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지금쯤 많은 사람들의 기억이 가물가물할 텐데, 원래 메갈리아와 워마드의 정치성향은 친박반문 반역사반노동반인간이었었다. 집회에 모인 메갈리아 회원들이 문재인 대통령을 두고 '재기해!'라고 외친 것을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여기서 재기하라는 것은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자칭 남성주의자 성재기를 조롱하며 그와 같이 자살하라는 메갈류 레디컬들의 용어다. 문재인 대통령더러 자살하라 한 것이다. 그래서 자살하기 위해 거꾸로 뛰어내리는 모습을 형상화한다고 문재인 대통령의 성 문을 뒤집어 곰이라 부르고는 귀엽다고 자찬까지 했었다. 그런 메갈리아를 자칭 진보들은 여성주의의 주류로 받아들이고 마침내 정치권에 발딛게 만들고 있었다. 무슨 의미이겠는가.

 

자칭 진보들이라고 메갈이나 워마드 류의 극단적 여성주의자들의 성향에 대해 몰랐을 리는 없을 것이다. 사소한 견해의 차이를 그 뿌리까지 찾아서 헤집어가며 김규항을 비판하던 것이 바로 자칭 진보들이었다는 것이다. 노동과 노동자에 대한 인식에서 그 논리가 어느 시점에 머물러 있고 오류가 무엇인지 끝끝내 찾아내서 낡은 주장이라 비판하던 놈들이 바로 자칭 진보란 것이다. 그렇게 이성적이고 분석적인 놈들이 메갈과 워마드가 뭐하는 집단인지 모르고 여성주의의 주류로 받아들이고 제도권에까지 발딛게 했겠는가. 알고서도 받아들인 것이다. 심지어 정의당은 메갈리아 장혜영을 비례대표로 당선시키기 위해 비례대표 공천과 관련한 당규까지 뒤집고 있었다. 아마 21번째였던가? 훨씬 많은 당원들의 지지를 받은 상위의 후보들을 제치고 무리하게 류호정과 장혜영을 정의당의 얼굴로 삼아 앞세우는 무리수를 두고 있었다. 몰랐을 리는 없고 알면서도 그랬어야 했던 절박한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자칭 진보는 지금 위기다. 자칭 진보들이 진보적인 이념과 가치를 주장할 때마다 자꾸만 민주당과 겹치게 된다. 그러면 당당히 민주당과 공감하며 연대한다고 선언하면 되는데 그러기는 곧 죽어도 싫다. 차라리 국민의힘의 전위대는 될지언정 민주당의 2중대는 되지 않겠다. 그를 위해서 차별화를 시도해야 한다. 민주당과 분명히 구분될 수 있는 자칭 진보의 정체로 무엇이 있겠는가. 나아가 이 사회 기득권의 연대를 위해서 수구세력과 연대하기 위한 명분도 필요하다. 그래서 말하지 않았는가. 여성주의란 자칭 진보와 수구가 연대하기 위한, 박근혜 시절로 다시 돌아가기 위한 명분에 지나지 않았다고. 그래서 그 수단으로 들고 나온 것이 마침 서구에서 일던 미투운동이었고. 손석희가 미투에 앞장선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설마 손석희도 몰랐던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다시 문재인이 집권할까? 문재인이 대통령 될 것 알았으면 손석희는 최순실의 태블릿 묻었다. 그런 새끼다. 저쪽 인간들은 다 그런 대가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지금 장혜영은 심상정과 정의당이 의도한대로 충실하게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 중이란 것이다. 민주화세대를 부정했다. 역시 말한 그대로다. 워마드와 메갈리아는 일베의 미러링이다. 남혐과 여혐이라는 차이를 제외하면 사실상 역사관이나 국가관 사회관 인간관이 거의 일치한다. 가장 먼저 민주화세대를 부정하고, 민주주의의 문민통제의 원칙을 부정하고, 민주주의를 소극적으로 편협하게 적용하여 민주당의 개혁의지를 부정한다. 그것은 그동안 민주당과 형식상 연대해 온 정의당에 대한 부정이기도 했다. 그마저 정의당 지도부는 긍정한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다른 정당도 아닌 국민의힘에 정의당 대표는 노동존중의 정당이라는 찬사마저 바친다. 진보의 가치라 할 수 있는 노동문제에 있어서조차 국민의힘이 민주당보다 더 정의당에 가깝다. 정의당은 어떤 경우에도 민주당이 아닌 국민의힘을, 문재인 대통령에 반대하는 길을 가겠다. 그를 위한 선택인 것이다. 그것이 심상정이 무리하게 장혜영을 공천한 이유였었다.

 

여성주의를 이유로 박원순을 부정하며 조선일보 창간기념회에 참석한 류호정을 보자. 장자연 사건이 다시 이슈가 된 것이 채 몇 년 되지도 않는데, 더구나 김학의와 관련한 조선일보의 보도가 그동안 문제가 되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을 텐데, 심지어 서지현 검사에 대한 모욕적인 보도도 바로 조선일보를 통해 나왔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관계도 확인되지 않은 박원순은 조문조차 할 수 없는데 조선일보의 행사에는 오히려 기꺼이 영광스럽게 참석한다. 정의당 지도부의 의지 없이 가능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30대 대변인도 어리다는 정의당인데 과연 진보꼰대들이 20대 여성 초선국회의원이 자기 멋대로 행동하도록 내버려두고 있었을 것인가.

 

그래서 올 초 심상정이 심재철의 말을 받아 인터뷰에서 언급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탄핵에 대한 발언을 다시 끄집어내게 되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정경심 재판에 이어 윤석열 징계 효력정지 가처분 판결까지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을 능멸한 사법부를 받아서 국민의힘이 다시 끄집어낸 단어가 바로 이 탄핵이다. 정의당이 괜히 사법부의 효력정지 판결에 환영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겠는가. 그렇게 돌고 돌아 다시 이어지는 것이다. 당시 심상정이 굳이 무리를 해가면서까지 장혜영이라는 메갈리아를 앞순위에 공천해야 했던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진보와는 전혀 방향이 다른 반역사적, 반국가적, 반사회적, 반윤리적, 반노동적, 반인간적 시각을 가진 메갈리아라는 집단과의 연대를 선택한 이유가 과연 무엇이었을 것인가. 정의당만이 아니다. 시사인, 한겨레, 경향일보, 오마이뉴스, JTBC가 모두 다르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KBS가 노골적으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 것도 박원순 시장을 계기로 여성주의란 명분을 잡으면서부터였다.

 

장혜영을 보면 심상정의 의도가 보인다. 정의당의 목표가 보인다. 자칭진보의 정체이기도 할 것이다. 왜 하필 메갈리아였을까? 여성주의를 제외하면 진보와는 전혀 거리가 먼, 오히려 정반대편에 있다고 할 수 있는 메갈리아를 무리하게 선택해서 공천까지 한 이유가 무엇인가. 이후 자칭진보들이 여성주의를 어떻게 무엇을 위해 이용하고 있는가를 보면 모든 것이 분명해진다. 김재련 혼자가 아니었을 것이다. 박원순 시장도 단순히 비서 한 사람이 자신을 고소한 것에 실망한 것이 아닌 여성주의자로서 그동안 연대해 온 이들의 배신에 절망했던 것이 아닐까. 여성주의가 단지 수구의 복권과 연대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다. 뇌피셜일 수 있다. 하지만 정의당과 자칭진보의 행보는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너무 분명하게.

