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란 결국 세싸움이다. 누가 더 많은 더 강력한 지지자를 확보하여 배후에 두고 있는가. 정치적으로 누가 더 강한가는 누구의 발언이 더 많은 지지와 동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가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만일 실력으로 대결하려 하면 내가 너를 힘으로 누를 수 있다.


그래서 정치에서 필요한 것이 정치력이란 것이다. 정치력이란 다른 것이 아니다. 얼마나 더 많은 지지자를 우호세력을 끌어들일 수 있는가. 때로는 설득으로, 때로는 거래로, 때로는 협박으로, 물론 그 과정에서 자기에게 이익이 될 만한 대상을 잘 골라 줄서는 것도 정치력에 포함될 것이다. 역사상 대부분의 권력들이 그렇게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정파와 계파들의 연합으로 성립하고 유지되고 있었다. 그런 중심에 설 수 있는 것이 바로 리더십, 혹은 카리스마라 불리는 것이기도 할 터다.


처음부터 자기를 지지했으니까. 가장 어려울 때부터 자신을 지지했고, 따라서 다시 어려운 상황이 오더라도 자신을 지지할 것이다. 확실히 든든하다. 당장 자기가 망해도 자기를 지켜줄 이들이 있을 것이다. 자기를 따라주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순수한 자기의 지지세력이 도대체 얼마나 될 것 같은가. 어떤 경우에도 어떤 상황이 되어도 자신을 지지할 오롯한 지지자들이란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그런 소수의 지지자만으로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반대편에, 아니 반대편에도 속하지 않은 다른 정파와 계파들이 아직 얼마든지 있다. 


노무현과 문재인이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이다. 노무현에게는 자기의 친위세력밖에 없었다. 김근태도 정동영도 각각 독립된 계파의 수장이었지 대통령 노무현의 동지도 협력자도 아니었다. 정작 대통령을 중심으로 그를 지지하며 모인 친노는 소수였고 비주류였으며 대통령이 소속되어 있기에 여당인 열린우리당을 지배하고 있던 다수는 그와 경쟁하는 입장인 이들 유력정치인들의 영향 아래 있었다. 그들을 포섭하기에는 아직 준비도 부족했고 역량도 미치지 못했다. 하긴 2012년 대선까지 문재인의 처지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그때와 지금과는 무엇이 다른가.


차라리 문재인 자신의 측근들을 내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원래 자기 사람이 아닌 사람들로 채우고 있었다. 자신의 명망으로. 대중의 자신에 대한 지지를 배경으로. 한창 지지율이 지지부진할 때는 당내에서 너나 할 것 없이 비문 아니면 반문이었지만 어느새 당이 안정되고 지지율이 오르기 시작하며 차기 대선에 대한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하자 친문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박근혜의 탄핵국면에서 치러진 대선후보경선의 결과 문재인 자신이 후보로 선출되자 이제는 어제까지 비문이고 반문이던 이들마저 스스로 친문을 자처하기 시작했다. 내가 바로 문재인 대통령의 사람이다. 아마 그것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어제까지 문재인을 비판하던 사람이 갑자기 문재인을 팔아먹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결과 여당인 민주당은 전에없이 대통령의 의중에 충실한 말 그대로 친정부여당이 되어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나중에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이 떨어질 걱정같은 건 벌써부터 할 필요가 없다. 당장 중요한 것은 그 지지율을 끌어올리고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정책들이며 그것을 현실에서 펼치기 위한 힘인 것이다. 바로 정치력이다. 그리고 그것은 헌법이 부여한 행정부의 권한만이 아닌 입법부 내에서 여당인 민주당이 전적으로 협력해 주어야 가능한 것이다. 과거에 비문이었든 반문이었든 지금 정부의 편에서 정부와 보조를 맞춰 정부가 의도한 바를 충실히 이룰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여당의 역할인 것이다. 지지율 떨어질 때를 대비해서 그런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당내 정치이들부터 편가르고 떨쳐내야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혹시라도 지지율이 떨어지면 배신할 지 모르니 미리 분리해서 밀어내고 몰아내자. 그러면 여당이라지만 민주당 안에 몇이나 대통령의 사람이 남아 있을까? 그런 민주당을 가지고 대통령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열린우리당의 실패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하나라도 같은 점을 찾는 정치와 하나라도 다른 점을 찾는 정치가 있다. 진보가 분열로 망한다는 말은 바로 이를 가리킨다. 서로가 너무나 선명함을 강조하려다 보니 서로 다른 부분만을 찾게 된다. 그런 사소한 다른 부분들까지 찾아내어 들추고 공격하는 가운데 단합하지 못하고 공멸하고 만다. 반면 보수가 부패로 망하는 이유는 하나라도 같은 점이 있으면 서로 적당히 눈감으며 타협하며 단단히 뭉치려 하기 때문이다. 지금껏 한국정치에서 진보가 보수를 이기지 못했던 근본적인 이유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는 하늘이 내린 인물이다. 설마 그런 보수정당 안에서, 그것도 같은 친박마저 서로 구분하여 배척하려 하고 있었으니. 그런데 이제 민주당 안에서 친문 안에서 진짜 친문을 찾으려는 이들이 나타나고 있다.


배들이 덜 고파서 그렇다. 지난 9년의 시간이 그래도 견딜만 했기에 그러는 것이다.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지지자가 필요하다.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우리 편이 필요하다. 대통령은 그것을 알고 있다. 대통령을 지키며 따르던 이들 역시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일부러 대통령의 곁을 비우고 떠나는 것이다. 그 자리를 다른 이들로 채우기 위해서. 더 많은 대통령에게 도움이 될만한 이들로 채워넣기 위해서. 그렇게 비어 있는 만큼 대통령의 힘은 커지고 전과 달리 더 많은 것들을 할 수 있게 된다.


김어준의 말처럼 작전세력일지도 모르겠다. 참여정부 당시 어떻게 그 핵심지지층이 분열하고 붕괴되었는가 알고 있기에 의도적으로 그리 몰아가려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말한 그대로 참여정부 당시도 핵심지지층은 자기들끼리 서로 배척하며 싸우다가 함께 흩어지고 있었다. 너는 가짜다. 너는 진짜가 아니다. 그러면 진짜가 아니니 지지하지 말까? 처음부터 지지하지 않았으니 앞으로는 지지하지 말까? 개인만이 아니다. 그러면 앞으로 박영선이나 이종걸이나 문재인 대통령과 척을 졌던 이들은 계속해서 정부와도 척을 져야만 한다는 것일까?


