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을 적 국민학교 졸업할 때까지 이사만 9번은 넘게 했었던 것 같다. 가장 오랜 기억은 2살 적 구로동 철로변이었는데, 이후로 도림동에서 대림동으로, 대림동 안에서도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국민학교 입할 할 때까지만 6번의 이사를 해야 했었다. 거의 1년에 한 번 꼴로 이사를 한 것이다. 그나마 국민학교 입학하고 나서는 전학 문제 때문에 이사 회수가 줄기는 했는데 그래도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4번은 집을 옮겨야 했을 것이다. 생각해 보니 진짜 이사 많이 다녔다.

 

그래도 나의 경우는 운이 좋았었다는 게 전학까지 가야 할 정도로 멀리 이사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사실 우리집처럼 가진 것 없이 겨우 하루 벌어 하루 사는 형편에서 사는 환경이 바뀐다는 건 그만큼 일을 구하는 것부터 많이 어려워지는 너무 큰 일인 것이다. 어차피 일이라는 게 주위와의 인적 네트워트를 통해 얻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그래서 이사를 가고 나서도 일을 얻기 위해서 일부러 멀리 떨어져 사는 옛이웃과 연락하며 지내는 경우도 적지 않았었다. 그래서 더 멀리 이사가지 못하고 늘 그 주변만 맴돌았던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월세나 혹은 전세 때문에 주기적으로 한 번 씩 이사를 다녀야 했던 것이 당시 집없는 대부분 사람들의 애닲은 처지이기는 했었다.

 

그래도 일단 임대계약을 맺으면 2년 동안은 계약이 유지되어야 한다. 임대계약과 관련한 별다른 의사표명이 없으면 암묵적인 갱신으로 간주하여 동일한 조건에서 계속 임대계약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이제 임대계약을 4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보호장치를 마련하고 있었다. 그 동안에는 전세나 월세를 일정 이상 올릴 수 없고 임차인이 직접 들어와 거주하는 등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임대인의 주거권은 보장되어야 한다. 어차피 원래 2년 계약이 지나면 얼마든지 전세든 월세든 자기 원하는대로 올려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얼마든지 계약종료를 이유로 내보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임대차보호법 개정안으로 인해 임대인이 더 곤란해졌다? 예전에는 굳이 집주인이 들어와 살겠다는 핑계조차 필요없이 바로 내보낼 수 있었고, 전세도 마음대로 올려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마치 이전에는 계약기간이 끝나고도 집주인과 합의 아래 굳이 이사가지 않고도 계속 살 수 있었던 것처럼 말하고들 있다. 임대차보호법의 보호기간이 4년으로 연장되기 전에는 임대료만 더 원하는대로 올려주면 얼마든지 원하는대로 계속 살던 곳에서 살 수 있었다. 그러니까 임차인이 올려달란다고 전세며 월세며 다 맞춰주며 계속 살 수 있었던 사람이 몇이나 된다는 것인가. 대개 이사가는 이유가 주변 집값 올랐다고 임차인이 전세며 월세며 임대료 올려달라 하면 그 돈 맞춰 줄 돈이 없어서 이사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란 것이다. 그러니까 최소 4년은 임대료 인상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하자. 그랬더니 임차인의 요구로 이사가야 하는 특수한 사례를 들어 부작용이라며 떠들어댄다. 이전까지는 그런 핑계도 소용 없었다니까. 2008년이었던가? 내가 굳이 이사를 해야 했던 이유 역시 집주인이 그냥 나가달라 하기에 2년 살고 나가야 했던 경우였었다. 그냥 집에 고양이 기르는 게 마음에 안 든다고 나가라 하는데 뭐 어쩌는가. 덕분에 출퇴근에 10분이나 더 걸리는 곳으로 옮겨가야 했었다.

