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도 썼지만 노무현 정부 당시 지지자들이 열린우리당에 요구한 것이 바로 이런 모습이었었다. 이후 노무현을 지지하고 문재인을 지지한 민주당 지지층에서 진보정당에 투표하며 기대했던 것도 바로 이런 것이었다. 아무래도 중도적인 입장에서 보수적인 국민들도 신경써야 하는 대통령이나 거대정당인 민주당과 달리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열린우리당이나 그보다 더 이념적으로 선명한 진보정당들이 보다 왼쪽에서 더욱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방향으로 이 사회를 이끌어갈 동력을 만들어주기를 바란 것이었다. 그러면 당시 대통령이나 이후 거대정당 민주당도 보수적이고 중도적인 유권자를 끌어안으면서도 보다 안정적으로 개혁과 진보를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이 아다시피 노무현 정부 당시 대통령이 가장 왼쪽에 있었고 열린우리당은 그 오른쪽에서 대통령과 보수정당인 한나라당 사이에서 편하게 꿀만 빨고 있었다. 욕은 대통령이 다 들어 쳐먹고,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오히려 대통령에게 책임을 떠넘긴 채 아무에게도 욕먹지 않을 좋은 자리만 찾아 다니고 있었다. 딱 이낙연 대표체제의 민주당을 떠올리면 된다. 정동영과 김한길이 당시 하던 짓거리가 그것이었다. 그래놓고는 지지율 떨어졌다고 대통령을 아예 당에서 내쫓고, 정당개혁하겠다며 만든 정당을 자기 손으로 해체해 버렸다. 그때 한 자리 하던 새끼들이 노무현 어쩌고 하는 것 보면서 어찌나 웃기던지. 괜히 유시민이 있는 당대표한테나 잘하라 그런 것이 아니다.

 

진보정당들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진보정당 뿐만 아니라 진보언론, 진보지식인들 대부분이 하나같이 보수의 눈치를 보며 진보로서 자신을 인정받고자 발버둥치는 모습만 보이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정작 노무현 정부 당시 진보정당이 정책적으로 연대한 대상은 오히려 한참 오른쪽에 위치한 수구정당 한나라당이었었다. 괜히 상당수 진보적인 유권자들이 녹색정의당에 등을 돌린 것이 아니다. 사실상 지금 녹색정의당에 남아 있는 지지자들이란 이준석에 대한 80% 가까운 지지가 말해주듯 원래 그런 성향이었던 지지자들 뿐이란 것이다. 노무현 때도 그랬었고, 문재인 때도 당연하게 반복하고 있었고, 그러고보면 진보정당이 수구정당과 이슈파이팅을 하던 시기는 그토록 종북이라 욕하던 통진당 때가 마지막이 아니었을까. 그나마 NL들이 주도한 진보정당이 아니면 이준석이 그랬던 것처럼 민주당을 좌우에서 포위한다는 것이 저놈들의 당연한 전략이었었다. 민주당은 진보도 보수도 아니다. 그러면 중도여야 하는데 수구정당 입장에서는 좌파고 진보정당 입장에서는 보수다. 그러니 저놈들은 가짜다. 진짜인 수구정당과 자신들 진보정당에 투표하라. 그것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낸 것이 바로 2020년 총선을 앞두고 나온 '민주당만 빼고'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진보정당마저 수구정당과 붙어먹는 상황에서 얼마나 민주당이 정권을 잡았다고 진보적인 아젠다를 끌고갈 수 있을 것인가.

 

지난 2022년 대선에서도 원래는 심상정이 앞장서서 노동이슈든 소수자 이슈든 진보적인 아젠다를 끌고 가면서 보다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방향으로 다른 후보자들이 움직일 수 있도록 동력과 계기를 만들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혹시라도 그것이 민주당과 이재명에게 도움이 될까봐 심상정은 대선기간 내내 거의 노동자라는 단어를 입에 담지조차 않았었다. 진보정당의 목소리에서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 소수자를 대변하는 목소리가 사라진 아마 거의 유일한 선거였을 것이다. 그래서 윤석열은 대선 내내 마음편하게 더욱 더 오른쪽으로 편향된 입장을 내보일 수 있었다. 그를 비판하는 후보가 사실상 이재명 하나였으니, 더구나 심상정은 이재명이 더 진보적이지 않다고 욕만 해대고 있었으니 굳이 보다 중도적이고 진보적인 유권자들까지 신경쓸 이유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정권이 바뀌고 나서도 정의당과 한겨레, 그리고 이른바 2찍 진보 지식인들은 민주당의 잘못을 들추는데만 열심이었지 정부와 어떤 이슈를 두고서 정면으로 부딪히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오죽하면 민주노총이 빨갱이몰이를 당하면서도 저토록 조용히 침묵만 지키고 있겠는가. 문재인 정부였으면 정부타도를 외치고 나섰을 놈들이 윤석열 정부에서는 때리면 때리는대로 그냥 쳐맞다가 민주당에 꼬투리 있으면 그것만 물고 늘어지는 중이다. 가장 왼쪽에 있는 놈들이 이 지랄인데 그러면 민주당 내부에서 심지어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놈들은 또 얼마나 적극적으로 움직여줄 것인가.

 

그래서 조국혁신당이 돌풍을 몰고 오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2찍 진보들의 태생적 오판이 드러난다. 민주당만 욕하면 중도적이고 진보적인 유권자들이 보다 진보적인 자신들을 지지할 것으로 생각했다. 민주당을 건너뛰고 자신들이 수구정당과 연대하면 보다 중도의 넓은 지지층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었다. 하지만 지금 조국혁신당의 돌풍이란 비단 민주당 강성지지층의 지지에만 힘입은 것이 아니란 것이다. 오히려 민주당 강성지지층은 이재명 당대표를 위해서라도 비례대표 후보들의 면면이 어떻든 일단 민주당에 올인하자는 입장에 더 가까울 것이다. 지금 조국혁신당을 지지하고 나서는 것은 그런 민주당에 평소 불만을 가지고 있던, 민주당이 그다지 선명하게 하는 것도 없다고 여기고 있던 심지어 보수적인 유권자들까지 포함한 그 나머지 유권자들이라는 것이다. 이재명의 민주당도 윤석열과 정면으로 시원하게 싸우고 있지 못하는데 조국혁신당이면 마음에 안드는 윤석열과 제대로 싸워 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윤석열 정부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싸늘하게 식고 있는 와중에도 윤석열 정부를 놔두고 민주당만 물어뜯느라 바빴던 2찍 진보들의 자승자박인 것이다. 그보다는 원래 태생이 그랬다. 수구로부터 인정받는 진보가 진짜 진보다. 수구가 인정하는 진보만이 진짜 진보일 수 있다. 조선일보가 불러준다고 좋아라 가서 원하는대로 써주고 지껄여주는 진중권을 보라. 지금의 진중권과 김규항, 홍세화, 강준만 무리들과 과연 보이는 모습에서 어떤 큰 차이가 있을 것인가.

 

그렇기 때문이다. 진보정당이 민주당의 대안이 되지 못하니 민주당조차 싫다던 사람들이 조국혁신당을 보고 투표장에 갈 마음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기왕에 투표하러 간 것 비례대표만 찍을 수 없으니 지역구도 그나마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정당에 투표해야겠다. 그런데 그 대안이 진보정당이 아닌 것이다. 노무현 정부까지만 해도 거의 10%를 넘어 20%까지 바라보던 진보정당의 지지율이 지금에 이르러 3%도 안나오는 이유인 것이다. 저놈들 지지해봐야 진보는 커녕 그냥 수구세력 좋은 일만 시키는 것이다. 민주당 2중대는 아닐지 모르겠는데 그 민주당과 싸울 때는 아예 수구정당의 선봉대들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당이 아니면 조국혁신당일 수밖에 없다. 민주당도 국민의힘도 아닌데 개혁신당이나 새로운미래당까지 기웃거리던 유권자들이 아예 더 선명하게 윤석열 정부와 싸울 것을 천명한 조국혁신당으로 모여든다. 2찍 진보들의 무려 20년 넘는 전략의 종착점이라고나 할까? 놈현 관장사라 지껄이던 놈들의 끝이 보이는 것이다.

 

아무튼 그래서 속이 시원한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 2찍 진보새끼들이 결국에 2찍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조국혁신당을 통해 보다 선명히 드러내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만 아니면 된다던 저 새끼들의 대가리속이 얼마나 썩은 똥구더기였는가 새삼 확인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한겨레나 녹색정의당이나 민주당만 아니면 된다. 그놈들과 손잡은 여성주의자들도 오로지 민주당만 바라보고 있다. 그런 것들이 민주당 안에서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현실이 그냥 코미디다. 얼마전에 아예 민주당 엿먹으라고 공보물에까지 장난쳐 놨더만. 경향일보야 어차피 친검기관지고. 비로소 원하던 그림이 만들어졌다. 너무도 만족스러운 요즘이다. 조국혁신당의 돌풍은 더 거세져야 한다. 내 바람이다.

