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대선후보로 윤석열을 미는 야권 지지자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있다. 문재인 구속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 국무회의 위원들, 그리고 민주당의 유력인사들에 대한 수사와 처벌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과거의 비극이 반복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왜? 자기들 대통령이 죄를 짓고 감옥에 있으니까.

 

복수다. 자기들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감옥에 갔다. 자기들 대통령이 유죄판결을 받고 옥살이를 하고 있는데 민주당 대통령이라고 무사해서야 되겠는가. 그래서 조국 이래로 윤미향이나 추미애, 강기정 등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저들은 항상 박근혜 정부의 인사들을 소환하고는 했었다. 검찰이 정경심 교수 결심공판에서 되도 않는 국정농단을 떠들어댄 이유였다. 자기들이 박근혜 정부 수사하듯 조국 전장관도 수사해서 감옥에 보낼 것이다. 대통령도 수사해서 감옥에 보낼 것이다.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간절한 호소였다.

 

문재인 대통령을 수사해서 감옥에 보낼 사람이 누구인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박근혜에 그랬던 것처럼 죄인의 낙인을 찍어 모욕주고 처벌도 할 주체가 누구일 것인가. 이미 자신들로 인해 문재인 대통령은 박근혜와 같아졌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박근혜와 새누리당 이하가 되어 버렸다. 서민이 자신있게 국민들이 멍청해서 국민의힘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다 말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검찰이 있는데. 검찰이 수사하고 있는데. 그런데 감히 문재인 정부나 더불어민주당이 여기서 더 버틸 수 있을 것인가. 내일이라도 바로 모든 죄상이 드러나고 정권이 붕괴되며 감옥에 가거나 아니면 노무현 전대통령처럼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정의당과 한겨레, 경향, 혹은 진중권 류의 자칭 진보들이 윤석열 검찰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재미있지 않은가. 검찰의 저같은 호소에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반응한 것은 국민의힘이 아닌 정의당과 자칭 진보들이었다. 아예 국개론까지 시전하며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민주당보다 높아야 당연하고 정권교체도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잊고 있는 사실이다. 노무현 전대통령이 돌아갔을 때 가장 앞장서서 죽창을 휘둘렀던 것은 바로 자칭 진보들이었다. 노무현이 죽어야 진보가 산다고, 참여정부가 부정되어야 진짜 진보가 살아날 수 있다고 사명감에 불타 완장까지 차고 앞장섰던 것이 바로 자칭 진보들이었다. 당시 노무현 전대통령의 비참한 최후를 전해듣고 한겨레 편집국에서 환호성이 들렸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란 뜻이다. 경향일보는 지금도 한결같이 죽을 사람 죽었다는 입장일 것이다.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면 반드시 문재인을 죽이거나 감옥에 보내고 민주당을 박살낼 것이다. 그리고 비슷한 무렵 정의당의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대한 공세가 강화되었다. 한겨레 등 자칭 진보들의 추미애 장관에 대한 공격이 집요해지고 있었다.

 

아무튼 그런 맥락인 것이다. 어째서 하필 다른 사람도 아닌 박근혜를 수사해서 감옥에 보낸 당사자인 윤석열인 것인가. 보수지지자들이 어째서 자기들 대통령을 감옥에 보낸 윤석열을 차기 대선후보로 지지하게 된 것인가. 일단 박근혜가 잘못한 건 잘못한 거고, 잘못한 것을 떠나 웬 듣보잡 여편네에 휘둘린 자체가 얼굴을 들기 힘들 정도로 부끄러운 일이란 것이다. 그러니까 일단 박근혜의 잘못은 인정하고 대신 문재인을 죽이자. 문재인을 감옥에 보내자. 저들의 결의다. 김종인이 그래도 고수란 이유다. 복수만 가지고는 차기 대선에서 이길 수 없다. 박근혜의 복수를 하고 싶은 이들만으로는 차기 대선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증오와 혐오에 이성을 잃은 놈들은 벌써 미쳐 날뛰고 있는 중이란 것이다. 안철수의 신당창당론이나, 정의당의 국민의힘에 대한 구애, 그리고 자칭진보들의 검찰찬가는 바로 그것을 말해준다.

 

무슨 의미인가? 차기 대선이야 말로 문재인 대통령을 지키는 선거란 것이다. 아니 문재인 대통령 뿐만 아니라 민주당을 지키는 선거다. 그래서 이재명을 신뢰하지 않으면서도 그런 이재명조차도 선거에서 이길 수만 있다면 경선을 통해 정당하게 민주당의 후보로 선출될 경우 얼마든지 내 표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같은 비극을 반복해서는 안된다. 다시 민주당의 대통령을 저들의 먹잇감으로 내주어서는 안된다. 더이상 민주당이 집권을 꿈꾸지 못하는 상황으로까지 내몰리게 될 지 모른다. 사실 그런 걸 더 바라고 자칭 진보는 윤석열을 미는 것이겠지만. 그러니까 어째야 하는가? 이겨야 한다. 윤석열이 차기 대선후보로 나서든 아니든 저들이 진정 바라는 것은 복수고 응징이고 멸절일 테니까.

 

전쟁은 시작된 것이다. 작년 조국사태는 저들의 선전포고였다. 그리고 올 총선을 거치면서 진용이 대충 가려지게 되었다. 그것이 윤석열 대망론이란 형태로 표출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누구라도 좋다. 다만 지금으로서 가장 적합한 인물은 윤석열인 것이다. 지금까지 보여 온 모습으로 가장 훌륭하게 역할을 해낼 적임자는 윤석열 말고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홍준표라고 다를까? 오세훈이라고 다를까? 그나마 김종인은 상식이 있는 인물이니 다를지 모르겠다. 문재인을 죽이는가? 죄인으로 만들오 감옥으로 보내는가? 민주당을 망하게 할 것인가? 그래야 사는 놈들이 있다는 것이다.

