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시절 나는 한겨레를 진보언론이라 믿었었다. 경향은 그보다 더 중도적인 합리적인 언론이라 여겼었다. KBS는 공영방송으로서 다른 어떤 언론보다 무미건조하게 오로지 사실만 전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들 언론들이 한목소리로 비판하고 나서면 나 역시 따르게 되는 경우가 많았었다. 아무리 이 정도 언론들이 나서서 비판하면 그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지금은? 한겨레 경향이 언론이면 조선일보가 정론이다.

 

지금 한겨레나 경향이 무어라 정부를 비판해봐야 그런 게 있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란 것이다. 저널리즘 토크쇼J나 댓글읽어주는 기자 등에서 언론비판도 하고 4차언론혁명 어쩌고 떠들어봐야 오히려 혐오감만 더 깊어질 뿐이란 것이다. 그래서 과거 한겨레와 경향을 신뢰했으니 지금도 한겨레와 경향을 내가 신뢰해야 하는가? KBS를 신용하고 있었으니 지금도 KBS를 신용해야 하는가? 언론의 자유란 무엇보다 소중하다 여겼던 과거의 나 자신에 대해 오늘 싸지른 설사를 집어던지는 중이란 것이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고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와 다르다. 그래서 뭐? 사람이 한 입으로 두 마디 세 마디 하는 게 당연한 거지 어떻게 평생 한 가지 주장만 하는가?

 

유명 화가가 그린 미공개 작품이 발견되면 그림의 구도나 구성, 붓의 터치 등을 종합해서 그려진 시기를 유추하기도 한다. 같은 작가가 쓴 시와 소설도 시기마다 각각 개성이 다 다르다. 그래서 사람인 것이다. 서 있는 위치가 달라지면 보이는 풍경도 바뀌게 된다. 나이를 먹으며 키도 자라고, 눈도 나빠지고, 혹은 사랑도 하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으며, 승진도 하고, 실직도 하고, 누군가를 잃은 상실감에 울기도 한다. 그때마다 보이는 풍경이 항상 같을 것인가. 가장 강경하게 노동운동을 하던 활동가라고 정작 정부부처에서 장관이 되면 그때 주장하던 정책들을 온전히 행동에 옮길 수 있을 것인가. 심지어 저 원균조차도 이순신 장군이 파직당할 당시까지 자기라면 부산으로 바로 진격할 수 있겠다 큰소리치다가 정작 대신해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되고 나니 권율에게 곤장을 맞기까지 못하겠다며 버티고 있었다는 것이다. 학자일 때 다르고, 시민운동가일 때가 다르며, 청와대 참모인 때와 장관일 때가 다르다. 그게 왜 문제가 되는가.

 

정부 정책이 어떻게 돌아가는가도 잘 모르던 학자시절에 모르고 떠든 소리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그래서 너무 하찮다는 것이다. 내가 직접 물류일을 해보기 전과 해보고 난 뒤에 물류에 대한 내 인식부터 얼마나 달라져 있는가 말이다. 노가다를 직접 뛰어보기 전과 뒤의 노가다에 대한 내 생각도 그만큼 많이 달라져 있다. 공직을 맡지 않았어도 과거 자기가 알던 사실이나 혹은 자기가 추구하던 논리나 지향과 많이 달라져서 주장이 달라졌다면 달라진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지 과거 말을 이유로 그를 폄훼하는 건 의미가 없다. 지금 위치 쯤 되니 달리 보이고 그래서 다른 결론도 내리게 된다. 그런데 다른 분야는 다 그게 허용되는데 어째서 민주당에는 용인되지 않는 것일까.

 

조로남불이라는 말이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언행일치란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추구한 가치이면서 정작 대부분 사람들은 지키지 못한 원칙이었단 것이다. 말 그대로다. 선 위치가 다르고, 사람이 달라지면 보이는 것도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도 모두가 달라지는 법이다. 어제 한 말과 오늘 하는 행동이 다르다는 게 무슨 대단한 의미가 있겠는가. 결혼하기 전, 자식을 낳기 전, 자식이 자라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 하던 생각은 이후의 생각과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20대 시절 내가 믿건 가치대로라면 나는 벌써 죽어 시체가 되었어야 옳다. 40세 이후의 나 자신은 생각조차 해 본 적 없으니.

 

중요한 것은 인과관계다. 그리고 당위다. 과연 정의의 관점에서 그 주장이 타당하고 옳은가. 그러한 주장의 변화 과정에서 납득할 수 있는 개연성이 제시되었는가.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과거와 다른 주장을 해도 납득하게 되는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일관적인 주장을 펴는데 이해가 안되는 것이다. 예전 이런 주장을 했었는데 지금은 어째서 달라진 것인가 묻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는가. 인간의 지성이란 본능이 아니다. 안타까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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