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해전 당시 이순신이 일본군 수군지휘관이던 구루지마 미치후사의 목을 배어 뱃전에 매달았던 것을 두고 아무리 그래도 너무했다 말하는 일본인이 꽤 있었다. 그래도 적의 대장이었는데 예우를 해 주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 평화롭게 잘 사는 남의 나라에 쳐들어온 적인데 이미 죽은 적의 시체를 가지고 뭘 하든 그게 뭔 상관이냐는 것이다. 결국은 서로 경쟁하던 다이묘 가운데 하나를 대하는 것과 자신을 위협하는 적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일 것이다. 죽었어도 다이묘이고 사무라이인가, 아니면 그냥 적일 뿐인가. 그래서 대처가 죽었을 때 영국인들이 광분을 했었다. 대처는 일부 영국인들에게 추모할 가치도 없는 적일 뿐이었다.

 

홍세화가 이전에 어떤 삶을 살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진중권이 이전에 진보논객으로써 어떤 주장들을 했는가가 새삼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이유과 같다. 중요한 것은 홍세화가 바로 직전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 좋아하는 똘레랑스는 절대 민주당과 민주당 정부를 위해서는 쓰이지 않았었다. 보수정당과 정부에 대해서는 쌓이고 쌓여야 한 마디 하던 것이 정작 민주당과 민주당 정부에 대해서는 표현조차 거의 거르지 않고 바로 쏘아진다. 정권이 교체되는 과정에서나 교체된 이후에도 한결같았다. 민주당이 야당일 때도 홍세화의 똘레랑스는 야당인 민주당을 위해서 단 한 번도 쓰인 적 없었다. 그 결과 민주당은 정권을 내놓았고 그나마 민주당 정부에서 이루어낸 모든 것들이 무위로 돌아갔다. 그러면 민주당 지지자로서 나는 홍세화에 대해 어떻게 판단해야 하겠는가.

 

지금 당장 진중권이 죽는다고 추모하거나 할 생각따위 전혀 없다. 강준만이 죽더라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어땠을지 몰라도 민주당 정부에서 저들은 지지자인 나의 적이었고, 결과적으로 민주당이 이루어낸 그나마의 진보마저 모두 무위로 돌린 적들 가운데 하나였다. 대처처럼 잘 죽었다고 환호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죽음을 안타까워 할 정도까지는 아니라는 것이다. 설마 정규재나 조갑제가 죽었다고 내가 추모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윤서인이 죽었는데 내가 슬퍼하고 안타까워해야 할 이유가 있겠는가. 2찍인가의 여부는 모르겠지만 그와 가깝게 행동한 인사에 대한 나의 판단은 한결같다. 적은 그냥 적이다. 그리고 적의 죽음은 기뻐하지 않더라도 슬퍼할 일까지 아니다. 더 욕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죽었구나. 아마 한 10년 쯤 전이었으면 모르겠다. 그만큼 원한과 분노가 크다. 어쩔 수 없다.

조국 때도 이랬으면 어땠을까 싶기는 하지만 당시는 검찰이 아직 절대적인 약자였었다. 그래서 내가 이낙연과 임종석을 의심하는 것이다. 조국사태 때도 정부가 마음만 먹었으면 욕 좀 들어먹고 윤석열의 반란을 조기에 진압할 수 있었다. 윤석열이 아예 청와대까지 압수수색하겠다 나서는 상황을 어떻게든 조기에 수습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못했다. 청와대가 약해서? 검찰청은 행정부에 속해 있는데? 추미애가 나서자 거의 초반 검찰의 반란은 종식되는 듯 보이기도 했었다.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뒷심을 발휘하지 못해서 약해 보인 것이지 조금만 더 밀어붙였다면 검찰은 아예 찍어 누를 수 있었다. 추미애 전장관이 이낙연을 괜히 저격하고 나선 것이 아니다. 

