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한겨레를 신뢰하여 구독하는 자칭 민주당 지지자들이 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도 한겨레나 되니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는 기사도 내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진보언론으로서 아직 한겨레에게는 가치가 남아 있다.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니까 진보언론이라... 그런데 조선일보는 한겨레보다도 더 심하게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고 있네? 그러면 그놈들 기준으로 조선일보도 진보언론 맞지?

 

윤석열 정부 내내 물론 한겨레가 가끔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이 더 적극적으로 더 악랄하게 비판한 것은 이재명과 민주당이었다. 심지어 윤석열 정부의 실정마저 이재명과 민주당의 책임으로 몰아 비판하기도 했었다. 하지도 않은 일로 비판하는 것은 물론 당연하다. 정의당이야 사실상 윤석열 친위대였고. 정확히 김건희 친위대였다. 김건희에 대해서만은 물불 가리지 않고 온몸을 던져가며 막았었다. 윤석열 정부의 탄생에 최소 2등 공신은 되는 곳이 한겨레였다. 심지어 민주노총이 간첩몰이를 당하고 있는데도 그저 구색만 맞추는 기사 몇 줄 내고 마는 놈들이 과연 진보언론일 수 있는가? 하긴 그래서 2찍 진보일 것이다. 그래서 2찍이나 하는 진보에 무슨 가치가 있다고?

 

한겨레의 중견기자라는 놈이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실제 한 말이다. 문재인 정부보다 이전 이명박근혜 시절이 더 나았었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 내내 윤석열을 빨아제끼며 윤석열의 배후가 되었던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한결같이 우호적이었었다. 이준석의 세대포위론에 호응해서 4050 남성들을 대한민국 사회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기사까지 냈던 놈들이다. 윤석열을 더 빨아제끼기 위해서 그나마 소극적이던 편집국을 갈아버렸던 놈들이 바로 한겨레 놈들이란 것이다. 그런데도 그런 놈들을 진보랍시고 신뢰를 보내고 구독까지 한다. 진보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 지지자일 수는 없다. 거짓말쟁이이거나 아니면 멍청하거나.

 

검찰이 한겨레를 압수수색했다고 한다. 한겨레가 정말 윤석열 정부를 거스르는 기사를 내려 해서가 아니라 역시나 윤석열과 한동훈의 갈등이 한겨레까지 불똥이 튀었다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한겨레가 진심으로 윤석열 정부에 해가 되는 기사를 냈을 것인가. 그동안 논조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그래도 최소한 조선일보는 자신들 입장에서 욕할 것이 있으면 대놓고 욕이라도 했다. 반면 한겨레는 그런 때조차 이재명과 민주당부터 욕하고 보았다. 아마 한겨레 내부에서는 어떻게 더 납죽 엎드려서 더 열심히 빨아제낄까를 고민하고 있지 않을까. 그놈들에게 언론의 자유란 이명박근혜이고 윤석열일 테니.

 

조선일보가 윤석열 정부 비판하는 거 보면서 더욱 느낄 수 있었다. 한겨레가 진보라서 진보적 가치에 반하는 윤석열 정부를 진정 비판하려는 것이라면 최소 저 수준까지는 가는 것이 옳다. 아니 최소한 이재명과 민주당을 비판하던 수준 정도는 보여주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래서 한겨레 기자 압수수색도 그냥 그러려니 한다. 어차피 저놈들은 분노도 않을 것이다. 진정으로 자신들이 원한 자신들에 맞는 정부일 테니. 그래서 한겨레다? 한겨레일보나 경향일보나. 차라리 조선일보가 낫다는 이유일 것이다. 저놈들은 그래도 진보인 연 가면은 쓰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다른 신생독립국처럼 되지 않은 데에 이승만이 기여한 바를 꼽으라면 역시 한민당을 나와 자유당을 만든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 신생독립국들에서는, 아니 일본을 비롯한 기존의 열강들 가운데서도 어느 특정한 정파가 정권을 독점하고 전횡을 저지를 때는 그 사회의 주류 기득권집단과의 결탁의 거의 필수적으로 선행되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히틀러의 집권에 협력했던 독일의 융커와 자본가, 구귀족, 그리고 가톨릭교회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도 이들은 이름만 다를 뿐 역시 프랑코와 무솔리니의 독재에 협력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이승만은 한민당의 주류였던 토호지주들과 등지고 친일관료집단과 결탁하고 있었다. 덕분에 그의 지배는 불안했고 이는 박정희까지 이어지게 된다.

 

사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직도 중앙의 행정력이 완전히 미치지 못하는 지방에서는 소수 유력자들이 토호처럼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지역행사에 정치인과 검찰, 경찰, 깡패가 나란히 참석하는 모습이 심심찮게 보이는 이유도 그래서다. 방대한 토지와 자본을 소유하고 그를 바탕으로 지역사회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소수 유력자들이 중심이 되어 이질적일 수 있는 그들을 한 자리에 모을 수 있는 것이었다. 하물며 아직 중앙집권이 지금처럼 고도화되지 않은 해방직후에는 더욱 지역사회에서 이들의 영향력이 비할 수 없이 컸었다. 이승만이 어울리지 않게 조봉암의 농지개혁을 받아들인 이유였다. 농지야 말로 이들의 기반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 이들과 완전히 척질 수 없었기에 유상몰수라고 하는 방법을 통해 적절한 대가를 지불함으로써 그들의 영향력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그런 점에서 한국전쟁을 기점으로 이승만의 독재가 노골화된 것은 이들 토호집단의 기반이 크게 흔들리고 붕괴한 것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다른 신생독립국들과 달리 한국은 중앙권력을 독점한 독재자와 맞설 수 있는 강력한 야당을 가질 수 있었다는 점에서 출발지점이 달랐을 것이다. 이승만이 조봉암은 죽일 수 있었어도 조병옥이나 신익희, 장면까지는 마음대로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진보당을 만든 조봉암은 사법부를 이용해서 죽일 수 있었지만 이후 진보당을 해산하고 민주당으로 합류한 소장정치인들까지 감히 건드리지는 못했었다. 그것은 박정희도 마찬가지여서 아직 지역기반이 건재한 토호들은 그 성향과 상관없이 강력한 군사독재와 맞설 수 있는 야당의 중요한 동력이 되어 주었다. 이후 부산경남의 김영삼과 호남의 김대중으로 대표되는 지역정치구도는 그런 연장에서 확립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이승만 정권 말기 정부의 잘못으로 촉발된 4.19를 직접 경험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아직 자기들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지방권력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국민이 들고일어날 경우를 대비해서 여론도 신경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여기에 미국까지 개입하고 있었다.