그래서 내가 말한 바 있다. 2찍 진보들이 말하는 여성주의란 단지 수구를 지지하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가리기 위한 기만에 지나지 않는다. 멀리 갈 것도 없다. 김학의 출국금지시켰다고 그 생난리를 피던 한겨레와 정의당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된다. 검찰이 무혐의로 판단했는데 검찰을 통하지 않고 부당하게 해외로 나가지 못하게 막았으니 문재인이 책임져야 한다. 이성윤은 아예 승진도 해서는 안된다. 김학의가 어떤 인간이었더라? 

 

이준석이 국민의힘 당대표가 되었을 때 한겨레가 아주 신이 나서 민주당에 일갈한 바 있었다.

 

"너희는 이준석 같은 젊은 인재 없지?"

 

그런데 이준석이 정치인으로서 그동안 어떤 주장을 해왔었더라? 반여성주의, 반외국인, 심지어 특정한 세대를 한국사회에서 고립시켜야 한다는 세대포위론까지 들고나왔던 대표적인 혐오팔이 정치인이다. 하지만 한겨레는 이준석이 당대표되었다고 신이 나서는 자기들 지면에다 4050 남성들을 아예 이 사회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칼럼까지 내고 있었다. 이는 이른바 2찍 진보들이 이준석을 어떻게 자신들의 대안으로 여기고 있는가 보여주고 있는 단적인 예일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이준석이 출마한 지역구에서 여론조사한 결과가 얼마전 나온 모양이다. 녹색정의당 지지자 거의 절대다수가 이준석 지지하고 있더만. 그동안 자기들이 진보랍시고 민주당과 지지자들을 욕하던 놈들이 자기들이 그동안 주장해 오던 여성과 외국인, 성소수자, 사회적 경제적 약자들을 위한 애념을 스스로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최소한 여성주의를 주장하는 놈들이 반여성주의를 앞세운 이준석을 지지해서는 안되는 것 아니던가. 그런데 어째서 녹색정의당을 지지한다는 유권자의 80%는 다른 사람도 아닌 이준석 지지를 선택한 것일까?

 

내가 말한 그대로인 것이다. 저놈들의 진보란 이준석의 보수처럼 단지 자기를 치장하기 위한 장식에 지나지 않는다. 실체는 이준석과 마찬가지로 속편하게 싫은 놈 떼어내고 잘라내고 도려내고 밀어내고 그냥 내 맘에 맞는 놈들하고만 어울리는 게 편한 부류들이다. 오래전 바로 그런 2찍 진보들로부터 들었던 말이다. 어리석은 대중의 일원으로서 판단하려 한다. 진보란 그런 대중의 위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준석이 진보다. 진보의 앞에 2찍이 붙어야 하는 이유가. 웃긴다.

내가 좋아하는 만화대사 가운데 그런 게 있었다.

 

"나는 단지 자궁을 팔았을 뿐이다."

 

집안을 위해 다른 가문과 정략결혼을 했던 것을 두고 당사자인 여성이 무심히 내뱉었던 한 마디였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 근대 이전 대부분 문화권에서 여성의 지위를 상징하는 단어이기도 했다.

 

여성의 순결이 그렇게 중요하게 여겨진 이유는 무엇인가? 별 것 없다. 그래야지만 여성으로부터 태어난 아이가 온전히 자신의 아이임을 확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엄마는 누구인가 굳이 따져볼 필요도 없이 바로 알 수 있지만 아버지가 누구인가는 지금도 첨단과학의 도움을 받아야 겨우 확실하게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부계를 통해 상속이 이루어지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아버지가 자신의 아이임을 확신하기 위해서는 다른 남자와의 관계 자체를 단절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었다. 자기 이외의 어느 누구와도 관계가 없다면 의심할 여지 없이 아이는 자신의 아이가 된다. 괜히 왕의 궁정을 성기능이 없는 환관들로 채운 것이 아니었다. 

 

전통사회에서 아내와 이혼할 수 있는 사유로 불임이 중요하게 꼽히곤 했던 이유인 것이었다. 아예 여성이 아이를 출산할 능력이 있음을 입증하기 위해 결혼 전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는 것을 장려하는 문화권마저 있었을 정도였다. 굳이 부계의 계승이 중요하지 않은 가난하고 비천한 신분들의 경우는 단지 노동력만 확보할 수 있으면 되기에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도 기꺼이 받아들이고는 했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자식의 출신이 무엇보다 중요한 고귀한 신분들은 모계의 신분까지 확보하기 위한 노력도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었다. 고귀한 혈통의 여성에게서 후손을 보기 위해 비싼 댓가를 치르고 신부를 사오는 경우가 그렇게 나타나게 되었다. 이 경우 당연히 비싸게 주고 사들이는 것은 여성 개인이 아닌 자궁이었었다. 얼마나 가치있는 자궁이냐에 따라 가격이 매겨지고, 자궁이 가진 가격에 따라 결혼의 가치가 결정되기도 한다. 앞서 만화의 대사는 바로 그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필요한 후계자를 낳아 의무를 다한 이상 자신은 더이상 배우자나 자식이나 시댁인 가문에 어떤 책임도 의무도 짊어질 필요가 없다. 그러니까 늬들이 다 알아서 하라.

 

톨스토이의 소설 '부활'에서도 그같은 사고에서 비롯된 귀족사회의 타락한 성문화가 그대로 묘사되어 있었다. 그냥 자식만 낳으면 된다. 각자의 가문의 이름을 이은 후계자만 하나 낳아주면 그것으로 서로에 대한 모든 책임을 다한 것이다. 그리고 나서는 자기 마음대로다. 남자만 바람을 핀 것이 아니었다. 후계자만 낳아주면 그 다음에는 아내가 어디 가서 뭔 짓을 하든 남자가 알 바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렇게 자기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다른 여자 찾아서 마음놓고 즐길 수 있으니 더 좋았다. 그런 과정에서 다양한 피임방법이 고안되고, 뜻하지 않은 임신에 대한 중절수술도 시도되었으며, 그러다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낳게 되는 경우에는 출생의 비밀 같은 것도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이미 필요를 다한 자궁은 더이상 간섭도 감시도 억압이나 구속도 필요치 않다. 사실상 방치다. 가치가 잃은 자궁은 더이상 의미가 없다.

 

바로 그런 시대였기에 전근대사회에서는 여성의 순결이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였던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단지 노동력으로서의 아이만이 더 많이 필요했을 뿐 혈통이란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계층에서는 순결은 그리 중요한 의미가 아니기도 했다. 유력자의 사생아를 낳은 여성이 그보다 낮은 신분의 남성과 결혼해서 그 아이를 남성의 아이로 기르곤 하는 수많은 역사적 사례들이 그것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여기서도 여성은 단지 아이를 낳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자궁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양과 질이다. 고귀한 신분에서는 자궁의 질을, 비천한 신분에서는 자궁의 양을, 결국은 여성이란 자궁이었다. 그래서 많은 문화권에서 여성에게는 이름이란 것이 없었다. 성이 없어서 남성의 성을 따라야 했고, 성도 없이 이름도 절반만 써야 했으며, 이름이 주어지더라도 남성과는 다른 비천한 이름만이 주어졌다. 그렇기에 그런 시대에서 여성의 가치란 다른 무엇도 아닌 단지 성적인 의미 그 자체였던 것이었다.

 

내가 한국 여성주의자들을 두고 기생페미니즘이라 단정지어 말하는 이유인 것이다. 아주 오래전 내가 20대이던 시절에 주위에 있던 누님이나 동년배들 가운데는 여성이라고 배려하고 하는 걸 아주 끔찍이도 싫어하던 이들이 적지 않았었다. 무거운 것도 자기가 알아서 들고, 힘든 일도 남성들에 뒤지지 않게 자기가 노력해서 해내며, 남성들에게 도움과 배려의 대상이 아닌 동등한 주체로써 여겨지기를 바라던 이들이었다. 그들에게 여성이란 당연히 인격 그 자체였다.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지는 존엄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여성의 존재와 지위를 결정하는 것은 그 여성이 가진 능력과 그 능력으로 일구어낸 결과과 그로부터 비롯된 사회적 위치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한국 여성주의자들이 주로 떠드는 것은 단지 성적인 대상으로서의 여성이다. 오래전 당연하게 여겨졌었던 자궁으로서의 여성에만 집착하고 있다. 그러므로 남성들에 의해 여성은 어떤 지위를 부여받고 어떤 신분을 누리게 될 것인가. 그를 위해 여성의 자궁은 어떤 가치를 가져야 하는가.

