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길 때부터 그랬었다. 주장이나 공약 자체는 매우 선명하고 방향도 옳아 보인다. 차라리 현실에 영합하는 민주당보다 이들에 표를 준다면 이 사회가 보다 진보적으로 더 나아지는 방향으로 바뀌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래서 아마 당시 많은 민주당, 열린우리당 지지자들이 이 사회의 진보에 대한 가능성을 믿고 민주노동당에 표를 주고 했을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왼쪽에서 끌어주면 민주당, 혹은 열린우리당도 한나라당에 맞서서 조금 더 진보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조국혁신당 소속 정치인이나 지지자들이 오해하는 것이 있는데 조국혁신당에 대해 민주당 지지자들이 바라는 것은 거수기를 하라는 것이 아니다. 민주당 하는대로 그냥 끌려다니기만 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런 지지자도 물론 있을 테지만 그보다는 몸집이 커진 만큼 운신이 어려워진 민주당을 대신해서 더 선명하게 더 과감하고 적극적인 자세로 민감한 이슈들을 주도해달라는 것이다. 보수와 타협하면서 현실에서 가능성을 이루어내는 것은 민주당이 할 수 있으니까 의제를 설정하고 그를 추진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민주당을 그쪽으로 끌어당겨 보라는 것이다. 당연히 남의 정당이기에 가질 수 있는 기대 같은 것이다. 그럼으로써 두 정당의 연대가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다. 이를테면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의 경우가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과거 그런 기대감을 가지고서 민주당 지지자들도 민주노동당에 이은 역대 진보정당들에 전략적으로 투표를 해왔던 터였다. 그런데 어땠는가?

 

권영길 이후 역대 진보정당들 가운데 통진당 하나를 제외하고 대부분 정당과 그 지도부들의, 아니 주변의 자칭 논객이나 한겨레와 같은 언론들이 추구한 전략은 언제나 한결같았다. 자신들의 진보적인 의제를 현실에서 이루기 위해 그나마 방향이 일정부분 일치하는 민주당과 손잡기보다 이 사회의 정통 지배세력이자 정당한 집권세력인 보수정당과 손잡고 그들의 이해와 허락과 용인 아래 그것들을 이뤄보자는 것이었었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 시절 민주노동당은 한나라당과 손잡고서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을 포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2007년 대선과 이듬해 총선에서 폭망하고 그 책임을 노무현에게 돌리고 했었는데 당시 민주당 지지자들이 민주노동당에 대한 지지를 포기한 데에는 그런 민주노동당의 모습에 대한 실망감이 큰 역할을 했던 터였다. 물론 그보다는 정동영 하는 꼬라지 보고서 그냥 투표를 포기한 덕분에 민주노동당에 표를 줄 지지자들마저 투표장에 가지 않았던 것도 컸을 테지만. 최소 내가 그랬었다. 아무리 그래도 정동영에게는 표를 못 주겠는데 그렇다고 민주노동당에 표를 주지는 못하겠더라. 그때 민주노동당에 대한 감정이 그러했었다.

 

그러면 그 뒤는 달라졌었는가? 당연히 보수정당이 집권당이 되고 다수당이 되었으면 굳이 진보정당에게까지 손을 내밀 이유가 없으니 사실상 선택지가 없었다 봐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애원하고 매달려봐야 필요가 없으니 그냥 바라기일 뿐이다. 더구나 이후 민주노동당이 사라지고 NL계를 중심으로 유시민까지 참여해서 통진당이 만들어지면서 민주당과 연대하려는 모습도 보이고 있기도 했었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에서 지지자들이 착각했던 것이었다. 아니 그때도 이미 아는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NL들의 성향이 그래서 민주당과 연대를 추진한 것일 뿐 결국에 다시 예전 민주노동당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예 대놓고 유시민을 따라 정의당으로 들어갔었던 참여계를 밀어내고 내쫓고 나서는 역시나 보수정당과 연대하여 심지어 문재인 탄핵까지 언급하는 모습을 보인 바 있었다. 기억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 당시 사사건건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보수정당의 논리만 따라 읊던 모습들을. 심지어 그 보수정당을 두고 진정한 노동존중의 정당이라는 찬사까지 바치고 있었다. 그러면 정의당 뿐인가? 김규항이나 홍세화 같은 이들은 어땠을까? 한겨레와 같은 언론들은 어떠했을까?

 

오세훈에 이어 윤석열까지 그토록 이 사회의 약자와 소수자들을 무시하고 혐오하는 발언과 행동들을 쏟아냈는데, 노동자의 권리를 짓밟는 논리들을 늘어놓는데도 그에 대해 한 마디 비판조차 없던 것이 당시 정의당과 한겨레, 자칭 진보 지식인들이었었다. 그것은 윤석열 정권에서도 그대로 이어져서 아예 민주노총을 간첩으로 몰아가는 상황에서조차 정의당이 한겨레, 자칭 진보지식인 사이에서 그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오랜 진보진영의 동맹인 민주노총이 간첩으로 몰려 탄압받는 상황에서 진보를 자처하던 놈들이 침묵만 하던 것을 어찌 이해해야 하는가. 그러고서 윤석열이 내란을 시도했을 때 정의당에서 터져나온 첫일성이 윤석열 탄핵보다 이재명 집권을 막는 게 더 우선한다는 것이었었다. 하긴 그 전에 이미 그같은 2찍 진보들의 노선에 반대한 이들은 알아서 뛰쳐나와 각기 제 갈 길을 가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남아 있던 진보세력의 대통령후보란 어떤 인물일 것인가?

 

권영국이 뭔 소리를 하든 아예 관심조차 없는 이유일 것이다. 분명 선명했을 것이다. 듣기에 속이 시원할 정도로 입바른 소리들을 내뱉었을 것이다. 그래서 뭐? 그래서 과연 권영국은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현실에 이루어낼 것인가? 아, 정의당만 있는 게 아니라고? 녹색당은 더 심한 놈들이다. 노동당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진보에서 더 왼쪽으로 갈수록 그 사고방식이라는 게 김문수와 크게 다르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의 국적은 일본이었다는 말도 내가 2찍 진보새끼들로부터 처음 들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조선총독부에 있고 대한민국 정부는 바로 그 조선총독부를 계승한다는 말도 진보라는 놈들로부터 처음 들었었다. 당시까지 감히 보수지지자라는 사람들이 그따위 소리를 늘어놓을 수는 없었다. 뉴라이트가 전면에 나서기 전이었다. 그래서 과연 권영국이 당권을 잡고 진보정당을 이끌면 민주당을 진보적인 방향으로 끌어갈 수 있는 왼쪽의 자극제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연대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당연히 저들도 자신들이 추구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 신념에 따른 선택을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국민의힘이 될 것이고. 윤석열이 내란을 일으킨 상황에서도 탄핵보다 이재명 집권 막는 게 더 중요하다는 놈들이다.

 

그러니까 권영국이 뭔 공약을 내놓고 어떤 주장을 하든 결국은 국민의힘이 그것을 허락할 것인가부터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겨레에서 기사가 나오면 조선일보의 의도가 무엇이가를 추리해야 하는 이유와 같은 것이다. 어차피 국민의힘만 바라보고 그들과 연대하여 이루려는 방향들일 텐데 그래서 그런 것들이 가능한가. 가치가 없다는 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도 그래서 하는 말인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게 바로 자칭 진보고, 그래서 그들은 2찍 진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랜 동맹인 진보진영으로부터 버려졌음에도 여전히 그들만 바라보고 있는 민주노총처럼. 그래서 저놈들은 안된다. 관심도 가져서는 안된다. 당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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