 

북한이 저 모양이 된 이유는 별 것 없다. 김일성과 김정일이 병신짓하는데 그것을 뜯어말릴 견제장치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김대중처럼 아예 목숨걸고 그 앞에 드러누워 반대할 수 있는 세력이 북한에는 없었다. 북한만이 아니다. 중국 역시 마오를 중심으로 비타협적인 혁명원리주의를 추구했던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수 천 년 역사가 한 줌 잿더미로 변하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었다. 한때 우리보다 더 잘나갔던 필리핀 역시 마르코스의 장기독재로 말미암아 동력을 잃고 그저그런 저개발국가로 전락하고 말았었다. 그에 비해 한국은 박정희의 중공업우선정책이 실패로 돌아갈 듯하자 정권말기 아예 정권 내부에서까지 동요가 일어나며 끝내 독재자 암살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었다. 그러니 이승만이야 눈치보지 않고 지랄을 하다가 아예 내쫓기고 박정희는 그것을 교훈삼아 여론의 눈치라는 것도 봐가며 정치를 해야 했던 것이었다. 심지어 전두환조차 최소한 드러나는 모습 만큼은 국민의 여론에 신경쓰는 시늉 정도는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북한처럼 독재자라고 막나가는 상황은 최소한 대한민국의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이승만이 아직 농업국가이던 해방된 대한민국에서 기득권집단인 토호지주들과 결별한 것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에 있어 매우 중요한 기점이 되어준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로 인해 주류기득권집단인 토호지주들이 중앙의 독재권력과 분리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그 반대편에서 견제자의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의 독재에 반대하는 민주화의 목소리가 야당인 민주당에도 깃들 수 있었고 민주당이라는 이름 아래 보호받을 수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 미국이 조금만 자극을 주면 어쩔 수 없이 독재자들도 그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김대중이 미국의 비호를 받아 목숨을 건질 수 있었고, 김영삼도 가택연금을 당했지만 목숨만큼은 위협받지 않았었다. 다만 덕분에 민주화 이후에도 여전히 자신들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기득권집단이 민주당의 방향을 결정하곤 했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른바 2찍들이 주장하는 대한민국 민주화에 이승만이 가장 크게 기여한 부분일 것이다. 권력을 나누기 싫어서 주류기득권들과 결별하고 주변에서 겉돌던 친일관료집단을 자신의 친위세력으로 삼았다. 그 결과 여전히 중앙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지방 기득권들을 적으로 돌리며 그들이 독재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야당으로 남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원래는 한 편이었어야 할 독재권력과 지방권력이 경쟁관계가 되면서 무모하게 독주하는 경우를 막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아니었다면 4.19가 가능할 수 있었을까. 김대중이며 김영삼이며 젊은 정치인들이 아예 대놓고 독재권력과 들이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1987년 시민의 힘으로 군사독재를 물리치고 민주화를 이룰 수 있었다. 그냥 병신이란 것이다. 지 권력욕을 감당하지 못해서 괜히 일을 키운 멍청함에 대한미국이 빚을 진 것이다.

 

이승만 당시 미국으로부터 받은 원조가 어떤 식으로 낭비되고 있었는가 알면 감히 이승만을 들어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을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박정희 역시 중공업위주의 경제발전 과정에서 수많은 오류와 낭비가 발생하며 자칫 1970년대 말 대한민국의 경제 자체가 붕괴할 위기에 내몰린 바 있었다. 부가가치세가 그래서 그때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에 반발해서 부마항쟁이 일어난 것이었고. 현대가 조선소를 가지게 된 이유도 기껏 정부가 투자해서 조선소를 지어 놓고는 감당하지 못해서 억지로 떠넘긴 것이었다. 그 돈이 다 외국에서 들여온 차관이었다. 그러고도 말년에는 그렇게 자기가 키워 놓은 재벌과 측근들에 휘둘리며 아무것도 못하던 무능한 인간이 바로 박정희였었다. 그나마 김대중이 없었고, 김영삼이 없었고, 재야와 야당이 없었으면 당시 대한민국이 어떻게 되었을지 감히 상상도 되지 않는다.

 

아무튼 이래저래 많은 사람들이 솔직해지고 있는 듯해서 요즘 기분이 나쁘지 않다. 이영애는 버린다. 나얼도 잊는다. 하다하다 이승만을 추앙하며 그것을 아예 대놓고 떠들어대는 인간들이 아직도 남아 있을 줄이야. 이승만이 죽인 사람의 수가 김일성보다 조금 적은 정도다. 박정희보다도 압도적으로 많다. 그래도 폴포트보다는 적다. 오죽하면 조선총독부보다 이승만이 더 많은 사람을 죽였다며 독립무용론을 떠드는 2찍 진보새끼들까지 있겠는가. 그냥 버러지새끼들이다. 년놈들이다.

80년대까지 민주화운동은 또한 진보운동이기도 했었다. 당연한 것이 정치적으로만 민주화되었다고 민주화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모든 국민이 주권자로서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사회적 경제적 여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최소한의 평등이야 말로 국민주권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를 위한 보다 근본적인 변혁을 이루어내야 한다. 민주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민주화운동을 하던 이들이 다시 진보운동에 자신을 내던지게 된 이유였다.

 

말하자면 진보운동이야 말로 민주화운동의 정통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대부분 민주당 지지자들도 이전까지 인정하던 부분이었다. 김대중의 민주당은 사실 따지고보면 김대중 개인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사당에 지나지 않았다. 자유당 시절부터 독재권력과 맞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지켜 온 정통야당 민주당을 계승한다고 하지만 사실 민주당의 주류는 이미 오래전에 김영삼과 함께 민자당으로 합류했던 터였다. 그나마 남아 있던 이들도 김대중이 대통령 되겠다고 정계은퇴를 번복하고 돌아와서 기존의 민주당을 깨는 과정에서 반발하여 신한국당으로 합류한 터였다. 김대중이 괜히 아무리 그래도 군사독재의 후신인 신한국당으로는 못가겠다고 자신을 찾아온 노무현을 우대한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김대중이 영국에서 돌아와서 당을 만들었을 때도 민주당이라는 이름을 쓰지 못하고 새정치국민회의라는 근본없는 이름을 써야 했던 것이었다. 오죽하면 군사독재의 후신임을 알면서도 삼김의 구태정치를 청산해야 한다며 이회창을 지지하고 나섰던 민주화운동 세대들도 적지 않았을 정도였다. 지금도 이회창에 대한 민주개혁진영의 평가가 높은 또 하나 이유다.

 

그래서 김대중이 집권하고 나서 이전에 지리멸렬했었던 여러 진보정당들과 달리 민주노동당이 크게 약진하며 심지어 제도권에 상당한 지분을 가지고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김대중과 민주당은 민주화운동을 또한 진보운동이라 여겼던 이들에게는 상당히 기괴한 거물정치인 개인의 대권욕망이 낳은 괴물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김대중 자신도 대한민국 민주화의 상징과 같은 인물이었고, 민주당에 소속된 정치인들 다수가 민주화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할지라도 민주당이 탄생하는 과정은 개인의 욕망과 그에 기생하는 기회주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따라서 김대중과 민주당이 대한민국 민주화와 진보의 지분을 가져가는 것은 찬탈에 다름 아니었다. 더구나 적통이라 할 수 있는 진보진영이 남아 있는 이상 그들은 정통을 벗어난 이단, 혹은 사생아에 지나지 않았다. 하물며 서울도 아니고, 서울의 명문대도 아니고, 제도권도 아니었던 노무현과 그 찌꺼기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김대중의 집권이 진보진영의 파이를 키웠다면 노무현의 집권은 진보진영의 우월성을 더해주었다.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서울이었고, 그 가운데서도 서울에 소재한 명문대였으며, 아니면 최소한 김대중과 김영삼 같은 거물과 함께하는 제도권 정치인들이었다. 그에 비하면 노무현은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듣보잡에 지나지 않았었다. 노무현 집권 내내 가까운 진보주의자들이 그를 조롱하고 비하하고 멸시하는 말들을 끊임없이 들어야 했던 이유였다. 자기들은 어디 명문대의 어떤 석학의 최신이론을 줄줄이 외워 섬기며 진보의 첨단을 달리고 있는데 어디 근본도 없는 노무현따위가 대통령이 되어 개혁을 한다고 하니 우스운 것이다. 그래서 당시 민주노동당은 그래도 개혁과 진보라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이 아닌 한나라당과 정책연대를 하는 선택까지 하고 있었다. 차라리 보수적인 한나라당이 그래도 개혁적인 열린우리당보다 더 자신들의 정체성에 맞는다.

