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전 보니 또 박형준이 헛소리한다. 하긴 박형준만이 아니다. 조중동, 한경오, 자유한국당, 바른정당, 그리고 국민의당까지 한결같이 하는 말이다. 적폐청산이 정치보복이 되어서는 안된다. 법과 제도의 개혁이어야지 개인에 대한 처벌로 끝나서는 안된다. 그런데 법과 제도를 바로 고치려 해도 뭐가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알아야 그에 대한 대안도 고민할 수 있는 것 아니던가.


더구나 문제가 그렇게 과거 정부에서 어떤 문제들이 있었는가를 알았을 때 이미 있는 현행법을 어긴 행위에 대해서까지 없었던 일로 덮고 넘어가야 할 것인가? 차라리 과거 어떤 문제가 있었고 따라서 무엇을 어떻게 바꾸고 고쳐야 하는가 먼저 자수해서 알린 경우라면 참작의 여지는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고발자로써 그가 고백한 내용들을 다시는 그같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바로잡는데 참고함으로써 그 기여를 인정한다. 원래 형사범들도 먼저 자수할 경우 수사 및 재판과정에서 정상을 참작해주도록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끝까지 사실을 감추고 왜곡하려다가 수사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들통난 경우에도 선처해야만 하는 것인가.


'썰전'에서도 유시민이 한결같이 주장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박근혜는 물론 이명박에 대해서도 먼저 사실을 인정하라.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하라. 그리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법과 제도를 개혁하는데 적극적으로 협력하라. 그러면 국민이 그래도 전직대통령이기에 선처를 요구할 수 있다. 전직대통령에 대한 예우로써 면죄부를 줄 수도 있다. 하지만 끝까지 부정하지 않았는가. 끝까지 부정하며 버티다가 끝내 특검의 수사 결과 사실들이 밝혀지고 탄핵까지 당하지 않았는가. 이명박도 박근혜와 같은 처지가 될 수 있다. 그러니까 자수하고 광복을 찾으라. 끝까지 버티다가 병사들에 잡혀 끌려나온 적의 군주는 동정의 대상조차 아니었다. 백성과 병사들의 목숨을 아끼려 스스로 죄인이 되어 항복했을 때 최소한의 명예와 지위나마 지켜질 수 있었다.


아무튼 웃긴 것이다. 그렇게 법과 제도를 바로 고치려면 먼저 자기들이 사실을 털어놓고 이런 식으로 법과 제도를 고치자며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던가. 실제 과거 어떤 일들이 있었고, 그것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법과 제도를 바로 고쳐야 한다고 당사자로써 자신들이 경험했고 또 알고 있는 바를 적극적으로 법과 제도의 개혁을 위한 수단으로써 활용하는 모습을 보이며 그런 말들을 해도 해야 한다. 그냥 있는 사실도 묻고, 밝혀진 진실마저 감춘 채 법과 제도막 막연히 고치면 과거의 잘못들이 바로잡혀 지는가. 최소한 잘못을 저지르고도 끝까지 인정하지 않고 바로잡으려 하지 않는 자체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책임을 묻는 정도는 필요하다. 선하게 바뀌는 것에 앞서는 것이 과거를 바꾸는 것임(改過遷善)을 알아야 한다.


하여튼 누가 MB의 측근 아니랄까봐 얼굴에 철판 정도가 아니라 열화우라늄을 겹겹이 깔아 놨다. 그래서 얼굴 무거워 들고나 다닐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일부가 문제다. 전체 가운데 아주 일부가 문제일 뿐이다. 그 일부조차 군이, 그리고 정보기관이 절대 해서는 안되는 행위들이었다. 유시민이 잘 지적했다. 그렇게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 정당한 행위였다면 어째서 자신의 소속과 이름을 감추고 익명으로 댓글을 달고 있었던 것인가. 국가기관의 모든 행위는 공식적인 절차와 경로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원칙에 의거해서 철저히 공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유는 당연히 국가란 특정한 개인의 소유가 아닌 모두의 공동체인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원칙과 절차를 무시한 채 특정한 목적을 위해 자신의 정체와 신분마저 감추고 국가의 권력을 사용하려 한다. 그냥 댓글 몇 개 단 것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들어간 모든 시간과 노력과 비용이 국민이 낸 세금으로 이루어진 것들이다. 그런데도 의도가 선하니 그런 부분들마저 봐주고 넘어가야 한다. 그러니 MB정부에서 정무수석까지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요즘은 아예 박형준 저 인간이 나와서 어떤 궤변으로 이런 명백한 사안들에 대해서마저 물타기를 하려 할 지 그것 하나 기대하며 보는 중이다. 굳이 다른 언론의 보도나 정치인의 발언을 찾아 볼 필요조차 없다. 거르고 거른 쥐어짜고 쥐어짠 논리가 많이 배운 지식인의 언어로 흘러나온다. 똥을 거름으로 쓰면 기생충이 들끓게 마련이다. 똑똑한 놈들이 원래 더 문제다. 혐오스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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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헌 정무수석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한다는 뉴스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다. 물론 한 편에서는 소환일정조차 잡힌 것이 없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하기도 했었다. 무엇인가? 결국 아직까지 전병헌 정무수석의 혐의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이 입증되지 않은 상황이라 공식적으로 그 혐의사실에 대해 공표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측근들의 비리이지 아직 정무수석의 부정까지는 아니다. 그래서 언론을 통해 여론몰이를 시도한다.


전병헌 수석의 말이 옳다. 과거 노무현 때도 그랬었다. 명확한 혐의사실 입증 없이 언론플레이를 통해 여론부터 만들었었다. 언론을 이용해서 기정사실로 만듦으로써 여론재판을 시도하고 있었다.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정치인에게 이보다 치명적인 것은 없다. 문제는 그런 검찰이 불과 며칠전 같은 검찰인 변창훈의 죽음을 두고 명예네 인권이네 떠들며 강압수사를 주장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변창훈은 여론몰이는 커녕 변변한 보도조차 없이 막 수사가 시작되려는 시점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었다.


