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나 자신이 원래 자유주의자라서인지는 몰라도 기업의 법인세를 무작정 올리려는 것에 대한 반감이 조금은 있다. 경기도 어려운데 사정도 그리 좋지 못한 기업으로부터 법인세 얼마 더 걷어서 뭘 어쩌려는 것일까? 그것으로 충분한 것일까?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 대한민국 시장을 과점하며 막대한 이익을 독점하고 있는 대기업에 대해 어느 정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취지에는 동의한다. 경제적인 이익에 대한 책임은 경제적인 것이 좋다. 그러면 어떻게 이 두가지를 조화할까?


오늘 '썰전'을 보면서 아이디어를 구체화했다. 미국에서는 반독점법이라는 아주 강력한 법이 존재한다. 일정이상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가질 때 기업의 분할까지도 명령할 수 있는 우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법이다. 이 법으로 인해 독점적 지위에 있는 대기업들은 일정이상 시장을 독점하지 않기 위해서 경쟁자들을 배려해야 한다. 새로운 경쟁자의 출현을 오히려 반기며 기술적으로 지원하는 경우도 있다. 


역시 반독점법은 나와는 맞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디어는 빌려 올 수 있다. 세수부족을 해결하기 위해서도 증세는 필요하다. 한국경제에서 지배적 위치에 있는 대기업에 대해 책임을 물려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기업활동 전반을 위축시키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아마 대충 여기까지 오면 눈치챘을 것이다. 법인세와 반독점법을 조합하는 것이다.


시장에서 일정규모 이상의 단일기업이 45% 이상, 복수기업이 70%이상 독점적 지위에 있을 때 추가시장점유율에 따라 차등적으로 차라리 시장을 포기하느 것이 나을 정도로 법인세를 인상해서 적요하는 것이다. 신규시장참여자, 혹은 일정규모 이하인 사업자에 대한 기술의 공개도 최소한으로 강제한다. 더 많은 시장참여자가 나와서 제대로 경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대기업의 과점구조를 뺄 수 있도록.


물론 이상론이다. 현실이 그렇게 산수처럼 딱딱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나도 안다. 하지만 고려해 볼 만 할 것이다. 무작정 법인세를 올리는 것이 아니라 몇몇 대기업에 의한 독점구조를 개선하는 수단으로 사용한다. 경쟁하는 기업이 많아지면 그것만으로도 시장에는 활력이 돈다. 시장의 활력은 돈이다.


몇몇 대기업의 담합만으로도 시장의 질서가 무너진다. 공정한 경쟁 없이 시장은 결코 선의로 유지될 수 없다. 새로운 경쟁자가 끊임없이 시장에서 기득권에 도전해야만 한다. 경제가 강해지는 비결이기도 하다. 고려해 볼 만하다. 망상이다.

유시민도 '썰전'에 나와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평소 생각도 같고 추구하는 것도 같아서 넌즈시 영입을 제안하면 대부분 난색을 표하더라. 그리고는 얼마 지나니 2번당에 가 있더라. 사람들이 소수정당에서 정치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게 3당의 가장 큰 어려움이다.


총선이 끝나고 나서도 정치부 기자 가운데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안철수의 권력의지나 역량은 이제 입증되었다. 그런데 그 주위가 문제다. 결국 1번당도 2번당도 아닌 사람들이 모야 3번당을 만든 것이다. 1번당에서도 2번당에서도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이 안철수에게 매달려 3번당을 만들게 된 것이다. 엄밀히 3당체제라 말하기 어려운 이유다. 독자적인 노선의 3번당이 아닌 이도저도 아닌 나머지의 3번당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문제다. 안철수는 몰라도 안철수를 둘러싼 사람들이 너무 문제다.


