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전 보니 또 박형준이 헛소리한다. 하긴 박형준만이 아니다. 조중동, 한경오, 자유한국당, 바른정당, 그리고 국민의당까지 한결같이 하는 말이다. 적폐청산이 정치보복이 되어서는 안된다. 법과 제도의 개혁이어야지 개인에 대한 처벌로 끝나서는 안된다. 그런데 법과 제도를 바로 고치려 해도 뭐가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알아야 그에 대한 대안도 고민할 수 있는 것 아니던가.


더구나 문제가 그렇게 과거 정부에서 어떤 문제들이 있었는가를 알았을 때 이미 있는 현행법을 어긴 행위에 대해서까지 없었던 일로 덮고 넘어가야 할 것인가? 차라리 과거 어떤 문제가 있었고 따라서 무엇을 어떻게 바꾸고 고쳐야 하는가 먼저 자수해서 알린 경우라면 참작의 여지는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고발자로써 그가 고백한 내용들을 다시는 그같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바로잡는데 참고함으로써 그 기여를 인정한다. 원래 형사범들도 먼저 자수할 경우 수사 및 재판과정에서 정상을 참작해주도록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끝까지 사실을 감추고 왜곡하려다가 수사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들통난 경우에도 선처해야만 하는 것인가.


'썰전'에서도 유시민이 한결같이 주장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박근혜는 물론 이명박에 대해서도 먼저 사실을 인정하라.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하라. 그리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법과 제도를 개혁하는데 적극적으로 협력하라. 그러면 국민이 그래도 전직대통령이기에 선처를 요구할 수 있다. 전직대통령에 대한 예우로써 면죄부를 줄 수도 있다. 하지만 끝까지 부정하지 않았는가. 끝까지 부정하며 버티다가 끝내 특검의 수사 결과 사실들이 밝혀지고 탄핵까지 당하지 않았는가. 이명박도 박근혜와 같은 처지가 될 수 있다. 그러니까 자수하고 광복을 찾으라. 끝까지 버티다가 병사들에 잡혀 끌려나온 적의 군주는 동정의 대상조차 아니었다. 백성과 병사들의 목숨을 아끼려 스스로 죄인이 되어 항복했을 때 최소한의 명예와 지위나마 지켜질 수 있었다.


아무튼 웃긴 것이다. 그렇게 법과 제도를 바로 고치려면 먼저 자기들이 사실을 털어놓고 이런 식으로 법과 제도를 고치자며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던가. 실제 과거 어떤 일들이 있었고, 그것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법과 제도를 바로 고쳐야 한다고 당사자로써 자신들이 경험했고 또 알고 있는 바를 적극적으로 법과 제도의 개혁을 위한 수단으로써 활용하는 모습을 보이며 그런 말들을 해도 해야 한다. 그냥 있는 사실도 묻고, 밝혀진 진실마저 감춘 채 법과 제도막 막연히 고치면 과거의 잘못들이 바로잡혀 지는가. 최소한 잘못을 저지르고도 끝까지 인정하지 않고 바로잡으려 하지 않는 자체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책임을 묻는 정도는 필요하다. 선하게 바뀌는 것에 앞서는 것이 과거를 바꾸는 것임(改過遷善)을 알아야 한다.


하여튼 누가 MB의 측근 아니랄까봐 얼굴에 철판 정도가 아니라 열화우라늄을 겹겹이 깔아 놨다. 그래서 얼굴 무거워 들고나 다닐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일부가 문제다. 전체 가운데 아주 일부가 문제일 뿐이다. 그 일부조차 군이, 그리고 정보기관이 절대 해서는 안되는 행위들이었다. 유시민이 잘 지적했다. 그렇게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 정당한 행위였다면 어째서 자신의 소속과 이름을 감추고 익명으로 댓글을 달고 있었던 것인가. 국가기관의 모든 행위는 공식적인 절차와 경로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원칙에 의거해서 철저히 공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유는 당연히 국가란 특정한 개인의 소유가 아닌 모두의 공동체인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원칙과 절차를 무시한 채 특정한 목적을 위해 자신의 정체와 신분마저 감추고 국가의 권력을 사용하려 한다. 그냥 댓글 몇 개 단 것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들어간 모든 시간과 노력과 비용이 국민이 낸 세금으로 이루어진 것들이다. 그런데도 의도가 선하니 그런 부분들마저 봐주고 넘어가야 한다. 그러니 MB정부에서 정무수석까지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요즘은 아예 박형준 저 인간이 나와서 어떤 궤변으로 이런 명백한 사안들에 대해서마저 물타기를 하려 할 지 그것 하나 기대하며 보는 중이다. 굳이 다른 언론의 보도나 정치인의 발언을 찾아 볼 필요조차 없다. 거르고 거른 쥐어짜고 쥐어짠 논리가 많이 배운 지식인의 언어로 흘러나온다. 똥을 거름으로 쓰면 기생충이 들끓게 마련이다. 똑똑한 놈들이 원래 더 문제다. 혐오스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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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히 개신교의 목사는 성직자가 아니다. 개신교가 처음 가톨릭에 반발하며 갈라져 나왔을 때 비판하던 부분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저것이었다. 인간이 어떻게 신을 대신할 수 있겠는가? 신의 말씀을 전하고 신도들의 바람을 다시 신께 전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성직자도 결국 인간이다. 모든 결정은 신이 하는 것이고 말씀을 듣는 것도 전하는 것도 오로지 신이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신을 대신하는 성직이 아닌 단지 인간인 신자의 대표로써 새로운 목사라는 직책이 생겨났다. 그러고보면 확실히 현대 한국의 개신교회는 중세의 가톨릭을 닮아 있는 것 같다.


