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을 적 국민학교 졸업할 때까지 이사만 9번은 넘게 했었던 것 같다. 가장 오랜 기억은 2살 적 구로동 철로변이었는데, 이후로 도림동에서 대림동으로, 대림동 안에서도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국민학교 입할 할 때까지만 6번의 이사를 해야 했었다. 거의 1년에 한 번 꼴로 이사를 한 것이다. 그나마 국민학교 입학하고 나서는 전학 문제 때문에 이사 회수가 줄기는 했는데 그래도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4번은 집을 옮겨야 했을 것이다. 생각해 보니 진짜 이사 많이 다녔다.

 

그래도 나의 경우는 운이 좋았었다는 게 전학까지 가야 할 정도로 멀리 이사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사실 우리집처럼 가진 것 없이 겨우 하루 벌어 하루 사는 형편에서 사는 환경이 바뀐다는 건 그만큼 일을 구하는 것부터 많이 어려워지는 너무 큰 일인 것이다. 어차피 일이라는 게 주위와의 인적 네트워트를 통해 얻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그래서 이사를 가고 나서도 일을 얻기 위해서 일부러 멀리 떨어져 사는 옛이웃과 연락하며 지내는 경우도 적지 않았었다. 그래서 더 멀리 이사가지 못하고 늘 그 주변만 맴돌았던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월세나 혹은 전세 때문에 주기적으로 한 번 씩 이사를 다녀야 했던 것이 당시 집없는 대부분 사람들의 애닲은 처지이기는 했었다.

 

그래도 일단 임대계약을 맺으면 2년 동안은 계약이 유지되어야 한다. 임대계약과 관련한 별다른 의사표명이 없으면 암묵적인 갱신으로 간주하여 동일한 조건에서 계속 임대계약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이제 임대계약을 4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보호장치를 마련하고 있었다. 그 동안에는 전세나 월세를 일정 이상 올릴 수 없고 임차인이 직접 들어와 거주하는 등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임대인의 주거권은 보장되어야 한다. 어차피 원래 2년 계약이 지나면 얼마든지 전세든 월세든 자기 원하는대로 올려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얼마든지 계약종료를 이유로 내보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임대차보호법 개정안으로 인해 임대인이 더 곤란해졌다? 예전에는 굳이 집주인이 들어와 살겠다는 핑계조차 필요없이 바로 내보낼 수 있었고, 전세도 마음대로 올려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마치 이전에는 계약기간이 끝나고도 집주인과 합의 아래 굳이 이사가지 않고도 계속 살 수 있었던 것처럼 말하고들 있다. 임대차보호법의 보호기간이 4년으로 연장되기 전에는 임대료만 더 원하는대로 올려주면 얼마든지 원하는대로 계속 살던 곳에서 살 수 있었다. 그러니까 임차인이 올려달란다고 전세며 월세며 다 맞춰주며 계속 살 수 있었던 사람이 몇이나 된다는 것인가. 대개 이사가는 이유가 주변 집값 올랐다고 임차인이 전세며 월세며 임대료 올려달라 하면 그 돈 맞춰 줄 돈이 없어서 이사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란 것이다. 그러니까 최소 4년은 임대료 인상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하자. 그랬더니 임차인의 요구로 이사가야 하는 특수한 사례를 들어 부작용이라며 떠들어댄다. 이전까지는 그런 핑계도 소용 없었다니까. 2008년이었던가? 내가 굳이 이사를 해야 했던 이유 역시 집주인이 그냥 나가달라 하기에 2년 살고 나가야 했던 경우였었다. 그냥 집에 고양이 기르는 게 마음에 안 든다고 나가라 하는데 뭐 어쩌는가. 덕분에 출퇴근에 10분이나 더 걸리는 곳으로 옮겨가야 했었다.

 

원래 전세라는 제도가 상당히 불합리하고 비논리적인 제도란 것이다. 금리라도 높으면 전세금 받아 이자라도 받아먹는데, 제로금리의 시대에 전세금 2년 굴려서 얼마나 더 돈을 불릴 수 있겠는가. 그런데 2년 계약기간 지나면 그 돈 그대로 임대인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오히려 물가인상까지 고려하면 손해나는 장사이기에 전세임차인의 입장에서 전세금을 계속 올려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도 되는 이유는 집값도 따라서 오르니까. 집값이 오르지 않으면 전세금이 집값을 넘어서는 어이없는 상황까지 벌어질 수 있다. 아니면 20년 치 월세를 전세로 한꺼번에 받아서 20년 동안 조금씩 까먹으며 살거나. 그 역시 물가인상을 고려하면 영 손해다. 그러니까 원래 전세 오르지 않고 몇 년을 계속해서 살아도 되는 경우란 그냥 환상에 지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당연히 전세는 올려받아야 하고, 전세 오른 만큼 맞춰 주지 못하면 이사해야 한다. 그래도 2년 동안 보장해 주었는데 이제는 4년 동안 전세를 따로 올리지 않아도 살 수 있게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를 할 수 있다. 지금 임대차보호법의 부작용이라는 내용들은 원래 임대인들이 겪어 오던 현실들이었단 것이다. 언제는 내가 원하는 곳에 내가 원하는 가격에 내가 원하는 조건의 전세나 월세가 넘쳐났었던 것처럼 이야기한다.

 

20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한 번 이사를 하려 하면 며칠을 발품을 팔아가며 집을 보고 다녀야 했었다. 이 동네가 싸다 해서 그리도 다녀보고, 저 동네면 출퇴근에 조금 더 유리할 것 같아서 그리로 훑으며 다녀보고, 부동산 몇 곳을 돌아다니며 조금이라도 더 싸고 더 조건 좋은 집이 없나 일일이 찾아보고 다녀야 하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집이 내가 원하는 곳에 내가 원하는 때에 바로바로 나와주면 얼마나 좋겠는가. 대부분 임대인들이란 경제적으로 그다지 넉넉지 못한 조건일 텐데 자기 형편에 맞는 집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나와 주겠는가. 그래서 차라리 출퇴근 때 조금 더 고생하더라도 내 형편에 맞게 내 집을 가져보겠다고 외곽에 집을 사기도 하는 것이고, 그래도 서울 중심부에서 살아야 자식 교육에도 유리하다고 충분히 집을 살 수 있는 여건임에도 굳이 전세를 살기도 하는 것이다. 전세 구하기 힘들다. 언제는 아니었을까?