실패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것은 그냥 머저리들이다. 실패했음에도 다시 그 실패를 반복하려는 것은 뇌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곤충들은 뇌라 하지 않고 신경절이라 부른다. 실패하든 말든 유전자가 새겨 놓은 패턴대로 같은 행동만 반복한다.


이해찬도 가짜다. 추미애도 가짜다. 모두가 가짜다. 자기들만 진짜다. 그래 너희들만 남아라. 너희들만 남아서 대통령을 지켜라. 가짜인 나머지는 그냥 대통령을 등지련다. 그것을 바라는 것일까. 멍청하거나 아니면 사악하거나. 인간의 진화를 부정하고 싶지 않다. 병신들이다.

아주 어릴 적부터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해 온 여성이 있었다. 처음에는 너무 어렸기에 자신이 당한 일에 대한 자각조차 없었다. 조금 나이가 들고서는 그럼에도 아버지에게 반항할 경제적 육체적 능력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어른이 되었을 때 여성은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다. 비로소 자신이 아버지를 죽일 수 있게 되었을 때 자신이 당한 일들에 대한 되갚음을 해주었다.


위안부 문제가 처음부터 이렇게 크게 이슈가 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80년대까지 쉬쉬하며 스스로가 감추려 애쓰고 있었다. 아직도 노인 세대에서는 그런 것을 말하는 자체를 창피한 일이라며 거부감을 보이는 이들이 있다. 괜히 노인층이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합의를 지지하고 나선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감추고 그래서 피해자들을 억압하고 내쫓으며 없는 일이라 여기고 지나 왔었다. 하긴 불과 얼마전에도 위안부 피해자의 가족을 애들 보기 안좋다며 내쫓으려던 이웃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 사회는 유린당한 정조에 대한 부끄러움보다 인간에 대한 존엄과 연민을 앞세울 수 있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위안부 문제가 전국민적인 공분을 불러오게 된 것은 그래서 민주화와 궤를 같이 한다.


욱일기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초기 대한민국이란 국가는 여러가지로 어수선하고 어설펐다. 아직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 협력하던 이들이 정부의 요직에 남아 있었기에 강점기 역사에 대한 청산도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고,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던 당시 상황에서 미국의 중재를 거부하고 일본을 적대하기도 부담스런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겨우 전쟁의 폐허에서 일어나고 있던 가난한 신생국가가 다시 경제적으로 일어나고 있던 일본과 마냥 대립만 하는 자체도 현실적이지 못했다. 이런 저런 이유가 더해지며 여전히 반일감정은 드높지만 현실적으로는 일본이라는 이웃나라의 존재를 받아들여야 하는 관계가 지금껏 이어져 온 것이었다. 물론 그동안 일본 역시 한국과의 관계를 어느 정도 고려하고 있었기에 큰 문제 없이 그런 미묘하고 불안한 관계가 지금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덕분에 90년대 쯤에는 일본문화의 급속한 유입과 맞물려 일본에 대한 우호적인 여론 또한 꽤나 늘고 있었다. 더이상 과거사에 집착하지 말고 미래를 생각하자는 주장 역시 제법 설득력있게 들리기도 했었다. 한류 이전에 일류라 할 것이다. 그만큼 가끔 나오는 망언을 제외하면 일본과의 관계도 나쁘지 않았고, 경제와 문화에 있어 일본의 영향이란 현실이기도 했었다. 국제적으로는 미일동맹이 한미동맹의 상위에 존재하는 이상 일본과의 관계는 한국정부에 있어 상수나 다름없었다. 문제는 90년대 말부터 오랜 경제불황의 영향으로 크게 확산되기 시작한 일본의 우경화 경향이었다. 일본의 우경화가 한국내 반일감정을 자극하고 한국내 반일감정이 일본내 혐한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시작이었다. 그 극단에 이명박의 일본국왕 발언이 있었고, 일본의 위안부 협상이 있었다. 둘 다 일본내 혐한여론과 한국내 반일여론에 방점을 찍은 사건들이라 할 수 있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지금에 와서 욱일기를 거부하는 이유는 이런 맥락인 것이다. 경제적으로도 어느 정도 성장을 이루었다. 군사적으로도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나마 근본적인 해결은 없을지라도 서로를 의식하며 조심하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 거침이 없어졌다. 하필 그런 일본의 극우들이 자신의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욱일기라는 것이다. 전부터도 욱일기와 관련한 논란이 적지 않았지만 일본의 우경화와 함께 욱일기에 대한 한국인의 인상 역시 명확해졌다. 저건 일본 극우의 상징이다. 당장 태극기부대 때문에 국기임에도 태극기라는 단어에 거부감이 드는 것의 연장이라 보면 된다. 


한 마디로 과거와 사정이 달라졌다. 그때는 됐지만 지금은 안된다. 그때는 문제가 아니라 생각했지만 이제 돌이켜보니 심각한 문제였다. 아니면 그때는 상관없었는데 이제 하는 것을 보니 상관해야겠다. 정히 그렇게 욱일기가 자랑스러우면 거리에서 남부끄러운 소리나 지껄이는 인간들 욱일기 사용을 자제해달라 요청하던가. 과연 일본은 과거사를 반성하는가. 욱일기란 그저 전통의 깃발이기만 한가.


굳이 너무 쿨해질 필요는 없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이 될 필요도 없다. 원래 인간이란 자체가 직관과 감정의 동물이다. 먼저 결론이 있고 논리가 따라붙는다. 어쩌면 일본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그같은 행동들마저 어떤 자기만의 결론에 짜맞춘 논리일 수 있다. 많은 지식인들이 빠지는 함정이다. 나는 저들과 다르다. 그러니 저들과 다른 말과 생각을 들려주어야 한다. 아마 인터넷이기 때문일 테지만. 아무튼.

우습게도 인류의 문명은 바로 그 자극적인 맛을 쫓으며 번성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유럽이 위험을 무릎쓰고 먼 바다로 나가며 대항해시대를 열었던 이유와 같은 것이다. 일본에서도 사츠마가 류큐를 침략하면서 설탕이 대량으고 공급되자 비로소 음식들이 달아지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그냥 짜기만 했다.


