미 민주당을 더 열정적으로 더 강하게 지지하고 있는 젊은 여성들의 말부터 들어봐야 하는 것이다. 민주당을 몇 번이나 위기에서 구해준 동지가 있는데 지지해줄지도 모르는 놈들을 위해 그들을 버리자? 하다못해 윤석열 탄핵을 위해 젊은 여성들이 더 많이 거리로 나왔더라는 말조차 그 잘나신 2030 남성들 눈치 보느라 삼가자고 말하는 놈들이 있었다. 하물며 페미 말고도 민주당 정책 다 폐기해야 지지하겠다는 놈들을 도대체 뭘로 어떻게 설득하겠다는 것인가? 그게 정치적으로나 명분적으로 얼마나 의미가 있을 것인가?

 

굳이 2030 가운데 남성을 따로 떼어 놓을 필요 없이 아직 사회적으로 약자인 청년들을 위한 정책들을 내놓되 딱 거기서 끝내면 되는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자신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낫게 만들어주는 민주당을 선택한다면 좋은 것이고, 그럼에도 페미만 읊어대며 저쪽을 지지한다면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이미 민주당을 지지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들을 버리고 2030남성들만을 위한 정책들을 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한 마디로 의미가 없는 헛소리들이다. 

 

정당에게는 정체성일라는 게 확고하게 있어야 한다. 이념이라든가 지향이라든가 성향이라든가, 그에 따른 추구하는 정책과 법안들의 방향과 형태가 분명하게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를 바라고 이미 모여든 지지자들을 저버리는 짓은 배신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래서 2030 남성들 표 더 얻어 보자고 그런 것들을 포기하자는 것인가. 결국 이재명이 아닌 김동연이나 이낙연이라면 지지하겠다는 사람들 있으니 후보 바꿔보자는 소리나 같은 것이다. 그런 선택들이 얼마나 민주당과 지지자를 위해 도움이 될 것인가?

 

직전 대선을 겪어 보고서도 아직도 그 소리를 한다면 의도는 명확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도 그런 소리를 한다는 것은 그 숨은 속내까지도 너무 확실하게 보이는 것이다. 의미가 없다. 가치도 없고. 민주당이 먼저 2030 남성들을 버렸는가? 천만에! 서로 버렸다기보다 그냥 원래 안 맞았던 것이다. 모든 정책이 다 싫은데 지지하면 그게 더 이상하겠지. 당연한 결과다.

전쟁이 났는데 야당이 지금 고민정, 임종석, 김부겸, 우상호 들이 하고 있는 것처럼 정치적인 이익만을 노리고 대통령을 흔들고 있다 생각해 보라. 한창 위협적인 적과 맞서서 힘겹게 전쟁을 치르고 있는 와중에 정권을 가져야겠다고 적의 선동을 위한 선전까지 이용해서 대통령을 공격하고 있다. 과연 전쟁을 제대로 치를 수 있을 것인가?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에 의한 친위쿠데타가 시도되었었고 아직 완전이 진압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아직 내란의 주모자가 처벌받지 않은 채 대통령 자리에 앉아 있고, 그에 의해 임명된 국무위원들과 쿠데타에 동원되었던 군장성들까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와중에, 국회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여당의 국회의원들마저 그 지지자들과 함께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률마저 무시해가며 그들을 지키고자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기까지 하다. 언론마저 저들의 주장을 옮겨 읊기에 바쁜 와중에 민주당만이 국민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열심히 싸우고 있는데 민주당에서 자리 하나 더 차지해 보겠다고 정작 내란의 주범과 공범과 방조범들이 아닌 민주당과 이재명을 먼저 공격하고 있다. 힘을 깎고 명분을 줄이고 상황의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는 행동을 오로지 자리 하나 더 좋은 것으로 차지할 목적으로 저지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제대로 민주당이 국민이 바라는 내란의 진압과 단죄를 제대로 이룰 수 있을 것인가?

 

비유하자면 전쟁이 한창 치열한데 몇 번 전투에 이겼더니 전쟁은 이미 끝났다며 적과의 타협을 주장하고 나서는 상황인 것이다. 아직 전쟁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우리도 잘못한 것이 있다면서 그 책임부터 물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전쟁 전에는 무엇을 잘못했었고, 전쟁 중에는 어떤 잘못들이 있었으니 한창 전쟁이 치열한데 그 책임자부터 단죄하다. 아니 그들끼리만 모든 것을 끝내지 않도록 한 자리씩 더해서 지휘관들을 임명해 보내자. 실제 역사상 그렇게 다 이겼다고 밥그릇 챙기려다 말아먹은 전쟁이 꽤 된다. 그 가운데는 아예 다 이기고 있던 전쟁을 뒤집고 나라를 절단낸 경우마저 있을 정도다. 당장 전장의 상황이 시급한데 그런 행동들까지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관용을 베풀어야 하는 것인가.

 

그래서 계엄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일찌감치 민주당진영의 스피커들도 오로지 이재명과 민주당만 믿으라며 지지자들을 단도리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역시 나 또한 이재명과 민주당만을 믿으며 감히 함부러 그 행보에 대해 토를 달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만큼 엄중한 상황이었으니까. 그만큼 중대한 상황이었으니까. 그러므로 민주당이 해내지 못하면 안되는 상황이었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로지 민주당이 해낼 수 있기만을 바라며 힘을 실어주어야 했던 것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이재명에 대한 호불호를 말하고 민주당의 행보에 대한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이 과연 얼마나 의미가 있을 것인가. 그렇다고 아주 못하기만 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윤석열을 구속기소해서 거의 상황을 한 단계 정리할 수 있는 수준까지 몰고 왔다. 자기들이 당직에 있을 때는 상대의 눈치나 보느라 아무것도 못하던 것들이 지금에 와서야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특히 윤석열이 난장을 칠 때 청와대에 있었던 인사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윤석열이 개지랄할 때 국회의원으로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놈들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그런 놈들이 이제와서 이재명과 민주당을 탓하면서 시시비비를 가리자고 하는 것을 그냥 두고봐야만 하는 것인가.