흔히들 말하는 조폭의 의리라는 건 그냥 구라다. 당연하다. 돈 몇 푼을 위해 법이고 인정이고 무시하고 폭력을 일삼는 인간들이다. 그래서 조폭인 것이다. 그런 놈들이 같은 조폭이라고 기꺼이 손해를 감수해가며 의리를 지키려 하겠는가. 명분으로 뭉치고 인정으로 이어진 집단에서도 배신이 일상인데 하물며 이익을 위해 모인 놈들에게 의리란 무슨 의미일까? 대개는 공포인 것이고, 혹은 거래인 것이다. 그냥 그런 것들까지 모두 의리라는 말로 퉁치고 넘어가는 것이다. 

 

검찰이 윤석열을 중심으로 뭉쳐서 덤비는 이유도 하나다. 결국 이익이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가져야 돈을 벌 수 있다. 당장 검사 그만두고 변호사 개업하면 전관으로 상당한 돈을 만질 수 있을 테고, 아직 검찰에 남아 있어도 그런 전관들과 유착하여 이익을 나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가진 검찰이 수사않고 기소않으면 그냥 없는 일이 되고 만다. 그 힘을 이용해서 검사들은 돈을 버는 것이다. 그런데 현정부의 검찰개혁이 그대로 이루어지면 지금의 수사권과 기소권의 독점이라는 수단을 잃게 되는 것이다. 수사권이나 기소권 하나만으로는 반쪽에 지나지 않는다. 자칫 괜히 사이가 안 좋은 다른 놈과 얽히면 뒤집히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받아들일 수 없다.

 

윤석열이 대통령되고 말고는 대부분 검사들과 상관없는 이야기다. 검사출신이 대통령 된다고 그렇지 않아도 일에 치어 사는 검사들의 삶이 뭐라도 더 극적으로 나아질 가능성 같은 건 거의 없다 보면 된다. 다만 더 눈치보지 않고 이익을 챙길 수 있는 환경은 만들어질 수 있다. 뻔히 자기들 사정 하는 검사 출신이 대통령이 되면 자기들 하던 대로 더 마음대로 하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당장 눈앞에 자기 이익이 걸린 수사권과 기소권의 독점이 해체되는 상황에서도 그같은 기대가 이어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어도 여전히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한 상태에서 기소권과 수사권이 완전히 분리되고 절반만 검사들 손에 남겨지면 그야말로 남는 것이 하나도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윤석열을 중심으로 검찰이 다시 똘똘 뭉칠 것인가.

 

윤석열을 엿먹이는 최선의 방법인 것이다. 다른 것 필요없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완전히 분리해서 절반만 현재의 검찰에 남겨주는 것이다. 윤석열이 아무리 지랄해도 더이상 검찰이 이전과 같을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각인시켜주는 것이다. 전관이고 뭐고 검찰 조직 안에 남아 있어야 그나마 위세라도 부릴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더불어 아예 일정 이상 직급이 올라가면 변호사 개업에조차 제한을 둔다면 인사권을 가진 법무부에 납죽 엎드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무리 윤석열과 함께 해봐야 검찰개혁은 막을 수 없고 자신들의 기득권도 지킬 수 없으며 이제 자기들 살 길은 자기들이 알아서 찾아야 한다. 오히려 윤석열로 인해서 그나마 지킬 수 있었던 기득권까지 모두 내어주게 되었을 때 검사들이 느낄 감정이란 무엇일 것인가.

 

적을 잡으려면 말을 잡아야 하는 것이다. 솥에 물이 끓으면 일단 아궁이에 장작부터 꺼내야 하는 것이다. 무엇이 검사들을 뭉치게 만드는가. 무엇이 검사들로 하여금 검찰총장을 중심으로 뭉쳐서 저토록 강하게 저항가게 만드는가. 의리가 아니다. 검사동일체고 나발이고 자기들이 검찰 먹겠다고 전례를 무시하고 공안부와 공판부와 형사부를 아예 배제한 것이 특수부의 논리였던 것이다. 전례도 관습도 무시하고 윤석열 사람들로 다른 부서의 자리까지 다 독차지하며 많은 선배검사들이 그만두어야 했었다. 그런 조직에 의리라?

 

윤석열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원래 추미애 장관도 윤석열 잡으려고 징계위원회 열었던 것이 아니었다. 추미애 장관도 문재인 대통령도 법원까지 이런 식으로 윤석열을 지원하며 나설 것을 예상하고 있었을 것이었다. 무엇이 문제였는가. 공수처설치를 지지부진 끌고 있는 박병석 등 민주당 내부에 다른 생각을 하는 놈들이 문제였던 것이다. 추미애 장관이 징계위원회 회부라는 강수를 두고서아 공수처법 개정안이 별 탈 없이 처리될 수 있었다. 공수처법 개정안이 통과되고 기소권과 수사권의 분리법안까지 처리되면 윤석열이나마나 검찰에 대한 개혁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다. 더불어 사법개혁과 언론개혁의 법안들도 통과되면 그 모든 책임은 윤석열에게 돌아간다. 조국이 처음 만든 검찰개혁법안은 이보다 훨씬 온건한 것이었다.

 

헛짓하지 말기 바란다. 중요한 것은 런던이 아니었다. 스탈린그라드가 아니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영국이 독일의 공세에 저항할 수 있었던 근거인 공항이고 항공시설이었다. 코카서스의 유전지대였었다. 윤석열 하나 잡자고 괜한 힘을 쓰고 역풍까지 감수할 필요가 없다. 윤석열이 아닌 검찰개혁이고 사법개혁이고 권력구조 개혁이다. 그것이 한결같은 민주당의 정의이고 의지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도 직접 나서서 사과했던 것 아니던가.

 

검찰을 와해시키는 최선의 전략인 것이다. 그냥 국회에서 입법으로 처리하면 된다. 그 전에 박병석 버러지 새끼는 어디 동해바다 한가운데 용궁이나 보고 오라고 보내 버리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아직 이런 새끼가 남아 있었다. 그나마 좋게 보기로 한 것도 철회한다. 이 새끼가 원흉이다. 더불어 민주당 안에 몇 더 있다. 그래도 추미애 장관이 만들어 놓은 구도가 아직 민주당 안에서 힘을 발휘하면 불가능하지 않다. 씨발 해보자. 이기는 건 민주당이다. 반드시.

무죄추정과 의심될 때는 피고에게 유리하게라는 사법의 원칙은 수많은 시행착오와 희생 끝에 인류문명이 쟁취해 낸 소중한 성과일 것이다. 인류역사상 권력에 의해 무고하게 없는 죄를 뒤집어쓰고, 심지어 아예 처음부터 의도된 수사와 재판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이 도대체 얼마이던가 말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불과 몇 년 전까지 권력과 결탁한 수사기관과 사법부, 그리고 언론에 의해 무고하게 죄를 강요당하며 고통받은 이들이 적지 않았었다. 그런데 바로 그런 이들과 한 편임을 자처하던 자칭 진보언론과 정당이 정경심 재판의 결과를 대하는 자세를 보라.

