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가 사는 집이 방 두 개 11평 짜리다. 거실 겸 주방 하나에, 목욕탕 하나에, 방 두 개, 혼자 살기 딱 좋겠다 싶어 구했는데 옆집 사람이 어느날 내게 묻더라. 그 넓은 집에 혼자 살아요? 

 

어떤 사람에게는 11평이 혼자 살기 딱 좋은 넓이인데, 어떤 사람에게는 혼자 살기에 너무 넓은 집일 수 있는 것이다. 전에 살던 집은 지금 사는 집보다 더 좁았는데도 같은 평수의 옆집에 일가족이 최소 4명 이상 살았던 모양이다. 그래도 부엌 하나에, 제법 넓은 화장실 하나, 방 두 개니 그럭저럭 살 만 했던 모양이다.

 

어떤 사람들은 일가족이 복작거리며 사는데 나 혼자 여유부리고 살 수 있는 이유는 사실 하나다. 내가 혼자 살기 때문이다. 당연히 혼자 사는 만큼 버는 돈이 있으면 딱 나 혼자 쓰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여유가 있다. 일가족이 함께 살면서도 항상 쪼들리던 이웃집에 비해 벌이는 어쩌면 더 적었을 테지만 나는 나 하나만 건사하면 되었다. 그래서 가족이 겨우 복작이며 사는 집이 내게는 여유있게 살기 좋은 집이다.

 

어떤 사람들은 13평이 좁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13평도 너무 넓다고 말한다. 그러면 13평짜리 임대주택은 어떤 사람들을 위한 것일까? 그마저도 없어서 더 좁고 열악한 환경에서 가족들끼리 부대끼며 살아가는 이들이 우리의 현실에는 아직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13평은 아이 둘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기에 너무나 간절한 환경일 수 있다.

 

오래전 사람들이 결혼도 않고 출산도 않으려는 이유가 매스미디어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미디어를 통해 보는 한국인의 평균적인 섦과 실제 현실에서 겪는 일상의 삶과의 사이에 괴리게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처지를 절망케 만들고 끝내는 많은 것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당연히 결혼했으면 13평 아파트 따위는 너무 좁고, 아이가 둘 있으면 30평대 아파트에서 살아야 한다. 아이가 둘 있는데 13평 아파트에서 살 수 있다 말하는 대통령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현실에서는 아이가 있어도 그만도 못한 집에서 그보다 더 비싼 월세를 내가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과연 사람들이 그런 현실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드라마에서 가난이 사라진 지 오래 되었다. 드라마에서 묘사하는 가난이 진짜 가난같이 느껴진 경우는 내 기준으로 '나의 아저씨'에서 이지안 정도 말고는 거의 없다시피 했었다. 그조차도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은 특수한 사정들이 이지안에게서 일상성을 제거하고 있었다. 그래도 평범하게 사는데 그렇게 가난하게 살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이지안이 세살던 동네라는 게 결국 그런 사람들 모여 사는 곳이 아니던가.

 

13평짜리, 그것도 전용면적이 13평이면 아주 넓다고는 못해도 그리 좁다고만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신혼부부가 아이를 데리고 살 만한 곳이 못된다. 일가족이 함께 살려면 큰 일이 나는 곳이다. 언론이 그렇게 떠들고 사람들도 덩달아 그리 부화뇌동하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신혼부부가 아이 낳고 13평 짜리 집조차 얻지 못할 정도면 결혼도 말고 아이도 낳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실제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저런 집에서 사느니 그냥 애 낳지 말라. 그러고도 출산률이 어떻고 잘도 떠들어대고 있는 것이다.