 

내가 우상호와 임종석 나부랭이들이 자기들이 민주화운동한 것을 후회하고 있을 것이라 단언하는 이유일 것이다. 권인숙도 얼마나 자신의 과거가 후회되었으면 은인이랄 수 있는 박원순을 그리 가볍게 내버리고 있었다. 군부와 함께 친위쿠데타를 시도한 윤석열에 대한 화합과 관용을 주장하는 우상호와 임종석 나부랭이들은 과연 얼마나 다를까? 하긴 김문수도 한때는 김일셩이 쳐들어오면 가장 먼저 쳐죽였을 대상으로까지 언급되었던 노동운동의 거물이었었다. 우상호와 임종석은 아마도 지금 김문수의 모습을 부러워하고 있지 않을까. 왜 하필 민주당에 들어와서. 

 

민주당 지지자들이 이른바 수박들을 혐오하는 이유인 것이다. 이낙연이었다면 지지했을 것이라는 놈들조차도 그래서 그놈들이 당을 장악하고 있을 때는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닉들을 거의 기억하는 편이라 확실하다. 이낙연이 당대표이고 수박들이 당을 장악하고 있을 때도 그놈들은 여전히 그것을 이유로 민주당을 욕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재명이 대선후보가 되니까 그제야 이낙연이었으면. 속아넘어가는 게 병신인 수준이다. 그런 놈들이다. 그런 수준들인 것이고. 그따위 놈들을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민주당 안에 포용하자? 왜? 국민의힘과 민주당을 합당하라 그러지? 그놈들이나 그놈들이나. 용서가 되지 않는다. 개새끼는 개새끼, 버러지는 버러지, 적은 적일 뿐이다. 수박은 그냥 수박이다. 쓰레기들이다.

아주 오래전 순정만화의 매력에 빠져들면서 비슷한 로맨스 소설까지 열심히 찾아 읽었더랬었다. 그러면서 느낀 사실 하나가 어째서 남자주인공들은 거의가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둔 30대이면서 여자주인공들은 많아야 20인 것인가? 

 

그런데 그것은 고전이라 할 수 있는 제인 에어나 키다리 아저씨, 영화 사운드오브뮤직도 다르지 않았었다. 반대의 경우가 없지는 않은데 그런 경우에조차 젊은 남성들은 그저 열정만 넘치는 미숙한 존재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았고 나이 많은 여성의 원숙함은 모성에 기대면서도 그마저 열등감에 가려지는 경우가 많았었다. 어째서 그런 것일까?

 

벌써 그리스 시대부터 이미 남성이 진짜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는 것은 30대 부터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을 정도로 남성에게는 사회적인 성공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충분히 배우고, 훈련하고, 사회에서 그를 내보임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고 인정받아야 한다. 그래야지만 비로소 제대로 한 사람의 몫을 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었다. 반면 여성은 어리기만 하면 되었다. 어리고 무지할 정도로 순수하고 순결할 수 있기만 하면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여성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 마디로 같은 20대라고 했을 때 남성과 여성을 대하는 시각이 거의 모든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다르게 나타났다고 하는 것이었다. 같은 20대의 남성들에 대해서는 아직 미숙한 존재로써 무시하고 있었다면 20대 여성들에 대해서는 그 젊음과 아름다움과 순결함을 너무나 당연하게 찬양하고 떠받드는 경우가 더 많았다는 것이다. 남성은 아직 사회적으로 자신을 증명하지도 인정받지도 못햇기에 덜 자란 미숙한 존재로써 무시하고 멸시했다면 같은 나이대의 여성들은 심지어 숭배의 존재로써 이미 사회적으로 성공한 존재들로부터 존중받고 대우받는 것이 더 일반적이기까지 했었다. 그리고 그것은 시장에서 남성과 여성의 20대를 소비하는 경향으로도 나타나게 되었다.

 

아마 유시민도 오래전에 이 부분에 대해 한 번 이야기한 바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아주 어릴 때부터 주위에서 어른들이 여자아이들만 우쭈쭈 감싸고 떠받드는 모습만 보며 자라왔다는 것이다. 똑같이 잘했어도 여자아이들이 남자인 자기보다 더 칭찬을 듣고 똑같이 잘못했는데 여자아이들이 남자인 자기보다 덜 야단맞는 것을 일상으로 보고 자라왔으니 어쩌면 그런 인식을 가지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그런데 더구나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하려 했더니 젊은 여자들만을 구하는 직장이 그리 많고, 그렇다 보니 자기보다 먼저 취직해서 수입까지 더 좋더라. 그렇게 성장과정과 당장의 현실을 온몸으로 겪으며 살아왔고 살고 있는 입장에서 또래의 여성들에 대해 상대적 박탈감이나 열등감, 그리고 그에 따른 분노와 증오를 느끼는 것도 따라서 아주 틀린 것은 아니라 할 수 있다. 그러면 과연 그 상태로 10년이 더 지나면 어떻게 될까? 