정치란 결국 욕망의 관리와 통제다. 인간은 누구나 욕망한다. 그래서 때로 실수도 저지르고 잘못도 저지른다. 그것을 사전에 제지하고 사후에 제제한다. 그러면서도 사람을 놓아보내지 않는 포용과 유연성이 필요하다. 잘못을 저질렀다고 매양 벌만 주려 한다면 결국 아무도 남아있지 않게 된다. 리더란 때로 주위를 대신해서 흙탕물도 묻히고 똥물에도 발을 담그고 해야 하는 것이다. 리더를 믿고 기댈 수 있어야 집단은 유지된다.


안철수에게 주어진 시련이다. 사실 새정치민주연합 시절 안철수가 했던 제안들은 너무 지나친 것들이 많았다. 대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 당을 이끄는 리더의 입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도전자였고 비판자였다. 비평가였고 평론가였다. 수십수백의 정치인들이 하나의 당 이름 아래 공존하는데 아무 문제도 없을 수 없다.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어떻게 이 문제들을 수습할 것인가. 정치적으로 성장해 있을 것인가.


예상한 바다. 그나마 1번당이나 2번당은 어느 정도 체계가 잡혀 있다. 무언가 마음대로 저질러 보려 해도 그것을 막아서는 장치가 충분치는 않더라도 갖춰져 있다. 상호견제와 감시도 가능하다. 작년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여러 문제들이 불거져나온 것도 계파갈등에서 비롯된 것이다. 경쟁계파에 꼬투리잡힐 일은 크게 벌리지 않는 최소한의 상식을 갖추고 있다. 안철수의 사당이다. 안철수와 친소관계로 당이 꾸려져 있다. 허술한 체계 역시 쉽게 유혹에 빠지도록 만든다. 단, 이것이 단지 개인의 일탈에 지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에서.


괜히 거대양당이 아닌 것이다. 수많은 3당이 있었지만 하나같이 실패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의당보다 더 왼쪽에 있는 인사들마저 결국 양당을 선택해야 했다. 현실을 본다. 안철수 개인이 어찌할 수 있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결론일 뿐이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사실 일방적으로 더민주에게 불리한 싸움이었다. 원구성 협상에 처음부터 적극적이었던 것은 더민주 뿐이었다. 나머지 두 당은 되도 좋고 안되면 더 좋았다. 아예 대놓고 국회와 대립각을 세우던 청와대나 정치냉소주의에 힘입어 제 3당의 위치에까지 오른 국민의당의 입장에서는 차라리 원구성이 안되고 계속해서 싸우는 모습만 보인다면 더 이득일 터였다. 보라. 국회가 일은 하지 않고 허구헌날 싸움질만 하고 있다.


안철수가 세비반납이라는 속이 뻔히 들여다 보니는 퍼포먼스로 대중에 어필한 것도 그런 맥락이었다. 우리는 일하는 국회를 지향한다. 어서 하루라도 빨리 원구성을 끝내고 일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데 정작 더민주와 새누리당이 서로 힘겨루기를 하느라 원구성 협상이 자꾸만 늦어지고 있다. 그러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돌아갈까. 그리고 그로부터 이익을 보는 것은 또한 누구일까.


산업통상자원위원회면 알짜 중의 알짜다. 원래 국민의당이 원하던 것이기도 했다. 여기에 교문위 역시 안철수가 직접 지명하여 요구한 것이기도 했다. 새누리당은 법사위, 운영위, 개획재정위, 정무위 등을 모두 가져갔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가며 국회의장을 지켜야 했는가 싶을 정도로 더민주가 크게 손해본 협상이다. 어쩔 수 없다. 이렇게라도 크게 양보하지 않았다면 원구성협상은 길어졌을 테고 그 책임은 모두 더민주에게로 돌아갔을 테니까. 새누리당의 뒤에는 청와대가 있고, 국민의당은 어차피 정치를 냉소하고 혐오하는 이들의 정서에 기댄다. 국회가 욕먹으면 오히려 이들은 이득을 본다. 더 열심히해서 욕먹는 경우란 원래 어디에나 있다.