지금이야 워낙 이런저런 양념들이 넘쳐나니 차라리 아무것도 치거나 바르지 않은 순수한 재료의 맛이 최고라 여기는 것이지 이전에는 아니었다. 하다못해 소금이라도 쳐야 했고, 돈이라도 조금 있으면 진귀한 향신료 정도는 듬뿍 발라주어야 했었다. 어떻게하면 기존의 재료로 더 새롭고 더 맛있는 맛을 만들 수 있을까 끊임없이 연구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래서 그저 고기를 구워 소금에 찍어먹던 고기구이가 갖은 양념에 재워 굽는 불고기로 발전한 것이다. 그냥 굽는 것은 그대로 달고 짠 간장양념에 굽는 것은 또 그대로 그렇게 인류는 색다른 맛을 추구해 왔었다.


물론 아예 재료의 맛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달고 짜고 맵기만 한 음식들이 문제인 것은 맞다. 하지만 그 또한 원래 좋은 재료를 쓸 수 없는 환경에서 보다 쉽고 값싸게 음식을 만들어 공급하기 위한 수단으로 발달한 일종의 편법들이었다. 어디나 마찬가지다. 그것은 문명의 차이라기보다는 그냥 문명 안에서도 환경의 차이, 혹은 계급의 차이로 이해해야 한다. 그마저도 소금과 설탕과 고추가루가 싼값에 대량으로 공급되기 시작한 이후의 일이니 역시 문명의 발달과 무관하다 할 수 없다. 가난하고 문명이 뒤떨어진 사회에서는 짜고 달게 먹으려 해도 그럴만한 소금도 설탕도 구하기 어려운 곳이 많다.


아무튼 미식으로 유명한 나라들치고 감미료와 향신료로부터 자유로운 나라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그래서 요리들도 다양한 것이다. 언제 어떤 재료를 어떤 감미료와 향신료를 써서 더 맛있게 만들어낼 것인가 하는 궁리와 고민이 그 많은 요리들을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쇠고기의 맛은 정해져 있는데 어떻게 쇠고기 하나로 그 많은 맛들이 나올 수 있는 것일까. 다만 그렇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맛을 해칠 정도로 달고 짜고 맵게 만드는 경우는 드물다. 한 마디로 어찌되었거나 맛있다 여기기에 음식들도 달고 짜고 맵게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세뇌됐다고 말하기에는 그래서 떡볶이를 맛있게 여기는 대중의 입맛은 솔직하다고 할 수 있다. 말 그대로 달고 짜고 맵다. 물엿을 아예 색이 변하도록 넣고, 거기에 소금과 고추가루도 듬뿍 쓴다. 맛이 없을 수가 없다. 그나마 맛이 순하다는 간장떡볶이도 짠 간장에 설탕을 듬뿍 넣어도 달고 짜게 만든다. 결국 그렇게 만들고 소비되는 이유는 그것을 사람들이 맛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소한 매운맛에 대한 거부감이 적은 사람들은 떡 특유의 식감에만 적응하면 문화권을 떠나서 대부분 맛있게 여기기도 한다. 외국인에게 인기있는 한국음식들도 대개 그런 것들이다.


순수한 재료의 맛을 최고로 추구하는 일본만화를 보면서 한 번 써보고 싶었던 주제이기도 하다. 그런 건 단지 예전 일본에는 그만큼 다양한 맛을 낼 수 있는 재료 자체가 부족했던 때문 아닌가. 우리나라 음식도 원래는 매우 심심했었다. 소금도 귀했고, 설탕도, 고추가루도 아직 비싸기만 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추운 북쪽지방에서는 남쪽에서보다 더 심심한 음식을 즐겼다. 그래서 북쪽 지방의 음식이 남쪽 지방의 음식보다 더 발달해 있는가.


삼계탕에도 소금을 넣어 먹지 않는다. 설렁탕도 소금 없이 그 자체의 심심한 맛을 즐기는 편이다. 그래서 아무데서나 설렁탕을 사먹지 않는다. 그저 달고 짜고 맵기만 한 음식은 나도 혐오한다. 그러나 그건 그것 이건 이것. 그렇다고 재료의 맛을 해쳤다 할 수 있는가. 문명은 더더욱. 우스운 것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분명 저유소에도 중요시설인 만큼 평소 시설관리를 위한 인력이 배치되어 있었을 것이다. 항상 저유소를 모니터하며 만일이 상황을 대비하여 주위를 살피고 관리한다. 그런데 과연 그런 중요한 일을 하는데 임금은 얼마나 받고 있을까?


최저임금이란 그야말로 최소한의 일만 하라고 주는 돈이다. 당장 그만두고 나가서 아무 일이나 골라잡아도 최소한 그 만큼은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일에 대한 충성도도 떨어지고 따라서 그만큼 일에 충실하기도 어렵다. 더구나 그렇게 자주 사람이 나가고 들어오다 보면 전문성도 떨어지기 쉽다. 그런데도 그런 사람에게 그런 중요한 일을 맡길 수 있을 것인가.


심지어 돈이 많이 든다고 중요한 안정장치들마저 생략하고 있었다고 한다. 안전점검도 대충 육안으로만 한 것을 보니 전문적인 인력과 장비를 동원하는 비용과 시간이 그리 아까웠던 모양이다. 그런데 하물며 사람이라고 비싸게 쓰려 했을 것 같지는 않다. 세월호 당시도 들었던 생각이다. 어차피 제대로 대우도 못받는 계약직들에게 도대체 무슨 대단한 책임감 같은 것을 기대하는 것일까.


얼마전까지 계속 이슈가 되었던 어린이집 교사들의 어린이학대에 대해서도 같은 입장이다. 어린이집 교사들도 대부분 최저임금을 겨우 받는다. 사실 그 돈 받고 할 만한 일이 아니다. 어지간히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고서는 그 돈 받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나라면 아마 30분도 지나기 전에 바로 박차고 나왔을 것이다. 그리 귀한 아이를 맡기면서도 그러나 어린이집 교사들의 임금을 올리는데는 관심이 없다. 그러니까 고작 그런 정도 임금을 받는 이들에게서도 도대체 얼마나 더 큰 책임감이나 사명감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더 자질있고 자격있는 사람들은 더 많은 임금을 주는 다른 일을 찾아 떠난다.


돈만 아끼면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닌 것이다. 정작 돈을 투자해야 할 때 그 돈을 아끼려다가 더 큰 손해를 보는 경우도 허다하다. 기대한 만큼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그만큼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내 아이를 잘 돌봐주기를 바란다면 그만큼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중요한 시설이니 보다 안전하게 관리되기를 기대한다면 그만한 비용을 치러야만 한다. 그러고는 고작 풍등 하나 날렸을 뿐인 외국인 노동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려 한다.