그러니까 검레기라 부르는 것이다. 그러니까 시험만 잘 보는 쓰레기들이라 욕하는 것이다. 열심히 골방에 틀어박혀 출세하자고 공부만 하던 놈들이 권력과 지위를 손에 넣으니 눈에 뵈는게 없다. 전병헌 수석에게 하던 식대로라면 변창훈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자신의 나약함과 비겁함으로 인한 것일 뿐이다. 변창훈에게 했던 것도 무리한 수사였다면 지금 전병헌 수석에게 하는 것처럼 명확한 혐의사실 없이 언론을 이용한 몰아가기는 잘못된 것이다. 그런 보편의 상식조차 없는 것은 자기들이 아주 대단한 선택된 존재라는 의식 때문일 것이다. 검사인 자신들은 저들과는 다르다.


확실히 때려부숴야 한다. 전병헌을 내주는 한이 있어도 아예 검찰을 뿌리부터 뒤집어 버려야 한다. 검사놈들이 다시는 저런 식으로 어깨에 힘주고 거들먹거리지 못하도록. 아예 검찰조직을 조각조각내서 저놈들이 다시 저런 식으로 특권의식으로 뭉쳐 행동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다시 한 번 확인한다. 검레기는 검레기였다. 검새는 검새였다. 인간이 아닌 것을 인간으로 취급해서는 안된다. 확실히 검사는 검사다. 웃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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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알게 된 사실이다. 하긴 너무 당연하다. 아니면 신문사가 아직 유지될 수 없었을 테니.


은행으로 들어가는 한겨레, 경향의 양이 상당하다. 그것도 은행 지점 하나다. 뜻밖에 몇몇 경제신문과 조중동을 제외하면 한경이 거의 유일하다.


저들이 저리 날뛰는 이유다. 개인독자들은 상당부분 떨어져나갔다. 과거 동지라 믿었던 민주진영 독자 상당수가 아예 한경에 등돌리고 말았다. 하지만 기럼에도 기관수요가 남아 있다. 그러면 그들을 위해서는 어떤 기사를 써야 하는가?


이제는 경제의 논리다. 이념도 성향도 다 지난 이야기다. 어떤 기사를 써야 돈이 되는가. 아마 민주진영에서는 그런 한경의 스탠스가 상당히 의아했을 것이다. 정작 그들이 타겟으로 삼아야 할 독자는 자신들인데 어째서 항상 자신들을 거스르는 기사만을 고집스레 쓰는 것일까? 진짜 돈되는 독자가 누구인가를 생각해보면 그 답은 너무나 쉽게 나온다. 한경이 유독 이명박을 조준하기 시작한 적폐청산에도 적대적인 의견을 은연중 내비치는 이유다. 최소한 이명박이 문재인보다는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었다.


가끔 한경을 얻어서 볼 일이 있는데 때로 원래 한경의 스탠스대로 쓴 기사들도 보이지만 그보다는 왜 이런 기사를 썼을까 역겨운 것들도 적지 않다. 그래서 이해했다. 그냥 이제 한경도 돈을 위해 기사를 쓰는구나. 어차피 보수는 조중동이 잡고 있으니 진보를 이념으로 잡고, 그러나 자신들을 소비해주는 기관독자들을 위해서 철저히 그들의 입장에서 기사를 써준다. 이제야 그들이 이해되기 시작한다.


전병헌과 관련해서 여명숙이 사과한 기사도 한경은 아직 내지 않았던 것 같은데. 뭐 굳이 확인하지도 않는다. 그냥 그런 것에 일일이 신경써주는 자체가 한경에게 도움이 되는 길이다. 무시만이 답.


한동안 망할 일은 없을 것 같다. 개인독자들은 떠나도 기관이 아직 남아 있다. 진짜 돈되는 건 이쪽이다.


차라리 솔직해지면 욕은 덜 먹을 것 같다. 목구멍이 경찰이고 법원이고 양심이고 정의다. 세상의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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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노무현 때는 대통령의 측근을 타겟으로 삼아 교묘하게 잘 빠져나갔었다. 권력의 핵심까지도 단호하고 엄격하게 수사해서 처벌하는 정의로운 검사라는 이미지까지 얻었다. 당시 달라진 검찰의 모습에 환호하고 열광하며 지지를 보냈던 국민들을 기억한다. 그런 국민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검찰을 개혁하려는 노무현 정부의 의도를 절묘하게 역공까지 하며 피해갈 수 있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변창훈 하나 죽었다고 아예 다수 검사들이 들고 일어나서 야당과 언론과 손잡고 심지어 검찰총장과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하극상을 벌이는 중이다. 정부의 적폐청산으로 인해 무고한 검사가 희생되고 말았다. 망신주기식 강압수사가 아까운 목숨을 스스로 끊게 만들고야 말았다. 이같은 억울한 죽음을 불러온 검찰총장과 법무부장관, 나아가 적폐청산을 밀어붙이고 있는 정부를 응징하고 단죄해야만 한다. 더불어 청와대 비서관 전병헌과 행정관 탁현민을 타겟으로 언론플레이를 시작한 것이었다. 봐라, 현정부도 그렇게 깨끗하지만은 않지 않은가. 그런데도 감히 적폐청산을 말할 수 있을까?


그런데 검사들이 전혀 오판하고 있는 것은 지금 문재인 정부가 추진중인 적폐청산이란 노무현 정부 당시의 막연하기만 했던 검찰개혁과 그 성격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탄핵당했다. 그것도 다수의 국민이 들고일어나 국회를 압박한 결과 그리된 것이었다. 거의 80%에 이르는 국민들이 초유의 대통령 탄핵에 동의했고, 심지어 백 만이 넘는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와 그 의지를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기까지 했었다. 이게 나라냐 싶을 정도로 참담한 상황에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지금의 대통령에게 표를 주어 당선시켰던 것이었다. 그때부터 현대통령이 첫째 공약으로 앞세웠던 것이 바로 적폐청산이었다. 당장 드러난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부터 지금까지 계속되어 온 국정의 난맥과 폐단을, 특히 불법과 범죄를 엄정히 수사해서 처벌하고 장차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하겠다. 검찰이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검찰조차 과거 정부에서 저질러진 수많은 비리와 범죄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사실을 다수 국민들이 이미 알고 있다.