 

없어도 사는 것이고 가난해도 사는 것이다. 모자르면 모자른 만큼 살아가는 게 바로 일상의 사람들인 것이다. 그런 게 현실이다. 11평이면 혼자 사는 게 적당하고, 11평이면 가족이 함께 살기에 충분하고, 최저임금 올렸더니 나라가 휘청일 정도로 최저임금만 겨우 받는 사람들이 그리 많은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어째서 기준들만 그리 높은가. 최저임금만 받아서 그나마 아파트라도 장만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이해는 한다. 지금 언론사 기자들 거의 있는 집 자식들이다. 돈 들여서 과외해가며 좋은 대학 들어가서 어렵사리 언론고시 합격하고 기자씩이나 되었다. 그들에게 가난이란 딱 그 정도까지인 것이다. 정의당이며 한겨레도 그 꼬라지인데 다른 언론이야 말할 것이 있을까. 그래서 13평 아파트에서 애 둘 기르는 게 그렇게 큰 일 날 일이란 것인가.

 

물론 대통령의 말은 언론의 보도와는 전혀 다른 의도와 맥락에서 나온 것일 터다. 신혼부부에 아이 하나가 기준이고, 아직 어릴 경우 둘 까지는 함께 살 수 있다. 장차 아이가 자라면서 더 넓은 평수의 집이 필요해질 때 그리할 수 있도록 해주는 사다리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 월세 20만원이면 한 달에 얼마를 더 저축할 수 있을까. 전용면적 13평짜리 집 월세가 얼마인지 시세를 알면 답이 바로 나올 것이다. 그럼에도 그 발언 자체를 소비하는 언론의 방식이 마음에 안 드는 것이다.

 

가난을 이해하지 못한다. 언론이 가난을 전혀 절대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하게 되었다. 노력조차 않는다. 배에 기름이 낀 자칭 진보를 보고 있으면 시절이 그리 되었음을 느끼게 된다. 아직 가난은 현실에 넘쳐나는데. 화도 나지 않는다.

지금 검찰총장이 문무일이었으면 공수처의 내용이 어떠했을까 잠시 가정해 보자. 김용민 의원이 이미 준비하고 있다는 수사와 기소 분리법안 역시 마찬가지다. 당시 검찰개혁에 있어 협상의 파트너는 야당이 아닌 검찰 자신이었다. 야당보다는 검찰 자신이 정부에 협력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검찰개혁에서 자기 지분을 찾아먹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가?

 

윤석열의 징계여부는 이제와서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검찰이 그토록 반대하던 공수처법이 더 강경해진 내용으로 통과된 사실이 중요하다.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마저 더 엄격하게 준비중에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누구의 덕이다? 검찰 스스로가 파트너가 되기를 포기했다. 아예 검찰개혁 저지에 올인하며 정부와 여당에 척을 지는 선택을 하고 말았다. 우리는 어찌되었든 야당의 편이다. 야당까지 동원해서 의회에서 입법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저지하겠다. 문제는 야당도 검찰과 언론을 믿고 협상따위 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 어쩌겠는가. 포기와 강행 둘 중 하나만 민주당 입장에서 남은 것이다.

 

포기는 안된다. 포기하는 순간 어떻게 되는가 열린우리당의 경험으로 뼈가 아프도록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어떻게든 밀어붙여야 한다. 기왕에 이렇게 된 것 협상따위 상관없이 원래 자신들이 하고자 하던 방향으로 밀고 나가야 한다. 그러니까 선택했어야 했다.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이 180석을 얻은 순간 검찰은 의회를 장악한 민주당의 힘을 의식하고 전략을 달리했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그동안 윤석열이 해 놓은 짓이 있고, 더구나 한동훈 등 측근들과 가족까지 걸린 상황이다. 기껏 준비한 김봉현이란 폭탄도 오히려 바뀐 힘의 구도에 자해카드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도 여전히 밀고 나갈 수 있는 것은 윤석열의 대선후보 지지율 때문일까?