 

여성이 법조인으로서 대등하게 다른 남성변호사들과 경쟁하며 지금의 위치를 일구어낸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 그리고 그 치열한 삶이 지향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그럼으로써 사회적으로 그가 지금 차지하는 위치가 어떠한 것인지 아예 전혀 관심조차 없다. 그보다는 성범죄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했는가. 심지어 그마저도 선택적이다. 특정 정당이나 세력에 대해서는 그보다 더 심한 경우에조차 아예 입다물고 있는 경우가 많다. 전직 검사출신이고 법무부차관까지 지냈으니 김학의의 인권은 보호되어야 하며 출국금지는 부당했다고 하는 다수 여성주의자들의 주장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같은 여성인 계약직 노동자의 삶보다, 같은 여성으로서 실제 현실에서 남성들과 부대끼며 경쟁해야 하는 수많은 여성노동자들이 놓인 현실보다, 그저 자신들이 보기에 불쾌한 특정한 사안들에만 집중한다. 그것이 바로 성인지감수성이다. 성적인 대상으로서 여성에 대한 예우다. 여성을 성적으로 보호해야 한다. 그것만이 오로지 절대의 가치다. 그렇기 때문에 법조인으로서 그가 살아온 궤적보다 성범죄에 대한 변호가 더 중요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여성이란 그렇다면 과연 무엇일 것인가. 앞서 괜히 쓸데없이 길게 끄적여 놓은 서두가 바로 그를 말하기 위함인 것이다.

 

여성의 정조는 보호되어야 한다. 여성은 오로지 성적으로만 보호되어야 한다. 여성이 기자로서 가져야 할 직업윤리보다 여성이라는 성적인 대상으로서의 위치에만 집중한다. 성범죄라 여기는 사안에 대해서 개개인의 여성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양심과 판단보다 같은 성적인 존재로서의 동의만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의 딸이고 누군가의 아내인 여성의 신분은 더욱 무엇보다 중요할 수 있다. 단지 자신들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여성의 성범죄에 대한 고발을 부정하고, 심지어 남성인 상급자를 움직여 징계하려는 시도들은 그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들인 것이다. 그들의 여성주의에는 여성이 없다는 이유인 것이다.

 

역시 오래전에 했던 이야기다. 여성의 지위가 낮을수록 창녀의 지위는 오히려 높아진다. 말한대로 여성이란 단지 자궁이기에 이미 결혼한 여성을 존중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후계자까지 이미 낳았다면 더이상 그 필요와 쓸모를 다한 것이나 다름없다. 어디서 누구와 바람나든 내 핏줄에 정체도 알 수 없는 다른 핏줄을 섞는 것만 아니면 뭘하든 내가 상관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굳이 자궁으로써가 아닌 여성 그 자체로서 자신의 욕망을 투영할 수 있는 창녀가 이미 배우자로 있는 여성보다 더 가치있을 수 있는 것이다. 황진이의 경우처럼 역설적이게도 자궁으로서의 가치가 없기에 그녀들은 온전히 여성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 또한 남성의 일방적인 선택에 의한 결과다. 그리고 그 선택을 받기 위해 여성들은 더 많은 노력을 하고 경쟁도 해야 한다. 다른 경쟁자를 제거하고 더 나은 주인을 선택해야 한다. 과연 과거의 그같은 여성의 현실과 지금 여성주의자들의 주장 가운데 위상학적으로 다른 부분이 얼마나 있을 것인가. 

 

한국 여성주의를 혐오하는 이유일 것이다. 혐오한다기보다 경멸한다. 남성과 대등해지기 위한 여성주의가 아니다. 오히려 여성을 수단으로 삼아 자신의 지위를 쟁취하기 위한 여성주의에 더 가까울 것이다. 성적인 대상으로서의 여성을 도구로 삼아 그를 이용해 자신의 목적을 이루고자 한다. 그래서 나온 것이 성인지감수성이었고, 그리고 지금도 터져나오는 선택적인 여성주의자들의 분노다. 성범죄는 단지 그를 위한 수단일 뿐이다. 존중할 이유가 있을까? 딱 2찍 진보들 수준인 것이다. 그래서 수박들인 것이었고. 역사는 전혀 발전하지 않았다. 최소한 한국 여성주의자들에게는. 그것이 그들의 여성이다. 

사람의 감정이 어떤 때 극대화되느냐면 미생일 때다. 완결이 지어지지 않았을 때다. 그래서 나오는 말이 바로 카타르시스다. 감정이 고조되다 못해 결말을 통해 해소되었을 때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는 후련함마저 느낀다. 그러고 나면? 그 다음은 찝찝함이다. 좋은 것도 반복되면 질린다. 좋은 일도 계속되면 결국 지친다. 슬픈 것도 지루해지고, 기쁜 것도 지겨워지고, 행복한 것도 고통이 된다. 그래서 대부분 인터넷에서의 이슈라는 것도 해소되지 않은 어떤 사안들에 대한 감정들의 난류인 경우가 많다. 해소되지 않은 감정들이 들끓다 보면 그 안에서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조국혁신당이 지금 돌풍을 넘어 아예 폭풍으로 번져가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여전히 검찰은 조국일가족을 수사하고 있고, 재판부마저 그런 수사내용에 대해 유죄판결로써 호응하고 있음에도, 더구나 정치권이며 언론, 지식인사회에서까지 나서서 계속 불을 지피고 있는데 오히려 조국혁신당의 지지율만 계속 오르고 있는 이유인 것이다. 이건 해도해도 너무한다. 심지어 조국 당대표에 대해 그동안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던 2030 남성들 사이에서도 나오는 반응이다. 그러니까 조국 대표와 그 부인, 그리고 아들과 아내까지 모조리 수사대상에 오르고 기소까지 되어 유죄판결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범죄자가족이라고 낙인찍기보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 해야 했는가 동정론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윤석열 처가나 전현직 검사에 대한 수사는 전혀 이루어지지도 않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결국 검찰이 법과 정의를 위해 수사한 것이 아니라 단지 보복을 위해 한 집안을 집어서 신상털기를 했을 뿐이라는 인식이 번져가는 것이다. 설사 잘못한 것이 있었어도 이런 정도까지는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자식이 있는 부모 입장에서, 혹은 부모를 둔 자식 입장에서, 배우자를 두고 있는 부부라면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는 심한 것 아닌가. 아예 집안이 풍비박산나고 자식의 앞길까지 막아 놓은 상황을 보면서, 기어이 그 자식들까지 감옥에 보내려는 모습을 보면서 이건 인간적으로 너무 나간 행동이라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 2찍 진보 새끼들이 저쪽 부류와 닿아 있다는 것이다. 그런 동정론에 예외가 있다면 바로 2찍 진보 새끼들이다. 감히 검사님이 수사하는데 무고함을 주장하는 자체가 불경한 것이다. 여론이 잘못했다 하면 그저 납쭉 엎드려 아예 뒈지는 것에 양심이고 정의인 것이다. 그래서 그 새끼들 지지율이 지금 저 모양인 것이다. 대중의 보편적 정서와 한참 떨어져 있으니까.

 

즉 적당히 정권 잡고 나서 대충 조국 대표나 부인만 처벌하는 선에서 그쳤으면 아직도 조국 대표나 가족들이 욕먹고 끝났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별 사소한 부분까지도 언론을 동원해 바람을 잡고 꼬투리를 잡아서 수사하고 기소까지 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깨닫게 되었다. 더구나 윤석열 자신이나 한동훈의 가족들이나 검사들과 관련한 여러 의혹들에 대헤 전혀 수사도 않고 오히려 사실을 은폐하려고만 하는 모습에서 그 의도를 의심하고 그 정도에 대해 다시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면서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감정을 다시 일깨우게 된다. 원래 어지간히 심각한 범죄를 저질러도 부부를 모두 감옥에 보내지는 않는다. 심지어 자식까지 수사해서 처벌하는 경우는 없다. 그런 정도를 넘어선 행위들이 그래서 오히려 역풍을 불러오는 것이다. 이제는 차라리 조국 대표나 가족들을 동정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조국 대표의 가족들의 신상과 관련해서 여전히 검찰로부터 받아서 이슈를 만들어내고 있는 기자들이야 말로 조국혁신당의 지지율에 혁혁한 공로를 세우고 있다고 봐야 하는 것이다. 기자새끼들이야 그럴 의도가 아니었을 테지만 이제는 대중도 지친다. 질린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심지어 유튜브에서 홍삼을 광고했다고 수사한다는 기사에 대해서는 이 새끼들 진짜 제정신인가 싶다. 약혼한다는데 그것마저 지랄하는 것 보고서는 기자새끼들 기사에 반응하는 자체가 우스워진다.