 

말한 것처럼 원래 전통적으로 남성의 가치는 30대 이후에야 비로소 드러난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면 같은 30대의 나이에 여성들은 어떤 취급을 받았었을까? 아니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굳이 30대까지 갈 필요도 없이 20대 중반만 넘겨도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이미 끝난 것처럼 취급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었다. 20대 중반만 되어도 혼기를 놓친 노처녀로 뭔가 결함이 있지 않은가 의심의 눈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었다. 그토록 주위로부터 찬양받던 젊음이라는 장점이 사라졌을 때 여성들에게 남겨지는 것은 멸시와 조롱 뿐이었다. 당연히 더이상 그런 나이든 여성을 찾는 직장도 없었고, 이미 취직한 상태라 할지라도 나이를 먹었다는 이유로 퇴사를 종용당하는 경우마저 적지 않았다. 그래서 여성들도 이른 나이에 일찍 결혼해서 직장도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되는 되는 것이 그때는 거의 상식이다시피 했었다. 그나마 그동안 법적으로 제도적으로 많이 보완한 결과 그런 경우가 많이 줄기는 했지만 아직 그런 관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다.

 

바로 여기서 같은 남성임에도 아직 젊은 2030들과 사회적으로 이미 자리를 잡은 4050 사이에 여성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전혀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과거 여성이 차별받던 시절에 대한 기억이 있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그동안 여성이라는 이유로 자의반타의반으로 도태되어 사라져간 또래의 여성들을 가까이서 보아 왔기 때문이다. 당장 같은 나이대에서 비슷한 지위에 이른 여성들을 헤아려보면 바로 답이 나오는 것이다. 물론 지금 2030 세대일 젊은 여성들이 그 나이가 되었을 때에는 지금보다는 더 많이 살아남아 더 큰 성공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단지 젊음만을 소비하기 위해 채용한 많은 직장에서는 그 전에 이미 그들의 존재를 필요로 하지 않을 가능성이 여전히 더 높기도 할 것이다. 반면 남성들의 경우는 그들의 젊음만을 소비하려는 일자리가 적은 만큼 당장은 어렵더라도 같은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은 또한 그리 높지 않을 것이다. 바로 그 차이다. 그럼에도 아직은 사회적으로 남성들이 더 유리함에도 정작 젊은 남성들만 자기들이 불리하다 우는 소리를 하는 이유다. 정작 자신들의 앞에 놓인 현실이 그러하니.

 

결국은 뭐가 문제인가? 여전한 남성과 여성의 젊음에 대한 비대칭적인 소비의 관행이 그렇지 않아도 일자리도 적고, 그나마 일자리의 질까지 열악해진 상황과 맞물려 서로에 대한 혐오와 증오로까지 번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같은 젊음이라도 여성의 젊음이 더 가치가 높기에, 나아가 여성으로부터 기대하는 것이 젊음이라는 한 가지 가치 뿐이었기에 그 세대에서 일어나는 불균형과 불평등이 불우하고 부당한 현실에 대한 남성들의 반감과 상승작용을 일으켰다. 그러니까 이 모든 건 여성들 때문이다. 그런 여성들을 위한 여성주의 때문이다. 그런 여성주의를 옹호하는 민주당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여성들을 위한 법과 제도는 민주당 혼자서 발전시켜 왔을까? 그래서 말한다. 이준석의 여성주의는 착한 여성주의다. 국민의힘의 여성주의는 착한 여성주의다. 반페미라는 것이 얼마나 반이성적인 선동의 결과인가를 보여주는 예일 것이다. 

 

그러면 이런 것들이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일 것인가? 그렇다기에는 전세계적으로, 특히 선진국일수록 젊은 남성들의 우경화와 보수화가 상당한 사회문제로까지 여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당장의 자신의 어려움을 다른 누군가의 책임으로 돌리고 그에 대한 분노와 증오로써, 공포와 혐오로써 해소하려 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외국인 이민자들이 있을 것이고, 정책적으로 보호받는 소수인종도 있을 것이며, 자신들과 다른 정체성을 가지는 집단들이 있을 것이다. 히틀러가 그렇게 독일 청년들을 규합해서 나치정권을 세웠었다. 그렇다고 나이를 먹으면 바뀌지 않겠느냐고 하기에는 이미 개인화가 너무 심하게 진행되어서 예전처럼 보다 세상을 넓게 다양하게 보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자기들만의 세계에 갇혀서 자신들만의 논리로 자가연마를 하며 자가발전에 빠져들기가 더 쉬워졌다. 사실상 자신들만의 커뮤니티에 속해 있지 않으면 말조차 통하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아무튼 멀쩡히 잘 다니던 아르바이트를 젊은 여자애들을 써야겠다며 잘리고 하면 당연히 기분이 나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연히 일하던 가게에 다시 갔더니만 역시나 자기보다 더 어린 여자직원이 심지어 자기보다 더 대우받으며 일하고 있는 모습까지 보게 되면 화도 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는 더 힘들고 더 위험하고 더 더럽고 그러면서 대우도 뭣같은 일자리를 찾아서 어렵게 돈을 벌어야 한다. 그런데다 자기는 남자니까 장차 가족을 부양하려면 더 안정적이고 수입도 좋은 직장을 어떻게든 얻어야 한다. 같은 최저임금 받으면서 여자라고 더 편한 일을 대우받으면서 하고 나는 더 힘든 일을 강압적으로 해야 하는 상황까지 겪게 되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구조적인 것이다. 인간사회란 항상 그렇게 모순적이었다. 그것을 단지 반페미만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여성주의만 아니면 되는 것인가. 스스로 답을 찾을 문제다. 쉽다고 모두 정답인 것은 아니다. 안타깝게도.