전병헌이 죄가 있다면 처벌하면 된다. 탁현민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에 따른 책임을 물으면 된다. 그와 함께 드러난 범죄들에 대해서도 엄격하게 법에 따라 처벌해야만 한다. 검찰도 죄가 있다면 처벌받아야 한다. 하나의 목숨이 사라진다는 것은 무척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과거 저질러진 수많은 잘못들을 이대로 모른 척 대충 덮고 넘어가서는 안된다. 그러라고 문재인에게 표를 주었던 것이고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시킨 것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70%를 넘나드는 국민이 현정부의 적폐청산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검찰들 자신이 그동안 그랬던 것처럼 적폐청산일라는 거대한 시대의 과제 앞에서 한 사람의 죽음 정도는 사소한 것이다. 대통령 측근 몇몇의 잘못 정도는 무시해도 좋은 것이다. 오히려 검사 하나의 죽음을 빌미로 적폐청산 자체를 거부하고 저항하는 검찰의 모습에서 검찰 또한 청산되어야 할 적폐의 일부임을 확인하게 된다. 자기도 변창훈 검사와 같은 처지라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법과 정의를 지켜야 할 검사들이 자기 입으로 떠들어대는 소리다. 증거를 조작해서 검찰의 수사를 방해하는데 앞장섰던 인물에게 검찰이라는 조직의 대표성을 부여한다. 과연 이번에도 국민들은 그런 검사들의 의도에 넘어가 줄 것인가?


별로 안타까운 죽음도 아니었지만 그것을 빌미로 적폐청산 자체에 대해 강한 적의를 드러내는 유가족과 검찰의 모습에, 그리고 그에 보조를 맞추며 적폐청산을 저지하고자 나서는 야당과 언론들을 보면서 알량하게나마 가졌던 연민과 동정심을 모두 지우고 만다. 전에도 쓴 것처럼 변창훈 검사가 혼자서 잘먹고 잘살자고 그런 범죄들을 저질렀던 것은 아니었을 게다. 그렇게 얻은 지위와 권력과 돈이 누구에게 흘러갔을까? 그런 구조들을 본다. 변창훈이 아니었어도 다른 검사가 변창훈과 같은 길을 걸었을 것이다. 검찰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구제불능으로 타락해 있는가. 검사를 수사했다는 이유만으로 검사인 피의자의 모든 잘못은 지워지고 만다. 저들이 바라는 것은 단 하나, 과거의 모든 잘못을 덮고 묻고 잊고 지나가는 것이다. 무엇때문일까?


그다지 효과는 없을 것이다. 언론도 야당도 열심히 떠들어대고, 검사들도 자신들의 바닥을 드러내가며 여론몰이를 하려 애쓰고 있지만 그 효과는 그리 신통치 않다. 말한 그대로다. 대상이 명확하다. 사실관계가 명확하다. 그러므로 드러난 잘못들을 수사하고 단죄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범죄들에 검사 스스로가 동일시하며 집단으로 행동에 나서고 있다. 청산되어야 할 적폐가 여기 하나 더 있다. 특권이 나름 수재들도 바보로 만들고 만다. 웃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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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선거개입에 대한 검찰의 수사를 주도해서 방해한 혐의로 수사받을 예정이었던 검사 하나가 뒈져버렸다. 본격적으로 수사가 시작된 것도 아니었다. 실제 구속이 이루어진 것도 아니었다. 수사도 시작하기 전에 지레 겁먹고 지가 지 목숨을 땅바닥에 내던져 버렸다. 하긴 원래 검사의 양심이나 명예는 그 놈 아니었어도 시궁창에 뒹굴고 있었을 것이다. 검사의 양심이니 기개니 하는 헛소리는 지난 정권에서 검사의 모습을 보고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그런 놈 하나 죽었다고 다수 검사들이 들고 일어나 심지어 검찰총장과 법무부장관을 향해 비난을 퍼붓고 있다.


검찰이 검찰을 수사해서는 안된다. 검사가 같은 검사의 죄를 물어서는 안된다. 그동안 검찰의 수사과정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며 스스로 자해하거나 목숨을 끊은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사회저명인사들도 포함되어 있었고, 나름 상당한 위치에 있던 정치인이나 경제인들도 적지 않았었다. 불과 얼마전에 역시나 같은 수사대상이었던 국정원 소속 변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었다. 그때 검찰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같은 검사들이 그때 그들에 대해 어떤 연민과 동정을 보이고 있었는가. 그러니까 그런 식의 강압적인 수사는 안된다며 반성하는 목소리가 한 번이라도 나온 적 있었는가. 그럼에도 굳이 그런 검사들의 태도를 지적하지 않았던 것은 수사과정에서 어쩌면 필요할 수도 있었겠다는 동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범죄사실을 밝히고 처벌하기 위해서라도 보다 억압적인 수단도 때로 필요할 수 있다. 그런데 어째서 검사는 안되는데?


그래서 문제다. 검사도 범죄를 저지른다. 이번의 예에서 보았듯 현직이든 전직이든 검사이거나 검사출신들이 피의자가 되어 검찰의 수사를 받아야 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오히려 수사받으러 가서 팔짱끼고 거만한 눈으로 수사검사를 보던 전직 검사출신 우병우를 떠올리게 된다. 더구나 검사로써 검찰의 수사를 방해한 혐의를 받고 수사를 받아야 하는데 지레 죽어버린 어느 검사놈에 대한 검사놈들의 격앙된 반응을 보고 있으면 과연 검찰이 그같은 전현직 검찰들의 범죄를 바로 수사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 같은 검찰을 수사했다는 이유만으로 위아래도 모르고 비난을 퍼부어대는 저놈들을 보고 이미 헤아릴 수 없이 세상에 드러난 전현직 검찰출신들의 범죄수사를 믿고 맡길 수 있을 것인가?