 

아무튼 조국사태가 남긴 교훈 중 하나일 것이다. 2찍 진보새끼들이 주장하는 인권이란 선택적이고 선별적인 인권이다. 김학의의 인권은 보호되어야 하지만 조국 대표의 가족들은 그 대상에서 예외가 된다. 심지어 자기가 무고하다고 주장하는 것마저 조리돌림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손석희는 그래서 구제하지 못할 버러지새끼인 것이고. 그 아들네미 기사 쓰는 것 보니 딱 견적 나오더만. 집안에서 평소 하고 다니는 꼬라지가 딱 그런 수준이었던 것이다. 방송만 보고 오해한 내가 오히려 미안할 뿐. 기자가 만든 것이다. 검찰이 만든 것이고. 대중은 그에 반응한다. 차라리 조국을 응원하고 지지하겠다. 그게 딱 윤석열과 한동훈의 정무감각의 수준이다. 지랄이다.

내가 이전까지 언론인으로서 거의 절대적으로 신뢰하던 손석희를 사람 이하의 버러지새끼로 인식하게 된 계기는 별 것 없다. 조국사태 당시 정경심 교수가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뉴스에서 시간까지 따로 할애해가며 비난하는 것을 실시간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모든 개인은 자신에 대한 불리한 주장에 대해 자신을 방어할 권리가 있다. 자기에게 위해가 될 수 있는 모든 행위에 대해 자신을 지키기 위한 수단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그것은 인간이기 이전에 살아있는 존재로서 당연히 가져야 하는 기본권인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부정했다.

 

저놈들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일 것이다. 일제강점기 일본 형사나 그 앞잡이들이 독립운동가를 체포하면 일단 고문부터 했다. 재판을 받기 전에 가둬놓고 고문으로 자백부터 받아냈었다. 그래도 되는 것은 범죄자니까. 불령선인이니까. 그러고 나서 형식적인 재판을 통해 형을 살게 했는데 감옥에 있는 동안에도 고문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일본제국주의의 방식을 물려받은 해방 이후 권력자들은 최소한의 요식적인 절차도 없이 빨갱이라고 학살부터 저질렀었다. 너 빨갱이냐 묻지도 않았다. 빨갱이라면 빨갱이라고 있단 쏴 죽이기부터 했었다. 그나마 전쟁이 끝나고 나서는 다시 재판이라는 형식을 빌리긴 했지만 그렇다고 달라진 것은 없었다. 일단 붙잡으면 고문부터 하고 자백부터 받아낸 뒤 요식적인 절차를 거쳐 처벌한다. 그 어디에 개인의 인권이 존재하는가.

 

성폭행범으로 기소되었다 할지라도, 아니 설사 실제 범행이 밝혀져서 유죄로 판결되었더라도 시민으로서 개인이 가지는 권리 자체가 아주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교도소 안에서도 최소한의 지켜야 할 인권 정도는 보호될 수 있어야 한다. 재판과정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재판에서 피의자가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변호사의 도움을 받는 것은 근대사회라면 당연히 지켜져야 하는 상식이고, 바로 그것이 근대사법체계의 근간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변호사를 선임할 여건이 안되는 피의자를 위해 나라에서 세금까지 들여가며 국선변호인이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돈이 없어 변호사를 선임할 수 없는 사람들조차 나라에서 도와주어 최소한의 방어권은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특정한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라 해서 그같은 권리를 제한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방어권 자체는 제한하지 않더라도 그를 도운 변호사들의 공직진출을 아예 차단하려 한다. 더 크고 더 높은 곳을 바라는 야망이 있는 실력있는 변호사는 특정한 사건에 대해 아예 변호를 포기하도록 만드는 장치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과연 근대의 사법체계나 천부인권에 있어 적절한 판단이며 행동일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웃긴다는 것이다. 김학의에 대해서는 검찰이 이미 무혐의처분을 내렸다며 그 절차의 정당성을 문제삼아 대통령에 대한 사법처리까지 언급하던 2찍 진보 새끼들이 정작 자신의 의뢰인을 위해서 무죄를 주장했다고 이제와서 공격한다는 자체가 그 의도를 의심케 하는 것이다. 변호사로서 재판을 수임했으면 자신의 의뢰인이 주장하는대로 무죄를 입증하거나 최소한 감형을 받을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 기울이는 것이야 너무나 당연한 직업윤리이기도 한 것이다. 범행을 저지르기는 했는데 감형사유를 찾으려는 경우가 아니라 아예 그런 사실 자체가 없었다 주장한다면 의뢰인을 위해 그런 방향으로 변론을 진행하는 것이 문제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오히려 문제다. 아, 그래서 학폭피해자인 의뢰인을 아예 내팽개치고 재판출석조차 않았던 특정 변호사가 그쪽과 어울리고 있는 것일까? 변호사는 오로지 변론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만을 변론한다. 그것이 그들의 인권수준이고 현대사법체계에 대한 인식 수준이다.

 

아마 변호사들 과거 수임한 사건들 뒤져보면 아주 재미있는 결과가 나올 것이다. 지금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있는 변호사, 혹은 검사, 판사들 과거 사건들 뒤져서 조수진 변호사를 비판하는 그 기준을 적용시켜보면 재미있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법조인은 아예 국회 근처도 가지 말라는 주장만 나오고 말 것이다. 그런 것이니까. 그러면 몰라서 그러느냐? 모른다면 더 개새끼들이다. 무식한 게 아니라 사악한 것이다. 그 뿌리를 다시 더듬게 된다. 그같은 주장들은 어디서 기원하는가. 말했잖은가? 한국 페미니즘이 어디서 비롯되었는가. 김활란이 있었고, 박마리아가 있었고, 그리고 모윤숙에서 비롯된 YWCA가 있었다. 당연히 2찍 진보 가운데도 집안도 먹고 살만하고 학벌도 제법 괜찮아서 진보놀음하는 게 그리 부담이 되지 않는 놈들이 태반이다. 그런 놈들 뿌리 거슬러 올라가 보면 거의 비슷하다. 왜 2찍 진보 가운데 뉴라이트와 같은 친일매국적인 역사관을 탈민족이라며 주장하는 놈들이 그리 많겠는가. 일제강점기가 계속 되었다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에서 더 큰 풍요와 더 많은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아닌 조선총독부에 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일본제국주의 조선총독부의 정통을 이은 국가다. 실제 2찍 진보새끼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20세기 말부터 21세기 초까지다. 그러다가 페미니스트에게 찍혀서 낙인찍히고 쫓겨난 놈도 알고 있다. 

 

손석희가 원래 그런 부류였다는 것이 아니다. 그런 놈들과 어울리다 보니 물들은 것이다. 나쁜 놈은 그냥 나쁜 놈이니 변론도 재판도 필요없다. 그냥 죽창이다. 모아놓고 쏴죽이고 파묻어 버리는 것이다. 그게 빨갱이 불령선인에 대한 합당한 처분이다. 그런 인권의식이 조국 지금 조국혁신당 대표와 그 가족들에게까지 적용되었었다. 심야에 남성들이 여자 혼자 사는 집에 쳐들어가 다짜고짜 초인종을 눌러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생물학적으로 여자라는 기자년들이 떠들던 소리다. 그 뿌리가 어디 가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박근혜를 지지하면서 탄핵에 반대했었겠지.

 

저놈들을 사람취급해서는 안된다는 이유다. 내가 2찍 진보를 오히려 수구보다 더 혐오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그나마 수구새끼들이야 말과 행동이 일치하기라도 하지 이 새끼들은 때와 장소 사람을 가려가며 말과 행동이 바뀐다. 평소 그렇게 시민의 권리와 천부인권을 주장하던 놈들이 그를 부정하는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것도 그래서다. 결국은 그게 뿌리인 것이다. 진심인 것이고. 모든 인간이 같지 않다. 그러니까 저 새끼들도 인간으로 취급할 필요가 없다. 손석희가 버러지새끼이듯 여성단체든 2찍 진보든 그냥 똥이나 파먹는 똥버러지들이다. 사람새끼 아니면 들어줄 이유가 없다. 더러운 것들이다.

노무현 전대통령 임기 동안 아마 지지율이 10% 남짓 나오고 했을 것이다. 그나마 임기말에 열린우리당도 탈당하고 한미FTA도 추진하면서 보수층으로부터 지지율을 회복해서 20% 좀 넘게 나왔었던 것 같다. 굳이 찾아보지는 않았다. 하여튼 오만 놈들이 다 노무현을 까던 시절이라 그렇다.