직업도 없고 모아놓은 돈도 없고 어차피 딸린 가족도 없기에 어떤 사람이 돈 많은 부자를 찾아가서 나를 노예로 써달라고 계약까지 맺었다. 어찌되었거나 노예가 되면 먹고 자는 것은 해결이 될 테니 그것을 인신의 자유와 바꾸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현행법에 이것은 불법이다. 서로가 원해서 맺은 계약이고 따라서 피해자도 없을 텐데 어째서일까?

 

사업에도 실패하고 가족들로부터도 버림받고 살 희망이 없어서 죽으려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한강에서 뛰어내리는데 마침 지나가던 사람이 그 모습을 보고도 말리기는 커녕 구경만 하고 있었다. 자기가 죽고 싶어 죽은 것이고 단지 당사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구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뿐임에도 그러나 그 구경만 한 사람은 현행법상 자살방조라는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여겨진다. 이 경우는 누가 피해자인 것일까?

 

형법이 반드시 유형의 피해자가 존재하는 경우만 범죄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다. 아니 실제 이 경우들도 역시 피해자가 존재하기는 한다. 단지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있는 개인이 아닐 뿐이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는 말처럼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정확히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보편의 가치라고 하는 피해자다. 즉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가지는 보편적인 양심에 따른 수치심, 모멸감, 혐오감, 거부감 등도 그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같은 범죄들의 경우는 특정한 개인을 피해자로 만들었기에 정의되는 것이 아닌 인간의 기본적인 양심과 존엄을 거스르는 행위이기에 범죄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집회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 등 인간의 기본권과 관련한 사안들에 대해서는 설사 실제 피해자가 존재하더라도 처벌하지 않는 경우마저 있다. 집회와 결사, 표현의 자유가 그로 인한 이동의 자유나 영업상의 손실보다 더 중요하다 여기기 때문이다. 이해가 되는가?

 

요즘 2030 남성들 사이에서 2D보호법이라는 게 꽤나 이슈가 되고 있는 모양이다. 어디선가 아동을 소재로 한 성착취물을 2D 이미지로 만들어 올린 것이 문제가 되어서 그를 청소년보호법을 통해 강하게 규제하려 추진하는 것에 대해 반발하는 여론이 크게 일어나면서 조롱과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 피해를 입는 대상도 없는데 2D 이미지를 보호하기 위해 법으로 강제하려 한다. 그러니까 이 법안이 지키고자 하는 것이 2D이미지에 등장하는 캐릭터인 것인가 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뭣도 모르는 것들이 자가발전하며 확신을 가지다 보니 생겨나는 터무니없는 오해다. 그래서 미성년자인 아동을 소재로 한 성적 표현물을 보는 것이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경험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면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그런 표현물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된다.

 

첫째는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적표현을 긍정할 수 있기 때문이고, 둘째는 그런 가능성이 사회에 더 큰 해악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며, 셋째는 무엇보다 그런 것들까지 포함해서 그러한 표현물들이 그 사회 구성원으로 하여금 인간적인 모멸감과 수치심을, 극도의 분노와 환멸과 거부감을 느끼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러한 표현물 자체가 인간의 근원적인 존엄과 양심을 해치고 근본적인 분노와 거부감을 느끼게 한다. 인간의 존엄과 양심에 위해를 끼친다. 한 사회가 반드시 지켜야 할 보편의 가치와 양심과 인간의 존엄이 이 경우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물론 그런 것들을 보더라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보지 못하는 것에 분노를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없겠지만.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라도 그런 사람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러한 행위들이 범죄임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런 표현물을 보는 것조차 이 사회가 용납할 수 있는 도덕적인 선을 한참 넘어선 것이다. 그러니까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성적인 표현물을 아예 보지도 만들지도 말아야 한다.

 

하긴 바로 그렇기 때문에 2030 남성들은 자유주의를 주장하면서도 정작 권위주의를 더 추종하게 되는 것일 게다. 리버럴은 무한한 자유를 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리버럴이란 사회가 보편적으로 추구해야 할 존엄한 양심에 따른 자유를 추구한다. 한 사회가 지켜야 할 보편적인 가치와 넘어서는 안되는 양심의 한계를 전제하여 자유를 추구해야 한다. 성적착취물은 자유의 대상이 아니다. 도덕적으로 금기시되어야 할 아동성착취물 역시 마찬가지다. 내란과 내란에 대한 옹호가 자유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이유와 같다. 하지만 2030남성들은 바로 그 부분에 대해 항상 가장 먼저 분노한다. 그것이 그들이 보수를 지지하는 이유일 것이다. 내란도 독재도 헌정에 대한 부정도 얼마든지 개인의 자유로써 제한없이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을 어떤 이들은 방종이라 부르고 어떤 이들은 절대권력이라 부른다. 어느 쪽이든 결국 공동체와 상관없는 개인의 탐욕이며 일차원적 본능과 충동의 결과다. 그래서 더욱 그런 논리에 쉽게 빠져드는 것이고.