현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을 지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더불어 공공분야에서 더 많은 고용을 정부주도로 일으키겠다는 구상에 동의하는 이유다. 오히려 공공부분이기 때문에 그만큼 더 중요하고 더 비용과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경찰도, 교사도, 공무원도 지금보다 더 많아져야 한다. 어린이집도 유치원도 정부의 관리 아래 더 많이 더 철저하게 관리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결국 사회를 더 안전하게 풍요롭게 만들 것이다.


돈을 적게 쓰고 결과만 좋게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효율이 아니다. 그냥 날도둑놈심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안전은 더욱 공짜가 없다. 하지만 모두들 너무 공짜만 바란다. 아파트값은 대신 아무리 올라도 그저 좋기만 하다. 웃기는 세상이다. 참 인간이 재미있다.

요 몇 달 사람이 많이 바뀌었다. 당연하다. 일은 힘든데 급여는 짜고 미래도 보장되어 있지 않다. 그러니까 아무때고 그만둬도 전혀 아쉬울 것이 없다. 경력 좀 되면 오히려 그 경력을 바탕으로 다른 더 좋은 조건의 일자리를 찾아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보고 다닌다. 그렇게 일에 지쳐서 그만두고, 더 좋은 곳을 찾아 떠나고, 덕분에 경험없는 신입들만 벌써 우리 조에 절반이 넘어간다. 문제는 참 젊은 친구들이 너무 자신감이 넘친다는 것.


전에는 그래도 신입이라고 해봐야 한둘이니 말을 하면 들어먹는 시늉은 했었다. 이건 이렇게 해야 한다, 저건 저렇게 해야 한다, 그건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그런데 짧은 기간 동안 갑자기 젊은 신입들이 늘어나니 자기들끼리 패거리를 만든다. 한 달 먼저 들어왔다는 이유로 선배노릇하면서 신입을 포섬해서 자기 패거리로 만든다. 그리고는 자기들끼리 합의해서 결론을 내린다.


"이렇게 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아!"

"오히려 저렇게 하는 게 더 불편하고 성가시기만 해!"

"괜히 저런 인간 말 들을 필요는 없어!"


엄하게 말해서 바로잡아도 그때 뿐이다. 자기들끼리 담배피러 갔다 와서는 다시 원래 그대로다. 그래도 상관없는 것이 편들어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자기가 옳다고 틀리지 않았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자기들끼리 있을 때는 그것이 더 옳을 테니까. 그리고는 패거리를 믿고 대놓고 게기기 시작한다. 대놓고 무시하려는 것을 내가 모르지 않는다. 다만 내게 그럴 권한이 없고 따라서 그럴 책임도 없기에 안 되는 일은 손놓고 지켜보기만 할 뿐이다. 그나마 잔소리라도 할 때가 애정이든 기대든 남아있는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결국 큰 사고를 치고 말았다. 도저히 나로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큰 사고를 치고야 말았다. 도대체 그것을 왜 아무도 말릴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솔직히 나는 아예 관심조차 없었기에 설마 그 인간이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전혀 모른 채 상황이 벌어지고 나서도 한참 뒤에야 결과만 통보받고 있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웃고 있다. 자기들끼리 웃으며 떠들고 있다. 그런 게 무슨 상관인가.


나한테도 변명을 시도한다. 이래서 이렇게 되었다. 그래서 그렇게 되었다. 어쩔 수 없었다. 이미 일은 벌어졌고 명백한 피해가 발생했다. 보고까지 올라갔다. 그런데 그런 말이 무슨 소용인가. 그래서 말해주었다.


"응석부리지 마라!"


아직 세상 무서운 줄 모른다. 사람 무서운 줄 모른다. 그래서 자기들끼리 좋으면 그냥 좋은 것이겠거니. 자기들끼리 괜찮으면 그저 괜찮은 것이겠거니. 그래서 사고를 치고서도 그 사고가 얼마나 큰 사고인가 자각조차 없었다. 오히려 쉬는 시간이 적다, 일이 괜히 피곤하고 힘들다 투덜거리기 일쑤다. 대놓고 막말 나올까봐 오히려 내가 참아야 했다. 아마 이런 놈이라도 없으면 사람이 부족해서 남은 사람들이 힘들어질 테니 참으려 한 것이겠지. 


결국은 그 사고로 인해 일만 더 힘들어졌다. 서로 편의를 봐주던 것이 더이상 편의를 봐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규정대로 돌아가면 오히려 불리한 것은 우리들이다. 회사를 탓하기 전에 적당히 타협하며 그나마 덜 힘들도록 편의를 봐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것을 그런 식으로 이용해서 사고를 쳐 버렸다. 회사 쪽에서는 더이상 봐 줄 이유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런데도 단지 일이 힘들어졌다 회사만 탓할 수 있을 것인가.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모두가 그리 말하는데 왜 너만 달리 말해?"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다. 간단한 비유로 학교 다닐 때 시험을 치고 나면 자기들끼리 답 맞춰보고는 몇 점 맞았다 좋아하는 머저리들이 있었다. 서로 틀린 답을 맞추고는 그 답을 전제로 자기들끼리 채점하고 좋아한다. 심지어 그 답은 문제를 낸 선생이 정하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책임지면 된다. 내가 잘못한 만큼 내가 책임지면 되는 것이다. 먼저 그럴만한 위치에 오르고 나서 그런 말도 해야만 한다. 주제도 안되면서 확신만 넘친다.


블로그질하면서도 그래서 친목질은 아예 하지 않는다. 다른 블로거가 누가 있는지 관심도 없고 알아도 찾아가서 댓글을 남기거나 하지 않는다. 여기 누가 댓글을 남겨도 그냥 읽고 무시하고 지나간다. 글은 내가 쓰지만 결론까지 내가 내리는 것은 아니다. 나의 답이 틀릴 수 있다. 그것을 내가 이렇다 저렇다 점수를 매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저 쓰고 찾아오는 사람은 그저 읽는다. 거기에는 어떤 관계도 친목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야 최대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어느 누구에게도, 누구의 주관에도 얽매이지 않아야 보다 객관적인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 그래서 최소한 내가 운영하는 블로그들만큼은 그저 친분을 과시하기 위한 댓글같은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사납고 적대적인 댓글이 오히려 많으면 많았지.


