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한 정당에서 대선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리려면 적어도 자기 이름을 내걸고 후보 한둘쯤 당선시킬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한다. 당의 지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이 후보자의 도움을 기대해야 한다. 이를테면 지난 총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보인 모습이나, 그동안 박근혜가 선거의 여왕이라 불리며 보수정당의 승리를 이끌었던 것이 그런 대표적인 예다. 자기 이름만으로 그만한 지지와 득표를 확보할 수 있다.


당연히 그렇게 자기 이름을 빌어 당선이 된 정치인은 그에게 정치적으로 빚을 진 그의 사람이 된다. 완전한 자기 사람이라 하기는 어렵더라도 여러 정치적인 문제에서 자신의 편에 서기 쉬울 것이다. 그렇게 자기 사람을 만들고 세력을 넓혀간다. 당장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박원순은 당선이 확실시되자 자기 선거운동은 뒤로 하고 구청장 후보들 지원에 앞장서고 있었다. 각각의 기초단체장, 기초의원들이 곧 정당의 풀뿌리조직을 이룬다. 정차 대선후보 경선이라도 치르면 이들은 곧 박원순의 편에서 표를 던질 수 있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모두가 아니더라도 그런 식으로 자기가 시장으로 있는 서울에서 자기 기반을 넓혀간다. 그런데 이재명은 어떠했는가.


선거과정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향해 쏟아진 검증의혹들이 남긴 가장 큰 상처일 것이다. 자신을 향한 수많은 의혹들에 대해 방어하기 급급하느라 다른 시장이나 군수의 선거지원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자신을 향한 네거티브가 일파만파 커져가자 당에서 지도부까지 지원에 나서는 상황을 만들고 말았다. 이재명을 지지하느라 오히려 지지자들로부터 온갖 비난을 들어야 했던 당내 정치인들에게 거꾸로 빚을 진 상황이 되었다. 물론 이재명은 그런 부채따위 깔끔하게 잊을 것이다. 그러나 정산을 제대로 안하고 사람의 마음을 잡는 방법이란 어디에도 없다. 갚지 않으니까 부채다. 그리고 부채는 어느 순간 결정적일 때 어음으로 돌아오게 된다.


아무튼 경기도라는 가장 큰 지자체의 장이 되었으면서도 정작 실속은 크게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바로 문빠들과 바른미래당이 만든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철저히 이재명을 궁지로 내몰았다. 아예 낙마시키지는 못해도 옴짝달싹 못하게 완전히 옭아맨 채 고립시키고 있었다. 최소한 대선후보에 도전하려면 경기도당은 이재명의 편에 서야만 한다. 그런데 전혀 이재명에 신세진 바 없는 경기도당이 그렇게 바란다고 움직여주기나 할 것인가.


한 마디로 대선후보로서 급을 보여준 선거였다 할 수 있다. 박원순은 자기 이름으로 여러 후보들을 당선시켰다. 가장 큰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지만 적극적인 지원유세에 나섰던 영향도 아주 무시하지는 못할 것이다. 김부겸 역시 험지인 대구에서 상당한 성과를 일구는데 크게 기여한 바 있었다. 김경수는 그런 점에서 경남이라는 최고 격전지에서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했을 것이다. 그러면 이재명은?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했지만 그 승리에 이재명의 몫은 보이지 않는다. 이재명의 생각은 다를지 모르겠다.


아마 다음 대선을 노리려 한다면 지금부터 바쁘게 움직여야 할 것이다. 경기도지사로서 도정에서 성과를 보여주어야 함은 물론 이번 선거에서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각 기초단체장, 기초의원 등 풀뿌리 조직을 자기의 편으로 돌리기 위한 정치적인 노력도 계속해야 할 것이다. 그마저 다른 경쟁자들에 비해 몇 걸음이나 늦다. 뼈아플 것이다. 그것이 이재명이란 인간의 한계인 것이다. 지지자를 적으로 돌려서는 안된다. 당연한 상식을 무시한 결과다.

사실 기축옥사 전까지만 해도 동인과 서인이 서로 못죽여 안달인 사이는 아니었었다. 호남에서만 천 명 넘게 죽어나갔었다. 동인의 인재들을 씨가 마르다시피 했었다. 거의가 동인들에게는 동문이었고 한 집안 사람이었다. 원한이 작을 리 없었다.