 

노무현 전대통령이 당선되고 서청원이 방송에서 극좌파 정권이라 공격한 적이 있었다. 김대중도 빨갱이인데 노무현은 그보다 더한 빨갱이다. 더구나 학력도 고졸이었다. 내가 당시 알고 지내던 자칭 진보들 가운데서도 노무현 전대통령의 학력을 문제삼아 비웃고 조롱하던 놈들이 쌔고 쌨었다. 전여옥이 어느 언론사에 기고하면서 그래도 대학은 나온 대통령을 갖고 싶다고 썼던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민주화진영 내부에서도 원래 인권변호사로서 활동하던 지역이 부산이었다는 점 때문에 수도권에서 활동했던 그 주류들로부터 배척받고 있었다. 노무현이란 개인에 대한 국민적인 기대가 컸었기에 대통령도 되었고 열린우리당도 만들 수 있었던 것이지 이 사회 주류들에게는 처음부터 비토를 넘어서 혐오와 조롱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노무현 전대통령이 임기말에 열린우리당으로부터 사실상 내쫓긴 것이었다.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노무현 정부 시절 열린우리당과 대통령과의 관계는 한심 그 자체였었다. 오죽하면 그나마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노무현 지지자들 - 노빠들 다수가 야당인 한나라당보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을 더 혐오했을 정도였다. 그래도 대통령이 뭔가 하려 하면 여당에서 힘을 실어주고 해야 할 텐데, 워낙 대통령보다 더 잘났다는 인간들이 많았다 보니 허구헌날 대통령 들이받기가 일상이었었다. 김근태는 아예 대통령에게 계급장 떼고 토론하자 싸움을 걸었었고, 노무현 대통령의 정책을 비판하고 반대하는 기사는 열린우리당 소속 정치인의 입을 빌어 기사로 나오고는 했었다. 자기가 속해 있는 여당인 열린우리당에 자기가 원하는 어떤 방향을 제시하거나 행동을 요구하는 것도 어려워서 매번 곤란을 겪고는 했었다. 그때 열린우리당에서 노무현 전대통령의 의중을 당에 전할 수 있었던 인물은 기껏해야 유시민 한 사람 정도였을 것이다. 사실 그때 친노라 해봐야 노무현의 측근들은 총선에서도 거의 공천을 받지 못했었고, 뱃지를 달았던 인물도 유시민 한 사람 정도가 고작이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이후 열린우리당과 다시 합당하며서 지금 민주당의 또 하나 뿌리가 되었던 당시 민주당은 아예 노무현 탄핵을 주도했던 주체이기도 했다. 그래서 문제, 그러면 당시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안에서 노무현 전대통령에 우호적이었던 이가 몇이나 있었을까?

 

말했다시피 열린우리당에서 아예 쫓겨났었다니까. 대통령 지지율 낮으니 당의 지지율에 도움 안된다고 정동영과 김한길이 손잡고 압박해서 탈당하도록 강요했었다. 그런데 여당에서 내쫓기고 나니 지지율이 오히려 오르고 있었으니 누가 발목을 잡았는가는 명확할 것이다. 당에서 내쫓은 정도가 아니라 이후 정동영을 비롯한 당의 주류들은 당에서 노무현이란 존재를 지우고 노무현 정부와 선을 긋는데 아주 열심이었었다. 그래서 정동영에게 당시 붙여졌던 별명이 정곶감이었다. 좋은 것만 빼먹고 책임은 지려 하지 않는다. 자기들과 노무현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노무현 정부의 실정이나 실책들에 자신들은 아무런 책임도 없다. 노무현 전대통령이 잘못한 것이지 자기들이 잘못한 것이 아니다. 그러고서 아예 열린우리당도 깨버리고 다시 민주당으로 돌아갔었다. 민주당을 개혁하겠다며 열린우리당 창당을 주도했던 그 정동영이 앞장서서. 그런데 하물며 정권이 바뀌고 이명박이 검찰을 움직여 노무현 전대통령을 수사하고자 했을 때 과연 몇이나 그의 곁을 지켰었을까?

 

당시 민주노동당 출신들이야 원래 한나라당이랑 손잡고 어쩌고 하던 놈들이니 돌아볼 필요도 없다. 한겨레는 노무현 전대통령의 죽음을 두고 놈현관장사라는 아주 섹시한 제목을 뽑아서 유시민을 열받게 한 바 있었다. 내가 경향일보를 당시 즐겨 읽었던 이유도 노무현을 참 잘 깠기 때문이었다. 노무현이 수사받던 당시에는 진짜 와 인간적으로 어쩌면 저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조선일보보다도 더 모멸적으로 비하하고 비아냥거리는 기사를 수도 없이 쏟아냈던 곳이 바로 경향일보였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나 역시 그때 노무현을 많이 비판하던 입장이었으니까. 문재인과 비슷하다. 인간적으로 훌륭한 인물인 것은 맞는데 대통령으로서 나와 많은 부분에서 입장이자 지향이 다르다. 도저히 내가 지지할 수 없는 정책들을 많이 펴고 있다. 결과도 좋지 않았다. 그러니까 지지율도 10% 좀 넘게 나왔던 것인데 과연 당시 노무현 욕 한 번 안 한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말이다. 한 번 당시 노무현에 대해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의 발언을 모두 뒤집어 보면 결과가 어떻게 나올까?

 

노무현이 죽고 나니까 죄다 친노더라. 노무현이 그렇게 떠나고 국민들이 그를 추모하고 있으니 갑자기 전에 없던 친노들이 우후죽순 튀어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문재인이 당대표가 되고 대통령후보가 되었던 무렵 청와대에서 한 자리 했으면 죄다 친노라고 나오던 것과 비슷하다. 이철희가 문재인을 지지해서 정무수석이 되었던 것이 아니듯이 그냥 청와대에 자리가 있으니 갔었을 뿐인 인사들마저 죄다 친노라는 이름으로 노무현 전대통령을 등에 업은 채 나서고 있었다. 그런데 그놈들 노무현 전대통령 수사받고 언론에 의해 전국민적인 조롱거리로 전락했을 때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오죽하면 대북송검특검으로 원한이 있었을 박지원이 검찰의 정치수사에 대해 노무현 전대통령의 편을 들었다는 이유로 이후 재평가받고 있었겠는가. 고작 그런 정도였다. 마지막 가는 길에도 그의 곁을 지켰던 측근이랄 수 있는 인물은 유시민을 비롯해 몇 명 되지 않았다. 그런데 뭔 민주당에 이리 노무현 좋다는 인사가 많은가. 고민정은 그때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더라?

 

지금 민주당 지지율이 40% 좀 넘게 나오니 당시 기준으로 무려 20%넘는 지지자들이 당시 노무현 전대통령에게 최소 방관자적인 입장에 있던 인사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아주 오래전 노무현 전대통령에 대해 안좋은 감정을 드러냈다는 이유로 조리돌림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그때 노무현 전대통령 욕한 것 다 헤집어 찾으면 자유로울 수 있는 인간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언론이 나서고 있다. 조선일보는 물론이고 한겨레와 경향이 노무현 가지고 지랄하면 진짜 염치도 양심도 없는 것이다. 괜히 노무현 죽고 한겨레 편집부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는 말이 도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가장 힘들고 외로울 때는 곁에 아무도 없더니만 죽고 이름을 등에 업을 수 있으니 그렇게 측근들이 넘쳐난다. 노무현 팔아서 정치하던 놈들이 나중에 문재인을 파는데 그런 놈들이 정작 대선에서는 아예 지라고 손놓고 있었으니 웃기는 것이다. 그놈들이 과연 진짜 노무현을 좋아하고 문재인을 따라서 친노이고 친문이었겠는가.

 

아무튼 오죽하면 당시 가장 인기있는 유행어 중 하나였었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하다못해 명왕성이 태양계 행성에서 퇴출된 것도 노무현이 대통령이라서였다. 그만큼 인기없는 대통령이었고, 그때 노무현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조롱과 비아냥을 쏟아냈어도 그만큼 당연하게 여겨졌을 것이란 뜻이다. 그리고 노무현 전대통령 역시 대통령으로서 욕을 먹는 것도 자신의 정치적인 책임 중 하나라 여기던 인물이었고. 욕할 사람이 없으면 대통령이라도 욕해야지. 그렇다고 모든 정책을 잘 폈느냐면 그것도 아니니 반대하는 입장도 있을 수 있다. 시간이 너무 흐른 때문이다. 집단적인 기억상실증일 것인가. 언론이 노무현 폄하발언이라며 지랄하는 꼴이 더 웃긴다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이 새끼들은 진짜 양심도 염치도 없다. 그러니 언론종사자다. 좋은 기자는 역시 뒈진 기자새끼들 뿐이다. 