 

확실히 요즘은 돈 많아야 기자도 한다는 말이 맞는 모양이다. 아니 기자를 노려도 될 만큼 학벌이 좋으려면 당연히 집안에 돈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전세라는 게 그냥 구하려면 구해지는 줄 아는 모양이다. 그냥 가만히 앉아 있어도 내가 원하는 조건의 전세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줄 아는 것이다. 전세기간이 끝나더라도 인심좋은 집주인이 전세금도 올리지 않고 그냥 전세를 연장해준다. 이야 이런 지상낙원이. 그러나 내가 아는 전세란 당연히 전세기간이 끝나면 전세 올려줘야 하고, 전세 올려줄 돈이 없으면 며칠이고 발품을 팔며 주변의 집들을 돌아보고 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고도 조건에 맞는 집을 찾지 못하면 타협하고 들어가 살아야만 하는 것이다. 내가 아는 현실은 그런데 언론이나 혹은 네티즌들이 말하는 현실은 어떠한가.

 

다시 말하지만 내가 원하는 때 내가 원하는 곳에 내가 원하는 조건의 집이라는 게 그리 쉽게 나와주는 게 아니다. 아주 운좋게 있더라도 발품을 팔지 않으면 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내가 지금 사는 집도 집주인의 사정에 의해 내 조건에서 크게 벗어나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 그래서 임대차보호법인 것이다. 원래 어렵고 힘든 것이 이사이고 그래서 자기집을 그리 갖고 싶었던 것이었다. 과연 살아온 환경이 다르면 보이는 풍경도 다른 것인가. 보는 현실도 다르다.

참여정부 시절 나는 한겨레를 진보언론이라 믿었었다. 경향은 그보다 더 중도적인 합리적인 언론이라 여겼었다. KBS는 공영방송으로서 다른 어떤 언론보다 무미건조하게 오로지 사실만 전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들 언론들이 한목소리로 비판하고 나서면 나 역시 따르게 되는 경우가 많았었다. 아무리 이 정도 언론들이 나서서 비판하면 그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지금은? 한겨레 경향이 언론이면 조선일보가 정론이다.

 

지금 한겨레나 경향이 무어라 정부를 비판해봐야 그런 게 있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란 것이다. 저널리즘 토크쇼J나 댓글읽어주는 기자 등에서 언론비판도 하고 4차언론혁명 어쩌고 떠들어봐야 오히려 혐오감만 더 깊어질 뿐이란 것이다. 그래서 과거 한겨레와 경향을 신뢰했으니 지금도 한겨레와 경향을 내가 신뢰해야 하는가? KBS를 신용하고 있었으니 지금도 KBS를 신용해야 하는가? 언론의 자유란 무엇보다 소중하다 여겼던 과거의 나 자신에 대해 오늘 싸지른 설사를 집어던지는 중이란 것이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고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와 다르다. 그래서 뭐? 사람이 한 입으로 두 마디 세 마디 하는 게 당연한 거지 어떻게 평생 한 가지 주장만 하는가?

 

유명 화가가 그린 미공개 작품이 발견되면 그림의 구도나 구성, 붓의 터치 등을 종합해서 그려진 시기를 유추하기도 한다. 같은 작가가 쓴 시와 소설도 시기마다 각각 개성이 다 다르다. 그래서 사람인 것이다. 서 있는 위치가 달라지면 보이는 풍경도 바뀌게 된다. 나이를 먹으며 키도 자라고, 눈도 나빠지고, 혹은 사랑도 하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으며, 승진도 하고, 실직도 하고, 누군가를 잃은 상실감에 울기도 한다. 그때마다 보이는 풍경이 항상 같을 것인가. 가장 강경하게 노동운동을 하던 활동가라고 정작 정부부처에서 장관이 되면 그때 주장하던 정책들을 온전히 행동에 옮길 수 있을 것인가. 심지어 저 원균조차도 이순신 장군이 파직당할 당시까지 자기라면 부산으로 바로 진격할 수 있겠다 큰소리치다가 정작 대신해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되고 나니 권율에게 곤장을 맞기까지 못하겠다며 버티고 있었다는 것이다. 학자일 때 다르고, 시민운동가일 때가 다르며, 청와대 참모인 때와 장관일 때가 다르다. 그게 왜 문제가 되는가.

 

정부 정책이 어떻게 돌아가는가도 잘 모르던 학자시절에 모르고 떠든 소리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그래서 너무 하찮다는 것이다. 내가 직접 물류일을 해보기 전과 해보고 난 뒤에 물류에 대한 내 인식부터 얼마나 달라져 있는가 말이다. 노가다를 직접 뛰어보기 전과 뒤의 노가다에 대한 내 생각도 그만큼 많이 달라져 있다. 공직을 맡지 않았어도 과거 자기가 알던 사실이나 혹은 자기가 추구하던 논리나 지향과 많이 달라져서 주장이 달라졌다면 달라진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지 과거 말을 이유로 그를 폄훼하는 건 의미가 없다. 지금 위치 쯤 되니 달리 보이고 그래서 다른 결론도 내리게 된다. 그런데 다른 분야는 다 그게 허용되는데 어째서 민주당에는 용인되지 않는 것일까.

 

조로남불이라는 말이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언행일치란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추구한 가치이면서 정작 대부분 사람들은 지키지 못한 원칙이었단 것이다. 말 그대로다. 선 위치가 다르고, 사람이 달라지면 보이는 것도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도 모두가 달라지는 법이다. 어제 한 말과 오늘 하는 행동이 다르다는 게 무슨 대단한 의미가 있겠는가. 결혼하기 전, 자식을 낳기 전, 자식이 자라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 하던 생각은 이후의 생각과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20대 시절 내가 믿건 가치대로라면 나는 벌써 죽어 시체가 되었어야 옳다. 40세 이후의 나 자신은 생각조차 해 본 적 없으니.

 

중요한 것은 인과관계다. 그리고 당위다. 과연 정의의 관점에서 그 주장이 타당하고 옳은가. 그러한 주장의 변화 과정에서 납득할 수 있는 개연성이 제시되었는가.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과거와 다른 주장을 해도 납득하게 되는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일관적인 주장을 펴는데 이해가 안되는 것이다. 예전 이런 주장을 했었는데 지금은 어째서 달라진 것인가 묻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는가. 인간의 지성이란 본능이 아니다. 안타까운 부분이다.

청나라 도광제는 중국의 역대 황제들 가운데서도 청렴하기로 손꼽히는 인물이었다. 황제임에도 낡은 옷을 수선해서 입으며 황궁의 예산까지 20만냥을 넘지 않도록 했으니 여러모로 조선의 영조와도 비견되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오죽하면 대신들조차 채소장수와 흥정을 한다는 조진용이나 청렴으로 이름높은 고기야 무장가 같은 이들이 총애받았다는데, 과연 그렇게 청렴한 이들로 채워진 조정이란 얼마나 나라를 바르게 부강하게 이끌었을 것인가. 참고로 건륭제 재위말부터 쇠락하기 시작한 청은 도광제 재위기에도 오히려 몰락을 가속화하고 있었다.