 

다행인 것은 그런 복수를 꿈꾸는 야권 지지자가 아직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윤석열에 대한 지지 가운데 아직 살아있는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는 강직한 검사로서의 이미지를 믿고 있는 이들을 제외하면 그 수는 그리 많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김종인이 윤석열을 대놓고 무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자칭 진보들에 대한 경계도 늦추어서는 안된다. 죽느냐 사느냐. 방심한 순간 모든 것은 끝나고 만다.

 

이낙연에 대한 실망이 커져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저들은 죽이려는 싸움을 하고 있는데 이낙연은 자기 몸에 오물이 묻는 것만 두려워하고 있다. 전쟁이라면 마땅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 아직 그런 절박함이 없는 것인가. 추미애에게 기대를 걸어볼까? 이재명은 역시 아직 믿음이 가지 않는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정의당이 노동존중의 정당이라며 본받으라 한 국민의힘에서 서민이 차기 서울시장으로 추천한 윤희숙이 재미있는 소리를 지껄였네. 그런데 원래 한겨레 경향은 현정부의 주 52시간제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자기들 성에 차지 않는다.

 

그러고보니 서로 맞는다. 정의당도 반대였다. 한겨레 경향도 반대였다. 민주노총도 반대, 자칭 진보지식인들도 반대, 그러니까 국민의힘 윤희숙도 반대하는데 노동존중의 정당에 차기 서울시장감이다. 아귀가 딱 들어맞지 않은가.

 

진보가 바라는 것은 점진적인 변화가 아니다. 한 걸음씩 발전해 나가는 게 아니다. 한 번에 다 뒤바꿔야 한다. 그러러면 어떻게 해야 한다? 윤석열, 나경원 같은 주류들을 설득해서 인정받아야 한다. 이를테면 이성계가 백성들을 위한 훌륭한 정책을 펴겠다 약속했어도 공양왕이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하도록 설득하려는 정몽주의 마음과 같은 것이다. 진짜가 정책을 펴야지 가짜가 그래서야 되겠는가.

 

그래서 국민의힘은 민주당도 본받아야 할 노동존중의 정당인 것이다. 윤희숙은 자칭 진보가 추천하는 차기 유력 서울시장 후보인 것이고.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남성이 아닌 여성을 봐야 한다는 말이 있다. 부계가 아닌 모계를 보면 오히려 더 쉽게 역사를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모계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면 자칭 진보에 모계란 무얼까? 무엇이 그들에게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역할을 할까? 이미 다 했던 이야기라.

 

전태일 열사의 동생이 진보정당이 아닌 민주당에 몸담은 이유가 있었다. 과연 지금 진보에 노동이란 존재하는가. 있다면 국민의힘이 노동존중의 정당이란 헛소리가 나오지 않았을 테지. 갈수록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병신새끼들이다.

국민의힘 국토교통위 소속 의원들 가운데 택배기사들을 위한 생활물류법에 찬성한 사람이 10명 중 한 명이었네. 말은 참 잘해요. 과연 정의당이 생각하는 노동이란 무엇인가? 하긴 택배기사들은 개인사업자들이지.

 

노동이란 마르크스가 정의한 육체노동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일단 자기소유의 몸과 마음, 정신, 지능 등 무엇이든 수단으로 삼아 돈을 벌면 그것이 바로 노동이다. 경영자라고 노동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러고보니 바로 그것 때문에 운동권 선배들하고 사이가 벌어졌더랬지. 어째서 기업 경영인의 노동은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는가. 평사원이 노동자고 과장이 노동자면 부장도 이사도 사장도 결국 하는 일이 더 고도화되고 전문화될 뿐 크게 다를 수 없는 것이다. 식당을 경영하는 것도, 문방구에서 물건을 파는 것도 결국은 모두가 노동이란 것이다. 노동없이 돈을 버는 자본가란 돈으로 지분만 사서 배당금이나 받아먹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지 자기가 직접 경영도 하고 그를 위해 사방으로 뛰어다니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경영자 한 사람의 역량에 따라 회사가 더 커지기도 하고 망하기도 하며 노동자가 해고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 그만큼 댓가를 지불하는 것도 당연하다. 하물며 자기 몸을 직접 움직여 운전도 하고 물건도 배달하는 택배기사들이야.

 

그런데도 노동존중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이 본받아야 할 노동존중의 정당이다. 정의당이 바라보는 국민의힘이다. 한겨레를 비롯한 자칭 진보들이 바라보는 국민의힘이다. 조국이야 말로 나경원보다 더한 위선자이고, 추미애 아들의 휴가야 말로 윤석열 가족이 받는 의혹보다 더 파렴치한 범죄인 것이다. 조국처럼 살지 않았다는 나경원의 말이 조국의 경우와 너무 다른 언론 및 자칭 지식인들의 태도에서도 그 진심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에 대한 혐오라기보다는 보수정당에 대한 동경이다. 이를테면 월급도 많고 대우도 좋고 사회적으로도 알아주는 조중동에 시험쳐서 떨어진 한겨레 경향 기자들이 보수언론에 대해 가지는 감정 같은 것이다. 이 사회에서 엘리트라 불리려면 보수정당에 몸담아야 한다. 좋은 대학 나오고 좋은 직업 가지고 스펙도 괜찮으면 보수정당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류호정이나 장혜영 나부랭이들은 과연 국민의힘이 받아주기나 할 것인가. 그런 보수정당에서 자기들 법안을 찬성해준다 하니 감격에 겨워 어쩔 줄 몰라 한다.