 

비유하자면 집을 나가 성공해 돌아온 서자를 보는 적장자의 심리와 비슷할 것이다. 삼국지에서 원술이 무리수만 던지다가 스스로 자멸하고 만 것도 원소가 하북을 평정하고 큰 세력을 거느리기 시작한 무렵부터였었다. 이전까지는 그래도 의협심도 있고 대인의 풍모도 있어서 손책과 같은 이들을 휘하에 거느리기도 했던 원술이었지만 이때부터 뭐가 그리 급했는지 조조를 무리하게 공격하고 주위에 적을 만들며 스스로 몰락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실제 원술 자신도 원소를 종놈의 자식이라며 평소 폄하하는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고 있기도 했었다. 비천한 서자도 아닌 얼자가 자기보다 더 잘나가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그나마 원술은 죽기 직전이라도 차마 조조에게 항복하지는 못하고 다시 원소와 손잡을 생각이라도 했었지만 그러지 못하는 놈들도 현실에는 상당한 것이다. 차라리 비천한 얼자인 원소에게 옥새를 넘기기보다 그래도 자신과 걸맞는 신분인... 그러고보니 조조도 환관의 손자로 그다지 신분상 고귀하다 할 수 없었다. 딱 그 수준인 것이다. 진보의 적통인 자신들에게 걸맞는 상대는 근본도 없는 사생아같은 민주당이나 열린우리당이 아닌 보수의 적통인 한나라당이어야 한다.

 

그러고보면 그나마 진보정당이, 아니 진보지식인이나 언론들이 민주당에 우호적이었던 것은 김대중이 처음 민주당을 만들 때 주류였던 이른바 수박이라 불리우는 당권파들이 당을 장악하고 있을 때였다. 이념과는 상관없이, 그들이 추구하는 정책적 지향과는 전혀 상관없이, 단지 김대중과 정치를 함께했고, 그 정통을 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연대할만한 자격을 부여한 것이었다. 반면 보다 개혁적인 노무현이나 문재인을 중심으로 한 신진세력들에 대해서는 매우 적대적이었다. 즉 당권파가 당을 장악하면 그 노선이 보수적이더라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다가 개혁적인 신진세력이 나서면 등돌리고 공격하는 과정의 반복이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한명숙을 정치적으로 살해하는데 한겨레가 적극 가담했던 것이었다. 노무현이 묻었으니까. 반면 김한길이나 주승용, 박선주에 대해서는 언제나 호의적이었다. 마찬가지 이유로 박근혜의 선택을 받았다는 이유로 이준석에 대해서 한겨레와 정의당, 나아가 2찍 진보 지식인들은 한결같이 우호적이었다. 심지어 그의 세대갈라치기에 호응한다고 4050 민주화세력과 단절하겠다는 선언이 서슴없이 이어지고 있을 정도였다. 

 

말하자면 신분인 것이다. 자신들은 우월하다. 서울에서 명문대 다니면서 타협없이 진보운동을 했기에 현실과 타협한 민주당 나부랭이들과는 수준이 다르다. 하물며 대학도 나오지 못하고, 나왔더라도 명문대가 아니었던 노무현, 문재인따위나 따라다니는 것들이야 상관할 가치도 없다. 저들이 국민을 이야기할 때 노무현이나 문재인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은 배제하고 이야기하는 이유인 것이다. 노무현과 문재인, 이제는 이재명을 지지하는 것들은 국민의 자격도 없다. 올바로 판단할 수 있으면 그런 찌그레기들을 지지할 리 없는 것이다. 그래서 차마 자신들의 그 대단한 우월감에 문재인 정부와 협력하지 못하고 그래도 서울대도 나오고 사법고시도 합격한 윤석열에게로 몰려간 것이었다. 윤석열 정도만이 자신들과 격이 맞는다. 비유하자면 근세 유럽에서 계몽주의 귀족의 입장에서 계몽주의 부르주아 지식인과 보수적인 귀족 가운데 누구와 상대할 것인가 하는 경우와 같다 할 수 있다. 동의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말을 나눌 자격 정도는 갖추어야 한다. 그래서 2찍 진보들의 입장에서는 국민의힘이 민주당보다 더 노동존중의 정당일 수 있는 것이었다. 자격도 없는 민주당이 말하는 노동자의 권리란 의미가 없는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망한 것이다. 진보정당이 진보라는 이념을 추구하지 않았으니까. 진보정당이 적통이라는 신분만을 쫓은 결과다. 그래서 차마 민주당 2중대라는 말은 듣기 싫고, 국민의힘 선봉대라는 말은 아무렇지 않았다. 민주당의 사소한 잘못을 트집잡으면서 정작 이미 살아있는 권력이 된 윤석열과 국민의힘에 대해서는 철저히 외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한결같이 고집하고 있었다. 민주당만 아니면 된다. 이재명만 아니면 된다. 오로지 민주당과 이재명만 적대하느라 윤석열과 국민의힘에 부정적으로 바뀌어가는 여론마저 아예 깡그리 무시하고 있었다. 검찰정권을 심판해야 하는 여론이 드높은 상황에서도 마치 자기들도 기득권임을 확인시켜주려는 듯 선량한 노동자는 검찰수사를 받지 않는다는 개소리를 당당히 떠들 수 있었던 것도 그런 맥락에서였다. 저 비천한 놈들과 마지막 순간까지 어떻게든 같이 갈 수는 없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도 정의당과 한겨레를 비롯한 2찍 진보들은 윤석열과 국민의힘과 마찬가지로 민주당과 이재명 공격하는데만 열심이다.

 

돌이켜보라. 김종민이나 조응천, 이원욱, 그리고 이낙연 등등 2찍 진보들이 선호하던 민주당내 정치인들의 그동안 정치적 선택은 무엇이었는가? 박용진과 전해철 나부랭이들이 그동안 중요한 국면에서 어떤 행보를 보이고 있었는가? 그런 것들이 과연 그들이 그동안 주장한 진보적 이념과 부합하는가. 보다 더 보수적인 정치인일수록 선호하는 2찍 진보들의 행보에 대한 가장 선명하고 간단한 설명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다. 민주당 2중대는 참지 못하면서 국민의힘 선봉대는 기꺼워할 수 있는 이유다. 그나마 정책적으로 유사한 민주당을 배척하면서 정반대편에 위치할 국민의힘에 대해서는 굴종적일 정도로 살갑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2찍 진보 대부분이 그래도 먹고 살만한 집안 출신인 때문인 것도 있다. 신분이 다르다. 그래서 민주당 정치인들도 그토록 정의당을 싫어했던 것인지 모른다.

 

아마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당비도 많이 내는 참여계 당원들이 당을 박차고 나갈 때 심지어 정의당 당직자 정치인들은 어서 나가라고 아예 등까지 떠밀고 있었다. 어떻게든 한 사람이라도 붙잡아야 하는데 아직 남았냐며 조롱하다가 당비 낼 사람도 없어서 빚더미에 허덕이고 있었다. 참여계와 정의당 사이에 얼마나 이념적인 지향의 차이가 그리 크게 났었던가. 하지만 그런 선명함은 그러나 국민의힘과 만나면 양갱이 따로 없고 묵이 따로 없다. 아니 그냥 술술 넘어간다. 어째서 그럴 수 있는가. 내가 홍세화가 죽었다 했을 때 도저히 명복까지 빌어줄 수 없었던 이유다. 똑같은 부류였으니까. 오히려 앞장서고 있었다. 그게 2찍 진보다. 진보가 2찍일 수 있는 이유다. 자신들만 모른다. 여전히 유권자 탓만 하고 있는 그것이 저놈들의 현실이다. 아마 죽어서도 못 고칠 것이다. 명복도 필요없는 이유다. 버러지들이란 것이다.

