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으로 근대 이전에는 동성애나 양성애, 혹은 성정체성혼란등이 없었을 것이라 믿고 있는 병신들이 의외로 많다. 당연히 그 대부분은 개독교회에 다니는 신자들일 테지만 아닌 놈들도 상당하다. 심지어 어떤 놈들은 민주당이 정체성정치를 하면서 원래 없던 것들을 실제로 믿게 된 결과 성소수자가 생겨난 것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면 진짜 어떤 놈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근세 이전인 중세, 즉 판타지세계에선은 성소수자란 존재하지 않았었는가?

 

그런데 이게 진짜 웃간다는 게 오히려 고대로 넘어가면 성소수자라고 하는 구분 자체가 의미없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대놓고 남성이 같은 남성을 사랑하고, 여성이 같은 여성을 사랑하면서, 때로 여장을 즐기는 남성이나 남장을 즐기는 여성의 경우도 실제 역사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신분도 높고 권력도 있고 돈도 많은 인사가 자기 취향에 따라 동성을 사랑하거나 혹은 이성의 행동을 따라하는 정도는 그냥 그놈들 하는 짓거리라고 대충 넘어가는 경우가 당시에는 더 많았다는 것이다. 하긴 에도시대 일본만 해도 중도라 해서 동성인 애인을 두는 것을 꽤나 특별한 취미처럼 여기고 있기도 했었다. 그같은 남성을 대상으로 하는 남창을 공공연히 운영하기도 했고, 그래서 바로 이 중도의 일본발음인 나카마에서 인터넷상에서 자신의 성별을 여성으로 속이는 남성들을 지칭하는 넷카마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었다. 그러니까 이것들이 실제 동성애자라서 동성과 사랑을 나누는 것인지 그냥 취향이 그래서 그러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거기다 실제 역사에서도 그리스의 도시국가 중 하나인 테베의 경우 신성부대라고 동성애자들로 이루어진 부대를 운영하기도 했었다. 각자가 전우애보다 더 끈끈한 애정으로 묶인 사이이다 보니 그 어느 부대보다도 단결력도 좋고 전투력도 훌륭했다 전해진다. 굳이 테베의 신성부대가 아니더라도 고대 그리스에서는 이미 성인이 된 남성이 미성년인 동성을 애인으로 두고 그를 후원하고 훈육하는 역할을 맡는 전통이 있어 왔었다. 심지어 인간적으로 미숙한 여성보다 지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훨씬 우월한 같은 남성과 나누는 사랑이야 말로 진정한 사랑이라 주장한 철학자마저 있을 정도였다. 그러고보면 중세 가톨릭 교회에서 동성애를 그토록 엄격하게 금기시한 이유부터가 그만큼 동성애가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현상이었다는 뜻도 될 것이다.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이면 굳이 신의 이름을 빌려가면서까지 금지할 이유가 없었을 테니. 

 

중세에 들어 많은 문화권에서 동성애를 금기시하기 시작한 첫째 이유는 역시 문명을 유지하는데 가장 중요한 생산과 상관없는 생식행위라는 점이 가장 컸을 것이다. 당장 집안을 물려받아야 할 자식이 동성애자라서 다른 이성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지 못하면 바로 대가 끊기게 되는 것인데 가문이 더욱 중요해지던 중세 이후 그런 행위를 용납할 부모나 그를 신하로 거느려야 할 군주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현대에도 동성애자들이 자신의 성정체성을 숨기고 이성과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은 상태에서 동성을 상대로 외도를 하는 일들이 심심찮게 토픽으로 보도되고는 했었다. 그런 점에서 가문을 물려받을 장남 이외에는 사실상 잉여로 여겼던 에도시대 일본에서 동성애에 대해 관대했던 것도 크게 이해 못할 부분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중국이나 한국이나 설사 집안은 물려받지 못했더라도 차남 이하에서도 더욱 많은 자손을 낳아 후손을 늘리는 것은 가문을 번창시키는 것으로 조상의 은혜에 보답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물려받은 것이라고는 몸뚱이 하나 뿐이라 할지라도 어떻게든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 가문의 일원을 늘리고 공동체와 국가에 있어서도 구성원을 늘려 집단을 번창시켜야 한다. 그런데 아이도 낳지 못하는 동성과 사랑을 한다? 이건 천륜을 어기는 행동인 것이다.

 

둘째는 앞서서 언급한 고대사회에서 이같은 소수성애들이 고귀한 신분들이 저지르는 사치스런 향락이나 일탈 정도로 여겨지고 있던 점도 이후 이를 도덕적으로 금기시하는 또 하나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지금 이른바 반PC들이 성소수자를 개인의 취향 정도로 여기면서 혐오감을 드러내는 그 원천일 것이다. 도덕적으로 타락한 사회에서 동성애가 나오고 성정체성의 혼란이 나타난다.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고 여자가 여자를 사랑하며 남자가 여장을 하고 여자가 남장을 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타락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원래 인간의 자연스런 본성은 그런 게 아닌데 그런 행위들을 저지르는 것부터 도덕적으로 타락한 것이니 엄격하게 금지해야 한다. 그럼에도 그런 경우가 끊이지 않았었기에 중세사회에서도 그를 단죄하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나타나게 된다. 중세에 동성애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있었는데 열심히 때려잡아서 없는 것처럼 보였을 뿐이다. 실제로 근세의 유명한 인물 중 하나인 프리드리히 2세부터 동성애자로서 결국 결혼도 않고 후손도 없이 죽고 난 뒤 왕위를 조카에게 물려주고 있었다. 역사상 후손을 남기지 못한 유명인 가운데는 그래서 의심받는 이들이 제법 된다. 그래서 철저히 사회로부터 탄압당해 왔으니 중세사회에 동성애는 없었다 단언할 수 있을 것인가?