 

한겨레 칼럼의 제목이었다. 노무현도 아닌 놈현 관장사를 그만두라. 심상정은 아예 노무현 무덤까지 찾아가서 노무현 전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그리고 민주당까지 싸잡아 모욕하고 조롱한 바 있었다. 노무현 살아있을 적에는 이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 않았었다. 심상정이 이명박보다 더 악랄하게 비난한 것이 노무현이었고, 한겨레와 경향을 비롯한 자칭 진보지식인들은 노무현더러 죽으라 등까지 떠밀고 있었다. 노무현이니 그래도 된다. 말하지 않았는가. 진보에서도 한참 비주류면서 정권까지 차지한 노무현과 그를 중심으로 뭉친 친노는 주제넘게 왕위를 차지한 천민에 지나지 않는다고. 조선시대 백정이 나 왕입네 하고 근정전에 앉기라도 했다면 과연 사대부들이 어떻게 반응했을까?

 

그래서 손석희 그 벌레새끼가 평소 그렇게 인권을 중요한 가치인 것처럼 떠들다가 정경심 교수가 개인으로서 방어권을 행사하려 하니 비난하고 나섰던 것이었다. 사람에게는 인권이 있지만 사람이 아닌 존재에게는 인권따위 없다. 인간에 대한 존중은 진보에게 있어 무엇보다 우선하는 절대적인 가치일 테지만 그 또한 사람인 경우에만 적용되는 것이다. 조국 전장관에 대한 검찰의 무차별적인 수사와 그로 인한 인권유린조차 조국 전장관이기에 당연한 것이다. 정경심 교수에 유리한 증언은 모두 위증으로 치부하며 자신의 추정과 가정까지 더해서 검찰의 주장만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인 태도 역시 민주당 정권에 몸담았던 조국 전장관의 가족이기에 당연한 일이 되는 것이다. 민주당에는 인권이 없다. 특히 주류에서 한참 벗어난 찬탈자들인 친노친문에게는 인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인간조차 아니다. 어째서 심상정은 일찍부터 문재인 탄핵을 입에 담았는가. 그리고 이후 정의당은 민주당 2중대가 싫다고 국민의당 선봉대 역할을 거침없이 맡았는가. 저들의 박원순에 대한 혐오는 어디서 비롯되었는가.

 

다시 말하지만 저들의 마음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이미 문재인 대통령의 묘비명까지 지어 놓은 지 오래란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노무현 전대통령처럼 되면 자신들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가. 그 전에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 자신들은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 것인가. 죄의식조차 없다. 인간에 대해 어찌 진보를 자처하면서 그럴 수 있느냐는 최소한의 반성조차도 없다. 인간이 아니니까. 작년 조국사태 이후, 그 전 노무현 전대통령의 죽음을 둘러싸고 저들이 일관되게 보여 온 자세이고 태도였다. 차라리 신념이었다. 그리고 다시금 그 사실을 확인시켜주었다. 정치적으로 편향된 명백한 목적을 가진 수사지만 문재인 정부를 상대로 하니 검찰의 월권과 전횡마저 정당한 것으로 포장해 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의당이 워낙 노골적으로 나오는 탓에 정의당의 실체에 대해 깨닫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경고해 왔었다. 정의당이란 어떤 정당인가. 아니 자칭진보란 어떤 부류들인가. 왜 나는 그들을 항상 자칭이라 붙여서 부르고 있는 것일까. 지지율이 3% 남짓이던가? 그런 주제에 대통령 지지율 가지고 시비거는 꼬라지가 우스울 지경이다. 민주당 지지율 가지고 시비걸기 전에 한겨레 구독률부터 신경쓰라. 경향일보는 벌써부터 국민의힘 기관지로 정체성을 바꾼 모양이더만. 그런 점에서 차라리 솔직하기라도 할 것이다.

 

확실히 정경심 재판의 판결에 대해 알면 알수록 정의당과 한겨레를 비롯한 자칭 진보의 의도가 명확해지는 느낌이다. 그러니까 노무현 전대통령 그렇게 세상을 떠나고 환호성이 들린 곳이 한겨레 편집국만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한겨레의 이명박에 대한 평가를 보면서 더욱 그런 확신을 가지게 된다.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까지 사냥하고 나면 그 잔해 위에서 전리품으로써 찬탈당한 진보의 주류의 자리를 돌려받고 말 것이다. 심상정이 메갈 장혜영을 공천한 이유이기도 하다. 메갈의 정체를 안다면 그 의도 역시 분명해진다. 전쟁이란 뭐다? 죽이는 것이다. 죽여야 산다. 그 사실을 확인한다.

지금 이낙연이 명심해야 할 한 가지는 같은 서울대라도 경희대 묻은 서울대는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같은 서울대임에도 고졸이 묻은 유시민을 저들이 인정하지 못했던 이유와 같다. 서울대 대통령이란 진정 대한민국의 주류를 대표할 수 있는 대통령이어야 한다. 민주당이 주류인가? 친노친문이 주류인가? 서울대가 자랑인 이유가 무엇인가. 고등학교까지 공부 열심히 하고 시험 잘 봐서 가장 좋은 대학 들어갔다는 한 가지 아니던가. 박정희의 성골이 죄인으로 전락해 감옥에 갇힌 지금 진정 진골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어디의 누구인가? 왜 저들은 이낙연이 아닌 윤석열을 선택한 것일까?

 

지금 검찰과 법원과 타협을 시도하는 순간 대통령의 꿈은 물건너가는 것이다. 지금 상황만 잘 관리해도 당내 경선만 통과하면 대통령은 꿈이 아닐 테지만 타협하는 순간 항복으로 받아들여지고 정동영이 그랬던 것처럼 문재인을 치는 도구로 쓰이고 그냥 버려질 뿐이다. 아니 대통령까지 바라보던 유력정치인이기에 그냥 버려지는 정도가 아니라 다시는 일어설 수 없도록 철저히 짓밟히고 마는 것이다. 그때 과연 누가 이낙연 자신을 지켜 줄 것인가? 이낙연 자신이 대통령을 배신하고 지지자를 저버렸는데 누가 이낙연을 위해서 눈물이라도 흘려줄 것인가?

 

물론 기우인 것은 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을 거치면서 권력에 눈멀고 두려움에 눈멀면 사람이 얼마나 어리석어질 수 있는가 직접 몸으로 겪어 봤다는 것이다. 검찰과 법원과 언론과 야당이 한 몸이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모든 언론과 정치권과 지식인사회가 하나가 되어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적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의당은 이미 올초부터 대통령 탄핵을 입에 담았고, 법원의 판결이 대통령 탄핵 발언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중이란 것이다. 어쩌면 한겨레 경향은 문재인 대통령의 묘비명까지 미리 써놓고 있는지도 모른다. 노무현 전대통령 때 그랬던 것처럼 그럴싸한 반성문 하나 올리고 그 시체 위에서 어떻게 다시 돌아온 영광을 누릴까 열심히 계산중일 것이다. 그런데 타협을 시도한다? 그들과의 공존을 시도한다? 무슨 의미이겠는가? 그런데 적이 너무 강하다 보니 겁먹고 움츠러드는 것도 어쩌면 자연스런 것이다.

