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도 몇 번 이야기한 적 있지만 난 원래 조국이라는 인물에 대해 그다지 호감이 없었다. 그보다는 싫어했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그래서 처음 조국사태가 터졌을 당시 그럴수도 있겠다 별 의심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원래 그놈들이 다 그런 놈들인데 조국이라고 다를 것인가. 그런데 바로 그게 내가 정의당을 보는 시각이다. 정의당이 검찰에게 감히 못덤비고 언론의 눈치를 보는 이유다. 정의당 인간들 털어보면 아주 재미있지 않을까.

 

프랑스혁명이나 러시아혁명 당시 의외로 당시 기득권이라 할 수 있는 귀족들도 다수 참여하고 있었다. 그냥 이름만 귀족인,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일반 시민과 크게 다를 것 없었던 몰락귀족 뿐만 아니라 실제 상당한 기득권을 누리던 고위귀족 가운데도 혁명주의자가 있었고, 또한 많은 혁명주의자들이 이들의 경제적 후원을 받으며 저술도 하고 활동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물론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자신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왕이나 황제, 혹은 다른 귀족들을 공격하는데 아직은 무력한 존재인 이들 혁명가들을 이용한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 지성과 교양을 갖춘 지배층으로써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비판하는 입장에도 선다는 자신의 허영심을 충족시킨다. 프랑스에서는 한때 귀족의 특권과 부패를 비판하는 연극이나 저술을 후원하는 것이 귀족사회에서 유행이기조차 했었다.

 

내가 이만큼 배웠다. 이 정도로 알고 있다. 그러니까 나서서 주장도 해야 한다. 실천도 해야 한다. 단 내가 위험하지 않은 선에서. 내 이익이 침범당하지 않는 정도에서. 그게 바로 강남좌파라는 것이다. 집에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의 돈이 있다. 나름대로 내세울만한 사회적 지위와 명성도 있다. 그래서 공동체의 정의를 위해 나선다는 자존과 명예까지 탐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기득권으로서 이만큼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가며 노력하고 있다. 희생은 개뿔. 정의당이나 한겨레, 경향, 혹은 홍세화나 진중권 등 자칭진보들이 검찰의 법까지 무시하는 전횡과 횡포를 오히려 지지할 수 있는 이유인 것이다. 민주화 이후 과연 그들이 검찰을 두려워 할 만큼 진정으로 사회의 진보와 개혁을 위해 직접 나서서 싸운 적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러니까 검찰이 위법한 증거를 앞세우고, 증인들을 협박하고 회유하며, 법원이 증인들의 증언을 오히려 위증으로 몰아세우는 것에 대해 아무 감정이 없는 것이다. 자기들이 당한 적이 없으니.

 

프랑스혁명 당시도, 러시아혁명 당시도, 우리 역사에서도 동학혁명이나 혹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대한 기득권의 입장도 유사했었다. 평소에는 그리 시민들, 국민들, 조선 백성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척 하다가 정작 자신들의 기득권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하면 바로 태도가 돌변하고 만다. 그토록 백성들을 위하고 아끼는 모습을 보이던 사대부가 정작 백성들이 못살겠다 무기를 들고 일어서니 단호하게 그들을 진압하는 편에 서서 잔혹할 정도로 진압에 나선다. 동학혁명을 진압하는데 참여한 사대부들이 모두 탐관오리나 매국노들은 아니란 것이다. 그들에게 애민이란 딱 자기들의 기득권이 도전받지 않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혁명에 동참하고서도 자신들의 기득권을 여전히 지키기 위해 그들은 귀족이란 신분을 버리지 않았었다. 귀족의 신분까지 포기했던 진짜 혁명주의자는 귀족 가운데 아주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이해하면 된다. 민주화된 대한민국에서 더이상 권력과 대립하지 않아도 되는 자신들은 적당한 부와 지위와 권력까지 가진 기득권이다. 기득권으로서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

 