정당이란 결사체다. 자연적인 집단이 아니다. 동일한 정치적 성형과 지향과 목적인 가지는 개인들이 모여 그것을 이루기 위한 행동을 하고자 인위적으로 모인 집단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정당의 구성원 가운데 그 원래 취지인 공동의 지향과 목적에 위배되는 행동을 하는 이들이 나온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간단하게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해 일해야 하는 정의연의 회원이 위안부는 없다고 주장한다. 혹은 여성단체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인물이 인구감소를 해결하기 위해 성폭행과 일부다처제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니면 남성인권단체에서 여성의 지위와 권리를 위해 남성이 더 양보하고 희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거 보수정당에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인사들이 여럿 영입되어 배지도 달고 했었음에도 지금 그 이름조차 아예 잊혀지고 만 이유와 같을 것이다. 아무리 다양성이 중요하다고 경제발전을 위해 그린벨트고 천연기념물이고 다 밀어버리고 콘크리트로 쳐발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인간을 환경단체에 남겨둘 수는 없는 것이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별로인데 보수유권자나 혹은 보수적인 중도층이 보기에 괜찮다면 원래 그런 쪽 사람이기 때문인 것이다. 민주당 지지자들과는 오히려 전혀 맞지 않고 보수정당에 더 걸맞는 인재이기에 그리 보이는 것이다. 실제 민주당에서 그렇게 말많고 시끄럽던 조경태가 국민의힘 가서 얼마나 조용한가 보라. 자기와 맞는 곳을 찾아가면 자연스럽게 불평과 불만도 사라지고 더 자기가 소속한 정당에 충실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반면 처음부터 자신과 맞지 않는 곳에 있었기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분란도 일으키고는 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찌해야 하는가. 더 좋아하는 쪽으로 옮겨가면 된다.

 

당장 금태섭이나 양향자만 봐도 좋게 나간 것은 아니지만 민주당을 나가고 나서 얼마나 편하게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하면서 지내고 있는가 말이다. 하는 말이며 행동 자체는 크게 달라진 게 없는데 그만큼 더 편해지고 여유로워졌다. 그리고 결국 자신들이 원하던대로 보수에서 떨어져나온 이준석과 합류해 자기 자리를 찾아갈 수 있었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더이상 민주당 이름 걸고 자기들을 화나게 하는 말이며 행동들을 하는 것을 보지 않아도 되니 기분이 좋고, 나간 당사자들도 누구로부터 크게 비난받지 않으면서 하고 싶은대로 말하고 행동할 수 있으니 좋다.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 해당 정치인의 말이며 행동들이 마음에 들었다면 마땅히 그를 영입해 데려가는 것이 서로를 위해 좋은 일인 것이다. 민주당 지지자는 싫어하는데 보수 지지자가 좋아하는 이를 괜히 민주당에 남겨두기보다 서로가 좋도록 더 좋은 곳으로 데려가는 것이 모두를 위해 행복할 수 있는 길인 것이다.

 

보수지지자들이 좋아하기에 외연을 위해서도 남겨두어야 한다. 민주당 지지자들을 불편하게 하지만 다양성을 위해 용인해야 한다. 좋아하기는 보수지지자들이 더 좋아하는데 외연과 다양성을 위해서 민주당 지지자들이 희생하며 끌어안아야 한다는 주장은 얼마나 모순적인가 말이다. 원래 태어나면서부터 민주당인 것도 아니었고, 민주당이란 정체성이 평생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 것도 아니며, 민주당을 벗어나서는 살 수 없는 것도 아니다. 대한민국은 정당의 가입과 탈퇴에 전적인 자유가 주어지고 있다. 누가 언제 어느 정당에 입당하고 탈당할 것인지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고 누구도 그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다만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혹은 책임있는 위치에 있는 이들에 대해서 일정한 제약을 가할 수는 있다. 그러나 어차피 보수지지자들이 더 좋아하는 정치인이지 않은가.

 

보수지지자들이 더 좋아하는 박용진을 민주당에 남겨두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주장에 코웃음을 치는 이유다. 민주당 지지자들이 그리 싫어하는 말과 행동만 보여 왔는데 민주주의니까 끌어안아야 한다. 민주주의니까 당원 전체의 의사로 최소한 책임과 권한이 있는 위치에는 올리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같은 이유에서 보수지지자들이 좋아하는 정치인들만 열심히 편들고 있는 한겨레는 과연 진보언론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보수언론과 지식인, 정치인들이 좋아할만한 사실들만 가지고 민주당을 비판하는데 열심인데 그것을 진보적인 성향에 의한 것이라 주장할 수 있을 것인가. 심지어 외국인혐오와 여성혐오, 특정세대에 대한 혐오에 기반한 이준석의 정치마저 찬양하던 곳이 바로 한겨레인 것이다. 이제는 마땅히 한겨레도 보수로 놓아 주어야 한다. 경향일보야 이미 오래전에 자신의 친검찰 친기득권 성향을 인증한 바 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지지자들이 열린우리당에 바라던 것들이었다. 그래서 열린우리당 지지자 가운데 상당수가 선거에서 민주노동당에 표를 주었던 것이기도 했다. 이후 선거 때마다 민주당 지지층에서 진보정당 투표가 나타난 이유였다. 그러니까 보다 왼쪽에 있는 진보정당이 보수일변도인 거대양당과 정부를 보다 진보적인 방향으로 견인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도 보수정당을 지지할 수는 없으니 민주당을 지지하기는 하는데 하는 짓거리가 너무 한심하다. 심지어 박근혜가 당대표로 있는 동안 정당의 시스템 자체만 놓고 보면 한나당, 새누리당이 민주당보다 더 선진적으로 여겨질 정도였었다. 보수정당의 대안으로서 보다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정책과 법안들을 앞세워 대한민국에 또다른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는데 허구헌날 끌려만 다니다 기회만 되면 야합하기에 바쁘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오히려 중도적인 입장에서 두 거대양당을 조율해야 할 대통령이 앞장서서 개혁아젠다를 던지고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과 야합해서 그를 막아서는 상황이 거의 반복되다시피 했었다. 대통령이 약속했던 개혁들은 오히려 여당인 열린우리당에 의해 거의 저지되고 정작 대통령만 극단적이라는 오명 아래 지지율이 추락하고 있었다. 저런 새끼들을 내가 지지해야 하는가? 그래서 보다 선명한 진보적인 정책들을 앞세운 진보정당에 기대를 걸고 표를 주는 사람들도 나왔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 민주노동당이 정작 국회로 들어와서 누구와 손을 잡았더라?

 

민주당 지지층의 진보정당 투표는 노무현 정부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그래도 이전까지는 진보정당에 대한 순진할 정도의 기대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당시 민주노동당의 득표율이 꽤 나오기도 했을 것이다. 민주노동당에 투표하면 보수정당에 맞서 이 나라를 보다 진보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대안이 생기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존재가 민주당을 보다 진보적으로, 나아가 한나라당과 차별되는 보수로 자리잡도록 해 줄 것이다. 그런데 그 민주노동당이 수구인 한나라당과 손잡고 노무현 정부를 공격하는데 앞장서고 있었다. 아마 아직도 진보에 기대를 걸고 있는 대부분은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의 지지율 추락에 대해 노무현 정부에 책임을 묻고 있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실패했으니 진보정당들도 지지율이 추락했다. 그런데 어째서 이후 진보정당들은 그때의 지지율을 다시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진보정당에 투표해도 이 사회의 진보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방해만 된다. 그나마 심상정과 노회찬이 민주노동당을 박차고 나와 진보신당을 만들었을 때든 새롭게 기대를 가지기도 했었다. 유시민까지 합류해서 통합진보당을 만들었을 때도 이전과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가 생겨나고 있었다. 주사파놈들과 결별하고 다시 정의당으로 떨어져 나왔을 때도 유시민이 있으니 그래도 기대할 만하지 않을까. 그러나 결과는 공수처법에 반대하고, 문재인 탄핵을 언급하며, 국민의힘을 노동존중의 정당이라 찬양하는 국민의힘 전위대의 모습인 것이다. 김학의 출국금지시켰다고 이성윤 고검장의 승진에 반대하고, 수명 다한 원전을 가동중단시켰다고 국정감사에서 따지겠다는 것이 당시 정의당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최저임금인상도, 근로시간 단축도, 대체공휴일도, 중대재해법도, 모두 자기들 입맛에 맞지 않는다며 반대하고는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만 공격했었다. 중대재해법을 두고 그렇게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를 공격하던 놈들이 정작 국민의힘에 대해서는 노동존중의 정당이라며 찬양하던 모습을 떠올려 보라. 2022년 대선에서도 심상정과 정의당은 오로지 이재명만 공격했을 뿐 윤석열 당시 후보의 공약에 대해서는 거의 전혀라 해도 좋을 정도로 비판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었다. 유권자로서 이런 모습들에 대해 어떤 판단을 하게 되었을까?