 

지지자들도 명심해야 한다. 이낙연이냐 이재명이냐 가지고 싸울 때가 아니다. 서울시장 누가 나가고 부산시장 누가 출마하느냐를 두고 분열할 상황이 아니다. 저들은 지금 죽이겠다고 손잡고 달려드는데 누가 마음에 드네 마네 내부에서 싸우느라 힘을 낭비하면 결국 또 한 번 같은 일을 반복할 뿐이다. 타협은 항복이고 곧 죽는 길인 것이다. 대통령이고 뭐고 그냥 내 한 몸 살고 싶다 한다면 바로 은퇴하고 외국으로 이민갈 것을 추천한다. 이낙연만이 아니다. 무려 174석이라는 공포를 겪어 봤기에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에 대한 사냥도 시작될 것이다. 정경심 재판에서도 보지 않았는가. 전혀 상관없는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살인사건도 검찰이 기소만 하면 법원에서 유죄로 판결할 수 있다. 혼자는 살 수 있을지 몰라도 민주당의 당적으로 살아남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아마 박병석이나 박용진 정도는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면 어찌해야 하는가. 이겨야 한다.

 

명심해야 하는 것이다. 저들이 말하는 탄핵은 그냥 탄핵이 아니다. 박근혜처럼 절차 지켜가며 재판받게 해주는 그런 것이 아니다. 철저한 모욕과 수모 속에 죽는 것보다 더한 고통을 받게 하는 것이다. 윤석열이 지금 그를 목표로 움직이고 있고, 국민의힘과 정의당과 법원과 언론과 지식인사회가 그 하나의 목표를 향해 손잡고 나가고 있다. 문재인 한 사람 죽는 것으로 끝이 아닌 것이다. 저들은 그럴 각오로 덤비는데 욕먹기 싫다고 몸을 사리는 것이 자신을 위해서도 옳은 행동일 것인가. 누구든 싸움에 자신을 내던지며 앞장서는 이를 지지한다. 그가 차기의 주역이다. 내 결심이다.

 

어째서 이낙연에게 이렇게 엄격하냐고? 지금 가장 앞장서야 할 차기 리더니까. 문재인 대통령을 이어 정권을 잡고 개혁을 위해 기득권과 싸워야 할 민주당의 다음 중심일 테니까. 그래야만 한다. 그것이 민주당의 당대표이자 차기 대권을 노리는 정치인 이낙연을 지지하는 대가인 것이다. 만일 이재명에게서 그럴 가능성이 보인다면 대상은 이재명으로 바로 옮겨간다.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특정한 누군가가 아닌 정권을 지키고 개혁을 이어나갈 수 있는 주역이다. 그만큼 절박하고 심각하다. 유튜브 앵벌이들과 다르다. 진짜 좆같은 상황이다. 믿을 놈이 없다. 당장은.

정경심 재판에 대해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해야 할 말은 딱 하나다. 아무리 표창장을 위조하고 인턴증명서를 위조했어도 징역 4년이 말이 되는가 이 한 마디면 충분하다. 상식의 범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설사 표창장과 인턴증명서 위조가 사실이더라도 어째서 그런 중형이 선고되었는가? 그건 알아서 판단하라.

 

서울대 인권센터에도 갔는데 뒷풀이 갔다 그러고, 다른 대학 인턴 간 것도 열심히 하지 않았다고 유죄판결이 난 것이다. 어렵게 설명할 필요 없다. 길어지고 복잡해지면 어차피 안 듣는다. 그런데 판사가 생각하기에 인턴활동을 하기는 했는데 전문적으로 열심히 하지 않은 것 같아서 유죄가 났다. 여기까지면 거의 끝난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이자면 재판 내내 무죄를 주장한 것이 괘씸죄가 되어 징역 4년에 법정구속까지 된 것이다. 자기 재판인데 무죄주장도 못하는가.

 

사실 표창장위조는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국민의힘 지지자조차 너무 쪼잔하다며 고개를 돌린 부분이다. 사모펀드가 중요한데 그게 무죄가 났으니 나머지는 잡스럽다며 관심도 가지지 않았었다. 그래서 언론도 유죄와 형량만 집중해서 보도하는 것이다. 내용을 상세히 들어가면 이건 재판부 엿먹이는 꼬라지밖에 되지 않는다.

 

눈높이에서 간결하게, 그러니까 당신 아들이 봉사활동하러 갔는데 전문적으로 열심히 하지 않으면 봉사활동을 한 것이 아니게 되어 처벌받을 수 있다. 재판 받을 때 억울해서 무죄를 주장하고 재판정에 증인을 불러오면 그것 때문에도 가중처벌 받을 수 있다. 그래도 안되면 어쩔 수 없고. 그런데도 열심히 떠드는 언론이란 뭐하는 것들인가.

 

사법부는 스스로 자멸을 선택한 것이다. 김명수가 대법원장이 되어 그나마 남아 있던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시궁창에 쳐박아 버린 것이다. 법에 대해 조금만 알아도 판결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 알 수 있다. 그런데도 법을 모르지 않을 정의당이나 자칭진보가 저리 법원을 맹신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알몸들을 드러낸다. 끔찍한 괴물의 모습이다. 역겹다.

이렇게 투명한 놈들이 또 있을까. 법원의 의도를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이 그대로 번역해서 들려준다. 특히 판사출신 국회의원들이 주축이 되고 있다. 법원의 윤석열 징계에 대한 효력정지 판단은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다.

 

올 초부터 끊임없이 나오던 말이었다. 미래통합당의 심재철이 시작하고 정의당의 심상정이 받았다. 대통령을 탄핵하겠다. 그런데 총선에서 망하니 이제 와서 법원이 가세한 것이다. 김명수의 의중이라 보면 된다. 법원은 대통령을 부정한다. 대통령을 탄핵하려 한다. 그런데도 법원이 순수하게 법리로 판단했을 것이라 믿는 병신들은 어디의 누구인가?

 

대통령을 엿먹인 것이다. 그래서 알기에 대통령도 직접 나서서 바로 사과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었다. 다른 생각을 하는 민주당 국회의원들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대통령을 등에 업고 당선되었는데 대통령에게 불행한 일이 생기면 자신들은 무사할 것이라 생각하는가. 다음 총선에서 과연 공천을 받더라도 당선은 될 수 있겠는가. 생각 바로 하라.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정경심 재판 판결과 윤석열 징계 효력정지는 사법부의 정부와 여당에 대한 선전포고였다. 이재명의 침묵이 그래서 괘씸하다. 진짜 싸워야 할 때는 지금인데.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일까.

 

전쟁의 논리는 하나다. 이기는 자는 살고 지는 자는 죽는다. 항복은 지레 싸우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생사를 상대의 손에 맡기는 것이다. 그 정도 의지도 목적도 동기도 없는 것인가. 이낙연을 믿어본다. 지금은 싸워야 할 때다.

전략은 낙관으로 세우고 전술은 비관으로 짠다. 전쟁은 당위로 하지만 전투는 계산으로 한다. 낙관이 당위고, 당위가 필요다. 당연히 그리 되어야 하고 그리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전국토를 잃고 좁은 낙동강 방어선 안에 갇히고 말았다. 그동안의 패배로 많은 병력과 물자도 잃었고 사기도 바닥이다. 그래서 어째야 하는가? 전황이 불리하니 항복할 것인가? 그래도 승산을 믿고 끝까지 싸워 볼 것인가.