명량해전 당시 이순신이 일본군 수군지휘관이던 구루지마 미치후사의 목을 배어 뱃전에 매달았던 것을 두고 아무리 그래도 너무했다 말하는 일본인이 꽤 있었다. 그래도 적의 대장이었는데 예우를 해 주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 평화롭게 잘 사는 남의 나라에 쳐들어온 적인데 이미 죽은 적의 시체를 가지고 뭘 하든 그게 뭔 상관이냐는 것이다. 결국은 서로 경쟁하던 다이묘 가운데 하나를 대하는 것과 자신을 위협하는 적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일 것이다. 죽었어도 다이묘이고 사무라이인가, 아니면 그냥 적일 뿐인가. 그래서 대처가 죽었을 때 영국인들이 광분을 했었다. 대처는 일부 영국인들에게 추모할 가치도 없는 적일 뿐이었다.

 

홍세화가 이전에 어떤 삶을 살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진중권이 이전에 진보논객으로써 어떤 주장들을 했는가가 새삼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이유과 같다. 중요한 것은 홍세화가 바로 직전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 좋아하는 똘레랑스는 절대 민주당과 민주당 정부를 위해서는 쓰이지 않았었다. 보수정당과 정부에 대해서는 쌓이고 쌓여야 한 마디 하던 것이 정작 민주당과 민주당 정부에 대해서는 표현조차 거의 거르지 않고 바로 쏘아진다. 정권이 교체되는 과정에서나 교체된 이후에도 한결같았다. 민주당이 야당일 때도 홍세화의 똘레랑스는 야당인 민주당을 위해서 단 한 번도 쓰인 적 없었다. 그 결과 민주당은 정권을 내놓았고 그나마 민주당 정부에서 이루어낸 모든 것들이 무위로 돌아갔다. 그러면 민주당 지지자로서 나는 홍세화에 대해 어떻게 판단해야 하겠는가.

 

지금 당장 진중권이 죽는다고 추모하거나 할 생각따위 전혀 없다. 강준만이 죽더라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어땠을지 몰라도 민주당 정부에서 저들은 지지자인 나의 적이었고, 결과적으로 민주당이 이루어낸 그나마의 진보마저 모두 무위로 돌린 적들 가운데 하나였다. 대처처럼 잘 죽었다고 환호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죽음을 안타까워 할 정도까지는 아니라는 것이다. 설마 정규재나 조갑제가 죽었다고 내가 추모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윤서인이 죽었는데 내가 슬퍼하고 안타까워해야 할 이유가 있겠는가. 2찍인가의 여부는 모르겠지만 그와 가깝게 행동한 인사에 대한 나의 판단은 한결같다. 적은 그냥 적이다. 그리고 적의 죽음은 기뻐하지 않더라도 슬퍼할 일까지 아니다. 더 욕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죽었구나. 아마 한 10년 쯤 전이었으면 모르겠다. 그만큼 원한과 분노가 크다. 어쩔 수 없다.

조국 때도 이랬으면 어땠을까 싶기는 하지만 당시는 검찰이 아직 절대적인 약자였었다. 그래서 내가 이낙연과 임종석을 의심하는 것이다. 조국사태 때도 정부가 마음만 먹었으면 욕 좀 들어먹고 윤석열의 반란을 조기에 진압할 수 있었다. 윤석열이 아예 청와대까지 압수수색하겠다 나서는 상황을 어떻게든 조기에 수습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못했다. 청와대가 약해서? 검찰청은 행정부에 속해 있는데? 추미애가 나서자 거의 초반 검찰의 반란은 종식되는 듯 보이기도 했었다.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뒷심을 발휘하지 못해서 약해 보인 것이지 조금만 더 밀어붙였다면 검찰은 아예 찍어 누를 수 있었다. 추미애 전장관이 이낙연을 괜히 저격하고 나선 것이 아니다. 

 

아무튼 당시는 대통령이 나서서 한 마디 했다고 갑자기 역풍이 불고 정부의 지지율이 폭락하던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정권에 비하면 검찰은 철저히 약자다. 그래서 살아남았다. 그동안 검찰이 동원된 수많은 정치수사에 대해 검찰은 단지 하수인일 뿐 시키는대로 한 것 뿐이라며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 곧 검찰의 중립성과 공정성을 담보해 줄 것처럼 여겨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이 큰 울림을 가지고 다가온 이유이기도 했다. 신임 검찰총장이 바로 언론까지 동원된 공격에 하루아침에 나가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설마 검찰이 실제 권력일 것이라 여겼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차라리 문제가 되려면 검찰출신인 정부의 고위인사들에게 더 의심이 돌아가고 마는 정도였다. 그런데 정권 아래에서 정권에 대드는 검찰을 정부와 여당에서 압박하는 모양새였다면... 그래도 사실 욕 좀 들어먹고 마는 쪽이 더 나았을 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런 상황이었다면 검찰이 철저히 피해자처럼 여겨지게 되었을 것이다. 홍세화 나부랭이들이 검찰의 편을 들어 별 개소리를 늘어놓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검찰이 최고권력이 되었다. 어쩌면 처음일 것이다. 군사독재시절에는 당연히 군이 최고권력 바로 아래에 있었다. 그 권력이 동원하던 수단 가운데 국정원이 있었다. 기무사와 국정원이 국내정치에서 손을 떼고 난 뒤 검찰이 사실상 단일기관으로는 가장 강한 힘을 가지게 되었음에도 그것이 전면에 드러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이제 검찰 출신의 대통령이 나오고 그 아래에서 검찰 출신들이 요직을 맡는 상황이 되었다. 누가 보더라도 검찰의 수사에 검찰 출신인 대통령과 법무부장관의 입김이 들어갔을 것이 의심되는 상황이다. 그리고 하필 그 대상이 그를 견제하는 야당의 대표다. 딱 권력에 의한 정치적 탄압의 모양새가 갖추어지는 구도인 셈이다. 더구나 그동안의 정황에서 언론이 철저히 정부, 나아가 검찰에 친화적이라는 사실도 드러난 지 오래다. 조국사태 때는 언론만 믿고 떠들던 대부분 인간들도 이제는 언론의 보도를 한 번 걸러서 보게 되었다. 검찰이 아예 최고권력을 차지하면서 나타난 현상들이다. 그런 상황에 야당이 부정적인 이슈를 이유로 검찰을 찾아 항의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겠는가. 하물며 선거를 통해 검찰권력에 대한 심판이 이루어진 직후다.

 

원래는 한참 전에 이루어졌어야 할 행위들이 이제야 겨우 가능해지게 된 것이다. 정확히 가능하기는 했는데 괜히 꺼리던 것들이 이제는 그 이유들이 대부분 제거되면서 더욱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시 한 번 이낙연 개새끼를 외치면서, 임종석 씨발롬이 다시는 정치권에 기웃거려서는 안된다는 확신을 가지면서, 비로소 원래 했어야 하는 일들을 하게 된 것을 뒤늦게나마 다행스럽게 여긴다. 더불어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이같은 거대야당의 행보가 사법부에 어떤 압력으로 여겨질 것인가 생각한다면 이후의 재판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판사새끼들도 기자새끼들이나 검사새끼들 못지 않게 정신나간 것들이라 자신할 수는 없다.