오래전 어느 개신교 신자에게서 성경을 읽는 것도 목사에게 맡겨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일반 신자들은 성서를 잘못 읽고 오해할 수 있으므로 함부로 성서를 읽으려 하지 말고 목사가 하는 말을 듣고 따라야 한다. 그런데 원래 프로테스탄트가 가톨릭에 반발하며 주장했던 첫번째가 바로 성서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모두가 성서를 읽고 오로지 성서의 가르침대로 따르자는 것이었다. 여기서 출발한 것이 미국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복음주의이기도 하다. 그런데 신자가 성서 읽기를 포기하고 목사에게 맡기겠다니. 목사가 신의 대리인은 아닐지라도 신의 말씀을 전하는 성경의 대변자는 될 수 있다. 성경의 권위가 곧 목사의 권위가 된다. 기독교를 믿는 것이 아니라 목사의 말을 믿는다.


교회의 사유화도 그래서 가능하다. 그나마 가톨릭은 교황일라는 확실한 중심이 있다. 가톨릭마저 교황의 사유물이던 시절이 있었다. 교황이 누리는 신성이 곧 교회의 사유화를 불가침의 권리로 만들었었다. 교황을 정점으로 각각의 추기경들이 자신의 교회를 사유화하고 성직자들을 사조직으로 만들며 무소불위의 권위를 누리고 있었다. 성직자를 거스르는 것은 곧 신을 거스르는 것이다. 감히 신의 말씀을 전하는 목사를 거스르는 것은 신을 거스르는 것과 같다. 거기에 전근대사회 특유의 폐쇄된 구조가 교회의 눈밖에 나면 살아갈 수 없도록 만들고 있었다. 한국 특유의 끈끈한 인간관계가 그같은 집단의 의지를 쉽게 거스르지 못하게 한다.


목사가 범죄를 저지른다. 비리를 저지르고, 성범죄를 저지르고, 그리고 교회를 사유화하여 세습하려 한다. 그래도 신자들은 지지한다. 단지 목사의 말씀이므로 자신의 생각과 다르더라도 무조건적으로 믿고 지지하며 따른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욕해도 목사가 옳았고, 정권의 부패와 비리와 전횡을 옹호해도 목사가 옳았다. 차라리 가톨릭으로 개종했으면 어땠을까? 아니 요즘 신부들은 전처럼 그런 식으로 무소불위의 권위를 누리고 휘두르지 않는다. 교황이 자기 사생아에게 교황의 자리를 세습하듯. 역사는 그리 발전하는 것 같지 않다. 비신자로서 아주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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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헌 정무수석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한다는 뉴스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다. 물론 한 편에서는 소환일정조차 잡힌 것이 없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하기도 했었다. 무엇인가? 결국 아직까지 전병헌 정무수석의 혐의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이 입증되지 않은 상황이라 공식적으로 그 혐의사실에 대해 공표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측근들의 비리이지 아직 정무수석의 부정까지는 아니다. 그래서 언론을 통해 여론몰이를 시도한다.


전병헌 수석의 말이 옳다. 과거 노무현 때도 그랬었다. 명확한 혐의사실 입증 없이 언론플레이를 통해 여론부터 만들었었다. 언론을 이용해서 기정사실로 만듦으로써 여론재판을 시도하고 있었다.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정치인에게 이보다 치명적인 것은 없다. 문제는 그런 검찰이 불과 며칠전 같은 검찰인 변창훈의 죽음을 두고 명예네 인권이네 떠들며 강압수사를 주장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변창훈은 여론몰이는 커녕 변변한 보도조차 없이 막 수사가 시작되려는 시점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었다.


그러니까 검레기라 부르는 것이다. 그러니까 시험만 잘 보는 쓰레기들이라 욕하는 것이다. 열심히 골방에 틀어박혀 출세하자고 공부만 하던 놈들이 권력과 지위를 손에 넣으니 눈에 뵈는게 없다. 전병헌 수석에게 하던 식대로라면 변창훈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자신의 나약함과 비겁함으로 인한 것일 뿐이다. 변창훈에게 했던 것도 무리한 수사였다면 지금 전병헌 수석에게 하는 것처럼 명확한 혐의사실 없이 언론을 이용한 몰아가기는 잘못된 것이다. 그런 보편의 상식조차 없는 것은 자기들이 아주 대단한 선택된 존재라는 의식 때문일 것이다. 검사인 자신들은 저들과는 다르다.


확실히 때려부숴야 한다. 전병헌을 내주는 한이 있어도 아예 검찰을 뿌리부터 뒤집어 버려야 한다. 검사놈들이 다시는 저런 식으로 어깨에 힘주고 거들먹거리지 못하도록. 아예 검찰조직을 조각조각내서 저놈들이 다시 저런 식으로 특권의식으로 뭉쳐 행동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다시 한 번 확인한다. 검레기는 검레기였다. 검새는 검새였다. 인간이 아닌 것을 인간으로 취급해서는 안된다. 확실히 검사는 검사다. 웃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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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화폐가치의 과잉에 대해 우려하는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현실에 존재하는 실물가치보다 유통되는 화폐가치의 총량이 3배나 많다는 말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안있어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가 터지며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자본주의란 화폐 그 자체를 수단으로 삼아 생산을 하는 체제인데 정작 투자대상이 되어야 할 현물가치가 따라오지 못하니 결국 그런 무리수가 일어나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넘쳐나는 화폐가치를 소비해야 하고, 그 소비를 통해 또다시 새로운 가치를 생산해야만 한다.