그래도 북인이 몰락하고 나서 서인과 남인은 함께 인조반정에 참여한 것도 있어서 어느 정도 타협하며 공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여전히 정권을 주도하기 위한 경쟁이 조정 안에서 이루어지고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아예 상대의 씨를 말리겠다는 극단적인 수준은 아니었다. 문제는 숙종이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몇 차례 상대 당파를 아예 피로 씻으며 조정의 주류를 교체했던 이른바 환국정치였다. 이때 죽어나간 사람들이 이후 각 당파의 주요인물들에게 스승이었고 집안의 어른들이었다. 아예 직계 존속이 희생된 경우도 있었다. 원한은 원한으로밖에는 갚을 수 없다.


노빠들이 자유한국당을 증오하는 이유다. 아니 노빠 뿐만 아니라 민주화 과정을 지켜 봐 온 대부분 사람들이 자유한국당에 적대감을 가지는 이유다. 그나마 김영삼이 3당합당으로 민주화의 상당한 지분을 가지고 합류한 탓에 그래도 많이 누그러진 것이 이런 정도다. 아예 호남에서는 자유한국당에 투표하는 유권자가 없다. 심지어 자유한국당에서 떨어져나온 바른미래당도 외면받을 뿐이다. 왜? 그만큼 많은 사람을 죽였으니까.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괴로워 했으니까. 그리고 그만큼 노빠들이 원한을 가지는 대상이 있다. 바로 민주당내 비주류다.


열린우리당 시절 열린우리당 당권파가 노무현 전대통령에게 어떻게 했는가를 기억한다. 그로 인해 노무현 전대통령이 얼마나 어려움을 겪었고 고통을 받았었는지. 그로 인해 아예 당에서 내쫓기는 수모를 당했고, 과거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 출신들이 정면으로 대통령을 공격하는 치욕도 겪었다. 이명박 정부에서 노무현 전대통령과 그 주변을 샅샅이 훑으며 수사할 때는 민주당 안에서까지 노무현 전대통령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저놈들은 같은 편이 아니다. 같은 정부를 꾸렸던 동지도 무엇도 아니다. 그래서 민주당으로는 도저히 갈 수 없다며 진보정당과 손을 잡은 것이 아마 참여계일 것이다. 그나마 문재인 대통령이 다시 민주당의 대통령후보로 나서며 그를 지지하기 위해 결집했을 뿐 그 대부분은 여전히 민주당에 대한 의심과 불신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당시 주역들이 안철수와 함께 거의 탈당해서 국민의당으로 간 지금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저놈들을 믿어서는 안된다. 철저히 경계하고 응징해야 한다.


이재명으로 인한 논란이 아예 당에 대한 불신과 비토로 이어진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다시 열린우리당 시절로 돌아갈지 모른다. 민주당 내의 비문 반문들이 다시 열린우리당 그랬던 것처럼 문재인 대통령을 배신하고 등에 칼을 꽂으려 할 지도 모른다. 이번 만큼은 절대 자신들의 대통령을 잃을 수 없다. 잃어서는 안된다. 차라리 이재명을 중심으로 뭉칠 비문과 반문을 견제하기 위해서 자유한국당에 표를 준다. 당내 비문과 반문을 약화시키기 위해 자유한국당 후보에 표를 주어 당선시키려 한다. 혹시라도 비문과 반문의 편에 선 혐의만 있어도 추미애든 최민희든 표창원이든 조응천이든 가리지 않고 난도질한다. 문재인 대통령에 조금이라도 해가 될 수 있다면 우리가 가만히 놔두지 않겠다.


어쩌면 민주당이 둘로 갈라진다면 바로 이들 때문일지 모르겠다. 앞으로도 분란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같은 지지자들의 내면에 잠재된 불안과 증오를, 불신과 원한을 자극하는 정치자영업자들도 있다. 대부분 사람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바로 그런 감정적인 부분이다. 원래 서프라이즈에서도 가장 호응을 받던 것은 누가 적이고 누가 나쁜 놈인가 지적하며 저격하는 글들이었다. 누구를 미워하고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적대해야 하는가. 그러니까 자신들의 이상을 위해 누구를 배제하고 누구를 공격해야만 하는가. 개버릇 남 못준다. 그렇게 드루킹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을 중심으로 세력을 모으고 그것을 바탕으로 더 큰 이익을 얻기 위해 지지자들의 그같은 잠재된 부정적 감정들을 이용한다. 저놈이 적이다. 저놈이 나쁜 놈이다. 그러니 몰아내라. 자신을 중심으로 뭉쳐서 철저히 몰아내라. 그래서 상대가 억울하게 비난을 받고 밀려나면 그 원한은 누구에게로 향하겠는가.


