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5년 전부터 운동을 시작했지만 그럼에도 해결되지 않는 숙제가 하나 있다. 바로 늘어진 뱃살이다. 아무리 근육을 키우고 늘려도 이미 한 번 늘어난 뱃살은 오히려 내장지방이 빠진 만큼 늘어진 채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허리사이즈는 28인치 이하로 유지되는데 늘어진 뱃살이 그 위를 덮고 있으니 영 보기가 좋지 않다. 그러면 도대체 이 지랄맞은 뱃살은 언제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어렸을 적 부모님과 한 집에서 살던 외할머니는 내가 많이 먹으면 그리 좋아하셨다. 애가 자랄 때가 되었다. 한창 자랄 나이라 많이 먹는 것이다. 그래서 밥도 고봉밥으로 퍼주고, 라면도 아무때나 끓여 먹을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고기는 당연히 너무 비싸니 무리고, 채소도 그리 많이 자주 먹을 수 없었다. 대부분 내 식욕을 책임진 것은 라면과 고추장에 비빈 보리밥이었다. 단백질은 물론 지방도, 비타민도, 섬유질도 부족한 식단이었다. 그래도 필요한 열량은 채울 수 있었으니 나쁘지 않았다. 단지 지방이 쌓이며 배가 나오는 것이 문제였을 뿐.

 

그래서 성장기라 필요한 만큼 열량을 섭취하는대로 배가 나오게 되었다. 배가 나오고 나머지는 가슴으로 몰렸다. 그냥 돼지였다. 그때 자라난 가슴과 뱃살이 아직까지 남은 것이다. 대학교 들어가고 몸무게가 58 kg까지 줄었을 때도 늘어난 가슴살과 뱃살은 그대로 늘어진 채 예전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더욱 나이가 들어 50 가까워진 지금은 60kg초반대에서 근육량까지 적절히 유지하고 있음에도 그 늘어진 뱃살을 어찌하지 못하는 중이다. 그때 누군가 있어 나의 식단을 관리해 줬으면 어땠을까? 탄수화물의 섭취를 제한하고, 단백질과 지방의 섭취를 충분히 고려했다면 지금보다는 몸이나 건강이 조금 더 낫지 않았을까?

 

해외 네티즌들이 한국 무상급식 식단을 보며 감탄하는 것과 거의 비슷한 이유로 가끔 질투와 시기의 감정까지 느끼는 것은 그런 나 자신의 경험 때문일 것이다. 당시 내 도시락 반찬이란 고작 김치 아니면 무말랭이였다. 밥만 도시락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았고 반찬은 겨우 구색을 맞출 정도였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콩자반이나 멸치볶음을 싫어한다. 무말랭이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김치는 국물이 새서 그다지 도시락 반찬으로 적당치 않았다. 전문 영양사가 관리하는 식단을 검증된 재료로 조리해서 제공한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혜택이며 축복인가.

 

내가 직접 경험해 봤기에 아는 것이다. 있는 집 자식들은 고기며 햄이며 오뎅이며 단백질을 잘도 챙겨서 싸오고 있었다. 도시락 가득 계란후라이도 있었고, 맛난 반찬도 가득이었었다. 어째서 그런 단백질과 지방 위주의 반찬들을 아이들은 맛나다 여겼을까? 필요한 영양이 그런 반찬들에 더 많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에 비하면 심지어 저녁값까지 용돈으로 써야 했던 나는 항상 주리면서도 탄수화물 위주의 조악한 식단에만 의지해야 했었다.