 

청렴을 과시하기 위해서 일부러 몇 배나 되는 비싼 돈을 주고 낡은 옷을 사서 입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나라의 대신이란 내 주머니를 위해 채소장수와 흥정하는 자리가 아닌 채소장수의 주머니도 채워줄 정책을 고민하는 자리여야 하는 것이다. 나라의 대신이란 이가 돈 얼마 아끼겠다고 백성과 이익을 다투는 순간 백성은 더이상 목적이 아닌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런데도 오히려 채소장수와 흥정을 해서 돈 얼마 아낀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과연 제대로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할 만한 위인이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미 가진 재산이 있고 누리는 것들이 있는데 일부러 안 가진 척, 누리지 않는 척 남들 앞에서만 아닌 척 살아간다는 자체가 이미 위선인 것이다. 그 수고와 그 노력과 그 비용과 그 시간을 차라리 진짜 백성들을 위하는 일에 쓴다면 더 나라를 위해 도움이 될 것이다.

 

당연히 더 비싼 옷이 좋은 것이다. 더 비싼 스마트폰이 기능도 많고, 더 비싼 태블릿이 쓰기에도 더 좋고, 더 비싼 노트북이 보안이나 성능에서 여러모로 유리하다. 이코노미석을 이용하며 얼마간 비행기값을 아끼는 것보다 퍼스트클래스에서 보다 편안하게 이동중에도 업무를 보는 쪽이 더 이익일 수 있다. 더 크고 좋은 집에서, 더 편안하고 안락한 환경에서, 더 영양많고 맛도 좋은 음식을 맛보면서, 필요하다면 운전기사를 따로 두고 이동간에 차안에서 업무도 볼 수 있다. 그러니까 그래서 뭐가 문제란 것인가. 좋은 가방을 샀으니 기분도 좋고, 혹은 쉬는 날 요트를 타고 바다를 누비니까 한 주의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고, 이름난 디자이너의 멋진 옷을 샀더니 왠지 어깨가 으쓱거린다. 자식의 장래를 위해서 법이 허용한 범위 안에서 좋은 과외교사도 붙여주고, 좋은 학원도 알아봐 주고, 보다 진학에 유리한 학교에도 보내준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공인으로서 얼마나 공적인 일들에 충실했는가.

 

원래 가진 것이 많아서 그만큼 누리고 사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공직에 있으면서 자신의 직분과 권한을 이용해서 따로 사익을 편취하지 않았다면 원래 가진 것으로 얼마나 사치스런 삶을 살든 전혀 문제될 것은 없는 것이다. 어차피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 형편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나름대로 자기만의 사치를 누리며 살아간다. 어제보다 오늘 수입이 더 좋으니 기왕에 먹는 술 더 좋은 것으로 먹어 보겠다. 안주도 조금 더 비싼 맛난 것으로 먹어 보겠다. 그러니까 내 여건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나 자신을, 내 가족을 위해 이것저것 다양하게 많은 것을 해보고 누려도 보겠다. 뭐가 문제인가. 다만 그를 위해서 자신의 공적인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집안에 돈이 수 십억 있다. 그래서 합법적으로 벌어들인 재산이면 전혀 문제될 것 없는 것이다. 그 돈을 자식이나 손자들에게 증여의 형태로 물려주고 싶다. 세금만 제대로 냈으면 역시 문제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증여는 하고 싶은데 세금은 내고 싶지 않다. 5천만원까지는 원래 세금 없이 증여가 가능하다. 그래서 뭐? 공인이니 돈 수 십억 있어도 죄다 기부해야 하고, 대학교수인데 옷도 기워서 입어야 하며, 충분히 그럴 능력이 되는데 자식들을 능력이 안되는 이들처럼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고 있어야 하는 것인가. 과연 돈이 있어 그 돈을 충분히 쓰면서 사는 삶이란 것이 도덕적으로 얼마나 문제가 되어야 하는 것인가. 인맥이 있어 그 인맥을 자식을 위해 쓰는 것이 또한 도덕적으로 얼마나 문제가 되어야 하는 것인가. 도덕적인 문제이기는 한 것인가.

 

역시나 왜곡된 유교문화의 유산일 것이다. 전에도 말했던 대동사상의 부작용이기도 하다. 공사의 구분이 없다. 공적인 것이 사적인 것이고, 사적인 것이 공적인 것이다. 개인이 번 재산을 개인이 쓰는 것마저 공적인 것이 되고, 공인으로서 공무를 보는 것마저 사적인 논리로 이해하게 된다. 조국 전장관에게 씌워진 위선이라는 낙인의 정체인 것이다. 대학교수라니까. 20대 때부터 이미 대학교수였었다. 부인은 친정에 재산이 적지 않아 유산도 상당히 받았었다. 대학교수로서의 인맥과, 자신들이 가진 경제적 사회적 지위에 어울리는 환경들로 인해 가능해진 많은 것들이 있는 것이다. 그것들을 모두 거부해야 비로소 위선적이지 않은 삶인가. 청렴하고 올바른 삶인 것인가. 백사 이항복이 청백리로 이름높은 인물이었지만 집안의 재산까지 다 내놓고 빈곤한 삶을 살았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 가난해서 청백리가 아니라 부정한 재물을 탐하지 않아서 청백리인 것이다.

 

도덕이라기보다는 그냥 편견이고 이기인 것이다. 내가 못하니까. 내가 할 수 없으니까. 평범한 서민이 조국과 같은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인가. 조국 전장관과 같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그 자식들처럼 기회를 누릴 수 있을 것인가. 그게 자본주의니까. 자본주의 이전에 인간의 삶이었다. 막걸리도 심지어 한 병에 만 원이 넘어가는 것이 있더라. 증류식 소주는 한 병에 몇 만 원이 기본이다. 야, 저런 건 어떤 돈많은 놈들이 사먹는 것일까? 그래서 자기 돈 많아서, 혹은 좋아해서 그런 걸 사먹는다고 도덕적으로 뭐라도 대단한 문제가 있다는 것인가. 자기 돈 많아서 수 천만 원짜리 가방을 사고, 수 억짜리 장신구를 하고, 수 백억을 호가하는 대저택에 산다면 그래서 공적으로 무슨 해악이 있다는 것인가. 돈이 있어서 법이 허용한다니 펀드에 가입하고, 인맥이 있어서 입시에 도움이 된다니 인턴도 하고, 남이 하지 못하니 부도덕하다? 도대체 학교 다닐 때 도덕에 대해 뭘 배운 건지 의문이 들 정도다. 수능에 요즘 도덕이 포함이 안되는 것일까?