 

검사들이 정치를 잘 모른다는 단적인 예일 것이다. 차기 대선후보 지지율 아무리 높아봐야 실전에 가면 다 의미없는 것이다. 그동안 경선이 시작되기 전까지 지지율만 높게 나오다가 결국 실전에서 망하고 만 정치인이 어디 한둘이게? 그래도 윤석열이 차기 대통령이 될 지도 모른다. 차기정권의 주인이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선 검사들도 조금씩 눈치채고 있을 지 모른다. 윤석열의 버티기가 결국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검찰개혁을 더욱 엄격하게 강행해야 한다는 당위만 강화시켜주고 있다는 사실을. 검찰은 개혁의 파트너가 아닌 대상임을 확인시켜주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윤석열이 대선에도 나가지 못하면 나머지 검사들은 어떻게 되는가?

 

법만 공부한 바보들이란 것이다. 지금이라도 출구전략을 짜야 한다. 검찰 내부에도 개혁적인 검사들이 있다. 검찰개혁의 원론에 찬성하는 올바른 검사들이 있다. 검찰이 개혁의 주체가 되고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누구를 쳐내야 하는가? 윤석열이 지금 대선후보 지지율을 미끼로 검찰 전체를 끌어안고 함께 침몰하는 중이란 것이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윤석열은 해임 등의 중징계를 받아야 한다. 그러면 비로소 깨닫겠지. 자신들이 지금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가를.

 

몇 번이나 이야기했다. 윤석열이라 다행이다. 문무일은 더럽게 짜증났었다. 아마 문무일이었다면 윤석열처럼 터뜨리더라도 총선을 앞두고 노려서 단기에 터뜨렸을 것이다. 조국 하나 잡자고 난리치기에는 검찰이 입을 피해도 만만치 않다. 정권을 상대로 한 싸움이란 것이다. 그리고 끝났다. 검찰이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남았을 것인가. 재미있다.

2015년 벌써 몇 번 째인지 모를 민주당의 혁신안이 나왔을 때 민주당의 고인물들이 어떤 식으로 반응했는가를 기억한다. 말 그대로 당이 쪼개지고 말았다. 도저히 혁신안 못 받겠다고 당대표를 들이받고 물러나라 압박하고 그리고는 끝내 당을 따로 차려 무더기로 뛰쳐나갔었다. 어째서 정당들이 당을 혁신하겠다 할 때마다 외부인사로 위원회를 꾸리는가. 자기가 자기를 혁신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검찰 역시 공수처가 설치되면 수사대상이 된다. 이번 김봉현 접대사건에 대한 수사결과에서도 드러난다. 접대한 당사자인 김봉현까지 포함해서 n분하는 꼼수를 써가며 어떻게든 접대받은 당사자들이 빠져나갈 수 있도록 틈을 만들고 결론을 내고 있었다. 아예 뇌물도 아니었다. 그냥 김영란법이다. 이따위로 검사가 검사를 봐주는 제식구 감싸기가 일상화되어 아예 은행계좌 들킬 걱정 없이 마음껏 해쳐먹던 검사들이 이제 공수처를 신경쓰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검사가 공수처에 반대한다고 그 주장에 귀를 기울일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물론 당시 민주당 고인물들이 하던 주장에도 아주 들을만한 부분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원래 개혁이란 100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백신이 일정한 부작용에도 더 큰 예방효과를 위해 일상적으로 접종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다소간의 부작용의 위험에도 더 큰 공익을 위해 새로운 제도를 시행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검찰에 문제가 있는가? 없는가? 반정부에만 올인하는 놈들 입장에서야 정부 공격하는 검찰은 곧 정의고 진리고 진실일 것이다.

 

하여튼 같잖은 것이다. 분명한 개혁의 대상이고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사실을 스스로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는 검찰의 반발을 그대로 받아 개혁반대의 이유로 삼는다. 도대체 그 입으로 떠드는 정의니 공정이니 하는 가치란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표창장에도 분노하는 그 정의감은 어째서 검찰의 독선과 독주, 전횡과 비리에는 눈감는 것인가. 버러지는 버러지일 뿐. 세상에는 참 뇌를 우동사리로 쳐먹는 놈들이 너무 많다.

