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진중권이나 서민 등의 글을 읽지 않는 이유는 다른 것 없다. 읽히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주제로 글을 쓰다가 중간에 뒤집어 엎는 이유도 같은 이유다. 쓰이지 않는다.

 

글이란 생각을 따라가고, 생각은 곧 흐름이다. 조각조각의 생각들이 유기적으로 이어지면서 하나의 구체적인 형상을 만들면 그것이 글이 되고 말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잘 쓰인 글은 그 내용에 대한 이해와 상관없이 잘 읽히는 것이다. 논리가 어떻고 사실관계가 어떻고 따지기 이전에 진짜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쓴 글이기에 쉽게 한 번에 읽히는 것이다. 반면 아무리 내용이 타당해도 억지로 끼워맞춘 글은 읽기가 영 불편하다. 물론 아예 다른 사람이 따라가는 자체가 버거운 사고의 레벨을 가진 인간들도 존재하기는 한다. 이를테면 칸트나 비트겐슈타인 같은 부류들이다. 하지만 그런 경우라면 결국 이해하고 났을 때 희열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마저 없다면 그걸 뭐라 판단해야 할까?

 

글을 쓰다 말고 뭔가 자꾸 말을 지어내려 하면 그건 이미 내 스스로가 나 자신을 설득하는데 실패했다는 증거인 것이다. 이미 다음 문장이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떠올라야 하는데 떠오르지 않는 생각을 억지로 부여잡고 이어붙이려 한다. 그건 이미 내 생각이 아닌 것이다. 그런 건 써봐야 나 스스로도 납득하지 못한다. 그래서 내 글에 욕이 많은 것이다. 자연스럽게 내 생각을 쓰는 동안 머릿속에 떠오른 욕까지 거르지 않고 - 물론 그럼에도 상당부분 순화시켜 곁들여 쓰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경우 내가 쓴 글을 나중에라도 다시 읽게 되면 당시 내가 어떤 감정상태였는지까지 생생하게 다시 떠올리게 된다. 그만큼 솔직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최근의 진중권은 그런 게 없다. 서민의 글은 예전부터도 잘 안 읽혔다. 그래서 아예 이름 자체를 기억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진중권은 몇 년 전까지 동의여부와 상관없이 꽤 잘 읽히는 글을 쓰고는 했던 걸 기억하고 있다. 참 쉽게 읽힌다. 그런데 최근 진중권의 글을 보고 있으면 세 줄을 넘어가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건 뭐 배설도 아니고 진짜 글쟁이로서 고약한 상황이라 봐야 할 것이다. 글의 내용이 아닌 호흡을 중요시하는 내 경우에만 해당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래서 영 읽기 고약한 것이 지금 진중권의 글일 것이다.

 

같은 이유로 김용민이나 이동형이 떠드는 소리를 듣고 있어도 잘 귀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많다. 의도하여 만드는 목소리가 아닌가 의심하게 되는 이유다. 진영과 상관없이 말로 글로 먹고사는 놈들은 그래서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편이다. 그나마 강준만의 진정성을 이해하는 이유는 예나 지금이나 읽히는 느낌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 때문이다. 진심인 것이다. 변절이 아니라 그냥 지금 강준만이라는 개인의 보는 현실과 판단이 그렇다는 것이다. 바로 강준만과 진중권의 차이다. 강준만은 보는 방향이 달라졌고, 진중권은 말하는 대상이 달라졌다. 그 차이는 작은 듯 너무 크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제발 진중권 글 좀 퍼다 나르지 말라는 것이다. 덕분에 요즘 내가 갑자기 난독증이 왔나 고민하게 되었다. 읽히지 않는 글처럼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것도 없다. 들리지 않는 말이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것과 같다. 남의 말 듣지 않고 남의 글 읽지 않으면 어느내 말을 해도 들리지 않고 글을 써도 읽히지 않게 된다. 그런데 지식인이라 불린다. 지식인이 그렇게 값싸진 것일까.

 

아침부터 핸드폰 찾는다고 물속을 헤집고 다녔더니 피곤하다. 확실히 요즘 핸드폰들 방수기능이 짱짱하다. 밤새 물속에 쳐박혀 있었는데 여전히 멀쩡하다. 일단 말려서 써야 할 것 같고. 진중권은 제발 부고기사만 보기를. 사는 게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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