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도광제는 중국의 역대 황제들 가운데서도 청렴하기로 손꼽히는 인물이었다. 황제임에도 낡은 옷을 수선해서 입으며 황궁의 예산까지 20만냥을 넘지 않도록 했으니 여러모로 조선의 영조와도 비견되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오죽하면 대신들조차 채소장수와 흥정을 한다는 조진용이나 청렴으로 이름높은 고기야 무장가 같은 이들이 총애받았다는데, 과연 그렇게 청렴한 이들로 채워진 조정이란 얼마나 나라를 바르게 부강하게 이끌었을 것인가. 참고로 건륭제 재위말부터 쇠락하기 시작한 청은 도광제 재위기에도 오히려 몰락을 가속화하고 있었다.

 

청렴을 과시하기 위해서 일부러 몇 배나 되는 비싼 돈을 주고 낡은 옷을 사서 입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나라의 대신이란 내 주머니를 위해 채소장수와 흥정하는 자리가 아닌 채소장수의 주머니도 채워줄 정책을 고민하는 자리여야 하는 것이다. 나라의 대신이란 이가 돈 얼마 아끼겠다고 백성과 이익을 다투는 순간 백성은 더이상 목적이 아닌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런데도 오히려 채소장수와 흥정을 해서 돈 얼마 아낀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과연 제대로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할 만한 위인이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미 가진 재산이 있고 누리는 것들이 있는데 일부러 안 가진 척, 누리지 않는 척 남들 앞에서만 아닌 척 살아간다는 자체가 이미 위선인 것이다. 그 수고와 그 노력과 그 비용과 그 시간을 차라리 진짜 백성들을 위하는 일에 쓴다면 더 나라를 위해 도움이 될 것이다.

 

당연히 더 비싼 옷이 좋은 것이다. 더 비싼 스마트폰이 기능도 많고, 더 비싼 태블릿이 쓰기에도 더 좋고, 더 비싼 노트북이 보안이나 성능에서 여러모로 유리하다. 이코노미석을 이용하며 얼마간 비행기값을 아끼는 것보다 퍼스트클래스에서 보다 편안하게 이동중에도 업무를 보는 쪽이 더 이익일 수 있다. 더 크고 좋은 집에서, 더 편안하고 안락한 환경에서, 더 영양많고 맛도 좋은 음식을 맛보면서, 필요하다면 운전기사를 따로 두고 이동간에 차안에서 업무도 볼 수 있다. 그러니까 그래서 뭐가 문제란 것인가. 좋은 가방을 샀으니 기분도 좋고, 혹은 쉬는 날 요트를 타고 바다를 누비니까 한 주의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고, 이름난 디자이너의 멋진 옷을 샀더니 왠지 어깨가 으쓱거린다. 자식의 장래를 위해서 법이 허용한 범위 안에서 좋은 과외교사도 붙여주고, 좋은 학원도 알아봐 주고, 보다 진학에 유리한 학교에도 보내준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공인으로서 얼마나 공적인 일들에 충실했는가.

 

원래 가진 것이 많아서 그만큼 누리고 사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공직에 있으면서 자신의 직분과 권한을 이용해서 따로 사익을 편취하지 않았다면 원래 가진 것으로 얼마나 사치스런 삶을 살든 전혀 문제될 것은 없는 것이다. 어차피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 형편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나름대로 자기만의 사치를 누리며 살아간다. 어제보다 오늘 수입이 더 좋으니 기왕에 먹는 술 더 좋은 것으로 먹어 보겠다. 안주도 조금 더 비싼 맛난 것으로 먹어 보겠다. 그러니까 내 여건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나 자신을, 내 가족을 위해 이것저것 다양하게 많은 것을 해보고 누려도 보겠다. 뭐가 문제인가. 다만 그를 위해서 자신의 공적인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집안에 돈이 수 십억 있다. 그래서 합법적으로 벌어들인 재산이면 전혀 문제될 것 없는 것이다. 그 돈을 자식이나 손자들에게 증여의 형태로 물려주고 싶다. 세금만 제대로 냈으면 역시 문제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증여는 하고 싶은데 세금은 내고 싶지 않다. 5천만원까지는 원래 세금 없이 증여가 가능하다. 그래서 뭐? 공인이니 돈 수 십억 있어도 죄다 기부해야 하고, 대학교수인데 옷도 기워서 입어야 하며, 충분히 그럴 능력이 되는데 자식들을 능력이 안되는 이들처럼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고 있어야 하는 것인가. 과연 돈이 있어 그 돈을 충분히 쓰면서 사는 삶이란 것이 도덕적으로 얼마나 문제가 되어야 하는 것인가. 인맥이 있어 그 인맥을 자식을 위해 쓰는 것이 또한 도덕적으로 얼마나 문제가 되어야 하는 것인가. 도덕적인 문제이기는 한 것인가.