 

사실 그같은 저들의 믿음을 부술 방법 같은 건 그냥 없다고 본는 것이 옳다. 말한 것처럼 일차원적인 본능과 충동의 발현이기 때문이다. 흑인은 싫다. 히스패닉은 혐오스럽다. 게이와 레즈비언따위 눈앞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 세상에 바이섹슈얼이니 트랜스젠더같은 건 없는 것이다. 노력하지 않아서 가난하게 사는 더러운 것들은 평생 그렇게 고통받으며 살아야 한다. 그러는 것이 자기에게도 기분이 좋으니까. 일단 불편하지 않을 테니까. 귀찮을 일도 번거로울 일도 더 적다. 그런데 그것을 논리로써 설득한다? 그러니까 강요니 강제니 하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나를 불편하게 성기시게 만들지 말라.

 

아마 꽤 된 이야기일 것이다. 영국에서 어느 도둑이 컴퓨터를 훔치려 들어갔다가 하드에 저장되어 있는 아동포르노를 보고 바로 경찰에 신고하고 자수한 적이 있었다. 절도죄로 잡히는 것보다 그런 추악한 행위를 아무일 없이 보아 넘기는 것을 그들의 양심이 차마 견디지 못해 한 때문이었다. 그런 범죄라는 것이다. 아마 세계적으로 그같은 아동포르노를 허용하는 나라부터가 아주 드물 것이다. 그것이 보편의 가치인 것이고 인간의 존엄성이며 양심의 결과라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으니 하겠다. 그건 그냥 인간 이전으로 돌아가는 말밖에 안 된다. 그런 수준들이다. 한심하게도.

내가 자타칭 20대 남성들을 한심하게 여기는 이유가 다른 게 아니다. 30대는 대충 여론조사 보아하니 반반 정도 나오므로 앞으로는 더이상 언급 않도록 하겠다. 반반이면 대충 중도로 싸잡기 적당하다. 역시나 취직도 하고 직장생활도 하다 보면 정치성향이 어느 정도 바뀌기도 하는 모양이라. 실제 남 밑에서 일하고 월급도 받다 보면 정치적으로 자신의 위치가 어디쯤 있어야 하는가 알게도 될 테니까. 아닌 경우도 많지만. 아무튼 내가 왜 자타칭 20 남성들을 비웃고 조롱하느냐면 결국 이유는 하나다. 비겁하고 비루하고 비열하다.

 

자기들이 보수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대부분 자기들이 중도적이거나 심지어 진보적이라 여기는 경우가 많다. 원래 보수정당을 지지할 사람들이 아닌데 민주당과 문재인이 잘못해서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민주당이 잘못한다는 것이 모든 것을 잘못한다는 것이다. 하여튼 민주당과 문재인이 하는 모든 것이 잘못이라는 것이다. 코로나 방역까지도 보수정당과 언론이 하는 말을 그대로 읊으며 민주당과 문재인 못한다고 욕하던 놈들이 그런 소리 하고 있으면 코웃음이 나겠는가 안 나겠는가. 조국은 그렇게 욕하면서 나경원도 괜찮고 한동훈도 괜찮다. 박주민은 세상 죽일 놈인데 주호영은 아무 문제도 없다. 곽상도도 그럴만한 사안이었다. 심지어 황보승희는 착한 페미이고, 윤석열이 여가부 폐지 않는 것도 다 민주당 때문이다. 페미가 문제라서 민주당과 문재인을 비토하는 것이라면 어쨌거나 민주당과 문재인의 정책 가운데 지지하는 것이 단 하나라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니던가. 최저임금 올리는 것도 싫다, 근로시간 줄이는 것도 안된다, 중대재해법도 회사 망하게 하는 것이니 안된다. 등등등등... 그런데도 자기들이 중도라고?

 

물론 한때 실수로 자기들이 진보적이라 착각하고 민주당을 지지했을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다. 가만 보니 실제 그랬었던 것 같다. 당시 새누리당이 하는 꼬라지가 너무 답답하고 한심해서 그에 대한 반대로써 민주당을 지지했더니 민주당 집권하고 보이는 행도가 자기들 성향과 너무 안 맞더라. 그러면 그냥 원래 보수였는데 성향이 맞지 않아 다시 돌아선 것이라 보면 된다. 예전 노무현 정부 시절 노빠들 가운데서도 하는 말이나 행동을 보면 보수정당이 더 맞을 것 같았던 이들이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결국 다들 보수정당 지지로 돌아섰더라. 똥파리가 아마 그 막차쯤 될 것이다. 그래서 4050 가운데도 국민의힘 지지가 꽤 높게 나온다. 아예 원사이드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한때 노무현도 지지했고 민주당도 지지했으니 원래 진보였다가 보수로 이념과 성향이 바뀌게 된 것인가? 원래 그런 성향이었을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다른 이유들로 인해 잠시 전략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하고 있었을 뿐. 그것이 자기가 진보이거나 혹은 중도였다는 근거는 되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어떤 상황에 대해, 정책들에 대해서 어떤 정당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는가.