저들 자칭 진보들이 항상 결정적인 순간 기득권의 편에서 그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는 이유다. 이명박근혜 정권에서 사회의 진보와 개혁을 위해 싸우는 것처럼 보이던 것은 그것이 그들의 기득권을 강화하고 지키는 방편이었기 때문이었다. 자신들이 이만큼 진보적이다. 이만큼 개혁적이다. 이만큼 시민의 권리와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싸우고 있다. 그러나 정작 제도적으로 법적으로 기득권을 해체하고 진보와 개혁을 이루려 할 때는 노무현 정부에서나 현정부에서 보이는 모습 그대로 거의 기득권의 편에서 개혁을 저지하는 입장에 서고 있었다. 과연 민주노동당이 한나라당과 연대해가며 이루고자 했던 진보와 개혁이란 무엇이었는가. 어떤 공동체의 진보와 개혁을 위해 저들은 한나라당과 연대했던 것인가. 지금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다가 부당하게 탄압을 당할 때 쓰이던 그 구조에 대해 저들은 오히려 동조하며 편승하려 하는 중이다. 검찰의 별건수사와 먼지털이수사, 그리고 검찰과 유착한 사법부의 존재를 자신들의 근거로 사용하는 중이다. 검찰의 수사와 법원의 판결은 항상 옳고 개혁도 필요하지 않다. 어디서 그런 논리가 나오는 것인가? 말하지 않았는가? 검찰과 법원과 언론이 정의로운 이유가 곧 진보가 정의로운 이유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다. 자칭 진보에서 유력한 젊은 논객과 한 네티즌 사이에 논쟁이 붙었다. 그런데 논쟁 과정에서 네티즌이 공개한 학력을 알게 된 젊은 논객이 그것을 퍼뜨리며 조롱하기 시작했다. 과연 지켜보던 자칭 진보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서울대라는 학벌이 그리 자랑이던 젊은 논객이었다. 아마 지금도 어디선가 자기 이름 앞세워 활동하고 있을 것이다. 지지자들도 많다. 이런 게 강남좌파구나. 좋은 대학 나왔다. 집안도 그만하다. 심지어 정당에 몸담고 있으니 정치권력과도 가깝다. 언론도 자기가 말하면 어쨌거나 기사로 내주기도 한다. 원래 좋은 대학 출신도 아니고 집안이 좋지 않아도 그런 놈들과 어울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런 쪽을 동경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그게 싫어 저쪽 인간들과 관계를 끊었다.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되더라. 인정받고 싶어서 자꾸만 그쪽으로 생각과 글이 옮겨가는 것이 싫고 불편해서 항상 예민해져 있던 자신을 발견하고 있었다. 다행히 그 예민해진 상태의 나를 저쪽에서 견디지 못하더라. 그래서 지금 물류센터에서 몸을 써가며 돈벌고 글로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나 쓰고 싶은대로 쓴다.

 

아무튼 그렇게 이해하면 되는 것이다. 강남 좌파란 무엇인가. 기득권 진보란 어떤 것을 가리키는가. 그런 점에서 조국 사태는 흔한 강남좌파이던 조국 전장관을 각성시키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냥 평범하게 다른 사람들처럼 살았다. 다른사람들처럼 자식들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 이런저런 신경도 쓰며 노력도 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러는 것이 한 편으로 당연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부정당했다. 사실 민정수석 당시 해 놓은 것을 보면 당시까지 조국이나 정의당이나 크게 차이를 발견하기 어렵다. 그런 것을 검찰개혁 사법개혁이라고 내놓았던 것인가.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용인하고, 적당히 욕먹지 않을 정도로, 그런데 그런 정도마저 부정당하고 말았다. 기득권에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 정도로도 너무 나갔던 것이었다. 정의당이 검찰개혁에 대한 입장을 바꾼 이유이기도 하다. 자신들이 기득권 안에서 진보로써 인정받고 존재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선을 지킬 필요가 있다. 그리고 강제로 배척당하며 더이상 강남좌파일 수 없게 된 조국은 선택을 강요당하게 된다. 이대로 죽을 것인가? 아니면 생존을 위해 싸우는 전사가 될 것인가?