벌써부터 그로 인해 조금씩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균열이 생기고 있다. 아무리 그래도 그런 식으로 선거에서 승리한 지도부를 극단적인 표현까지 써가며 공격하는 것이 정당한가. 단지 자기들 원하는대로 해주지 않았다고 비문이네 반문이네 낙인찍고 린치를 가하는 것이 정당한 행동인가. 문재인 한 사람만이 아닌 민주당까지 보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행동은 너무 지나치다. 굳이 그들이 비문과 반문에 가지는 원한을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그것은 그들의 감정이지 내 감정이 아니다. 무엇보다 당장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도 민주당의 역할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앞으로 어떻게 돌아갈지 모르겠다. 오로지 친문. 오로지 친문인 당대표와 원내대표와 그리고 장차 공천에서도 친문의 후보만을 강요한다. 자신들 뜻대로 되지 않으면 난동도 서슴지 않는다. 정치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해당행위에 심지어 이적행위마저 거리끼지 않는다. 내가 주인이다. 우리가 주인이다. 아주 난장판이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살 길을 찾아 당을 떠나는 이들도 생겨날 것이다. 야당들에 기회가 있다면 바로 그때다. 누가 당에 분란을 만들고 누가 당에 내부총질을 하는가. 이미 이재명 사태로 그 정체는 드러난지 오래다.


아무튼 논리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것이 답답할 뿐이다. 감정은 설득이 되지 않는다. 그만큼 노무현 전대통령의 죽음이 지지자들에게 남긴 그늘은 매우 짙고 깊다. 아직도 당내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친문입네 비문입네 과거 행적들까지 들추며 감별사 행세를 하고 있다. 나름 절박한 행동이겠지만 이미 7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보이는 문재인 대통령을 중심으로 당 전체가 줄서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를 기반으로 선거에서 앞으로도 불가능할 것 같은 큰 승리를 거두고 있었다. 대통령의 지지를 등에 업은 호가호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자신들의 입지와 이익을 위해 선동하는 일부 인간들은 도저히 용서못할 쓰레기다. 민주당에 가장 큰 불안요인이 있다면 바로 그것일지 모르겠다.


일단은 지켜본다. 하긴 그래도 그런 극단적인 지지가 절대 다수일 수는 없을 것이다. 이재명의 선거결과에서도 그것은 드러난다. 극단적인 것은 항상 일부였다. 그래도 여전히 불안하다. 사람이 문제다. 사람의 마음이 문제다. 어쩔 수 없다.

한고조 유방이 수천년동안 동아시아에서 이상적인 군주상으로 여겨져 온 이유는 바로 덕德에 있었다. 다른 말로 그릇이다.


싸움실력으로만 따지면 항우가 더 뛰어났다. 싸우면 이기고 부딪히면 깨뜨렸다. 하지만 유방에게는 한신과 소하, 장량과 같은 뛰어난 신하들이 있었다.


고작 범증 하나도 제대로 품지 못했던 항우와 달리 진평이나 팽월, 영포 등 항우에게서 전향한 이들 또한 모두 품어 이용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군주인 것이다. 군주란 군림하는 자다. 모든 이를 지배하며 그들을 다스리는 존재다. 그런 군주에게 필요한 것은 모두를 품을 수 있는 그릇이다.


아무리 하는 행동이 이기적이고 천박해도, 특별히 지식이나 재능이 뛰어나지 않아도, 그 그릇이 천하를 품어 안을 수 있으면 그는 곧 군주의 자격이 있다.


민주화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혼자서 국정을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다. 내각이 있고, 당장 청와대의 참모진들이 있다. 


아니 당장 경기도만 해도 성남시에서 했던 것처럼 도지사 혼자서 독단으로만 도정을 이끌어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수많은 사람을 품고 아우르며 그들의 사이를 조율하면서 최선을 찾기 위해 함께 고민한다. 리더십이다. 그릇인 것이다.


유시민 작가도 전에 방송에서 지적한 바 있지만 내가 이재명이 사실은 도지사도 버겁지 않을까 여겼던 이유이기도 했다.