 

아무튼 그래서 웃기는 것이다. 어떻게 판타지 세계에 바이섹슈얼이 존재할 수 있는가? 어떻게 중세유럽을 배경으로 한 게임에 동성애자가 등장할 수 있는 것인가? 그러면서 단언한다. 중세유럽에는 동성애가 존재하지 않았었다. 그럴 리가 있나. 그러니까 성소수자라는 것도 결국 근대가 만들어낸 발명품이다. 그냥 자연스럽게 없어질 수 있는 것을 미국 민주당이 괜히 PC한다고 만들어낸 것이다. 오바마가 흑백간의 인종갈등을 만들어낸 것처럼 민주당의 정체성정치가 실재하지도 않는 성소수자를 현실에 존재하도록 만든 것이다. 그들이 트럼프를 추종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 주장들이 과연 사실일 것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도 엄연히 궁녀와 사랑에 빠져 폐서인되었던 세자빈이 존재하는데. 성소수자가 실제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들에 대한 차별과 억압은 어떻게 나타나게 된 것일까? 뭐 이유가 필요해서는 아닐 것이다. 혐오에는 이유가 필요없다. 웃기는 것들이다.

한국에서 백설공주나 인어공주를 영화나 연극으로 만들면 당연히 주인공은 아시아인이어야 한다. 그러면 한국에서 백설공주나 인어공주를 드라마로 만들려면 백인 배우를 캐스팅해야 하는가? 그리고 미국은 트럼프 이전까지 백인과 흑인과 아시아인과 히스페닉이 공존하는 다인종국가였다. 그런데도 그런 다인종국가 미국에서 유럽의 원작을 영화로 만들면서 미국을 이루는 구성원 중 하나인 흑인과 히스페닉을 캐스팅했다고 멀리 바다건너 한국에서 개난리들이다. 원작은 어쨌다고 따질 것이면 원작이 있는 헐리우드 영화는 절대 봐서는 안된다. 언제부터 그렇게 원작에 충실해가며 만들었다고.

 

중세에는 성소수자가 없었는가? 트랜스젠더야 당연히 없었다. 성전환수술 자체가 최근에 와서야 가능해진 것이니. 하지만 중세에도 게이가 있었고, 레즈비언이 있었고, 바이섹슈얼이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을 봐도 하필 문종의 세자빈이 레즈비언이라 문제가 되어 폐비된 적이 있었을 정도였다. 단지 아들이 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프리드리히 2세를 성에 가두고 애인의 목을 그 앞에 매달았던 프리드리히 1세처럼 그런 소수성정체성에 대한 강력한 억압과 차별이 이루어졌을 뿐이었다. 그런데 중세를 소재로 한 게임에서 성소수자가 등장하니 말이 되지 않는다.

 

아무튼 그토록 반PC를 부르짖으며 트럼프에게 열광하는 한국 청년세대들 - 특히 2030 남성들을 위해 트럼프 대통령님께서 반PC가 무엇인가를 확실하게 보여주셨다. 미군의 역사에서 여성과 흑인과 히스페닉과 그리고 젠더와 관련한 모든 사항을 삭제하라. 당연히 그동안 미군에는 백인 뿐만 아니라 흑인과 히스페닉과 아시아인과 여성과 성소수자들도 복무했을 텐데 그들과 관련한 모든 기록들을 내려서 보지 못하게 하라. 심지어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린 폭격기 에놀라 게이도 게이라는 이름 때문에 사진을 지워야 한다 한다. 이 얼마나 위대하신 업적인가? 트럼프가 뭐를 하든 심지어 일론 머스크가 그렇다고 하니 독일의 극우정당도 빨아주던게 바로 그들 반PC 청년들이었을 텐데.

 

이게 바로 그들이 바라는 반PC의 결론이라는 것이다. 저런 것을 바라고 그들은 반PC를 외쳤던 것이었고. 그들이 주장하는 바는 한 가지다. 게임과 영화, 드라마, 만화 등에서 쭉쭉빵빵 잘생기고 잘빠진 백인만 보고 싶다. 아시아인도 백인을 닮은 아시아인만 보고 싶다. 그러니까 늬들 그냥 아시아 원숭이 새끼들이라고. 미국 반PC주의자들이 아시아인 앞세운다고 자기들이 명예백인 쯤 되는 줄 아는 모양이다. 하여튼... 역시나 트럼프가 트럼프했다. 반PC가 반PC하는 것처럼. 

문재인 정부에서 이미 드러난 바 있었다. 법원은 검찰을 자신들과 한식구라 인식했다. 같이 법도 공부하고 시험도 같이 치렀기에, 더구나 사법고시 세대는 사법연수원에서 생활도 같이 했었기에 당연히 검찰과 법원은 한 몸이다. 그러니까 검찰이 쿠데타를 일으켜 성공하면 법원에도 혜택이 있다. 그렇게 진심으로 믿는 놈들이 법원에도 한가득이다. 

 

검찰이 기소를 늦게 한 것이야 그놈들이 기술을 쓴 것일 테지만, 공수처의 구속영장청구를 위법하다 판단한 것은 역시 법원의 생각이 그쪽에 쏠려 있다는 증거인 것이다. 하긴 군사독재 시절 가장 열심히 정권을 위해 부역한 곳 가운데 하나가 바로 법원이었을 터다. 그러면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면 검찰에도 수사권이 없으니 그냥 구속하지 말라는 뜻인가. 공수처의 존재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검찰의 속내를 그대로 받아들여준 꼴.

 

민주당 안에도 내란에 동조하는 놈들이 저리 많다는 점에서도 윤석열 내란의 실패는 진짜 천운이라 봐야 할 것이다. 내란에 반대한 것은 지금 민주당 주류와 국민 과반 정도였었다. 그런데도 내란을 막아낼 수 있었으니 진짜 하늘이 도왔다 해야 할까. 법원 하는 꼬라지 보면서 실감케 된다. 저 새끼들도 한 번 뒤집어야 한다. 썩어도 너무 썩었다. 악취가 난다.

1990년대 특히 개신교 쪽에서 뉴에이지를 영지주의 음악이라고 공격하는 것을 보고 내가 의아해했던 것 중 하나가 개신교 자체가 바로 영지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는 종교이기 때문이었다. 