 

어째서 무상급식인가. 무엇을 위한 무상급식인가. 낙인효과? 개지랄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가치다. 가장 중요한 성장기에 아이들의 영양을 직접 관리하고 지켜낼 수 있다. 28인치의 허리에도 늘어진 내 뱃살을 보며 더욱 확신하게 된다. 가슴근육을 키우며 겨우 채워진 가슴살을 보면서도 확신하게 된다. 아무것도 모르던 가난한 집안에서 성장기란 그저 손쉬운 탄수화물이나 죽어라 먹으며 지방을 채우던 시절이란 것이다. 국가가 그 시절을 관리해 준다. 20년 뒤, 30년 뒤, 지금의 세대들은 과연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

 

고마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이없게도 무상급식의 수혜를 가장 많이 받은 계층이 무상급식을 반대한 오세훈을 지지한 현실은 한국 사회의 부조리한 단면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무상급식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제대로 전달하지 않고 있다. 자칭 진보가 얼마나 사악한가 새삼 깨닫게 되는 부분일 것이다. 무상급식은 정작 반대했던 수구의 성과이자 업적이었다. 민주당은 배제한다. 오세훈이 무상급식을 가능케 했다. 그런 식으로 몰아가려 한다.

 

어릴 적 도시락 반찬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면서 학교에서 나오는 무상급식의 식단들과 비교해보게 된다. 차라리 내가 먹고 싶다. 내가 그 시절로 돌아가 저 식단들을 섭취하고 싶다. 지금도 나는 저만큼 체계적으로 관리된 식단을 섭취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너무 사소하게 무시되고 있다. 안타깝기 전에 화부터 나는 이유다. 나는 그 시절 먹는 것에 얼마나 절박했는가. 지금도 역시. 그것은 차라리 절망이기까지 하다.

집에서 이마트까지 거리가 딱 걸어서 오갈 수 있을 정도가 된다. 그래서 자주 이마트에서 술과 안주를 사다먹었다. 물론 동네 마트에서 사도 되긴 하지만 이마트 정도 되어야 파는 술의 종류나 질 모두 나를 만족시킬 수 있다. 주류백화점은 이마트보다도 더 멀리 있다. 그래서 쉬는 날이면 술 사는 김에 안주까지 같이 사서 냠냠거리며 먹고는 했었는데 그러던 것이 몇 달 전부터 많이 달라졌다.

 

신세계 오너라는 어느 분 때무이다. 그 인간 면상 보고 있자니 그냥 보드카 정도 안 먹고 말지란 생각만 들게 되었다. 그냥 동네 마트나 편의점에서 구할 수 있는 술 가운데 비슷한 것으로 아무거나 먹으면 그만이다. 안주야 어디서 사먹으면 어떤가. 내가 직접 해먹어도 크게 다를 것 없다. 요즘은 밀키트도 상당히 잘 나오는 터다. 그래서 몇 달 되었다. 이마트 들르지 않은지가. 보드카 대신 편의점에서 파는 장수막걸리로 주종을 바꾸게 된 것이.

 

소매점의 한계다. 세상에 상품도 많은데 굳이 특정 소매점만 집착할 이유가 없다. 세상에 술은 많다. 안주거리도 많다. 이마트 아니더라도 더 좋은 물건을 더 싸게 파는 곳은 인터넷에도 널려 있다. 굳이 이마트를 고집할 필요 없이 동네 마트에서 더 신선하고 좋은 제품을 적당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경로도 많다. 지역화폐라는 요긴한 수단도 있을 터다. 동네 마트에서 이용하면 그만큼 돈을 아낄 수 있다. 도대체 뭘 믿고 저 인간은 저리 오만한 것일까.

 

때로 고맙기조차 하다. 덕분에 술도 많이 줄었다. 이마트에서 술을 잔뜩 사다 쟁여놓고 마실 때는 꽤 마시는 양이 제법 되었는데 이제는 마실 때마다 편의점에 가서 딱 적당한 양만 사오니 그 양도 많이 줄었다. 그러라고 저리 개지랄을 떠는 것일까. 내 인생에 다시 이마트란 없다. 신세계는 더욱 해당사항이 없다. 그런 놈들 위해 내 주머니에서 돈 한 푼 흘러가게 내버려둘 수 없다. 당연한 다짐이다. 나 자신의 존엄을 위해서라도.

왕조가 처음 일어날 때는 경쟁자를 물리치고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궁리와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대부분 창업군주와 공신들은 유능하고 활력이 넘쳤다. 그런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연하게 그 권력이 후대로 물려지면서 후계자들은 그런 궁리와 노력 없이도 모든 것들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만큼 이제까지의 결과에 안주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조선후기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 더이상 성리학의 발전이 없었던 것과 비슷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성리학에 의한 지배가 공고해지면서 오히려 조선의 성리학은 쇠퇴하고 후퇴하고 있었다. 어찌되었거나 이제까지 해 온 공부이니 이대로도 좋지 않겠는가.