다시 한 번 확인한다. 검찰은 검찰을 수사할 수 없다. 검사가 검사를 수사해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전현직 검찰들에 대한 수사를 이대로 손놓고 있을 수는 없다. 아마 전부터도 수없이 많은 비리와 범죄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나마 아예 특권이 몸에 배어서 아무일 없을 것이라고 조심성을 잊은 결과 최근 그것들이 크게 드러나게 되었을 뿐이다. 그마저도 제대로 된 수사와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무엇때문이었는가 검찰들 자신이 확인시켜준다. 검찰을 수사하기 위해서는 검찰 외적인 존재가 필요하다. 검찰 외에 또다른 수사의 주체가 필요하다. 검찰을 수사할 수 있는 공수처와 검찰을 견제할 수 있는 경찰의 존재다. 경찰 역시 믿음이 안가기는 마찬가지지만 서로 견제하게 해놓는다면 어떻게 되겠지. 검찰이 범죄를 저질른 검찰을 수사했다고 저 난리를 치는 놈들을 보고 있으면 더이상 검찰에만 수사권과 기소권을 맡겨놓을 수 없다는 사실만 분명해진다.


개새끼들이다. 욕 좀 해야겠다. 개똥같은 새끼들이다. 싹 갈아서 거름으로 만들면 그나마 세상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범죄를 저질렀는데도 같은 검사고 자신들의 동료다. 자신들의 동료이기에 더이상 수사를 받더라도 일정 이상의 예우를 받아야만 한다. 지가 못나서 죽은 것까지도 수사한 검사들의 잘못이다. 이런 놈들이 이 나라의 법과 정의를 책임지고 있었다. 이런 놈들을 믿고 이 나라의 법과 정의를 바로 세우라 말하고 있었다. 원래 그런 놈들인 것은 알았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최소한의 염치도 없는 쓰레기인줄은. 새삼 깨닫는다. 검찰을 사람취급해서는 안된다. 토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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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민족의 십일조 2017.11.08 16:05 신고

    저도 동감합니다. 검사 수사는 다른 기관에서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공수처 같은 기관이 설립되어야 할 이유겠지요.

우병우와 관련해서도 몇 번 이야기한 바 있었다. 과연 우병우의 부모나 형제, 아내, 자식들은 그런 우병우를 부끄러워할까? 자랑스러워할까? 


진짜 아주 막장이 아니고서는 기껏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고서 혼자서만 그것을 누리려 하지 않는다. 가족에게도 돌아간다. 돈이든, 신분이든, 권력이든. 오히려 먼저 가족들이 그것을 바라고 기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출세해라. 출세해서 집안을 일으켜라. 네 부모, 네 형제, 네 가족들을 책임지라. 그런데 언제부터 검사 월급이 일가족을 모두 먹여살릴 정도가 되었을까?


다른 사람도 아닌 검사가 검찰의 수사를 앞장서서 방해하고 있었다. 증거를 조작하고 인멸하는데 힘을 보태고 있었다. 이유는 하나다. 권력이 시켰으니까. 출세하려면 그 권력에 잘보여야만 했을 테니까. 그래서 지금껏 누려온 것이 있었을 터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고 자신이 저지른 죄가 드러나려 하자 관련자를 회유하려 시도하더니 수사를 피해 자살까지 하고 있었다. 동정의 여지가 있을까? 그러니까 같은 검찰이니까 그 죽음마저 동정해야 한다는 검사놈들이 있으니 검찰이 그모양인 것이다. 언제부터 검사가 피의자에 대해 그렇게 관대했던 것일까?


이번 자살과 관련한 검찰 내부의 반응이야 말로 오랫동안 썩고 비틀어진 검찰 자신의 추악한 특권의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을 것이다. 혐의가 있으니 수사한다. 이미 한 번 수사를 방해해서 혼선을 주었고 여전히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기에 구속하여 수사해야 한다. 어째서 검찰은 그러면 안되는가? 그 과정에서 억울한 일들이 한둘이 아니었을 텐데 어째서 검찰의 죽음에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것일까? 검찰총장에게까지 너희가 죽였다 비난을 퍼부었다고 한다. 검찰이 검찰을 수사하는 것이 하극상을 저지를 만큼 큰 죄였다. 이쯤되면 검찰을 아예 해체하고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 쪽이 더 깔끔할 듯하다. 검찰의 죄를 물어서도 감시 수사해서도 안된다.


그 유가족의 울부짖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디 감히 검사를. 어디 감히 우리 영감님을. 돈줄인데. 사회적 신분이고 지위인데. 권력인데. 그래서 앞으로도 영원할 것만 같았던 부귀영화가 한 순간에 날아갔는데. 그 상실감이 오죽할까?


원래 자살이란 용기를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자살에 죽을 용기란 말은 없다. 살 용기가 없으니 차라리 죽음으로 도피하려는 것이다. 그동안 검사로서 수많은 피의자 용의자들을 심문하고 조사했을 것이면서 검찰이 자신을 수사하려 하니 그것 하나 감당할 용기가 없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런 주제니까 권력이 시킨다고 고분고분 검사로서의 양심을 팔아넘길 수 있었을 것이다. 동정의 여지도 없고, 그를 동정하는 검찰 동료나, 유가족이나, 혹은 보수적인 정치인이나 국민들 역시 조금도 이해할만한 부분이 없다 할 것이다. 그렇게 진실은 묻혔고 최소한의 결백을 주장할 기회마저 스스로 날려 버렸다. 수사도 시작되기 전에 수사가 시작될 것이라는 사실만으로 지레 겁을 먹고 죽음으로 도망쳐 버렸다. 무슨 평가할 가치가 있겠는가.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가족 또한 공범이다. 그 동료들 또한 공범이다. 원래 검사란 그런 자리였을 것이다. 사회가, 가족이, 동료들이 기대하는 검사란 그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피해자이기도 하다. 그냥 남들이 검사에게 기대하는 만큼만 행동했을 뿐인데 죄인이 되었다. 누가 그를 죽였을까? 무려 검사가 혐의가 명백한 죄인의 수사를 잘못이라 말한다. 증거를 인멸할 수 없도록 빠르게 수사를 진행하며 압박한 것이 오히려 죄라 말한다. 검사가 생각하는 죄와 보편의 상식이 생각하는 죄가 이렇게 다르다. 그리고 검사는 사회의 정의와 죄를 책임진다.