그만큼 더민주의 정권교체에 대한 의지가 어느때보다 강하다 유추해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예전이라면 국회의원 개인이나 계파의 이해 때문이라도 어느 위원회를 가지는가가 더 중요했을 수 있다. 어떤 위원회를 가져와야 어떻게 계파들끼리 나눠서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가. 하지만 이제는 차라리 국회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국민의 지지를 놓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엿보인다. 국회를 내주고 정권을 가져오겠다.


하기는 가장 가능서이 높은 때이기도 하다. 반기문은 의외로 상당히 약체다. 그나마 다른 새누리당 대선주자들은 반기문만도 못하다. 안철수가 새누리당의 지지율을 잠식할 것이다. 안철수 혼자서는 절대 대선에서 승리하지 못한다. 지금의 추세만 이어간다면 다음 대선은 더민주의 것이다. 계산이 섰다. 어떻게 하면 대선에서 승리하고 자기도 그 위에 숟가락 하나 당당히 얹을 수 있을 것인가.


나쁜 게 아니다. 권력의지란 정치의 동력이다. 권력을 가지고자 하기에 사람은 정치라는 것을 하는 것이다. 국회의장을 가지는 대신 상임위를 양보하고, 상임위를 양보하는 대신 국회에 대한 국민의 비판과 냉소를 피한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 이번 총선의 결과를 바탕으로 대선까지 노리는 큰 노림수가 보인다. 이번 전당대회만 잘 치른다면. 그놈들을 믿을 수 없다. 그래도 저력이 있는 정당이니까. 기대가 크다. 가능성이 높다.

아마 더민주에서도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최소 두 자리는 넘을 것이다.


다른 사람은 안된다. 딱 한 사람만 이 바람을 만들고 스스로 탈 수 있다.


오로지 더민주여야 하고, 오로지 특정 후보여야만 한다. 딱 한 번만 쓸 수 있다.


다만 여기다 쓰면 천기누설이 되기 때문에.


아마 이 글 보는 사람 가운데도 어렴풋 짐작하는 사람 있지 않을까.


다음 대선에서 더민주의 승리를 점쳐보는 이유다.


그것만 가능하면. 재미있어질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실제 그런 회사가 있었다. 출근해서 업무를 시작하기까지 준비도 하고 회의도 하고 해야 하니 그 시간까지 감안해서 더 일찍 출귾해야 한다. 그래서 실제 출근시간은 공식적인 업무시간보다 1시간이 더 이르다던가? 이게 왜 문제인지 이해 못한다면 할 수 없다.


국회의원으로서 일을 시작하려면 먼저 준비를 해야 한다. 원구성 역시 그 하나다. 어느 당이 어떤 상임위를 맡고, 또 상임위는 어떤 의원들로 구성하고. 일단 그것부터 끝내야 일을 시작할 것 아닌가. 그렇다고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협의과정은 길어질 수밖에 없다. 서로 원하는 것이 다른 만큼 타협과 양보를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그것은 국회의원의 업무와 무관한가.


누가 CEO 아니랄까봐. 참고로 저 위에 말한 회사 역시 IT쪽이다. 빌어먹을 열정페이는 뭣나게 챙겨 강요한다. 공정성장론에 노동자의 권리는 없다. 있어도 거짓이다. 업무를 위한 준비과정은 인정하지 않는다. 그를 위한 노력과 비용 역시 인정하지 않는다. 일단 일을 시작해야 일을 하는 것이다. 


보면 볼수록 어이가 없다. 한 편으로 당연하기도 하다. 이렇게 써놔도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사람이 한국사회에서는 다수다. 오히려 당사자인 노동자들이 반성한다. 내가 일을 못해서 회사가 이익을 내지 못했다. 그러면 경영자 하면 된다. 웃긴다.

끝내 통합행동이 더민주 전준위 당직을 모두 독점하는 모양이다. 전당대회 열라고 전준위 맡겼더니 감투놀이에 정신이 없다. 바로 김부겸이 속한 통합행동이다. 불과 얼마전에도 그들은 모임을 가지며 서로의 돈독한 관계를 과시한 바 있다.


