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보면 그동안 민주당에서 지지자들의 바람과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인 대부분 정치인들은 언론과 상당한 친분을 과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언론이 좋아하고 보수정당과도 원만하다. 그런 걸 흔히 중도니 실용이니 하는 말로 포장하고 있었다. 한 마디로 대세를 쫓을 줄 안다. 언론을 거스르지 않고 보수정당과도 맞서지 않는다. 대신 언론의 우호적인 보도에 힘입어 지지자들의 반감과 달리 대중적인 인지도도 높고 여론도 좋아 무난하게 선수도 쌓아간다.

 

이를테면 최근 정치인들로는 21대에서도 당선된 박용진이나 낙선하고 아예 공천에서 탈락했지만 김해영과 금태섭이 그런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당 내부에서 민주당을 공격하면 언론이 대서특필하며 이미지까지 좋게 기사로 써준다. 민주당 내부에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 지도부, 심지어 지지자들까지 공격하면 언론에 의해 오히려 대중들에 좋은 이미지로 자신을 알릴 수 있다. 그러니까 더욱 언론에 잘 보이기 위해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안에서 공격하려 애쓰게 된다. 문제는 과거에는 그렇게 언론을 통해 이미지를 만든 무리들이 세력까지 만들어 민주당을 좌지우지하고 있었지만 안철수 덕분에 더이상 그러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아니 20대 이후, 더구나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윤석열이 총선을 반 년 이상 앞둔 상태에서 성급하게 칼을 겨누면서 무리하게 민주당의 총선패배에 모든 것을 걸게 되면서 언론 입장에서도 그럴만한 여유가 사라진 것이 큰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어떻게든 민주당이 총선에서 지도록 해야 했기에 민주당 내부의 우호적인 세력들을 봐줄만한 여유가 없어지고 만 것이다. 민주당이 적이다. 민주당 내부의 우호세력까지 모두가 이번 총선에서 폭망해야 할 적인 것이다. 덕분에 민주당에서 정작 언론에 빚을 지고 눈치를 봐야 할 사람이라고는 박용진을 포함한 아주 소수만 남고야 말았다. 특히 민주당 초선 대부분이 이번 총선에서 여론의 집중공격 대상이 되고 있었는데 이제와서 언론의 눈치를 봐야 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지금 민주당 내부에서 개혁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고 있는 주체들의 정체인 셈이다. 그동안 언론에 빚을 지며 언론을 바라보고 정치하던 무리들과 어차피 처음부터 언론과 적대하던 이들 사이의 충돌인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여론을 신경써야 한다. 여론은 언론이 만든다. 언론이 좋아하는 정책이 좋은 정책이다. 기자들과 원만하게 좋은 기사가 나오게끔 관리하는 것이야 말로 좋은 정치다. 언론은 처음부터 민주당의 적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적이었다. 그러니 언론과 상관없이 지지자와 국민만 믿고 과감하게 개혁을 밀어붙여야 한다. 그럼에도 그런 노선갈등이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것은 숫적으로나 명분으로나 이미 일방적인 상황이란 것이고, 그런데도 초선들이 직접 나서야 할 만큼 지지부진한 것은 그만큼 언론에 친화적일수록 선수가 높아서 쉽지 않은 상황이란 뜻일 것이다. 어찌되었거나 답답한 상황임에도 긍정할 수 있는 이유다. 더이상 민주당은 이전의 민주당과 같지 않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열린우리당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이 새정치민주연합 시절만 해도 언론이 크게 써준다고 당의 노선이나 정책에 대해 아무말이나 막 해대던 놈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방향성을 보이면 안에서부터 먼저 딴지를 걸고 나서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안철수는 민주당 지지자 입장에서 구세주 거의 다음 급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제 그런 놈들 목소리도 박용진 정도 말고 거의 들리지 않는다. 어차피 선거에서도 떨어진 김해영따위 뭐라 떠들어도 그런 놈 있었나 하고 말 정도다. 언론에 빚지지 않았다. 오히려 언론의 방해를 뚫고 당선되었다. 언론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게 될 이번 초선들은 그야말로 민주당의 미래인 것이다.

 

이 또한 모두 윤석열이 의도하지 않게 만든 큰 그림일 것이다. 윤석열이 몇 달 만 참았다가 총선 직전에 그 모든 것들을 터뜨렸으면 문재인 정부나 민주당이나 꽤나 상황이 어려워졌을 것이다. 민주당이 궁지에 몰리면 언론도 옥석구분을 통해 선별하여 내부에 협력자들을 남겨둘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이놈은 장차 우리들 편이 되어 줄 것 같고, 이놈은 편은 아니더라도 눈치는 볼 것 같고, 이놈은 대가 약해서 조금만 압박하면 쉽게 꺾이고 물러날 것 같고, 그런데 어쩐가? 아예 대놓고 민주당에 적대적인 모습을 보인 탓에 경선에조차 거의 관여하지 못하고 말았다. 언론이 그토록 하나가 되어 밀었던 금태섭의 경선탈락을 보라. 언론과 상관없이 지지자만 보며 정치할 수 있는 초선이 이제 다수가 되었다. 초선만 믿어도 민주당은 크게 어긋나지 않을 것이란 기대가 생기게 되었다.

 

아직 민주당 내부에 국회의원 그 자체가 목표인 의회귀족들이 적잖이 남아있음을 알고 있다. 국회의원 배지를 지키기 위해 개혁보다는 현상유지를, 지지자보다는 여론을 움직이는 힘을 가진 언론과 보수정당의 눈치를 더 보는 놈들이다. 다행히 이제는 소수이고, 대놓고 목소리조차 내지 못한다. 저 박용진조차 평소에는 그냥 쥐죽은 듯 있어야 한다. 과거와 비교하면 얼마나 크게 달라진 모습인가. 이런 민주당의 모습을 오래전부터 기대해 왔던 것인다.

 

이번에 당선된 초선들만이 아니다. 원외에서 대기중인 아깝게 낙선한 후보들 가운데도 상당수가 언론에 빚을 지지 않으며 오히려 극복의 대상으로 여기는 이들이란 것이다. 언론은 두려움의 대상도, 타협의 대상도 아닌, 오히려 극복과 개혁의 대상이다. 언론과 상관없이 자신들이 처음 정치를 하기로 마음먹은 결심을 일관되게 추구하려 한다. 좋은 조짐이다. 대한민국 정치의 미래가 바로 이들에게 달렸다. 오랜만에 기쁘다. 부디 이번주 큰 승리를 거두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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