최근 비트코인을 필두로 끝을 모르고 오르는 가상화폐시장을 보며 드는 생각이기도 하다. 과연 비트코인이니 이더리움이니 하는 가상화폐들이 실제로 얼마의 가치를 가지는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실제 가상화폐가 얼마나 화폐로서 쓰일 수 있을 것인가 확실한 전망이나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경우도 그다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가상화폐로 몰려드는 이유는 돈을 불려야 하기 때문이다. 마침 돈은 있는데 그 돈을 불릴만한 마땅한 대상이 없다 보니 투자처로서 가상화폐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투자하면 오른다. 일단 사놓으면 가치가 뛴다. 그런 대중의 믿음이 가상화폐의 가치를 담보한다. 부동산 거품과 같다. 부동산을 사면 오른다는 믿음이 실제 가치와 상관없이 사람들로 하여금 부동산에 투자하게 만들고 실제로도 부동산의 가치가 오르도록 만든다. 다만 그같은 믿음이 사라지는 순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이나 일본의 버블붕괴처럼 대규모 공황이 찾아올 수도 있다. 실제와 믿음의 괴리가 다시 현실로 돌아오고 만다.


결국은 시간싸움이다. 거품이 꺼지기 전에 완벽하게 가상화폐를 현실화폐로 통합시키느냐. 가상화폐를 현실에서 실제 유통함으로써 실질가치를 가지도록 만들 수 있는가. 그렇게 되면 가상화폐는 더이상 투자가치가 아니게 된다. 지금 투자대상으로서 가상화폐가 주목받고 끝도 없이 가격이 오르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 불확실성에 있으니까. 어떻게 될 지도 그러니까 앞으로 얼마의 가치를 가지게 될 지도 지금으로서는 전혀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 불확실한 미래와 가능성을 보고 돈을 투자하게 된다. 잘되면 대박이고 안되면 쪽박이다. 물론 쪽박을 보고 투자하는 사람은 현실에 거의 없다.


가상화폐의 가치가 오를 것을 알면서도 감히 투자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이유다. 설사 가상화폐로 돈을 버는 사람이 나오더라도 부러워하지만은 않을 이유이기도 하다. 용기다. 나는 그런 불확실성에 무리하게 돈을 쏟아부을만한 용기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차라리 그럴 돈이 있으면 국민연금에 더 넣어둔다. 그동안 납부하지 않은 국민연금을 추가로 더 납부해 둔다. 그에 비하면 그들은 그런 불확실성에도 위험부담을 기꺼이 감수한 탓에 막대한 이익을 보고 있다. 공짜가 아니라. 리스크가 크기에 이익도 큰 것이다. 그 리스크를 감수할 수 있으면 돈을 벌고 아니면 벌지 못한다. 나는 당연히 후자다.


과연 가상화폐의 상승세가 어디까지 이어질까? 원래 부동산의 가치라는 것도 떨어지는 그 순간에서야 비로소 거품으로 평가받는 법이다. 떨어지지 않는 이상 아무리 높아도 그것이 실제의 가치다. 부동산의 가치가 세계적으로 지속적으로 오르는 경향을 보이는 것도 결국 시장에 돈이 남아돌기 때문이다. 남아돈을 투자하기에 가장 안정적인 대상이 부동산이기에 생산이 증가하는 만큼 부동산 역시 지속적으로 상승해 왔다. 시장에 돈이 너무 많다. 너무 많아서 투자해서 돈 벌 곳이 없다. 그러나 과연... 아직까지도 불안하다. 역시 믿을 건 연금이다. 소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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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른바 야동을 보는 사람 가운데 포르노업계의 어두운 그늘에 대해 어렴풋이나마 모르는 사람은 거의 드물다. 모를 수가 없다. 당장 포르노에 출연하는 배우들에 대해 인간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묻는다면 답은 금방 나온다. 물론 스스로 직업으로써 포르노배우를 선택한 경우도 적지 않을 테지만 다른 이유로 처음 업계에 발을 딛게 된 경우도 적지 않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는 야동을 많이 더 열심히 볼수록 자연스럽게 자신의 귀에 들어오게 된다. 그럴 때 대부분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바로 옆나라 일본의 이야기다. 스카우터에게, 혹은 소속사에게 속아서 잘못 계약을 맺은 탓에 포르노에 출연해야만 했던 여배우들의 이야기가 간간이 미디어를 통해 들려온다. 때로 사기로, 때로 유인과 약취로, 때로 협박으로, 그렇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포르노에 출연하고 그로 인해 깊은 정신적 상처를 입고 고통속에 살아가야 하는, 심지어 아예 삶을 포기하고 마는 불행한 경우마저 적잖이 듣게 된다. 그런 때 가장 먼저 들려오는 대답은 다름아닌,


"품번은?"