 

아무튼 덕분에 국민의힘이 아닌 정의당의 정체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저들이 말하는 노동이란, 노동존중이란, 무엇보다 국민의힘에 대한 저들의 맹목적인 감정들에 대해서도. 그래서 자칭 진보언론 진보지식인들이 그렇게 민주당에만 가혹하고 국민의힘에는 무력하기만 하구나.

 

국민의힘이야 원래 그런 정당인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데도 그런 국민의힘에 노동존중이라는 참신한 이미지를 덧씌워주려는 정의당의 헌신은 눈물겹기조차 하다. 국민의힘이 노동존중이다. 자칭 진보의 정체기도 하다. 재미있다.

차기 대통령후보 이낙연에 대한 지지는 치세에 대한 기대가 포함된 것이었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 안에 다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개혁을 궤도에 올리고 차기에는 안정적으로 관리만 하면서 국정을 운영해도 좋지 않겠는가. 그런데 어느새 깨닫게 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단지 시작일 뿐 차기에도 개혁에 저항하는 세력과의 전쟁은 계속될 것이다. 아직 통일도 되지 않았는데 치세의 군주를 기대한다는 것이 과연 가당키나 한가.

 

이재명의 지지율이 계속 이낙연을 상회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재명이라고 뭔가 실질적으로 의미있는 대단한 것들을 이루어내거나 한 것은 아니다. 경기도지사가 그럴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는 그동안 보여 온 말과 행동등을 통해서 문재인 대통령보다 더 사납게 더 호전적으로 개혁저항세력들과의 일전을 치러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지지율에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잘하고 있지만 지금 민주당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뒤를 이어 망나니짓을 할 도살자가 필요하다. 칼춤을 추며 미친 짓을 해 줄 청소부가 필요하다. 그만큼 상황이 위중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낙연의 지나칠 정도로 낙관적인 행보는 그런 이재명에 대한 기대를 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낙연이 욕 안 먹고 체면 지켜가며 절차를 밟아 공수처를 추진하려는 동안 보라,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를. 검찰이 이제 이낙연에 대해서까지 칼을 겨누기 시작했다. 아예 작정하고 이낙연 대표를 옵티머스와 연루하여 수사하며 그 사실을 언론에 흘리는 중이다. 조국 전장관의 경우와 같다. 아마 이낙연은 조국 전장관도, 박원순 시장도, 윤미향 의원도, 추미애 장관도 단지 그들만의 일일 뿐 자기와 아무 상관없다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뭔가 빌미를 줬으니 그런 것이지 그런 빌미조차 없이 철저히 주변을 관리해 온 자기에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저들은 빌미가 있어 그런 것이 아니라 빌미를 만들어가며 그리해 왔다는 것이다. 왜? 전쟁이니까. 이건 상대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는 전쟁이니까. 민주당 정부를 망가뜨리고, 민주당 대통령을 다시 한 번 감옥에 보내거나 죽이지 않으면 다시 자기들이 정권을 잡을 일따위 없을지 모른다. 그러므로 어떤 거짓과 협잡이라도 필요하다면 가능한 동원해 쓰지 않으면 안된다. 이낙연이 혹시라도 차기 대통령이 되면 상대해야 한 대상들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처럼 안이하고 온정적인 태도로 가능할 것인가.

 

이낙연을 차기 대통령감으로 여겼던 나마저 최근들어 회의가 커지는 이유다. 저들은 여전히 수라장에서 죽이는 싸움을 하고 있는데 이낙연은 태평성대에 지키는 싸움만 하려 하고 있다. 그래서 시간의 여유를 주니 어떻게 되었는가. 내가 무고하다고 세상은 무죄로 봐 줄 것인가. 검찰과 모든 언론이 나서서 발악을 해대는데도? 리더가 스스로 수라장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나머지가 오히려 수라장에서 구르게 되는 것이다. 누가 그 더러운 싸움을 오물을 묻혀가며 책임지고 치를 것인가. 이래서 노무현 전대통령은 고건을 차기대통령감으로 부정적으로 봤던 것은 아닐까.

 

혹시라도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면 그때 독자노선을 걸을 생각으로 간보는 것이라면 허튼 생각은 접기를 정중히 충고하는 바다. 이낙연의 차기 대선후보 지지율은 문재인 대통령에 기댄 바가 크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면 이낙연의 지지율도 함께 떨어진다. 그동안 보여준 게 뭐가 있다고. 싸움을 회피만 해서 적을 이길 수 없다. 정치는 전쟁이다. 최소한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이 그렇다. 너무 안이한 것은 아닌가. 실망이 쌓여간다. 

아마 고 노무현 대통령이 로스쿨 도입에 적극적이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가 사법연수원을 매개로 한 검찰과 사법부의 유착을 깨고자 하는 목적이었을 것이다. 원래 행정부인 검찰을 오히려 사법부인 법원이 스스로 자신들과 동류라 여기게 되는 이유였다. 같이 사법고시를 봤고, 사법고시에 합격도 했고, 사법연수원에서 같이 연수도 받았다. 사법연수원 기수가 같으면 서로 있는 곳은 달라도 동기고, 사법고시와 사법연수원이라는 매개로 그들은 그렇게 판검사로 하나가 된다.

 

물론 양승태의 사법농단 이후 법원이 검찰에 제대로 약점을 잡힌 것도 한 몫 했을 것이다. 공개되지 않았을 뿐 양승태의 사법농단에 연루된 판사가 아직 다수 사법부에, 그것도 상층부에 포진해 있을 것이란 뜻이다. 김명수가 법원개혁에 적극적이지 못한 이유도 아마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개혁을 위해 인적청산을 하려 했더니 법원 자체가 아예 사라질 지경이 되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승진한 대다수 판사들이 양승태 라인에 속해 있었다. 한 마디로 양승태 라인 없으면 법원이 돌아가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검찰이 마음먹고 달려들면 기소될 인간들 또한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 원래 검찰과 법원은 한 몸이었으니.