 

금태섭의 증여든, 손혜원의 증여든, 조국의 증여든, 결국 세금만 제대로 냈으면 전혀 아무 문제도 없는 일상적 행위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돈 많은 것이 죄가 아니다. 돈 많은데 없는 것처럼 속이고 사는 것이 오히려 위선이지 내가 가진 만큼 누리고 쓰고 사는 것이 도덕적으로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공인으로서 얼마나 자신의 공적인 역할을 책임을 가지고, 오로지 사심없이 수행했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이 공인으로서의 책임이고 도덕성이다. 위선을 말하려면 그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다는 소리가 돈 많고, 인맥 많고, 그 모든 것을 누리며 살았다. 배아픈 걸 도덕이라 말하는 것은 오히려 파렴치한 것이다. 

 

유시민의 평가가 적절하다. 조국은 성인이 아니었다. 오로지 무소유의 청렴한 삶을 살았던 역사적인 위인과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금태섭 논란을 보며 새삼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다 쓸데없다. 쓸데없는 시간낭비 노력낭비 비용낭비란 것이다. 조국에 대해 들이댄 도덕적 잣대를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하려면 도대체 개인들은 어떤 삶을 살아야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이 된다는 것인가. 32인치 4K모니터 쓰는 나는 24인치 HD 모니터 쓰는 사람을 위해 항상 고개숙이고 살아야 하는 것인가. 도덕의 기준부터 다시 설정해야 할 것이다.

 

아무튼 어느 시대든 공직을 맡을 정도면 어느 정도 이름도 알려져 있고 그만큼 명성과 재산을 모두 갖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더이상의 재물을 부정하게 모으지 않아 가난한 것은 그럴 수 있다 치지만 원래 가진 재산이 많은데 그 재산마저 다 처분하고 가난하게 살아야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인가. 그래야 공직자로서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것인가. 그 기준부터 다시 묻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도광제는 중국역사상 가장 훌륭한 황제였는가. 그 기준마저도 일관되지 않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조국사태에 대한 소회다. 전에 한 번 썼었던가. 한심하다.

어째 이상하기는 했다. 하긴 한겨레가 정신줄 놓은 것이 어제오늘 일은 아닐 것이다. 어제 한 말 씹고, 오늘 한 말 뒤집고, 탈원전 주장하다가 현정부의 탈원전은 범죄라며 검찰수사를 옹호하는 것들이 바로 한겨레란 것들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이렇게 노골적으로 공수처반대의 입장을 드러낸다는 건 조금 부자연스럽다. 뭔가 이유가 있다. 뭐지?

 

아침부터 성한용 개소리 들을 뻔하고 나서 김용민 방송을 보니 이유를 알 것 같다. 박시영이 하겠다던 그 여론조사를 해봤구나. 그랬더니 윤석열에게 상당히 고무적인 결과가 나왔다. 잘만 하면 윤석열이 차기 대통령에 당선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어째야겠는가. 차기권력인데 줄서야지. 원래 똥이나 핥아먹던 똥걸레였지만 더 충성심을 보여야 하는 것이다. 아, 그래서 류호정도 박용진도 조선일보가 부른다고 좋아라 찾아간 것일까?

 

국민의힘이 지금 대선정국까지 시간을 끌어 민주당이 더이상 공수처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도록 만들려는 의도라는 것은 정치에 조금만 관심이 있으면 대부분 아는 사실일 것이다. 국민의힘은 지금 공수처를 원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반대하고 있다. 어떻게든 좌절시키고 무산시키려 하는 중이다. 그런 국민의힘에 맞추라. 국민의힘을 기다리라. 국민의힘의 동의를 구하라. 즉, 공수처같은 건 하지 마라. 누구를 위해서? 바로 윤석열 차기 대통령님을 위해서.

 

한겨레가 저리 목숨걸고 나서는 이유는 분명하다. 한겨레가 이명박을 그토록 사랑하는 이유다. 개인의 비위만 있을 뿐 대통령으로서 국가는 매우 훌륭히 운영했었다. 아, 이 기사 쓴 놈도 성한용이었던가? 뭐가 그리 좋아서 저리 찬가를 불러댄 것일까? 덤벼라 문빠들아. 한겨레가 문빠들에게 한 방 먹이려면 무엇이 가장 효과적일까? 말한 바 있었다. 윤석열을 지지하는 놈들 가운데는 이명박근혜의 복수를 하려는 놈들이 상당수 포함된다. 

 

그래서 탈원전을 4대강과 빗대 떠들어대고 있었던 것이었구나. 탈원전을 털어서 이명박의 4대강처럼 만든 뒤 그리고 다음은... 아마 모두가 예상하는 그것이 아닐까. 정의당이 국민의힘을 위해 입안의 혀처럼 차마 부담스러워 하지 못할 말을 대신해주고 있는 이유와 같다. 그때만 오면. 그날이 오면. 민중가요라도 부르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작년부터 저쪽 인간들의 노선은 일관되었었다. 문재인 대통령 탄핵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 그리고 그 다음... 대놓고 말만 하지 않았을 뿐 모두가 공감하는 바였다. 저쪽 놈들이나 그놈들을 지켜보는 이쪽 지지자들이나. 박시영 덕분에 한겨레가 더 솔직해지게 된 것 같아 한 편으로 대견키도 하다. 너무 솔직해서 헛웃음만 나온다. 똥걸레새끼들.

그동안 보면 김경수 지사의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 정부를 향한 검찰의 수사란 이명박근혜 정부의 과오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조국은 우병우, 정경심은 최순실, 울산시장선거는 박근혜의 선거개입, 그러면 이번에 감사원과 함께 진행 중인 월성원전 조기폐쇄에 대한 수사는 어떨까? 민주당이 강력 반발하니 내세운 논리가 4대강이다. 4대강도 정부정책이었는데 수사의 대상이 되었던 것처럼 원전 조기폐쇄도 마찬가지다. 그걸 한겨레가 물었다.