 

역시나 왜곡된 유교문화의 유산일 것이다. 전에도 말했던 대동사상의 부작용이기도 하다. 공사의 구분이 없다. 공적인 것이 사적인 것이고, 사적인 것이 공적인 것이다. 개인이 번 재산을 개인이 쓰는 것마저 공적인 것이 되고, 공인으로서 공무를 보는 것마저 사적인 논리로 이해하게 된다. 조국 전장관에게 씌워진 위선이라는 낙인의 정체인 것이다. 대학교수라니까. 20대 때부터 이미 대학교수였었다. 부인은 친정에 재산이 적지 않아 유산도 상당히 받았었다. 대학교수로서의 인맥과, 자신들이 가진 경제적 사회적 지위에 어울리는 환경들로 인해 가능해진 많은 것들이 있는 것이다. 그것들을 모두 거부해야 비로소 위선적이지 않은 삶인가. 청렴하고 올바른 삶인 것인가. 백사 이항복이 청백리로 이름높은 인물이었지만 집안의 재산까지 다 내놓고 빈곤한 삶을 살았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 가난해서 청백리가 아니라 부정한 재물을 탐하지 않아서 청백리인 것이다.

 

도덕이라기보다는 그냥 편견이고 이기인 것이다. 내가 못하니까. 내가 할 수 없으니까. 평범한 서민이 조국과 같은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인가. 조국 전장관과 같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그 자식들처럼 기회를 누릴 수 있을 것인가. 그게 자본주의니까. 자본주의 이전에 인간의 삶이었다. 막걸리도 심지어 한 병에 만 원이 넘어가는 것이 있더라. 증류식 소주는 한 병에 몇 만 원이 기본이다. 야, 저런 건 어떤 돈많은 놈들이 사먹는 것일까? 그래서 자기 돈 많아서, 혹은 좋아해서 그런 걸 사먹는다고 도덕적으로 뭐라도 대단한 문제가 있다는 것인가. 자기 돈 많아서 수 천만 원짜리 가방을 사고, 수 억짜리 장신구를 하고, 수 백억을 호가하는 대저택에 산다면 그래서 공적으로 무슨 해악이 있다는 것인가. 돈이 있어서 법이 허용한다니 펀드에 가입하고, 인맥이 있어서 입시에 도움이 된다니 인턴도 하고, 남이 하지 못하니 부도덕하다? 도대체 학교 다닐 때 도덕에 대해 뭘 배운 건지 의문이 들 정도다. 수능에 요즘 도덕이 포함이 안되는 것일까?

 

금태섭의 증여든, 손혜원의 증여든, 조국의 증여든, 결국 세금만 제대로 냈으면 전혀 아무 문제도 없는 일상적 행위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돈 많은 것이 죄가 아니다. 돈 많은데 없는 것처럼 속이고 사는 것이 오히려 위선이지 내가 가진 만큼 누리고 쓰고 사는 것이 도덕적으로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공인으로서 얼마나 자신의 공적인 역할을 책임을 가지고, 오로지 사심없이 수행했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이 공인으로서의 책임이고 도덕성이다. 위선을 말하려면 그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다는 소리가 돈 많고, 인맥 많고, 그 모든 것을 누리며 살았다. 배아픈 걸 도덕이라 말하는 것은 오히려 파렴치한 것이다. 

 

유시민의 평가가 적절하다. 조국은 성인이 아니었다. 오로지 무소유의 청렴한 삶을 살았던 역사적인 위인과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금태섭 논란을 보며 새삼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다 쓸데없다. 쓸데없는 시간낭비 노력낭비 비용낭비란 것이다. 조국에 대해 들이댄 도덕적 잣대를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하려면 도대체 개인들은 어떤 삶을 살아야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이 된다는 것인가. 32인치 4K모니터 쓰는 나는 24인치 HD 모니터 쓰는 사람을 위해 항상 고개숙이고 살아야 하는 것인가. 도덕의 기준부터 다시 설정해야 할 것이다.

 

아무튼 어느 시대든 공직을 맡을 정도면 어느 정도 이름도 알려져 있고 그만큼 명성과 재산을 모두 갖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더이상의 재물을 부정하게 모으지 않아 가난한 것은 그럴 수 있다 치지만 원래 가진 재산이 많은데 그 재산마저 다 처분하고 가난하게 살아야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인가. 그래야 공직자로서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것인가. 그 기준부터 다시 묻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도광제는 중국역사상 가장 훌륭한 황제였는가. 그 기준마저도 일관되지 않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조국사태에 대한 소회다. 전에 한 번 썼었던가.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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