 

일단 사법고시만 합격하면 열쇠 몇 개는 기본으로 따라오는 것이었다. 그렇게 뚜쟁이들 통해서 자연스럽게 혼맥을 통해 주류사회에 편입했던 것이 바로 과거의 판검사들이었었다. 남들보다 공부 잘해서 사법고시 합격했고, 결혼을 통해 그야말로 이 사회의 주류에 편입되었고, 그런데 가만 돌아보니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사법고시와 사법연수원이란 고리로 서로 얽혀 있다. 대단하지 않은가. 엘리트이지 않은가. 자신들이 법을 통해 이 사회를 지배하고 심판한다. 그런데 여기에 양승태의 사법농단으로 목줄까지 잡혔으니 판사는 판사라서, 더욱 검사는 검사라서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한 것이다. 오히려 감히 어디 검사와 판사를.

 

세상에 피의자가 임의제출로 자료를 제공할 가능성이 있으니 증거를 확보하기 위한 압수수색을 기각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피의자가 피의자인 이유는 범죄를 저지르고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며 오히려 은폐하려 하고 있기에 피의자인 것이다. 자수한 것이 아니다. 정의를 위해 스스로 불의를 고발한 것이 아니다. 끝까지 은폐하려 하는 것을 몇몇 언론이 끈질기게 파헤쳐 수사도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검찰총장 어부인이시니까. 하긴 그러니까 자칭 진보들이 윤석열 검찰총장 만세를 부르며 빌붙어 먹으려 하는 것일 게다. 진짜 살아있는 권력이란 검찰이니까. 그런 검찰을 개혁하겠다는 청와대가 얼마나 우스워 보였을까. 검찰이 수사를 시작한 이상 문재인은 이미 죽은 목숨이다. 그래서 한겨레 기자들은 검찰이 수사를 시작한 순간 이미 청와대의 유죄까지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검찰인데.

 

아무튼 그래서인 것이다. 검찰은 사법부가 아니다. 행정부 공무원들이다. 사법부는 법원이며 별개의 존재여야 한다. 오히려 항상 서로 경쟁하는 긴장관계에 있어야 한다. 검찰과 법원이 유착하면 더 큰 피해를 입는 것은 바로 국민들이라는 것이다. 자칭 진보 새끼들이 얼마나 국민을 개똥으로 여기는가. 대부분 그런 유착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힘없는 서민들일 텐데도 오히려 그런 유착을 옹호하며 그 전위가 되려 발악 중이다. 그러니까 검찰과 사법부를 사법고시 단계에서 서로 분리시키자. 나아가 변호사 시험을 절대평가로 바꾸어 더 많은 수를 양산해 내보내면 더욱 검찰과 사법부가 유착할 가능성은 낮아진다. 사회생활 오래 하고 판사가 된다면 대학이라는 학연도 그 의미가 조금은 희석된다.

 

검찰과 법원이 유착하면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가. 하물며 청와대조차인 것이다. 청와대며 현직장관까지도 예외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같은 판사 출신이고 검사 출신이면 이렇게 달라진다. 그에 대한 비판 한 마디 없다. 바로 그토록 입바른 소리만 일삼던 자칭 진보들까지. 로스쿨을 지나 이제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를 더 늘려야 할 때다. 마지막 단계다. 같이 시험을 친 놈이 또 누가 있는지 몰라야 이런 일을 막을 수 있지. 법을 배운 쓰레기들이다. 자칭 법조인이란 것들은.

그래서 내가 말했잖은가. 류호정이 대통령 앞에서 김용균법을 가지고 1인시위한 자체가 국민의힘의 사주를 받았거나 아니면 알아서 추파를 던지려 그런 것일 거라고. 세상에 민주당더러 노동문제에 대해 국민의힘을 본받으라는 개소리를 너무나 당연하게 지껄이고 있는 중이다. 중대재해법의 제정과 관련해서 국민의힘과 연대하려 한다. 그런데 아는가? 류호정이 그토록 1인시위까지 해가며 비판하는 김용균법이 어떻게 그렇게 누더기가 되었는지?

 

그동안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민주당이 얼마나 많은 법안을 만들고 정책을 추진해 왔는가는 깡그리 잊는다. 그 과정에서 어떻게 국민의힘의 전신이던 보수정당들이 집요하게 저지하고 방해해 왔는가도 완전히 무시한다. 당명이 바뀌었으니 별개의 정당이란 것인가. 그러니까 노동자들이여 민주당이 아닌 국민의힘에 표를 주라. 민주당을 지지하는 노동자들이여 민주당을 심판하기 위해서라도 국민의힘에 힘을 실어주라. 노동문제에 있어 그동안 가장 선명한 정체성을 보여 온 정의당이었기에. 그런 정의당이 하는 말이니까. 그러므로 정의당의 기준에서 노동자의 권익을 위한 정당은 민주당이 아닌 국민의힘이다. 국민의힘이 굳이 정의당과 손잡아야 하는 이유고, 정의당이 국민의힘과 연대하며 내줄 수 있는 것이다. 참여정부 장시도 그렇게 왼쪽에서 민주노동당이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을 포위하고 있었다.