당사자가 얼마나 큰 상처를 입고 어떤 고통속에 살아가든 상관없이 자신은 그런 이슈마저 자신을 위한 더 큰 자극으로 여기려 한다. 그나마 대놓고 말하지 않는 경우는 최소한의 인간적인 염치나 연민은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조차도 결국에 그런 사례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포르노산업을 위축시킬까 걱정되어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된다. 피해자에게도 잘못이 있다. 피해자에게도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업계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모든 배우들이 그런 피해자인 것은 아닐 것이다. 일부의 사례이고 그러므로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포르노합법화에 반대하는 이유다. 인간이 아니다. 그냥 대상이다. 자신의 성적 욕망을 위한 도구이고 수단일 뿐이다. 그 과정에서 실제 인간인 포르노배우들이 어떤 일들을 겪고 그로 인해 어떤 상처를 입고 고통을 당하는가는 그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설사 어떻게든 들어 알게 되었어도 인간으로서의 존중이나 연민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어떻게 하면 자신의 욕망을 지키고 더 극단적으로 누릴 것인가 하는 고민만을 보일 뿐. 그리고 그것이 여전히 포르노산업에서 알게모르게 범죄와 불법들이 저질러지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그럼에도 소비자들은 포르노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어째서 성매매에서 매매자가 아닌 매수자만을 처벌할까? 물론 성매매 역시 매매자 자신의 자발적 의지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대부분 성매매가 범죄와 연관되어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매매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제나 억압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 또한 현실에서 결코 적지 않다.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까지 범죄집단으로 하여금 성매매에 집착하도록 만드는가? 그래도 상관없다 여기는 매수자들의 존재인 것이다. 전에도 썼던 고래고기나 개고기 문제와 유사하다. 아예 처음부터 금지했다면 고래의 밀렵도, 개도둑도, 마찬가지로 성매매를 위한 인신매매나 사기, 협박, 감금 등의 범죄도 처음부터 없었을 것이란 것이다. 당연히 그래서 매매여성은 처벌하지 않아도 알선하고 대가를 챙긴 포주들은 엄격하게 처벌한다. 반면 성매매여성들은 그 자발성을 엄격하게 구분해서 판단하는 자체가 불가능하므로 처벌에서 예외시킨다. 성매매의 비범죄화다.


비슷한 사례로 아동포르노가 있다. 아동포르노가 불법인 나라에서는 단순히 소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엄격하게 처벌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소유가 있으므로 생산과 유통이 있다. 아동포르노 제작자를 엄격하게 단속하는 것과 함께 아동포르노의 수요자들 역시 철저하게 처벌하여 시장 자체를 없애 버린다. 그렇다고 포르노 소비자들을 모두 법으로 처벌하지는 못하겠지만 최소한 아예 포르노 자체가 불법이라면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위들은 불법이라는 족쇄 정도는 채울 수 있다. 그만한 부담을 지면서까지 제작할만한 이익이 있는가 스스로 따져 묻게 된다. 역시 그렇더라도 포르노를 보는 수요자가 없다면 그같은 범죄들은 그나마 줄어들게 된다.


사실 한국이라고 아예 포르노의 불모지는 아니었다. 80년대 한국산 포르노가 세계에서 꽤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그 제작방식은 모두가 예상하는 그대로였다. 납치와 인신매매, 그리고 폭력, 강간, 바로 청계천 상가에서 비디오테이프로 만들어져 팔리고 있었다. 2000년대 초반 성인방송이 유행했을 때도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이 꽤 있었다. 모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모르는 것은 그런 기억이 없는 젊은 세대들인지 모른다. 포르노가 얼마나 인간을 피폐하게 만드는가를. 그래서 묻는 것이다. 그토록 포르노를 예찬하는 자신은 포르노배우들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성매매합법화를 주장하는 인간들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성매매가 당당하고 옳은 것이라면 성매매 여성에 대해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차피 같은 인간으로서 존중하지도 못하고 멸시하고 차별할 것이라면 그런 대상을 만들어내는 일을 처음부터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인간의 존엄을 믿고 인간이기에 존중해야 함을 안다면 그에 반하는 행위를 적극적으로 주장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성매매여성을 멸시하면서 정작 그런 성매매여성을 만드는 성매매는 합법화시키려 한다. 포르노배우를 동등한 인격으로 대우하지 못할 것이면서 그런 배우들을 만들어내는 포르노를 자신의 욕망을 위해 합법화하려 한다. 모순이다. 원래 인간이 모순된 존재이기는 하다. 아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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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알게 된 사실이다. 하긴 너무 당연하다. 아니면 신문사가 아직 유지될 수 없었을 테니.


은행으로 들어가는 한겨레, 경향의 양이 상당하다. 그것도 은행 지점 하나다. 뜻밖에 몇몇 경제신문과 조중동을 제외하면 한경이 거의 유일하다.


저들이 저리 날뛰는 이유다. 개인독자들은 상당부분 떨어져나갔다. 과거 동지라 믿었던 민주진영 독자 상당수가 아예 한경에 등돌리고 말았다. 하지만 기럼에도 기관수요가 남아 있다. 그러면 그들을 위해서는 어떤 기사를 써야 하는가?


이제는 경제의 논리다. 이념도 성향도 다 지난 이야기다. 어떤 기사를 써야 돈이 되는가. 아마 민주진영에서는 그런 한경의 스탠스가 상당히 의아했을 것이다. 정작 그들이 타겟으로 삼아야 할 독자는 자신들인데 어째서 항상 자신들을 거스르는 기사만을 고집스레 쓰는 것일까? 진짜 돈되는 독자가 누구인가를 생각해보면 그 답은 너무나 쉽게 나온다. 한경이 유독 이명박을 조준하기 시작한 적폐청산에도 적대적인 의견을 은연중 내비치는 이유다. 최소한 이명박이 문재인보다는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었다.