 

원래는 선거 전에도 민주당이 적극적으로 나섰어야 했는데 그때도 이미 정권을 내 준 상황에서 역풍 조심한다고 몸사리고 있던 것을 떠올리면 그나마 선거에서 이겨서 이 정도라도 할 수 있게 되었음을 다행으로 여긴다. 민주당이 수원지검을 찾아가 항의한다. 재판과정에서 드러난 사실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항의하며 언론을 통해 알려질 수 있도록 한다. 여기서 그나마 기자들 게으른 속성이 도움이 되어 주기도 한다. 원래라면 민주당 하는 소리 따위 귓등으로 들었어야 하는데 기계적으로 받아쓰느라 이런 것들도 기사가 된다. 메인은 못된다. 반드시 언론개혁까지 이루어내기를. 지금 딱 윤석열 정부에서 하는 만큼만 하면 된다. 언론탄압이라는 말이 언론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새삼 확인한다.

역시였네. 어차피 2찍일 자칭진보따위 아예 관심도 없어서 녹색당이랑 정의당이 합당한 것도  모르고 있었다. 참고로 내가 여기서 언급한 자칭 진보와 관련한 사례들 가운데 상당수가 지금 녹색당에 있는 인사들과 관련한 것이다. 오히려 정의당보다도 더 지독한 것들이 바로 녹색당이다. 어차피 그놈이 그놈이라 당을 합친 것을 알고 나서도 그러려니 넘어갔는데 아주 재미있는 소리를 그 사이 지껄였네?

 

내가 말한 바 있을 것이다. 검찰이 수사했으므로 이미 그 자체로 혐의가 인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검찰이 간첩혐의로 수사했으면 민주노총은 간첩의 온상인 것이 마땅하다. 어쩐지 정부가 검찰을 동원해서 민주노총을 대상으로 간첩몰이를 하는 상황에서도 평소 노동자의 편인 척 하던 자칭 진보들이 너무 조용하다 싶기는 했었다. 말 많은 게 유일한 장점이고 떠들고 글쓰는게 유일한 역할인 홍세화니 김규항이니 하는 놈들마저도 아예 입다물고 있었다. 그래서 이 새끼들이 검찰이 수사한다니까 진짜 간첩인 줄 아는 거 아니냐 의심했었는데 녹색정의당 인사 하나가 확인해 주었다. 선량한 노동자라면 검찰수사를 받을 일 없다. 그러므로 선량한 노동자에게는 검찰개혁은 의미가 없다. 즉 검찰수사를 받는 그 순간부터 민주노총이든 뭐든 자신들이 대변해야 할 선량한 노동자에서 벗어나게 된다.

 

바로 이것이 2찍 진보의 실체인 것이다. 마치 법은 보호할 가치가 있는 정조만을 보호한다는 과거의 판례와 비슷한 것이다. 박원순 논란 당시 여성주의자들이 주장했던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 여성만이 보호받을 자격이 있다 떠들던 것과도 유사하다. 그래서 서지현 검사의 경우도 미투의 시작을 알린 상징적인 인물이었음에도 그가 당했던 성추행 사실을 의심하고 부정할 수 있다 떠들었던 것 아닌가. 성추행 피해자의 피해사실마저 자신이 오롯이 판단하고 정의할 수 있다. 그를 전제로 그에 대한 행동도 결정할 수 있다. 기득권의 언어인 것이다. 여성을 판단하고 성소수자를 판단하고 사회적 약자를 판단하여 구분한 뒤 차별하여 결정하고 대우한다. 그래서 원래 퀴어축제도 상당히 과격한 형태로 진행하는 것이다. 당신들이 우리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 자체로 이미 존재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노동자를 대변한다면서 노동자를 판단하려 한다. 노동자에도 선량한 노동자와 그렇지 못한 노동자가 있다.

 

하긴 지금에 와서 자칭 진보 가운데 실제 노동자 출신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다. 노동자 출신이더라도 전임노조간부면 노동자의 현실과 상당히 동떨어지게 될 것이다. 대개는 좋은 집안 출신에 좋은 대학 나와서 사회적으로 대접 좀 받는 위치에 있는 이들인 것이다. 혹은 그러려고 굳이 진보의 이름으로 명함을 파서 다니는 것이기도 하다. 서민이 그렇게 진보쪽에 얼굴을 팔면서 자기 이름을 알렸었다. 원래는 자기 자신이 이미 기득권에 속해 있을 테니 오히려 솔직한 표현일 수 있다. 그동안 불편해도 어떻게든 참으며 진보라는 이념을 쫓아 감추고 지내왔었는데 이제 더이상 그럴 필요가 없다. 검찰이 권력인 것 같으니 그에 붙으려는 기회주의인 것이다. 검찰이 무기로 삼은 법을 앞세워서 그를 진보라는 이념을 대신케 한다. 법은 정의고 질서고 가치고 도덕이고 윤리고 그 자체로 이념이 된다. 그러니까 검찰이 무혐의처리한 김학의를 출국금지시켰다고 진보란 것들이 죄다 나서서 대통령까지 책임져야 한다고 지랄하고 했던 것이었다. 검찰이 말하면 정의고 진리다.

 

바로 녹색정의당이 망한 이유인 것이다. 노동자인 내가 녹색정의당에 대해 전혀 지지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고. 입으로는 노동자의 권리를 떠들면서 정작 행동은 그 반대만을 골라 찾아간다. 저들에게 진정 노동자를 위하는 정당은 민주당이 아닌 국민의힘일 것 아닌가. 국민의힘만이 오로지 노동자를 위한 정당일 것이고 그들의 정책들만이 노동자를 위하는 정책들일 것이다. 그래서 민주당이 추구한 최저임금인상과 근로시간단축, 중대재해법, 대체휴일등에 대해 한결같이 반대한 것일 게다. 반대로 최저임금인하 및 폐지와 주휴수당 폐지, 근로시간 연장, 중대재해법 폐지 등의 정책들에는 여전히 비판을 아끼고 있는 중일 테고. 2찍 진보들이 가장 사랑하는 정치인이 이준석일 것을 보더라도 답은 분명하다. 저 새끼들과는 절대 같이 가지 못하겠다. 그게 지금 2찍 진보의 현실이다.

 

회사에도 민주노총이 포스터를 하나 붙여 놨다. 아니나 다를까 민주당만 욕하기 애매한 상황이니 정치권을 싸잡아 욕하는 중이다. 민주당이 잘못하면 민주당을 욕하는데 국민의힘이 잘못하는 것 같으니 민주당 지지하자는 말은 못하고 정치권을 싸잡아 욕한다. 윤석열과 검찰에 간첩몰이를 당했으면서 노동자가 중요하지 검찰개혁따위 중요하지 않다며 지랄을 싼다. 노동자에 대한 정책들의 차이가 이렇게 명확한데도 차마 국민의힘만 따로 욕하거나 반대하지 못한다. 그래서 2찍 진보인 것이다. 그놈들이 노동자를 위한다? 당연히 말 잘 듣고 문제 안 일으키는 선량한 노동자들일 것이다. 2찍 진보들이 노동자를 대변한다는 이유일 테고. 그저 웃고 만다. 혐오스러운 것들이다.

2찍 진보들의 흔한 말버릇이다.

 

민주당이 잘못했다? 당연히 민주당을 욕한다.

 

보수정당이 잘못했다? 민주당까지 싸잡아서 정치권 전체를 욕한다.

