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사대부란 향촌에 자기 땅을 가지고 경작하면서 유교경전을 공부하던 식자층을 일컬었다. 대충 영국의 젠트리나 독일의 융커와 비슷하다 보면 될 것이다. 세습된 신분이라기보다는 일정한 정체성에 근거한 계층이라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처음 그저 경제적으로 독립된 지식인으로서 향촌사회에서나 영향력을 행사하던 그들이 중앙정부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은 다른 무엇보다 앞서 언급한 그들을 정의하는 정체성 그 자체가 근거가 되었었다. 마땅히 더 많이 배우고 익히고 알고 있는 이들이 천하를 위해서 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위치에 있을 수 있어야 한다.

 

양반이란 단순히 혈연에 의해 계승되는 신분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실제 조선 전기에는 아예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오른 이들만을 양반이라 불렀었고, 양반이 신분화된 조선후기에도 3대가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면 조상이 얼마나 잘났고 대단했든 양반으로서 그 신분을 인정받지 못했었다. 조선에서 유독 과거가 잦았던 이유이기도 했다. 집안에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없으면 신분을 잃어야 했기에 그 기회를 늘려주고자 꾸준히 이유를 찾아서 과거를 열었던 것이었다. 조선에서 음서가 크게 대우받지 못한 이유였었고, 한 편으로 지역사회에서 양반으로 인정받고 대우받기 위해서 대부분이 엄격한 도덕률을 지켜가며 살아야 하기도 했었다. 박지원의 양반전을 보면 양반으로서 살기 위해 지켜야 하는 규칙들이 얼마나 엄격하고 다양한가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신분이 양반이어도 정작 양반들 사이에서는 인정받지 못했고 통혼조차 어려웠다. 그것은 당색을 떠난 그들만의 기득권이기도 했었다.

 

해방 이후 유독 한국사회에서 교육열이 뜨겁게 일어났던 진짜 이유이기도 했다. 특히 판검사가 될 수 있는 사법시험이 무엇보다 중요했었는데, 그를 통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지배층에 단숨에 진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것을 일제강점기의 영향이기도 했었다. 아무리 차별받는 식민지의 백성일지라도 일정한 자격을 갖춰 법관의 지위에 오르면 일본인들과 대등하게 그들과 같은 위치에 오를 수 있었다. 이회창의 아버지가 그렇게 일제강점기 식민지 백성으로서 검사의 위치에까지 올랐던 이였다. 그리고 그들은 해방된 이후에도 여전히 법을 집행하는 위치에서 대한민국의 지배층으로 국민들 위에 군림하고 있었다. 어째서 사법시험을 폐지하겠다 하니까 젊은층들 사이에서 신분상승의 사다리를 치웠다며 반발하는 여론이 크게 일었었겠는가? 사법시험이란 단순히 법을 다루는 전문가를 시험을 통해 걸러내는 과정이 아닌 이 사회를 지배하는 신분을 만들어나는 통로라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현재도 유효하다.

 

진보를 자처하던 한겨레가 어째서 윤석열 이전부터 검찰과 그토록 유착해왔던 이유인 것이다. 한명숙 이전부터도 한겨레는 항상 검찰의 입장에서 그들이 읊는 정의만을 고스란히 대변해 오고 있었을 터였다. 정의당도 다르지 않았다. 정의당은 물론 녹색당과 그 주변에 존재하는 지식인 대부분이 마찬가지로 검찰의 편에서 개혁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당연히 대선에서도 윤석열을 때로는 대놓고 때로는 암묵적으로 지지했었고, 대선 이후에도 민주당만을 공격하면서 윤석열에 대해서는 최소한 침묵을 지키는 경우가 더 많았다. 심지어 민주노총이 간첩몰이를 당하는 와중에도 정작 민주노총 지도부조차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었다. 무엇이겠는가? 서울대다. 그것도 법대다. 심지어 사법고시에 합격한 정당한 자격을 갖춘 인물인 것이다. 그들이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것은 따라서 너무나 당연하다.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언하고 민주당이 탄핵을 시도햇을 때 정의당이 내놓은 첫 공식입장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재명의 대통령 당선을 막기 위해서라도 윤석열 탄핵은 최대한 늦춰야 한다. 

 

그동안 진보를 자처하던 2찍 지식인들이 민주당을 혐오하고 경멸하면서 보수정당과만 연대해 온 진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그들이야 말로 자격을 갖췄다. 비슷하게 좋은 대학 나오고 사법고시 합격해서 판검사에 변호사까지 됐어도 서울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벌열과 지방에서 농투성이와 다를 것 없이 사는 잔반은 이미 전혀 다른 신분인 것이다. 서울에서 여전히 권력과 가까이에 위치해 있는 벌열에 비해 향촌에서 그저 농투성이들 앞에서나 행세를 하는 향반나부랭이와는 절대 같이 어울릴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격이 있는 자신들 진보정당은 마찬가지로 자격이 있는 보수정당하고만 소통해야 한다. 민주당과 손잡는 것은 격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그러니까 민주당 2중대라고 하면 발작하던 2찍 진보들도 보수정당 선봉대라고 하면 전혀 어떤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민주당과 정책적으로 공조한 것이 있으면 어떻게든 나중에 반성하는 모습도 보이는데 보수정당과 공조한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문제의식도 느끼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하물며 같은 서울대에 법대에 사법고시까지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을 거친 법관들이라면 어떨까?