 

그런 목적이었다. 그래서 굳이 김용균법이었던 것이었다. 김용균법이 어떻게 그렇게 누더기가 되었는가. 누가 김용균법을 반대했고 끝내 무력화시키고 있었는가. 물타기다. 세척이다. 그러니까 모든 책임은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에 있다. 조만간 노동자의 편에서 기사를 쏟아내는 조중동을 보게 될 지도 모르겠다. 노동자를 외면하는 모순된 진보정권이라는 프레임이면 다시 한 번 자칭진보언론들이 보수언론과 손잡기 아주 좋은 명분이 되어 준다. 홍세화니 뭐니 늙다리들도 죄다 기어나올 테고. 그러니까 말했을 것이다. 저들의 진보란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가고.

 

세상에 국민의힘이 도와준다니 저리 기뻐할 수 없다. 그동안 내내 무시하다가 한 번 힘 실어준다니 세상에 국민의힘보다 노동자를 생각하는 정당도 없는 것이다. 저들이 진정 바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진정한 주인인 보수진영으로부터 인정받고 도움받는 것을. 그게 진정한 진보다. 민주당이 정권을 잡고 입법과 정책으로 이루는 진보는 진보가 아니다. 최저임금인상도 근로시간단축도 보수정당에 의해 이루어져야 가치가 있는 것이다.

 

민주당 2중대 소리는 그리 싫더니면 국민의힘과 손잡는 건 아예 아무 거부감도 없다. 먼저 추파를 던졌으면 비루한 것이고, 뒤에서 이야기가 오간 것이면 비열한 것이다. 그러나 그래도 된다. 정경심 교수가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찾으려는 것을 부정한 것처럼, 조민씨 집을 밤늦게 남자들이 찾아가 문을 두드려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유시민도 이제 정의당에 대한 미련을 버릴 때가 됐다. 그래서 '자유론'을 들고 나온 것 아니던가? 그냥 웃긴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작년 9월 기자간담회에서 조국 전장관이 건장한 남자기자 둘이 딸이 혼자 사는 집에 밤늦게 찾아와 문을 두드리더라는 이야기를 하고 도대체 기자들은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 본 적이 있었다. 그토록 성인지감수성 주장하던 생물학적인 여성기자들도 한 목소리로 말하더라.

 

"기자가 취재하다 보면 그럴 수 있지."

 

대상이 조국 전장관의 딸이 아니었고, 밤늦게 찾아와 문두드린 놈들도 기자가 아니었다고 생각해 보라. 그래도 그 생물학적 여성기자들은 그럴 수 있는 일이라 무심히 넘기려 했을까? 여성이 많이 사는 동네에 남성이 서성이는 것 가지고도 생난리 지랄을 떨어대는 게 바로 그들 생물학적 여성기자들이란 것이다. 그러면서 입만 열면 떠들어대는 게 바로 성인지감수성이다. 그냥 집 주변을 서성인 정도가 아니라 아예 집 문앞까지 찾아와서 문을 두드린 것이다.

 

둘 중 하나다. 조국 전장관의 딸이어서 여성으로 인정하지 못했거나, 기자가 그런 것이어서 그럴 수 있는 일이 되었거나. 뭔 말인가? 언론이 떠들어대는 성인지감수성이란 단지 정치적 레토릭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토록 여성의 인권에 관심이 많은 여성단체, 진보단체들은 어떠한가. 아무리 취재를 위한다고 여성 혼자 - 그것도 민간인에 지나지 않는 젊은 여성이 혼자 사는 집을 남성들이 밤늦게 찾아가 문을 두드리는 것이 아무일도 아니라 생각하는 것인가. 역시 둘 중 하나다. 조국 전장관의 딸이어서거나, 아니면 기자라서거나. 그런데 그 기자란 오로지 현정부를 공격하는데만 혈안이 된 기자다. 같은 고소고발을 당해도 현정부에 우호적인 기자들은 기자협회에서도 나서서 성명을 내거나 하지 않는다. 현정부를 적대하는 기자들만 성명을 내고 보호하려 노력한다.

 

그러니까 말했잖은가. 지금 여성주의란 민주정부를 무너뜨리고 보수정권을 다시 되찾기 위한 정치적 레토릭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래서 진선미 같은 민주당내 여성주의 정치인들도 의심의 눈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민주당과 반대편에 있는 이들만 여성이다. 그들의 인권만 보호할 가치가 있다. 오히려 더 예민하게 더 민감하게 더 공격적으로 지켜져야만 하는 것이다. 민주당은? 하긴 정경심 교수가 시민으로서 자기 권리를 지키겠다는 것 가지고도 손석희 벌레새끼는 지랄거리고 있었지. 손석희 감싸는 개새끼들은 그래서 똑같은 새끼들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민주당이니까 그래도 된다. 나아가 민주당이니까 그래야 한다. 기자는 그래도 된다. 기자니까 그래야 한다. 그 어디에 여성이 있고 인권이 있는가. 그따위 성인지감수성이라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갖는다는 것일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당 지지자들은 성인지감수성따위 귓등으로 들어도 된다. 어차피 저들끼리의 놀음이라.

 

기소의견으로 송치되었다 한다. 명백한 범죄다. 그러나 과연 기자협회가 가만히 있을 것인가. 특히 여성기자협회나 여성단체가 가만히 있을지 궁금해진다. 그리 주장하지 않을까. 성인지감수성은 보호할 가치가 있는 여성만을 보호한다. 그게 바로 지금 이 사회 여성주의의 현실이다. 개소리다. 똥냄새만 풀풀 난다.