 

다른 것도 아니다. 무려 현직 대통령에 의한 친위쿠데타 기도다. 현행법은 물론 헌법까지 무시하고 유린하려 했던 초유의 내란상황인 것이다. 그런데도 보수정당을 더 많이 압도적으로 지지하면서 그것을 페미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얼마나 비겁한 것인가? 그런 내란을 기도한 대통령과 그런 대통령을 적극 옹위하는 정당을 지지하면서 그 모든 책임을 여성의 편만 들면서 20대 남성들을 무시했던 민주당의 탓으로 돌린다. 그래서 국민의힘은 20대 남성들을 위해 뭘 얼마나 더 해 주었는가? 여성의 편만 드는 것이 문제라면 어째서 20대 남성들의 입장을 적극 지지해 주었던 이준석이 아닌 국민의힘을 실제로는 더 지지하고 있는 것인가? 민주당이 하는 것이 다 싫고 모두 반대하고 있다면, 그러면서도 국민의힘에 대해서는 아무 비판도 않거나 최소한의 비판만 하고 있다면 그 성향은 이미 분명히 드러난 것과 같다. 그런데도 자기들은 중도적이라. 심지어 진보적이라. 그러니까 늬들이 잘못했다. 아무리 지지자 싫다고 자기가 싫어하는 이념을 선택하지는 않는다니까? 내가 노빠들에게 그리 학을 뗐어도 차마 새누리당을 지지하지는 못했던 것처럼. 그저 자신의 선택이 옳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가 알고 있다 보니 핑계를 그리 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비루하기도 한 것이다.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런 정당을 지지하는 자신의 선택 역시 바르지 않다는 것도 안다. 그러니까 그런 논리도 만들어내는 것이다. 차라리 위선보다 악이 낫다. 착한 척 하는 것보다 솔직하게 악한 것이 더 낫다. 그런데도 그렇게까지 해가며 지지해야 하는 것이니 그것이 바로 이념이고 지향이고 성향인 것이다. 그들의 가치며 정의인 것이다. 그러니까 민주당이 하는 모든 것이 그리 마음에 안 들밖에. 옳지 못하고 바르지 못해도 국민의힘이 하는 일들은 그다지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심지어 윤석열의 내란에 대해서까지. 그러면 솔직하게 인정하면 되는 것 아닌가? 나는 원래 성향이 보수였다. 그런데 이러면 또 20대 남성을 비하한다 뭐한다, 보수가 비하냐고? 그냥 늬들의 성향이 그런 쪽이라는 건데. 물론 내 입장에서 지금의 보수를 지지하는 것은 혐오와 경멸의 대상에 지나지 않을 테지만.

 

하여튼 여론조사에서 20대 남성들의 국민의힘 지지가 높게 나오면 변명을 하는 건지, 아니면 그 와중에 민주당을 지지하고 싶은 것인지 그리 민주당 탓하는 말들이 넘쳐난다는 것이다. 이재명이 아닌 이낙연이었으면 더 괜찮았을 것이다? 차라리 이낙연이 당대표일 때 민주당 지지율은 지금보다 더 낮았었다. 20대 남성들의 비토도 더 심했었고. 그냥 남탓 뿐이다. 그러니까 자기들이 윤석열의 내란에 동조하고 옹호하며 지지하는 것도 모두 민주당 때문이다. 대단하신 분들이다. 단군이래 가장 똑똑한 세대라 그럴 것이다. 웃음도 안 난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2'에서 공유는 노숙자들을 찾아가서 빵과 복권을 함께 내밀고 고르라 이야기한다. 당장의 허기를 해결해줄 수 있는 실재하는 빵과 어쩌면 가능할지 모르는 실재하지 않는 가능성으로서의 복권 가운데 과연 사회에서 도태된 패배자라 할 수 있는 그들은 과연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그리고 그것은 456억이라는 돈을 위해 거의 죽을 것이 확실시되는 게임에 자신을 내던지는 게임의 도전자들과도 닮아 있는 모습이었을 터였다. 그렇게 공유는 그같은 패배자들 더욱 혐오하고 경멸하면서 아무렇지않게 죽음으로 내모는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할 근거를 더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미 존재하는 사실과 어쩌면 있을 지 모르는 가능성 가운데 사람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이미 확정된 실재하는 사실과 실제로 이루어질 수 있을지조차 확실하지 않은 미지의 가능성 가운데 사람은 과연 무엇을 우선하게 될 것인가? 후자를 어떤 사람들은 희망이라 부를 테지만, 어떤 사람들은 달리 그것을 미련이라 부를 것이다. 자신의 선택에 의해 포기해야 하는 확정된 사실에 따라 판단이 갈리는 것이다. 현재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미래의 가능성을 쫓으면 그것이 희망이 되는 것이고, 현재를 포기해가면서까지 미래의 가능성만을 쫓으면 그것은 미련이 되고 미망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두 가지를 구분하지 못해서 때로 희망이라 믿는 가능성을 위해 쉽게 현재를 포기하고는 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결국 패배자가 되어 도태되고 마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도박이고, 도박처럼 덤벼드는 무모한 사업들일 것이다. 잘나가던 연예인, 기업가들을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내모는 것도 바로 그런 것들이다.

 

이미 윤석열이 실제 비상계엄이라고 하는 대통령의 권한을 남용하여 친위쿠데타를 시도했다가 실패한 상황이다. 자칫 대한민국의 헌정 자체가 중단될 수 있는, 오랜 세월 수없이 많은 희생을 치르며 힘겨운 싸움 끝에 겨우 일구어낸 민주주의라는 성과를 하루아침에 수 십 년 전으로 되돌릴 수 있는 위태로운 상황을 실제 겪었던 터였다. 그럼에도 그 주범인 윤석열은 직무정지상태라고 하지만 아직 대통령 자리에 앉아 있고, 그에 적극 가담했거나 혹은 단순 방조했을 수많은 공범들 역시 아직 처벌되지 않은 상태인 것이다. 그런데도 정작 아직 대선도 치르지 않았는데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었을 경우를 가정해서 그를 막기 위해 그같은 내란을 시도했던 윤석열을 지지하고, 그에 대한 탄핵을 반대하며, 윤석열을 지키는데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국민의힘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과연 말인가, 방구인가?

