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융을 돕겠다고 공손찬의 명령으로 북해로 향했던 이후 유비는 단 한 번도 누군가의 휘하에 있어 본 적이 없었다. 하긴 공융도 근거지를 잃고 허도에서 관직생활을 하면서도 조조의 휘하에 있지 않았었다. 이미 한 세력을 거느려 본 이라면 설사 다른 이의 밑에 있더라도 온전히 휘하로 여길 수 없다. 그래서 원소 밑에 있을 때도, 유표에게 의탁했을 때도 유비는 여전히 독립군벌로써 객장의 위치에 있었던 것이었다. 

 

현대정치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힐러리의 위상 역시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이 아닌 장관에 취임을 요청한 당내의 유력인사로써 매우 남다른 위치에 있었다. 민주당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클린턴 전대통령의 영부인이며, 오바마의 대선경선 경쟁자였으며, 여전한 민주당의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였기에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장관으로 있을 때도 상당히 독자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었고, 장관에서 물러난 것도 차기 대선을 위한 준비를 위한 사임이었지 경질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처음 오바마가 제안한 것도 장관이 아닌 부통령이었다. 부통령 정도가 힐러리의 위상에 적합하다. 이마저 여러 이유로 불발되고 결국 감당 못할 장관이 되어 버렸지만.

 

법무부장관에 취임하기 전 추미애의 위상도 크게 다르지 않았었다. 오히려 힐러리보다 높으면 높았지 낮다고 할 수 없었다. 문재인이 민주당에 입당하기 한참 전부터 김대중 전대통령에 의해 영입되어 국회의원이 되었었고, 문재인이 대선에 처음 출마하던 당시에도 이미 4선의 중진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문재인은 대선후보로 거론되고는 있지만 겨우 처음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던 초선에 지나지 않았었다. 무엇보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도 아니고 여당의 대표가 대통령의 아래일 수는 없는 것이었다. 5선의 중진에, 당대표까지 역임했으면 이제 남은 것은 국회의장이나 대선, 그나마 많이 양보해서 서울시장 정도라는 것이다. 그런데 국무총리도 아닌 고작 장관의 자리에 앉히고 있었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대통령이 임명한 것이 아니라 장관으로 초빙하여 허락 아래 절차를 밟은 경우란 뜻이다. 대통령의 지시를 받는 아랫사람으로 임명한 것이 아닌 같은 정당의 동지로써 같은 목적을 위해 도와달라 요청한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그 거취를 함부로 한다?

 

이낙연이나 정세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다른 국무총리들과 다르다. 특히 정세균은 이미 국회의장까지 지낸 바 있기에 더욱 그 위상이 대통령보다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국무총리에게 대통령이 지시를 내리고 거취까지 마음대로 정한다? 아예 당을 적으로 돌릴 생각이면 가능하다. 아예 여당의 협조를 구하지 않을 생각이면 가능하다. 아예 당내의 족보를 박살낼 생각이면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당내에서 추미애 장관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는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한둘은 있을 수 있다. 원래 추미애 장관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가졌던 개인들. 그러나 5선에 전당대표면 민주당 국회의원들이라고 함부로 뭐라 말하는 자체가 불경이 되는 것이다. 최근 정치가 근본이 없어져서 그렇지 예전에는 당이 다르더라도 그 정도 되면 서로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것이 있었다. 그러면 무엇인가? 한 마디로 추미애 꼴보기 싫으니 제발 치워달라는 하소연이라 할 수 있다.

 

대통령이 결단해야 한다. 대통령이 해결해야 한다. 대통령도 안된다. 그럴 문재인 대통령도 아니지만, 문재인이 아니더라도 다른 어느 대통령이 되었든 추미애 정도 되는 위상을 가진 인물을 장관에 앉혔으면 그때부터 그 자리는 내 손을 떠나 있는 것이다. 알면서도 너무 답답해서 하소연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모르는 것이거나, 그도 아니면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거나. 그래서 추미애 장관이 검찰개혁의 적임자이기도 한 것이다. 아무리 검찰과 언론과 야당이 흔들어봐야 대통령이 흔들린다고 추미애 장관만 흔들리지 않으면 되는 위치이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추미애 장관을 물러나게 하려면 추미애 장관을 직접 공격해야 한다. 그래서 자식문제까지 끄집어냈던 것이지만 과연 통했는가.

 

재미있는 건 생물학적 여성이라고 그렇게 박근혜를 싸고 돌던 여성주의자들이 그러나 추미애 장관에 대해서는 같은 여성으로서의 동질감을 그다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부분일 것이다. 추미애 장관은 남자인 것일까? 오히려 여성인 추미애 장관보다 남성인 윤석열의 편에 있는 듯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윤석열의 진짜 비밀인 것일까? 결론은 떠들어봐야 기차는 간다. 똥이 더럽다고 사람은 피해도 탱크는 뭉개고 간다. 그게 추미애란 인물이다.

 

아무튼 요즘 부쩍 추미애 장관에 대해 관심이 커지는 중이다. 이낙연은 너무 소심하고, 이재명은 너무 가볍고, 추미애 정도의 뚝심이면 적당한데. 아마 차기 대선후보로 추미애를 지지하는 아주 소수 가운데 하나이지 않을까. 그만큼 이낙연에 대한 실망이 커진 탓인지 모르겠지만. 추미애 장관이라면 한다. 해내고 말 것이다. 더욱 최근의 모습에서 신뢰를 가지게 된다. 추미애가 아니면 누구도 하지 못한다. 기대가 크다. 반드시 이번에는 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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