 

고대 기독교의 역사는 영지주의와의 전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초기 기독교 교회에서 영지주의의 영향력은 거의 절대적이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초기 기독교 교회들을 보면 교회마다 제각각 주장하는 교리가 달랐었다. 서로가 중시하는 경전도 달랐고, 그 경전에 대한 해석도 달랐으며, 그에 따라 기독교를 믿는 방법도 달랐었다. 그러니까 그런 서로 너무 다른 교회들을 아우를 수 있는 하나의 교리를 찾아서 정리한 것이 바로 가톨릭이라는 것이었다. 이놈도 저놈도 하는 소리가 너무 다르니까 기독교란 무엇인가 하나로 정리하고자 시도한 것이 가톨릭의 시작인 것이었다.

 

그러면 초기 교회는 어째서 교회마다 교리가 그렇게 달랐었는가? 영지주의라고 하는 자체가 세상에는 보통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비밀스런 진리가 숨겨져 있고 그것을 소수의 선각자들만이 알고 찾아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기독교의 경전 가운데서도 사람들은 모르는 진짜 진실이 숨겨져 있는데 그것을 소수의 선각자들 - 즉 주교들만이 제대로 이해해서 신자들에게도 가르쳐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가만 보면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내용이다. 그러니까 소수의 성직자들이 경전 가운데 암호처럼 남아 있는 비밀을 찾아내서 신자들에게 그 진실을 가르치고 인도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개신교의 시작인 것이다.

 

중세 교회에서 괜히 성직자가 아닌 신자 개인이 성경을 읽는 것을 금지했던 것이 아니었다. 개인이 성경을 읽으면 자기 주관대로 성경을 해석하려 할 것이고 그것은 곧 기독교 교리에 대한 오독과 오염을 낳게 된다. 그것은 곧 가톨릭 교회로 정리된 기독교 교리의 혼란으로 나아가 정통을 벗어난 이단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바로 그 이단이 영지주의다. 그러니까 가톨릭 교회의 해석에서 벗어난 자의적인 교리의 해석이 곧 영지주의이며 가톨릭 교회에서 말하는 이단이었던 것이다. 실제 이후 기독교에서 나타난 이단의 교리들이 그렇게 탄생하고 있었다. 그런데 근세 이후 나타난 개신교, 즉 프로테스탄트들은 가톨릭 교회의 권위를 부정하고 기독교 교리를 각자 독자적으로 해석하려 시도한 경우들이란 것이다. 가톨릭 교회가 아닌 자신만의 기준으로 성경을 해석하여 그를 교리로 삼고 신도들을 모아 현실에서도 실천케 했던 것이었다. 

 

현대 특히 한국 개신교 교회에서 많은 신자들이 기독교라고 하는 종교보다 목사 개인을 추종하는 경향이 강한 것은 개신교라고 하는 종교 자체가 그러한 태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기독교라고 하는 종교가 있고 성경이라고 하는 경전이 있지만 그 진짜 뜻을 이해하고 전파하는 것은 소수 성직자들인 것이다. 그 성직자들의 가르침을 통해서 신자들은 성경에 감춰진 진짜 구원의 방법을 찾아내고 현실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예수보다도 성경보다도 더 중요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신자들을 이끄는 존재라는 뜻으로 목회자라 부르는 개신교의 목사들인 것이다. 그러니 이미 전부터 영지주의에 대해 알고 있던 나로서 개신교가 영지주의를 공격하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개신교가 곧 영지주의일 텐데.

 

개신교가 말하는 개교회주의의 정체인 것이다. 개신교는 교회마다 독립되어 있다. 교회마다 목사마다 독자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한 마디로 어느 특정 교회에서 특정한 목사가 성경을 어떻게 해석해서 설교하든 그 목사 마음이고 교회의 재량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교단차원에서 그에 무어라 강제할 수 없다. 개신교라고 하는 종교의 이름으로 교회와 목사 개인에게 무언가를 강요할 수 없다. 그런 것치고 특정한 사안들에 대해서는 교단에서 목사 개인을 출교하기도 하고 징계도 마음대로 하는 것 같더만. 그러니까 교회마다 개신교는 교리도 다르고, 따라서 신자들도 그 교리에 따라 목사를 중심으로 모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신자라면 굳이 절을 고를 필요 없이 가고 싶으면 종파가 다른 절도 마음대로 찾아갈 수 있지만 교회는 자기가 원래 다니던 교회만 굳이 멀리까지 일부러 찾아가야 한다. 그래서 목사는 개신교회에서 예수의 대리인이며 사실상 예수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목사 개인을 쫓아서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실천까지 결정할 수 있는 이유다.

 

솔직히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래서 굳이 가톨릭이 영지주의를 탄압한 것에 대해 로마 황제의 세속적인 목적에 교회가 부역한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원래 교리란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 것인데 그것을 하나로 통일해서 강제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그런데 정작 개신교를 경험하면서 그같은 막연한 반감이 얼마나 터무니없이 어리석은 것이었는가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어째서 고대 로마교회는 그토록 영지주의를 경계하며 교회의 통합에 열심이었는가. 아니면 지금처럼 되었을 테니까. 한국 개신교교회야 말로 초기 영지주의 교회가 보여주었던 아싸리판의 재현일 수 있는 것이다. 지금 개신교 꼬라지 보고 있으면 이래서 교리는 하나로 통일되는 게 옳다. 저마다 다 제각각 개짓거리를 하면서도 그 개짓거리랑 개신교는 상관없다고 개신교회라고 하는 곳들마다 떠들고 있다 보니 책임을 물을 곳도 책임을 져야 할 곳도 모호한 진짜 아싸리판의 연속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꼬라지를 얼마나 지켜보고 있어야 하는가.

