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과 면을 잇는 선으로서의 국경이란 역시나 근대의 발명품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 인간의 역사에서 국가란 점과 점의 연결이었고, 국가와 국가 사이의 경계 또한 또다른 점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를 달리 변경이라 부른다. 이런 변경만을 연구하는 변경사라는 게 있을 정도로 역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개념일 것이다.
이를테면 조선시대 만주의 경우 명으로부터도 조선으로부터도 직접 지배를 받지 않는 중간지대로써 존재하고 있었다. 아직 여진족의 나라가 세워지기 전이었기에 당연히 여진족의 땅은 아니었고, 그렇다고 명이나 조선이 지방관을 파견해 직접 지배하지도 않았었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 여진족 가운데 일부가 명이나 조선으로부터 관직을 받고 조공도 바치면서 그 영향 아래에서 간접적으로 지배를 대신하기도 했었다. 즉 여진족과 관계가 깊었던 이성계가 왕위에 있을 때는 상당수 여진족이 조선에 귀부하기도 하고, 조선의 여진에 대한 영향력이 약해진 뒤로는 명으로부터 벼슬을 받고 그에 복종하는 여진족이 다수를 차지하는 등 주변의 영향을 받는 주변으로써 만주는 존재한 것이었다.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대마도 역시 그런 이유로 일본 본토의 다이묘에게 복종하여 충성을 바치면서도 조선 조정으로부터 관직을 받고 조공을 바치는 이중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중국 무협에서 흔히 변방의 오지로 그려지는 감숙이나 운남 등도 그런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이름뿐인 관리를 실제 파견하기도 했지만 명이나 청이나 이들 지역을 실제 지배하는 것은 조정으로부터 관직을 받은 토호들인 경우가 더 많았었다. 조정이 직접 지배하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에 명목상 관직을 내리고 사실상 자치를 인정한 지역들인 것이었다. 그러다가 중앙 조정의 권위가 약해지거나 오히려 지나치게 간섭하여 지역민의 이익을 침해하는 경우 반란이 일어나기도 했으니 명청대에만 이들 지역에서 일어난 반란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오죽하면 강희제가 다시는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게 만들겠다고 오이라트를 아예 모조리 학살해 버렸겠는가. 그러고도 건륭제 때 다시 운남과 귀주에서 반란이 끊이지 않아 그로 인한 재정의 소모가 심각했을 정도였었는데, 그럼에도 이들 지역은 지금 역사에서 청의 영토로 기록하고 있다.
이는 유럽에서 보다 더 보편적으로 고도화되어 나타나고 있었다. 당연한 것이 봉건제라는 자체가 국가와 국가 사이의 질서를 사적인 계약을 통해 규정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봉건제 아래에서 각 제후의 영지는 독립적인 국가처럼 존재하고 있었다. 아니 이전에 샤를마뉴 이후 유럽의 봉건제에서 제후의 영지란 곧 영주의 사유재산으로 간주되고 있었다. 유럽의 국가들에서 왕위의 계승이 동아시아의 그것과 상당히 다른 형태로 이루어진 이유이기도 했다. 각각의 영지를 사유하고 있는 영주들이 봉신계약을 통해 수직적인 질서를 만들고 그 정점에 있는 국왕을 중심으로 국가라는 것을 만드는데, 그렇다 보니 해당 영지의 소유권에 따라 국가간의 관계가 복잡해지는 경우도 그래서 생겨나게 되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프랑스의 왕자가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봉신인 이유도 하필 그 영지가 신성로마제국 안에 있었기 때문이며, 영국 국왕이 프랑스 국왕의 봉신이었던 이유 역시 원래 노르망디의 대공이었다가 영국을 정복하면서 왕이 된 경우라 원래 노르망디의 대공으로서 맺은 봉신계약에 따른 것이었다. 그래서 100년전쟁의 결과 노르망디 대공 자리를 포기하면서 역시나 더이상 프랑스 국왕에 대한 봉신의무와 더불어 프랑스 왕위에 도전할 권리까지 모두 사라지게 된 것이었다. 지금도 그래서 영국 왕세자가 웨일즈의 공작을 겸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원래 봉신계약 아래 있지 않았던 주변의 이민족들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지금도 스페인에서 바스크나 카탈루냐 지방에서 분리독립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이유인 것이다. 원래 다른 민족이었지만 필요에 의해 스페인 국왕과 봉신계약으로 맺어져 있었는데 근대에 국민국가가 출현하면서 덩달이 그들 역시 스페인 안에 묶이게 된 경우인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프랑스 안에서도 보르도나 나바르 등 언어와 문화가 달랐던 지역들이 있었지만 역시 봉신계약을 통해 프랑스에 포함되어 있다가 국민국가가 성립하면서 아예 고유언어까지 말살당하며 흡수되고 말았다. 그래서 오스트리아의 황제 역시 1차세계대전까지만 하더라도 헝가리와 세르비아 등의 황제까지 겸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근대 이후 유럽에서 국민국가라는 것이 만들어지고 민족주의가 나타나기 시작한 이유였다. 언어와 문화 등 전혀 공통점 없는 사람들이 아무 기준 없이 지배자의 이해에 따라 하나의 국경 아래에 존재하거나 아니면 여러 국가로 나뉘어있고 했었으니 그를 정리하고자 하는 당연한 필요의 발현이었다. 하나의 민족이 하나의 나라를, 하나의 나라는 하나의 국민을, 그런 구호가 나오게 된 이유부터 원래 유럽의 역사가 그와는 한참 거리가 멀었던 때문인 것이었다. 특히 한국 사람들에게 유럽의 역사를 이해하기가 무척 어려운 이유기도 할 것이다. 그러니까 어째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해 저렇게까지 하는 것인가.