 

명백한 불법이 있어서가 아니다. 불법의 정황이 드러나서도 아니다. 불법이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불법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민간기관이나 개인을 그런 식으로 수사하면 사찰이 된다. 전횡이 되고 권한남용이 된다. 그 자체로 불법이다. 그런데 한겨레는 그런 검찰의 주장을 받아서 검찰의 수사를 정당화하는 기사를 내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뭘 어쩌자고? 노후화된 원전을, 그것도 안전상의 문제로 몇 번이나 가동중단되었던 원전을, 조기폐쇄하지 말고 끝까지 운영하고 있었어야 한다는 것일까. 더 웃기는 건 불과 얼마전까지 탈원전을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주장해 온 언론이 한겨레였다는 것이다. 탈원전은 지지하지만 현정부의 탈원전은 불법이 있을 수 있으므로 반대한다.

 

탈원전을 주장하는 시민단체가 있다. 지식인그룹이 있다. 그 가운데 저번 감사원의 원전 조기폐쇄 감사 과정에서 심각한 강압과 인권침해가 있었다는 주장이 나온 바 있었다. 그쪽과도 연결이 안 되는 모양이다. 그쪽에서 더이상 한겨레를 신뢰하지 않고 기사거리를 주지 않고 있거나, 현정부에 유리할 것 같으니 한겨레가 아예 귀닫고 듣지 않고 있거나. 결론은? 한겨레는 현정부에 불리한 주장만 평소 주장이나 신념과 상관없이 듣겠다. 탈원전은 주장하지만 현정부는 반대한다.

 

아침부터 기분도 그래서 무슨 욕을 할까 유튜브 채널 가봤더니 가관도 아니다. 하긴 이제 한겨레에 기대하는 사람도 거의 없을 것이다. 종이신문으로 돌아가는 길을 불사른 이유가 있었다. 작년 조국사태 당시 너무 노골적으로 속내를 내비치고 있었다. 대놓고 조국을 죽이겠다는 기사는 노무현 전대통령의 경우를 떠올리게 만들고 있었다. 저 새끼들 아직도 저러고 있나? 어차피 화해는 불가능하다. 검찰총장도 아닌데 저놈들이 무릎꿇을 놈들도 아니고. 개새끼들이다.

회사에서 회의가 열렸다. 사장이 말한다.

 

"모두의 의견을 듣고자 하니 거침없이 솔직하게 말씀들 해 주세요."

 

그러자 사장의 동생이 바로 먼저 손을 든다.

 

"의견 있습니다."

"넌 동생이라 안돼!"

 

이때 사람들은 사장의 행동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친혈육을 배제하는 멸사봉공의 자세를 높이 여길까? 아니면 친혈육의 의견조차 듣지 않는 편협함에 비웃게 될까?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 가운데 하나다. 중용이란 나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 가까운 가족, 친구, 동료 등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모두의 의견을 듣겠다 했으면 가족의 의견 역시 빼놓지 않고 들어야 하는 것이다. 혹시 모르지 않은가. 가까운 가족의 입에서 다른 사람은 하지 못할 놀라운 발상이 나오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하물며 피가 이어져서 당원이고, 고향이 같아서 지지자인 것도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당원이란 오히려 계약관계에 더 가깝다. 당이 먼저 우리는 이러이러한 정치를 하려 하니 유권자 여러분 지지해 주세요 요청하면 유권자 가운데 동의하는 이들이 나서서 투표도 하고 당원으로 가입도 하게 된다. 그리고 나면 당원과 지지자들에게는 당에 대한 청구권이 생기게 된다. 내가 투표해서 선거에서 이겼으니 이제 약속한대로 자신들을 위한 정치를 해 달라. 공천받고 선거 출마할 때는 민주당 소속인데 당선만 되면 나는 민주당과 상관없는 중도의 정치인이고 보수까지 아우르는 인물이다. 뭔 개소리일까?

 

같은 당이라고 배제하고, 자신들을 지지하고 표까지 주었던 당원이고 지지자이기에 무시하고, 오히려 자기 당원과 지지자들을 적대하는 이들을 위해 그들을 이해하고 포용하려 한다. 당원과 지지자들이 그토록 싫어하는 행동까지 그들을 위해 서슴지 않는다. 과연 그런 정치인은 모두를 위한 정치인일까, 아니면 특정한 누군가를 배제하려는 정치인인 것일까?

 

그래서 전부터 이야기해 온 것이다. 희한하게 한국에서 대학 좋은 데 나온 놈들은 민주당만 항상 예외로 여기는 말과 행동들을 너무나 당연하게 보이고는 한다. 민주당은 배제해도 된다. 민주당은 무시해도 된다. 민주당은 모욕해도 조롱해도 상관없다. 심지어 민주당 지지자는 국민도 아니다. 민주당 당원은 시민도 아니다. 국민을 위한 정치란 민주당을 배제하는 것이다. 시민의 정치란 민주당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큰 인물이라 생각한다. 민주당은 틀렸고 민주당이 아닌 곳에 답이 있다. 오죽하면 KBS 기레기새끼들이 모여서 만드는 유튜브채널인 '댓글 읽어주는 기자들'에서도 강병수인가 하는 기자놈이 의대정원확대에 대해 "반드시 정부의 정책에 잘못된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정확하게 비판해야 한다."며 입에 게거품까지 물었겠는가. 그 발언이 왜 문제인지 의식하는 인간 또한 그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민주당 정부가 하겠다면 그서은 틀린 것이다.

 

그러니까 민주당의 당론을 부정하고, 당원과 지지자들의 요구에 반대하고, 오히려 당과 반대편에서 당을 적대하는 이들과 손잡으면 중용이 되고, 중도가 되고, 관용이 되고, 국민과 국가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당원과 지지자 늬들 새끼들은 표주는 버러지들일 뿐 사람새끼들도 아니란 당연한 선언이기도 한 셈이다.

 

누구 얘기? 박용진이 김한길 밑에 있었다. 김한길을 민주당 지지자들이 괜히 싫어한 게 아니었다. 그런데 김한길에게 배웠다기에는 원래 자칭 진보들 대가리가 그렇게 생겨 먹었거든. 김한길 밑에 있다가 김종인에게 이끌려 배지를 달았다. 과연 김종인과 국민의힘, 그리고 조선일보를 대상으로도 멸사봉공을 할 수 있을런지.

 

어지간하면 무시하고 싶은데 하는 짓거리가 너무 재수없어서. 유치원 3법은 박용진 혼자서 만든 법이다. 그래서 이번 총선 끝나고 유시민부터 저격했던 것이었구나. 민주당의 대승이 너무 화가 나서. 실망스러워서.

 

어차피 조만간 민주당에서 더 볼 얼굴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기까지 하고서 민주당에 계속 남아 있으려면 얼마나 철면피여야 할까. 그런데 또 그게 자칭 진보의 대가리속이라. 진짜 버러지는 누구인가. 좋아라 하는 놈들도 있다.