 

괜히 비개신교인들이 개신교는 교회가 아니라 목사를 믿는다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교회와 목사를 믿는 정도다. 원래 뿌리가 그렇기 때문이다. 그것이 개신교라는 종교의 실제 정체성인 것이고. 그래서 개교회주의인 것이다. 개같은 교회라서 개교회가 아니라 교회마다 목사마다 성경을 지 좆꼴리는대로 해석해도 상관할 수 없다 해서 개교회주의다. 교회와 목사 단위로 이루어지는 종교라 그래서 개신교다. 그러니까 왜 영지주의 욕하냐고? 내가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가톨릭이 영지주의 욕하면 이해나 하는데 왜 개신교가? 신천지나 개신교나인 이유이기도 하다. 둘 다 뿌리가 같다. 그래서 하는 짓도 같다. 그래서 지난 대선에서도 지금 탄핵정국에서도 신천지와 개신교가 보이는 행보가 같은 것이다. 사실상 같은 종교다. 어려울 것 없다. 그냥 원래 그런 종교인 것이다. 다름아닌.

그래도 며칠 전까지만 해도 김경수에 대해 동의는 못해도 이해는 해 주는 편이었다. 가장이지 않은가? 한 집안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으로서 그동안 제대로 돈벌이도 못했을 테니 가족을 위해서라도 때로는 원하지 않는 일을 해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가족에게 조금이라도 경제적인 혜택을 주기 위해서라도 자기 양심과 자존심, 신념, 가치, 지향, 추구등을 죽여야 할 필요도 있는 것이다. 남자가 가족을 위해 못할 일이란 없는 것이다. 그렇게 여겼었는데...

 

이재명 대표가 자기 체포동의안과 관련해서 민주당 내부에서 검찰과 내통한 세력들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니까 생각이 달라진다. 하긴 한창 윤석열 탄핵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에 느닷없이 나타나서 개헌부터 떠드는 꼬라지부터가 이해하고 싶어지게 만들기는 했다. 그야말로 윤석열 구하기이며 내란동조당인 국민의힘 구하기였다. 윤석열 내란에서 개헌으로 이슈를 돌리고 싶은 꽤나 필사적인 노력으로 비쳐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알고보니 민주당 내부에서, 아니 이제는 대부분 탈당했으니 원래 민주당 인사였던 이들 가운데 동조자들을 감싸려는 의도였었구나.

 

즉 윤석열 탄핵은 뒤로 미루고 개헌정국으로 이슈를 몰아감으로써 내란에 처음부터 동참했거나 이후에라도 동조했던 이들을 개헌의 파트너로써 테이블에 앉히고자 하는 의도인 것이다. 더이상 내란에 대해서 국민의힘이든 과거 민주당 인사이든, 지금도 당적을 가지고 있든 더 이상 따지고 묻지 말자. 내란이 아닌 친명과 비명, 반명으로 정국을 다시 짜자. 그러라고 사면받은 것이었을 테지만, 돈은 몰라도 사주는 누가 했는지 알 것 같다.

 

아무튼 남자란 참 이렇게 슬픈 동물이구나 새삼 깨닫게 된다. 하긴 나라도 부양가족 있고 부양할 수입을 보장해 준다면 태극기집회도 못 나갈 이유가 없기는 하다. 그래서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도 나오는 것이다. 당장 내 배가 고픈데 도덕이고 양심이고 법이고 가치고 정의고 질서고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김경수 앞세워서 참지 못하고 기어나오는 병신들은 뭐 말할 가치도 없다. 이번에 제대로 당겨서 가족 잘 부양하고 다른 직업 알아보기를 바랄 뿐이다. 가장이란 것이다.

아마 이 말 한 마디에 트럼프의 진짜 속내가 담겨있을 것이다.

 

"모든 나라들로부터 관세를 걷으면 소득세를 걷지 않아도 될 것이다."

 

트럼프와 일론 머스크의 행보를 보면 그 의도가 확실히 명확하다. 나라가 쓰는 돈을 줄이겠다. 무엇을 위해서? 재정적자? 하지만 그러면서도 정작 세금은 줄이겠다 말하고 있지 않은가? 정확히 걷는 세금을 줄이고 그만큼 적자가 심해지지 않도록 쓰는 돈도 줄이겠다. 여기서 방점은? 세금을 줄이겠다. 누구의 세금을? 이게 중요하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현대의 세제에서 당연히 돈을 더 많이 벌수록 더 비례해서 세금도 많이 내게 된다. 아니 그래야 한다. 조단위의 재산을 갖고 있는 입장에서 한 해 내는 세금의 액수를 생각하면 억울할 만도 한 것이다. 그러니까 내 세금을 줄이기 위해서 쓰는 돈도 줄이고 나아가 다른 세원도 찾아야겠다. 이를테면 관세. 

 

그래서 재미있는 것이다. 저렇게 자기네 동맹까지도 돌아보지 않고 관세를 때려대는 저 모습을 보고도, 심지어 이제 한국마저 그 대상으로 삼고 있는 상황에서도 트럼프 잘한다고 빨아주는 인간이 한국에 저토록 많다는 사실이. 다른 것 없다. 반PC 하나다. PC가 나쁘니까 반PC하시는 트럼프님은 옳은 것이다. 하긴 오바마는 극단적인 인물이고 트럼프가 합리적이라는 놈들이 중도를 자처하기도 하는 게 현실이고 보니.

 

트럼프와 일론 머스크가 그리고 공화당 정부가 하고 있는 꼬라지를 보라. 그렇다고 미국 민주당이 뭐라도 나았는가면 그놈들도 제대로 세금 안 걷으면서 정작 쓰기만 줄창 써대는 건 같았었다. 솔직히 조금 더 낫다고 하자면 트럼프가 차라리 낫다. 얘는 세금을 덜 걷는 대신 쓰는 것도 줄이자는 쪽 아닌가? 세금도 안 걷고 단기국채나 찍어대며 돈만 더 써제끼는 바이든보다야 이쪽이 더 합리적이기는 하다. 그래서 트럼프가 집권한 것이기도 하지만.

 

조류독감 방역에 뭔 인원이 그리 필요한가? 항공안전도 인력을 줄여라. 핵무기관리하는 놈들도 그보다 더 적은 수로 가능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문제가 생기면 더 데려다 쓰면 되겠지. 국제적인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그동안 이어오던 국제원조도, 동맹국들과의 공조도, 세계경찰로서의 위상도, 무엇보다도 발권국으로서의 지위도 깡그리 무시한 채 그냥 쓰는 돈만 아끼자. 이게 합리적이라 한다면 그놈은 절대 장사도 해서는 안되는 놈이다.