국민의힘이 가장 크게 실수한 것이 민주당을 예전 민주당으로 생각하고 전략을 짰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언론도 한 몫 했다. 예전 열린우리당 같으면 모든 언론이 나서서 이런 식으로 여론몰이를 하면 눈치를 보며 이탈하는 인간들이 반드시 나왔다. 더구나 같은 편이라 여기는 자칭 진보언론에서 무어라 일방적인 기사를 쏟아내면 그것 때문에도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인간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21대 총선을 거치면서 보지 않았는가. 아니 20대 총선에서도 국민의힘이 떨어져나갔다는 이유로 모든 언론은 민주당만을 적대하고 있었다. 어차피 민주당 망하라는 언론놈들 신경쓸 이유가 무엇인가.

 

그래서 또 오판한 것이 민주당이 지금 174석이라는, 우호의석까지 더하면 혼자서도 얼마든지 대부분 법안을 처리할 수 있는 막대한 의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유일하게 민주당이 의식해야 하는 대상은 국민의 여론이다. 따라서 국민의 여론을 움직일 수 있게 철저히 명분을 쫓는 행보를 소수정당인 국민의힘은 선택했어야 했다. 기왕에 민주당이 하고자 하면 공수처를 아예 막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최대한 자기들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오도록 타협을 시도했어야 했다. 자기들 동의 없이 공수처장 후보조차 선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용해서 자기들과 성향이 최대한 일치하는 인물을 공수처장에 앉히려 시도한다. 그런데 안했다. 아예 안하겠다. 아예 못하겠다. 그냥 배째라. 그래서 배쨌다.

 

민주당의 힘을 오판하고, 자신들의 실력을 오판했다. 검찰과 언론의 위력에 대해서도 너무 관성에 기대어 판단하고 있었다. 언론은 더이상 전처럼 민주당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지난 총선이 보여줬다. 후보경선에서조차 언론보다 지지자들의 의지가 더 결과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언론은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적이다. 언론이 아닌 당원과 지지자들의 의지만이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이 정치생명을 이어가게 만들어준다. 무엇보다 이낙연의 눈앞에 차기 대권이 아른거리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는 선의가 아닌 욕망을 보는 것이다. 차기 대권이 눈앞에 아른거리는데 과연 언론이 지랄한다고 공수처를 포기할 정치인이 어디 있을 것인가.

 

그 결과인 것이다. 차라리 국민의힘이 끝까지 반대해서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국민의힘이 적당히 중간에 타협하고 공수처장을 이상한 놈으로 앉히려 했으면 더 곤란해지는 것은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었을 것이다. 감사원장을 보라. 윤석열을 보고. 그래서 검찰과 언론 믿고 예전 민주당만 생각하고 올인했다가 민주당의 압도적인 힘 앞에 그냥 쓸려나가고 만다. 그것이 현실이다. 국민의힘도 언론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처음에는 두려워했지만 언제부터인가 무시하기 시작했던. 싸움은 한 번에 끝내는 것이다. 이낙연이 정규전 하는 방법을 안다. 정규전은 이재명식 비정규전과 다르다.

 

아무튼 이낙연을 믿은 보람이 있었다. 이낙연의 선의가 아닌 대권에 대한 욕망을 믿었다. 한참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여전히 이재명과 1,2위를 다투는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원과 지지자, 그리고 국민에게 앞세울 자기만의 실적이 필요하다. 자신을 과시할 실력과 성과가 필요하다. 공수처 설치 연내에 못하면 이낙연의 대권도 없다. 오히려 민주당이 압도적인 의석을 가지고 있기에 더 절박할 수 있었다. 내일인가? 본회의에서 공수처법 개정안 통과되고 윤석열 징계받으면 겨울이 무척 따뜻해질 것 같다. 언론이 병신이다. 언론을 믿는 놈은 더 병신이다. 새삼스레 확인한다.