 

원래 전세라는 제도가 상당히 불합리하고 비논리적인 제도란 것이다. 금리라도 높으면 전세금 받아 이자라도 받아먹는데, 제로금리의 시대에 전세금 2년 굴려서 얼마나 더 돈을 불릴 수 있겠는가. 그런데 2년 계약기간 지나면 그 돈 그대로 임대인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오히려 물가인상까지 고려하면 손해나는 장사이기에 전세임차인의 입장에서 전세금을 계속 올려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도 되는 이유는 집값도 따라서 오르니까. 집값이 오르지 않으면 전세금이 집값을 넘어서는 어이없는 상황까지 벌어질 수 있다. 아니면 20년 치 월세를 전세로 한꺼번에 받아서 20년 동안 조금씩 까먹으며 살거나. 그 역시 물가인상을 고려하면 영 손해다. 그러니까 원래 전세 오르지 않고 몇 년을 계속해서 살아도 되는 경우란 그냥 환상에 지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당연히 전세는 올려받아야 하고, 전세 오른 만큼 맞춰 주지 못하면 이사해야 한다. 그래도 2년 동안 보장해 주었는데 이제는 4년 동안 전세를 따로 올리지 않아도 살 수 있게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를 할 수 있다. 지금 임대차보호법의 부작용이라는 내용들은 원래 임대인들이 겪어 오던 현실들이었단 것이다. 언제는 내가 원하는 곳에 내가 원하는 가격에 내가 원하는 조건의 전세나 월세가 넘쳐났었던 것처럼 이야기한다.

 

20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한 번 이사를 하려 하면 며칠을 발품을 팔아가며 집을 보고 다녀야 했었다. 이 동네가 싸다 해서 그리도 다녀보고, 저 동네면 출퇴근에 조금 더 유리할 것 같아서 그리로 훑으며 다녀보고, 부동산 몇 곳을 돌아다니며 조금이라도 더 싸고 더 조건 좋은 집이 없나 일일이 찾아보고 다녀야 하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집이 내가 원하는 곳에 내가 원하는 때에 바로바로 나와주면 얼마나 좋겠는가. 대부분 임대인들이란 경제적으로 그다지 넉넉지 못한 조건일 텐데 자기 형편에 맞는 집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나와 주겠는가. 그래서 차라리 출퇴근 때 조금 더 고생하더라도 내 형편에 맞게 내 집을 가져보겠다고 외곽에 집을 사기도 하는 것이고, 그래도 서울 중심부에서 살아야 자식 교육에도 유리하다고 충분히 집을 살 수 있는 여건임에도 굳이 전세를 살기도 하는 것이다. 전세 구하기 힘들다. 언제는 아니었을까?

 

확실히 요즘은 돈 많아야 기자도 한다는 말이 맞는 모양이다. 아니 기자를 노려도 될 만큼 학벌이 좋으려면 당연히 집안에 돈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전세라는 게 그냥 구하려면 구해지는 줄 아는 모양이다. 그냥 가만히 앉아 있어도 내가 원하는 조건의 전세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줄 아는 것이다. 전세기간이 끝나더라도 인심좋은 집주인이 전세금도 올리지 않고 그냥 전세를 연장해준다. 이야 이런 지상낙원이. 그러나 내가 아는 전세란 당연히 전세기간이 끝나면 전세 올려줘야 하고, 전세 올려줄 돈이 없으면 며칠이고 발품을 팔며 주변의 집들을 돌아보고 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고도 조건에 맞는 집을 찾지 못하면 타협하고 들어가 살아야만 하는 것이다. 내가 아는 현실은 그런데 언론이나 혹은 네티즌들이 말하는 현실은 어떠한가.

 

다시 말하지만 내가 원하는 때 내가 원하는 곳에 내가 원하는 조건의 집이라는 게 그리 쉽게 나와주는 게 아니다. 아주 운좋게 있더라도 발품을 팔지 않으면 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내가 지금 사는 집도 집주인의 사정에 의해 내 조건에서 크게 벗어나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 그래서 임대차보호법인 것이다. 원래 어렵고 힘든 것이 이사이고 그래서 자기집을 그리 갖고 싶었던 것이었다. 과연 살아온 환경이 다르면 보이는 풍경도 다른 것인가. 보는 현실도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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