당장 문재인 대통령을 보라. 수많은 반대자들이 있었다. 반대를 넘어서 혐오하고 증오하던 이들마저 있었다. 그런데 그에 대해 단 한 번이라도 불편한 기색을 내비친 적이 있었던가. 아, 한 번 있었다. 안철수. 진짜 그런 점에서 역대급이라 할 수 있다.


끝까지 항우에 충성하던 이들마저 품으려 했었다. 심지어 그들을 품기 위해 자신과 적대하던 항우의 시신을 내주어 장례까지 치르게 해주었었다. 천하의 주인이라는 것이다. 대통령이라면 대한민국을 이끌어가야 하고 도지사라면 경기도정을 책임져야만 한다. 그 안에 자신에 반대하는, 혹은 적대하는 모든 사람들도 품에 안을 수 있어야 한다. 끝까지 거부하더라도 그들마저 자신의 편이라 여길 수 있어야 한다.


한 편으로 박근혜와 닮았다. 삼국지에서 공손찬이 그와 비슷했었다. 자신의 비천한 출신을 비관한 나머지 항상 주변을 적대하며 자신을 과시하기에만 급급했다. 멀리 보는 전략 하나 없이, 하북에서 가장 큰 세력을 이루고서도 사람들을 품지 못한 탓에 끝내 원소에게 패해서 후사조차 남기지 못하고 말았다. 오죽하면 동문수학했던 유비마저 그 곁을 떠나고 말았겠는가.


자신을 반대하던 민주당 지지자들까지 끌어안을 수 있어야 했다. 하물며 국민을 대신해 자신에게 묻는 언론에 대해서도 그렇게 날선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었다. 거짓이어도 상관없다. 차라리 기만일지라도 뻔뻔할 정도로 당당한 여유를 그 자리에서 보여줬어야 했었다. 굳이 겸손은 바라지 않는다. 자기 잘못이라 낮추기를 기대하지도 않는다. 어찌되었거나 자기는 승자고 도정을 이끌 사람이다. 경기도민 모두의 편이 되어야 할 사람이다. 하지만 자신을 불편하게 했다는 이유만으로 언론조차 용납하지 못한다.


원래 그런 인간이라는 것은 알았다. 그래도 이렇게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도 못하고 자리도 사람도 가릴 줄 모르는 것인가 혐오감마저 든다.


어쩌면 도지사는 잘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도정에 있어 도지사의 역할은 그리 크지 않은 편이다. 실생활은 일선 시장이나 군수의 영향이 크고, 더 큰 영역에서는 국정에 기대는 바가 크다. 그 안에서 조율만 잘해도 성공하는 것이다. 갈등을 조정하고 화합을 이끌어내는 능력까지는 필요치 않다. 그러나 만에 하나 대통령에 도전하려 한다면 바로 그 부분이 걸릴 것이다.


대통령후보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안 보는 것 같아도 국민들은 오랜 시간에 거쳐 대통령에 도전할만한 인물들을 눈여겨보고 평가한다. 과연 이재명은 대통령에 걸맞는 인물인가. 능력은 몰라도 수많은 다양성이 공존하는 대한민국을 화합케 할 대통령으로서 적합한 인물인가.


그냥 민낯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알았던 사람들은 다시 한 번 확인했을 것이고 몰랐던 사람들은 비로소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이재명의 적은 이재명 자신이다. 불행했던 자신의 기억을 스스로 극복하지 못하는 이상 도지사도 사실 매우 버겁다. 그 사실을 이재명 자신만 모른다.


자수성가의 함정이다. 성공의 경험이 자신을 그 경험 안에 가둔다. 자존감까지 바닥이라 그것에 절대의 의미를 부여한다. 인간적으로 안타깝기도 하다.

내가 이재명과 관련해서 예민하게 반응한 이유는 한 가지다. 두렵기 때문이다.

너무나 이기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시 질 수도 있는 모든 가능성에 예민해진다. 혹시 이러다 지는 건 아닐까? 실제 그동안 선거에서 많이 지기도 했었다. 그러니까 제발 이번만은.

투표종료시간이 다가올수록 그래서 두려움은 더 커지기만 한다. 만에 하나 내가 기대한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저 놈들 다시 기고만장해 있는 꼴을 어찌 본다는 말일까?

그러나 어찌되었거나 투표는 끝났고 이제는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개표방송은 심혈관에 안 좋은데. 지난 대선은 그런 점에서 무지 편했었다.