그러고보면 그동안 민주당에서 지지자들의 바람과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인 대부분 정치인들은 언론과 상당한 친분을 과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언론이 좋아하고 보수정당과도 원만하다. 그런 걸 흔히 중도니 실용이니 하는 말로 포장하고 있었다. 한 마디로 대세를 쫓을 줄 안다. 언론을 거스르지 않고 보수정당과도 맞서지 않는다. 대신 언론의 우호적인 보도에 힘입어 지지자들의 반감과 달리 대중적인 인지도도 높고 여론도 좋아 무난하게 선수도 쌓아간다.

 

이를테면 최근 정치인들로는 21대에서도 당선된 박용진이나 낙선하고 아예 공천에서 탈락했지만 김해영과 금태섭이 그런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당 내부에서 민주당을 공격하면 언론이 대서특필하며 이미지까지 좋게 기사로 써준다. 민주당 내부에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 지도부, 심지어 지지자들까지 공격하면 언론에 의해 오히려 대중들에 좋은 이미지로 자신을 알릴 수 있다. 그러니까 더욱 언론에 잘 보이기 위해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안에서 공격하려 애쓰게 된다. 문제는 과거에는 그렇게 언론을 통해 이미지를 만든 무리들이 세력까지 만들어 민주당을 좌지우지하고 있었지만 안철수 덕분에 더이상 그러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아니 20대 이후, 더구나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윤석열이 총선을 반 년 이상 앞둔 상태에서 성급하게 칼을 겨누면서 무리하게 민주당의 총선패배에 모든 것을 걸게 되면서 언론 입장에서도 그럴만한 여유가 사라진 것이 큰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어떻게든 민주당이 총선에서 지도록 해야 했기에 민주당 내부의 우호적인 세력들을 봐줄만한 여유가 없어지고 만 것이다. 민주당이 적이다. 민주당 내부의 우호세력까지 모두가 이번 총선에서 폭망해야 할 적인 것이다. 덕분에 민주당에서 정작 언론에 빚을 지고 눈치를 봐야 할 사람이라고는 박용진을 포함한 아주 소수만 남고야 말았다. 특히 민주당 초선 대부분이 이번 총선에서 여론의 집중공격 대상이 되고 있었는데 이제와서 언론의 눈치를 봐야 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지금 민주당 내부에서 개혁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고 있는 주체들의 정체인 셈이다. 그동안 언론에 빚을 지며 언론을 바라보고 정치하던 무리들과 어차피 처음부터 언론과 적대하던 이들 사이의 충돌인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여론을 신경써야 한다. 여론은 언론이 만든다. 언론이 좋아하는 정책이 좋은 정책이다. 기자들과 원만하게 좋은 기사가 나오게끔 관리하는 것이야 말로 좋은 정치다. 언론은 처음부터 민주당의 적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적이었다. 그러니 언론과 상관없이 지지자와 국민만 믿고 과감하게 개혁을 밀어붙여야 한다. 그럼에도 그런 노선갈등이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것은 숫적으로나 명분으로나 이미 일방적인 상황이란 것이고, 그런데도 초선들이 직접 나서야 할 만큼 지지부진한 것은 그만큼 언론에 친화적일수록 선수가 높아서 쉽지 않은 상황이란 뜻일 것이다. 어찌되었거나 답답한 상황임에도 긍정할 수 있는 이유다. 더이상 민주당은 이전의 민주당과 같지 않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열린우리당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이 새정치민주연합 시절만 해도 언론이 크게 써준다고 당의 노선이나 정책에 대해 아무말이나 막 해대던 놈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방향성을 보이면 안에서부터 먼저 딴지를 걸고 나서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안철수는 민주당 지지자 입장에서 구세주 거의 다음 급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제 그런 놈들 목소리도 박용진 정도 말고 거의 들리지 않는다. 어차피 선거에서도 떨어진 김해영따위 뭐라 떠들어도 그런 놈 있었나 하고 말 정도다. 언론에 빚지지 않았다. 오히려 언론의 방해를 뚫고 당선되었다. 언론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게 될 이번 초선들은 그야말로 민주당의 미래인 것이다.

