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건국한 신진사대부 가운데 특히 급진파들은 거의가 지방 향리 출신들이었다. 향리가 뭐냐면 일단 귀족이 아니면서 지역에 일정한 토지를 가지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토착유력집단을 가리킨다 할 수 있다. 아직 중앙집권이 확고히 갖춰지기 전 모든 지방에 관리를 파견할 수 없었던 고려조정에서 이들을 포섭해서 행정을 보조케 했었는데 그래서 향리라 부르게 된 것이다. 대충 유럽의 젠트리나 독일의 융커, 청말의 향신과 비슷하다 보면 된다. 조선시대 관청에 속한 아전들을 향리라 부르게 된 이유도 역시 같다. 아무튼 대부분 자기 토지를 가지고 지역과 밀착해 있다 보니 중앙의 수취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고, 더욱 고려말 권문세족들의 착취와 약탈로 피폐해져가던 향촌의 현실을 직접 경험하기도 했었기에 더욱 수취라는 제도에 대한 적대감이 강했다. 그래서 생각했다. 세금을 적게 걷고 적게 쓰는 나라야 말로 가장 이상적인 나라다.
사실 근대 이전까지 국가와 국민은 분리되어 있었다. 아니 국민도 아니었다. 그래서 백성이었다. 왕을 중심으로 하는 소수의 지배층들에 의한 조정이 따로 있었고, 그 조정에 의해 보호받고 통제받는 피지배자로서의 백성이 따로 있었다. 당연히 국민도 아닌 백성에게 국가란 필수가 아니었고, 국가 역시 백성과 동일시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세금이란 백성의 주머니에서 국가의 창고로 이동하는 말 그대로 갈취이고 약탈일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어느 정도 복지제도도 갖춰지고, 공공부분에 대한 투자도 상당히 이루어진 지금도 나라가 내게 해주는 것이 뭐가 있느냐는 말이 당연하게 나오는데 그마저도 없던 전근대사회에서는 더욱 당연하게 그런 생각들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나라란 세금을 걷게 거두고 요역도 적게 동원하는 나라를 뜻하는 것이었고, 세금이 많고 노역이 많으면 나라가 망조가 들었다는 말까지 나오게 된 것이었다. 그러니까 세금을 최소한으로 걷어서 쓸 수 있는 나라야 말로 가장 이상적인 나라이니 한 번 만들어보자.
물론 조선도 나라 규모에 비하면 관리의 수가 꽤 많은 편이기는 했다. 그런데 그건 중앙집권이 워낙 탄탄하게 갖춰진 탓에 지방의 말단에까지 관리를 파견하고 또 그들을 관리하기 위한 업무 역시 중앙의 조정에 추가되었던 탓이지 그를 전제로 놓고 본다면 절대적으로 많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나마도 최소한의 인원으로 운영한다고 겸직을 많이 두었었고, 그렇게 임명한 관리들에게 지급하는 녹봉 역시 겨우 체면치레나 하는 수준이었다. 아니 지방 관아의 아전들처럼 아예 녹봉을 받지 못하는 경우마저 허다할 정도였다. 그렇게까지 해가며 조선은 재정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전세를 생산량의 1할이라는 역사상 유례가 드문 낮은 세율로 유지하며 망할 때까지 운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아끼고 또 아껴서 왕이 먹는 반찬 가짓수까지 때만 되며 줄여가며 아끼던 조선이 얼마나 백성을 위해 훌륭한 나라였었는가?
일단 관리가 부족하니 조선시대에 관리라면 지방관아의 말단 아전들조차도 일바 백성들에게는 그냥 저승사자나 다름없었다. 그나마 관청이 밀집해 있어 관리의 수도 많은 한양은 좀 나았지만 그렇더라도 조정에서 벼슬을 하고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특권이 되고 있었다. 당연한 것이 전체 관리의 수가 적으면 그만큼 관리 한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업무량 만큼이나 책임과 권한도 커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관리들에게 녹봉마저 거의 생활이나 가능한 수준으로 주어지고 있었다. 아니 관리로써 최소한의 체면유지를 위해서도 그 이상의 비용이 들어가야 하는데 그에 터무니없이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만 겨우 주어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심지어 아예 그나마 녹봉조차 주어지지 않는 경우라면 생활을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이 다른 수단을 마련해야만 했었다. 광복 이후 나라가 혼란스러울 때 돈이 없어서 장교들의 월급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 결과 알아서 병사들의 부식이며 피복, 연료등을 횡령해서 생활비를 마련해야 했던 상황을 떠올려보면 된다. 당시 공무원들도 제대로 월급을 받지 못해서 알아서 뒷돈을 받아 생계를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었다. 결과적으로 소수의 관리들은 특권집단이 되고, 최소한의 급여는 부정부패의 원인이 되었다. 중국 청나라에서 강희제가 막대한 세수를 가지고 관리들에게 충분한 녹봉을 지급하자 부정부패가 사라지더라는 것은 바로 그런 교훈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괜히 여러 나라들에서 공무원의 신분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충분한 급여를 지급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다른 보상수단을 통해서 생계는 물론 노후까지 확실히 책임져 줌으로써 그 이상의 다른 욕심을 부릴 여지를 막고자 노력하는 것도 역시나 같은 이유에서인 것이다. 더 많은 공무원을 고용해서 업무를 분담시키는 것도 소수의 공무원이 업무를 독점할 경우 그 권한이 너무 비대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당장 안양시에 개인사업자와 관련한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이 한 명 뿐이라 생각해 보라. 모든 업무가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어 다른 사람이 그 내용을 살피지 못할 정도까지 되면 그냥 그 공무원은 개인사업자들에게 왕이자 신이자 저승사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 잘릴 지도 모르고, 급여도 충분치 못하다? 그냥 바로 징계해고되고 징역 좀 살고 추징금 좀 내고도 다른 나라 가서 먹고 살 만큼 챙기는 게 자신은 물론 가족을 위해서도 도움이 되는 것이다. 더구나 그런 식으로 최소한의 인원만으로 최소한의 비용만으로 나라를 운영하다 보면 결국 포기해야 하는 부분들이 나타나고 만다.