가끔 한경을 얻어서 볼 일이 있는데 때로 원래 한경의 스탠스대로 쓴 기사들도 보이지만 그보다는 왜 이런 기사를 썼을까 역겨운 것들도 적지 않다. 그래서 이해했다. 그냥 이제 한경도 돈을 위해 기사를 쓰는구나. 어차피 보수는 조중동이 잡고 있으니 진보를 이념으로 잡고, 그러나 자신들을 소비해주는 기관독자들을 위해서 철저히 그들의 입장에서 기사를 써준다. 이제야 그들이 이해되기 시작한다.


전병헌과 관련해서 여명숙이 사과한 기사도 한경은 아직 내지 않았던 것 같은데. 뭐 굳이 확인하지도 않는다. 그냥 그런 것에 일일이 신경써주는 자체가 한경에게 도움이 되는 길이다. 무시만이 답.


한동안 망할 일은 없을 것 같다. 개인독자들은 떠나도 기관이 아직 남아 있다. 진짜 돈되는 건 이쪽이다.


차라리 솔직해지면 욕은 덜 먹을 것 같다. 목구멍이 경찰이고 법원이고 양심이고 정의다. 세상의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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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노무현 때는 대통령의 측근을 타겟으로 삼아 교묘하게 잘 빠져나갔었다. 권력의 핵심까지도 단호하고 엄격하게 수사해서 처벌하는 정의로운 검사라는 이미지까지 얻었다. 당시 달라진 검찰의 모습에 환호하고 열광하며 지지를 보냈던 국민들을 기억한다. 그런 국민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검찰을 개혁하려는 노무현 정부의 의도를 절묘하게 역공까지 하며 피해갈 수 있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변창훈 하나 죽었다고 아예 다수 검사들이 들고 일어나서 야당과 언론과 손잡고 심지어 검찰총장과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하극상을 벌이는 중이다. 정부의 적폐청산으로 인해 무고한 검사가 희생되고 말았다. 망신주기식 강압수사가 아까운 목숨을 스스로 끊게 만들고야 말았다. 이같은 억울한 죽음을 불러온 검찰총장과 법무부장관, 나아가 적폐청산을 밀어붙이고 있는 정부를 응징하고 단죄해야만 한다. 더불어 청와대 비서관 전병헌과 행정관 탁현민을 타겟으로 언론플레이를 시작한 것이었다. 봐라, 현정부도 그렇게 깨끗하지만은 않지 않은가. 그런데도 감히 적폐청산을 말할 수 있을까?


그런데 검사들이 전혀 오판하고 있는 것은 지금 문재인 정부가 추진중인 적폐청산이란 노무현 정부 당시의 막연하기만 했던 검찰개혁과 그 성격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탄핵당했다. 그것도 다수의 국민이 들고일어나 국회를 압박한 결과 그리된 것이었다. 거의 80%에 이르는 국민들이 초유의 대통령 탄핵에 동의했고, 심지어 백 만이 넘는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와 그 의지를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기까지 했었다. 이게 나라냐 싶을 정도로 참담한 상황에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지금의 대통령에게 표를 주어 당선시켰던 것이었다. 그때부터 현대통령이 첫째 공약으로 앞세웠던 것이 바로 적폐청산이었다. 당장 드러난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부터 지금까지 계속되어 온 국정의 난맥과 폐단을, 특히 불법과 범죄를 엄정히 수사해서 처벌하고 장차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하겠다. 검찰이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검찰조차 과거 정부에서 저질러진 수많은 비리와 범죄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사실을 다수 국민들이 이미 알고 있다.


전병헌이 죄가 있다면 처벌하면 된다. 탁현민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에 따른 책임을 물으면 된다. 그와 함께 드러난 범죄들에 대해서도 엄격하게 법에 따라 처벌해야만 한다. 검찰도 죄가 있다면 처벌받아야 한다. 하나의 목숨이 사라진다는 것은 무척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과거 저질러진 수많은 잘못들을 이대로 모른 척 대충 덮고 넘어가서는 안된다. 그러라고 문재인에게 표를 주었던 것이고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시킨 것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70%를 넘나드는 국민이 현정부의 적폐청산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검찰들 자신이 그동안 그랬던 것처럼 적폐청산일라는 거대한 시대의 과제 앞에서 한 사람의 죽음 정도는 사소한 것이다. 대통령 측근 몇몇의 잘못 정도는 무시해도 좋은 것이다. 오히려 검사 하나의 죽음을 빌미로 적폐청산 자체를 거부하고 저항하는 검찰의 모습에서 검찰 또한 청산되어야 할 적폐의 일부임을 확인하게 된다. 자기도 변창훈 검사와 같은 처지라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법과 정의를 지켜야 할 검사들이 자기 입으로 떠들어대는 소리다. 증거를 조작해서 검찰의 수사를 방해하는데 앞장섰던 인물에게 검찰이라는 조직의 대표성을 부여한다. 과연 이번에도 국민들은 그런 검사들의 의도에 넘어가 줄 것인가?