제발 이기기를. 모두 싹 다 이기기를. 이번 기회에 뿌리를 뽑자. 그런 기대가 반 불안이 반.

시간도 더럽게 빨리 안 간다.

사업가에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옳으냐 그르냐가 아니다. 맞느냐 틀리느냐도 아니다. 이익이 되느냐 아니냐다.


북핵문제의 해결이 그동안 어려웠던 것은 오로지 선악의 문제로만 그것에 접근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북한은 악이다. 핵무기는 악이다. 그러므로 악을 응징하고 근절해야만 한다. 그런데 북한이 순순히 그런 요구를 들어줄까?


북한마저 악으로 간주하면 해결방법은 전쟁 말고는 없다. 북한이 안에서 스스로 무너지지 않는 이상 외부에서 힘으로 무너뜨려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역시 미국의 국익에 반하는 것이다. 일본 말고 그 방법을 반기는 이는 아무도 없다. 중국과의 충돌은 국지적이라도 미국에게 부담이다.


현실적으로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본다. 그러면 가장 우선순위를 두어 해결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북한인가? 아니면 북한의 핵무기인가? 만일 북한이 아닌 북한의 핵무기가 더 큰 문제라면 북한이 협상의 파트너가 될 수는 없을까?


다행히 중간에서 문재인이 중재자 역할을 하며 트럼프에게 필요한 명분을 쥐어주었다. 트럼프가 먼저 나서서 북한에 대화를 요구한 것이 아니라 북한이 먼저 동맹국인 대한민국을 통해 미국에 대화를 제의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그동안 미국이 취한 강력한 제재 덕분이며 사실상 북한이 미국의 힘에 굴복해 동맹국인 대한민국을 통해 미국과의 대화에 나선 모양새인 것이다. 그렇더라도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북한의 체면 정도는 세워 줄 수 있다.


철저히 실리만을 챙긴다. 북한이 원하는 명분을 쥐어주는 대신 필요한 실리는 모두 챙긴다. 트럼프기에 가능한 것이다. 적절히 김정은을 예우하고 추켜세움으로써 김정은이 돌아가서 비핵화를 추진할 명분을 쥐어준다. 미국에 굴복한 것이 아니다. 김정은이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이다. 대신 자신은, 그리고 미국은 비핵화만 얻어내면 된다.


2007년 대선 당시 혐오에 가까운 감정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그나마 이명박에게 기대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래도 사업가 출신이니 이념에 있어서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것이다. 무엇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가를 계산할 수 있고 판단할 수 있다. 노무현 전대통령이 판을 깔아놓았으니 그것만 잘 활용해서 북한문제를 풀어내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불멸의 이름을 역사에 남기게 된다. 하지만 이명박은 더 많은 돈을 원했고, 그것은 누구보다 자존심이 강했던 트럼프와 다른 점이었다. 내가 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내가 이 어려운 문제를 풀어냈다. 내가 주인공이다.


청산유수로 진행되던 기자회견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모든 과정이 트럼프의 머릿속에 있다. 철저히 모든 것을 계산하고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결과를 그려내고 그것을 실천에 옮겼다. 문재인 대통령마저 그런 트럼프의 의도 아래 움직인 장기말에 불과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란 뜻이다. 주인공은 오로지 자신 트럼프 뿐이다.


그런 트럼프를 읽었기에 문재인 대통령도 자신있게 나설 수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고보면 정세현 전장관도 그런 말을 한 바 있었다. 트럼프를 파악하고 트럼프의 동의와 용인 아래 그러나 그 안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다행히 김정은도 그런 문재인의 의도를 읽고 응해왔다.


지난 미국대선에서 트럼프를 욕하고 비웃었던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한다. 미국인들에게도 진심으로 사죄한다. 같은 사업가라도 이런 사업가라면 정치인으로서 오히려 탁월하다 할 수 있다. 선악도 정부도 없는 오로지 현실만이 존재하는 정치인이라면. 무역에 있어서는 골치아픈 상대기는 하지만.


트럼프이기에 이루어냈다. 트럼프이기에 이 모든 것이 가능했다. 단 하나 명제다. 트럼프라서 다행이다. 진심으로 우리 대한민국에.

완전한 비핵화라는 것이 무엇인가.


핵무기를 완전히 없애는 것이다.


완전히 없앤다는 것은 과거의 핵도 미래의 핵도 완전히 없앤다는 것을 뜻한다.