두 가지를 말했었다. 하나는 미투란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여성주의자들이 촛불혁명 이후로도 다시금 주도권을 쥐기 위한 명분으로써 기획되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칭 진보들은 원래부터 수구진영으로부터 - 즉 이 사회의 진짜 주류세력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는 것이다.

 

촛불혁명 이후 새로운 정부에서도 주도권을 가지는 것을 넘어 다시 한 번 수구진영과의 연대까지 복구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최고의 신문인 조선일보가 자신들을 인정해주고 좋은 기사를 써준다면 그보다 기쁘고 영광스러운 일도 없는 것이다. 실제 조선일보가 노동자, 농민, 가난한 이들에 대해 안좋은 기사를 쓴 적은 있어도 정의당에 나쁜 기사를 쓴 것은 정의당이 민주당과 공조한다고 깝치던 몇 달 말고는 없었다. 아니었으면 지금 정의당이 남아나 있을까?

 

노동존중의 정당이 국민의힘이듯 여성존중이라면 조선일보인 것이다. 박용진이야 원래 뿌리가 그랬고, 국회의원 배지를 달아준 사람이 그렇다. 길게 쓸 필요도 없이 다시 한 번 내 주장이 맞았음을 확인시켜준다. 류호정이 아무와 상의도 없이 혼자 독단으로 참석했었을까? 그럴 리 없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다. 저게 자칭 진보의 정체다. 지겨울 정도다.

돌이켜보면 작년 조국사태 전까지 자칭 진보들도 어느 정도 현정부에 대해 선을 지키고 있었다. 사사건건 반대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현정부를 적대하는 태도를 보이거나 하지도 않았었다. 민주당 내부의 분탕종자들도 그때까지는 아직 조용한 상태였었다. 그러면 뭐가 문제였던 것일까? 검찰이 현정부를 상대로 수사를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아마 윤석열 검찰이 조국 전장관을 시작으로 현정부를 타겟으로 삼아 수사를 시작했을 때 자칭 진보들이 보기에 문재인 대통령이나 현정부 인사들, 그리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미 목만 남은 시체로 보였을 것이다. 그동안 역대 정권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그리고 노무현 전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문재인 대통령도 문재인 정부도 결국 그렇게 되고야 말 것이다. 다시 말해 살아있는 권력이 아니라 이미 죽은 권력이라 생각했기에 그동안 감춰왔던 본색을 드러내고 승냥이떼처럼 달려들어 물어뜯기 시작한 것이었다. 어차피 죽을 놈 나라고 빠질 수 없다.

 

실제 당시나 지금이나 자칭 진보언론사 기자들 하는 말 들어보면 검찰이 수사를 시작했으니 곧 정권의 치부가 드러날 것이고 바로 단죄될 것이란 확신에 찬 언사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런 정권의 죄악을 파헤치는 것이 검찰의 일이고 기자의 일이다. 그리고 검찰의 의도가 대통령의 탄핵이란 사실을 알았을 때 끝끝내 속내를 감추려 애쓰던 정의당마저 무심코 탄핵이란 단어에 동조하며 나서고 있었다. 검찰이 시작했으면 이미 끝난 것이다. 그래서 금태섭이 조국을 물어뜯으며 본색을 드러냈던 것이었고, 박용진 역시 민주당과 보조를 맞추는 척 연기하던 것을 그만두게 되었다. 누가 살아있는 권력인가? 누가 진짜 권력인가? 이로써 분명해지지 않았을까.

 

그래서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저 검찰이 나섰는데. 저 서슬퍼런 검찰이 아예 정권을 죽이겠다고 나서서 수사하고 있는데. 그래서 그 모든 원망과 증오가 검찰의 힘을 하나씩 빼고 있는 추미애 장관에게로 향하는 것이다. 추미애만 아니었으면. 그래서 또 한 편으로 여전히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며 정권을 지탱하고 있는 지지자들에 대한 악다구니도 쏟아내는 것이었다. 자기가 본 문재인 정권의 미래는 이런 것이 아니었다. 벌써 정권은 망하고 대통령은 죄인이 되어 재판정에 섰어야 하는데 어째서 아직도 버티고 있는 것인가. 자기가 틀린 선택을 했다고 인정할 수 없기에 그렇게 만든 대상을 원망하며 더욱 자신의 선택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행동에 나서게 된다. 박용진이 본색을 드러내며 조선일보를 위한 밑닦개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이기도 하다. 죽으나 사나 이제 자기에게는 조선일보 뿐이다.

 

그래서 갈린 것이다. 검찰이야 말로 살아있는 권력이다. 검찰이 나서면 문재인 정부라도 끝장날 수밖에 없다. 죽은 시체를 위해 동정도 연민도 가질 필요는 없다. 이미 죽은 목숨이면 같이 난도질하고 전리품을 나눠갖는 쪽이 현명하다. 아마 이번 총선에서 그 결과로 민주당이 폭망할 것을 예상했기에 정치를 그만둔 인간도 있었을 것이다. 이를테면 이철희가 그 부류다. 지금 이철희가 한겨레와 배를 맞추며 뭔 소리를 지껄이고 있을까? 그런데 살아 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국민과 그리고 민주당의 정체성을 잊지 않은 다수의 정치인들이 현정부와 여당을 지켜내고 있었다. 그 차이인 것이다. 그럼에도 오히려 검찰은 개혁의 대상이며 검찰개혁을 위해서라도 어떤 경우에라도 현정부와 대통령과 여당을 지켜야 한다.

 

오히려 거꾸로인 것이다. 현정부가 살아있는 권력이라 공격한 것이 아니고, 검찰이 중립을 지키고 있기에 지지한 것이 아니었다. 명백한 검찰의 정치적 의도를 알았기에 진짜 살아있는 권력의 눈치를 보며 그들의 줄에 선 것에 지나지 않았다. 차라리 후회보다 그 선택을 틀리게 만든 현정부와 지지자가 그래서 원망스러운 것이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자신들의 선택이 옳았던 것으로 만들고야 말겠다. 이제는 신념이 된다.

 

결국은 뭐다? 아직은 저들이 보기에 검찰이 청와대보다 강자라는 것이다. 추미애장관보다도 강자다. 더불어민주당보다도 강자다. 김경수 재판은 그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법원까지 마음대로 하는 것이 바로 검찰이다. 국민의힘은 이길 수 있어도 법원까지 이길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누가 진짜 강자일까는 지켜 보면 알 일일 것이다.

