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라고 하는 것은 원래 폭력적인 것이다. 권력이란 자체가 폭력이기 때문이다. 국가를 지탱하는 것이 바로 그 권력일 것이기에 국가란 폭력 위에 존재한다 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바라지 않았음에도 왕이 나를 지배하고, 내가 요구하지 않았음에도 왕의 명령에 의해 전장으로 끌려가 다른 나라의 국민들과 서로를 죽이며 싸워야 하기도 한다. 그냥 나는 나일 뿐인데 내 이름 앞에 나라의 이름이 붙고, 때로 나와 상관없는 그 이름 때문에 내 운명이 결정되기도 한다. 심지어 내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그 모든 것들이 결정되어 있기까지 하다. 얼마나 부당하고 억울한가.
나는 민주주의따위 바란 적이 없다. 나는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이 되고 싶지 않았다. 대한민국 국민이기보다 선진국 일본의 식민지에서 보다 풍요롭고 자유로운 삶을 누리고 싶었다. 실제 지금 녹색당을 지지하고 있는 나름 지식인이라 할 수 있는 사람에게서 들었던 말이다. 대한민국이 독립되지 않았으면 어쩌면 나는 지금보다 더 잘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은 그다지 옳았다고만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실제 그런 사람도 대한민국에는 얼마든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민족국가 대한민국을 바라는 다수가 한국인들만의 대한민국을 건국했기에 그는 태어난 순간부터 대한민국 국민이었고, 일본의 식민지 백성이 아닌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 또한 내가 바라지 않았으니 폭력이다. 그래서 국적을 거부하는 코스모폴리탄들도 나오는 것이다. 혹은 자기가 원하는 나라로 가서 귀화하는 이들도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 전까지 그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대한민국 국민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1987년 6월 노태우가 갑자기 6.29 선언을 하면서 그동안 한 번도 민주화집회따위 한 적 없고, 오히려 민주화운동을 빨갱이들의 난동 쯤으로 여기던 사람들마저 하루아침에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대표적으로 대구와 경북이 그러할 것이다. 그래서 마치 고려시대 신라사람들이 옛 신라왕조를 그리워하며 신라부흥운동을 벌였던 것처럼 대구와 경북에서도 과거의 군사독재시절을 그리워하며 그 당사자들의 동상을 세우고, 제사를 지내고, 군사독재를 재현하려는 내란에까지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대구경북만이 아니다. 원래 민주화를 바라지 않았었던 그 시절 4050들과, 이후 태어난 2030세대에서도 자기들이 원하지 않았던 민주주의에 대한 거부와 군사독재로의 회귀를, 다시 말하면 자신이 바라던 원래 군사독재로의 부흥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나서고 있는 것이다. 그 비율이 무려 30%에 이르고 보면 그런 그들의 요구를 철저히 무시하는 민주주의란 얼마나 억압적인 것인가?
계엄이 선포되고 내란이 일어났을 때도 그래서 여러 커뮤니티에서는 그런 주장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민주주의가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가 절대적인 선은 아니다. 민주주의는 단지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대한민국 국민을 위한 보다 나은 선택이 있을 때 민주주의는 얼마든지 포기될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 당장 민주주의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나와 얼마나 상관있는지도 모르겠다.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것은 강요이고 강제고 나아가 폭력이다. 그나마 꽤나 이성적인 척 하는 사람들이 떠들던 이야기들이다. 그런데도 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서 그런 그들의 목소리를 철저히 묵살하고 심지어는 처벌까지 해야만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이 유지될 수 있으니까.
이를테면 지금 전주 이씨 종친회에서 조선의 왕실을 복원시키겠다 해도 정부가 단호하게 막아야 하는 이유와 같은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에 왕족과 같은 특권적인 신분은 존재할 수 없다. 충청도 어디에서 이제와서 백제를 부흥시키겠다 누군가 나서도 그를 용인할 수 없는 이유와도 같은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는 통일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설사 명분이 있다 하더라도 그 안에 다른 나라를 세우는 것은 용인할 수 없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중요한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정 필요하다면 선거라는 제도를 통해서 자신을 대변할 정치인을 선출해서 그 일부라도 현실에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정히 필요하다면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을 인정한 상태에서 대구와 경북에서만 지자체를 군사독재체제로 구성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체제 아래에서 군인이 지자체장을 맡을 수는 없으니 지방정부만 그렇게 구성해서 지역민들을 과거처럼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 정도 수준까지 자치가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도 바로 선거의 역할이다. 하지만 그조차도 받아들일 수 없기에 반대파를 싸그리 죽여서라도 자신들이 원하는 체제를 만들어야겠다.