죽었다고 죄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죄를 저지른 사실 자체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죽은 것은 죽은 것이고 죄는 죄다. 참 많이 참는다. 원래는 뒈졌다 말해야 하는데. 그 유가족과 검찰 동료들 때문에라도 그는 뒈진 것이 되어야 한다. 이런 주제들이 이 사회의 정의를 묻고 죄를 단죄하고 있었다. 진짜 정의를 지키며 진실을 쫓는 검사였다면 너무나 무책임한 선택이었다. 그런 주제라는 것이다.


한심하다. 뒈질 놈이 뒈졌다. 가치도 없는 놈 하나가 세상에서 사라졌다. 별별 의미를 부여한다. 같잖은 것들이다. 침을 뱉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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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 못한 사람이 있을까? 처음 바른정당이 분당해 나왔을 때도 흔히 하던 말이었다. 그동안 당에 대한 지지에 힘입어 손쉽게 정치하던 사람들이다. 북한과 지역주의, 그리고 무엇보다 거물정치인들의 등뒤에 숨어서 기생하며 정치해 오던 사람들이다. 한 마디로 자기 손으로 직접 먹을 것을 구하고 머물 곳을 찾는 풍찬노숙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확고한 이념이나 정치적 신념이 있어서 그런 어려움을 기꺼이 견딜만한 동기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그동안의 행보에서 보았듯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근본적으로 다를 것이 전혀 없는 정당이다. 그런데도 지금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굳이 바른정당을 유지한다는 것이 그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어차피 처음 바른정당이 만들어진 것부터 정치적 명분과는 상관없는 이해타산의 결과였다. 대통령 박근혜가 국정농단을 저질렀다면 여당인 당시 새누리당 역시 그 책임을 함께 져야만 했던 터였다. 바른정당의 지지율이 바닥을 기니 다시 당을 뛰쳐나가 조직과 돈과 지지자가 있는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가려는 것처럼 당장 자신들을 향한 국민적 비난을 피하기 위해 당시 새누리당을 뛰처나와 따로 당을 차렸던 터였다. 그마저도 반기문이라는 유력한 대선후보가 있었기에 새누리당이 아닌 새로운 보수정당의 이름이라면 다음 대선에서 다시 여당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계산이 섰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박근혜라는 그림자를 털어버리고 새로운 중도적인 보수정당의 이미지로써 반기문에 대한 대중의 인기와 지지에 영합해서 다음 대선을 노려보겠다. 하지만 반기문이 불출마를 선언하고 유승민이 낮은 지지율을 끌어올리지 못하자 결국 다시 절반이 떨어져나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었다. 그때부터 계속해서 나왔던 것이 보수대통합이라는 지금의 탈당명분이었던 것이고.


국민의당과 다른 부분이라면 그런 점에서 민주당의 경우 철저히 국민의당과의 합당이나 탈당파들의 복귀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에서 홍준표는 비주류다. 주류는 박근혜라는 원죄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친박들이다. 그나마 바른정당에서 복당해야 친박들과 세싸움을 할 수 있는 우군이 만들어진다. 물론 그렇다고 이미 바른정당을 나가서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간 정치인들이 얼마나 특히 박근혜와 관련해서 친박들과 차별화를 이루고 있는가 살펴볼 문제다. 어쨌거나 자유한국당은 바른정당의 옛동지들을 필요로 하고 있고, 바른정당은 내년의 지방선거와 3년 뒤의 총선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유한국당이라는 따뜻한 그늘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명분이 없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박근혜의 출당은 그들을 위한 명분이 되어 주고 있었다. 물론 국민 거의 대부분이 그 명분 뒤에 숨은 내막을 알고 있을 것이었다. 내 국회의원 자리, 나를 따르는 조직의 유지를 위해 밥그릇 지키려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간다. 과연 얼마나 많은 보수유권자들이 그들이 앞세운 보수대통합이라는 명분에 동의해 줄 것인지.


결국은 새로운 보수를 표방했던 유승민의 리더십이 한계를 드러낸 때문이었다 할 수 있다. 어찌되었거나 바른정당을 중심으로 새누리당이나 이제는 갈라선 자유한국당과는 다른 새로운 보수를 보여주겠다. 그래서 뭘 보여주었는가. 그동안 얼마나 자신들을 그들과 차별화시키고 있었는가. 대선 당시 듣기 좋으라고 떠들어대는 공약 말고 실제 바른정당의 이름을 앞세우고 그들이 보인 행보들을 떠올려보라. 얼마나 많은 다양한 분야에서 자유한국당과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는가. 그것을 유권자들에 인정받고 있었는가. 하태경은 이른바 통합파들의 방해와 반대를 이유로 들고 있지만 그마저도 극복하고 넘어서는 것이 바로 정치인으로서의 리더십인 것이다. 그런 방해와 반대들을 때로는 설득하고 때로는 타협하고 때로는 힘으로 찍어 누르며 바른정당이라는 정체성을 만드는 것이 그래도 대통령이 되겠다 나왔던 거물 정치인다운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냥 자유한국당이나 바른정당이나다. 그 결과가 바른정당의 지지율인 것이고. 그래서 이제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겠다. 처음 동기야 어찌되었든 유승민과 바른정당 자강파가 주장한 새로운 보수라는 구호가 얼마나 허무하고 의미없는 것이었는가 새삼 확인하게 된다.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뛰처나온 자체가 아무 명분이 없었듯 돌아가는 것도 아무런 명분이 없다. 그런 명분 자체가 필요가 없다. 이익이 있어 뛰쳐나왔고 이익이 있기에 다시 돌아가려 한다. 이념이 아니었고 신념은 더욱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을 국민들이 뻔히 알고 있음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살기 위해 그들은 그런 선택을 해야만 한다. 그것이 이리 비루한 것이다. 그렇다고 과연 남은 자강파들이 오로지 신념을 위해 끝까지 당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만일 그렇게 교섭단체마저 무너진 상황에서 당을 지켜낼 수 있다면 그나마 유승민의 리더십을 다시 평가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럴 수 있다면 하태경의 말처럼 새로운 시작일 수 있다. 물론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그냥 한심하다. 웃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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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국가란 군주의 사유물이었다. 군주에게 국가와 백성에 대한 책임을 강조한 것도 바로 그것들이 군주의 소유 아래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것이 너의 소유이니 그에 대한 책임 또한 네가 져야 한다. 물론 그렇다고 군주가 거부하면 뜯어말릴 방법이라고는 반역 말고는 없었다. 성공하면 혁명이고 실패하면 반란이다. 역사상 수많은 암군과 폭군과 혼군이 존재했던 이유였다. 그들조차도 마지막까지 충성하는 신하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래서 역사상 많은 시대에 국가의 재정은 곧 군주의 개인금고이기도 했었다. 왕실의 개인재산이 따로 있어서 국가재정과 별개로 운용되었던 조선의 경우가 오히려 특이하게 여겨질 정도다. 당장 명나라만 해도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크고 부강한 나라였음에도 정작 그 재정의 대부분을 황제의 혈족인 종친을 예우하는데 쓰느라 항상 압박을 받고 있었을 정도였다. 근세 유럽에서 부국강병책의 상징처럼 이야기되는 중상주의 또한 그렇게 거둔 세금의 상당부분을 국왕의 애인이나, 전애인, 사생아, 혹은 친척, 우호적인 귀족들에게 연금을 지급하느라 파탄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심지어 유럽의 어느 군주는 자신의 국민과 자식들까지 다른 나라에 용병으로 팔아넘긴 돈으로 수많은 손님을 초대해서 연회를 열고 값비싼 보석을 선물로 뿌리는 사치를 부리고 있기도 했었다. 그래도 허용되었던 이유는 그 모든 것이 군주 개인의 소유였으니까.