별로 안타까운 죽음도 아니었지만 그것을 빌미로 적폐청산 자체에 대해 강한 적의를 드러내는 유가족과 검찰의 모습에, 그리고 그에 보조를 맞추며 적폐청산을 저지하고자 나서는 야당과 언론들을 보면서 알량하게나마 가졌던 연민과 동정심을 모두 지우고 만다. 전에도 쓴 것처럼 변창훈 검사가 혼자서 잘먹고 잘살자고 그런 범죄들을 저질렀던 것은 아니었을 게다. 그렇게 얻은 지위와 권력과 돈이 누구에게 흘러갔을까? 그런 구조들을 본다. 변창훈이 아니었어도 다른 검사가 변창훈과 같은 길을 걸었을 것이다. 검찰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구제불능으로 타락해 있는가. 검사를 수사했다는 이유만으로 검사인 피의자의 모든 잘못은 지워지고 만다. 저들이 바라는 것은 단 하나, 과거의 모든 잘못을 덮고 묻고 잊고 지나가는 것이다. 무엇때문일까?


그다지 효과는 없을 것이다. 언론도 야당도 열심히 떠들어대고, 검사들도 자신들의 바닥을 드러내가며 여론몰이를 하려 애쓰고 있지만 그 효과는 그리 신통치 않다. 말한 그대로다. 대상이 명확하다. 사실관계가 명확하다. 그러므로 드러난 잘못들을 수사하고 단죄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범죄들에 검사 스스로가 동일시하며 집단으로 행동에 나서고 있다. 청산되어야 할 적폐가 여기 하나 더 있다. 특권이 나름 수재들도 바보로 만들고 만다. 웃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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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선거개입에 대한 검찰의 수사를 주도해서 방해한 혐의로 수사받을 예정이었던 검사 하나가 뒈져버렸다. 본격적으로 수사가 시작된 것도 아니었다. 실제 구속이 이루어진 것도 아니었다. 수사도 시작하기 전에 지레 겁먹고 지가 지 목숨을 땅바닥에 내던져 버렸다. 하긴 원래 검사의 양심이나 명예는 그 놈 아니었어도 시궁창에 뒹굴고 있었을 것이다. 검사의 양심이니 기개니 하는 헛소리는 지난 정권에서 검사의 모습을 보고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그런 놈 하나 죽었다고 다수 검사들이 들고 일어나 심지어 검찰총장과 법무부장관을 향해 비난을 퍼붓고 있다.


검찰이 검찰을 수사해서는 안된다. 검사가 같은 검사의 죄를 물어서는 안된다. 그동안 검찰의 수사과정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며 스스로 자해하거나 목숨을 끊은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사회저명인사들도 포함되어 있었고, 나름 상당한 위치에 있던 정치인이나 경제인들도 적지 않았었다. 불과 얼마전에 역시나 같은 수사대상이었던 국정원 소속 변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었다. 그때 검찰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같은 검사들이 그때 그들에 대해 어떤 연민과 동정을 보이고 있었는가. 그러니까 그런 식의 강압적인 수사는 안된다며 반성하는 목소리가 한 번이라도 나온 적 있었는가. 그럼에도 굳이 그런 검사들의 태도를 지적하지 않았던 것은 수사과정에서 어쩌면 필요할 수도 있었겠다는 동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범죄사실을 밝히고 처벌하기 위해서라도 보다 억압적인 수단도 때로 필요할 수 있다. 그런데 어째서 검사는 안되는데?


그래서 문제다. 검사도 범죄를 저지른다. 이번의 예에서 보았듯 현직이든 전직이든 검사이거나 검사출신들이 피의자가 되어 검찰의 수사를 받아야 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오히려 수사받으러 가서 팔짱끼고 거만한 눈으로 수사검사를 보던 전직 검사출신 우병우를 떠올리게 된다. 더구나 검사로써 검찰의 수사를 방해한 혐의를 받고 수사를 받아야 하는데 지레 죽어버린 어느 검사놈에 대한 검사놈들의 격앙된 반응을 보고 있으면 과연 검찰이 그같은 전현직 검찰들의 범죄를 바로 수사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 같은 검찰을 수사했다는 이유만으로 위아래도 모르고 비난을 퍼부어대는 저놈들을 보고 이미 헤아릴 수 없이 세상에 드러난 전현직 검찰출신들의 범죄수사를 믿고 맡길 수 있을 것인가?


다시 한 번 확인한다. 검찰은 검찰을 수사할 수 없다. 검사가 검사를 수사해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전현직 검찰들에 대한 수사를 이대로 손놓고 있을 수는 없다. 아마 전부터도 수없이 많은 비리와 범죄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나마 아예 특권이 몸에 배어서 아무일 없을 것이라고 조심성을 잊은 결과 최근 그것들이 크게 드러나게 되었을 뿐이다. 그마저도 제대로 된 수사와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무엇때문이었는가 검찰들 자신이 확인시켜준다. 검찰을 수사하기 위해서는 검찰 외적인 존재가 필요하다. 검찰 외에 또다른 수사의 주체가 필요하다. 검찰을 수사할 수 있는 공수처와 검찰을 견제할 수 있는 경찰의 존재다. 경찰 역시 믿음이 안가기는 마찬가지지만 서로 견제하게 해놓는다면 어떻게 되겠지. 검찰이 범죄를 저질른 검찰을 수사했다고 저 난리를 치는 놈들을 보고 있으면 더이상 검찰에만 수사권과 기소권을 맡겨놓을 수 없다는 사실만 분명해진다.