말하자면 그들 나름의 독립운동인 것이다. 국권회복인 것이다. 그래서 그토록 잔인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내란에 반대하는 국민이 전국민의 70%가 넘는데 그들을 모두 죽이겠다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인도네시아에서 그랬던 것처럼, 아니 제주도에서 그랬던 것처럼 자신들을 반대하는 이들을 죽이고, 강간하고, 재산을 빼앗아 자기들을 위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윤석열의 내란을 지지하는 최대 30%, 최소 25% 국민들의 이유인 것이다. 자신들이 좋았던 그 시절로 돌아가야겠다. 어른들이 말하는 그 좋았던 시절로 이 나라를 되돌려야겠다. 갓 군대를 제대한 20대가 다시 계엄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들었으니 아주 현실과 멀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런데도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해야 하기에 이들과 싸우고 이들을 억압해야 한다. 민주주의를 강요하고 강제하고 따르지 않으면 처벌해야 한다. 그것이 국가란 것이다.
70%를 죽일 것인가 25%를 죽일 것인가의 갈림길인 것이다. 물론 25%는 70%를 죽이고 싶어할 테지만 민주주의를 바라는 70%는 25%를 굳이 죽일 생각까지는 가지고 있지 않다. 그냥 강제할 뿐이다. 강요할 뿐이다. 입을 막고 손발을 붙잡고서 민주주의를 따르라고 억압할 뿐이다. 그마저도 폭력이라 부른다면 폭력이 맞다. 강제고 강요도 맞다. 그것이 국기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민주주의국가이고자 하고 그를 다수의 국민이 바란다면 남은 방법은 그와 비슷한 체제를 가지는 다른 나라로 이민을 떠나는 것 뿐이다. 싫으면 따르라. 왜 강요하고 강제하는가? 그것이 대한민국이니까. 왜 정치적인 올바름을 강요하고 강제하는가? 그것이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위해 필요하니까.
새삼 미안한 감정도 드는 것이다. 군사독재에 더없이 만족하며 앞으로도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라고 있었을, 태어나면서부터 민주주의를 강제당한 탓에 그를 경험할 기회마저 빼앗겼을 사람들에게 너무나 일방적으로 민주주의만을 강요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하루아침에 역적들에게 정복당해 이단의 이념을 강요당하는 것과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찌하는가. 그것이 다수의 요구이고, 따라서 국가의 폭력은 필연적으로 그렇게 작용하게 되었다. 이전에 민주주의를 바라던 이들이 군사독재에 의해 수도 없이 죽고 다치고 절망으로 내몰렸던 것처럼. 그런 것을 당연하게 여겼던 것처럼 지금도 마찬가지다. 미안한 건 미안한 것이고 분리독립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민주주의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이상 그들은 그 이념과 체제에 복종할 의무가 있다. 말하자면 군사독재로의 회귀를 바라는 저들의 나름 독립운동이자 부흥운동은 결국 진압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렇지 못하면 결국 다시 민주주의를 바라는 다수가 저들의 정복과 지배를 받아야 한다. 그럴 수는 없으니 저들을 진압할 수밖에 없다.
어째서 민주주의 국가에서 군사독재를 바라는 저들의 자유는 존중받지 못하는가? 국가니까. 군사독재로의 회귀와 부활을 바라는 저들의 요구는 인정받지 못하는가? 그것이 바로 국가라는 것이니까. 그래서 아무리 거부하고 반발해도 강요하고 강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25%를 위해 70%가 죽을 수는 없는 것이니. 빨갱이 새끼들, 즉 나까지 다 때려죽여야 한다고 계엄을 다시 하자는 20대 청년을 두고서도 너를 죽이겠다 말할 수 없는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민주주의는 언제까지고 강요되고 강제되어야 하며, 그를 반대하는 어떤 주장도 억압당하고 배제되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원하지 않는다면 나라를 떠날 수밖에. 그 부분을 분명히 해야 한다. 민주주의국가에서도 민주주의에 반대하는 것은 자유가 아니다. 그래서 자유민주주의인가? 민주주의에 반대할 수 있는 자유라는 의미에서? 그렇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