 

아무튼 당시는 대통령이 나서서 한 마디 했다고 갑자기 역풍이 불고 정부의 지지율이 폭락하던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정권에 비하면 검찰은 철저히 약자다. 그래서 살아남았다. 그동안 검찰이 동원된 수많은 정치수사에 대해 검찰은 단지 하수인일 뿐 시키는대로 한 것 뿐이라며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 곧 검찰의 중립성과 공정성을 담보해 줄 것처럼 여겨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이 큰 울림을 가지고 다가온 이유이기도 했다. 신임 검찰총장이 바로 언론까지 동원된 공격에 하루아침에 나가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설마 검찰이 실제 권력일 것이라 여겼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차라리 문제가 되려면 검찰출신인 정부의 고위인사들에게 더 의심이 돌아가고 마는 정도였다. 그런데 정권 아래에서 정권에 대드는 검찰을 정부와 여당에서 압박하는 모양새였다면... 그래도 사실 욕 좀 들어먹고 마는 쪽이 더 나았을 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런 상황이었다면 검찰이 철저히 피해자처럼 여겨지게 되었을 것이다. 홍세화 나부랭이들이 검찰의 편을 들어 별 개소리를 늘어놓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검찰이 최고권력이 되었다. 어쩌면 처음일 것이다. 군사독재시절에는 당연히 군이 최고권력 바로 아래에 있었다. 그 권력이 동원하던 수단 가운데 국정원이 있었다. 기무사와 국정원이 국내정치에서 손을 떼고 난 뒤 검찰이 사실상 단일기관으로는 가장 강한 힘을 가지게 되었음에도 그것이 전면에 드러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이제 검찰 출신의 대통령이 나오고 그 아래에서 검찰 출신들이 요직을 맡는 상황이 되었다. 누가 보더라도 검찰의 수사에 검찰 출신인 대통령과 법무부장관의 입김이 들어갔을 것이 의심되는 상황이다. 그리고 하필 그 대상이 그를 견제하는 야당의 대표다. 딱 권력에 의한 정치적 탄압의 모양새가 갖추어지는 구도인 셈이다. 더구나 그동안의 정황에서 언론이 철저히 정부, 나아가 검찰에 친화적이라는 사실도 드러난 지 오래다. 조국사태 때는 언론만 믿고 떠들던 대부분 인간들도 이제는 언론의 보도를 한 번 걸러서 보게 되었다. 검찰이 아예 최고권력을 차지하면서 나타난 현상들이다. 그런 상황에 야당이 부정적인 이슈를 이유로 검찰을 찾아 항의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겠는가. 하물며 선거를 통해 검찰권력에 대한 심판이 이루어진 직후다.

 

원래는 한참 전에 이루어졌어야 할 행위들이 이제야 겨우 가능해지게 된 것이다. 정확히 가능하기는 했는데 괜히 꺼리던 것들이 이제는 그 이유들이 대부분 제거되면서 더욱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시 한 번 이낙연 개새끼를 외치면서, 임종석 씨발롬이 다시는 정치권에 기웃거려서는 안된다는 확신을 가지면서, 비로소 원래 했어야 하는 일들을 하게 된 것을 뒤늦게나마 다행스럽게 여긴다. 더불어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이같은 거대야당의 행보가 사법부에 어떤 압력으로 여겨질 것인가 생각한다면 이후의 재판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판사새끼들도 기자새끼들이나 검사새끼들 못지 않게 정신나간 것들이라 자신할 수는 없다.

 

원래는 선거 전에도 민주당이 적극적으로 나섰어야 했는데 그때도 이미 정권을 내 준 상황에서 역풍 조심한다고 몸사리고 있던 것을 떠올리면 그나마 선거에서 이겨서 이 정도라도 할 수 있게 되었음을 다행으로 여긴다. 민주당이 수원지검을 찾아가 항의한다. 재판과정에서 드러난 사실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항의하며 언론을 통해 알려질 수 있도록 한다. 여기서 그나마 기자들 게으른 속성이 도움이 되어 주기도 한다. 원래라면 민주당 하는 소리 따위 귓등으로 들었어야 하는데 기계적으로 받아쓰느라 이런 것들도 기사가 된다. 메인은 못된다. 반드시 언론개혁까지 이루어내기를. 지금 딱 윤석열 정부에서 하는 만큼만 하면 된다. 언론탄압이라는 말이 언론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새삼 확인한다.

