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관 조고가 어느날 대신들이 있는데 사슴 한 마리를 던져 놓고는 모두에게 말한다.

 

"이건 말이오!"

 

그래서 사슴은 말이 되었다.

 

어느날 임금이 생선이 맛있다고 은어라 부르니 은어가 되었다가, 다시 나중에 생선을 맛보고는 실망해서 도로묵이라 부르라 했더니 생선 이름이 도루묵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권력의 권權은 저울의 권이다. 저울이 무게를 달 듯 서로 충돌하는 사안들에 대해 규준을 정하고 판단하여 분별하는 것이 바로 권력의 역할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도량형도 권력자에 의해 정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아니 정확히 도량형 자체가 징세의 기준이고, 화폐를 발행하는 경우 화폐의 단위가 되는 것이기에 권력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돈 1전의 가치를 은 1냥의 100분의 1로 정했다가 나중에 은의 가치가 오르고 구리가 귀해지면서 돈 400전이 은 1냥의 가치를 가지도록 정한다. 군포는 면 1필로 하되 길이는 포백척을 적용하여 한 척이 46cm 정도이고 길이는 전체 35척으로 한다. 아니면 난리가 난다. 하긴 그렇게 서로 다른 기준을 가지고 계량을 다투거나 하면 그를 판단하는 역할을 하는 것도 바로 권력이기는 했다.

 

내가 정한다. 내가 그리 정했다. 그러므로 내가 기준이다. 조국사태나 정의연과 추미애 장관과 관련한 이슈들에서 김어준은 자신의 뉴스공장에 관련자들을 섭외하여 직접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었다. 언론들이 특정인들의 주장만 열심히 받아쓰는 사이 언론이 주목하지 않는 또다른 관련자들과 당사자들을 직접 스튜디오로 불러 인터뷰를 통해 직접 자신들의 입장을 전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있었다. 당사자로서 이해와 주관이 반영된 주장이기에 온전히 믿을 수는 없다 하더라도 최소한 다른 언론들이 보도하지 않는 또다른 견해와 입장들을 통해 사실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언론들은 무어라 떠들고 있었는가. 정작 자신들은 취재하지 않은 대상들을 출연시킨 자체를 가지고 편향이라 주장하고 있지 않은가.

 

당장 추미애 장관의 경우만 하더라도 사실 논란은 추미애 장관의 아들 서모씨가 복무한 부대의 동료병사들과 간부들을 불러 물으면 이렇게 오래 끌 것도 없이 바로 해결될 사안이었다. 하지만 특정인의 주장만 오로지 받아쓰느라 심지어 중대가 달라도 당직은 같이 서니 같은 부대라는 해괴한 논리까지 내세워가며 다른 모든 증언과 주장들을 무시하기 일쑤였다. 권한을 가진 지원장교가 자기에게 주어진 권한으로 허락했다 말해도, 동료병사들이 별 문제없이 정상적으로 휴가가 연장되었다 주장해도, 국방부에서 원래 규정이 그렇게 되어 있다고 해명해도 절대 듣지 않는다. 오로지 현모씨의 주장만 받아서 당시 휴가연장은 불법적인 것이었다. 정상적인 절차를 거친 것이 아니었다. 그러다 나온 것이 병장회의라는 군대 갔다온 사람이면 어이없어 실소부터 터뜨릴 해괴한 근거였다. 그래서 누가 객관적이냐고? 누가 중립적이냐고?

 

KBS가 김경록PB의 인터뷰를 취사선택해서 왜곡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을 것이다. 당사자가 무어라 증언하든 결국 자신들이 바라는 결론은 하나였다. 자신들은 이미 그렇게 결론을 내렸고, 따라서 그 결론을 위해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서 왜곡한 의도는 정당한 것이었다. 한동훈에게는 광속으로 사과한 KBS가 그래서 아직까지 김경록PB에 대해 잘못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지 않은가. 전혀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 당시 '댓읽기'의 기자들이 보였던 태도를 기억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전혀 문제가 아니었다. 당연히 그렇게 하는 것이었다. 언론의 사정을 모르고 떠드는 것이다. 한겨레 김완도 그러면서 뒤에서 김어준 욕하더만. 원래 언론은 그렇게 기사를 쓰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신들이 제대로 기사를 쓸 수 있도록 너희들이 더 성의를 가지고 협조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이 바로 저리톡에서 김덕훈이 욕먹은 이유 아니던가. 내가 기사를 써주려 하는데 어째서 정경심따위가 인터뷰에 응하지 않는 것인가.

 

기자가 권력이란 것이다. 그러니까 정치부장 나부랭이가 몇 번이나 전화를 걸어가며 현직 국회의원을 압박하고, 그래도 안되니 원내대표에게까지 직접 전화를 걸어 따져댔던 것 아닌가. 어디 정치인 나부랭이가. 정치인에게도 그러는데 과연 일반 국민에게는 어떨까? 한겨레 기자놈이 그랬다. 덤벼라 문빠들아! 그 전에도 문죄인이라 부르면 어떤가고 페이스북에서 도발을 시전한 기자놈도 있었다. 인터뷰내내 인상이나 쓰며 일베에서 퍼온 질문을 균형을 맞추겠다고 던진 송현정이 그냥 하늘에서 떨어져내린 것이 아니란 것이다. 자기들이 대통령보다도 위에 있는데. 그러니까 검찰과 자기들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특수부가 아니면 검찰도 아니다. 특수부 출신이 아니면 승진도 이상한 것이다. 자기들이 기사를 쓰면 사실이 되고, 기사로 쓰지 않으면 없는 것이 된다. 그렇게 선택함으로써 그들은 스스로의 권력을 확인한다. 박덕흠의 3천억은 묻어도 추미애의 250만원은 대서특필한다. 그래도 된다. 자기들은 기자니까.