인터뷰에서 친노의 배타성을 지적한다. 독선적이고 독점적인 행태를 비판한다. 그러나 정작 당직을 독점하며 배타성을 보이는 것은 비노인 통합행동이다. 그런데도 그같은 행태에는 아무런 비판 없이 실체도 없는 친노만을 비판한다. 선의를 믿었다. 진심을 믿었다. 지역주의 깨보겠다고 안될 것을 알면서도 몇 번이나 도전했던 그 진정성을 믿었었다. 하지만 고작 그런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바로 그런 것이 계파정치다. 시비의 판단을 계파에 맡긴다. 멀고 가까운 것에 맡기고, 이익이 되는 것에 맡긴다. 원래 통합행동 자체를 신뢰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더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 고작 그런 인간이었다니. 계파의 이익을 위해 당을 팔고 정의를 판다. 원칙을 판다.


그래봐야 전당대회까지다. 전당대회 끝나면 새로운 지도부가 당을 이끈다. 감시한다. 더 이상 뻘 짓을 못하도록. 정말 정신없는 인간들이다. 당보다는 항상 자신과 계파의 이익이다. 국민의당이 정말 다행스럽다. 최악은 그래도 이제는 보지 않아도 된다.

확실히 알겠다. 안철수와 국민의당의 노동관을. 경제문제는 어쩌면 안철수 자신의 말처럼 상당히 진보적인 스탠스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아직 구체적으로 무언가 나온 것이 없으니 판단할만한 근거는 전혀 없다. 다만 한 가지 노동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철저히 보수적이다.


정말 오랜만에 듣는다. 무노동무임금.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말라. 당연하다. 일도 하지 않으면서 돈받을 생각부터 한다면 그것은 도둑놈이다. 아니면 사기꾼이거나. 단, 전제가 붙는다. 이미 고용된 상태에서도 단지 일을 해야지만 돈을 받을 수 있는가.


이것은 노동과 고용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기도 하다. 노동과 노동자는 별개인가. 노동은 노동자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가. 사용자는 단지 노동자가 소유한 노동력을 필요한 만큼 구매하여 사용하는 것에 불과하다. 사용자는 단지 노동력을 소유한 노동자와 계약을 맺고 필요한 만큼 이용하는 것 뿐이다. 그로므로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것은 단지 자신이 노동자로부터 구매하여 사용한 노동력의 양에 대한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자가 사용자로부터 받는 임금은 노동력을 소유한 자신에게 지불해야 하는 대가다. 고용된 상태에서 노동력의 소유권이 누구에게 귀속되는가의 문제로도 이어진다. 노동자의 파업권을 인정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논란도 여기서부터 비롯된다. 여전히 노동력은 노동자에게 배타적으로 소유되어 있다.


일한 만큼만 대가를 지불한다. 일하는 동안만 의미가 있다. 일을 통해 생산한 결과를 통해서만 가치를 인정받는다. 그 이외의 시간들은 부정된다. 그 이외의 가치들은 부정된다. 일하지 않는 동안에도 노동자는 살아있고,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했어도 필요한 비용들은 발생한다. 하지만 그런 모든 것은 사용자와 전혀 상관없는 노동자 자신의 문제다. 사용자는 오로지 자신이 사용한 노동력에 대해서만 대가를 지불한다.