아침부터 카톡이 시끄럽다. 어제 저녁부터 시끄러웠다. 그냥 잘라버렸어야 하는 건데. 그래서 내가 일하면서도 일정 이상 동료들과 친해지려 하지 않는다. 같은 일을 하는 동료이지 친구가 아니다. 형제도 아니다. 그래서 나이나 경력과 상관없이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옳게 지시하고 가르칠 수 있다. 그래서 대개는 나더러 싸가지없다 욕하는 모양이지만. 피곤하게 생겼다. 그렇지 않아도 쉽고 편한 일은 아니었다. 

고급바라고 찍어온 사진을 봤다. 사실 한강 위쪽으로는 거의 먹으러든 마시러든 가 본 적이 없어서 거기가 어딘지는 잘 모른다. 다만 실제 내부가 사진에 찍힌 그대로일 것이란 가정에서 내가 사는 동네에도 그 비슷한 가게는 꽤 될 듯하다. 하긴 요즘 어지간해서는 호프들도 그 정도는 내부를 꾸미고 장사한다. 메뉴판도 딱 우리동네 좀 괜찮다는 호프 수준이다.


아주 오래전이다. 심지어 당시 열린우리당 지지자였다. 저소득층에게도 컴퓨터가 필요하다. 게임이든 뭐든 컴퓨터와 인터넷을 항상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바로 반론이 나오더라. 애들 게임중독 만들 일 있는가. 하기는 당시는 참여정부 지지자들이 애 굶어죽었다니까 능력도 안되면서 왜 낳았느냐며 부모를 비난하던 시절이기는 하다. 여러모로 인터넷 정치중독자들에 학을 떼게 만들던 시절이기는 했다.


서민이 무슨 컴퓨터인가. 서민이 무슨 스마트폰인가. 서민이 무슨 무제한요금인가. 서민이 무슨 호프인가. 서민이 무슨 치킨에 돈까스인가. 그러니까 서민은 그저 배만 곯지 않으면 된다. 영화도 보지 말고, 책도 사지 말고, 인터넷도 하지 말고, 게임도 하지 말고, 여행도 다니지 말고, 그냥 직장과 집을 오가며 밥이나 굶지 않고 먹을 수 있으면 그만이다. 그러고보니 차명진이었던가 되도 않는 황제의 식단으로 욕을 알아서 사서 쳐드셨던 적이 있었는데. 그런데 무슨 최저임금인가. 그냥 그렇게 굶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 서민인데.


사실 호프에서 치킨으로 식사를 대신하며 맥주를 몇 잔 마셨대도 나로서는 크게 불만같은 것이 없다. 중세나 고대에도 싸움에 나선 병사나 노역을 하는 백성들을 위로하기 위해 때로 조정에서 술을 내리기도 했었다. 힘들게 열심히 일하고 하루의 피로를 풀면서 맥주 한 잔 하는 것이 뭐 그리 큰 잘못인가. 하지만 남들이 잘못이라니 문제가 될 행동은 하지 않는 것이 괜히 고생하고 욕먹지 않는 방법이기도 할 것이다. 어찌되었거나 그래서 밤늦게 모여 식사도 하고 간담회도 하고 나온 비용이 10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 지인들과 딱 세 명이서 모여 치킨에 맥주를 마시는데도 아마 그 정도 나왔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게 그렇게 큰 잘못인가. 하물며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때웠으면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삼각김밥은 배파서가 아니라 시간이 없어서 사먹는 음식이다.


어쩌면 저들은 자기들이 찍어온 음식점의 내부사진이면 대부분 서민들이 분개하여 청와대를 비난하기 시작할 것이라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감히 서민들은 들어갈 엄두도 내지 못할 인테리어니까. 서민들은 감히 먹어보지 못할 가격의 메뉴들이니까. 저들에게 서민이란 그런 삶을 사는 존재니까. 더 정확히 그런 삶을 살아야 하는 존재일 테니까. 서민은 그저 가장 싼 편의점 삼각김밥이나 먹어야 한다. 바로 정의당과 특히 한겨레가 그토록 노동자와 서민을 위한다면서 열심이 옹호하고 있는 자유한국당의 실체인 것이다. 하긴 저들의 머릿속에 서민도 80년데 이데올로기에 갇혀 박제화되어 있을 것이다.


하여튼 그러니 최저임금 인상에 저리 적대적인 것일 게다. 저들이 생각하는 서민들에게 소득이란 그만하면 충분할 테니까. 더이상 최저임금을 올리지 않아도 그만하면 죽지 않고 살 수는 있을 테니까. 사실 결혼하고 자식 하나만 낳아도 최저임금으로 가족을 부양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울 테지만. 내가 저들을 절대 지지는 커녕 존재조차 용납하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저놈들은 내 적이다.


어쨌거나 아무리 배고파도 야식으로 삼각김밥은 절대 사먹지 않고, 더구나 고급바에 가서 때로 심지어 지인들과 10만원 이상 맥주와 안주를 쳐먹어대며, 온라인 게임에 한 달에 몇 만원이나 되는 돈을 쓰는 나는 서민은 커녕 사치나 일삼는 부유층일 것이다. 최저임금 오르면 바로 영향을 받는 수준인데도 서민은 벗어났다니 고마워해야 할까? 그 지지자도 다르지 않다. 웃을 뿐. 개가 개가 아니다. 정말 개같다.

예전 유시민도 방송에서 말한 적 있었다. 평소 자기들과 뜻이 맞고 그래서 지지도 보내던 사람에게 정작 영입을 제안하면 거의 고사하더라. 당이 작고 힘도 약하니까 어차피 입당해서 출마해봐야 당선가능성도 낮다. 기왕에 정치를 할 것이면 당선가능성도 높고 당선된 뒤에도 이것저것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거대정당을 선택하게 된다. 실제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가운데는 정의당보다도 더 이념적으로 왼쪽에 치우친 이들이 적지 않다.


더구나 워낙 보수의 세력이 강하다 보니 유권자들 역시 조금이라도 저들의 힘을 깎기 위해서 역시나 보수정당인 민주당에 투표하게 된다. 이념적으로는 정의당에 더 가깝지만 그래도 보수정당보다 조금은 더 진보적이라는 이유만으로, 거기에 상당히 진보적인 인사들까지 상당수 합류해 있으므로 대안으로 정의당이 아닌 민주당을 선택하게 된다. 평소 진보정당을 지지하다가도 선거때만 되면 민주당으로 돌아서는 유권자가 그동안도 상당했었다.