무슨 뜻인가? 완전한 비핵화가 바로 CVID라는 것이다.


검증하지 않고 완전한 비핵화가 가능한가?


다시 되돌릴 수 있는데 그것을 완전한 비핵화라 말할 수 있는가.


원래부터 CVID란 북한에 대한 완전한 비핵화를 설명하면서 나온 수사적 표현인 것이다.


북한을 과연 어떻게 비핵화할 것이며 무엇이 완전한 비핵화인가.


검증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어야 완전한 비핵화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그냥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핵화 과정에서 당연히 검증을 하게 되고,


최종적으로 당장 없앤 핵무기 이외에도 앞으로도 다시 핵무기를 만들지 못하도록 조치한다.


그러므로 한반도에서 항구적이고 완전한 비핵화가 완성된다.


이것만은 넘어가면 병신이라는 말을 못하겠다. 그만큼 오랫동안 떠들어 온 레토릭인 터라.


트럼프가 바보가 아니다. 


대통령 쯤 되면 전쟁을 시작했을 때,


"우리는 전쟁을 해야 하고 전쟁에 이길 것이다!"


이 한 마디 하면 족한 것이다.


"이런 전략으로 이런 무기들을 사용해서 전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한다."


이건 일선 지휘관들이 해야 할 말이다.


완전한 비핵화가 바로 CVID다.


시간이 부족해서 합의문에 넣지 못했다는 말도 바로 그런 뜻에서 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완전한 비핵화가 이루어졌을 때 그것을 CVID라 한다.


보수언론들 신났다. 그것들은 진짜 병신이다. 답도 없다.

이명박근혜 9년간의 국정농단에 대한 심판이라는 대의 앞에서도,


저놈의 자칭 문빠라는 놈들은 이재명 하나를 이유로 민주당 심판에 열심이다.


이번 기회에 이재명 떨어뜨려서 자기들 마음대로 해주지 않는 민주당 지도부부터 심판해야 한다.


내가 저놈들을 다름으로 인정하지 않는 이유다.


내가 자유한국당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와 같다.


저놈들이 문파라 인증했다고 남경필을 문재인 지지자로 인정할 수 없는 것처럼.


정치란 자유한국당에 몸담은 남경필마저 문파라는 피켓을 앞에 들고 사진을 찍게 만드는 것이다.


옛날 노빠들이 딱 이 꼬라지였다. 좋은 북미회담이 있었던 날이다.

그래서 외교수사란 말이 있는 것이다.


최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표현을 거르고 또 거른다.


대외적인 책임은 물론 대내적인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혹시라도 문제가 될 수 있는 표현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거른다.


특히 절대라 해도 좋을 권위를 가진 독재자에게 자신의 권위를 해칠 수 있는 표현은 더 크게 다가올 수 있다. 


그래서 실무자급도 아닌 정상의 회담은 그 내용이 매우 추상적인 어휘들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진짜는 실무자 선에서 결정된다. 하지만 그 두루뭉수리한 수사들 가운데도 진짜가 숨어있기도 한다.


이를테면 완벽한 비핵화, 그리고 무엇보다 4.27 판문점 선언의 계승이다. 


CVID는 결과다. 비핵화를 하다 보니 CVID가 되는 것이다. CVID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비핵화 자체가 그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사실 말장난이다. 비핵화라는 자체가 검증과 비가역을 포함하는 것이다.


영구적인 비가역이란 불가능하다. 지금 당장 인류의 문명을 석기시대로 돌려도 언젠가는 지금의 문명을 다시 일굴 수 있다.


아예 사람들 머릿속에 남은 기억마저 지울 수는 없다. 핵무기를 개발하는데 필요한 기술이라는 것도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비가역이란 일정 기간 안에 이전의 성과를 되돌리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수준을 뜻한다 할 수 있다.


트럼프가 말한 20%가 바로 그런 뜻이다. 핵무기의 20%가 아닌 비핵화의 프로세스 가운데 20%를 뜻하는 것이다.


다시 핵무기를 개발하려 해도 주변국가들에서 충분히 통제할 수 있을 정도의 단계를 말하는 것이다.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이루는 것은 북한 자신의 의지만이 아닌 주변국들의 의지와 노력을 포함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이 북한의 핵개발을 손놓고 보고만 있을 리 없으니 그것까지 포함해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이룬다.