 

이미 실재하는 사실이 있다. 그리고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미연의 가능성이 함께 있다. 물론 그 가능성이 실제 이루어졌을 경우 그다지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면 적극적으로 나서서 막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 비교대상이 이미 최악이라 할 수 있는 확정된 사실이라는 것이다. 미래에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가능성을 막기 위해 이미 존재하는 최악의 사실들을 오히려 긍정하며 지지한다. 편을 들어주고 힘을 실어준다. 과연 이러한 판단들을 합리적인 사고의 결과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어떤 사람들에게는 가능하다. 바로 이러한 모습이야 말로 그들이 놓인 현실이자 극복할 수 없는 한계일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도 당연하게 국민의힘이 더 잘하니까 더 좋아해서 지지한다고 차마 말하지 못하다 보니 결국 저렇게 돌려돌려 핑계를 만들어 대야만 하는 것이다. 윤석열이 잘못한 것도 알고, 국민의힘이 못하는 것도 아는데, 그러나 어찌되었든간에 관성때문에라도 자신들은 윤석열과 국민의힘을 지지하고 그들의 편에서 힘을 실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저놈들과 같은 편임을 인정하기 싫으니까 그래서 그 핑계로써 민주당과 이재명 탓을 하게 되는 것이다. 민주당과 이재명 때문에 자신들이 국민의힘과 윤석열을 지지할 수밖에 없었다. 민주당이 지금같지 않고 이재명이 대선후보가 아니면 괜찮았을 텐데 하필 지금 민주당같고 이재명이 당대표면서 유력한 대선후보이다 보니 그 반대편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말하자면 지금의 국민의힘과 윤석열은 민주당과 이재명이 만들어낸 그림자라 할 수 있다. 스스로 존재하지 못하고 민주당과 이재명에 빛이 비추면 그 결과 그에 따라 생겨나는 존재들인 셈이다. 그것을 스스로도 인정한다. 민주당과 이재명에 반대하기 위해서라도 자신들은 국민의힘과 윤석열을 지지해야만 한다.

 

어쩔 수 없는 것이 1997년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이어 노무현까지 2대에 걸쳐 집권하는 동안 IMF이후 공백상태였던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중요한 아젠다들을 상당부분 민주당이 가져와 독점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해 오던 방식으로는 한계를 맞았으니 이제 앞으로 어떻게 새로운 대한민국을 꾸려나갈 것이가에 대한 고민에 있어 민주당이 몇 걸음 앞서면서 보수정당의 선택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회창부터 이미 김대중과 노무현에 대한 반대 말고 새로운 아젠다를 내세우지 못하고 있었고, 그래서 결국 그들의 논리란 그동안도 크게 문제가 없었는데 괜히 바꿔서 혼란스럽게 한다는 이상도 이하도 아닌 수준에 머물고 말았었다. 심지어 아예 과거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놈들까지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빈 자리를 차지한 것이 개인의 탐욕이다. 보수정당 전체가 추구해야 할 일관된 가치가 없다 보니 자신들의 이익이 이념을 대신하고 그것을 사회 전체의 탐욕으로 확장하여 몰아가게 된 것이다. 그런데 탐욕은 어떤 이념도 지향도 가치도 될 수 없다 보니 그를 정당화하는 논리로써 반민주당이 대세를 차지하게 된 것이었다. 바로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놈들의 주된 논리인 위선보다 악이 낫다는 궤변이 여기서 나타나게 된 것이었다. 더 나쁜데 오히려 솔직하고 자신의 욕망도 긍정해주고 있으므로 덜 나쁘지만 괜히 착한 척하고 자신의 욕망도 부정하는 민주당보다는 더 나을 것이다. 그러니까 어떤 선명한 이념이나 지향, 가치를 위해 당장의 자신의 욕망과 본능을 위해서 그를 부정하는 민주당과 적대하겠다. 오죽하면 진보를 자처하던 정의당과 한겨레, 홍세화나 김규항 같은 인사들까지 그 대열에 합류하고 있었겠는가.

 

그런 점에서 차라리 솔직하기라도 한 6070 늙은이들보다 자기를 중립적이라 객관적이라 합리적이라 애써 치장하려 드는 2030 보수지지자들이 더 혐오스럽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보수지지자라 말하지 않는다. 자신들은 원래 민주당도 지지했었던 진보적이기도 했었던 상당히 중립적이고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유권자들이라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국민의힘과 윤석열을 지지하는 이유로 민주당과 과거에는 문재인, 그리고 지금은 이재명의 문제들을 이야기한다. 민주당과 문재인이, 그리고 지금은 이재명이 잘못했기에 국민의힘을 지지한다. 윤석열의 탄핵에도 반대한다. 혹은 반대할 수 있다. 국민의힘이 더 잘해서가 아니다. 더 나아서가 아니다. 더 옳아서도 아니다. 그런데도 더 못하고 형편없고 더 나쁜 국민의힘을 자신들은 지지할 수밖에 없다. 아마 그들은 자신들도 그 이유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논리도 중구난방이다. 오히려 내가 그들의 논리들을 정리해주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어째서 저들은 실재하는 윤석열의 죄악보다 아직 미연의 가능성일 뿐인 이재명의 실정을 더 두려워하는가? 이재명의 잘못이 두려워서 명백한 죄악을 옹호하고 있는 것인가? 어차피 처음부터 어떤 일관된 이념이나 지향, 가치를 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저 일차원적인 감정, 본능, 욕망이 그들을 움직인다. 그것이 지금 국민의힘이라는 보수정당이 가진 정체인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진보라는 이념을 쫓으면서도 이념을 뛰어넘어 한겨레와 정의당과 녹색당과 김규항같은 놈들도 거기에 합류할 수 있는 것이다. 이념이 아닌 이념, 지향이 아닌 지향, 가치가 아닌 가치, 그래서 그 모든 책임은 민주당에 씌워진다.

