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무엇보다 예측가능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법을 지키는 것이고 이렇게 하면 법을 어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을 지키며 살려 하면 어떻게 해야 하고, 어떻게 행동할 경우는 법을 벗어나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 문명을 이루어 살기 시작한 이래로 가장 먼저 했던 것이 바로 그 규준을 세우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막연한 관념이나 혹은 관습으로써의 규범들이었었다. 하지만 문자를 만들어 쓸 수 있게 되면서 그것들은 법이라는 형태로 구체화되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곳에서 큰 문제없이 잘 살기 위해서는 이런 것들을 염두에 두고 지키며 살아야 한다. 왕조가 바뀔 때마다, 문명이 바뀔 때마다, 그래서 지배자와 질서가 새롭게 세워질 때마다 그렇게 법도 새롭게 만들어지고 모두에게 공표되었었다. 여기까지는 해도 되지만 여기서부터는 해서는 안된다. 이것들은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이것들부터는 앞으로 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심지어 어느 순간부터는 절대권력자인 군주조차 법을 지켜가며 권력을 사용해아 하는 수준에까지 이르게 된다. 법치주의의 성립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법이란 조문 그대로 약간의 해석은 더해질지라도 그 내용 자체를 훼손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역사상 혼군이라 불리우던 지배자들의 특징은 중심이 없다는 것이었다. 폭군은 그래도 왕이 하라는대로 거스르지 않고 잘 따르기만 하면 큰 화는 면할 수 있다. 그런데 혼군은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중심도 없고 기준도 없고 앞뒤도 없어 일관성도 찾아보기 힘들다. 오늘은 이쪽의 말을 따랐다가 내일은 저놈의 말을 따르고 그제는 또 지 꼴리는대로 아무렇게나 말하고 행동으로 옮기기도 한다. 그래서 혼군이다. 그래서 더욱 법치가, 입헌주의가 중요해진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왕이라도 최소한 일정한 범위 안에서 자신의 권력도 쓸 수 있으면 쓰라. 그게 마그나카르타였다. 이제 더이상 왕이란 놈들이 지 꼴리는대로 명령하고 행동하는 것을 보고 있을 수 없다. 그러니까 문자화된 규범을 통해서 자의적인 행동을 규제하고 그를 통해 예상가능한 일정한 통치가 가능해지도록 한다. 물론 그럼에도 대부분 왕들은 아주 최근까지도 법을 넘어서서 법조문 자체를 아예 자기 마음대로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그런 일들을 못하도록 규범으로써 가치로써 이론으로 이념으로 그를 강제하도록 하자. 그게 법치주의고 입헌주의다. 법조문 그대로 따라 판결하고 적용한다.

 

그래서 법조인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법이란 이미 문자로써 구체화되어 존재하는 것이기에 그 해석과 적용 과정에서 법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전문가의 존재가 필요해진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법을 법조인 스스로가 새롭게 만들어낼 수 있으면 어떻게 될까? 법조문의 적용을 자의로써 임의로 해석해서 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이를테면 구속기간을 일단위로 계산하도록 되어 있는 것을 시간단위로 할 수 있다고 조문에도 없는 해석을 적용해서 귀속을 취소한다던가 한다면? 범죄에는 법을 파괴하는 범죄와 법을 이용하는 범죄와 법을 만드는 범죄가 있다고 누군가 말했었다. 법조문을 이용해 판결하는 위치에 있는 판사가 아예 법조문의 내용을 임의로 바꿔서 판결한다면 그 사회는 과연 그 법조문에 따른 예측가능한 일관된 질서가 존재한다 말할 수 있을까? 판사가 자의로 법조문과 상관없이 판결할 수 있는 사회를 과연 근대적인 법치사회라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더구나 판사 한 명이 단 한 명만을 위해 그같은 판결을 내렸을 뿐 여전히 다른 사안들에 대해서는 기존의 법조문 아래에서 판결이 내려지고 있다. 법이 한 사람을 위해 마음대로 조작되고 운영된다.

 

하긴 한국사회에서 법조인이란 조선시대에 과거에 급제하여 양반이 된 것과 같은 특권신분을 가리키는 것이었을 게다. 더 큰 사회적 지위와 권력과 부를 손에 넣기 위해 집안에서 공부 좀 한다 하는 놈들은 법을 공부해서 그같은 신분을 손에 넣었던 것이었을 터였다. 그래서 검찰도 법원도 법이란 단지 자신을 위한 수단 정도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법 그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 법을 얼마든지 편집하고 첨삭하고 조작할 수 있다 여기는 것이다. 그래도 누가 뭐랄 수 없다. 검찰이 아니면 검찰을 기소할 수도 없고, 판사를 기소해 봐야 판결 역시 같은 판사가 내리게 된다. 그러니 자기들은 뭐든 마음대로 해도 된다. 그리고 물러나면 그동안 해 온 일들에 비례해서 변호사로서 대단한 특혜도 주어진다. 법조인의 양심이라거나 명예같은 것은 그들과 더욱 관계없는 단어들일 터였다. 한국사회가 그러니까 얼마나 썩어 있는가. 한국사회에서 법이란 것이 얼마나 가치없는 헛소리인 것인가. 단지 자신과 반대정파가 불이익을 볼 때만 법은 존중해야 할 숭고한 가치가 된다. 누가 그렇게 만들었을까? 무엇보다 판사새끼들 자신들일 것이다.

 

임용시험을 준비하던 사람들은 실제 법조문과 새롭게 나온 판례 사이에서 혼란에 빠지고, 이미 구속된 피의자들의 가족들은 자기 가족이 이번 판례를 근거로 구속취소가 될 수 없을까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여기에 대고 다시 앞으로 어떤 기준에 의해 구속취소가 이루어지는가 설명해주어야 한다.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납득시키고 다시 이 사회의 규준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 비용과 노력은? 그를 위해 필요한 시간과 인력들은? 그런데도 아무런 책임도 없다. 그런 판사놈 판결에 열광하는 2찍 놈들이 또한 가장 판사를 우습게 여기는 놈들이라는 점도 그래서 아이러니다. 대한민국은 과연 법치국가인가? 근본적인 의문부터 가지게 되는 것이다. 누구로 인해서? 바로 판사와 검사들로 인해서. 대한민국의 진정한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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