역시였네. 어차피 2찍일 자칭진보따위 아예 관심도 없어서 녹색당이랑 정의당이 합당한 것도  모르고 있었다. 참고로 내가 여기서 언급한 자칭 진보와 관련한 사례들 가운데 상당수가 지금 녹색당에 있는 인사들과 관련한 것이다. 오히려 정의당보다도 더 지독한 것들이 바로 녹색당이다. 어차피 그놈이 그놈이라 당을 합친 것을 알고 나서도 그러려니 넘어갔는데 아주 재미있는 소리를 그 사이 지껄였네?

 

내가 말한 바 있을 것이다. 검찰이 수사했으므로 이미 그 자체로 혐의가 인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검찰이 간첩혐의로 수사했으면 민주노총은 간첩의 온상인 것이 마땅하다. 어쩐지 정부가 검찰을 동원해서 민주노총을 대상으로 간첩몰이를 하는 상황에서도 평소 노동자의 편인 척 하던 자칭 진보들이 너무 조용하다 싶기는 했었다. 말 많은 게 유일한 장점이고 떠들고 글쓰는게 유일한 역할인 홍세화니 김규항이니 하는 놈들마저도 아예 입다물고 있었다. 그래서 이 새끼들이 검찰이 수사한다니까 진짜 간첩인 줄 아는 거 아니냐 의심했었는데 녹색정의당 인사 하나가 확인해 주었다. 선량한 노동자라면 검찰수사를 받을 일 없다. 그러므로 선량한 노동자에게는 검찰개혁은 의미가 없다. 즉 검찰수사를 받는 그 순간부터 민주노총이든 뭐든 자신들이 대변해야 할 선량한 노동자에서 벗어나게 된다.

 

바로 이것이 2찍 진보의 실체인 것이다. 마치 법은 보호할 가치가 있는 정조만을 보호한다는 과거의 판례와 비슷한 것이다. 박원순 논란 당시 여성주의자들이 주장했던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 여성만이 보호받을 자격이 있다 떠들던 것과도 유사하다. 그래서 서지현 검사의 경우도 미투의 시작을 알린 상징적인 인물이었음에도 그가 당했던 성추행 사실을 의심하고 부정할 수 있다 떠들었던 것 아닌가. 성추행 피해자의 피해사실마저 자신이 오롯이 판단하고 정의할 수 있다. 그를 전제로 그에 대한 행동도 결정할 수 있다. 기득권의 언어인 것이다. 여성을 판단하고 성소수자를 판단하고 사회적 약자를 판단하여 구분한 뒤 차별하여 결정하고 대우한다. 그래서 원래 퀴어축제도 상당히 과격한 형태로 진행하는 것이다. 당신들이 우리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 자체로 이미 존재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노동자를 대변한다면서 노동자를 판단하려 한다. 노동자에도 선량한 노동자와 그렇지 못한 노동자가 있다.

 