개새끼들이다. 욕 좀 해야겠다. 개똥같은 새끼들이다. 싹 갈아서 거름으로 만들면 그나마 세상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범죄를 저질렀는데도 같은 검사고 자신들의 동료다. 자신들의 동료이기에 더이상 수사를 받더라도 일정 이상의 예우를 받아야만 한다. 지가 못나서 죽은 것까지도 수사한 검사들의 잘못이다. 이런 놈들이 이 나라의 법과 정의를 책임지고 있었다. 이런 놈들을 믿고 이 나라의 법과 정의를 바로 세우라 말하고 있었다. 원래 그런 놈들인 것은 알았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최소한의 염치도 없는 쓰레기인줄은. 새삼 깨닫는다. 검찰을 사람취급해서는 안된다. 토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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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민족의 십일조 2017.11.08 16:05 신고

    저도 동감합니다. 검사 수사는 다른 기관에서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공수처 같은 기관이 설립되어야 할 이유겠지요.

우병우와 관련해서도 몇 번 이야기한 바 있었다. 과연 우병우의 부모나 형제, 아내, 자식들은 그런 우병우를 부끄러워할까? 자랑스러워할까? 


진짜 아주 막장이 아니고서는 기껏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고서 혼자서만 그것을 누리려 하지 않는다. 가족에게도 돌아간다. 돈이든, 신분이든, 권력이든. 오히려 먼저 가족들이 그것을 바라고 기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출세해라. 출세해서 집안을 일으켜라. 네 부모, 네 형제, 네 가족들을 책임지라. 그런데 언제부터 검사 월급이 일가족을 모두 먹여살릴 정도가 되었을까?


다른 사람도 아닌 검사가 검찰의 수사를 앞장서서 방해하고 있었다. 증거를 조작하고 인멸하는데 힘을 보태고 있었다. 이유는 하나다. 권력이 시켰으니까. 출세하려면 그 권력에 잘보여야만 했을 테니까. 그래서 지금껏 누려온 것이 있었을 터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고 자신이 저지른 죄가 드러나려 하자 관련자를 회유하려 시도하더니 수사를 피해 자살까지 하고 있었다. 동정의 여지가 있을까? 그러니까 같은 검찰이니까 그 죽음마저 동정해야 한다는 검사놈들이 있으니 검찰이 그모양인 것이다. 언제부터 검사가 피의자에 대해 그렇게 관대했던 것일까?


이번 자살과 관련한 검찰 내부의 반응이야 말로 오랫동안 썩고 비틀어진 검찰 자신의 추악한 특권의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을 것이다. 혐의가 있으니 수사한다. 이미 한 번 수사를 방해해서 혼선을 주었고 여전히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기에 구속하여 수사해야 한다. 어째서 검찰은 그러면 안되는가? 그 과정에서 억울한 일들이 한둘이 아니었을 텐데 어째서 검찰의 죽음에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것일까? 검찰총장에게까지 너희가 죽였다 비난을 퍼부었다고 한다. 검찰이 검찰을 수사하는 것이 하극상을 저지를 만큼 큰 죄였다. 이쯤되면 검찰을 아예 해체하고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 쪽이 더 깔끔할 듯하다. 검찰의 죄를 물어서도 감시 수사해서도 안된다.


그 유가족의 울부짖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디 감히 검사를. 어디 감히 우리 영감님을. 돈줄인데. 사회적 신분이고 지위인데. 권력인데. 그래서 앞으로도 영원할 것만 같았던 부귀영화가 한 순간에 날아갔는데. 그 상실감이 오죽할까?


원래 자살이란 용기를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자살에 죽을 용기란 말은 없다. 살 용기가 없으니 차라리 죽음으로 도피하려는 것이다. 그동안 검사로서 수많은 피의자 용의자들을 심문하고 조사했을 것이면서 검찰이 자신을 수사하려 하니 그것 하나 감당할 용기가 없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런 주제니까 권력이 시킨다고 고분고분 검사로서의 양심을 팔아넘길 수 있었을 것이다. 동정의 여지도 없고, 그를 동정하는 검찰 동료나, 유가족이나, 혹은 보수적인 정치인이나 국민들 역시 조금도 이해할만한 부분이 없다 할 것이다. 그렇게 진실은 묻혔고 최소한의 결백을 주장할 기회마저 스스로 날려 버렸다. 수사도 시작되기 전에 수사가 시작될 것이라는 사실만으로 지레 겁을 먹고 죽음으로 도망쳐 버렸다. 무슨 평가할 가치가 있겠는가.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가족 또한 공범이다. 그 동료들 또한 공범이다. 원래 검사란 그런 자리였을 것이다. 사회가, 가족이, 동료들이 기대하는 검사란 그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피해자이기도 하다. 그냥 남들이 검사에게 기대하는 만큼만 행동했을 뿐인데 죄인이 되었다. 누가 그를 죽였을까? 무려 검사가 혐의가 명백한 죄인의 수사를 잘못이라 말한다. 증거를 인멸할 수 없도록 빠르게 수사를 진행하며 압박한 것이 오히려 죄라 말한다. 검사가 생각하는 죄와 보편의 상식이 생각하는 죄가 이렇게 다르다. 그리고 검사는 사회의 정의와 죄를 책임진다.


죽었다고 죄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죄를 저지른 사실 자체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죽은 것은 죽은 것이고 죄는 죄다. 참 많이 참는다. 원래는 뒈졌다 말해야 하는데. 그 유가족과 검찰 동료들 때문에라도 그는 뒈진 것이 되어야 한다. 이런 주제들이 이 사회의 정의를 묻고 죄를 단죄하고 있었다. 진짜 정의를 지키며 진실을 쫓는 검사였다면 너무나 무책임한 선택이었다. 그런 주제라는 것이다.