 

아무튼 여러모로 투명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너무 투명해서 오해가 생기는 경우라 할 수 있겠다. 너무 일차원적이거든. 그런데 그런 일차원적인 사고가 한국 특히 2030 남성들의 사고와 일치한다는 점에서 꽤나 보는 재미가 생기는 것이다. 아마 그들도 알 것이다. 사고수준이 비슷하니까. 그저 치장을 그렇게 하는 것일 뿐. 아니면 지능의 문제라 봐야 할 터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원래 일론 머스크는 친민주당 인사였었다. 그런데 민주당이, 특히 PC가 잘못해서 공화당쪽으로 돌아선 것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주장 아닌가?

 

그래서 지금 일론 머스크가 트럼프 정부에 들어가서 하고 있는 짓거리들을 보라. 안보와 방역, 안전등 미국 국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국가서비스를 제공하는 공무원들까지 거침없이 잘라내고는 미국연금까지 손대려 하고 있는 중이다. 연금은 폰지사기다. 독일에서는 나치를 찬양하는 극우정당을 응원하고, 인접한 캐나다의 주권을 부정하고 무시하고 있기까지 하다. 그런데 일론 머스크가 원래 민주당 지지자였었다고?

 

윤석열의 내란시도 당시에도 비슷한 놈들이 있었다. 여성을 언급하면 자기들은 탄핵에 반대할 것이다. 2030남성들을 우선하지 않으면 내란에도 찬성할 것이다. 그러니까 그런 게 원래 없었는데 단지 민주당에 대한 반감만으로 할 수 있는 선택이냐는 것이다. 민주당이 못해서 자기들도 윤석열을 지지한 것이다. 문재인이 잘못하고 이재명이 잘못해서 자기들도 국민의힘을 지지한 것이다. 그러면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의 행보에 대해서도 민주당적인 관점에서 비판해야 하는데 전혀 아니었었다. 원래 민주당을 지지한 게 맞다면 민주당 지지자의 관점에서 국민의힘이든 윤석열이든 비판해야 하는데 오히려 국민의힘과 윤석열의 관점에서 민주당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면 그들은 진짜 민주당 지지자였던 것일까?

 

결국 지금 일론 머스크가 보이는 행보들이야 말로 원래 그가 믿고 추구하던 진심이었다는 뜻이 된다. 그러면 그동안 민주당 인사들과 친한 것처럼 보인 것은 단지 사업적인 이익을 얻고자 보인 행동들이라 보는 것이 옳다. 하긴 전기차와 관련해서 막대한 재정을 동원해가며 수많은 혜택을 주었던 것은 다름아닌 민주당 정부였었으니. 그에 반해 전기차와 관련한 모든 혜택을 종료시키려는 트럼프 정부에서도 일론 머스크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열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중이다. 어느 쪽이 진심이었는가는 따라서 너무 분명하다.

 

그래서 내가 누구 때문에 누구 지지한다는 말을 믿지 않는 것이다. 내가 2030 남성들을 욕한다고 2030 남성들이 민주당을 지지할 것을 국민의힘을 지지한다? 내가 누군 줄 알고? 자기가 진심으로 믿고 있고 추구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단지 다른 사람의 말 몇 마디에 성향을 바꾼다? 그냥 원래 그런 놈들이니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부모도 아니고 선생님도 아니니 그런 그들의 생각을 바꿀 생각따위 전혀 없는 것이고. 그놈들은 그대로 사는 것이고 나는 나대로 산다. 그런데 자기가 선택한 것을 다른 사람 탓을 한다는 게 얼마나 한심하고 비루한 것인가.

 

자기에게 불이익이 돌아가도 흔들림없이 일관되게 열정과 헌신을 바치는 모습이야 말로 그의 진심이라는 것이다. 청년들을 위한 정책이 폐지되고, 예산이 삭감되고, 여가부에 대한 예산을 늘려도 한결같이 지지를 보내는 그 모습이야 말로 그들의 정체라는 것이다. 일론 머스크가 보여준다. 그런데 뭐라? 일론 머스크도 원래는 민주당 지지자였다? 그렇게까지 미국 민주당을 악마화하고 싶은 의도가 그 안에 숨어있다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니까 민주당과 PC가 잘못되었다. 지금 일론 머스크가 하는 것을 보면서도. 뇌가 없거나 양심이 없거나 아니면 인간이 아니거나. 버러지 추천이다. 병신새끼들.

1990년대 지금도 회자되는 군가산점 판결 당시 여성주의자들은 장애인을 함께 앞세우고 있었다. 여성 뿐만 아니라 장애인 역시 군대에 가지 못한다는 이유로 공무원 임용에서 군가산점으로 인해 차별을 받고 있다. 그래서 과연 당시 여성주의자들은 진심으로 장애인들의 입장까지 생각해서 재판에 앞세웠던 것이었을까? 여성주의자 가운데 성소수자나 장애인을 위해 활동하는 이들이 아주 없지는 않다. 그러나 이후로도 장애인 이슈에서 여성주의자들이 그렇게 적극적으로 나선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러면 이유가 무엇일까?

 

지금 한국 반PC주의자들이 크게 착각하는 부분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미국에서 대학들이 신입생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아시아인들에게 페널티를 주고 있는 것을 백인 반PC주의자들이 앞세우고 있으니 반PC주의가 PC에 비해 아시아인에게 더 우호적이라 여기는 것이다. 실제 흑인이나 히스페닉에 비해 아시아인들, 특히 동북아인들의 피부가 더 흰 편이기도 하고, 어려서부터 서구문명을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사고방식을 흡수하다 보니 아시아에서 주류인 자신들이 미국에서 비주류인 흑인이나 히스페닉보다 우월하다는 착각에 빠지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다. 한 마디로 아시아인은, 특히 동북아시아인들은 흑인이나 히스페닉같은 미국내 비주류 유색인종들과 다른 과거 일본이 탈아입구를 외치며 주장했던 명예백인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흑인과 히스페닉 등 비주류 유색인종들에 우호적인 PC주의보다 그를 부정하는 반PC주의가 훨씬 더 자신들에게도 유리하다.