하긴 지금에 와서 자칭 진보 가운데 실제 노동자 출신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다. 노동자 출신이더라도 전임노조간부면 노동자의 현실과 상당히 동떨어지게 될 것이다. 대개는 좋은 집안 출신에 좋은 대학 나와서 사회적으로 대접 좀 받는 위치에 있는 이들인 것이다. 혹은 그러려고 굳이 진보의 이름으로 명함을 파서 다니는 것이기도 하다. 서민이 그렇게 진보쪽에 얼굴을 팔면서 자기 이름을 알렸었다. 원래는 자기 자신이 이미 기득권에 속해 있을 테니 오히려 솔직한 표현일 수 있다. 그동안 불편해도 어떻게든 참으며 진보라는 이념을 쫓아 감추고 지내왔었는데 이제 더이상 그럴 필요가 없다. 검찰이 권력인 것 같으니 그에 붙으려는 기회주의인 것이다. 검찰이 무기로 삼은 법을 앞세워서 그를 진보라는 이념을 대신케 한다. 법은 정의고 질서고 가치고 도덕이고 윤리고 그 자체로 이념이 된다. 그러니까 검찰이 무혐의처리한 김학의를 출국금지시켰다고 진보란 것들이 죄다 나서서 대통령까지 책임져야 한다고 지랄하고 했던 것이었다. 검찰이 말하면 정의고 진리다.

 

바로 녹색정의당이 망한 이유인 것이다. 노동자인 내가 녹색정의당에 대해 전혀 지지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고. 입으로는 노동자의 권리를 떠들면서 정작 행동은 그 반대만을 골라 찾아간다. 저들에게 진정 노동자를 위하는 정당은 민주당이 아닌 국민의힘일 것 아닌가. 국민의힘만이 오로지 노동자를 위한 정당일 것이고 그들의 정책들만이 노동자를 위하는 정책들일 것이다. 그래서 민주당이 추구한 최저임금인상과 근로시간단축, 중대재해법, 대체휴일등에 대해 한결같이 반대한 것일 게다. 반대로 최저임금인하 및 폐지와 주휴수당 폐지, 근로시간 연장, 중대재해법 폐지 등의 정책들에는 여전히 비판을 아끼고 있는 중일 테고. 2찍 진보들이 가장 사랑하는 정치인이 이준석일 것을 보더라도 답은 분명하다. 저 새끼들과는 절대 같이 가지 못하겠다. 그게 지금 2찍 진보의 현실이다.

 

회사에도 민주노총이 포스터를 하나 붙여 놨다. 아니나 다를까 민주당만 욕하기 애매한 상황이니 정치권을 싸잡아 욕하는 중이다. 민주당이 잘못하면 민주당을 욕하는데 국민의힘이 잘못하는 것 같으니 민주당 지지하자는 말은 못하고 정치권을 싸잡아 욕한다. 윤석열과 검찰에 간첩몰이를 당했으면서 노동자가 중요하지 검찰개혁따위 중요하지 않다며 지랄을 싼다. 노동자에 대한 정책들의 차이가 이렇게 명확한데도 차마 국민의힘만 따로 욕하거나 반대하지 못한다. 그래서 2찍 진보인 것이다. 그놈들이 노동자를 위한다? 당연히 말 잘 듣고 문제 안 일으키는 선량한 노동자들일 것이다. 2찍 진보들이 노동자를 대변한다는 이유일 테고. 그저 웃고 만다. 혐오스러운 것들이다.

2찍 진보들의 흔한 말버릇이다.

 

민주당이 잘못했다? 당연히 민주당을 욕한다.

 

보수정당이 잘못했다? 민주당까지 싸잡아서 정치권 전체를 욕한다.

 

2찍 진보들이 보수정당만을 특정해서 비판하는 경우란 거의 없다. 그래서 2찍 진보인 것이다. 민주당은 바로 공격할 수 있는데 보수정당은 오로지 민주당과 함께 싸잡을 때만 비판할 수 있다.