 

어차피 질 것을 알면서도 전사자나 더 늘려 보겠다고 싸움을 계속하는 것은 미친 놈들이나 하는 짓거리인 것이다. 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일본이 그랬었다. 아예 어차피 질 전쟁 패배한 국민에게는 자격이 없다며 히틀러는 독일의 기간산업까지 다시 일어설 수 없도록 파괴할 것을 명령했었고, 일본의 대본영은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모든 일본인이 같이 죽자는 1억 총옥쇄를 주장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자는 것이 아니라 어차피 이기지 못할 것이니 다 같이 죽자는 소리이니 제정신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지켜야 할 것이 있다면 차라리 그것을 남길 수라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전쟁은 낙관으로 하는 것이다. 그리 될 것이다. 그리 할 것이다. 그래서 전략은 당위로 세우는 것이다. 그리 되어야 한다. 그리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수많은 변수가 있는데 낙관과 당위만으로 전쟁을 치를 수는 없다. 그래서 구체적인 내용에서는 최악의 상황까지 가정해서 전술을 세우고 가능성을 따져가며 전투를 치른다. 당연히 이겨야 하고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이지만 그를 위해서는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어느 정도의 피해와 희생을 감수해야만 한다. 희생을 두려워해서는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 그래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되는 것이다. 희생없는 전쟁이란 없다. 어떤 희생이라도 감수할만한 전쟁은 있어도 아무 희생없이 끝낼 수 있는 전쟁이란 존재할 수 없다.

 

어디까지 희생할 수 있는가. 어디까지 희생을 감수할 수 있는가. 적이 강하다. 병력도 몇 배에 무기와 물자까지 모두 압도적이다. 그런데도 아무 희생없이 이길 수 있을 것인가.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고 적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인가? 그럴 것이면 그냥 일찌감치 항복하는 쪽이 더이상의 피해와 희생을 막을 수 있는 최선일 것이다. 그러니까 어디까지 각오한 것인가. 10만의 병력으로 100만을 막아내려 한다면 9만이 희생되더라도 오히려 적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9번의 싸움에서 10만이 모두 전멸하더라도 그 사이 한 번의 싸움에서 100만을 막아낼 기회를 잡을 수 있다면 그 또한 충분히 감수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전술은 비관인 것이다. 전투란 계산인 것이다. 몇 번의 싸움에서 얼마의 병력을 잃었지만 그 결과 어떤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인간이 할 짓이 아니다. 그런데도 반드시 감수해야만 할 전쟁이라면 해야만 한다.

 

검찰은 강하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한 검찰 자신의 힘만으로도 비할 수 없을 정도지만 언론과 사법부까지 함께하기에 더 막강하다. 그런 검찰을 개혁하려 한다. 그것도 민주적인 수단으로 바꾸려 한다. 그냥 될까? 아무 피해없이 희생없이 가능할까? 그렇다고 그냥 둘까? 조국 전장관이 아까우니, 그 가족들이 불쌍하니, 추미애 장관이 안되었으니 그냥 검찰을 내버려두어야 할까? 그런 검찰과 결탁한 수구세력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래서 처음의 당위가 중요한 것이다. 처음 검찰개혁이라는 전쟁을 하고자 했던 이유와 목적이다. 반드시 검찰개혁을 이루겠다는 의지와 목표다. 우리는 지금 이 싸움을 해야 한다. 이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그를 위해 한두번의 실패나 패배, 혹은 희생들은 과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에 자신의 의지로 서 있는 자가 승자가 되는 것이다.

 

역사상 명장이라 불리는 이들의 공통점인 것이다. 어떤 최악의 패배 속에서도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패배로 인한 절대적인 열세 아래에서도 희망과 기대를 가지게 만든다. 과연 명량해전 당시 삼도수군통제사가 이순신이 아니었다면 나머지 11척의 전선이 전장까지 따라나서기나 했었을까? 그래도 이순신이 앞장서니 흩어졌던 병사도 전선들도 다시 이순신을 중심으로 모여들었던 것이었다. 300척이 넘는 적선을 상대로도 물러나지 않고 싸울 수 있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는가. 무엇을 어떻게 하면 지금의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다시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 민주당 의석이 174석이다. 우호의석까지 모두 합하면 180석이 넘어간다. 그냥 하던대로 하면 된다. 고수전쟁과 고당전쟁 당시의 고구려와 비교했을 때 압도적으로 강한 전력이다. 명량해전에 임하던 이순신의 함대에 비하면 비교하는 것조차 송구스럽다. 아무리 사법부가 미쳐 돌아가도 법을 만드는 것은 입법부고 입법부를 장악한 것은 민주당이란 것이다. 그 힘을 확인시켜주어야 한다. 민주적 원칙은 지키더라도 그 원칙을 저버리고 도발하면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되는지 직접 몸으로 확인하게 만들어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조국 전장관이나 그 가족들, 추미애 장관까지 그를 위한 어쩔 수 없는 희생이라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니면 그냥 무의미한 희생에 지나지 않게 된다.

 

지지자들도 확실히 해야 한다. 당연히 해야 하는 싸움이면 그 과정에서의 피해 역시 어쩔 수 없다. 희생 또한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이겨야 한다. 실망도 좌절도 없이 계속해서 싸워 이겨야 한다. 오히려 신난다. 아직 민주당이 계속 집권해서 바로잡아야 할 것들이 이렇게나 많구나. 멈출 수 없다. 게을러진 틈조차 없다. 희생은 당연한 것이다. 실패도 좌절도 당연한 것이다. 마지막 승리만 가져가면 된다. 바빠지는 것이다. 곧 선거시즌이다. 우리가 이긴다. 단 하나 당위다.

지금 정부 출범 초부터 사법시험 존치를 두고 여론몰이를 하던 놈들이 있었다. 사법시험이야 말로 신분상승의 사다리다. 사법시험을 폐지하는 것은 그 사다리를 치우는 것이다. 로스쿨을 없애고 사법시험을 부활시켜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 알 것이다. 바로 그 사법시험이 검찰과 법원이라는 사법카르텔을 이어주는 강고한 고리라는 것을.

 

사법시험에 의해 법조인을 선발하던 시절에는 판사든 검사든 변호사든 모두 사법연수원을 거치도록 되어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당시의 법조인들에 대해 설명할 때 사법연수원 기수를 반드시 언급하고는 한다. 윤석열은 몇 기고, 한동훈은 몇 기고, 따라서 누가 검사장이 되면 누군가는 옷을 벗어야 하고, 그런데 이게 검찰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판사까지 함께 적용된다. 알고 보니 검사 누구와 판사 누가 동기라더라. 그러면 몇 년 동안 함께 연수도 같이 받았는데 그냥 동기인 것으로 끝나고 말까?