그래서 민주주의가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리스 신화를 보고 있으면 어째서 그리스에서 민주주의가 처음 나타나게 되었는가 이해하게 된다. 군주가 거두어가는 세금도 나의 재산이고 군주가 동원한 노동력도 나의 육신이다. 그런데 어째서 군주가 마음대로 나의 재산과 육신을 가져다 쓰면서 자기에게는 아무런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가. 너무나 당연한 의심이고 분노였을 것이다. 그래서 동아시아에서도 일찌기 공자가 군주에게 자신의 소유일 국가와 백성들에 대한 소유주로서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었고, 심지어 맹자는 국가도 백성도 군주의 소유는 아니라며 역성혁명을 긍정하는 사상을 설파하기도 했었다. 걷분에 맹자는 북송 말까지도 중국사회에서 크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다. 어찌 감히 신하로써 왕을 끌어내릴 수 있는가. 그러나 군주가 군주로써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군주로써 자격이 없는 것이고 자격을 잃은 군주는 그 자리에 더이상 있을 수 없다는 일종의 사회계약론이었던 셈이다. 근세 유럽에서도 귀족과 군주들의 전횡과 폭압에 일방적으로 권리를 침해당해야 했던 주로 시민계급에 의해 혁명의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원리는 같다. 네가 거둬가는 세금이 내 재산이고, 네가 동원하는 노동력과 군사력이 나의 몸이다. 그렇다면 그에 따른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라. 권리를 인정하라.


국가는 어느 누구의 소유도 하니다. 국민은 어느 개인의 소유도 될 수 없다. 근대 이후 그것은 마치 상식처럼 되어 버렸다. 그래서 많이들 잊는다. 불과 얼마전까지 국가를 사유화한 권력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그런 권력이 어떻게 국가를 개인의 이익과 목적을 위해 사용해 왔었는가를.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국민들이 얼마나 고통받고 피해받아왔는가 하는 것 역시. 우리사회에서도 불과 얼마전까지의 일이었었다. 권력이 무고한 개인을 임의로 잡아들여 고문하고 재산을 빼앗는 경우가 한둘이 아니었다. 아무 죄도 없는데 잡아다가 고문으로 죄를 만들고 개인을 처벌하고 그 가족마저 사회의 주변으로 내몰았었다. 정당한 자신의 사유재산과, 인간으로서 자신의 존엄과 권리마저 권력에 의해 임의로 짓밟히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래서 대학생들이 들고 일어났던 것이었다. 수많은 재야인사들이 목숨걸고 독재와 싸워 민주주의를 쟁취했던 것이었다. 더이상 국가가 몇몇 권력자의 소유로 있어서는 안된다. 아니 권력 자체가 몇몇 개인의 사유물이 되어서는 안된다. 공의와 공론에 의해 사회적 합의에 의해 엄격한 규범과 제도와 절차에 따라서만 권력은 존재하고 집행될 수 있어야 한다. 국가란 국가를 이루는 모두의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원래 박근혜가 집권하는 과정이 그랬었다. 박근혜에게 대통령은 아버지를 잇는 자신의 가업이었었다. 그 지지자들에게도 박근혜는 자신들에게 군주였던 대통령의 딸이자 상속인일 뿐이었다. 오죽하면 박근혜를 비판하는 이들마저 상당수 한 번은 대통령이 되어야 했을 것이라 인정하고 있었다. 그만큼 대통령을 군주로 여기고 국가를 대통령의 사유물로 여기는 전근대적인 사고를 가진 국민이 아직 우리 사회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대통령의 딸이니까 대통령이 된다. 대통령의 자식이니 대통령 자리를 물려받는다. 그런데 국가의 권력이나 재정은 여전히 공적인 대상으로 여기며 남겨둘 수 있을까? 국가는 곧 나의 것이고, 권력도 또한 나의 것이고, 재정도 또한 나의 재산이다. 국가의 안보 또한 나의 일이다. 얼핏 들으면 대단한 책임감으로도 들릴 수 있을 테지만 결국 그를 통해 보여준 것은 국가의 안보를 책임지는 국정원의 예산을 개인의 비자금으로 빼돌리는 것이었다.