 

서울대 나오고 법대 나오고 사법고시 합격해서 검사까지 했는데 대한민국을 마음대로 지배하고 휘두르는 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무지렁이 국민들 몇 명 죽어나간다고 크게 문제가 될 것도 없는 것이다. 이재명이나 문재인 따위야 고작 가천대 경희대이지 않은가. 같은 서울대 출신이라도 고졸에 경희대 가천대 따위가 묻은 놈들은 서울대라 인정하기 싫을 텐데 하물며 자신이 그런 허접한 대학 출신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국가를 위해서도 그런 소수의 하찮은 희생쯤은 감수하고 정당하게 자격을 갖춘 이가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위치에서 국민들을 이끄는 것이 무엇보다 옳을 수 있다. 윤석열의 내란에 대해 문재인 정부에서는 그렇게 말도 많았던 2찍 진보들이 하나같이 입을 다물고 있는 이유인 것이다. 그리고 헌법재판소가 지금까지 선고를 미루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명백하게 잘못이기는 한데 그렇다고 책임을 묻기에는 윤석열의 자격이 너무 훌륭하다. 말 그대로 정당한 성골의 혈통인 것이다. 말 그대로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렀어도 그 책임을 묻기에는 그 출신이 너무 훌륭해서 망설여진다.

 

애초에 이 사회의 정의와 질서를 위해 법을 공부한 놈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은 물론 집안 전체의 부와 명예와 권력을 위해 청춘을 다 바쳐서 법을 공부했고 시험을 치러 합격했던 놈들이라는 것이다. 굳이 사법고시까지 보지 않았어도 서울대 들어간 대부분이 그런 이유에서 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목숨을 걸고 공부했던 것일 터다. 그것을 알기에 2030 남성들도 윤석열의 내란에 대해 그리 큰 죄가 아니라며 서부지법에서 난동을 부리는데 앞장서고 있었던 것이었고. 정당한 자격을 갖춘 이가 그에 걸맞는 신분과 지위와 권한을 누리는 것은 공정이라고 하는 자신들의 가치에도 지극히 맞아 떨어진다. 다만 그럼에도 대부분 법을 공부한 학자들이, 심지어 해외에서까지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 눈치가 보여 솔직하게 선고하지 못하는 것이 지금까지 미뤄지게 된 원인인 것이다. 마음같아서는 기각이든 각하든 하고 싶은데 그런 놈들 답게 당장 자신들의 선고에 대한 다른 이들의 판단이 어떨지 신경쓰고 눈치보인다. 

 

사실 그래서 마음을 놓고 있기는 하다. 헌법재판관들의 판단에 기걱이라면 그냥 윤석열을 다시 대통령 자리에 돌려놓으면 나머지는 윤석열이 알아서 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윤석열이 대통령 자리로 돌아가서 뭔 짓을 하든 헌법재판소가 신경쓸 일따위 없는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선고를 늦춰가면서까지 헌법재판관들이 그 책임을 대신 지고 있는 것은 그럴 수 없는 이유가 있기 때문인 것이다. 원래 자기 속내를 감추는데 익숙한 족속들이다. 그래서 때로 솔직하게 자신의 속내를 드러냈을 때 그 비틀린 내면을 엿보게 되는 경우도 많다. 대부분 학교 다니면서 경험해 보지 않았던가? 쓸데없이 공부만 잘하는 쓰레기들이란 대개 그런 경우가 많았었다. 아니기를 바라지만.

 

한 마디로 더이상 헌법재판소에 행정부를 견제하기 위한 입법부의 권한을 위임하여 판단하는 절차를 유지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시험을 통해 쟁취한 정당한 권한을 공유하는 이들 사이의 특권적인 카르텔이 확인된 이상 다수의 국민들의 판단에 의해 선택된 입법부의 권한을 온전히 그들에게 위임할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탄핵은 오로지 국회의 권한으로만 남기고, 그냥 국회가 탄핵이라는 선택을 한 것에 대한 책임을 선거라는 형태로 국민에게 묻는 방식으로 나가는 것이 어쩌면 지금으로서는 더 옳아 보이는 것이다. 대통령을 탄핵하면 당연하게 국회도 동시에 해산하고 대통령 선거와 동시에 현직 국회의원들에 대한 신임투표도 같이 치르도록 한다. 부당한 탄핵이었다면 대통령 자리는 물론 현재 자신의 의석까지도 잃을 위험을 감수해야 하도록. 탄핵 또한 오로지 주권자인 국민들에 묻어 결정한다.

 

어쩌면 다행이기도 할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선고를 빨리했다면 헌법재판소가 필요없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 힘들었을 테니. 지귀연 전까지만 해도 판사를 믿느냐 그러면 누구를 믿느냐는 반론이 돌아왔던 것과 비슷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지귀연 이후 판사를 믿느냐 물으면 그래도 좋은 판사도 있지 않겠느냐는 대답이 돌아온다. 원래 같은 놈들이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현대판 사대부들일 것이다. 그것이 옳다고 대부분 국민들도 믿고 있었지만 아니라는 사실만 드러나고 말았다. 안타깝지만 그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그 적나라한 실체를 드러내 보이는 중이다. 처참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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