 

2찍 진보들이 보수정당만을 특정해서 비판하는 경우란 거의 없다. 그래서 2찍 진보인 것이다. 민주당은 바로 공격할 수 있는데 보수정당은 오로지 민주당과 함께 싸잡을 때만 비판할 수 있다.

 

당장 민주노총만 하더라도 문재인 정부 때는 그리 정부와 여당만 욕하고 공격하더니 정권 바뀌고 나니까 아예 정치권 전체를 싸잡아 욕하고 있지 않던가. 노랑봉투법을 반대하고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여당이고 대통령인데 그에 대한 논평은 정치권 전체에 대한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결국 윤석열 정부의 실정을 심판하려는 선거에서 정의당의 선택은 역시나 그에 대한 책임을 민주당에게까지 덧씌우는 거대양당책임론이었다. 윤석열 정부의 잘못도 민주당이 잘못해서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과연 같은 야권이라고 같은 편이라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

 

실제 21대 국회에서 정의당의 의석 6개가 민주당을 위해서 민주당에 유리하게 움직인 경우란 거의 손에 꼽을 정도일 것이다. 하다못해 노동자들 하루라도 더 쉬게 하자는 대체휴일조차도 정의당은 반대하고 있었다. 중대재해법도 자기들 생각대로 안됐다는 이유로 반대했었고, 공수처법도 야당이 반대하면 들어주어야 한다며 대놓고 국민의힘 편을 들고 있었다. 검찰개혁법과 언론개혁법에 대한 입장들은 또 어떠했었는가? 그래서 정의당 의석 포함해서 190석이라고 진보진영의 승리라 했었는데 얼마나 정의당의 의석이 민주당 지지자들이 바라는대로 민주당을 보다 개혁적으로 진보적으로 끌고가는데 역할을 하고 있었던가? 차라리 반대방향으로 움직이면 움직였지 민주당 지지자들이 바라는 방향은 절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정의당 의석 6개가 모두 사라지고 온전히 민주당과 실제 민주당과 우호적인 정당들만 남게 되었다.

 

의석수로 보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이번 선거의 결과가 고무적이라는 이유일 것이다. 국민의힘에 우호적이던 6석이 빠지고 대신 국민의힘에 최소한 비판적인 의석들로만 거의 채워진 190석이 만들어진 것이다. 민주당 지지자 입장에서 어느 쪽이 더 나은가는 따라서 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더불어 그나마 진보진영에서 지지정당을 잃은 한겨레와 경향은 더욱 본격적으로 자신의 본색을 드러내게 될 테니 헷갈릴 일도 더이상 없다. 아직도 한겨레와 경향은 진보언론이라며 진보언론으로부터도 비판받는 민주당이라는 프레임을 써먹는 저쪽 지지자들 보고 있으면 어찌나 화딱지 나던지. 정의당에만 올인하던 한겨레와 경향이 과연 그동안 백안시하던 진보당에 눈길이라도 줄 것인가.

 

이래저래 한겨레와 경향마저 끈떨어진 연이 되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결과인 것이다. 한 마디로 국민의힘 지역구 의석이 는 것보다 정의당이 망한 게 민주당을 위해서는 더 좋은 일일 수 있다. 김활란 욕했다고 분노하고, 선량한 노동자는 검찰수사따위 받지 않는다며 검찰개혁에 노골적으로 반대하던 것이 녹색정의당이었는데 그것들이 더이상 원내에서 설칠 수 없게 되었으니 최소한 진보로 불리는 쪽에서 훼방놓고 나올 세력이 더이상은 없게 되는 것이다. 아무튼 민주노총이 검찰에 의해 간첩몰이당하는 꼬라지를 보았으면서도 선량한 노동자 운운하는 놈들이 진보를 자처하는 현실 자체가 웃기지도 않는 역설이었을 것이다. 민주노총도 검찰로부터 탄압받은 적이 없다. 그래서 그렇게 조용했던 것일까? 아니 그래서 민주노총은 그런 상황에서도 민주당만 욕했던 것일까?

 

정의당이 망했으니 이제 뒤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왼쪽은 내버려두고 오른쪽으로만 전력을 투사하면 된다. 거슬리는 것들을 모두 치웠으니 이제는 자기 갈 길만 가면 된다. 어차피 처음부터 같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묶으려 하는 놈들 때문에 성가셨는데 이제 더이상 그럴 일이 없다. 너무 다행스럽다. 나로서는 최선이라는 이유다. 일단 정의당부터. 언론은 한겨레와 경향부터. 한 발 씩 하나씩 그렇게 바꾸어 나간다. 그게 진보다. 시대가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갔다는 의미다.

개표방송 보지 않고 그냥 잤다. 그래도 200석은 하겠거니... 역시 저쪽도 제대로 결집했네.

 

2020년 당시 위기설은 상당히 갑작스럽게 튀어나왔다. 유시민의 말 한 마디를 꼬투리잡아 갑작스럽게 위기설을 퍼뜨린 덕분에 저쪽이 결집할 여유가 그리 없었을 것이다. 반면 이번 선거는 아예 초장부터 200석 운운한 탓에 결집할 여유가 충분했다. 더구나 선거기간 내내 모든 언론이 총동원되어 사실상 선거운동을 해주고 있었으니.

 

2020년에도 이렇게까지 노골적이지 않았었다. 하지만 아예 친검언론으로 돌아선 한겨레와 경향까지 가세하며 민주당 때리기에 모든 선거기간 동안 열심이었던 탓에 결집할 이유까지 차고 넘쳤었다. 현정부가 마음에 안 들어도 민주당에 이런 문제가 있으니 그래도 민주당 막으려면 보수정당에 표를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반면 민주당과 이재명에 조금이라도 불만이 있던 사람들에게는 투표를 포기할 이유를 만들어주었을 것이다. 그렇게 나온 최대치다. 아예 선거기간 전부터 그 지랄이었는데 나온 수치가 이 정도다. 부정선거라도 하지 않는 이상 여기서 저쪽이 더 가져갈 표는 없다.

 

그래서 이낙연이 병신이란 것이다. 이런 현실을 두고 역풍 운운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 민주당의 지지가 빠지고 결국 선거마다 판판이 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제대로만 했어도 지금 선거결과가 이전의 모든 선거에 적용되었을 것이다. 한 마디로 모든 언론까지 동원된 관권선거의 결과가 이것이니 앞으로 민주당이 선거에서 망할 일은 없겠다. 아, 박지현이 다시 민주당에 기웃거리는 꼬라지를 더이상 보지 않았으면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떻게 하면 이런 구도의 선거를 그렇게 처참하게 말아먹을 수 있는 것인지. 그러고도 잘났다고 얼굴 들이미는 꼬라지를 보면 역시 페미는 페미구나. 

 

아무튼 어찌되었거나 아쉽기는 하지만 이긴 선거다. 보수 의석 탈탈 털어도 고작 110석이다. 그런데 이제 공천받을 일도 없는데 국민의힘이 마냥 용산 하자는대로 따라갈 것인가도 문제다. 원래 윤석열이든 한동훈이든 보수진영에 박힌 돌이 아니었다. 기존에 박혀 있던 돌들의 반란이 이제 슬슬 시작되지 않을까.

 

그래도 그나마 가장 의미있는 결과를 보자면 역시 정의당의 멸망일 것이다. 그러게 윤석열 정부를 심판하는 선거에 내내 윤석열의 거수기 노릇이나 하던 정의당이 녹색당과 합쳐서 이름을 내미는 자체가 웃기는 것이었다. 그나마 이준석은 윤석열과 각이라도 세웠지 수많은 노동자와 소수자 이슈들에서 정의당이 한 번이라도 제 목소리를 낸 적이 있기는 한가. 민주당만 가지고 욕했지 정의당에게는 국민의힘이야 말로 노동존중의 정당이고 여성존중의 정당이며 소수자를 위한 정당이었을 터다. 유권자가 다들 아는데 저들만 몰랐다.