 

그것이 바로 기자들이 말하는 객관성의 정체인 것이다. 민주정부는 악이다. 정통성없는 죄의 온상이다. 아니더라도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오로지 민주정부를 공격하는 것만이 언론의 사명이고, 언론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지키는 것이다. 오죽하면 KBS의 기자 하나가 유튜브 채널에서 한국은행에서 내놓은 보도자료를 이해하지 못하겠기에 일단 정부 까는 기사를 썼다고 자백하고 있었겠는가. 왜 정부만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기사를 편승해서 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의사들의 진료거부사태에서도 정부의 정책이 절대 잘못되었을 것이기에 단지 방법만 잘못되었다. 청와대의 범죄와 부도덕을 밝히려면 검찰과 언론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건 한겨레의 입장이었다. 그래서 조선일보는 가장 신뢰받는 언론이 되는 것이고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가장 불공정한 찌라시가 되는 것이다. 왜냐면 자신들이 생각하는 객관성을 추구하는데 방해가 되는 반대편 주장들을 고스란히 인터뷰로 내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어째서 국민들이 객관적인 언론보다 정파적인 언론을 더 선호하는가. 기자들이 생각하는 객관성과 국민들이 생각하는 객관성의 차이가 그만큼 크기 때문인 것이다. 국민들이 생각하는 객관성이란 진짜 아무 주관도 정파성도 개입되지 않은 엄정한 사실과 구체적인 진실 그 자체일 텐데, 정작 기자들이 추구하는 객관성은 그냥 정부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다. 민주당의 반대편에서 그들을 공격하는 것이다. 또다른 정파성이며, 오히려 정파성이라는 인식조차 없기에 극단적으로 편향되어 있다. 그러니까 객관성과 정파성 가운데서 선택하는 것이 아닌, 더 지독한 정파성과 그나마 나은 정파성 가운데 선택한 결과란 것이다. 아니 내가 왜 정의당도 국민의힘도 국민의당도 지지하지 않는데 오로지 그들의 편에서만 기사를 쓰는 한겨레따위나 읽고 있어야 한다는 것인가. 내가 검찰의 입장에서 사물을 보고 싶은 것이 아닌데 뭐 좋은 일 보겠다고 JTBC 뉴스나 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인가.

 

바로 국민과 기자들이 가지는 객관석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괴리인 것이다. 기자들이 생각하는 객관성은 일반 국민들이 보기에 그냥 더 편향된 더 악랄한 정파성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자기들은 객관적이라며 자기들을 비판하는 국민들을 오히려 편향적이라 욕하고 있으니 상황은 더 악화될 뿐이다. 자신들에 동의하지 않는 국민은 모두 편향적이고, 오로지 자신들과 함께하는 국민만 객관적이고 중립적이다. 그 자체가 편향이라는 것을 언제쯤에나 저들은 알아차릴 수 있을까? 국민은 기자를 부정하고, 기자는 국민을 부정하고. 그래서 우습다. 자기들이 부정한 국민을 향해 제발 좀 도와달라고 기사를 써대는 뻔뻔함이. 자신들이 적대하고 있는 그 편향적인 국민들이 원래 언론의 자유와 기자들의 권리를 위해 함께 싸워준 동지들이었다. 선택한 것이다. 그런 것을 객관이고 중립이라 여긴다면 그렇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당위고 정의다. 어차피 자신들도 이전 정권을 그리워해서 그러고 있는 것일 테니.

 

아무튼 웃기는 것이다. 진짜 자기들이 중립적이라 생각한다. 자기들이 보도하는 내용들이 모두 객관적인 사실들이라 믿어 의심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니 자신들과 다른 내용을 보도하는 언론은 정파적이고 편향적이다. 그래서 모든 언론이 진보와 보수, 공중파와 케이블을 막론하고 모두 한 목소리로 떠들게 된다. 언론은 하나다. 그래서 기레기인 것이다. 개별 언론사와 기자와 기사를 구분해서 보라고? 세상에 쓸데없는 소리다. 언론 자신이 그렇게 구분해 사고하고 있지 않다.

 

기레기가 기레기인 이유다. 언론이 버러지인 이유다. 좋은 기자는 오로지 죽은 기자들 뿐이다. 좋은 언론사는 오로지 폐간된 언론사 뿐이다. 언론은 하나다. 언론이란 자체가 언론이 주장하는 객관성과 중립성의 근거다. 언론이 권력이다. 조선일보가 가장 신뢰받는 언론인 이유다. 정의당조차 조선일보의 인정을 받기 위해 노선을 바꾼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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