 

이 또한 모두 윤석열이 의도하지 않게 만든 큰 그림일 것이다. 윤석열이 몇 달 만 참았다가 총선 직전에 그 모든 것들을 터뜨렸으면 문재인 정부나 민주당이나 꽤나 상황이 어려워졌을 것이다. 민주당이 궁지에 몰리면 언론도 옥석구분을 통해 선별하여 내부에 협력자들을 남겨둘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이놈은 장차 우리들 편이 되어 줄 것 같고, 이놈은 편은 아니더라도 눈치는 볼 것 같고, 이놈은 대가 약해서 조금만 압박하면 쉽게 꺾이고 물러날 것 같고, 그런데 어쩐가? 아예 대놓고 민주당에 적대적인 모습을 보인 탓에 경선에조차 거의 관여하지 못하고 말았다. 언론이 그토록 하나가 되어 밀었던 금태섭의 경선탈락을 보라. 언론과 상관없이 지지자만 보며 정치할 수 있는 초선이 이제 다수가 되었다. 초선만 믿어도 민주당은 크게 어긋나지 않을 것이란 기대가 생기게 되었다.

 

아직 민주당 내부에 국회의원 그 자체가 목표인 의회귀족들이 적잖이 남아있음을 알고 있다. 국회의원 배지를 지키기 위해 개혁보다는 현상유지를, 지지자보다는 여론을 움직이는 힘을 가진 언론과 보수정당의 눈치를 더 보는 놈들이다. 다행히 이제는 소수이고, 대놓고 목소리조차 내지 못한다. 저 박용진조차 평소에는 그냥 쥐죽은 듯 있어야 한다. 과거와 비교하면 얼마나 크게 달라진 모습인가. 이런 민주당의 모습을 오래전부터 기대해 왔던 것인다.

 

이번에 당선된 초선들만이 아니다. 원외에서 대기중인 아깝게 낙선한 후보들 가운데도 상당수가 언론에 빚을 지지 않으며 오히려 극복의 대상으로 여기는 이들이란 것이다. 언론은 두려움의 대상도, 타협의 대상도 아닌, 오히려 극복과 개혁의 대상이다. 언론과 상관없이 자신들이 처음 정치를 하기로 마음먹은 결심을 일관되게 추구하려 한다. 좋은 조짐이다. 대한민국 정치의 미래가 바로 이들에게 달렸다. 오랜만에 기쁘다. 부디 이번주 큰 승리를 거두어 주기를. 바란다.

역시 말했을 것이다. 미투란 박근혜 탄핵 이후 구심력을 잃은 여성주의자들이 다시 결집하기 위한 명분이었다고. 자칭 진보들이 다시 한 번 보수와 손잡기 위한 매개이기도 했었다. 그래서 미투의 타겟은 항상 민주당이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김학의다. 무고한 일반인 여성을 유인해서 성폭행하고 그 사실을 이용해서 성접대의 수단으로 사용했다. 그야말로 여성을 넘어선 인간에 대한 유린 그 자체라 할 수 있었다. 그런 김학의의 출입국정보를 확인했다는 이유로 정부를 공격하는 정당을 어떻게 여겨야 하는가. 그런데 지금 여성주의자들은 누구와 손잡고 있지?

 

한겨레가 국민의힘 편에서 공수처와 탈원전에 반대하고 나설 수 있는 이유인 것이다. 정의당이 국민의힘을 노동존중 여성존중의 정당이라며 기꺼이 전위부대 역할을 하고 있는 이유인 것이다. 국민의힘의 성추행 성차별 성희롱은 아예 문제거리가 되지도 않는다. 비판거리도 되지 않는다. 아마 지적하면 말할 것이다. 원래 그런 정당이었으니까. 성소수자 단체, 노동단체, 환경단체, 여성단체 어디도 국민의힘에 문제를 제기하거나 책임을 묻는 행동을 보이거나 하지 않는다. 재미있는 건 원래 그런 정당이면 아예 함께하는 자체가 불가능해야 할 텐데 꼭 보면 함께 행동하는 놈들이 적지 않다.