일단 부정이든 비리든 범죄가 성립하려면 이해가 존재해야 한다. 누군가 이익을 보거나 손해를 봤다. 당연하게 다른 누군가에게는 손해더라도 부정이든 비리든 저지른 당사자에게는 이익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설계수명이 다한 원전을 조기에 폐쇄키로 하는 결정이 누구에게 어떤 이익을 가져다 주었다는 것인가.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현정부 들어 탈원전과 함께 추진중인 신재생에너지 사업과 연관지어 주장하기도 한다. 현정부의 탈원전 정책에는 신재생에너지와 관련한 이권이 깊이 개입되어 있을 것이다. 이미 이명박 정부 전부터 추진된 신재생에너지 정책에 대해 새삼 공격하는 주장이 늘어난 이유다.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는 것은 현정부와 여당의 인사들이 그쪽 업자들과 유착되어 있기 때문이고, 따라서 탈원전은 현정부와 여당의 거대한 이권사업에 지나지 않는다. 오죽하면 탈원전만 제대로 털어도 대통령을 감옥에 보낼 수 있을 것이란 주장까지 나오겠는가. 

 

아마 윤석열이 노리는 것도 바로 그 부분일 것이다. 원전 조기폐쇄 결정과정의 문제를 신재생에너지 산업과 현정부 사이의 관계와 연결할 경우 정권차원의 거대한 권력형 범죄로 몰아갈 수 있다. 그런데 그게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 오히려 현정부 들어서 태양광 등에 대한 규제가 더 강화되었다. 신재생에너지와 관련한 정책은 이미 훨씬 전부터 조금씩 시행되며 이명박근혜 시절 들어 본궤도에 오르고 있었는데 어떻게 현정부만을 특정해서 그 고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 무엇보다 그렇더라도 원전 조기폐쇄와 태양광 발전과의 사이에 직접적인 고리를 찾아야 할 텐데... 아, 언론을 믿는가? 하긴 검찰이 그렇다면 한겨레나 경향 같은 자칭 진보들도 원전 찬성론으로 돌아서기는 하겠다. 그렇더라도 구체적인 사실을 제시해야 할 텐데 과연 그럴 수 있을 것인가.

 

그러니까 헛짓이라는 것이다. 그보다는 정치공세다. 민주당이 윤석열과 검찰더러 정치질한다 주장하는 이유다. 윤석열이 절대 대선후보가 될 수 없는 이유와 같다. 아무리 재판을 통해 무죄로 판결나더라도 한 번 제기된 의혹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건 심리의 문제다. 사실이 아닌 믿음의 문제다. 그러니까 정부의 탈원전정책에 문제가 있다. 중대한 부정과 비리의 의혹이 있다. 그 사실을 현정부에 비판적인 이들에게 각인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어차피 수사를 해도 처벌도 못할 것을 그냥 이슈용으로 정부를 공격하기 위해 검찰권력을 이용해 액션만 취하는 것이다.

 

도대체 누가 어떤 이해를 가지고 부정한 방법을 동원해가며 원전의 조기폐쇄를 결정했을 것인가. 그러도록 유도하거나 압력을 행사했을 것인가. 그냥 단순히 업무과정에서 오류가 있었다는 정도로는 부족하다. 정책의 성패는 법적인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알면서도 그런다는 점이 더 고약스럽다 할 수 있다. 마지막 발악인 것일까.

 

어떤 대가가 오고 간 것도 아니고, 어떤 특정한 이해가 관여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정책결정 과정에서 판단의 근거 가운데 일부에 오류가 있었다. 오류라 판단할 만한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그조차도 미래에 대한 전망치라면 오류가 오류일 수 없게 된다. 윤석열을 검찰개혁의 적임자라 여기며 지지했던 인간들이 얼마인데. 병신은 답이 없다. 항상 결론이다.

내가 진중권이나 서민 등의 글을 읽지 않는 이유는 다른 것 없다. 읽히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주제로 글을 쓰다가 중간에 뒤집어 엎는 이유도 같은 이유다. 쓰이지 않는다.

 

글이란 생각을 따라가고, 생각은 곧 흐름이다. 조각조각의 생각들이 유기적으로 이어지면서 하나의 구체적인 형상을 만들면 그것이 글이 되고 말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잘 쓰인 글은 그 내용에 대한 이해와 상관없이 잘 읽히는 것이다. 논리가 어떻고 사실관계가 어떻고 따지기 이전에 진짜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쓴 글이기에 쉽게 한 번에 읽히는 것이다. 반면 아무리 내용이 타당해도 억지로 끼워맞춘 글은 읽기가 영 불편하다. 물론 아예 다른 사람이 따라가는 자체가 버거운 사고의 레벨을 가진 인간들도 존재하기는 한다. 이를테면 칸트나 비트겐슈타인 같은 부류들이다. 하지만 그런 경우라면 결국 이해하고 났을 때 희열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마저 없다면 그걸 뭐라 판단해야 할까?

 

글을 쓰다 말고 뭔가 자꾸 말을 지어내려 하면 그건 이미 내 스스로가 나 자신을 설득하는데 실패했다는 증거인 것이다. 이미 다음 문장이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떠올라야 하는데 떠오르지 않는 생각을 억지로 부여잡고 이어붙이려 한다. 그건 이미 내 생각이 아닌 것이다. 그런 건 써봐야 나 스스로도 납득하지 못한다. 그래서 내 글에 욕이 많은 것이다. 자연스럽게 내 생각을 쓰는 동안 머릿속에 떠오른 욕까지 거르지 않고 - 물론 그럼에도 상당부분 순화시켜 곁들여 쓰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경우 내가 쓴 글을 나중에라도 다시 읽게 되면 당시 내가 어떤 감정상태였는지까지 생생하게 다시 떠올리게 된다. 그만큼 솔직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최근의 진중권은 그런 게 없다. 서민의 글은 예전부터도 잘 안 읽혔다. 그래서 아예 이름 자체를 기억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진중권은 몇 년 전까지 동의여부와 상관없이 꽤 잘 읽히는 글을 쓰고는 했던 걸 기억하고 있다. 참 쉽게 읽힌다. 그런데 최근 진중권의 글을 보고 있으면 세 줄을 넘어가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건 뭐 배설도 아니고 진짜 글쟁이로서 고약한 상황이라 봐야 할 것이다. 글의 내용이 아닌 호흡을 중요시하는 내 경우에만 해당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래서 영 읽기 고약한 것이 지금 진중권의 글일 것이다.