 

저들이 결국 다시 '멸공'을 들고 나온 이유일 것이다. 나는 얼마전까지 국민의힘의 정신적 퇴행이 박근혜의 유아적 독선의 결과가 아닌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뀌었다. 박근혜란 원인이 아닌 단지 결과에 지나지 않았다. 오랜동안 저들의 지배와 독점은 너무 당연한 것이었다. 그저 부모 잘 만나고 시험만 잘 치르면 주어지는 당연한 권력이고 부고 명예였다. 그 순간 그들에게 더이상의 고민과 노력은 필요가 없어진다. 사고가 단순해지고 유치해진다. 내가 똥이라면 똥이고 떡이라면 떡이다. 판사들의 판결에서도 그런 퇴행을 발견한다. 이제까지 문제없었으니 앞으로도 문제없다.

 

그래서 결국 들고 나온 것이 수 십 년 전 쓰이던 구호인 '멸공'인 것이다. 그것도 국민의 선택을 받아 집권한 정부를 대상으로. 자신들과 다른 입장에 있는 정파를 상대로. 너희들은 공산당이니 모두 때려잡아야겠다. 그런데 그 공산당이란 정의를 누가 내리는가? 그리고 그렇게 정의한다면 누가 동의하고 따라줄 것인가? 하지만 상관없다. 자기들이 그렇다면 그렇다. 그리고 이제까지 이 방법은 매우 효과를 발휘해 왔었다.

 

말하자면 관셩인 것이다. 언론이 국민의힘의 편에 서는 것도 관성이다. 심지어 한겨레와 정의당조차 국민의힘이 정권을 잡는 것이 너무 당연하다 여긴다. 국민의힘이 아닌 다른 정파가 정권을 잡는 자체를 불편하게 여긴다. 사고가 마비된다. 그래서 본능처럼 관성이 시키는대로 따르게 된다. 거기에는 당연히 독자적으로 사고하는 국민의 존재란 전제되지 않는다. 자신들이 이렇게 한 목소리로 선동하고 있으니 국민은 그에 따를 것이다.

 

선택의 기로다. 과연 국민들은 과거로의 퇴행을 선택할 것인가? 미래에 대한 새로운 도전과 가능성에 걸어 볼 것인가? 하지만 인간이란 사유하기에 존재하는 것 아니던가.

 

인간이 언제 늙기 시작하냐면 내일에 대한 희망이나 계획이 아닌 과거에 대한 추억과 향수에 더 기대기 시작할 때다. 인간의 뇌는 불확실한 내일을 대비하기 위해 존재한다. 길을 걷는 동안에도 마주치게 될 수많은 장애물들을 극복하기 위해 뇌는 항상 기능한다. 앞으로 나가길 거부하면 뇌는 퇴화한다.

 

선거의 구도는 더 명확해졌다. 이해찬이 핵심을 짚었다. 나 역시 처음부터 말한 바 있었다. 과거로의 퇴행인가? 아니면 미래로의 전진인가? 왕조가 3대를 가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 있다. 병신은 답이 없다.

기득권이 기득권인 이유는 그들이 정의롭기 때문이다. 정의롭기 때문에 누구의 조언도 비판도 들을 이유가 없다. 오히려 가르쳐야 한다. 보다 엄격하게 보다 혹독하게 가르쳐서 모두가 정의롭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싸운 것 아니던가. 분명 불의한데 오히려 스스로를 정의라 여기며 정의로운 이들을 억압하고 탄압하는 모습에서 젊은 혈기가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그러니까 목숨을 걸고서라도 저 불의한 권력을 몰아내야겠다.