 

김학의를 이유로 정부를 공격하는 정당과 그 정당과 손잡고 정부부처를 수사하려는 검찰과 그들의 앞잡이 역할을 기꺼이 맡으려는 자칭 진보들을 어떻게 이햏야 하는 것인가. 김학의를 묻었던 검찰 수뇌부를 움직여서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여성검사들을 징계하려 시도한 자칭 진보 여성주의 법조인들도 있었다.

 

정권 초반 이슈가 되었던 메갈과 워마드에 흔하게 올라오던 글들을 기억한다. 바로 한겨레, 경향, 시사인, 정의당이 옹호하던 바로 그 사이트들이다. 여성이기에 박근혜는 억울하고, 문재인 정부는 재기해야 한다. 내가 진선미 등 민주당 내 여성주의자들도 곱게 보지 않게 된 이유다.

 

주호영의 김학의 발언으로 더 분명해졌다. 장자연 씨의 억울한 죽음과 관련된 조선일보 행사에 정의당 1번 비례대표가 참석했다. 여성주의와 진보가 지향하는 정의란 과연 무엇인가. 너무 솔직해서 화도 안 나는 지경인 것이다. 

판사가 참 하찮은 존재였구나. 판사 개인의 뒷조사를 해도 상관이 없고, 심지어 그것 물타기하겠다고 파렴치한 범죄자인 김학의에 빗대는데 오히려 판사들은 그 편을 들지 못해 안달이고,

 

하다하다 이제는 김학의까지 들고 나오는가. 경향과 한겨레의 기사가 기대가 된다. 정의당의 논평은 어떨까? 이수정 교수는? 김재련 변호사는? 자칭 여성주의자들은 여전히 저들의 편에 설 것인가. 김학의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법무부에 대한 압수수색까지 지지할 것인가?

 

당시 어째서 법무부는 김학의의 출국정보를 확보하려 노력하고 있었는가. 김학의란 인간이 어떤 범죄들을 저질렀는가. 하지만 김학의는 무고한 그냥 민간인이다. 역시나 언론 믿고 벌이는 짓이리라.

 

 

오래 사귀어 온 연인이 있다. 아니면 어려서부터 함께 벌거벗고 뛰어다니던 친구일 수도 있다. 어느날 이렇다저렇다 아무 말 없이 그냥 하자는대로 다 들어주기 시작한다. 무슨 의미일까?

 

앞으로도 다시 볼 사이라면 어떻게든 서로 맞춰가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는 것이다. 그래서 요구도 하고 야단도 치고 핀잔도 주고 그러다 가끔 싸우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차피 다시 볼 사이가 아니라면 굳이 그런 노력은 필요가 없는 것이다. 어니 오히려 더이상 보지 않을 사이이기에 괜한 꼬투리를 남기는 자체가 꺼려질 수 있다. 그냥 좋게좋게 더 나쁘지만 않게 끝내고 말자.

 

결론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계속 볼 사이라면 절차의 정당성에 대해 다투기도 했을 것이다. 서로 설득하고 이해시키려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냥 들어주라. 원하는대로 절차적 정당성을 철저히 갖추어 주라.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할 수 있도록 지켜봐 주라. 무슨 의미이겠는가.