 

조국신당의 돌풍은 바로 그같은 기존의 진보정당에 대한 실망의 결과인 것이다. 보다 선명한 것을 바란다. 보다 분명한 것을 바란다. 그를 통해 대한민국을 보다 선명하고 분명한 방향으로 이끌어갈 대안을 요구한다. 그래서 개혁신당이나 새로운미래 같은 중도적인 위치의 정당들이 지리멸렬하고 마는 것이다. 중용에 대해서 쓰면서 말했었지만 중도란 반드시 둘 사이의 중간을 가리키지 않는다. 둘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또다른 지점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 이도저도 아닌 애매함보다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선명함과 분명함을 요구한다. 그쪽이 더 이해하기에도 받아들이기에도 쉽고 편하다. 돌이켜보면 그런 이유에서 국민의힘의 돌풍 역시 안철수가 주장한 새정치라는 아젠다가 큰 역할을 했을 터였다. 차라리 윤석열 정부에 대해 보다 분명한, 거대정당으로서 고려해야 할 여러 요소들을 아예 생각지 않는 과감하고 솔직한 태도와 입장들이 시민들의 흥미를 잡아끌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라면 최소한 다른 정당에서와 같은 답답함은 없겠다. 특히 민주당에 만족하지 못하는 보다 진보적인 성향의 유권자라면 말할 것도 없다.

 

말하자면 지금 조국신당에 대한 돌풍이라고 여길만한 시민들의 거센 지지는 어쩌면 원래는 정의당에게로 갔어야 지지일 수 있을 지 모른다는 것이다. 보다 왼쪽에서 보다 선명한 위치에서 보수정당과 맞서서 민주당을 보다 분명한 방향으로 이끌었어야 할 대안세력으로써 정의당이 누렸을 수 있는 지위를 지금 조국신당이 누리고 있는 것일 수 있는 것이다. 그만큼 그동안 민주당에 대한 답답함이나 목마름이 컸었는데 다른 대안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민주당을 지지해야 했던 유권자들이 다른 선택지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면 어째서 정의당은 그같은 선택에서 제외되고 있었는가. 민주당 2중대 싫다고 국민의힘 전위대 역할을 하던 과거를 돌이켜보라는 것이다. 이 사회를 보다 진보적인 방향으로 이끌어야 할 진보정당이 수구적인 정당에 힘을 실어주며 그나마 이루어지던 알량한 진보마저 다시 원점으로, 아니 아예 후퇴토록 만들고 말았다. 그런 정당이 과연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조국신당의 약진을 보면서 진보정당들이 반성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민주당에 대해 더 선명한 진보적인 색채를 띄기를 바라는 지지자들이 어째서 진보정당을 그 대안으로 여기지 않는가. 그나마 비례에는 진보정당에 표를 주던 유권자들이 아예 민주당이 주도한 연합정당에조차 표를 주기를 주저하고 있는가. 저 새끼들은 진보가 아니다. 이 사회의 진보를 위해 오히려 해악만 끼치는 놈들이다. 그래서 내가 한국 진보들을 노무현 정부 말기부터 자칭을 붙여 부르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자칭 대신 2찍이다. 수구진보다. 수구를 지지하고 수구를 지향하는 진보다. 심상정, 홍세화, 김규항, 강준만, 진중권, 기타등등등등... 그런 놈들을 지지하느니 차라리 조국신당을 지지하겠다. 모른다면 병신이고 안다면 씹새끼들이다. 물론 대부분은 병신씹새끼들일 것이다. 더불어 병신쌍년들이거나.

 

어째서 대중은 조국의 신당이 열광하는가. 어째서 심지어 조국신당의 지지율이 민주당을 앞서는 것으로 나오는 결과까지 보이고 있는가. 그런 점에서 선거에서는 연대하되 민주당과 합당은 없다는 조국의 천명은 크게 도움이 되고 있을 것이다. 민주당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민주당이 아닌 다른 대안을 필요로 한다. 그동안 민주당에 불만족하던 지지자들을 위한 대안일 터다. 오랜 기다림이다. 2찍 진보새끼들만 모른다. 자신들이 뭘 버리고 뭘 차냈는지. 한심한 것들이다.

중학교 때 국사시간에 배웠던 내용 가운데 화백제도가 민주주의의 시초라는 것이 있었다. 지금은 어떻게 수정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큰 맥락으로 보며 크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원래 의회라는 자체가 한 집단을 대표할만한 유력자들의 협의기구에서 출발했었으니까.

 

당장 로마의 원로원부터 그랬을 것이다. 원로원을 이루는 대다수는 결국 로마를 이루는 여러 집단들에 대한 태표성을 가지는 유력가문의 인물들이었다. 로마의 시민들이 투표해서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원래 태생이 그러하니 자연스럽게 그같은 지위를 부여받는 것이었다. 이후 등장한 여러 나라들의 의회도 다르지 않았다. 프랑스의 삼부회도 결국 귀족과 성직자, 그리고 부유한 상공인들에 의한 자기들만의 리그였고, 신성로마제국에서는 아예 제후와 도시의 대표들이 의회를 구성하고 있었다. 의회민주주의가 시작되었다는 영국에서도 제한된 선거권과 피선거권에 의해 어차피 될 사람만 되는 자리가 바로 의회의원이란 것이었다. 비슷하게 지금 일본 자민당을 떠올려 보면 좋을 것이다. 누구의 아들이라서, 누구의 사위라서, 어디의 영주이고 시장이라서, 얼마만한 땅과 자본이 있어서, 그리고 그들에 의해 그들의 입맛에 맞는 입법과 행정감시가 이루어지는 곳이 의회라는 공간이었다.

 

민주주의의 역사는 그같은 소수의 기득권이 독점하고 있던 의회의 권한을 시민들이 조금씩 빼앗아오는 과정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에는 부유한 도시의 부르주아들이, 그보다는 가난했던 더 많은 중산층 부르주아들이, 그리고 도시의 노동자와 농민들과 마침내는 여성들까지. 그러면서 더 많은 참정권을 가진 유권자들에 의해 그들의 요구에 맞는 인물들이 선출되는 과정으로 선거라는 제도도 바뀌어갔었다. 일정한 재산이 없어도, 타고난 신분이 없어도, 남다른 지위에 오르지 않고서도 누구나 도전할 수 있고 같은 시민들에 의해 선택받을 수 있다. 그렇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려야 했을까.

 

군사독재시절에도 국회는 있었다. 대통령도 어찌되었거나 간선제나마 선거를 통해 선출되었었다. 그럼에도 그것을 민주주의라 부르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주권자로서 시민의 참정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고, 시민들의 정치적인 의사 역시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1987년 6월 거리로 쏟아져나왔던 시민들이 요구한 것도 대통령 직선제로 바꾸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을 뒤집은 것에 대한 항거였었다. 내가 내 손으로 대통령을 뽑겠다. 내가 내 손으로 주권자로서의 권한을 행사하겠다. 그를 위해 우리 선배들을 그토록 많은 피를 흘려가며 독재정권과 싸웠던 것이었다. 내가 지금 86그룹들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 이유다. 그런데 그렇게 싸웠던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고 있으니.

 

전에도 말한 것처럼 원래 민주당의 역사는 토호의 역사였다. 지역유지들이 자기들 기득권을 지키겠다고 만든 것이 민주당의 전신인 한민당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이승만도 뛰쳐나가 자유당을 만들어야 했었다. 그런 것을 용납 못하겠다고 조봉암과 함께 나가서 진보당을 만들었던 젊은 정치인들도 나왔던 것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민주당의 주류는 그런 지방의 유력자인 지주와 자본가들이었고, 그들이 선택한 후보들 역시 조봉암이나 장면, 윤보선 같은 자기들과 같은 부류들이었다. 괜히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심지어 진보적인 인사들까지 환영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 아니었다. 이후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중앙의 강력한 권력에 맞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민주당의 그러한 경향은 더 강해지면 강해졌지 약해지지 않았었다. 김대중과 김영삼도 결국은 그러한 토호들과의 결탁을 통해 군사독재와 싸울 힘을 가질 수 있었던 인물들이었다. 어째서 김영삼의 선택에 부산경남이 한 번에 넘어가고, 김대중과 호남이 운명을 같이하다시피 했는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민주화 이후 여기에 민주화에 지분이 있는 인사들까지 더해졌다. 내가 민주당에 지분이 있고 민주화에 지분이 있으니 민주당은 내 당이다.