 

그래서 검찰이 사법부인 것이다. 정확히 검찰과 함께 사법권력이라 불리는 것이다. 검찰은 수사와 기소를 맡고 판사는 재판을 맡는다. 같이 사법시험에 합격해서 연수까지 받은 동료가 각각 검사와 판사로 나뉘어 수사와 기소, 그리고 재판을 맡게 된다. 그동안 검사의 반인권적인 강압수사로 인한 누명사건에는 반드시 판사의 판결이 함께 얽혀 있었다. 판사가 그냥 검사의 기소내용을 인용해서 판결한 결과 진실을 밝힐 기회조차 없이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는 경우가 생겨난 것이다. 재판도중 분명히 자신의 무고함을 밝히고, 고문과 가혹행위에 대해 고발까지 했음에도 오히려 괘씸죄까지 더해 판결을 내린 경우도 적지 않았었다. 정경심 재판만 유독 특별한 것이 아니라 그런 경우가 그동안에도 비일비재했었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나중에 판사 그만두고 전관변호사 되면 같은 판사들에게만 손을 벌려야 할까? 아니면 검사들의 도움도 받아야 할까?

 

검사에게 잘해야 나중에 변호사로 개업했을 때 편하다. 마찬가지로 판사에게 잘해야 나중에 변호사로 개업했을 때 돈 벌기 쉬워진다. 그래서 동업자인 것이다. 공범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윤석열이 징계를 받자 복수하듯 되도 않는 표창장 가지고 징역 4년이라는 무리한 판결을 강행한 것이었다. 현정부에 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봤을 때 과연 봉사표창장이라는 것이 실제 위조했다 하더라도 그렇게 중형을 받을만한 범죄인가는 너무나 분명한 것이다. 그래서 기사도 몇 없다. 기사가 너무 나가면 사람들이 진실을 깨닫게 된다. 그래야만 했던 이유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에서 사법시험을 없애고 로스쿨 체제로 바꾸려 한 것이었다. 일단 한 해 배출되는 변호사 수가 늘어나고, 더구나 그들이 로스쿨단위로 나뉘게 되면 지금처럼 사법연수원을 통해 검사와 판사가 유착되는 구조를 어느 정도는 차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런 사법시험을 존치해야 주장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새삼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에 대해 이재명이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에 의심을 가지게 되는 이유인 것이다. 이재명은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사법시험의 존치를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인물 가운데 하나다. 그냥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신분이동의 사다리로써 남겨두고자 하는 것인가. 아니면 사법시험의 또다른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인가? 사법시험을 다시 부활시키면 사법연수원을 통한 사법권력의 카르텔 역시 보다 강고해지게 된다.

 

민주당이 이낙연을 중심으로 검찰개혁의 고삐를 강하게 죄려는 지금 그 말많던 이재명이 조용한 이유에 의문을 가지게 되는 이유인 것이다. 물론 코로나19의 재확산으로 경기도정이 매우 바쁘다는 것을 안다. 나 역시 경기도민이기에 매일같이 속출하는 확진자들에 경기도지사로서 한가하게 SNS나 하고 있을 시간이 없을 것이란 점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원래 한가해서 SNS나 하던 사람은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바빠도 자기 할 말은 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윤석열에 대해서는 거의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 진짜 전혀 관련없는 우연의 일치일 뿐인가.

 

정경심 재판과 윤석열 징계 효력정지를 통해 분명해졌다. 검찰권력은 언론권력이고 사법권력이다. 원래 재판부는 검찰과 한 몸이었다. 하긴 재판부가 적절히 판결을 통해 검찰의 수사를 견제했다면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졌다고 절대권력이란 소리는 듣지 않았을 것이다. 사법부은 검찰의 시녀다. 그래서 검찰의 독립이 사법부의 독립이 되는 것이다. 김명수가 사법독립을 외친 이유였다. 그런 사법시험을 존치해야 한다 주장한다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얼마전부터 계속 머리에 맴돌던 생각이다. 유독 문재인 정부 초기부터 사법시험에 대한 주장들이 많았었다. 그냥 신분이동의 사다리라는 자체에 집착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사법개혁이란 바로 이 사법시험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었다. 사법시험의 폐지부터 사법개혁의 출발이었던 것이다. 아주 무관한 것인가. 의심스러운 것이다. 과연.

그러고보니 요즘 많이 느슨해졌던 것 같다. 사실 일이 힘들다. 일하는 시간도 길고, 워낙 피곤해서 집에 돌아오면 자고 일어나 출근하는 것조차 시간이 부족할 정도다. 잠이 부족해서 항상 졸리다. 그러니 새로운 소식을 접하는 것도, 그에 반응해 글을 쓰는 것도 게을러진다. 그래서 유튜브 채널도 개인에 대한 호불호로 아주 선별해서 한두개만 겨우 보는 정도다. 확실히 인터넷이란 개인의 투쟁본능을 극한으로 이끌어내는 공간인 모양이다. 나는 이토록 평화롭고 온건한 일상을 사랑하는데. 그런데 왜 이리 신나는 것일까?

 

더 강한 적을 만나면 지레 움츠러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더 좋다고 투쟁본능을 자극하는 사람이 있는 법이다. 인터넷이란 안전한 공간에서는 더 그렇다. 딱 좋다. 검찰만으로는 시시했는지 모르겠다. 법원이 가세하지 않았다면 벌써 윤석열은 끝났다. 법원이 윤석열의 편에 서지 않았다면 윤석열이고 뭐고 검찰개혁은 이미 끝이 난 상태였을 것이다. 아니 법원이 검찰과 유착해 있지 않았다면 검찰개혁이란 자체가 아예 필요없었을 수 있다. 당연하다. 검찰이 마음대로 수사하고 기소해도 법원에서 제대로 재판해서 걸러냈으면 검찰이 저렇게 마음대로 날뛸 수 없는 것이다. 검찰개혁은 그냥 검찰만 개혁하고 끝이 아니다. 검찰을 개혁함으로써 검찰과 법원이라는, 수사와 기소와 재판이 일체화된 카르텔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다. 저들을 모두 개혁해야만 한다.

 

김어준의 말처럼 신발끈을 다시 묶어야 할 상황인 것이다. 느슨하게 풀어져 있던 의지를 더욱 다지고 전의를 일깨워야 하는 때가 돌아온 것이다. 원래 검찰과 한 편이던 법원이 마침내 본색을 드러내며 구원군을 자처하고 나섰다. 윤석열 검찰이 절체절명의 한계에 내몰린 상황에서 법원이 나서면서 기사회생정도가 아닌 역전을 노릴 상황이 되고 말았다. 어찌해야겠는가? 법원까지 나섰으니 손놓고 물러나서 항복해야 하겠는가? 그 법원까지 물리치고 목적을 달성해야 하겠는가? 항복도 불가능한 이유는 저들이 노리는 것은 현직과 차기 대통령 모두이기 때문이다. 항복하기 위해서는 이낙연이 차기 대권을 포기해야만 한다. 과연 이낙연이 타협을 시도한다고 대통령에 당선되는 걸 저들이 두고 볼 것인가.