 

다시 한 번 언론이 쓰레기라는 이유다. 이낙연 사무실 복합기 대여금 76만원 대납해 준 건 대서특필하면서 바로 그 옵티머스를 윤석열이 무혐의로 봐주며 피해자가 속출한 부분은 철저히 무시한다. 자칭 진보까지도 그렇다. 그런데 옵티머스와 라임 관련한 부분만으로도 윤석열은 공직자로서 절대 해서는 안되는 짓들을 저질러 온 것이다. 사실일 경우 처분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 말들이 많은 이유는 언론이 윤석열의 잘못은 절대 보도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도 윤석열의 범죄들은 철저히 없는 일로 묻으려 한다.

 

그냥 어차피 내일이면 목잘릴 죄수를 보는 심정일 것이다. 날 밝으면 바로 끌려가 효수당할 놈인데 여기서 뭐라 떠들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가는 길에 원이나 없게 하자는대로 다 들어주라. 긍휼일까? 냉정일까? 딱 날짜도 좋다. 9일 공수처법 개정안 통과되면 바로 다음날 징계위원회다. 이낙연이 대통령에 진짜 뜻이 있다면, 더구나 측근의 죽음에 조금이라도 분노를 느끼고 있다면 여기에 자기 정치생명을 걸어야 한다.

 

결론은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바대로 지금 청와대와 법무부는 윤석열의 해임 이후까지 바라보고 행동에 나서는 중이란 것이다. 공수처와 윤석열 해임, 그야말로 검찰 초유의 날일 것이다. 경향 놈들 얼마나 통곡할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그동안 개소리 헛소리 말도 안되는 소설이라며 욕 많이 들었었는데,

 

그래서 그동안 자칭 진보나 검찰과의 관계에 있어 내가 한 말 가운데 틀린 게 몇이나 되던가.

 

거의 예언 수준이었다. 내가 놀랄 정도였다. 이 새끼들 이렇게 솔직한 놈들이었던가.

 

지난 조국사태 이후 내 예상 가운데 상당수가 들어맞았음을 스스로 자부심으로 여긴다.

 

김어준에게 낚여서 윤석열 충정 어쩌고 했던 건 흑역사.

 

뭣보다 조국사태 터지고 바로 검찰이 배후에 있다며 지적한 부분은 나 스스로도 감탄한 부분이다.

 

자칭 진보는 내가 안다. 버러지들.

그러고보니 작년 조국사태가 상당히 진전되어 심지어 청와대의 선거개입 수사까지 강도높게 진행되던 와중에도 김어준은 윤석열의 충성심에 의해 촉발된 것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었다. 아주 디테일하게 윤석열이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며 그런데도 여러 사정들로 인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여기저기서 열심히 떠들어대고 있었다. 혹시라도 청와대 쪽에서 들은 이야기인가. 이제와 돌이켜 보면 세상에 그런 개소리도 달리 없을 수준이었지만.

 

모든 의문이 풀리는 것 같다. 윤석열이 검찰총장에 임명되던 당시부터 김어준이 매우 호의적으로 윤석열의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감정을 풀어 설명하고 있었다. 윤석열을 직접 아는 것이 아니고, 청와대에서도 당시 윤석열을 반대했다면 누구로부터 들어서 그렇게 상세하게 풀어 떠들고 있었던 것인가. 그래서 초반 전선이 하나로 모이지 못했었다. 여전히 지지층 내부에서 윤석열의 선의를 믿는 사람들이 남아 있으면서 제대로 힘을 모으지 못하고 흩어지고 말았었다. 채널A의 검언유착 의혹이나 추미애 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에도 한 몫을 했었다고.

 

하긴 아니라면 당시 김어준이 떠들던 헛소리들의 정체가 불가사의하기는 하다. 윤석열의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이란 언론을 통해 언플하는 과정에서나 나오던 이야기였을 것이다. 대통령 감옥에 보낼 계산을 임기 초부터 하고 있었다는데. 역시 기자가 검찰과 얽히면 기레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인가. 떠도는 이야기가 그냥 듣기에도 설득력이 있다. 기자새끼를 사람으로 봐서는 안되었다는 이야기다. 넘어간 김어준도 병신인정이고. 벌써 몇 달 째인가. 웃기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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