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5년 전부터 운동을 시작했지만 그럼에도 해결되지 않는 숙제가 하나 있다. 바로 늘어진 뱃살이다. 아무리 근육을 키우고 늘려도 이미 한 번 늘어난 뱃살은 오히려 내장지방이 빠진 만큼 늘어진 채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허리사이즈는 28인치 이하로 유지되는데 늘어진 뱃살이 그 위를 덮고 있으니 영 보기가 좋지 않다. 그러면 도대체 이 지랄맞은 뱃살은 언제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어렸을 적 부모님과 한 집에서 살던 외할머니는 내가 많이 먹으면 그리 좋아하셨다. 애가 자랄 때가 되었다. 한창 자랄 나이라 많이 먹는 것이다. 그래서 밥도 고봉밥으로 퍼주고, 라면도 아무때나 끓여 먹을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고기는 당연히 너무 비싸니 무리고, 채소도 그리 많이 자주 먹을 수 없었다. 대부분 내 식욕을 책임진 것은 라면과 고추장에 비빈 보리밥이었다. 단백질은 물론 지방도, 비타민도, 섬유질도 부족한 식단이었다. 그래도 필요한 열량은 채울 수 있었으니 나쁘지 않았다. 단지 지방이 쌓이며 배가 나오는 것이 문제였을 뿐.

 

그래서 성장기라 필요한 만큼 열량을 섭취하는대로 배가 나오게 되었다. 배가 나오고 나머지는 가슴으로 몰렸다. 그냥 돼지였다. 그때 자라난 가슴과 뱃살이 아직까지 남은 것이다. 대학교 들어가고 몸무게가 58 kg까지 줄었을 때도 늘어난 가슴살과 뱃살은 그대로 늘어진 채 예전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더욱 나이가 들어 50 가까워진 지금은 60kg초반대에서 근육량까지 적절히 유지하고 있음에도 그 늘어진 뱃살을 어찌하지 못하는 중이다. 그때 누군가 있어 나의 식단을 관리해 줬으면 어땠을까? 탄수화물의 섭취를 제한하고, 단백질과 지방의 섭취를 충분히 고려했다면 지금보다는 몸이나 건강이 조금 더 낫지 않았을까?

 

해외 네티즌들이 한국 무상급식 식단을 보며 감탄하는 것과 거의 비슷한 이유로 가끔 질투와 시기의 감정까지 느끼는 것은 그런 나 자신의 경험 때문일 것이다. 당시 내 도시락 반찬이란 고작 김치 아니면 무말랭이였다. 밥만 도시락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았고 반찬은 겨우 구색을 맞출 정도였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콩자반이나 멸치볶음을 싫어한다. 무말랭이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김치는 국물이 새서 그다지 도시락 반찬으로 적당치 않았다. 전문 영양사가 관리하는 식단을 검증된 재료로 조리해서 제공한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혜택이며 축복인가.

 

내가 직접 경험해 봤기에 아는 것이다. 있는 집 자식들은 고기며 햄이며 오뎅이며 단백질을 잘도 챙겨서 싸오고 있었다. 도시락 가득 계란후라이도 있었고, 맛난 반찬도 가득이었었다. 어째서 그런 단백질과 지방 위주의 반찬들을 아이들은 맛나다 여겼을까? 필요한 영양이 그런 반찬들에 더 많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에 비하면 심지어 저녁값까지 용돈으로 써야 했던 나는 항상 주리면서도 탄수화물 위주의 조악한 식단에만 의지해야 했었다.

 

어째서 무상급식인가. 무엇을 위한 무상급식인가. 낙인효과? 개지랄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가치다. 가장 중요한 성장기에 아이들의 영양을 직접 관리하고 지켜낼 수 있다. 28인치의 허리에도 늘어진 내 뱃살을 보며 더욱 확신하게 된다. 가슴근육을 키우며 겨우 채워진 가슴살을 보면서도 확신하게 된다. 아무것도 모르던 가난한 집안에서 성장기란 그저 손쉬운 탄수화물이나 죽어라 먹으며 지방을 채우던 시절이란 것이다. 국가가 그 시절을 관리해 준다. 20년 뒤, 30년 뒤, 지금의 세대들은 과연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

 

고마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이없게도 무상급식의 수혜를 가장 많이 받은 계층이 무상급식을 반대한 오세훈을 지지한 현실은 한국 사회의 부조리한 단면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무상급식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제대로 전달하지 않고 있다. 자칭 진보가 얼마나 사악한가 새삼 깨닫게 되는 부분일 것이다. 무상급식은 정작 반대했던 수구의 성과이자 업적이었다. 민주당은 배제한다. 오세훈이 무상급식을 가능케 했다. 그런 식으로 몰아가려 한다.

 

어릴 적 도시락 반찬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면서 학교에서 나오는 무상급식의 식단들과 비교해보게 된다. 차라리 내가 먹고 싶다. 내가 그 시절로 돌아가 저 식단들을 섭취하고 싶다. 지금도 나는 저만큼 체계적으로 관리된 식단을 섭취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너무 사소하게 무시되고 있다. 안타깝기 전에 화부터 나는 이유다. 나는 그 시절 먹는 것에 얼마나 절박했는가. 지금도 역시. 그것은 차라리 절망이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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