그래서 혐오하는 것이다. 그래서 증오하는 것이다. 저놈들만 아니었으면. 민주당만 아니었으면. 원래 자기들에게 왔어야 하는 사람들이다. 자기들에게 왔어야 하는 국민의 지지다. 차라리 자유한국당 같은 보수정당보다 민주당을 더 혐오하고 더 증오한다. 더 적대시한다. 최소한 보수정당이 집권했을 때는 그들의 비판에 자신들이 추구하는 진보의 이념과 가치가 일관되게 들어 있었다. 하지만 민주당이 집권했을 때는 그런 것 상관없이 꼬투리만 있으면 자유한국당과 손잡기를 서슴지 않는다. 이번 심재철 사태가 그 한 예다. 김경수 경남도지사와 관련해서도 저들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핵심은 무엇인가. 아무리 국회의원이라도 정상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국가의 민감한 기밀들에 무단으로 접근해서 불법으로 정보를 취득한 것이다. 아무리 민감한 정보가 있어도 아직 공개하지 않았으니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도 대학까지 마친 사람들이다. 어렵게 시험을 치르고 언론사에 들어간 이들이다. 설마 저 말이 얼마나 말이 안되는가 모르고 지껄여대고 있었겠는가. 뻔히 말이 안되는 것을 알면서도 민주당 정부니까. 자기들이 아닌 민주당이 집권한 정부니까. 그 정부를 흠집내기 위해서라면 심재철의 불법까지도 얼마든지 용인할 수 있다.


한겨레만이 아니다. 정의당 스스로도 공식적으로 그리 논평하고 있었다. 오히려 국회의원이기 때문이다. 일개 기자가 아닌 국민에 의해 선출된 공인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공적인 규범을 따르고 지켜야 하는 것이다. 정상적으로 자료제출을 요구하고 그래도 안되면 그때서야 다른 수단도 강구할 수 있는 것이다. 기재부에서 불법취득 사실을 인지하고 반환을 요구했을 때도 저들은 그에 응하지 않았었다. 공개되지 않았으니 문제가 아니라던 민감한 자료들 역시 여전히 자기들이 확보하고 있는 상태다. 그런데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악하거나 아니면 구제할 수 없이 멍청하거나.


그동안 정의당의 지지율이 높았다. 민주당의 지지율이 높았기 때문이다. 정의당이 반성해야 하는 부분이다. 어차피 자유한국당이 저리 남아있는 동안에는 진보성향의 유권자들은 그에 대항할 수 있는 민주당을 놓아 버릴 수 없다. 자유한국당이 지리멸렬하고 민주당의 지지율이 높아 자기들이 아니어도 충분히 저들을 상대할 수 있다 여겼을 때 마음놓고 자기들의 이념과 성향에 맞는 정당을 찾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와 여당의 지지율이 떨어진다면 정의당의 지금 지지율은 어디로 갈 것인가. 물론 거기까지 생각할 뇌가 있다면 지금처럼 저리 헛짓은 못했을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무엇 때문에 지금 이처럼 정부와 여당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인가. 국가의 기밀이란 무엇인가. 특히 정치인에게 국가적 규범이란 어떤 의미인가. 정치인이니 법도 절차도 규정도 모두 무시해도 된다. 국가의 민감한 기밀도 요구하면 아무나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다고 아예 국가도 정부도 필요없다는 아나키스트들인가. 그냥 민주당 정부니까. 문재인 정부니까. 그러니 너희들은 틀렸다. 차라리 자유한국당이 옳다. 개새끼들이다.

  1. 사광 2018.10.09 16:18 신고

    글의 두 번째 문장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보수정당인 민주당에 투표하게 된다.
    이념적으로는 정의당에 더 가깝지만
    그래도 보수정당보다 조금은 더 진보적이라는 이유만으로,
    거기에 상당히 진보적인 인사들까지 상당수 합류해 있으므로
    대안으로 정의당이 아닌 민주당을 선택하게 된다.
    평소 진보정당을 지지하다가도 선거때만 되면 민주당으로 돌아서는 유권자가 그동안도 상당했었다.

    단지 횡설수설인가요?

    • 저는 이해가는데요. 2018.10.10 04:45 신고

      민주노동당이 창당하던 90년대 초중반 이후로 최근까지 계속 이어진 흐름으로 경험합니다.

      권영길을 찍고 싶었지만 울면서 김대중을 찍었다, 술마시며 노무현을 찍었다는 사람들이 대선때마다 많았습니다.
      심지어 진보정당 당원들조차요.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자한당류만큼은 이겨야 한다는 논리로요.
      그래서 그 부채감으로 진보정당을 평소엔 지지한다고 말하기도 하고 애정도 줍니다.

      현 진보정당의 답보상태는 그런 애정에 대해 뻔뻔하게 지분 요구를 하는 마인드로 정치를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표가 아쉬워서 필사적으로 뛰는 절박함,갈급함이 진보쪽 정치에는 별로 없어요. 선거운동 해보면 더 웃깁니다. 당원들이나 지지자들도 별로 절박하지 않고 바람만 가득하고 누워서 감 떨어지기나 기다리는 형국입니다. 말로는 절박하다며 실제로 현장에선 그래요. 그래놓고 선거후에는 평가질 하나는 칼같습니다.

      대중들은 그걸 은연중에 느끼고 있는 거고요. 그러니 평소엔 '응,진보가 옳지'하면서도 정작 표는 실제로 주지 않습니다. 횡설수설이 아니라 현실을 살아가는 자들의 선택이 이념을 살아가는 자들보다 더 냉정한 거라고 봅니다.

  2. 동의합니다. 2018.10.10 04:36 신고

    구구절절 동감하고 갑니다.
    정의당은 안에서 당원으로 들여다보면 더더욱 무능한 집단이란 생각이 들게 합니다.
    민주적 절차를 시스템으로 구축하지못하고 여전히 소수집단의 결정으로 당이 휘둘립니다.
    당원들의 의사는 당의 결정과 아무 연관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반성할 줄 모르고 외부에 민주주의 본산인척 하죠....
    사실 민주주의의 본산이 아닌걸 스스로로 알고 있습니다.
    사회주의 본산이고픈 자들이 진보라는 이름으로 민주주의자들을 꼬시는 집단이 국내 진보정당의 민낯이라고 봅니다.
    참여정권때도 그랬지만, 사회의 민주적 시스템이 제자리를 찾아갈수록 진보정당들은 스스로의 민주적 능력을 시험받게 될 겁니다. 민주정부 시스템과 비교당하게 되니까요. 더민주와도 마찬가지로 비교당하겠지만...