 

말 그대로 빵과 복권과 같은 것이다. 실재하는 자신의 굶주림을 해결해 줄 빵과 당첨되었을 경우 기대할 수 있는 더 큰 탐욕과의 사이에서 탐욕을 선택하고 마는 것이다. 그같은 관성이 민주당과 이재명에 대한 막연한 증오와 공포로, 혐오와 거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그냥 미망이다. 미련이다. 인간의 탐욕은 스스로를 연마한다. 스스로를 진화시키고 강화시킨다. 일찌기 프랑스의 변태 마르퀴 드 사드가 평생을 걸고 증명한 사실이었다. 그 또한 인간의 이성이 가진 또 다른 이면이다. 증오가 증오를 낳고, 공포가 공포를 낳고, 혐오가 혐오를 낳는다. 그렇게 부정과 거부를 통해 자신을 증명한다. 자기를 정당화한다. 그리고 이제 그것이 관성이 되어 당연하게 여겨진다. 보수적이라기보다 비루하고 비겁한 것이다. 더욱 비열해진 것이다. 그게 지금 대한민국 보수의, 아니 과거 진보를 포함한 현실이다. 우습지만 사실이다.

한 여론조사에서 진보당 지지자 가운데 60% 이상이 윤석열의 탄핵에 반대하고 정권연장을 지지한다는 결과가 나온 것을 보고 어느 보수지지자가 평가한다.

 

"진보정당 지지자들에게는 민주당의 집권을 막는 것이 더 중요할 테니 그런 판단을 할 수도 있겠다."

 

물론 그 사람 혼자만의 생각일 수는 있겠지만 그동안 정의당을 통해 보았던 진보정당 지지자들의 이미지가 과연 어떠했는가 단적으로 알게 해주는 한 마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진보정당들에게는, 그리고 그 지지자들에게는 윤석열의 쿠데타보다 민주당과 이재명을 막는 것이 더 중요하고 시급한 가치일 것이다. 민주당을 반대하는 것에 더 중요하고 더 우선해야 하는 일이고 윤석열의 쿠데타나 그에 따른 정권교체는 크게 관심이 없을 것이다. 진짜 그러한가?

 

그런데 또 아주 틀린 말은 아니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 시절 탈원전했다고 공격하고, 김학의 출국금지시켰다고 국정조사에서 따져물으면서 아예 문재인 대통령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던 것이 바로 정의당과 한겨레였었다. 아마 이 단계에서 이미 보수정당 지지자들조차 저들의 정체나 성향에 대해 판단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추구하는 진보라는 가치란 과연 무엇인가? 저들의 진보적 이념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그래서 저놈들은 무얼 위해 행동하는가? 대선 내내 민주당과 이재명만 공격하면서 심지어 정의당 대변인까지 나서서 김건희를 옹호하는 것을 보면서도 저놈들이 추구하는 진보적인 가치에 대해 판단하지 못한다면 뇌를 의심해야 한다. 문제는 진보당과 정의당은 진보를 추구하더라도 그 정체성이나 지향이 전혀 다른 정당이란 것이다.

 

통진당에서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뛰쳐나와 만든 것이 정의당이고, 그렇게 정의당이 떨어져나가고 남아 있다가 헌재에서 정당해산당해서 사라진 통진당의 잔여가 모여서 새롭게 만든 정당이 진보정당이라는 것이다. 굳이 운동권의 계보로 거슬러 올라가면 PD와 NL로 대충 뭉뚱그릴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민주당 지지자 가운데 진보당을 마뜩잖아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사실 운동권 시절만 해도 NL과 PD의 관계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그것에 더 가까웠을 테니까. 그만큼 서로 원수지간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통진당 시절 민주당과 선거연대도 했던 점에서도 알 수 있듯 민주당과의 관계 또한 서로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 하지만 그런 차이따위 알 리 없는 보수지지자 입장에서는 정의당이나 진보당이나 같은 진보정당이니 민주당에 대한 태도도 같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민주당에 대한 혐오와 증오가 여전하다면 윤석열을 지지하는 것도 크게 이상할 일이 아니다. 

 

정의당이 도대체 진보의 이미지를 어떻게 망쳐버린 것인가. 민주노동당이 진보 앞에 자칭을 붙이게 하더니만 정의당 덕분에 자칭은 2찍이 되어 버렸다. 나만 그러는가 했더니 정의당 덕분에 진보 앞에 2찍을 붙이는 사람들이 꽤 되는 모양이더만. 그만큼 정의당의 문재인 정부와 대선, 그리고 윤석열 정부 아래에서의 행보가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준 것이다. 그리고 덕분에 그 유탄을 진보당이 맞는 중이고. 녹색당이야 원래 검찰개혁도 반대하던 찌그레기들이니 말할 것도 없다. 저런 병신새끼들이 진보정당을 자처하고 있었으니. 그래서 2찍 진보인 것일 테지만. 진보당이 불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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