 

확실히 권인숙도 기득권이 되었다. 하긴 나이가 몇 살인데. 더구나 교수였다지 않은가. 가르치는 것에 익숙하다. 무지하고 몽매한 이들을 가르쳐서 바른 일로 이끌어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것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틀렸다. 틀린 정도가 아니라 너희가 몰라서 그러는 것이다. 나는 안다. 나는 진실을 알고 정의를 알고 진리를 알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들을 가르쳐서 바꾸겠다. 자칭 진보가 그래서 망했다. 말하지 않았는가. 논쟁하다 말고 너 어디까지 책 읽고 논문 읽고 왔냐는 말로 다 끝내더라고. 모르면 넌 무식한 놈이니 논쟁할 가치가 없다. 그냥 강의를 들으라.

 

어째서 민주당 지지자들이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의 닷페이스 출연에 분노하고 있는가. 당원이다. 어찌되었더나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해서 민주당 지지자들의 투표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정치인이다. 그렇다면 자신을 국회의원으로 만들어준 지지자들에 대해 어째서 그런 주장을 하는가 한 번은 귀기울일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동의하지 못하더라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존중하는 마음에서라도 한 번 더 귀기울여 듣고자 하는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없다. 존중도 뭣도 없고 오로지 일방적인 무시와 훈계만 있을 뿐이다. 너희는 나와 같은 급이 아니다. 같은 존재가 아니다. 그러니 내가 하는 말을 들으라.

 

꼭 닮아 있는 것이다. 권인숙이 젊었을 적 싸우던 전두환의 모습과. 그것이 바로 페미니즘 기득권의 실체이기도 하다. 오래전부터 여성주의자들과 논쟁하면서 깨달았다. 저들은 대중의 동의와 지지를 바라지 않는다. 대중이 자신들의 주장의 근거와 타당성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함께해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너는 그냥 들으라. 너는 그냥 따르라. 내가 옳다. 내가 주장한다. 내가 실행한다. 그런데도 권인숙과 전두환이 닮지 않았다는 것인가.

 

원래 여성주의의 모습이다. 일제에 빌붙고 군사독재에 빌붙고 재벌에 빌붙어서 자신들의 기득권 확대만을 위해 노력하던, 그 기득권을 정의로 포장하기 위해 진보를 참칭하던 그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민주당 지지자들이 여성주의자들을 싫어하는 것이다. 민주당 지지자들 입장에서 기득권의 가장 싫은, 절대 옳다고 할 수 없는 악 그자체를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왜 반페미일까? 장애인을 위해서도, 성소수자를 위해서도,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서도 기꺼이 연대할 수 있는 다수 민주당 지지자들이 어째서 여성에 대해서만 연대를 거부하는 것일까? 정확히 여성이 아니다. 그 여성을 참칭하는 기득권 여성주의자들이다. 박근혜를 지지하고 마지막까지 박근혜를 옹위하려 했던 그들. 권인숙도 그 중 하나였는지는 모르겠다. 하긴 그런 주제를 알면 전두환일 리 없겠지. 전두환도 죽을 때까지 정의로웠을 것이다. 네년들처럼.

윤석열 처가와 본인의 의혹이나 추문이 본격적으로 불거지면서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특히 자칭 진보들. 한겨레는 지금 그런대로 윤석열 본인이나 주변에 대해 비판하는 척은 한다. 그런데 그 태도가 재미있다. 조국이나 추미애는 더 까지 못해 안달이었다. 인간취급을 하지 않았다. 아예 근절해야 할 악이며 이 사회의 재앙으로 치부했었다. 문재인 정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없는 사실까지 만들어가며 증오와 혐오를 감추지 않았었다. 그런데 윤석열은?

 

그나마 윤석열에 대해 이 정도 시끄러우니 비판하는 척이라도 하는 것이다. 그래도 예전 여야정치인들 비판하는 수준을 넘지 못한다. 윤석열의 공약에 대한 비판은 감히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공약에 대한 분석 또한 아예 시도도 못한다. 그냥 신변잡기에 대해 가십처럼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하긴 그나마 한 마디도 못하는 정의당에 비하면 열심이라 할 수 있다. 한겨레가 이런데 KBS는? 좆또비씨나 씨방새나 좆선은 어떨까? 