 

그런 점에서 정의당이 출마한 지역구에서 아쉽게 졌다고 정의당 욕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정의당 찍은 놈들은 정의당 아니었으면 국민의힘 찍었을 놈들이었다. 그게 정의당의 지금 위치다. 진중권을 보라. 한겨레를 보고. 저쪽 놈들은 이미 그쪽으로 돌아섰으니 그냥 국민의힘과 한 묶음으로 보는 것이 옳다. 

 

아무튼 아쉬운 곳도 있기는 하지만 언론과 관권을 모두 동원한 선거에서 이겼다는 사실에 의미를 두어야 한다. 어찌되었거나 그냥 이긴 것도 아니고 아주 크게 이긴 선거인 것이다. 잘 자고 일어나 몸도 가뿐한데 머리도 가뿐하다. 이준석 그 인간은 좀 떨어져 줬으면 했는데... 사장 출신이라고 그 회사 출신들이 좋아할 것이라 마냥 생각하는 것도 단세포적이다. 좋은 소리만 듣는 사장은 오히려 드물다. 다음 선거에서는 제발... 그것 말고는 뭐... 어쨌거나 이겼다. 잘 이겼다.

지금 당장 부산에 가야 한다. 그런데 바로 앞에 히틀러가 모는 자동차와 예수가 타고 있는 자전거가 보인다. 부산에 급한 일이 있어 가야 하는데 과연 히틀러와 예수 가운데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아무리 그래도 히틀러보다는 예수가 낫다는 사람은 아직 여유가 있는 경우일 것이다. 오늘 안에 부산에 도착해야 하지만 굳이 아니더라도 상관없다면 히틀러가 아닌 예수를 선택하는 것이 낫다. 하지만 진짜 급해서 오늘 안에 부산에 가야 한다면 히틀러나 예수보다는 자동차인가 자전거인가가 더 중요할 것이다. 히틀러가 모는 차를 타더라도 어떻게든 오늘 안에 부산에 도착해야만 하기에 그리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가 싫어서가 아니라 자동차다 더 급하기 때문이다.

 

내가 흔히 쓰는 비유 가운데 하나다. 사장이 여러 직원들을 고용해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선택지가 주어진다. 법을 지키면서 양심대로 사업할 경우 매출이 줄어들 것이므로 직원 여럿을 잘라야 한다. 들키지 않는 범위에서 법을 어기고 양심을 속일 수 있다면 직원들에게 보너스도 얼마간 더 챙겨줄 수 있다. 직원들 입장에서 어떤 사장이 더 좋은 사장인가? 그야말로 부처님 예수님 공자님처럼 너무도 인격적으로 고결해서 아주 사소한 잘못도 찾아볼 수 없는 도덕적인 인물인가, 아니면 차라리 인간은 개차반에 쓰레기라도 사업을 잘 운영해서 직원들에게 필요한 급여와 복지를 제대로 챙겨줄 수 있는 인물인가?

 

사업체가 아닌 가정으로 넘어가 보자. 사흘을 굶었다. 가족들이 당장에라도 죽겠다고 울부짖고 있다. 그렇지만 차마 법을 어기고 양심을 속일 수 없기에 그냥 두고만 보는 가장과 차라리 나가서 도둑질이라도 하려는 가장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훌륭한 가장일 것인가? 물론 일을 해서 돈을 벌 수 있으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을 것이다. 당장 그럴 처지가 못되는 경우에 대한 것이다. IMF 당시 하던 사업이 망해서 길거리에 나앉을 상황이 되자 그래도 가족이 헤어질 수는 없다고 아이들까지 데리고 노숙자생활을 하던 가장이 있었다. 차라리 노숙자로 길거리에서 먹고 자더라도 부모로서 아이를 버릴 수는 없다. 나몰라라 시설에 맡길 수는 없다. 그 또한 가장으로서 그의 절박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뇌물을 밝히고 허구헌날 계집질에 하급자에게 폭력을 일삼지만 지략 만큼은 이순신인 인물과 너무나 청렴결백하고 인격적으로도 고결해서 모두의 존경을 받지만 전술능력만큼은 원균인 인물이 있다면 누구에게 수군을 맡길 것인가. 그것도 평화로운 시대가 아니라 전쟁이 한창인 와중에 수군통제사를 임명해야 하는데 인간이 쓰레기인 뛰어난 전술가와 인격적으로 훌륭한 멍청이가 있다면 누구에게 지휘권을 맡길 것인가. 그 연장에서 단순히 지키는 것만 생각하는 지휘관과 역습까지 생각하는 지휘관이 있다면 자신이 지향하는 바에 선택할 인물 또한 달라지는 것이다. 더 이상 무리하게 전쟁을 키우기보다 그저 적당히 지키고 나서 안정을 찾기를 바라는 경우와 반대로 이번 기회에 아예 다시는 덤비지 못하도록 큰 피해를 강요하거나 아니면 복속까지 염두에 두는 경우의 선택이 서로 달라지는 것이다.

 

도덕성이란 여러 조건이 갖춰졌을 경우 선택지 가운데 하나일 수는 있어도 그것이 전부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인간은 불완전하기에, 생물로써 욕망과 충동의 지배를 받는 존재이기도 하기에 더욱 인간에게 완전한 도덕성을 바란다는 것은 불가능한 요구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소한 도덕적인 흠결이나 자신의 선과 정의의 기준에 맞지 않는 부분들을 찾았다고 실망하고 분노하는 것은 너무나 성급하고 심지어 어리석기까지 한 행동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 불완전함 가운데 어디까지 자신을 위해 허용하고 양해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니까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말하기 좋아는 자칭 중도들이 흔히 떠드는 말이 하나 있을 것이다. 정치란 도구다. 정치인이란 단지 수단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이다. 그 도구를 어디에 쓸 것인가. 그 수단을 어떻게 쓸 것인가. 도덕적이라고 드라이버로 철사를 휘는데 쓸 것인가. 도덕적이지 못하다고 구멍을 뚫는데 드릴이 아닌 펜치로 대신해 쓸 것인가. 그러니까 내가 정치에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진정 내가 정치에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러므로 나는 정치를 통해 무엇을 이루려 하는가.

 

이재명이 아니라 이낙연이었어도 내 월급 올려주고 일하는 시간 줄여주고 일하는 환경을 더 낫게 해준다면 그를 지지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내가 사는데 더 도움이 되고 이익이 된다면 이낙연이 아닌 윤석열이고 한동훈이라 해도 나는 기꺼이 지지할 수 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도덕적으로 순결한 무엇이 아닌 나에게 실제 도움이 되고 이익이 되는 정치이기 때문이다. 내가 더 마음놓고 풍요롭고 평화롭게 살 수 있다면 누가 되었든 그를 정치적으로 지지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사람에게 개인적으로 어떤 도덕적인 흠결이 있다고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것인가.

 

적당히 부정을 저질러도 결과적으로 국가 전체에 이익이 된다면 그 또한 양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적당히 부패하고 범법을 저질렀어도 결과적으로 국가와 사회 모두에 이익이 될 수 있다면 그 또한 용인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비례다. 그러므로 그를 통해 개인적으로 챙긴 것보다 공적으로 얼마나 크게 기여했는가를 따져보는 것이다. 그래서 양해하고 용인할 수 있다면 그 또한 정당하다. 과연 도덕적으로 완전하기 위해서 그같은 이익들을 포기하는 것이 얼마나 국가와 사회, 나아가 개인들을 위해 도움이 될 것인가.