 

같은 이유로 김용민이나 이동형이 떠드는 소리를 듣고 있어도 잘 귀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많다. 의도하여 만드는 목소리가 아닌가 의심하게 되는 이유다. 진영과 상관없이 말로 글로 먹고사는 놈들은 그래서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편이다. 그나마 강준만의 진정성을 이해하는 이유는 예나 지금이나 읽히는 느낌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 때문이다. 진심인 것이다. 변절이 아니라 그냥 지금 강준만이라는 개인의 보는 현실과 판단이 그렇다는 것이다. 바로 강준만과 진중권의 차이다. 강준만은 보는 방향이 달라졌고, 진중권은 말하는 대상이 달라졌다. 그 차이는 작은 듯 너무 크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제발 진중권 글 좀 퍼다 나르지 말라는 것이다. 덕분에 요즘 내가 갑자기 난독증이 왔나 고민하게 되었다. 읽히지 않는 글처럼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것도 없다. 들리지 않는 말이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것과 같다. 남의 말 듣지 않고 남의 글 읽지 않으면 어느내 말을 해도 들리지 않고 글을 써도 읽히지 않게 된다. 그런데 지식인이라 불린다. 지식인이 그렇게 값싸진 것일까.

 

아침부터 핸드폰 찾는다고 물속을 헤집고 다녔더니 피곤하다. 확실히 요즘 핸드폰들 방수기능이 짱짱하다. 밤새 물속에 쳐박혀 있었는데 여전히 멀쩡하다. 일단 말려서 써야 할 것 같고. 진중권은 제발 부고기사만 보기를. 사는 게 힘들다.

 

 

나도 한 때 인터넷에서 글쓰는 행위에 나름 의미를 부여하던 때가 있었다. 벌써 20년 가까이 되었지 않나 싶다. 돌이켜보면 도대체 뭔 짓을 하고 다닌 것인지 부끄럽기만 하다. 인터넷은 인터넷이고 글질은 단지 글질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난 뒤 블로그하면서 그 흔한 리플접대도 않게 되었다. 뭔 의미인가? 나는 내가 쓰고 싶은대로 쓰고 사람들은 찾아와 자기 읽고 싶은대로 읽고 리플을 단다. 그 이상 나와 그들 사이에 아무 관계도 없다. 내 생활은 블로그가 아닌 현실에 있다.

 

결국 육체노동을 시작했다. 요즘 크게 이슈가 되고 있는 그 일이다. 물류가 공사장 노가다보다 좋은 점은 매일 일정한 거리를 출퇴근할 수 있다는 점이다. 더구나 따로 숙식을 하지 않으면서도 출퇴근에 걸리는 시간까지 짧다. 그리고 주 6일이 대부분인 공사장에 비해 주 5일로 주말을 온전히 쉴 수 있다. 한 마디로 더 많은 시간을 휴식과 충전에 쓸 수 있다는 뜻이다. 대신 일도 더 힘들고 급여도 더 적고 야간에 일을 해야 하며 급여상승도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은 단점이다. 어찌되었거나 역시 다른 기술 없이 돈 벌려면 몸 쓰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육체적으로 좀 더 편한 일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급여수준을 생각하면 사실상 대안은 없다고 봐야 한다.

 

아무튼 그래서 더욱 느끼게 되는 것이다. 내 벌이는 내 몸이 고생해서 벌어들인다. 블로그는 아무것도 아니다. 아예 까맣게 잊고 있을 때 쯤 100달러인가 입금되었다고 메일 날아오는 정도는 용돈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자유로울 수 있다. 진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내 하고 싶은 모든 말을 다 블로그에 쏟아낼 수 있다. 내가 구독자 눈치를 보겠는가? 리플 단다고 그 내용을 굳이 신경쓰며 고려하겠는가? 블로그질 그냥 귀찮으면 안하면 그만이다. 성가시면 때려치면 그만이다. 이 블로그가 아마 한 11번째인가 12번째인가 그럴 것이다. 한창 때는 블로그질에 의미를 부여하느라 싸움질도 많이 했지만 지금은 아예 그런 것도 없이 그냥 다 개무시한다. 그러고 싶은 사람들은 그러는 것이고 나도 내 하고 싶은대로 한다. 그래서 유튜브는 처음부터도 고려도 안했다. 나는 어떻게 해도 엔터테이너는 되지 못할 사람이다.

 

내가 진중권 부류를 혐오하고 경멸하는 이유다. 정확히 변희재니 뭐니 하는 입만 산 놈들은 그냥 개무시하는 이유라 할 수 있다. 기자놈들은 다를까? 최소한 나는 남 욕하면서 돈벌지는 않는다. 남 모욕하고 조롱하고 상체를 후벼파면서 내 이익을 구하지는 않는다. 아니 오히려 거꾸로 내가 이익을 얻자고 다른 이의 고통과 불행을 이용하려는 패악질은 하지 않는다. 아마 얼마전에 썼을 것이다. 진중권이나 서민의 욕설을 보면 진정성이 없다고.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누군가의 눈에 들기 위해 위악같은 위선을 뒤집어쓰고 쓰는 거짓된 분노의 배설물일 뿐이다. 어째서? 목적이 다른 것이다. 그를 통해 얻고자 하는, 구하고자 하는 것이 따로 존재하는 때문이다. 그들에게 글과 말이란 단지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쓰고 싶어 쓰고 싸고 싶어 싸는 나와 다른 이유다.