 

교수가 자기 대학 총장 표창장을 발급해 준 건 그리 죽을 죄인데 겸임교수 하겠다고 허위이력 적어넣은 건 그냥 인터넷에서 도박 얼마간 한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아니 그만도 못하다. 말 몇 마디로 이미 사과는 끝났다. 더이상 누구도 그 사실을 문제삼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려고 김건희도 방송에 나와 사과를 했던 거겠지. 김어준과 한 때라도 어울렸으면 저 모양이란 것이다. 기자새끼는 사람새끼가 아니다. 이재명도 명심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에 바라는 언론정책은 하나다. 그냥 딱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윤석열 국민의힘 하는 만큼만 하라. 광고 끊고, 고소고발하고, 정부에서 예산지원하는 것이면 그 지원금액도 끊고, 아주 철저히 짓밟아 다른 소리 못하게 하라. 그러니까 저 한겨레조차 언론탄압이라고 입도 벙긋 못하는 것 아니던가. 서울시에서 광고 끊겠다는데 비판 한 마디 못한다. 그게 바로 언론의 자유다. 언론이 바라는. 사람이 아닌데 사람취급해 줄 필요가 없다.

간단한 산수 같은 것이다. 불과 얼마전까지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사회적거리두기를 시행했었다. 아니 아예 거리두기 정도가 아니라 문밖출입 자체를 금지하는 셧다운까지 실행한 나라들도 적지 않았었다. 왜? 백신이 없었으니까. 아직 항체가 충분히 생성되기 전이었으니까. 그러니 모이면 높은 확률로 걸릴 수 있고, 걸리면 또한 죽음에까지 이를 수 있기에 아예 모이지 못하도록 국가가 강제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백신접종이 이루어지고 충분한 만큼 항체가 생겨난다면 굳이 그렇게까지 거리두기를 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나온 게 백신패스다.

 

법원에서도 인정했듯 백신을 맞으면 57%라는 높은 확률로 코로나 감염을 회피할 수 있다. 백신을 맞지 않았으면 거의 걸릴 수 있는 상황에서도 백신으로 인해 감염을 회피할 수 있고, 감염되더라도 중증으로 진행되는 정도를 낮출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겨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방역을 해도 좋지 않겠는가. 백신을 접종한 사람들에 한해서 이전보다 더 여유를 두고 거리두기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백신패스다.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들은 감염가능성이 높으므로 이전과 같이 거리두기를 계속한다. 더불어 백신을 맞지 않았기 때문에 바이러스 감염가능성이 높고, 백신을 맞았기 때문에 감염되었음에도 증상이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들을 한 데 모아놓는 것은 자칫 감염을 증폭시키는 매개가 될 수 있다. 그러니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아직은 출입을 제한하자.

 

하긴 정의당은 작년부터 이미 거리두기 자체를 반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다 모여도 좋다. 모여도 안 걸린다. 안 걸리고 안 뒈진다. 코로나는 거짓말이다. 코로나는 가짜다. 아니 코로나 걸리는 것도 개인의 자유다. 코로나 걸려 뒈지는 것도 개인의 권리다. 국가가 강제할 대상이 아니다. 그게 자칭진보다. 언제부터 자유의지주의가 진보의 이념이 되었을까? 자유의지주의는 원래 꼴보수들의 이념인 것이다. 자유주의와 비슷해 보인다고 자유의지주의를 떠드는 자칭진보란 그야말로 아이러니 자체일 것이다. 어차피 백신도 소용없는 것 그냥 다 코로나 걸려 뒈지게 자유롭개 내버려두지 국가가 뭘 하는 것인가. 그게 바로 심상정이 주장하고 싶은 것일 게다. 저런 놈들이 진보?