 

그것을 더이서 바로 엿볼 수 있는가면 헐리우드 영화에서 흑인이나 히스페닉을 주인공으로 캐스팅한 경우 해당 배우의 외모나 피부색을 가지고 차별적인 언사를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모습들이 바로 그 증거들인 것이다. 흑인과 히스페닉은 못생겼고 심지어 혐오스럽기까지 하며 백인은 우월하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이슈가 되고 있는 일본 전국시대에 흑인이 등장한다고 난리가 난 것도 그 하나라 할 수 있다. 그동안 백인이 사무라이로 등장한 만화나 영화가 얼마나 많았었는데. 역사왜곡으로 따지면 중국 삼국시대에 일본인 고딩들이 타임슬립해 가거나, 미나모토노 요시츠네가 어린 시절 표류해 온 칭기즈칸과 만났다는 것 등 따져보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언제부터 게임과 영화에서 그렇게 역사적 사실들을 디테일까지 따져가며 즐겼다고 왜곡을 이유로 비판하는 것인가. 그냥 흑인이 싫다. 히스페닉이 싫다.

 

그래서 과연 반PC주의를 주장하는 미국의 백인들은 아시아인을 진정 자신들과 동등한 주체로 인정하고 있는가? 그동안 헐리우드 영화들에서 흑인만큼이나 모욕적일 정도로 차별적으로 그려졌던 것이 바로 한국인과 일본인들이었다. 그나마 일본은 좀 사정이 낫고 한국은 거의 듣보잡 수준이라 어디 근본도 없는 영화 하나에서 한국인이 매우 대단하게 묘사되었다고 꽤나 화제가 되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 영화도 정작 내용을 보면 한국인보다는 중국인에 더 가깝게 묘사되고 있었다. 반PC주의에 동참하면 아시아인들도 백인처럼 흑인이나 히스페닉과 달리 그보다 우월한 존재로써 대우해줄 것이라 착각하는 모양이다만 글쎄... 하긴 아시아에서 만든 게임에서도 정작 캐릭터들은 거의 서양의 그것에 가깝게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상관은 없겠다. 백인처럼. 그러니까 백인이 우월하다.

 

아무튼 그래서 웃긴다는 것이다. 그래봐야 아시아 몽골리안 주제에 남의 나라에서 영화에 백인을 캐스팅하는지 흑인이나 히스페닉을 캐스팅하는지 왜 그리 난리들인지. 게임에서 백인이 아닌 다른 인종을 등장시키는 것에 어째서 그리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인지. 원래 게임이든 영화든 만화든 잘만 만들면 뚱뚱해도 매력이 있고, 땅꼬마라도 재미있고, 게이든 트랜스젠더든 상관없이 재미있다. 잘만들면 재미있고 못만들면 재미없다. 그런데 만들기도 전에 인종부터 따지고, 즐기기도 전에 성정체성부터 문제삼고, 보기도 전에 캐릭터의 외모부터 시비건다. PC가 문제인 것일까? 그같은 맹목적인 반PC주의의 선동이 더 큰 문제인 것일까? 선동이라 말하는 이유는 정작 그 PC라고 하는 실체부터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냥 뭐든 자기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죄다 PC다. 자기들이 싫으면 PC, 좋으면 반PC. 누가 더 미친 것인지 경쟁하려는 것인가.

 

그래서 뭐가 더 중요한가. 흑인인가? 백인인가? 히스페닉인가? 캐릭터는 뚱뚱한가? 날씬한가? 가슴이 큰가? 엉덩이가 빈약한가? 호모섹슈얼인가? 헤테로 섹슈얼인가? 남성인가? 여성인가? 정체성정치를 그리 욕하더니만 자기들이 그 짓거리 하고 있는 중이다. 검열이라는데 자기들이 대중이라는 이름으로 검열을 시도하고 있다. PC가 들어있는가 아닌가는 단지 부차적일 뿐 그 본질 자체에 충실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건 둘 다 똑같다는 것이다. 더구나 타인에 대한 차별적인 태도를 보이는 점에서 반PC는 그보다 더 고약하다 할 수 있다. 인종과 성정체성과 외모에 대한 차별을 정의라는 이름으로 저지를 수 있는 아마도 역사상 최초의 집단이 아닐까. 아니다 기독교가 있었구나. 배경에 뭐가 있는가 짐작해 볼 수 있다. 결국은 차별금지법, 바로 기독교가 가장 혐오하는 그것이 목표일 것이다. 1990년대 영지주의 선동의 재현일까? 재미있다.

조선을 건국한 신진사대부 가운데 특히 급진파들은 거의가 지방 향리 출신들이었다. 향리가 뭐냐면 일단 귀족이 아니면서 지역에 일정한 토지를 가지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토착유력집단을 가리킨다 할 수 있다. 아직 중앙집권이 확고히 갖춰지기 전 모든 지방에 관리를 파견할 수 없었던 고려조정에서 이들을 포섭해서 행정을 보조케 했었는데 그래서 향리라 부르게 된 것이다. 대충 유럽의 젠트리나 독일의 융커, 청말의 향신과 비슷하다 보면 된다. 조선시대 관청에 속한 아전들을 향리라 부르게 된 이유도 역시 같다. 아무튼 대부분 자기 토지를 가지고 지역과 밀착해 있다 보니 중앙의 수취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고, 더욱 고려말 권문세족들의 착취와 약탈로 피폐해져가던 향촌의 현실을 직접 경험하기도 했었기에 더욱 수취라는 제도에 대한 적대감이 강했다. 그래서 생각했다. 세금을 적게 걷고 적게 쓰는 나라야 말로 가장 이상적인 나라다.