 

그러고보면 프레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그같은 도덕성을 검증할 주체들의 기득권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한 마디로 언론이 자기들 영향력을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낸 프로파간다다. 도덕적으로 완전한 정치인만이 진정 지지할 가치가 있는 정치인이다. 따라서 도덕적으로 완전하지 못하다면 가치가 없는 정치인이다. 거기에는 개인이 정치를 통해 기대할 수 있는 지향이나 현실의 정책 같은 것은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이 그랬었다. 실제 현실에서 영향을 끼칠 정책적인 대안이나 실제 실력과는 상관없는 이미지에 모든 언론들이 올인하고 있었다. 심지어 진보를 자처하는 한겨레조차 진보적인 이념성보다는 개인의 도덕성을 명분삼아 윤석열 지지에 나서고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그렇게 윤석열을 지지한 결과가 무엇인가. 다수 임금노동자와 임금소득으로 생활해야 하는 그 가족들의 현실이 그 결과를 말해준다. 무엇이 더 중요하고 자신을 위해서도 더 시급할 것인가. 그래서 당시 윤석열의 이미지였던 공정과 상식이 얼마나 현실에서 개인들에게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었는가. 더구나 진보를 자처하던 2찍 진보들이라면.

 

그래서 참 한가하다 여기게 되는 것이다. 참 여유롭구나 부러워하면서도 한심하다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도덕적으로 둘 다 완전무결하지 못하니 아무도 선택하지 않겠다. 둘 중 누구라도 상관없다. 두 정당 모두 지향하는 바가 너무 다른데 번갈아 지지하는 것이 현명하다 여기기도 한다. 남의 일인 때문이다. 정치란 남의 일이라 여기는 때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자동차냐 자전거냐보다 히틀러인가 예수인가만 따지게 된다. 전쟁이 급박한데 지휘관의 인성이나 따지고 있는 그 한가로움이 중도란 이름으로 포장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생각하는, 그리고 바라는 정치적인 목표나 지향이란 무엇인가. 아마 대답을 못할 것이다. 아예 생각한 적이 없을 테니.

 

이명박 때도 그래서 들었었다. 일단 아무나 지지하고서 반대하면 된다. 지지해서 당선시킨 다음 요구하고 반대하면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원래 주장하던 것부터 다르다니까. 평소 주장하던 내용들부터 자신의 요구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지지하고서 요구하고 반대하면 그에 따라줄 것이다. 아니면 지지를 철회하면 그만이다. 이미 당선되었는데? 

 

아무튼 언론들의 장난질에 제대로 놀아나는 꼬라지들이라는 것이다. 언론과 더구나 수사와 판결을 독점하는 사법카르텔이 이 사회의 정치마저 좌지우지하려 하고 있다. 거기에 자신의 판단을 맡긴 뒤 그것으로 자위하려 하고 있다. 나는 합리적이고 도덕적으로도 고결하다. 현실이 아니다. 정치가 왜곡되는 이유다. 거대서사는 디테일을 속인다. 진실이다.

 

 

그러니까 그동안 비례투표만이라도 진보정당에 주었던 많은 민주당 지지자들의 바람이란 아무래도 거대정당으로서 민주당이 보이기 힘든 보다 선명하고 적극적인 행보를 진보정당이 보여주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보다 선명하고 적극적인 진보적인 아젠다를 가지고 민주당을 왼쪽으로 끌어당기며 한 편으로 오른쪽의 보수정당을 함께 공격한다. 하지만 진보정당들의 선택은 항상 통진당을 제외하고는 민주당과 보수정당의 가운데에서 박쥐짓을 하는 것이었다.

 

몇 번이나 말했지만 원래 중용이라는 말의 의미는 쉽게 치우치거나 흔들리지 않는 확고하고 분명한 중심을 뜻하는 것이었다. 올곧고 올바른 기준이 똑바로 서 있으면 그것이 곧 중심이 되어 그로 인해 쉽게 주위에 휩쓸리거나 휘말리지 않고 자신을 지킬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 말이 잘못 이해되면서 그냥 양 극단의 가운데를 중용이라 여기게 되었다. 자기 자신의 중심이라고는 없이 주위에 의해 그 중간이 결정되고 그것이 곧 자신의 입장이 되고 마는 것이다. 하물며 그것이 진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말은 진보인데 행보는 보수와 수구의 중간에서 양자를 선택하는 것이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심지어 그 중간에서도 민주당 편든다는 말을 듣기 싫어서 거의 항상 수구와 행보를 같이하고 있었다. 

 

민주당 2중대가 되라는 것이 아니다. 민주당의 왼쪽에서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민주당을 진보로 끌어당기면서 진보적인 아젠다로 함께 보수정당과 싸우기를 기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민주당 2중대가 되는 길이라면서 민주당의 왼쪽을 포기하고 보수정당의 왼쪽에서 민주당과 싸우기를 선택한다. 과연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기 이전 후보시절부터 심심하면 떠들어댔던 반노동, 반소수자, 반환경적인 발언들에 대해서도 한 마디 비판조차 없었던 자칭 진보들을 유권자들은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과연 진보로써 보다 수구적인 현정부를 상대로 더욱 적극적으로 치열하게 싸울 대안으로 여길 것인가? 아니면 그냥 어차피 윤석열 정부 탄생의 조력자로서 여전히 민주당을 상대로만 싸우고 말 것이라 여기게 될 것인가? 그러면 선거의 가장 중요한 아젠다가 정권심판인 지금 녹색정의당의 위치란 무엇일 것인가?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뒤에도 민주당만 아니면 된다며 민주당 공격에만 몰두한 대가인 셈이다. 살아있는 권력이 바뀌었는데 정의당은 물론 2찍 진보 언론과 지식인 모두가 민주당과 이재명 공격에만 올인하다시피 하고 있었다. 간첩몰이를 당하는 와중에도 민주노총이 민주당 앞에서만 시위를 하는 모습부터가 그런 연장에 있는 것이다. 민주당만 아니면 된다. 민주당만 때려잡으면 된다. 그런데 이미 대중의 관심은 윤석열 정부의 폭주에 대해 어떻게 견제하고 심판할까 하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민주당만 때려잡겠다고 지랄하는 2찍 진보들에 대한 대중의 판단은 분명한 것이다. 저 새끼들이야 말로 윤석열 정부의 따까리들이다. 더이상 경향일보를 진보언론이라고 취급해주는 곳도 이제는 없지 않은가. 한겨레에 대한 평가도 다르지 않다. 민주당을 씨몰살해야 비판해야 할 살아있는 권력이 바뀌는 것이라 여기는 것들이다.

 

아무튼 그 결과가 1%도 안되는 지지율이니 그야말로 정의구현이라 할 수 있겠다. 혹시나 하는 기대에 표를 주었던 민주당 지지층들의 냉정한 판단인 것이다. 그런 주제에 민주당 지지자들이 자기들에게도 교차투표할 것을 기대했다니 대가리가 똥인지 구더기인지 생각이란 걸 할 능력이 되는가 의심이 될 정도다. 물론 그렇게 읽지 말라 한겨레가 발악을 해도 굳이 돈을 주고 구독해 읽는 민주당 지지자가 아직 적지 않으니 착악을 할 만도 하다. 민주당 지지자는 병신에 호구다. 그러니 결과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심상정 보지 않아도 되어 속시원한 사람이 너무나 많다. 너무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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