한심하다. 뒈질 놈이 뒈졌다. 가치도 없는 놈 하나가 세상에서 사라졌다. 별별 의미를 부여한다. 같잖은 것들이다. 침을 뱉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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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 못한 사람이 있을까? 처음 바른정당이 분당해 나왔을 때도 흔히 하던 말이었다. 그동안 당에 대한 지지에 힘입어 손쉽게 정치하던 사람들이다. 북한과 지역주의, 그리고 무엇보다 거물정치인들의 등뒤에 숨어서 기생하며 정치해 오던 사람들이다. 한 마디로 자기 손으로 직접 먹을 것을 구하고 머물 곳을 찾는 풍찬노숙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확고한 이념이나 정치적 신념이 있어서 그런 어려움을 기꺼이 견딜만한 동기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그동안의 행보에서 보았듯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근본적으로 다를 것이 전혀 없는 정당이다. 그런데도 지금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굳이 바른정당을 유지한다는 것이 그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어차피 처음 바른정당이 만들어진 것부터 정치적 명분과는 상관없는 이해타산의 결과였다. 대통령 박근혜가 국정농단을 저질렀다면 여당인 당시 새누리당 역시 그 책임을 함께 져야만 했던 터였다. 바른정당의 지지율이 바닥을 기니 다시 당을 뛰쳐나가 조직과 돈과 지지자가 있는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가려는 것처럼 당장 자신들을 향한 국민적 비난을 피하기 위해 당시 새누리당을 뛰처나와 따로 당을 차렸던 터였다. 그마저도 반기문이라는 유력한 대선후보가 있었기에 새누리당이 아닌 새로운 보수정당의 이름이라면 다음 대선에서 다시 여당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계산이 섰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박근혜라는 그림자를 털어버리고 새로운 중도적인 보수정당의 이미지로써 반기문에 대한 대중의 인기와 지지에 영합해서 다음 대선을 노려보겠다. 하지만 반기문이 불출마를 선언하고 유승민이 낮은 지지율을 끌어올리지 못하자 결국 다시 절반이 떨어져나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었다. 그때부터 계속해서 나왔던 것이 보수대통합이라는 지금의 탈당명분이었던 것이고.


국민의당과 다른 부분이라면 그런 점에서 민주당의 경우 철저히 국민의당과의 합당이나 탈당파들의 복귀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에서 홍준표는 비주류다. 주류는 박근혜라는 원죄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친박들이다. 그나마 바른정당에서 복당해야 친박들과 세싸움을 할 수 있는 우군이 만들어진다. 물론 그렇다고 이미 바른정당을 나가서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간 정치인들이 얼마나 특히 박근혜와 관련해서 친박들과 차별화를 이루고 있는가 살펴볼 문제다. 어쨌거나 자유한국당은 바른정당의 옛동지들을 필요로 하고 있고, 바른정당은 내년의 지방선거와 3년 뒤의 총선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유한국당이라는 따뜻한 그늘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명분이 없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박근혜의 출당은 그들을 위한 명분이 되어 주고 있었다. 물론 국민 거의 대부분이 그 명분 뒤에 숨은 내막을 알고 있을 것이었다. 내 국회의원 자리, 나를 따르는 조직의 유지를 위해 밥그릇 지키려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간다. 과연 얼마나 많은 보수유권자들이 그들이 앞세운 보수대통합이라는 명분에 동의해 줄 것인지.


결국은 새로운 보수를 표방했던 유승민의 리더십이 한계를 드러낸 때문이었다 할 수 있다. 어찌되었거나 바른정당을 중심으로 새누리당이나 이제는 갈라선 자유한국당과는 다른 새로운 보수를 보여주겠다. 그래서 뭘 보여주었는가. 그동안 얼마나 자신들을 그들과 차별화시키고 있었는가. 대선 당시 듣기 좋으라고 떠들어대는 공약 말고 실제 바른정당의 이름을 앞세우고 그들이 보인 행보들을 떠올려보라. 얼마나 많은 다양한 분야에서 자유한국당과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는가. 그것을 유권자들에 인정받고 있었는가. 하태경은 이른바 통합파들의 방해와 반대를 이유로 들고 있지만 그마저도 극복하고 넘어서는 것이 바로 정치인으로서의 리더십인 것이다. 그런 방해와 반대들을 때로는 설득하고 때로는 타협하고 때로는 힘으로 찍어 누르며 바른정당이라는 정체성을 만드는 것이 그래도 대통령이 되겠다 나왔던 거물 정치인다운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냥 자유한국당이나 바른정당이나다. 그 결과가 바른정당의 지지율인 것이고. 그래서 이제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겠다. 처음 동기야 어찌되었든 유승민과 바른정당 자강파가 주장한 새로운 보수라는 구호가 얼마나 허무하고 의미없는 것이었는가 새삼 확인하게 된다.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뛰처나온 자체가 아무 명분이 없었듯 돌아가는 것도 아무런 명분이 없다. 그런 명분 자체가 필요가 없다. 이익이 있어 뛰쳐나왔고 이익이 있기에 다시 돌아가려 한다. 이념이 아니었고 신념은 더욱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을 국민들이 뻔히 알고 있음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살기 위해 그들은 그런 선택을 해야만 한다. 그것이 이리 비루한 것이다. 그렇다고 과연 남은 자강파들이 오로지 신념을 위해 끝까지 당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만일 그렇게 교섭단체마저 무너진 상황에서 당을 지켜낼 수 있다면 그나마 유승민의 리더십을 다시 평가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럴 수 있다면 하태경의 말처럼 새로운 시작일 수 있다. 물론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그냥 한심하다. 웃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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