 

당장 민주노총만 하더라도 문재인 정부 때는 그리 정부와 여당만 욕하고 공격하더니 정권 바뀌고 나니까 아예 정치권 전체를 싸잡아 욕하고 있지 않던가. 노랑봉투법을 반대하고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여당이고 대통령인데 그에 대한 논평은 정치권 전체에 대한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결국 윤석열 정부의 실정을 심판하려는 선거에서 정의당의 선택은 역시나 그에 대한 책임을 민주당에게까지 덧씌우는 거대양당책임론이었다. 윤석열 정부의 잘못도 민주당이 잘못해서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과연 같은 야권이라고 같은 편이라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

 

실제 21대 국회에서 정의당의 의석 6개가 민주당을 위해서 민주당에 유리하게 움직인 경우란 거의 손에 꼽을 정도일 것이다. 하다못해 노동자들 하루라도 더 쉬게 하자는 대체휴일조차도 정의당은 반대하고 있었다. 중대재해법도 자기들 생각대로 안됐다는 이유로 반대했었고, 공수처법도 야당이 반대하면 들어주어야 한다며 대놓고 국민의힘 편을 들고 있었다. 검찰개혁법과 언론개혁법에 대한 입장들은 또 어떠했었는가? 그래서 정의당 의석 포함해서 190석이라고 진보진영의 승리라 했었는데 얼마나 정의당의 의석이 민주당 지지자들이 바라는대로 민주당을 보다 개혁적으로 진보적으로 끌고가는데 역할을 하고 있었던가? 차라리 반대방향으로 움직이면 움직였지 민주당 지지자들이 바라는 방향은 절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정의당 의석 6개가 모두 사라지고 온전히 민주당과 실제 민주당과 우호적인 정당들만 남게 되었다.

 

의석수로 보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이번 선거의 결과가 고무적이라는 이유일 것이다. 국민의힘에 우호적이던 6석이 빠지고 대신 국민의힘에 최소한 비판적인 의석들로만 거의 채워진 190석이 만들어진 것이다. 민주당 지지자 입장에서 어느 쪽이 더 나은가는 따라서 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더불어 그나마 진보진영에서 지지정당을 잃은 한겨레와 경향은 더욱 본격적으로 자신의 본색을 드러내게 될 테니 헷갈릴 일도 더이상 없다. 아직도 한겨레와 경향은 진보언론이라며 진보언론으로부터도 비판받는 민주당이라는 프레임을 써먹는 저쪽 지지자들 보고 있으면 어찌나 화딱지 나던지. 정의당에만 올인하던 한겨레와 경향이 과연 그동안 백안시하던 진보당에 눈길이라도 줄 것인가.

 

이래저래 한겨레와 경향마저 끈떨어진 연이 되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결과인 것이다. 한 마디로 국민의힘 지역구 의석이 는 것보다 정의당이 망한 게 민주당을 위해서는 더 좋은 일일 수 있다. 김활란 욕했다고 분노하고, 선량한 노동자는 검찰수사따위 받지 않는다며 검찰개혁에 노골적으로 반대하던 것이 녹색정의당이었는데 그것들이 더이상 원내에서 설칠 수 없게 되었으니 최소한 진보로 불리는 쪽에서 훼방놓고 나올 세력이 더이상은 없게 되는 것이다. 아무튼 민주노총이 검찰에 의해 간첩몰이당하는 꼬라지를 보았으면서도 선량한 노동자 운운하는 놈들이 진보를 자처하는 현실 자체가 웃기지도 않는 역설이었을 것이다. 민주노총도 검찰로부터 탄압받은 적이 없다. 그래서 그렇게 조용했던 것일까? 아니 그래서 민주노총은 그런 상황에서도 민주당만 욕했던 것일까?

 

정의당이 망했으니 이제 뒤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왼쪽은 내버려두고 오른쪽으로만 전력을 투사하면 된다. 거슬리는 것들을 모두 치웠으니 이제는 자기 갈 길만 가면 된다. 어차피 처음부터 같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묶으려 하는 놈들 때문에 성가셨는데 이제 더이상 그럴 일이 없다. 너무 다행스럽다. 나로서는 최선이라는 이유다. 일단 정의당부터. 언론은 한겨레와 경향부터. 한 발 씩 하나씩 그렇게 바꾸어 나간다. 그게 진보다. 시대가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갔다는 의미다.