그만큼 복잡하고 지난한 과정이라는 뜻이다. 손쉽게 협정서의 문장 몇 개로 정의하기는 곤란하다. 


그런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면 이번 합의문의 의미도 무리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가 김정은을 신뢰하는 것은 인간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다. 북한체제가 가진 절박함을 신뢰하는 것이다.


트럼프가 문재인 대통령을 신뢰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인간을 진실하게 만드는 것은 그가 놓인 환경과 필요와 동기다.


그리고 무엇보다 트럼프에게는 진실하지 않은 자들마저 진실하게 만들 힘이 있다.


한 걸음을 떼 놓기가 힘들다. 외교의 어려움이다. 남의 나라 정상을 자기 의도대로 움직이기가 그렇게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단한 이유다. 이 모든 그림을 문재인 대통령이 중간에서 주도해 만들었다.


모른다면 멍청한 것이고 알면서 무시하면 사악한 것이다. 항상 하는 말이다.


위대한 성과다. 그 말이 맞다. 모호한 수사들 가운데 한 가지를 분명히 확인한다.


한반도에 비핵화는 시작되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미국 정상의 의지와 확인으로. 위대한 한 걸음이다.


김성태 하는 말이 딱 극문들 주장하는 그대로네.


그야말로 극문을 대변하는 정당에 원내대표 아닌가.


이번 기회에 그냥 자유한국당으로 가라.


자유한국당 가면 마음편히 더불어민주당 심판할 수 있다.


표창원도, 최민희도, 안민석도, 조응천도 모두 이재명 부역자라며?


이재명이 이명박근혜보다 더한 악이라면서?


남경필이야 말로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도울 무결점 정치인이라 주장하던데?


그러니까 자유한국당 가라. 


설득하고 싶지도 않다. 사람이 사람 같아야 사람대접 해준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성장과정이 불우하면 그만큼 정신적으로도 단련된다. 개소리다. 낙천을 배우지 못하고, 기대를 가지지 못하고, 그래서 쉽게 비관에 빠지게 된다. 개천에서 용나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확실한 목표와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이 있을 때 인간은 더 강한 동기를 가지게 된다. 그것부터가 환경에 따라서는 불가능할 수 있다.


멘탈이 약한 것은 알았다. 지난 대선에서 별로 네거티브도 당하지 않았는데 우는 소리를 하는 것 보면서 이게 진짜 사람인가? 이런 정도는 네거티브도 아니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당한 네거티브를 떠올려보라. 대선 이전 당대표 시절부터, 아니 당대표도 아닌 평의원이던 시절에도 문재인은 온갖 네거티브의 표적이 되고 있었다. 하지만 양념이라 말했다. 그런 것도 결국 정치의 한 부분이다.


자기만 옳다면, 아니 설사 네거티브의 내용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당당히 무시하고 나갈 수 있는 강인함이 필요한 것이다. 사실 민주당 지지자들이 바라는 것도 그것인지 모른다.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지지자들이 확신을 가질 수 있는 무언가를 이재명 자신이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어차피 이재명이 잘나서 지지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단지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바라고, 민주당의 승리를 바라고, 무엇보다 저놈 새끼들이 싫어서 싸움에 끼어들었다. 고작 이런 정도의 네거티브에도 우는 소리를 할 것이면 정치는 도대체 왜 하는 것인가.


그동안 일개 자치시의 시장이었다. 정치권에서도 한참 변방이었다. 어쩌다 보니 주류무대에까지 오를 수 있었지만 결국 변방은 어쩔 수 없이 변방인 것이었다. 비로소 대선후보 경선을 치르며 중앙정치란 것을 경험해 보았었다. 이제 당내정치까지 경험하며 지지자가 적으로 돌아설 수 있는 상황이란 것도 경험해 보았다. 그리고 그런 경험들을 통해 정치인 이재명은 어떤 성장한 모습을 보일 수 있을 것인가.


우는 소리 할 때가 아니란 것이다. 무시할 것이면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무시하던가. 대응할 것이면 철저히 엄밀하게 논거와 증거를 갖춰서 확실하게 대응하던가. 정치인이란 지지자에게 손내미는 존재가 아니라 내민 손을 잡아주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참 인간으로서도 못났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민주당의 경기도지사 후보니까. 경선에서 그를 지지한 다른 당원, 유권자들의 선택을 존중한다. 좋은 기분은 아니다. 아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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