    여태의 대중들은 신한국당류의 대안으로 민주당류를 결과적으로 선택해왔지만 진보정당에는 부채감이 있었죠.
    이제 민주적 역량에서 무능을 보일수록 그 부채감도 줄어들겁니다. 얼마남지 않아보여요.
    이미 대중은 이념적으로 정당을 선택하기보다 합리적인 민주주의 시스템을 약속할 수 있는 능력을 보이는 것에
    호감을 더 갖게 되었다고 봅니다. 이념 중심의 진영논리에서도 벗어나기 시작하고 있고요.

    정의당의 지지율이 15%이상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한자리수로 떨어지는 과정에는 어떤 외부요인도 없었습니다.
    정치감각 없는 당의 한발늦은데다 대중들의 기대와는 다른 헛발질 대응들이 만든 과정일 뿐이네요.
    이런 건 다시 오르기도 힘들겁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진보정당의 진면목을 대중들이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이요.

    이명박근혜같은 집단이 살아있어야 정치적 지분을 겨우 얻어내는 진보집단이라면
    한쪽이 무너졌을때 같이 무너질 수 밖에 없습니다.
    현재의 진보정당은 정치적 비전을 정치적 올바름이란 여성주의,청년정치 등의 구호로만 떠드는 얄팍한 정체성정치 말고는 보여줄 능력조차 없습니다.
    통일이 목전에 다가오는 이런 분위기에서조차 민족의 앞날에 어떤 영향도 주지못하고 이전까지 해오던 통일운동조차
    주도적으로 이끌지 못하는 무능함을 보이고 있어서 더 기가 찹니다.
    아젠다 면에서도 거의 끝났다고 봅니다.
    기회의 평등이 자리잡아가면 이들의 정체성정치도 끝장날 겁니다.

    '지금 당장'이란 구호로 진보성을 강제하며 그걸로나 입지를 다지려는 멍청함으로 현재의 대중을 가르치려드는 한
    정의당의 미래는 불임정당에서 끝나지않고 고사직전의 정치동아리로 끝날 겁니다.
    정의당 류의 진보정당에 부채감을 가진 4,50대의 지지만으로 5% 내외의 지지율로 유지되다가
    새로운 대중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지들안에서 밥그릇 싸움하다가 끝내 버림받을 거라 봅니다.
    인천연합 류의 진보정당 내 계파들은 자신들이 진보를 이리 만드는 수구세력이란걸 인정하지 않으니 더욱 그러합니다.

"감사관실용"


국회의원 쯤 되는 사람이, 더구나 기재위 소속에 저 표시가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다는 것이 도대체 말이나 되는가.


열람해서는 안된다는 경고가 쓰여있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설마 집안에 있는 물건들에까지 가져가지 말라 경고를 써붙여야 한다는 뜻인가. 이미 문이 있다는 자체만으로 들어와서는 안된다고 하는 경계가 만들어진 셈이다.


이를테면 회사에서도 관계자 말고 출입하지 말라 표시가 붙어 있으면 인가되지 않은 사람은 설사 문이 열려 있어도 들어가서는 안되는 것이 상식인 것이다. 당연히 그 안에서 무언가를 만지고 가져가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굳이 만지거나 가져가지 말라고 써붙여 놓지 않았어도 인가되지 않았다면 그런 행위 자체가 금지되어 있는 것이 명시된 것이나 다름없다.


기재위에 있으면서, 더구나 지난 9년 동안 정권을 잡았던 여당이었기에 감사관실용이란 문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몰랐다면 오늘 밝혀진 바로 무려 100만 건에 달하는 자료를, 그것도 190여 차례에 걸쳐서 일부러 다운로드받지도 않았을 것이다.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자료라면 굳이 일부러 다운로드받을 필요 없이 정부에 사실을 알리고 공식적으로 요청해서 받으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알리지도 않고 몰래 다운로드받은 자체가 보아서도 당연히 다운로드받아서도 안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인 셈이다. 멍청해서 그 사실을 스스로 입증하고 말았다.


진짜 멍청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기재위에 있었으면서도 감사관실용이란 표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고 있었다. 자기가 어디까지 열람할 수 있고, 또 합법적으로 정보와 자료를 취득하기 위해 어떤 절차와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언론도 모르고 있었다. 정의당도 모르고 있었다. 박지원도 모르고 있었다. 병신새끼들이다. 대가리에 똥만 들어있는 것인지.


그냥 직장생활만 해봐도 거의 아는 일이다. 앞에 누구만 들어가라 쓰여 있으면 나는 들어가서는 안되는 것이다. 당연히 들어가서 무언가를 만지거나 하면 문제가 되는 것이다. 개새끼들이 진짜 정부만 바뀌면 대가리가 똥이 된다.


진보정당과 언론들이 어째서 문재인 정부를 그리 혐오하고 증오하는가 충분히 그 이유를 알고 있다. 새삼 그 사실을 재확인하게 되었을 뿐.


같지도 않다. 해명이 아니라 자폭이다. 저런 놈이 무려 5선씩이나 했다. 어이없다.

심재철의 주장이 맞다는 가정에서 - 의원이라는 호칭도 써주기 싫다 - 그렇다면 그저 백스페이스만 눌렀더니 들어가졌는데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인가. 그러면 도대체 해킹이 뭐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전에도 썼지만 해킹이라는 게 없는 문을 만들거나 단단히 잠겨진 문을 부수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원래 프로그램이라는 자체가 완전할 수 없다. 인간이 만드는 이상, 더구나 현실의 여건상 어딘가 허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 허점을 찾아내어 비집고 들어가는 것이 바로 해킹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때로 해커들은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거대소프트웨어 기업을 상대로 자기들이 있어 보안상의 문제를 발견할 수 있었다며 거꾸로 큰소리를 치기도 한다. 물론 개소리다. 해커들이 그리 집요하게 뚫지만 않았어도 사실 그렇게 중요하게 언급될만한 오류는 아닌 셈이다.


시중에서 파는 자물쇠들에도 당연히 허점은 있다. 요즘은 모르겠는데 예전에는 나같은 얼치기도 바로 그런 허점을 이용해서 열쇠가 없거나 할 때 문제없이 문을 따고 들어갔던 적이 있었다. 빈집털이 놈들도 비슷한 소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이렇게 몇 번 하니까 문이 열리더라. 문단속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 잘못 아닌가. 그렇게 중요한 것들이 보관되어 있다면서.


