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특히 개신교 쪽에서 뉴에이지를 영지주의 음악이라고 공격하는 것을 보고 내가 의아해했던 것 중 하나가 개신교 자체가 바로 영지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는 종교이기 때문이었다. 

 

고대 기독교의 역사는 영지주의와의 전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초기 기독교 교회에서 영지주의의 영향력은 거의 절대적이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초기 기독교 교회들을 보면 교회마다 제각각 주장하는 교리가 달랐었다. 서로가 중시하는 경전도 달랐고, 그 경전에 대한 해석도 달랐으며, 그에 따라 기독교를 믿는 방법도 달랐었다. 그러니까 그런 서로 너무 다른 교회들을 아우를 수 있는 하나의 교리를 찾아서 정리한 것이 바로 가톨릭이라는 것이었다. 이놈도 저놈도 하는 소리가 너무 다르니까 기독교란 무엇인가 하나로 정리하고자 시도한 것이 가톨릭의 시작인 것이었다.

 

그러면 초기 교회는 어째서 교회마다 교리가 그렇게 달랐었는가? 영지주의라고 하는 자체가 세상에는 보통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비밀스런 진리가 숨겨져 있고 그것을 소수의 선각자들만이 알고 찾아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기독교의 경전 가운데서도 사람들은 모르는 진짜 진실이 숨겨져 있는데 그것을 소수의 선각자들 - 즉 주교들만이 제대로 이해해서 신자들에게도 가르쳐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가만 보면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내용이다. 그러니까 소수의 성직자들이 경전 가운데 암호처럼 남아 있는 비밀을 찾아내서 신자들에게 그 진실을 가르치고 인도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개신교의 시작인 것이다.

 

중세 교회에서 괜히 성직자가 아닌 신자 개인이 성경을 읽는 것을 금지했던 것이 아니었다. 개인이 성경을 읽으면 자기 주관대로 성경을 해석하려 할 것이고 그것은 곧 기독교 교리에 대한 오독과 오염을 낳게 된다. 그것은 곧 가톨릭 교회로 정리된 기독교 교리의 혼란으로 나아가 정통을 벗어난 이단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바로 그 이단이 영지주의다. 그러니까 가톨릭 교회의 해석에서 벗어난 자의적인 교리의 해석이 곧 영지주의이며 가톨릭 교회에서 말하는 이단이었던 것이다. 실제 이후 기독교에서 나타난 이단의 교리들이 그렇게 탄생하고 있었다. 그런데 근세 이후 나타난 개신교, 즉 프로테스탄트들은 가톨릭 교회의 권위를 부정하고 기독교 교리를 각자 독자적으로 해석하려 시도한 경우들이란 것이다. 가톨릭 교회가 아닌 자신만의 기준으로 성경을 해석하여 그를 교리로 삼고 신도들을 모아 현실에서도 실천케 했던 것이었다. 

 

현대 특히 한국 개신교 교회에서 많은 신자들이 기독교라고 하는 종교보다 목사 개인을 추종하는 경향이 강한 것은 개신교라고 하는 종교 자체가 그러한 태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기독교라고 하는 종교가 있고 성경이라고 하는 경전이 있지만 그 진짜 뜻을 이해하고 전파하는 것은 소수 성직자들인 것이다. 그 성직자들의 가르침을 통해서 신자들은 성경에 감춰진 진짜 구원의 방법을 찾아내고 현실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예수보다도 성경보다도 더 중요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신자들을 이끄는 존재라는 뜻으로 목회자라 부르는 개신교의 목사들인 것이다. 그러니 이미 전부터 영지주의에 대해 알고 있던 나로서 개신교가 영지주의를 공격하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개신교가 곧 영지주의일 텐데.

 

개신교가 말하는 개교회주의의 정체인 것이다. 개신교는 교회마다 독립되어 있다. 교회마다 목사마다 독자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한 마디로 어느 특정 교회에서 특정한 목사가 성경을 어떻게 해석해서 설교하든 그 목사 마음이고 교회의 재량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교단차원에서 그에 무어라 강제할 수 없다. 개신교라고 하는 종교의 이름으로 교회와 목사 개인에게 무언가를 강요할 수 없다. 그런 것치고 특정한 사안들에 대해서는 교단에서 목사 개인을 출교하기도 하고 징계도 마음대로 하는 것 같더만. 그러니까 교회마다 개신교는 교리도 다르고, 따라서 신자들도 그 교리에 따라 목사를 중심으로 모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신자라면 굳이 절을 고를 필요 없이 가고 싶으면 종파가 다른 절도 마음대로 찾아갈 수 있지만 교회는 자기가 원래 다니던 교회만 굳이 멀리까지 일부러 찾아가야 한다. 그래서 목사는 개신교회에서 예수의 대리인이며 사실상 예수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목사 개인을 쫓아서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실천까지 결정할 수 있는 이유다.

 

솔직히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래서 굳이 가톨릭이 영지주의를 탄압한 것에 대해 로마 황제의 세속적인 목적에 교회가 부역한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원래 교리란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 것인데 그것을 하나로 통일해서 강제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그런데 정작 개신교를 경험하면서 그같은 막연한 반감이 얼마나 터무니없이 어리석은 것이었는가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어째서 고대 로마교회는 그토록 영지주의를 경계하며 교회의 통합에 열심이었는가. 아니면 지금처럼 되었을 테니까. 한국 개신교교회야 말로 초기 영지주의 교회가 보여주었던 아싸리판의 재현일 수 있는 것이다. 지금 개신교 꼬라지 보고 있으면 이래서 교리는 하나로 통일되는 게 옳다. 저마다 다 제각각 개짓거리를 하면서도 그 개짓거리랑 개신교는 상관없다고 개신교회라고 하는 곳들마다 떠들고 있다 보니 책임을 물을 곳도 책임을 져야 할 곳도 모호한 진짜 아싸리판의 연속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꼬라지를 얼마나 지켜보고 있어야 하는가.

 

괜히 비개신교인들이 개신교는 교회가 아니라 목사를 믿는다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교회와 목사를 믿는 정도다. 원래 뿌리가 그렇기 때문이다. 그것이 개신교라는 종교의 실제 정체성인 것이고. 그래서 개교회주의인 것이다. 개같은 교회라서 개교회가 아니라 교회마다 목사마다 성경을 지 좆꼴리는대로 해석해도 상관할 수 없다 해서 개교회주의다. 교회와 목사 단위로 이루어지는 종교라 그래서 개신교다. 그러니까 왜 영지주의 욕하냐고? 내가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가톨릭이 영지주의 욕하면 이해나 하는데 왜 개신교가? 신천지나 개신교나인 이유이기도 하다. 둘 다 뿌리가 같다. 그래서 하는 짓도 같다. 그래서 지난 대선에서도 지금 탄핵정국에서도 신천지와 개신교가 보이는 행보가 같은 것이다. 사실상 같은 종교다. 어려울 것 없다. 그냥 원래 그런 종교인 것이다. 다름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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