얼핏 너무 당연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당연히 임금이란 자신이 일한 대가를 받는 것이다. 자신이 일한 만큼을 계량하여 비례하여 받는 것이 지극히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다. 그런데 정작 그렇게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과정을 통해 내려진 결론이 자신의 생존마저 위협할 정도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렇게 결정된 임금수준이 다음 임금을 받기까지 최소한의 생활조차 영위하기 힘든 수준이다. 당장 내일부터 끼니를 걸러야 한다. 추운 겨울인데 난방도 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노동자가 소유한 노동력은 이전과 같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다시 처음의 쟁점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과연 노동자와 노동력을 완전히 분리하는 것이 가능한가. 노동자와 별개로 노동력에 대해서만 대가를 지불한다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원구성이야 어찌되었든 이미 임기가 시작된 순간 그들은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으로서 자격을 갖추고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하다못해 4년의 임기 동안 아무것도 않고 집안에 누워만 있어도 그마저 국회의원이라는 이름 아래 이루어지게 된다. 그렇게 유권자들에게 인식된다. 개인이 아니다. 사인이 아니다. 그래서 공인이다. 숨쉬고 밥먹는 것조차 공적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어디를 가고,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하는, 모든 행동들이 크든 작든 국회의원이라는 신분으로 인해 주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에 대한 대가다. 그만한 자격을 갖추었다 여겼기에 국민은 그들을 선택했고 따라서 그에 대한 비용을 지불해야만 한다. 그 대가를 어떻게 사용할지는 각자가 알아서 할 일이다.


원구성을 못했으니까. 국회가 시작되지 않았으니까. 그러므로 아무일도 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진정 아무일도 하지 않았는가. 아무일도 않고 있는가. 하다못해 지역구관리라도 하고 있다. 다음 선거를 위해 당내 정치에도 한 발 담그고 있다. 그마저도 국회의원으로서 회의장에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다면 아주 의미가 없지는 않다. 그 한 표에 의해 법 하나가 가결되고 부결되기도 한다. 아무리 일 못하는 국회의원이라도 한 표는 한 표다. 자신을 찍어준 지역구 주민들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는 것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이다. 더 열심히 일하는 국회의원들은 회기와 회기의 사이 더 열심히 자신의 전문분야와 관심분야에 대해 공부하고 준비한다. 최근 국민의당이 공부모임을 갖는다며 호들갑떠는 모습이 때로 우습게 여겨지는 이유다. 굳이 당이 전면에 나서서 행사처럼 보여주는 것이 아닌 일상을 통해 이루어저야 하는 모습이었다. 그동안 얼마나 공부들을 안했으면.


공적인 업무만이 업무가 아니다. 여기적기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한다. 사람도 만나야 한다. 비공식적으로라도 필요하면 찾아가야 하고 친분이 없어도 만나야 한다. 가족을 부양하고 있다면 그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 친인과 지인 등 인간관계 역시 소홀할 수 없다. 개인의 감정을 공적의 영역으로 끌고 오지만 않으면 된다. 공사의 구분만 확실히 할 수 있으면 상관없다. 그마저도 공인으로서 보다 주어진 책임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비용이라고 할 수 있다. 가정이나 인간관계가 원망하지 못해서 생기는 손실도 결국 사회가 져야 한다. 무엇보다 건강을 책임져야 한다. 몸의 건강은 물론 마음의 건강까지 철저히 관리해야만 한다. 아무리 일을 열심히 잘해도 중간에 쓰러지면 아무것도 아니다. 지지자가 바라는 정치가 있을 텐데 중간에 쓰러지면서 결국 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들을 배신하는 것이 된다. 다음 선거에서도 출마해서 당선될 수 있어야 한다. 더이상 국회의원이 아니게 되면 국회의원으로서 해야 할 일도 못하게 된다. 일을 하라고 뽑아준 국회의원이다. 그 모든 것이 비용이다. 세금으로 지급하는 것이다. 허투루 쓰는 것이 아니다.