 

사실 근대 이전까지 국가와 국민은 분리되어 있었다. 아니 국민도 아니었다. 그래서 백성이었다. 왕을 중심으로 하는 소수의 지배층들에 의한 조정이 따로 있었고, 그 조정에 의해 보호받고 통제받는 피지배자로서의 백성이 따로 있었다. 당연히 국민도 아닌 백성에게 국가란 필수가 아니었고, 국가 역시 백성과 동일시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세금이란 백성의 주머니에서 국가의 창고로 이동하는 말 그대로 갈취이고 약탈일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어느 정도 복지제도도 갖춰지고, 공공부분에 대한 투자도 상당히 이루어진 지금도 나라가 내게 해주는 것이 뭐가 있느냐는 말이 당연하게 나오는데 그마저도 없던 전근대사회에서는 더욱 당연하게 그런 생각들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나라란 세금을 걷게 거두고 요역도 적게 동원하는 나라를 뜻하는 것이었고, 세금이 많고 노역이 많으면 나라가 망조가 들었다는 말까지 나오게 된 것이었다. 그러니까 세금을 최소한으로 걷어서 쓸 수 있는 나라야 말로 가장 이상적인 나라이니 한 번 만들어보자.

 

물론 조선도 나라 규모에 비하면 관리의 수가 꽤 많은 편이기는 했다. 그런데 그건 중앙집권이 워낙 탄탄하게 갖춰진 탓에 지방의 말단에까지 관리를 파견하고 또 그들을 관리하기 위한 업무 역시 중앙의 조정에 추가되었던 탓이지 그를 전제로 놓고 본다면 절대적으로 많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나마도 최소한의 인원으로 운영한다고 겸직을 많이 두었었고, 그렇게 임명한 관리들에게 지급하는 녹봉 역시 겨우 체면치레나 하는 수준이었다. 아니 지방 관아의 아전들처럼 아예 녹봉을 받지 못하는 경우마저 허다할 정도였다. 그렇게까지 해가며 조선은 재정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전세를 생산량의 1할이라는 역사상 유례가 드문 낮은 세율로 유지하며 망할 때까지 운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아끼고 또 아껴서 왕이 먹는 반찬 가짓수까지 때만 되며 줄여가며 아끼던 조선이 얼마나 백성을 위해 훌륭한 나라였었는가?

 

일단 관리가 부족하니 조선시대에 관리라면 지방관아의 말단 아전들조차도 일바 백성들에게는 그냥 저승사자나 다름없었다. 그나마 관청이 밀집해 있어 관리의 수도 많은 한양은 좀 나았지만 그렇더라도 조정에서 벼슬을 하고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특권이 되고 있었다. 당연한 것이 전체 관리의 수가 적으면 그만큼 관리 한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업무량 만큼이나 책임과 권한도 커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관리들에게 녹봉마저 거의 생활이나 가능한 수준으로 주어지고 있었다. 아니 관리로써 최소한의 체면유지를 위해서도 그 이상의 비용이 들어가야 하는데 그에 터무니없이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만 겨우 주어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심지어 아예 그나마 녹봉조차 주어지지 않는 경우라면 생활을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이 다른 수단을 마련해야만 했었다. 광복 이후 나라가 혼란스러울 때 돈이 없어서 장교들의 월급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 결과 알아서 병사들의 부식이며 피복, 연료등을 횡령해서 생활비를 마련해야 했던 상황을 떠올려보면 된다. 당시 공무원들도 제대로 월급을 받지 못해서 알아서 뒷돈을 받아 생계를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었다. 결과적으로 소수의 관리들은 특권집단이 되고, 최소한의 급여는 부정부패의 원인이 되었다. 중국 청나라에서 강희제가 막대한 세수를 가지고 관리들에게 충분한 녹봉을 지급하자 부정부패가 사라지더라는 것은 바로 그런 교훈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괜히 여러 나라들에서 공무원의 신분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충분한 급여를 지급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다른 보상수단을 통해서 생계는 물론 노후까지 확실히 책임져 줌으로써 그 이상의 다른 욕심을 부릴 여지를 막고자 노력하는 것도 역시나 같은 이유에서인 것이다. 더 많은 공무원을 고용해서 업무를 분담시키는 것도 소수의 공무원이 업무를 독점할 경우 그 권한이 너무 비대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당장 안양시에 개인사업자와 관련한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이 한 명 뿐이라 생각해 보라. 모든 업무가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어 다른 사람이 그 내용을 살피지 못할 정도까지 되면 그냥 그 공무원은 개인사업자들에게 왕이자 신이자 저승사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 잘릴 지도 모르고, 급여도 충분치 못하다? 그냥 바로 징계해고되고 징역 좀 살고 추징금 좀 내고도 다른 나라 가서 먹고 살 만큼 챙기는 게 자신은 물론 가족을 위해서도 도움이 되는 것이다. 더구나 그런 식으로 최소한의 인원만으로 최소한의 비용만으로 나라를 운영하다 보면 결국 포기해야 하는 부분들이 나타나고 만다.

 