 

최근 더욱 선명하게 느끼는 사실인 것이다. 진짜 권력은 누구인가? 진짜 살아있는 권력은 누구인가? 누구를 두려워하고 누구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인가? 하긴 아직 민주당 안에서도 윤석열 검찰의 힘을 두려워해서 몸을 사리는 놈들이 적지 않을 터다. 이낙연은 그런 놈들에게 휘둘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윤석열의 비루함조차 저들에게는 동경이고 공포다.

공융을 돕겠다고 공손찬의 명령으로 북해로 향했던 이후 유비는 단 한 번도 누군가의 휘하에 있어 본 적이 없었다. 하긴 공융도 근거지를 잃고 허도에서 관직생활을 하면서도 조조의 휘하에 있지 않았었다. 이미 한 세력을 거느려 본 이라면 설사 다른 이의 밑에 있더라도 온전히 휘하로 여길 수 없다. 그래서 원소 밑에 있을 때도, 유표에게 의탁했을 때도 유비는 여전히 독립군벌로써 객장의 위치에 있었던 것이었다. 

 

현대정치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힐러리의 위상 역시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이 아닌 장관에 취임을 요청한 당내의 유력인사로써 매우 남다른 위치에 있었다. 민주당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클린턴 전대통령의 영부인이며, 오바마의 대선경선 경쟁자였으며, 여전한 민주당의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였기에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장관으로 있을 때도 상당히 독자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었고, 장관에서 물러난 것도 차기 대선을 위한 준비를 위한 사임이었지 경질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처음 오바마가 제안한 것도 장관이 아닌 부통령이었다. 부통령 정도가 힐러리의 위상에 적합하다. 이마저 여러 이유로 불발되고 결국 감당 못할 장관이 되어 버렸지만.

 

법무부장관에 취임하기 전 추미애의 위상도 크게 다르지 않았었다. 오히려 힐러리보다 높으면 높았지 낮다고 할 수 없었다. 문재인이 민주당에 입당하기 한참 전부터 김대중 전대통령에 의해 영입되어 국회의원이 되었었고, 문재인이 대선에 처음 출마하던 당시에도 이미 4선의 중진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문재인은 대선후보로 거론되고는 있지만 겨우 처음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던 초선에 지나지 않았었다. 무엇보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도 아니고 여당의 대표가 대통령의 아래일 수는 없는 것이었다. 5선의 중진에, 당대표까지 역임했으면 이제 남은 것은 국회의장이나 대선, 그나마 많이 양보해서 서울시장 정도라는 것이다. 그런데 국무총리도 아닌 고작 장관의 자리에 앉히고 있었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대통령이 임명한 것이 아니라 장관으로 초빙하여 허락 아래 절차를 밟은 경우란 뜻이다. 대통령의 지시를 받는 아랫사람으로 임명한 것이 아닌 같은 정당의 동지로써 같은 목적을 위해 도와달라 요청한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그 거취를 함부로 한다?

 

이낙연이나 정세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다른 국무총리들과 다르다. 특히 정세균은 이미 국회의장까지 지낸 바 있기에 더욱 그 위상이 대통령보다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국무총리에게 대통령이 지시를 내리고 거취까지 마음대로 정한다? 아예 당을 적으로 돌릴 생각이면 가능하다. 아예 여당의 협조를 구하지 않을 생각이면 가능하다. 아예 당내의 족보를 박살낼 생각이면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당내에서 추미애 장관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는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한둘은 있을 수 있다. 원래 추미애 장관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가졌던 개인들. 그러나 5선에 전당대표면 민주당 국회의원들이라고 함부로 뭐라 말하는 자체가 불경이 되는 것이다. 최근 정치가 근본이 없어져서 그렇지 예전에는 당이 다르더라도 그 정도 되면 서로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것이 있었다. 그러면 무엇인가? 한 마디로 추미애 꼴보기 싫으니 제발 치워달라는 하소연이라 할 수 있다.

 

대통령이 결단해야 한다. 대통령이 해결해야 한다. 대통령도 안된다. 그럴 문재인 대통령도 아니지만, 문재인이 아니더라도 다른 어느 대통령이 되었든 추미애 정도 되는 위상을 가진 인물을 장관에 앉혔으면 그때부터 그 자리는 내 손을 떠나 있는 것이다. 알면서도 너무 답답해서 하소연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모르는 것이거나, 그도 아니면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거나. 그래서 추미애 장관이 검찰개혁의 적임자이기도 한 것이다. 아무리 검찰과 언론과 야당이 흔들어봐야 대통령이 흔들린다고 추미애 장관만 흔들리지 않으면 되는 위치이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추미애 장관을 물러나게 하려면 추미애 장관을 직접 공격해야 한다. 그래서 자식문제까지 끄집어냈던 것이지만 과연 통했는가.

 

재미있는 건 생물학적 여성이라고 그렇게 박근혜를 싸고 돌던 여성주의자들이 그러나 추미애 장관에 대해서는 같은 여성으로서의 동질감을 그다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부분일 것이다. 추미애 장관은 남자인 것일까? 오히려 여성인 추미애 장관보다 남성인 윤석열의 편에 있는 듯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윤석열의 진짜 비밀인 것일까? 결론은 떠들어봐야 기차는 간다. 똥이 더럽다고 사람은 피해도 탱크는 뭉개고 간다. 그게 추미애란 인물이다.

 

아무튼 요즘 부쩍 추미애 장관에 대해 관심이 커지는 중이다. 이낙연은 너무 소심하고, 이재명은 너무 가볍고, 추미애 정도의 뚝심이면 적당한데. 아마 차기 대선후보로 추미애를 지지하는 아주 소수 가운데 하나이지 않을까. 그만큼 이낙연에 대한 실망이 커진 탓인지 모르겠지만. 추미애 장관이라면 한다. 해내고 말 것이다. 더욱 최근의 모습에서 신뢰를 가지게 된다. 추미애가 아니면 누구도 하지 못한다. 기대가 크다. 반드시 이번에는 해내야 한다. 

잠깐 2019년의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물론 유치원 3법이 발의된 건 전해인 2018년이었다. 그리고 지역유지들이기도 한 유치원 원장들의 영향력을 두려워 한 다른 국회의원들이 몸을 사리는 사이 박용진이 앞장서서 발의한 것도 맞았다. 그런데 유치원 3법이 본회의를 통해 최종 의결된 것도 모두 박용진 한 사람의 힘이었는가. 유치원 3법을 둘러싼 민주당과 당시 자유한국당의 갈등은 무엇이었고, 패스트트랙에는 어떻게 올려진 것인가?