결국 다시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게 된다. 국회의원 역시 노동자다. 그렇게 간주해야 한다. 국민에 의해 고용된 선출직 노동자다. 국민에 고용되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중요한 일들을 수행해야 한다. 그렇다면 국회의원에게 지불되는 세비는 국회의원이 하는 일들에 대한 것인가. 그 일들을 해야 하는  국회의원 자신에 대한 것인가. 일하지 않는 국회의원은 필요없다 말하기 전에 먼저 국민 자신이 일 잘 할 것 같은 국회의원을 뽑으면 되는 것이다. 만일 잘못뽑았다면 다음에 제대로 잘 뽑아서 시키면 되는 것이다. 아무것도 않고 놀며 낭비하는 비용조차 잘못된 선택에 대해 국민이 치러야 할 대가다. 국회의원이라고 국민에 대한 일방적인 책임만을 가지지는 않는다. 국민 역시 유권자로서 엄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국회의원도 공짜는 아니다. 이미 국회의원이 되었고 세비를 지급하기로 한 이상 그것은 약속이며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다. 누구도 포기를 강제해서는 안된다.


열정페이다. 공짜로 일하라. 포기하며 일하라. 하다못해 하는 일이 거의 없는 수습기간에도 임금은 지급한다. 처음 입사해서 오히려 일을 배우는 동안에도 돈을 받으며 일을 배운다. 고용에 대한 당연한 책임이다. 국민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국가라고 예외가 되어서는 안된다. 하물며 정당이다. 고용주가 아니다. 그냥 국회의원으로서 특정한 정당에 소속되어 있는 것 뿐이다. 노동자들도 같은 직종에서 다른 노동자보다 형편없이 적은 임금만을 받으면 비난을 받는다. 남을 생각지 않는다. 쟁점으로 삼는다. 더 큰 것을 노기는 사기이거나, 아니면 자각조차 없는 무지이거나. 어느쪽이든 최악이다.


그러고보면 정치혐오라는 것도 비슷한 맥락을 가진다. 자신이 뽑았다. 최소한 그런 사람이 국회의원으로 뽑히는 것을 보기만 하고 있었다. 유권자의 책임은 없다. 국회의원의 의무만 있다. 객관화한다. 대상화한다. 국회의원 역시 결국 자신과 전혀 다르지 않은 시민의 일원임을 잊는다. 특별한 사람들만이 하는 것이 정치다. 그런 특별한 사람들을 기대한다. 항상 반복이다. 이번 대선에서는 다시 반기문이 그 대상이 되려는 모양이다.


아무튼 전혀 상관없는 것 같으면서 전체를 꿰어 보면 구체적인 윤곽이 나온다. 일을 해야만 국회의원인가. 국회의원이기 때문에 일을 해야 하는가. 비슷하지만 다르다.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 하지만 먹지 않으면 죽는다. 일단 고용한 이상 먹이는 것은 사용자의 책임이다.


국회의원이 참 하찮다. 일한 만큼 돈을 받는다. 일을 하지 않았으면 세비도 받아가지 못한다. 국회가 열려야 일을 하는 것이다. 원구성이 끝나야 비로소 일을 하고 세비를 받아갈 수 있다. 하물며 노동자들은. 무노동무임금이 원칙이다. 재미있다.  

사실 이것은 기자 역시 마찬가지다. 항상 보는 얼굴이다 보니 익숙하고 친숙하다. 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다 보니 어느새 자신이 역시 그들과 같은 부류라 생각한다. 더구나 좋은 기사 써달라 친절한 웃음까지 지어보이면 이제는 자기가 저들의 위에 있는 것 같다. 자칫 기자들이 유명인들의 위에서 그들을 굽어보는 기사를 쓰게 되는 이유다. 하물며 연예부기자는 자기가 쓴 기사로 연예인 하나쯤 얼마든지 죽일 수 있다.

늘 쓰는 글들이 그런 글들이다. 비평이란 대상을 객관화하는 것이다. 거리를 두는 건 좋은데 그 거리에 자꾸만 익숙해진다. 상대를 대상화할 수 있는 자신의 위치에 길들여지게 된다. 마치 자기가 하는 말들이 무슨 대단한 의미라도 있는 것처럼. 자기가 쓰는 글들이 무슨 대단한 가치라도 있는 것처럼. 더구나 누군가 주위에서 추켜주는 사람까지 있으면 거의 완벽하다. 아, 나도 겪어 본 일이라 안다. 그래봐야 고작 어디서 글이나 찌끄리는 수준이다.