 

전처럼 듣기 좋은 말만 하며 살 수 없게 된 것이다. 그것이 진짜 혁명가다. 진짜 개혁가다. 진짜 정치인이다. 정의당이 정치동아리 소리를 듣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다못해 국민의힘도 자신들이 진짜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대해서는 다른 이들의 눈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비판받고 공격받는 것을 꺼려하지 않는다. 그게 신념이다. 그게 의지다. 그런 것 없이는 그냥 동아리인 것이다. 내가 저들을 일컬을 때 항상 앞에 '자칭'을 붙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심지어 진보언론이라면서 수구언론과 정면으로 맞붙어 논쟁할 의지도 용기도 없다. 진보적 이념과 가치를 추구한다면서 결정적인 순간에는 수구언론의 논리를 따라가고 만다. 설혹 주장을 하더라도 정면으로 맞붙는 것을 피해서 뽕나무를 가리키며 홰나무를 욕하듯 민주당 붙잡고 훈계나 일삼는다. 정확히는 조선일보를 공격하다가 조선일보로부터 부정당하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자신들이 진보언론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조선일보가 인정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의 조국 전장관 일가족에 대한 수사와 재판에 대해서, 그리고 윤석열에 대한 법원의 징계 효력정지 판결에 대해서 정의당이 내놓은 논평이란 그런 연장에 있는 것이다. 장혜영이 공수처법개정안에 기권하고, 검찰의 입장을 받아서 검찰내부에서 알아서 개혁하게끔 만들어야 한다며 주장하는 이유이기도 한 것이다. 저들에게 진보란 이 사회 기득권 안에 있는 것이다. 이 사회를 지배하는 엘리트라는 카르텔 안에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윤석열을 징계한 사유들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하게 되는 것이다. 엘리트라면 그 정도 일탈은 얼마든지 허용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자고 어렵게 시험봐서 좋은 대학도 들어가고 검사며 판사도 되는 것이다. 그래야 자신들도 그 기득권을 누릴 수 있다.

 

여성주의자들이 진짜 사회적 약자인 여성들을 위해 행동에 나서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사회적 소수자들을 위한다는 단체에서 진짜 경제적으로 약자인 소수자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자칭 진보 정치인들이, 자칭 진보언론들이 진짜 그들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주장이 아닌 실질적인 행동에 나서는 것을 본 적이 있기는 한 것인가? 진짜 법을 만들고 제도를 만들 때 그들은 어디에 있었는가? 그리고 정작 그 법과 제도를 만들고자 하는 이들과 그 반대편에 선 이들 가운데 누구를 비판하고 공격하고 있었는가? 중대재해방지법에 대해서도 정작 입법을 추진한 민주당을 공격하며 국민의힘에 노동존중이라는 수식어를 안겨준 것이 바로 저들 자칭진보들이었다.

 

당장 현정부에서 청년과 신혼부부, 그리고 취약계층을 위해 공급하려는 공공임대주택에 대해 아파트전세를 거론하며 비판하고 나서는 것이 지금 자칭진보들의 현실이란 것이다. 여전히 다수 국민들이 훨씬 좁고 열악한 환경에서 더 비싼 주거비용을 지불하며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외면한 채 딱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것들을 기준으로 비판하며 나서는 것이다. 저들에게 이미 정부의 정책이 절실한 서민의 존재란 저 멀리 보이지 않는 곳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수구언론의 서민과 자칭 진보의 서민 사이에 얼마나 유의미한 차이가 존재하는 것인가. 그에 비해 현정부와 여당의 정책이 가리키는 서민은 훨씬 더 현실에 가까이 존재한다. 그 차이가 어디서 비롯되는가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저들이 강남좌파인 이유고 기득권인 이유다. 정당이든 언론이든 지식인이든 상관없이. 활동가들도 아랑곳없이 누가 진짜 진보인가.

 

이제 분명히 해야 한다. 실천하는 진보와 말 뿐인 진보에 대해. 그저 듣기만 좋은 이미 많은 것을 가진 자신을 치장하는 수단으로써의 진보와 실제 현실을 뒹굴며 행동으로 이뤄가는 진보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유독 진보 정치인 가운데 노회찬만을 특별하게 여기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저들의 정체를 직시해야 한다. 그래서 자칭 진보인 것이다. 과연 진짜 진보란 무엇인가. 진짜 개혁이란 무엇인가. 현실이며 투쟁이다. 저들이 자칭인 이유다. 현실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