 

원래 진보란 과학이었다. 보다 첨예하고 치열한 이성과 합리의 결과물이었다. 그동안 너무 당연하게 여겨 온 관습들에 대해 궁구하여 인간의 이성과 합리로써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다. 과거의 인습이든 본능적인 충동과 직관의 결과이든 개인의 자유에만 온전히 맡기겠다 하는 것은 진보와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본능이 시키는대로 여성을 혐오하고 외국인을 증오하겠다고 하면 자칭 진보는 그것을 용인할 것인가. 외국인은 다 내쫓자 주장하는 것도 자유인 것이다. 내 몸 내 마음대로 한다고 노예로 자신을 파는 것도 자유일 수 있다. 그런데 어째서 현대사회는 그런 것들을 부정하는가. 그야말로 자칭진보의 자기부정인 셈이다.

 

다시 말하지만 자유의지주의, 혹은 자유지상주의는 진보가 아니다. 진보일 수 없다.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개인의 오로지 자유의지에만 모조리 맡기는 것은 보수에서도 상당히 극단에 있는 이념이며 사상이다. 하긴 여성주의의 뿌리가 그곳이기는 하다. 지금 한국 여성주의의 뿌리는 있는 놈들과 가진 념들을 위한 여성주의일 터다. 그들에게 가장 유리한 이념이 무엇이겠는가. 내가 가지고 있는 만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일 터다. 그레 지금 자칭 진보가 주장하는 자유의 정체인 것이고. 씨발년은 그냥 씨발 버러지년인 것이다. 자칭 진보가 진보마저 포기한다. 쌍년.

정치결사로서 정당이 존재하는 1차적 목적은 무엇보다 정권의 획득이다. 정당이 추구하는 이념과 지향이 있다. 정책과 법안들이 있다. 이루고자 하는 정의와 이상과 가치가 있다. 그를 위해서 원내에서 다수의석을 차지해야 하고, 정권을 획득하기 위한 선거에서도 이겨야 한다. 그런데 그런 선거에서 뒷짐지고 있거나 아니면 아예 반대편에서 움직이고 있다면 이를 어떻게 판단해야 하겠는가.

 

정당이 정권을 가져오는 것에도 관심없다. 정당이 추구하는 이념과 지향, 정책과 법안, 정의와 이상과 가치에도 전혀 아무 관심이 없다. 혹은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상대정당이어도 상관없다. 상대정당이 정권을 잡고 그들이 원하는대로 하더라도 자기들은 아무 상관이 없다. 그렇다면 그들을 같은 정당인이라 여겨도 좋은 것인가. 정당이 이루고자 하는 것들에 관심도 없고 동의도 없다면 그들은 어째서 정당에 몸담고 있는 것인가.

 

그래서인 것이다. 다음 총선에서 대선에서의 기여정도를 반영하여 공천할 것이다. 아마 당이 그러기 전에 먼저 지지자가 그렇게 움직일 것이다. 지난 총선에서 그랬었다. 당과 당이 출범시킨 정부에 최선을 다했다면 지지해서 밀어올리고, 아니면 가차없이 끌어내렸다. 그 가운데 하나가 금태섭이었다. 지지자가 원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를 지지한다면서 윤석열을 지지하는 그 똥파리 미친새끼들이 아니라. 민주당을 지지해서 추미애 욕하고 이해찬 욕하고 심지어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마저 버리고는 윤석열과 홍준표를 미친 듯 빨아제끼고 있다. 이낙연이 아닌 민주당은 의미없다. 그런 놈들이 과연 민주당 지지자이겠는가. 그런 놈들이 민주당 당원일 수 있는 것인가.

 

송영길이 잘하고 있다. 소인배에게는 소인배 나름의 방식이 필요한 것이다. 대도는 대인배를 위한 것이고 소인배를 위해서는 뒷길샛길갈랫길이 필요하다. 어쩌면 지금 민주당에 가장 필요한 정치인일지도. 그동안 이딴 식으로 정치하는 놈은 김한길밖에 못봤는데, 김한길은 당의 입장이나 이익은 상관없는 종자라 또 결이 다르다. 결국에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데 당에도 이익이 된다. 권력을 안다. 훌륭한 정치인이다.