타인은 객관화하는데 자신은 객관화하지 못한다. 어떤 사람도 자기 얼굴을 바로 보지는 못한다. 거울이 필요한데 어떤 거울로 비춰 볼 것인가는 오로지 자신의 선택이다. 그마저도 자신의 주관에 따른다. 자기에 도취된다. 정확히 자기에게 속고 만다. 자기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영영 받아들이지 못하고 망가지는 사람도 있다. 이를테면 모씨같은.

유력정치인을 훈계한다. 타인이기 때문이다. 전혀 상관없는 남이기 때문이다. 굳이 건드리기보다 그냥 내버려두는 쪽이 더 이익이기 때문이다. 건드려봐야 이익도 없고 괜한 논란만 일크일 수 있다. 똥은 더러워서 피하지만 먼지는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간다. 많은 자타칭 논객들이 빠지는 함정이다. 자기가 그렇게 대단한 줄 안다. 사실은 아무것도 아닌 주제이면서. 가끔은 안쓰럽다. 이름까지 알려져 있다. 재미있다.

여유가 있다면 그런 힘들고 위험한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거꾸로 말하면 여유가 없기에 그런 힘들고 위험한 일들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안철수 대푝가 특별히 나쁜 의도가 있어서 그런 트윗을 올린 것은 아닐 것이다. 선의를 인정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문제인 것이다.

어려서부터 한국사람들은 부모로부터 그렇게 듣고 배운다. 공부 열심히 하지 않으면 저렇게 된다. 부모말 잘 듣지 않으면 저런 삶을 살게 된다. 어째서 더 노력하지 않았는가. 학교다닐 때 더 성실하지 않았던 것인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할 당시 어떤 사람들로부터 직접 들은 말이다. 못살고 어렵고 열심히 살지 않았으면 당연히 그런 일들을 해야만 한다.

이를테명 징벌이다. 모두는 부자가 되어야 한다. 부자가 되어 잘 살려 노력해야지만 한다. 그것만이 삶의 목표고 의미다. 그런데 누군가 그것은 당위로부터 벗어나 있다. 잘살려 노력하지 않았거나 혹은 능력이 부족해 결국 좌절하고 말았다. 대가를 치러야 한다. 더 힘들고 더 어렵고 더 열악한 직업들은 그에 대한 징벌이다. 그러므로 모두는 더 잘살려 더 힘써 노력해야지만 한다.

무의식이다. 더 가난하고 여유가 없는 조건에서도 별다른 위험없이 아무런 어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보다 가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비로소 위험도 어려움도 없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때 유행어처럼 들렸던 말이다.

"여러분 부자 되세요!"

그러므로 부자가 되면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 부자가 될 수 있도록 해준다면 모든 문제는 아무렇지 않게 해결될 수 있다. 너무 당연해서 덧붙일 말이 없다. 만일 희생자가 부자였다면. 부자가 될 수 있다면.

안철수와 국민의당이 주장하는 공정성장론이 의도하는 바도 바로 그것이다. 모두에게 기회를 준다. 모두에게 창업하고 부자가 될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준다. 또한 이 사회에 필요한 정의이기도 하다. 다만 이 사회가 가진 상식에 부합하는 정의다.

굳이 말꼬리를 잡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선의만을 읽는다. 그리고 그 선의에 내포된 비극성을 읽는다.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다. 여유가 없으므로. 부자가 되지 못했으므로. 많이 배우지도 가지지도 못했기 때문에. 드라마 송곳에서 구고신은 그리 말했었다.

"우리가 벌받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니지 않은각."

정치권이 조용한 이유가 있다. 보다 이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와 닿아 있다. 지엽말단을 건드려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국민의 감정을 건드려야 한다. 겉만 건드리거나, 아니면 그 핵심을 건드려 국민과 싸우거나. 동정은 쉽다. 현실이 어렵다. 항상.