 

돈을 벌기 위해, 명성을 얻기 위해, 인정을 받기 위해, 그들은 그렇게 다른 목적을 위해 수단으로서 글을 쓰고 말을 한다. 그래서 저들의 말에는 진심이 들어있지 않다. 어떻게 하면 더 자극적으로 더 선정적으로 사람들의 주목을 끌 수 있게 글을 쓰고 말을 할까만 고민하는 흔적이 역력하다. 그것이 바로 흔히 말하는 논객, 혹은 평론가라 부르는 놈들의 실상이다. 김어준이나 김용민, 이동형 등의 부류도 내게는 그래서 크게 다르지 않게 여겨진다. 글을 써서 돈을 버는 사람은 글이 수단이 되고, 말을 해서 돈을 버는 사람들은 말이 곧 수단이 된다. 목적이 아닌 수단이 되어 버린 글과 말에 어떤 진정성이라 할 만한 것이 남아 있을 수 있는가. 그러니까 어느날 갑자기 김어준이 문재인 욕을 하고, 김용민이 민주당 욕을 하기 시작해도 저들이 지금 버는 수입과 명성과 인지도가 그대로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

 

그나마 서민은 교수질이라도 하니 인정은 한다. 그런데 교수질이나 열심히 할 것이지 뭐한다고 잘 모르는 분야에 저리 끼어드는지. 아마 기생충 전문가일 때보다 더 여기저기서 불러주기도 하고 알아주기도 하는 사실에 맛들인 때문일 것이다. 그 맛 진짜 죽여준다. 나 역시 미미하지만 경험해 본 바이기에 아주 모르지 않는다. 막 여기저기서 추켜주고 누군가는 팬이라 그러고 누군가는 직접 생일이라고 불러서 술까지 사주고 진짜 내가 뭐라도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구나. 개뿔. 그러니까 학생들 가르치고 기생충 연구하는 일이나 열심히 하시라. 그리고 진짜 하고 싶은 말이 생겼을 때 내가 했던 것처럼 착 딸라붙는 욕설로 문재인이든 조국이든 마음에 들지 않는 놈들 대차게 까면 그게 진짜가 되는 것이다.

 

아주 오래던 도시탈출에서 오히려 욕은 황봉알이 더 많이 더 독하게 했음에도 김구라가 더 사람들의 기억에 남은 이유인 것이다. 황봉알은 아무데서냐 욕질을 했지만 김구라는 딱 자기가 욕해야 하는 순간을 골라 그때만 욕하고 끝냈다. 말하자면 진중권과 서민 류의 욕설이란 당시 황봉알의 욕설과 크게 다르지 않는 수준이란 것이다. 김용민과 김어준 사이에도 급의 차이가 있는 것도 개인적으로 그런 이유가 아닌가 생각한다. 김용민이 오버할 때는 그래서 오히려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김어준은 그냥 나르시스트고. 사람들 앞에서 벌거벗고 춤추면서도 그런 자신의 모습에 도취되어 황홀해 할 사람이 바로 김어준이란 인간이다. 진중권이 차라리 김어준같은 나르시스트였을 때는 그나마 글이 읽어 줄 만은 했었는데.

 

다만 그럼에도 같은 글로 말로 벌어먹고 사는 사람 가운데서도 인정하는 몇 명 중에 유시민이 있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 말 한 마디를 하기 위해 그동안 읽었을 수많은 텍스트와 고민했을 수많은 시간들이 느껴지는 때문이다. 그건 노동이다. 그야말로 일이다. 돈을 벌기 위해 글을 쓰고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고 말을 하니까 돈이 되는 수준인 것이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글과 말이기에 돈을 버는 수준이 되는 것이다. 나는 과연 그럴 수 있을 것인가. 자료찾기 싫어서 진지한 글 쓰자고 카테고리 만들어 놓고는 몇 달에 겨우 하나 쓰기도 버거워하는 내가?

 

아무튼 일이라는 건 소중한 것이다. 내가 내 몸으로 내 손으로 직접 일해서 돈을 벌어 먹고 산다는 것은 무엇보다 의미가 있는 것이다. 고양이와 함께 살면서 깨달은 것 중 하나다. 뭔가 대단한 일을 이루어야 사는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이란 자체가 의미가 있고, 산다는 자체가 오로지 존귀한 것이다. 살아있기에 살아간다는 것이 그리 허투루여길 간단한 일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과연 글과 말을 목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그냥 내 손으로 내가 벌어 먹고 산다. 글은 그냥 취미생활일 뿐. 대개는 어디서 술쳐먹으며 되는대로 떠들던 소리들을 대충 정리해 올리는 것들이다. 그 이상 무슨 의미가 필요한가. 사회적으로도 무엇이 더 가치있는 일인가는 너무나 분명한 것이다.

 

놈팽이 새끼들은 진짜 사회의 잉여며 해악들이란 것이다. 손가락으로 입으로 떠드는 것 말고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그런 정도로 취해 버린 진짜 놈팽이들은 결국에 세상에 쓸데없는 말들만 넘쳐나게 만든다. 하긴 그런 놈들 모아서 월급까지 주는 언론사라는 곳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썩은 선비란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고래로 하는 일 없이 주둥이로만 한 몫 하려는 놈들은 항상 문제였었다. 새삼 느끼는 것이다. 저 새끼들이 싫다. 끔찍하게도 싫어 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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