하긴 이명박이라고 다를까? 국가는 기업이 아니다. 몇몇 대주주의 사유물인 사기업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기업경영을 잘했으니까 나라경영도 잘할 것이다. 딱 기업경영하듯 나라도 경영했다. 사기업에서는 기업을 소유한 사주의 의지가 절대적이다. 사주로부터 위임받은 경영자가 나가라 하면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사주의 이해와 목적에 맞게 기업은 구성되고, 그 아래서 철저히 모든 구조와 구성원들은 그 이해와 목적을 위해 봉사하는 단위로써 존재하게 된다. 그렇게 국가도 기업처럼 만들었다. 자기 사람을 심고, 자기 이익과 목적에 맞게 바꾸고 운영하고. 누가 그렇게 만들었을까? 이명박과 박근혜를 지지해서 대통령으로 만들고서도 아무 책임의식도 느끼지 못하는 자칭 시민들에게 환멸만을 느낄 뿐.


이제라도 깨달았으면 다행일까? 그나마 문재인은 대통령으로서 국가와 개인을 엄격히 구분하는 행보를 보임으로써 국민들에게 깨달음을 주려는 모양이다. 국가권력은 이렇게 쓰는 것이다. 국가권력이란 이렇게 존재하는 것이다. 국가는 어느 개인의 사유물이 될 수도 없고, 권력이 어느 개인의 소유가 되어서도 안된다. 보수며 진보언론들이 문재인을 끌어내리지 못해 안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노무현 때도 진보언론이 노무현에 반감을 가진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국가도 권력도 사유물이 아니니 정작 같은 편이라 여겼던 진보언론들에게도 따로 나누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보수정권에서 보수언론들은 그들에 협력한 대가로 많은 것을 받고 있었다. 차라리 보수정권의 이명박이 진보언론을 더 많이 챙겨주었다. 이명박이 사정거리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은연중 정부의 적폐청산에 대해 제동을 걸려는 듯한 기사와 사설을 흘리고 있는 이유였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들에게도 뭔가 몫을 챙겨달라.


최근 국정원 특수활동비 상납과 관련한 뉴스를 보고 있으면 참담함을 넘어 아예 허탈함까지 느끼게 된다. 87년 6월 흘렸던 그 뜨거운 피가 이런 역사의 퇴행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김영삼과 김대중, 노무현, 그나마 아주 높게 쳐서 노태우 시절부터 이어져 온 역사의 발전이 국민의 선택에 의해 이런 어이없는 결과로 이어지고 말았다. 누구의 책임인가? 세상에 미친 놈도 개새끼도 쌍놈도 너무 많다. 모두가 대통령이 되지는 못한다. 역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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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뭐가 문제인 것일까?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기에 홍종학 전의원에게 장관이 될 자격이 없다 야당이며 언론들까지 한 목소리로 떠들어대는 것일까? 그리 큰 이슈는 아니라 여기고 그저 지켜보고만 있었더니만 아직까지도 여기저기서 시끌럽다. 그러니까 뭐가 문제라는 것인가?


첫째 법적인 문제야 비판하는 야당이나 언론 모두 감히 언급조차 않는 부분일 것이다. 어찌되었거나 국가가 정한 법의 테두리 안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현행법상 저촉되거나 위배되는 것 하나 없이 그러나 최대한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적용해서 증여받고 세금을 내고 있었다. 한 마디로 최소한 딸이 건물의 지분을 상속받고 증여세를 내는 과정에서 중대한 법적 문제는 없다 보아도 좋다.


그러면 둘째 도덕적인 문제가 있는가? 예전 강호동 때도 그랬지만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다. 납세의 의무가 반드시 정부가 부과한대로 세금을 최대한 내야 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시민으로서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일정한 세금을 내는 것이야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당연히 지켜야 하는 약속일 것이다. 공공의 부조와 같은 것이다.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도록 모두가 조금씩 자기가 가진 것을 공동체에 내놓는다. 하지만 정작 그렇게 공동체가 걷어가는 세금의 목적이나 액수 자체는 소수의 권력자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과연 대한민국 국민 가운데, 혹은 지자체의 주민 가운데 예산심의나 집행, 세금의 신설이나 세율의 조정 등에 직접 관여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아무리 시민 자신이 뽑은 대표들에 의해 결정된 내용이라 할지라도 그런 세부적인 내용에 대해서까지 시민들이 모두 동의한 것은 아닐 터다. 그러면 부당하다 생각되는 세금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아예 불복종하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시민불복종이다. 당당히 시민의 권리로써 납세를 거부하고 대신 공동체가 정한 규범대로 그에 따른 책임을 진다. 탈세와 다른 점일라면 굳이 자신의 납세거부를 감추거나 속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일 게다. 그런 목적의, 그만한 액수의 세금을 내야한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 반대하는 것이지 납세의 의무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 사실을 주체로써 명확히 하고 기꺼이 법적인 처벌을 받음으로써 공동체의 규범을 따른다. 물론 현실에 이렇게까지 나서는 살람은 거의 드물다.


그래서 대부분 시민들은 두 번 째 방법을 쓰게 된다. 법이 강제하는 세금 안에서 가능한 최대한 자신이 납부해야 하는 세금의 액수를 줄이는 것이다. 일종의 저항권이다. 국가는 일방적으로 시민들에게 세금을 매기고 걷지만 그에 대한 저항으로써 국가가 정한 법과 제도 안에서 최대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 그것을 또한 국가는 보장해준다. 이른바 최소한의 법칙이다. 당장 국가권력이 개인의 삶에 관여하고 권리를 침해하려 할 때 그것은 필요한 최소한으로만 이루어져야 한다. 개인에게 지워지는 의무 역시 따라서 개인이 지불할 수 있는 최소한이어야 한다. 그래서 절세라 말하는 것이다. 탈세와 절세가 다른 점은 그것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에 있다. 납세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면서도, 정부의 명령에 성실하게 복종하면서도, 그러나 법이 허락한 최대한의 자신의 이익과 권리를 지킨다. 그런 긴장관계가 민주주의 사회를 더 성숙하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법적으로도 문제가 없을 뿐더러 민주국가의 시민으로써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권리이고 의무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뭐가 또 문제가 되는 것일까?