어떻게 해도 정동영을 결코 좋게 봐줄 수 없는 이유다. 물론 이전에도 그런 무리들은 있었다. 그저 금배지 하나에 목숨을 거는 부류들. 김대중이든 김영삼이든 바로 이들이 있었기에 어렵게 자금을 마련하고 힘들던 시절 야당을 이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도 그들은 주류가 아니었다.

탄핵역풍의 바람을 타고 총선에서의 승리가 확실시되자 이놈저놈 가리지 않고 자기 말 잘 들을 것 같은 인간들로만 국회를 채웠다. 당권도 공천권도 오로지 정동영에게 있었다. 그렇게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의 주류를 차지하게 된 것들이 바로 탄돌이들이다. 정체성도 당에 대한 헌신도 갖추지 못한 정치꾼들. 그들에게 의미있는 것은 오로지 국회의원 배지와 그것을 자신에게 달아줄 계파보스 뿐이었다.

지난 총선에서 바로 이들 비주류가 보인 행태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당을 우선해야 한다. 총선을 앞두고 어떻게 하면 당이 승리할 수 있을 지 그것만을 생각해야 한다. 그러라고 있는 비대위다. 그러라고 있는 선관위다. 그러라고 임명한 공관위다. 그러나 어떻던가. 그리고 그들이 그토록 비난하는 과거 친노들이 당권을 쥐고 보였던 행동들과도 비교해 보라.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당을 뛰쳐나가 당을 욕하고,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복당해서는 지분을 내놓으라 목소리를 높인다. 당에 얼마나 해가 되는가도 아랑곳없이 당장 자기 눈앞의 이익에만 정신이 없다.

작년 비주류가 그토록 문재인의 혁신안에 대해 한목소리로 반대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경쟁해서는 안된다. 공정하게 경쟁하도록 내버려둬서는 안된다. 다시 사무총장과 최고위원제를 되돌리려 한다. 적당히 나눠먹기 위해서라도 그에 걸맞는 자리가 필요하다. 최고위원이면 그럭저럭 체면치레는 된다. 사무총장이면 당권은 가지지 못해도 실무에 영향력은 행사할 수 있다. 그러고보면 사무총장 역시 문재인의 측근이 하려 하니 문제인 것이지 제도 자체를 반대했던 것이 아니었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 처음 그대로 나눠먹기 좋은 그대로.

과연 그런 모습을 국민이 어떻게 볼 것인가는 아랑곳없다. 지지자들이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도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국회의원 배지가 중요하지 국민의 여론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지자의 지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욕먹더라도 금배지 달고 한 자리 하면 다 상쇄된다.

문제는 그렇다면 나머지 더민주 국회의원들의 생각은 어떨까. 다시 친문재인 성향의 초선의원들은 거의 확실할 듯하다. 범친노로 분류되는 친문성향의 다른 계파 의원들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안심할 수 없다. 나눠먹기란 누구에게나 달콤한 유혹이다. 별다른 노력없이 과실을 얻을 수 있다. 

어쨌거나 지켜본다. 과연 더민주에게 수권능력이 있는지. 권력을 쟁취하고 유지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것인지. 시금석이다. 이마저도 지켜내지 못하면 평생야당이다. 아니 야당조차 하지 못한다. 국민의당이라는 경쟁자가 있다. 하기는 비주류의 입장에서야 자기들 동료가 있는 국민의당과 당장이라도 합당하면 그보다 좋을 수 없다. 더민주가 망해도 된다. 더민주가 어떻게되든 상관없다. 그런 놈들에게 중책을 맡긴다.

당을 바꾸는 것은 근본적으로 국민에 대한 눈치보기다. 국민에 대한 설득이다. 자기들에게 이만한 준비가 되어 있다. 이만큼 잘하려는 의지가 있다. 다시 원래대로 되돌리려 한다. 거꾸로 돌아가려 한다. 어이가 없다. 이놈들은 그래서 안된다.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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