 

그런 점에서 이낙연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지는 않지만 불신은 없다. 오히려 의심을 갖는다면 이재명이다. 경제적인 부분에서는 상당히 선명한 주장을 내놓는데 검찰이나 법원에 대해서는 그다지 적극적인 입장을 내비치지 않고 있다. 검찰과 법원에 대한 민주당의 반응이 이낙연의 의지에 의한 것이라면 결국 이재명의 의지는 이재명의 말을 통해서 확인해야 하는데 그 말이 현재 사라진 상태다. 역시 나는 이재명이 아닌 이낙연을 믿고 지지해야 하는 것일까. 선택지가 제한되었지만 그래서 더 나을 수 있다. 아무리 김어준이란 개인을 싫어해도 이런 때 김어준이란 스피커를 통해 결집함으로써 의지를 드러내야 하는 것처럼 더욱 이낙연을 중심으로 민주당의 차기에 대한 의지를 굳혀야 하는 때가 된 것이다. 어디 한 번 해보자. 그래도 차기 대통령은 민주당에서 나올 것이고, 검찰개혁과 사법개혁과 언론개혁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다음 대선을 위한, 아니 지속적인 이 사회 기득권의 개혁을 위한 의지를 다잡아야 하는 것이다. 싸움은 시작되었다. 저들은 이미 전력을 다해 공격해 오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서 물러서서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다시 비극이 반복될 뿐이다. 그냥 정권만 잃고 끝나는 것이 아닌 것이다. 또다시 누군가는 죽어야 한다. 자칭 진보언론과 정당과 지식인들로부터 그 살의를 느낀다. 저들마저 살의를 품을 정도면 그 진짜 주체의 의지란 얼마나 강한 것일까? 문재인도 정경심처럼 만들어주겠다. 김명수의 결심이다. 다시 그런 상황을 반복할 수는 없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한다? 이겨야 한다.

 

그래서 먼저 뒤를 쳐야 한다. 배후를 없애야 한다. 여전히 자칭진보들에 미련을 두고 있는 지지자들이 문제란 것이다. 유시민도 문제다. 자칭 진보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는다면 유시민도 결국 버려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될 지 모른다. 아마 그래서 더욱 정치비평을 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과 민주당 정권의 재창출을 위해서도 자칭 진보와 함께 갈 수 없는 현실을 아주 모르지 않을 것이다. 지지자들부터 정의당과 한겨레와 진보지식인 나부랭이들을 버리고 기득권과의 전쟁에 올인해야 한다. 죽느냐 사느냐. 중간은 없다. 그래서 전쟁이다. 좋아 죽겠다.

여기서도 몇 번 이야기한 적 있지만 난 원래 조국이라는 인물에 대해 그다지 호감이 없었다. 그보다는 싫어했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그래서 처음 조국사태가 터졌을 당시 그럴수도 있겠다 별 의심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원래 그놈들이 다 그런 놈들인데 조국이라고 다를 것인가. 그런데 바로 그게 내가 정의당을 보는 시각이다. 정의당이 검찰에게 감히 못덤비고 언론의 눈치를 보는 이유다. 정의당 인간들 털어보면 아주 재미있지 않을까.

 

프랑스혁명이나 러시아혁명 당시 의외로 당시 기득권이라 할 수 있는 귀족들도 다수 참여하고 있었다. 그냥 이름만 귀족인,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일반 시민과 크게 다를 것 없었던 몰락귀족 뿐만 아니라 실제 상당한 기득권을 누리던 고위귀족 가운데도 혁명주의자가 있었고, 또한 많은 혁명주의자들이 이들의 경제적 후원을 받으며 저술도 하고 활동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물론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자신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왕이나 황제, 혹은 다른 귀족들을 공격하는데 아직은 무력한 존재인 이들 혁명가들을 이용한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 지성과 교양을 갖춘 지배층으로써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비판하는 입장에도 선다는 자신의 허영심을 충족시킨다. 프랑스에서는 한때 귀족의 특권과 부패를 비판하는 연극이나 저술을 후원하는 것이 귀족사회에서 유행이기조차 했었다.

 

내가 이만큼 배웠다. 이 정도로 알고 있다. 그러니까 나서서 주장도 해야 한다. 실천도 해야 한다. 단 내가 위험하지 않은 선에서. 내 이익이 침범당하지 않는 정도에서. 그게 바로 강남좌파라는 것이다. 집에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의 돈이 있다. 나름대로 내세울만한 사회적 지위와 명성도 있다. 그래서 공동체의 정의를 위해 나선다는 자존과 명예까지 탐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기득권으로서 이만큼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가며 노력하고 있다. 희생은 개뿔. 정의당이나 한겨레, 경향, 혹은 홍세화나 진중권 등 자칭진보들이 검찰의 법까지 무시하는 전횡과 횡포를 오히려 지지할 수 있는 이유인 것이다. 민주화 이후 과연 그들이 검찰을 두려워 할 만큼 진정으로 사회의 진보와 개혁을 위해 직접 나서서 싸운 적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러니까 검찰이 위법한 증거를 앞세우고, 증인들을 협박하고 회유하며, 법원이 증인들의 증언을 오히려 위증으로 몰아세우는 것에 대해 아무 감정이 없는 것이다. 자기들이 당한 적이 없으니.

 

프랑스혁명 당시도, 러시아혁명 당시도, 우리 역사에서도 동학혁명이나 혹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대한 기득권의 입장도 유사했었다. 평소에는 그리 시민들, 국민들, 조선 백성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척 하다가 정작 자신들의 기득권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하면 바로 태도가 돌변하고 만다. 그토록 백성들을 위하고 아끼는 모습을 보이던 사대부가 정작 백성들이 못살겠다 무기를 들고 일어서니 단호하게 그들을 진압하는 편에 서서 잔혹할 정도로 진압에 나선다. 동학혁명을 진압하는데 참여한 사대부들이 모두 탐관오리나 매국노들은 아니란 것이다. 그들에게 애민이란 딱 자기들의 기득권이 도전받지 않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혁명에 동참하고서도 자신들의 기득권을 여전히 지키기 위해 그들은 귀족이란 신분을 버리지 않았었다. 귀족의 신분까지 포기했던 진짜 혁명주의자는 귀족 가운데 아주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이해하면 된다. 민주화된 대한민국에서 더이상 권력과 대립하지 않아도 되는 자신들은 적당한 부와 지위와 권력까지 가진 기득권이다. 기득권으로서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

 