 

2018년부터 유치원 3법이 패스트트랙에 올려진 2019년 초까지 언론의 보도를 보면 가관도 아니었다. 그나마 중립적이라는 JTBC와 KBS 정도가 당시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유치원 3법을 두고 충돌하는 것을 그나마 기계적 중립이랍시고 양시양비에 흔한 정치싸움으로 보도하고 있었고, 나머지는 아예 민주당에 오로지 적대적인 기사만 쏟아내고 있었다. 그래서 유치원 3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국회에서 수도 없이 논의하고 토론하고 때로 정치적인 갈등과 충돌까지 빚어가며 끝내 법안을 패스트트랙에 올린 민주당의 노력은 아예 배제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민주당은 오로지 자유한국당과 정치싸움만 했을 뿐이고 유치원 3법은 오로지 박용진 한 사람의 공이다.

 

사실 보수언론이 아주 잘하는 짓거리다. 민주당이 뭔가 잘해서 평가해야 할 때 민주당을 칭찬할 수 없으니 민주당 안에서 자기 목소리를 낼 것 같은 인물을 찾아 대신 칭찬하며 부추기는 것이다. 민주당에서 너만 진짜다. 너 한 사람 말고 다른 민주당 정치인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네가 결심만 하면 더 클 수 있다. 대개 민주당 내부의 분탕종자들은 그렇게 언론이 키우고 부추겨서 자기가 무슨 대단한 거물급 인사라도 되는 양 설치던 인간들이었다. 심지어 자기를 대선후보급으로 여기던 인간들도 있었는데, 당연히 실제와 상당히 거리가 있는 자기도취에 지나지 않았기에 결과는 모두가 아는 그대로다. 당시 그리 언론이 띄워주던 분탕종자들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 지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여기서 뽕이 제대로 들어간 것이다. 유치원 3법은 오로지 자신의 공이다. 자기가 잘나서 유치원 3법을 발의도 하고 입법도 한 것이지 민주당은 그저 자신을 따라 온 것 밖에 없다. 삼성도 자기가 저격해서 타격을 주지 않았는가. 자기와 비교하면 민주당 안에 제대로 된 인물이 누가 있는가. 이 비슷한 심리상태의 인물로 국회 밖에 서민이라는 기생충학자가 있을 것이다. 언론이 자꾸만 자기를 추켜세우니까. 자기가 진짜 대단한 인물이라고 연일 기사를 써 주니까. 금태섭도 비슷하다. 언론이 금태섭의 말을 받아써주기 전까지 아무리 금태섭이라도 당론까지 무시하고 막나가는 모습을 보이거나 하지는 않았었다. 어차피 당 없어도 나 정도 되는 인물이라면 어디서든 환영하며 받아 줄 것이며, 오히려 민주당이 자기를 중심으로 바뀌지 않으면 박차고 나가는 쪽이 자신이 큰 인물로 거듭나는데도 더 도움이 될 것이다. 더구나 박용진은 바로 국민의힘에 자신을 공천했던 김종인이 대표로 있는 것이다. 차라리 김종인에게로 가 볼까?

 

몇 번이나 말했지만 자칭 진보인사들에게 가장 하찮고 경멸스러운 것이 보수도 진보도 모두 진짜가 아닌 민주당이란 가짜정당인 것이다. 보수라기에도 어설프고, 진보라기에는 한참 모자르고, 더구나 하는 것 없이 모든 것이 무능하고 무기력하게만 보인다. 그에 비해 진보는 자기들이, 보수는 저들이 진짜가 아니던가. 자신들만이 진짜 대한민국의 주도세력인 것이다. 민주당과 하나로 불리는 건 그렇게 치욕스러운데 국민의힘과 하나로 불리는 건 전혀 아무렇지 않다. 더구나 이제는 자기 혼자 힘으로도 얼마든지 국회의원 배지 쯤은 달 수 있게 된 터이기에 민주당이란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짐일 수 있는 것이다. 민주당은 틀렸고 내가 옳다. 정확히 민주당만 아니면 모두 옳은 것이다. 박용진의 최근 행보가 정의당의 그것과 닮아 있는 것도 전혀 우연은 아니란 것이다. 국민의힘과 손잡고도 자기 정도면 얼마든지 자신이 추구하는 진보적인 정치를 현실에서 구현할 수 있다.

 

문제는 실제로 박용진이 그럴 급이 되는 인물인가 하는 것이다. 유치원 3법은 패스트트랙에 올릴 것을 결정하고 실행에 옮긴 지도부와 그를 위해 다른 야당들을 설득해서 공조를 이끌어낸 원내대표의 공이 오히려 더 클 수 있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의 강경한 반대주장에도 패스트트랙이라는 돌파구를 찾아내고, 그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 필요한 행동들을 실제 앞장서서 해 낸 민주당 지도부와 다른 국회의원들의 공이 작지 않은 것이다. 단지 보도하지 않을 뿐이다. 민주당이 자유한국당과 싸우면 단순한 정치싸움이 되어야 하기에 그래서 박용진만 남아서 그 모든 공을 가져간 것 뿐이다. 어쩌면 박용진 자신도 알고 있을 지 모른다. 그러나 언론들이 자신의 편에만 서 준다면 어쩌면 가능하지 않을까. 그래서 굳이 조선일보가 좋아할 말과 행동만 골라서 보이고 있는 것이기도 할 터다. 정의당이 조선일보 좋아할 말과 행동들만 골라서 보여주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래봐야 쓸모가 다하면 조경태처럼 언론에 의해서도 철저히 잊혀질 분이다.

 

아무튼 그래도 박용진 개인으로 보면 지금보다 좋은 때가 없었을 것이다. 무려 자기가 40대 기수로 차기 유력 대선후보로 언론에 의해 조명받는 상황이란 것이다. 감히 꿈이나 꾸었을까. 국회의원 배지 한 번 달아보지 못하고 주변에서 낭인으로 전전하던 시절 감히 상상도 해보지 못한 상황인 것이다. 그래서 더 날뛰는 것일지도. 언론이 밀어주겠다, 김종인이란 비빌 언덕도 있겠다. 딱 그런 놈들만 잘 골라서 띄워주고 이용하는 것도 조선일보의 능력이라면 능력일 것이다.

 

그냥 늘 해 오던 일들의 반복인 것이다. 그렇게 열린우리당도, 이후의 민주당들도 언론이 키운 내부의 분탕종자들에 의해 자기들끼리 싸우는 무능한 정당이라는 인상만 강화시키고 말았었다. 다만 차이라면 당시는 내부에서 동조하는 놈들도 적지 않았는데 이제는 박용진과 정성호 등 그야말로 한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민주당을 벗어나고 싶은 것인지도. 이철희도 한겨레와 손잡고 개짓거리 하더만. 이번에도 과연 먹힐 수 있을 것인가. 다행히 박용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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