이를테면 해방 이후까지 함경도에 살았었다는 여진족이 해방과정에서 떨어져나와 독립국가를 세우게 되었다 가정해 보면 조금 더 쉽게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어차피 같은 한반도에 살고 있고 아직은 한 나라니까 여진족이 사는 함경도의 경계를 넓혀주고 거기에 공장까지 잔뜩 지어 놓았는데 어느날 여진족이 독립하더니 그게 전부 자기 거라 주장하기 시작한다. 원래 그 지역에 여진족이 살고 있었으니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과연 그 전에도 여진족의 나라라는 것이 존재했었는가?
원래 우크라이나의 시작은 러시아와 같은 키예프 공국이었다. 지금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키이우 바로 그곳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폴란드의 힘이 커지며 우크라이나는 독립적인 지위를 잃고 그 봉신이 되고 만다. 근대적인 영토 개념으로만 본다면 이때부터 우크라이나는 폴란드 국왕에 충성을 바치던 폴란드의 영토인 셈이다. 그러다가 폴란드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원래 뿌리가 같았던 러시아에 도움을 청하게 되자 우크라이나의 일부는 다시 강성해진 러시아의 지배 아래로 들어온다. 이때까지도 우크라이나라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았었다. 오히려 우크라이나가 독립국가로 존재할 수 있게 된 것은 제정말 러시아가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우크라이나를 독립시켜 위성국가로 삼으면서부터였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우크라이나는 소비에트 연방에 편입되어 연방을 이루는 나라 중 하나가 되었었다. 그리고 소련 시절 역대 소련 정부들은 우크라이나를 매우 중요하게 여겨서 거기에 공장도 짓고 항구도 건설하고 심지어 핵무기까지 다수 배치하고 있었다. 오죽하면 소련이 해체되고 당시 주력전차이던 T80이 더 이상 생산되지 않은 이유를 그 공장이 우크라이나에 있었기 때문이란 말까지 있었겠는가.
즉 지금 우크라이나의 국경부터 우크라이나 자신의 실력과 의지로 러시아와의 갈등과 협상을 통해 확보한 역사성 있는 경계가 아닌 오히려 러시아의 필요에 의해 임의로 그어진 선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구나 그렇게 그어진 국경 안에 러시아가 자기가 필요해서 지어 놓은 많은 인프라까지 함께 딸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우크라이나가 이제는 러시아로부터 멀어져 러시아와 경쟁관계인 유럽의 편에 서려 하고 있다. 자기들이 만들어 놓은 것들까지 모두 들고서 자신들의 적의 편에 서겠다고 하는 것인데 그것을 좋게 볼 러시아 사람은 아마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게 웃기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영토 안에 있으니 우크라이나의 것이라 하기에 우크라이나라는 나라가 세워진 것부터 우크라이나인 자신들의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원래 우크라이나라는 나라는 없었고, 러시아의 영향 아래 있던 우크라이나라는 지역만 있었으며, 우크라이나라고 하는 나라의 모든 것은 오히려 러시아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이제 러시아를 적대하는 경쟁자의 편에서 자신들에게 향하려 하고 있다.
물론 우크라이나 사람들 입장에서야 원래 자기들이 살던 땅인 것이다. 자기들이 원래 살던 땅이었고, 그 땅에 살던 사람들이었다. 우크라이나라는 나라가 있기 전부터 자신들은 그곳에 살았었고, 폴란드와 러시아의 지배를 받을 때조차 자기들끼리 자기들만의 언어와 문화와 전통을 지키면서 상당한 자치 또한 누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러시아가 국경도 그어주고, 공장도 지어주고, 항구도 만들어주고 했었다지만 그건 러시아가 좋아서 한 것이고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딱히 원해서 해 준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원래 자기들의 권리를 되찾아 우크라이나라는 독립국을 세운 순간 그 모든 것은 우크라이나의 원래 주인이었던 자신들의 것이 되는 것이다. 어차피 그동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지배한 자체가 부당한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사정과 별개로 역사 그 자체만 놓고 보면 러시아로서도 억울한 부분이 없지는 않은 것이다. 바로 제국주의의 억울함이다. 이를테면 일본이 식민지 조선을 잃고 억울해 한 것과 다르지 않다. 다만 그 경우가 상당히 다를 수 있다는 것은 우크라이나라는 나라 자체가 러시아의 지배를 받기 이전에 아직 존재하지 않았었다는 점일 것이다.
이래서 역사를 국경 단위로 보려 하면 어려워지는 것이다. 국가 단위, 왕조 단위로만 보려 하면 나중에 여러 가지로 꼬이기 쉬운 것이다. 국가를 이루는 무수한 점과 국가와 국가 사이의 경계를 이루는 무수한 점들을 하나씩 개별로 볼 수 있어야 비로소 역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의 관계를 이해하는데도 이런 과정들이 필요하다. 어째서 같은 아일랜드인데 북아일랜드는 아일랜드와 다르며 아직까지 그로 인하 분쟁이 계속되고 있는가. 바스크 분리주의와 카탈루냐 분리독립운동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탈리아에서 남북을 불리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기도 하다. 그게 좀 더 스케일 크게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난 게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당연한 주장과 권리와 별개로 그렇다는 뜻이다. 역사라는 게 그래서 참 어렵고 복잡하다. 쓰는 내내 머리 꼬여서 죽는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