조선조정이 이미 나선정벌 과정에서 수석식 소총을 입수했고 복제까지 했음에도 결국 도입을 포기한 이유는 다름아닌 재정의 부족 때문이었다. 임진왜란 직전 일본의 침략에 대비하여 남해안 일대에 성을 쌓고 배를 만들고 무기를 채워 넣는 과정에서도 결국 재정의 부담과 백성들의 동요를 감당하지 못해서 결국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었다. 조선후기 영정조대에 한양의 빈민들을 위해서 청계천을 정비하고 적지 않은 임금을 주어가며 백성들을 동원해서 화성을 건설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당시 일본과 청 사이를 잇는 중개무역을 통해 상당한 수입을 얻을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일본의 은이 고갈되고 무역을 통한 이익이 줄어들기 시작한 19세기 이후로는 조선조정이 사실상 식물상태에 빠지고 만다. 백성들을 위해 최소한의 세금만으로 운영하고자 했던 이상적인 조선이 그러나 정작 그 백성들을 위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국가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그래서 19세기 이후 개항까지의 역사는 학생 입장에서 꽤나 반가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실상 공부할 것이 거의 없다. 세도정치 말고 따로 알아야 할 내용이 없다. 아마 이 시기 왕들도 누가 있었는지 헷갈리는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트럼프와 일론 머스크가 추진하는 정부효율화를 보면서 문득 떠오른 생각이다. 과거 그와 같은 생각을 했던 사람들이 아주 없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많았었다. 19세기 유럽의 자유주의자들도 최소한의 정부를 가장 이상적이라 여겼었다. 정부의 개입은 최소화하고 자신들이 최대한 자유롭게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그런 사회를 요구했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가? 아일랜드 대기근 당시 영국이 보여준 잔인하고 가혹할 정도로 무책임했던 모습은 당시 영국사회가 가지고 있던 한계에서 비롯된 부분도 적지 않았다. 아일랜드를 위해 무언가를 해 주기에 당시 영국 정부의 역량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 많았다. 당장 영국 국내의 빈민들도 어쩌지 못하는 영국 정부가 아일랜드에서 굶어죽어가는 농민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 줄 수 있기를 바라는 자체가 무리일 수 있는 것이다. 근대국가로서 정부의 영향력 아래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능동적으로 책임있게 행동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를 위한 최소한의 규모와 구조를 갖추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비용이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는 세금도 충분히 거둘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세금을 덜 걷기 위해서, 정확히는 납세자로서 그 세금을 조금이라도 덜 내기 위해서 국가의 기능을 덜어낸다. 그 후과는 누가 감당할 것인가.

 

우리나라에도 많다. 정부가 거두는 세금은 약탈이고 착취이며, 정부가 세금을 쓰는 것은 낭비다. 돈은 민간에서 써야 한다. 민간에서 개인이나 법인들이 돈을 써서 시장을 통해 돌아가게 해야 한다. 그것이 민영화의 가장 주된 논리다. 다만 재미있는 것은 그런 주장을 하는 대부분이 자신들의 그같은 아이디어가 전혀 새로운 것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왜 자유주의라 하지 않고 신자유주의라 부르는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들이라 할 수 있다. 과거와 지금은 다르다. 조선시대와 지금 대한민국은 다르다. 과연 얼마나 다를까? 세금을 덜 걷고 덜 쓰는 나라와 세금을 더 걷는 대신 필요한 곳에 쓸 수 있는 나라 가운데 정작 국민들을 위해 필요한 나라는 어떤 것이었는가? 역사는 그것을 명확히 가르쳐주고 있지만 그러나 배울 생각이 없으면 역시나 없는 것과 같다. 안타까운 사실이다.

아마 작년이었을 것이다. 인터넷에서 회사에서 직원들의 출산과 육아를 지원하기 위해 휴가와 수당, 시설등을 정책적으로 확충하는 것에 대해 젊은 남성들을 중심으로 반발하는 여론이 꽤나 크게 이슈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자기는 결혼도 하지 않았고 아이도 낳지 않을 것이지만 어째서 자기에게는 출산과 육아로 인한 혜택이 없는 것인가. 아이 낳았다고 그리고 기른다고 그들에게만 특혜를 주는 것이 아닌가. 자기만 차별을 받는 것이다.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출산과 육아로 인한 개인의 부담을, 그를 지원하기 위한 공동체의 보조와 지원이라는 것을 전혀 이해하려 하지 않는 이기심을 그들 나름대로는 공정하고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권리주장이라 여기고 있는 것이다.

 

어째서 미국이 자기들 세금을 들여가며 저개발국을 지원해야 하는 것인가. 미국이 달러도 찍어내서 유통하고 있는데 어째서 미국은 다른 나라들을 상대로 항상 무역적자를 보고 있어야 하는 것인가. 미국인들이 더 싼값에 다른 나라 물건을 사서 마음놓고 소비하면서도 어째서 저 나라들은 더 싸게 물건을 생산해서 미국의 경쟁자들을 위협하고 있는 것인가. 나아가 그껏 조류인플루엔자 방역하는데 굳이 세금을 써서 공무원을 많이 고용할 필요가 있을 것인가. 항공안전을 관리하는데 굳이 세금을 들여가며 노동조건을 맞춰서 더 많은 사람을 고용하고 있을 필요가 있는가. 핵무기 관리는 그저 가능한 최소한의 인원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게 다 내 권리다. 아메리칸 퍼스트. 어쩐지 많이 비슷하지 않은가?

 

요즘 트럼프가 뭐만 했다 하면 미쳐 발광하는 특히 젊은 남성들을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도 너무나 흔하게 찾아보게 된다. 방역이나 항공안전, 핵무기관리 등에 종사하는 수많은 공무원들을 자르고, 나아가 유엔 등 미국의 국제사회에서의 역할을 불필요한 낭비라 여기며 모두 거부하는 행동들에 대해 사이다라며 열광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바로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하긴 그러니까 윤석열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모두가 인정하는 것처럼 2022년 대선에서 윤석열 당선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이 바로 2030 젊은 남성 유권자들이었으니까. 실제 탄핵정국에서도 윤석열과 국민의힘에 대한 지지가 60대 다음으로 높기도 하다. 어째서일까? 그래서 너무나 닮아 있다는 것이다. 그때 그들이 하던 주장과 지금 모습들이.

 

유엔에 미국이 막대한 돈을 쓰는 이유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었다. 미국이 저개발국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는 이유가 그저 정치적 올바름을 위한 인도적인 목적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것들마저 모두 비용이라 생각한다. 그만한 비용을 썼으면 당연히 미국이 원하는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단차원적으로 생각한다. 세상 일이 그렇게 단순했으면 인류역사가 저꼬라지일 이유가 없다. 세계라고 하는, 미국이 패권을 누리며 주도하던 인류의 공동체를 배제한 채 개인의 욕망과 충동만을 전제로 그것을 논리로 만들려 하면 저런 현상이 벌어진다. 뭐 더 할 말도 없다. 하물며 나라도 다른 대한민국에서. 남의 나라인 미국의 대통령과 그 측근을. 이것도 반PC주의를 위한 것일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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