 

이른바 수박의 뿌리인 것이다. 예전에는 안개모라 불렸다. 안정적인 개혁을 위한 모임의 준말이다. 열린우리당의 개혁을 고비마다 막아서고 나섰던 이들이다. 결국에는 나중에 민주당과의 재합당을 주도하고 당권파가 되어 민주당의 분열을 야기하던 놈들이다. 나 아니면 당도 없다. 내가 아니면 민주당도 없다. 사실상 기득권을 지키고자 한다는 점에서 보수정당과 전혀 다를 것이 없는 민주당의 토호와 같은 놈들이다. 그런 놈들이 단지 민주화에 지분이 있다는 이유로 자기 영역을 보장받은 이른바 86그룹들이 더해졌다. 그러니까 민주당은 내 당이다. 어느 순간 지지자를 개좆으로 알기 시작한 게 아니라 원래 처음부터 민주당에 있어 지지자란 개좆이었다는 것이다. 민주화에 자기들이 공이 있는데 감히 다른 정당을 찍을 수 있겠는가. 자기들 아닌 보수정당에 표를 줄 수 있겠는가. 그러니 원래 자기들 것이라 당연하게 여기고 그저 공천만 받으면 된다고 쉽게 여겼던 것이었다.

 

한겨레와 경향 등 자칭 진보들이 민주당의 개혁에 부정적인 이유도 바로 그런 까닭에서라고 보면 된다. 아마 한 번 썼을 것이다. 어째서 저들은 민주당이 당원 중심의 정당이 되는 것에 저토록 적대적인 것인가. 자기들에게도 지분이 있다는 것이다. 그 지분을 자기들도 같이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에 있어 당원과 지지자란 그런 자신들을 위해 표를 주는 대상이자 객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당원과 지지자들이 아예 당의 주인행세를 하려 한다. 자기들을 배제한 채 자기들 뜻대로 당을 움직이려 한다. 용납할 수 없다. 그래서 노무현 때부터 저들은 노무현과 유시민이 주장했던 상향식 민주주의에 대해 적대적이었었다. 저들이 아직도 노무현과 유시민, 그리고 문재인에 이어 이재명까지 원수처럼 증오하는 이유일 것이다. 저놈들이 자기들의 민주당을 빼앗아가려 한다.

 

말하자면 원래 민주당이 당원의 것이었다가 수박들에 의해 빼앗긴 것이 아니라 원래 수박들의 것이었던 것을 당원들이 빼앗아 가져오는 과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원래 지역 유지인 누구의 아들이란 이유로 당연하게 의회의원이 될 수 있었던 것을 무지렁이 노동자 농민들이 자기들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다른 사람을 공천해서 당선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 이 지역의 의원 자리는 자기들 집안의, 혹은 자기들과 동류의 것이었는데 엉뚱한 사람이 와서 빼앗아가려 한다. 당연하게 피가 흘렀다. 수도 없이 죽고 죄인이 되어 쫓겨 다녀야 했었다. 전쟁도 일어났었다. 국민이 주권자인 민주주의 국가에서 유권자로서 자신이 지지할 정당에 대해 당연하게 요구할 수 있어야 하기에 정당이 자신이 의도하는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실력을 행사해야겠다. 그 결과 정당은 유권자인 당원과 지지자의 것이 된다. 당연한 것이지만 그로 인해 빼앗기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겐 전혀 당연한 것이 아니다. 그로 인한 혼란이었던 것이다. 노무현부터 시작된 20년 넘는 민주당 내부의 투쟁은. 

 

유시민이 민주당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 말한 이유였었다. 문재인의 혁신을 위해 수 만의 당원들이 민주당으로 몰려가야 했던 이유였었다. 그래서 수박들은 당원들이 직접 자신의 정당한 권한을 행사할 수 없도록 대의원제라는 제도를 고집했던 것이었다. 아직 민주당은 자신들의 것이다. 자신들의 것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지지자는 개딸이라는 이름으로 매도하여 배제하려 한다. 당원이 당을 마음대로 하려는 것을 당원독재라며 낙인찍어 거부하려 한다. 그것에 동참한 2찍 진보라는 것도 같은 무리들이다. 그래서 그들이 진보라 주장하는 정의당에 어디 상향식 민주주의가 있던가. 지난 총선에서도 드러났다. 정의당에 있는 것은 소수의 패거리정치 뿐이다. 그것을 민주당에도 바란다. 민주당의 수박들도 고집한다. 그래서 기나긴 싸움이 있었고 마침내 일정부분 마침표를 찍게 된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의 공천의 의미하는 바일 것이다. 당원에 의해 공천의 여부가 다수 결정되었다. 당원을 거스른 오히려 주류인사들이 당연하게 공천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아주 발작을 한다. 당원에 의해 배제된 인사들에 대해 오히려 반대편에서 아깝다고 안타까워하는 중이다. 그로 인해 피가 흘렀다. 배제되고 도태하는 자들이 나타났다. 그러면 그 결과는 무엇일 것인가. 앞서 굳이 길게 역사 이야기를 한 것이다. 소수의 유력자들에 의해 독점되던 의회권력이 시민 다수에게 개방되었던 것처럼 진정으로 공당인 민주당이 지지자의 것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혁명이라는 이유다. 피를 어쨌든 흘렸으니 유혈혁명이다. 문제삼는 놈들이야 원래 프랑스혁명도 마음에 안들어 하던 귀족놈들이 넘쳐났었으니. 그렇게 적아를 구분하면 된다.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가. 병신짓은 하지 말자. 당연한 다짐이다.

그러고보니 얼마전 통보가 갔던 것 같다. 전에 말했듯 회사 계약직 가운데 2찍이 있다. 아마 아직 20대일 것이다. 당연히 남성이다. 왜 윤석열을 찍었느냐 물으니 여가부폐지 때문이란다. 중국과 북한이 싫어서 찍었다 그런다. 그래서 최저임금이랑 근로시간은 상관없느냐 했더니 주휴수당 폐지가 오히려 옳아 보인다 대답한다. 주휴수당 폐지되면 월수입에서 30만원 넘게 까인다 그래도 그러는 것이 공정하다는데 할 말은 없다. 문제는 나름 공기업이다 보니 정부정책에 의해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인력을 감축하는 중이라는 것.

 

두 가지 방안이 나왔었다. 일하는 시간을 줄일 것인가, 아니면 사람을 지금보다 더 줄일 것인가. 나야 일하는 시간을 줄이는 게 더 좋지만 부양할 가족이 있고 하면 수입이 줄어드니 꽤 곤란해지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오죽하면 그렇게 되면 기대한 수입을 얻지 못하니 그만두어야 할 지 모른다는 사람마저 나온다. 그러니까 뭔 소리까지 나오냐면 그렇게라도 사람을 줄이는 게 옳다는 말도 여기저기서 들린다. 하지만 결국 노조와의 협상 결과 나온 결론은 모두가 짐작한 그대로다. 일하는 시간은 그대로 두고 가능한 인원을 더 줄여서 인건비를 아껴보자. 고용유연화를 지지하던 2찍 2030들의 주장을 비웃으며 하던 말들이 실제 현실이 된 것이다.

 

사실 정권이 바뀌기 전이었다면 그 친구도 일찌감치 무기직으로 전환될 수 있었을 터였다. 정권 바뀌기 전에는 어지간하면 무기직으로 전환해주는 경향이 있었으니까. 그때 일찌감치 무기직 된 사람들은 이번 감축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 정권 바뀌면서 회사의 정책도 바뀌어 어지간하면 무기직 전환을 안해주게 되었고 덕분에 인력감축을 위한 재계약중단  통보의 대상이 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궁금해진다. 대통령이 여전히 반중반북을 외치고 여가부도 폐지할 수 있다 말하는데 그 친구는 지금도 윤석열을 지지할까, 아니면 다른 정당을 선택하려 할까? 아니 지지여부를 떠나 아직도 최저임금인상과 근로시간단축, 주휴수당과 중대재해법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을까?

 

어쩌면 참 속편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자기 월급 깎이고 일하는 시간 늘어나고 해고의 위협에 항상 시달리면서도 여가부만 폐지하면 다 좋다는 것 아닌가. 당장 내 먹고 사는 것이 어려워지더라도 중국과 북한에만 적대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 아닌가. 이런 지지자가 있다면 정치하기도 그만큼 편해질 것이다. 나야 워낙 바라는 게 많아서. 아무튼 그런 이유로 재계약중단 대상이 되었더라도 그다지 동정하거나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어차피 직장이야 많고 지금 정부 하는 것 보면서 집에 들어가면 만족할 수 있을 테니. 그래서 부럽다. 세상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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