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은 낙관으로 세우고 전술은 비관으로 짠다. 전쟁은 당위로 하지만 전투는 계산으로 한다. 낙관이 당위고, 당위가 필요다. 당연히 그리 되어야 하고 그리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전국토를 잃고 좁은 낙동강 방어선 안에 갇히고 말았다. 그동안의 패배로 많은 병력과 물자도 잃었고 사기도 바닥이다. 그래서 어째야 하는가? 전황이 불리하니 항복할 것인가? 그래도 승산을 믿고 끝까지 싸워 볼 것인가.

 

어차피 질 것을 알면서도 전사자나 더 늘려 보겠다고 싸움을 계속하는 것은 미친 놈들이나 하는 짓거리인 것이다. 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일본이 그랬었다. 아예 어차피 질 전쟁 패배한 국민에게는 자격이 없다며 히틀러는 독일의 기간산업까지 다시 일어설 수 없도록 파괴할 것을 명령했었고, 일본의 대본영은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모든 일본인이 같이 죽자는 1억 총옥쇄를 주장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자는 것이 아니라 어차피 이기지 못할 것이니 다 같이 죽자는 소리이니 제정신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지켜야 할 것이 있다면 차라리 그것을 남길 수라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전쟁은 낙관으로 하는 것이다. 그리 될 것이다. 그리 할 것이다. 그래서 전략은 당위로 세우는 것이다. 그리 되어야 한다. 그리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수많은 변수가 있는데 낙관과 당위만으로 전쟁을 치를 수는 없다. 그래서 구체적인 내용에서는 최악의 상황까지 가정해서 전술을 세우고 가능성을 따져가며 전투를 치른다. 당연히 이겨야 하고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이지만 그를 위해서는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어느 정도의 피해와 희생을 감수해야만 한다. 희생을 두려워해서는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 그래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되는 것이다. 희생없는 전쟁이란 없다. 어떤 희생이라도 감수할만한 전쟁은 있어도 아무 희생없이 끝낼 수 있는 전쟁이란 존재할 수 없다.

 

어디까지 희생할 수 있는가. 어디까지 희생을 감수할 수 있는가. 적이 강하다. 병력도 몇 배에 무기와 물자까지 모두 압도적이다. 그런데도 아무 희생없이 이길 수 있을 것인가.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고 적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인가? 그럴 것이면 그냥 일찌감치 항복하는 쪽이 더이상의 피해와 희생을 막을 수 있는 최선일 것이다. 그러니까 어디까지 각오한 것인가. 10만의 병력으로 100만을 막아내려 한다면 9만이 희생되더라도 오히려 적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9번의 싸움에서 10만이 모두 전멸하더라도 그 사이 한 번의 싸움에서 100만을 막아낼 기회를 잡을 수 있다면 그 또한 충분히 감수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전술은 비관인 것이다. 전투란 계산인 것이다. 몇 번의 싸움에서 얼마의 병력을 잃었지만 그 결과 어떤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인간이 할 짓이 아니다. 그런데도 반드시 감수해야만 할 전쟁이라면 해야만 한다.

 

검찰은 강하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한 검찰 자신의 힘만으로도 비할 수 없을 정도지만 언론과 사법부까지 함께하기에 더 막강하다. 그런 검찰을 개혁하려 한다. 그것도 민주적인 수단으로 바꾸려 한다. 그냥 될까? 아무 피해없이 희생없이 가능할까? 그렇다고 그냥 둘까? 조국 전장관이 아까우니, 그 가족들이 불쌍하니, 추미애 장관이 안되었으니 그냥 검찰을 내버려두어야 할까? 그런 검찰과 결탁한 수구세력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래서 처음의 당위가 중요한 것이다. 처음 검찰개혁이라는 전쟁을 하고자 했던 이유와 목적이다. 반드시 검찰개혁을 이루겠다는 의지와 목표다. 우리는 지금 이 싸움을 해야 한다. 이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그를 위해 한두번의 실패나 패배, 혹은 희생들은 과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에 자신의 의지로 서 있는 자가 승자가 되는 것이다.

 

역사상 명장이라 불리는 이들의 공통점인 것이다. 어떤 최악의 패배 속에서도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패배로 인한 절대적인 열세 아래에서도 희망과 기대를 가지게 만든다. 과연 명량해전 당시 삼도수군통제사가 이순신이 아니었다면 나머지 11척의 전선이 전장까지 따라나서기나 했었을까? 그래도 이순신이 앞장서니 흩어졌던 병사도 전선들도 다시 이순신을 중심으로 모여들었던 것이었다. 300척이 넘는 적선을 상대로도 물러나지 않고 싸울 수 있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는가. 무엇을 어떻게 하면 지금의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다시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 민주당 의석이 174석이다. 우호의석까지 모두 합하면 180석이 넘어간다. 그냥 하던대로 하면 된다. 고수전쟁과 고당전쟁 당시의 고구려와 비교했을 때 압도적으로 강한 전력이다. 명량해전에 임하던 이순신의 함대에 비하면 비교하는 것조차 송구스럽다. 아무리 사법부가 미쳐 돌아가도 법을 만드는 것은 입법부고 입법부를 장악한 것은 민주당이란 것이다. 그 힘을 확인시켜주어야 한다. 민주적 원칙은 지키더라도 그 원칙을 저버리고 도발하면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되는지 직접 몸으로 확인하게 만들어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조국 전장관이나 그 가족들, 추미애 장관까지 그를 위한 어쩔 수 없는 희생이라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니면 그냥 무의미한 희생에 지나지 않게 된다.

 

지지자들도 확실히 해야 한다. 당연히 해야 하는 싸움이면 그 과정에서의 피해 역시 어쩔 수 없다. 희생 또한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이겨야 한다. 실망도 좌절도 없이 계속해서 싸워 이겨야 한다. 오히려 신난다. 아직 민주당이 계속 집권해서 바로잡아야 할 것들이 이렇게나 많구나. 멈출 수 없다. 게을러진 틈조차 없다. 희생은 당연한 것이다. 실패도 좌절도 당연한 것이다. 마지막 승리만 가져가면 된다. 바빠지는 것이다. 곧 선거시즌이다. 우리가 이긴다. 단 하나 당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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