저들 자칭 진보들이 항상 결정적인 순간 기득권의 편에서 그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는 이유다. 이명박근혜 정권에서 사회의 진보와 개혁을 위해 싸우는 것처럼 보이던 것은 그것이 그들의 기득권을 강화하고 지키는 방편이었기 때문이었다. 자신들이 이만큼 진보적이다. 이만큼 개혁적이다. 이만큼 시민의 권리와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싸우고 있다. 그러나 정작 제도적으로 법적으로 기득권을 해체하고 진보와 개혁을 이루려 할 때는 노무현 정부에서나 현정부에서 보이는 모습 그대로 거의 기득권의 편에서 개혁을 저지하는 입장에 서고 있었다. 과연 민주노동당이 한나라당과 연대해가며 이루고자 했던 진보와 개혁이란 무엇이었는가. 어떤 공동체의 진보와 개혁을 위해 저들은 한나라당과 연대했던 것인가. 지금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다가 부당하게 탄압을 당할 때 쓰이던 그 구조에 대해 저들은 오히려 동조하며 편승하려 하는 중이다. 검찰의 별건수사와 먼지털이수사, 그리고 검찰과 유착한 사법부의 존재를 자신들의 근거로 사용하는 중이다. 검찰의 수사와 법원의 판결은 항상 옳고 개혁도 필요하지 않다. 어디서 그런 논리가 나오는 것인가? 말하지 않았는가? 검찰과 법원과 언론이 정의로운 이유가 곧 진보가 정의로운 이유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다. 자칭 진보에서 유력한 젊은 논객과 한 네티즌 사이에 논쟁이 붙었다. 그런데 논쟁 과정에서 네티즌이 공개한 학력을 알게 된 젊은 논객이 그것을 퍼뜨리며 조롱하기 시작했다. 과연 지켜보던 자칭 진보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서울대라는 학벌이 그리 자랑이던 젊은 논객이었다. 아마 지금도 어디선가 자기 이름 앞세워 활동하고 있을 것이다. 지지자들도 많다. 이런 게 강남좌파구나. 좋은 대학 나왔다. 집안도 그만하다. 심지어 정당에 몸담고 있으니 정치권력과도 가깝다. 언론도 자기가 말하면 어쨌거나 기사로 내주기도 한다. 원래 좋은 대학 출신도 아니고 집안이 좋지 않아도 그런 놈들과 어울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런 쪽을 동경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그게 싫어 저쪽 인간들과 관계를 끊었다.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되더라. 인정받고 싶어서 자꾸만 그쪽으로 생각과 글이 옮겨가는 것이 싫고 불편해서 항상 예민해져 있던 자신을 발견하고 있었다. 다행히 그 예민해진 상태의 나를 저쪽에서 견디지 못하더라. 그래서 지금 물류센터에서 몸을 써가며 돈벌고 글로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나 쓰고 싶은대로 쓴다.

 

아무튼 그렇게 이해하면 되는 것이다. 강남 좌파란 무엇인가. 기득권 진보란 어떤 것을 가리키는가. 그런 점에서 조국 사태는 흔한 강남좌파이던 조국 전장관을 각성시키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냥 평범하게 다른 사람들처럼 살았다. 다른사람들처럼 자식들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 이런저런 신경도 쓰며 노력도 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러는 것이 한 편으로 당연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부정당했다. 사실 민정수석 당시 해 놓은 것을 보면 당시까지 조국이나 정의당이나 크게 차이를 발견하기 어렵다. 그런 것을 검찰개혁 사법개혁이라고 내놓았던 것인가.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용인하고, 적당히 욕먹지 않을 정도로, 그런데 그런 정도마저 부정당하고 말았다. 기득권에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 정도로도 너무 나갔던 것이었다. 정의당이 검찰개혁에 대한 입장을 바꾼 이유이기도 하다. 자신들이 기득권 안에서 진보로써 인정받고 존재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선을 지킬 필요가 있다. 그리고 강제로 배척당하며 더이상 강남좌파일 수 없게 된 조국은 선택을 강요당하게 된다. 이대로 죽을 것인가? 아니면 생존을 위해 싸우는 전사가 될 것인가?

 

전처럼 듣기 좋은 말만 하며 살 수 없게 된 것이다. 그것이 진짜 혁명가다. 진짜 개혁가다. 진짜 정치인이다. 정의당이 정치동아리 소리를 듣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다못해 국민의힘도 자신들이 진짜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대해서는 다른 이들의 눈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비판받고 공격받는 것을 꺼려하지 않는다. 그게 신념이다. 그게 의지다. 그런 것 없이는 그냥 동아리인 것이다. 내가 저들을 일컬을 때 항상 앞에 '자칭'을 붙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심지어 진보언론이라면서 수구언론과 정면으로 맞붙어 논쟁할 의지도 용기도 없다. 진보적 이념과 가치를 추구한다면서 결정적인 순간에는 수구언론의 논리를 따라가고 만다. 설혹 주장을 하더라도 정면으로 맞붙는 것을 피해서 뽕나무를 가리키며 홰나무를 욕하듯 민주당 붙잡고 훈계나 일삼는다. 정확히는 조선일보를 공격하다가 조선일보로부터 부정당하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자신들이 진보언론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조선일보가 인정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의 조국 전장관 일가족에 대한 수사와 재판에 대해서, 그리고 윤석열에 대한 법원의 징계 효력정지 판결에 대해서 정의당이 내놓은 논평이란 그런 연장에 있는 것이다. 장혜영이 공수처법개정안에 기권하고, 검찰의 입장을 받아서 검찰내부에서 알아서 개혁하게끔 만들어야 한다며 주장하는 이유이기도 한 것이다. 저들에게 진보란 이 사회 기득권 안에 있는 것이다. 이 사회를 지배하는 엘리트라는 카르텔 안에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윤석열을 징계한 사유들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하게 되는 것이다. 엘리트라면 그 정도 일탈은 얼마든지 허용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자고 어렵게 시험봐서 좋은 대학도 들어가고 검사며 판사도 되는 것이다. 그래야 자신들도 그 기득권을 누릴 수 있다.

 

여성주의자들이 진짜 사회적 약자인 여성들을 위해 행동에 나서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사회적 소수자들을 위한다는 단체에서 진짜 경제적으로 약자인 소수자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자칭 진보 정치인들이, 자칭 진보언론들이 진짜 그들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주장이 아닌 실질적인 행동에 나서는 것을 본 적이 있기는 한 것인가? 진짜 법을 만들고 제도를 만들 때 그들은 어디에 있었는가? 그리고 정작 그 법과 제도를 만들고자 하는 이들과 그 반대편에 선 이들 가운데 누구를 비판하고 공격하고 있었는가? 중대재해방지법에 대해서도 정작 입법을 추진한 민주당을 공격하며 국민의힘에 노동존중이라는 수식어를 안겨준 것이 바로 저들 자칭진보들이었다.

 

당장 현정부에서 청년과 신혼부부, 그리고 취약계층을 위해 공급하려는 공공임대주택에 대해 아파트전세를 거론하며 비판하고 나서는 것이 지금 자칭진보들의 현실이란 것이다. 여전히 다수 국민들이 훨씬 좁고 열악한 환경에서 더 비싼 주거비용을 지불하며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외면한 채 딱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것들을 기준으로 비판하며 나서는 것이다. 저들에게 이미 정부의 정책이 절실한 서민의 존재란 저 멀리 보이지 않는 곳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수구언론의 서민과 자칭 진보의 서민 사이에 얼마나 유의미한 차이가 존재하는 것인가. 그에 비해 현정부와 여당의 정책이 가리키는 서민은 훨씬 더 현실에 가까이 존재한다. 그 차이가 어디서 비롯되는가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저들이 강남좌파인 이유고 기득권인 이유다. 정당이든 언론이든 지식인이든 상관없이. 활동가들도 아랑곳없이 누가 진짜 진보인가.

 

이제 분명히 해야 한다. 실천하는 진보와 말 뿐인 진보에 대해. 그저 듣기만 좋은 이미 많은 것을 가진 자신을 치장하는 수단으로써의 진보와 실제 현실을 뒹굴며 행동으로 이뤄가는 진보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유독 진보 정치인 가운데 노회찬만을 특별하게 여기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저들의 정체를 직시해야 한다. 그래서 자칭 진보인 것이다. 과연 진짜 진보란 무엇인가. 진짜 개혁이란 무엇인가. 현실이며 투쟁이다. 저들이 자칭인 이유다.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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