당장 웹화면에서 백스페이스를 여러번 반복해서 누를 일이 뭐가 있는가부터 생각해봐야 한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하필 그 상황에서 백스페이스를 몇 번 씩이나 반복해서 누르게 되었던 것일까? 혹시나 정부 프로그램에 백도어가 숨겨져 있었던 것은 아닌가 의심하는 사람들마저 있는 이유다. 나 역시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다. 심재철의 말이 사실이라면 저것은 다분히 의도적으로 만들어 놓은 말 그대로 프로그램의 뒷문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하긴 어차피 대부분 사람들은 웹화면에서 일부러 백스페이스를 여러 번 누르거나 할 일이 없었을 테니까. 사람들이 쉽게 하지 않으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다. 이건 또 전정부를 제대로 조사해야 하는 것일까?


아무튼 설사 프로그램상에 허점이 있어도 그 허점을 이용해서 그 내부로 침투하는 순간 그것은 해킹이 되는 것이다. 게임에서도 버그를 이용해서 부당하게 이익을 취하거나 하면 단호하게 영구정지를 먹이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오류가 있으면 운영자에게 신고해야지 그것을 부당하게 사용하려 해서는 안된다. 상식을 상식으로 여기지 않는 집단이니.


너무나 명백한 사안인데 여전히 양비론 중인 자칭 진보언론이나, 자칭 정론언론이나, 자칭 진보정당을 보면서 참 뭐라 할까... 국회의원은 무소불위인가. 세상에 제일 높고 절대적인 것이 국회의원이라는 생각만 든다. 개자식들이다. 하나같이. 멍 하고 엄마를 불러보라.

당연히 사람을 데려다 일을 시켰으면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일정한 강도의 일을 했으면 그에 따른 휴식 역시 보장되어야 한다. 일을 시키는 사람의 사정이 아닌 일을 한 사람의 당연한 권리로써 그 모든 것은 지켜져야 마땅하다.


아직 공무원도 아닌 일반인 신분으로 인수위도 없는 정부로 불려가 나라의 중요한 일들을 돕고 있었다. 또 경찰과 군인들은 나라의 중요한 행사를 위해 귀한 손님들을 경호하느라 추운 날씨에 크게 고생한 뒤였다. 하지만 지난 정부에서는 급여도 수당도 없는 자원봉사로 해결했다. 역대 어느 정부에서도 그런 비용을 나라의 세금으로 지급한 적이 없었다. 공무원도 아닌 일반인이고, 그 가운데서도 군인이고 경찰인데 그들에게 세금으로 자신의 노고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을 권리조차 없다는 것인가.


전혀 상관없는 것 같지만 최저임금에 대한 저들 보수정당의 태도 또한 바로 이런 정부 업무추진비 논란과 바로 이어져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청와대가 일이 많았다. 작년에는 심심하면 북한이 미사일을 쏴댔고, 올해는 평창올림픽부터 어지간하면 북한과 미국과 중요한 정상회담이 이어져 있었다. 경제와 관련해서도 대책을 세우느라 허구헌날 하는 일이 청와대에 모여 회의하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별보고 출근해서 별보고 그나마 퇴근이나 할 수 있으면 다행인 일상의 연속이었다. 주말도 휴일도 없는 경우가 허다했었다. 그래서 힘들게 일하고 직원들에게 가까운 식당에서 회식이라도 했으면 그것이 그렇게 큰 잘못이라는 것인가. 대부분 직장인들도 그렇게 격무에 시달리고 나면 회사에서 지불하고 거창하게 회식을 하며 피로를 푸는 경우가 적지 않다. 청와대라고 안된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논리인 것인가.


무슨 말이냐면 청와대는 돈도 받지 말고 쉬지도 말고 회식도 않으며 그저 일만 해야 한다는 뜻이다. 군인이나 경찰 역시 그것이 자신들의 일이므로 격려차원에서 고작 5500원짜리 목욕도 아깝다는 뜻이다. 사실 안해줘도 된다. 그 동안 안 해 준 적이 더 많았었다. 그냥 시키면 하는 일이니까.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일이니까. 그래서 열정페이라는 말도 나오는 것이다. 돈도 주지 않고, 휴식도 없이, 정당한 대가 없이 그저 시키면 시키는대로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열심히 일만 해야 한다. 그러니까 노동자들이 더 이상 지금보다 많은 급여와 복지를 바라는 것은 나라와 기업을 위해서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청와대나 공무원들이 받은 급여나 복지에 대한 저들의 시각이야 말로 노동자에 대한 저들의 생각 그 자체가 아닐까.


아마 심재철의 폭로에 공감하는 대부분도 비슷할 것이다. 노동자가 무슨 최저임금인가. 당장 기업이 살고 나라경제가 살아야 하는데 무슨 돈을 그리 더 받으려 하는가. 그러니까 업무추진비로는 밥도 먹어서는 안되고, 회식도 해서는 안되고, 피로를 풀어서도 안된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또다른 다수는 그런 자유한국당의 공격을 보며 오히려 울분을 느끼는 것이다. 공무원이기 이전에 그들 역시 나와 같은 노동자 아닌가. 그래서 반우스개로 목욕까지 시켜주면서 흔한 우유 하나 사주지 않았는가 트집잡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문제가 되고 나니 우유라도 한 팩 씩 사줬으면 해당 경찰과 군인들은 나라를 팔아먹은 역적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


한심스런 것이다. 한 편으로 서글픈 것이다. 언론이라는 것들이 그런 부분을 지적하는 놈들이 하나도 없다. 심지어 그 잘난 진보언론들조차 청와대 직원들은 노동자도 사람도 아니라는 양 그저 심재철이 떠들어대는대로 옮겨적으며 양비론을 펼치기 급급하다. 이렇게까지 노동의 가치가, 무엇보다 인간의 가치가 하찮은 것인가. 청와대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것들까지 공격의 대상으로 삼아도 좋은 것인가.


그런 식으로 문제삼으려면 사기업의 회식비도 문제삼아야 한다. 밤늦게까지 야근을 시키며 야식을 준비하는 비용까지 문제삼아야 한다. 하긴 그 돈은 또 얼마나 아까울까. 도저히 사람취급하기 싫은 이유가 이렇게 또 하나 늘었다. 아주 기분만 더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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