그리고 또 하나 홍종학 전의원이 국회의원 시절 주장했던 것이나 발의에 참여한 법안 등과 비교해서 일관성이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위에 언급한 연장에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100명 가운데 10명에게만 빵을 주었다. 그런데 빵을 받은 10명 가운데 몇 사람이 일부만 빵을 먹는 것이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면 과연 그 소수의 불공평하다 여기는 사람들은 먼저 자기에게 주어진 빵부터 반납하고 불공평하다는 주장을 해야만 하는 것일까? 빵을 일부만 먹는 것이 불공평한 이유는 그것이 좋기 때문이다.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것이 좋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좋은 것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여기에서 더 많은 사람이란 자신을 포함하는 것이다. 내가 그만큼 누리는 것이 있기에, 그리고 그런 것들이 얼마나 좋은가를 알고 있기에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도록 주장한다. 아예 그것마저 포기하고 빵을 받지 못한 사람들의 편에 설 수 있다면 그보다 훌륭할 수 없지만 인간으로서 그렇지 못한 것을 탓하고 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차피 빵을 더 잘게 쪼개서 더 많은 사람에게 나눈다면 자연스럽게 자신이 받게 될 몫도 그에 비례해서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남는 것이 이른바 말하는 국민정서법이라는 것인데, 문제는 그것을 말하고 있는 주체가 정치인이고 언론인들이라는 것이다. 리더란 다른 사람보다 반 걸음 앞서 걸어가는 사람들이다. 다수의 사람들이 유혹에 흔들리고 고난에 좌절할 때 그들을 북돋고 일깨워 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하는 사람들이다. 특히 언론은 혹시라도 사회가 잘못된 길로 가지 않을까 감시하는 자기 안의 눈이며 거울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국민들이 그렇게 감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이 과연 옳은가? 그것이 과연 바른 것인가? 가치판단없이 국민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므로 그렇다 옮겨쓰는 수준이라면 - 하기는 정치권에서 아무리 막말에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지껄여도 전혀 아무런 판단도 평가도 없이 옮겨쓰는 것을 언론인의 직무라 여기는 이들이 어쩌면 더 많은 것이다. 자칭진보언론이 그래서 자신들의 이념이나 지향에 반하는 보수정치인들의 주장조차 아무런 비판없이 옮겨쓰고 마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그래서 국민이 감정적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해서 잘못된 것인가?


사유재산을 인정한다면 개인의 재산을 원하는 사람에게 상속하거나 증여하는 것 또한 권리로써 인정해야 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 공동체가 정한 일정한 책임과 의무만을 다하면 되는 것이다. 홍종학 전의원이 국회의원 시절 발의에 참여했던 법안들도 그런 취지였었다. 사유재산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상속과 증여라는 현실 자체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 과정에서 적법하게 적절한 세금을 낼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바로 다듬는다. 결국 이번 이슈가 크게 불거진 이유도 안철수나 유승민등과는 달리 최대한 절세하되 정해진 세금을 충실히 납부하려 했던 노력 때문이었다. 맹목적 복종이 아니다. 자신의 몫을, 시민으로서 자신의 이익과 권리를 최대한 지키면서 국가가 요구한 납세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한다. 그래서 도대체 무엇이 그리 문제라는 것일까?


정치인들이 그러는 것이야 당장 자기들 밥그릇 걸린 일이니 그럴 수 있다 하겠다. 그래서 더 언론이 문제라는 것이다. 언론이 정치를 하려 한다. 아니면 언론으로서의 사명과 책임을 저버리려 한다. 대한민국에서 기자란 기레기를 가리킨 지 오래 되었다. 논란이 될 일이 아니다.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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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은 친구보다 더 가까이 두라. 권력자의 그릇은 자신을 적대하는 경쟁자들을 어떻게 대하는가 하는 것으로 간단히 계량된다. 역사상 위대한 군주들은 자신을 비판하거나 적대하는 상대마저도 끌어안고 자신을 경계하는 거울로 삼았었다. 저들의 존재가 있기에 자신은 항상 긴장하며 조심할 수밖에 없다. 항상 자신을 노리고 감시하는 존재들이 있기에 감히 함불로 나태와 오만이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무엇보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저들이야 말로 자신과 동등한 정치의 한 주체들이라는 것이다. 똑같이 유권자를 대상으로 그들의 지지를 받으며 그 의지를 대신하는 존재들인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정치인의 뒤에는 그들을 지지하는 유권자가 있다. 그 유권자들 또한 정치인으로써 자신이 섬기며 책임져야 하는 국민일 터였다. 단지 다른 주장 다른 요구가 복잡하고 거대한 만큼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 가운데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단순히 국회의원의 신분이고 거대야당에 소속되어 있기에 예우하고 존중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을 지금의 자리에 있게 만든 유권자들의 의지를 예우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자신을 반대하더라도 그들 또한 대한민국 국민이마 존중받아야 할 정치의 주체며 주인들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있기는 하지만 어쩌면 민주주의 국가에서 너무 당연한 것이었다. 그동안 자격도 안되는 대통령들 때문에 낯설게 느껴지는 것일 뿐 그렇게 하는 것이 대통령으로서 너무나 당연한 행동인 것이다. 아무리 모순되고 사리에 맞지 않는 주장이라 할지라도 그런 주장을 하는 이들 또한 자신과 동등한 정치의 주체이며 민의의 대변자들이다. 그마저 용납하지 못할 정도라면 대통령같은 건 되지 말아야 한다. 정치같은 건 해서는 안된다. 이념이 다르고 가치가 다르고 정책이 달라도 그럼에도 같은 자리에서 대등하게 서로를 존중하며 논의할 수 있을 때 민주주의에서 정치는 이루어진다. 


나조차 그만큼 낯설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언제였을까? 도대체 언제쯤 이런 모습이 국회에서 보이고 있었을까? 다만 이번에도 일방이었다. 야당 국회의원들은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는데 대통령만 야당 정치인들을 인정하고 있었다. 자신을 부정하는 야당정치인들을 존중하며 예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이마저도 민주주의 국가의 대통령으로써 기꺼이 받아들이려 한다. 신기하다. 참 많이 돌아온 모양이다. 세상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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