조선조정이 이미 나선정벌 과정에서 수석식 소총을 입수했고 복제까지 했음에도 결국 도입을 포기한 이유는 다름아닌 재정의 부족 때문이었다. 임진왜란 직전 일본의 침략에 대비하여 남해안 일대에 성을 쌓고 배를 만들고 무기를 채워 넣는 과정에서도 결국 재정의 부담과 백성들의 동요를 감당하지 못해서 결국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었다. 조선후기 영정조대에 한양의 빈민들을 위해서 청계천을 정비하고 적지 않은 임금을 주어가며 백성들을 동원해서 화성을 건설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당시 일본과 청 사이를 잇는 중개무역을 통해 상당한 수입을 얻을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일본의 은이 고갈되고 무역을 통한 이익이 줄어들기 시작한 19세기 이후로는 조선조정이 사실상 식물상태에 빠지고 만다. 백성들을 위해 최소한의 세금만으로 운영하고자 했던 이상적인 조선이 그러나 정작 그 백성들을 위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국가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그래서 19세기 이후 개항까지의 역사는 학생 입장에서 꽤나 반가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실상 공부할 것이 거의 없다. 세도정치 말고 따로 알아야 할 내용이 없다. 아마 이 시기 왕들도 누가 있었는지 헷갈리는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트럼프와 일론 머스크가 추진하는 정부효율화를 보면서 문득 떠오른 생각이다. 과거 그와 같은 생각을 했던 사람들이 아주 없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많았었다. 19세기 유럽의 자유주의자들도 최소한의 정부를 가장 이상적이라 여겼었다. 정부의 개입은 최소화하고 자신들이 최대한 자유롭게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그런 사회를 요구했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가? 아일랜드 대기근 당시 영국이 보여준 잔인하고 가혹할 정도로 무책임했던 모습은 당시 영국사회가 가지고 있던 한계에서 비롯된 부분도 적지 않았다. 아일랜드를 위해 무언가를 해 주기에 당시 영국 정부의 역량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 많았다. 당장 영국 국내의 빈민들도 어쩌지 못하는 영국 정부가 아일랜드에서 굶어죽어가는 농민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 줄 수 있기를 바라는 자체가 무리일 수 있는 것이다. 근대국가로서 정부의 영향력 아래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능동적으로 책임있게 행동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를 위한 최소한의 규모와 구조를 갖추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비용이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는 세금도 충분히 거둘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세금을 덜 걷기 위해서, 정확히는 납세자로서 그 세금을 조금이라도 덜 내기 위해서 국가의 기능을 덜어낸다. 그 후과는 누가 감당할 것인가.
우리나라에도 많다. 정부가 거두는 세금은 약탈이고 착취이며, 정부가 세금을 쓰는 것은 낭비다. 돈은 민간에서 써야 한다. 민간에서 개인이나 법인들이 돈을 써서 시장을 통해 돌아가게 해야 한다. 그것이 민영화의 가장 주된 논리다. 다만 재미있는 것은 그런 주장을 하는 대부분이 자신들의 그같은 아이디어가 전혀 새로운 것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왜 자유주의라 하지 않고 신자유주의라 부르는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들이라 할 수 있다. 과거와 지금은 다르다. 조선시대와 지금 대한민국은 다르다. 과연 얼마나 다를까? 세금을 덜 걷고 덜 쓰는 나라와 세금을 더 걷는 대신 필요한 곳에 쓸 수 있는 나라 가운데 정작 국민들을 위해 필요한 나라는 어떤 것이었는가? 역사는 그것을 명확히 가르쳐주고 있지만 그러나 배울 생각이 없으면 역시나 없는 것과 같다. 안타까운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