청와대의 공식입장이야 어떻든 나는 확신한다. 박근혜 사면에 최소한 더불어민주당 대표 송영길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아니라면 하필 그 며칠 전 윤석열이 민주당 정권의 과오라며 굳이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총장에 임명되었던 사실을 들출 이유가 없었다. 차라리 그것은 문재인 정부의 인사실패에 가까웠다. 하지만 박근혜가 사면되면서 문재인 정부의 과오는 그가 검찰총장까지 될 수 있었던 배경인 박근혜 정부에 대한 적폐수사까지 소급하게 되었다. 박근혜를 잡아넣고 그 대가로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총장이 되고 마침내 국민의힘 대선후보까지 될 수 있었다.

 

윤석열의 지지율이 떨어지자 언론들은 진보와 보수 할 것 없이 안철수와의 단일화를 띄우려 노력 중이다. 안철수와 단일화해서 그 지지율을 끌어들이면 지금의 열세를 뒤집을 수 있다. 문제는 그게 그리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열심히 군불을 지피는데 전혀 화제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안철수라는 이름의 무게감이 불과 몇 주 전과 비교해서도 부쩍 커진 때문이다. 언제 협상이 어려운가. 현상과 전쟁이 쉽게 끝나지 않는 것은 서로 위치가 대등하기 때문이다. 서로 가진 역량의 차이가 적기에 쉽게 결론이 나기 어려운 것이다. 불과 몇 달 전까지 뭐하자고 또나오는가 비웃음만 사던 안철수가 어느새 이재명과 윤석열의 뒤를 이어 또다른 이슈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안철수가 누구와 연대하는가. 어떻게 지금 대선정국에서 최대의 정치적 이익을 챙길 수 있을 것인가. 당선은 어렵더라도 연정까지 가능하지 않을까. 어떻게? 송영길이 밑밥을 깔아 두었기 때문이다.

 

안철수는 이재명과는 감정이 없다. 이재명과는 얼마든지 손을 잡을 수 있다. 이전까지 완전히 민주당의 반대편에서 수구정당인 국민의힘 말고는 연대할 대상이 없는, 그래서 선택지가 제한된 군소후보에서 이제는 국민의힘은 물론 민주당과도 손잡을 수 있는 그야말로 중간지대의 맹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여전히 문재인 정부에 적대적으로 민주당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지만 그렇다고 굳이 국민의힘에만 매달릴 필요가 없다. 국민의힘이 안철수와 단일화를 하려 해도 그만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면 과연 국민의힘은 안철수가 요구하는대로 대가를 지불할 수 있을 것인가. 약속할 수는 있을 것인가. 그렇다고 지금 상황을 그대로 내버려두면 윤석열의 지지율이 빠지는 만큼 안철수의 지지율이 오르고, 안철수의 지지율이 오르는 만큼 윤석열의 지지율이 빠지는 악순환만 계속될 것이다. 

 

새삼 감탄하게 되는 이유다. 송영길의 아이디어인지 아니면 민주당 내 정치인 누군가의 생각인지는 지금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실제 실행한 것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전까지 없었다. 김대중 이래로 민주당 정치인 가운데 이렇게 더럽게 정치하는 놈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김한길은 민주당 내부의 정치인이나 세력들에게만 더러웠다. 김대중에게 정치를 잘못 배운 탓이다. 진짜 제대로 민주당에도 정치꾼이 나타났다. 국민의힘에는 그동안 많았었다. 워낙 그쪽으로 특화된 놈들이었으니. 염치도 체면도 돌아보지 않고 이익이 되면 일단 저지르고 본다. 그래도 언론은 침묵한다. 자칭 진보들이 그런 걸 굳이 짚고서 비판하는 꼴을 못 봤다. 그런데 소소한 소인배 송영길이 민주당에서는 드물었던 그같은 캐릭터를 보여주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얼핏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과연 지금 민주당이 민주당이 맞는 것인가.

 

그새 많이 늙은 모양이다. 예전 이따위로 정치했으면 바로 욕부터 박았을 것이다. 정치 더럽게 한다. 그런데 그만큼 절박한 탓에 욕보다는 차라리 칭찬부터 하게 된다. 소소한 소인배 송영길이 그래서 무척이나 소중하다. 민주당에도 이런 정치인이 필요했다. 필요한 때 필요한 인물이 당대표 자리에 앉아 있다. 대부분 당대표로서 판단과 결정들이 정치공학적으로 민주당에 이익이 되고 있다. 정치란 원래 더러운 것인가. 머리로 알았지만 이제 가슴으로 동의한다. 잘하고 있다는 뜻이다. 평가는 과정이 아닌 결과에 하는 것이다. 이기는 것이 무조건 최선이고 최고다.

정치인이라면 절대 피해야 하는 몇 가지가 있다. 그 하나가 우습게 보이는 것이다. 만만해서 우습고 진짜 웃겨서 우습다. 누구도 그런 우스운 사람이 자기 머리 위에 군림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과거 이명박을 돌아보자. 박근혜도 마찬가지다. 이명박이 우스웠는가? 박근혜가 우스웠는가? 차라리 무서웠다. 차라리 저건 나쁜 놈이라 더 무섭구나 했었다. 그러니 대통령까지 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반면 정동영은 우스웠다. 유시민이 붙인 '곶감'이라는 별명이 대선 내내 따라다녔고, 나중에는 입만 열면 'BBK'라며 비웃음까지 샀었다. 그래서 역대 최악의 참패를 당했던 것이었다. 무서운 부분이 하나도 없었으니.

 

지금 윤석열 꼬라지가 그렇다. 누구도 윤석열을 무섭게 여기지 않는다. 무서운 것은 윤석열이 아닌 그 뒤에 도사린 검찰이다. 검찰이 가지고 있는 수사정보나 수사권 기소권이 무서운 것이지 윤석열 자신이 무서운 것이 아니다. 그보다 우습다. 윤석열을 소재로 한 수많은 밈들이 그래서 인터넷에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중이다. 2030의 지지율이 급락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윤석열이란 이렇게 우스운 사람이었는가.

 

이재명과 윤석열의 차이다. 그나마 윤석열이 정동영보다 나은 점이라면 35%라는 기본지지율은 가지고 선거에 임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래봐야 입만 열면 '대장동'인 것도 완전 닮은 꼴이지만.

 

저쪽에서 이재명을 보는 시각도 그래서 이명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리턴매치랄까. 이재명은 이명박, 윤석열은 정동영. 부디 바라는 마음 뿐이지만. 다음 정권에서 KBS와 한겨레는 확실하게 끝장내자. 아, 연합뉴스도. 바랄 뿐이다.

수사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흔히 나오는 장면이다.

 

"통화기록 좀 조회해 봐."

"몇 월 몇 일 몇 시에 이 번호와 통화했는데..."

"일주일 동안 이 번호와 가장 자주 통화했습니다."

 

그러니까 언제 누구와 통화했는가 내역을 살피는 건 수사의 기본 가운데 기본이란 것이다.

 

통화내용이 무엇이었는가는 누가 중간에 녹음이라도 해두지 않으면 알 도리가 없다. 그래서 이재명도 대장동 관련해서 누구와 통화했네 하는 것이 중요하게 거론된 것 아니던가. 그런데 검찰수사에서도 나온 게 없다면 진짜 없다는 뜻이겠지. 진짜 국민을 바보로 하는 모양이다.

 

하긴 찔리는 것이 있을 테니까. 이동재의 검언유착이 한창 이슈가 되었을 때 KBS가 의도적인 가짜뉴스로 방향을 틀었던 적이 있었다. 분명 그 가짜뉴스는 의도된 것이었다. KBS는 검찰과 유착해서 인터뷰까지 왜곡해서 내보낸 전력이 있는 방송사다. 정연욱 요즘도 참기자 어쩌고 생쇼하는 것 같더만.

 

한겨레는 아니었을까? 경향과 SBS는 그쪽에서도 거물에 속한다. 그러니 통화내역을 조회한 것만으로도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윤석열이나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한국 수사기관은 진짜 사찰만 하는 모양이다. 사찰하는 내용을 당당히 드라마로 내보내도 문제삼지 않을 만큼 이미 무감각해진 것이거나. 검찰이 지난 2년 간 조회한 통화내역만 280만 건이다. 

 

아주 프레임 만들려 용을 쓴다. 지랄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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