개표방송 보지 않고 그냥 잤다. 그래도 200석은 하겠거니... 역시 저쪽도 제대로 결집했네.

 

2020년 당시 위기설은 상당히 갑작스럽게 튀어나왔다. 유시민의 말 한 마디를 꼬투리잡아 갑작스럽게 위기설을 퍼뜨린 덕분에 저쪽이 결집할 여유가 그리 없었을 것이다. 반면 이번 선거는 아예 초장부터 200석 운운한 탓에 결집할 여유가 충분했다. 더구나 선거기간 내내 모든 언론이 총동원되어 사실상 선거운동을 해주고 있었으니.

 

2020년에도 이렇게까지 노골적이지 않았었다. 하지만 아예 친검언론으로 돌아선 한겨레와 경향까지 가세하며 민주당 때리기에 모든 선거기간 동안 열심이었던 탓에 결집할 이유까지 차고 넘쳤었다. 현정부가 마음에 안 들어도 민주당에 이런 문제가 있으니 그래도 민주당 막으려면 보수정당에 표를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반면 민주당과 이재명에 조금이라도 불만이 있던 사람들에게는 투표를 포기할 이유를 만들어주었을 것이다. 그렇게 나온 최대치다. 아예 선거기간 전부터 그 지랄이었는데 나온 수치가 이 정도다. 부정선거라도 하지 않는 이상 여기서 저쪽이 더 가져갈 표는 없다.

 

그래서 이낙연이 병신이란 것이다. 이런 현실을 두고 역풍 운운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 민주당의 지지가 빠지고 결국 선거마다 판판이 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제대로만 했어도 지금 선거결과가 이전의 모든 선거에 적용되었을 것이다. 한 마디로 모든 언론까지 동원된 관권선거의 결과가 이것이니 앞으로 민주당이 선거에서 망할 일은 없겠다. 아, 박지현이 다시 민주당에 기웃거리는 꼬라지를 더이상 보지 않았으면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떻게 하면 이런 구도의 선거를 그렇게 처참하게 말아먹을 수 있는 것인지. 그러고도 잘났다고 얼굴 들이미는 꼬라지를 보면 역시 페미는 페미구나. 

 

아무튼 어찌되었거나 아쉽기는 하지만 이긴 선거다. 보수 의석 탈탈 털어도 고작 110석이다. 그런데 이제 공천받을 일도 없는데 국민의힘이 마냥 용산 하자는대로 따라갈 것인가도 문제다. 원래 윤석열이든 한동훈이든 보수진영에 박힌 돌이 아니었다. 기존에 박혀 있던 돌들의 반란이 이제 슬슬 시작되지 않을까.

 

그래도 그나마 가장 의미있는 결과를 보자면 역시 정의당의 멸망일 것이다. 그러게 윤석열 정부를 심판하는 선거에 내내 윤석열의 거수기 노릇이나 하던 정의당이 녹색당과 합쳐서 이름을 내미는 자체가 웃기는 것이었다. 그나마 이준석은 윤석열과 각이라도 세웠지 수많은 노동자와 소수자 이슈들에서 정의당이 한 번이라도 제 목소리를 낸 적이 있기는 한가. 민주당만 가지고 욕했지 정의당에게는 국민의힘이야 말로 노동존중의 정당이고 여성존중의 정당이며 소수자를 위한 정당이었을 터다. 유권자가 다들 아는데 저들만 몰랐다.

 

그런 점에서 정의당이 출마한 지역구에서 아쉽게 졌다고 정의당 욕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정의당 찍은 놈들은 정의당 아니었으면 국민의힘 찍었을 놈들이었다. 그게 정의당의 지금 위치다. 진중권을 보라. 한겨레를 보고. 저쪽 놈들은 이미 그쪽으로 돌아섰으니 그냥 국민의힘과 한 묶음으로 보는 것이 옳다. 

 

아무튼 아쉬운 곳도 있기는 하지만 언론과 관권을 모두 동원한 선거에서 이겼다는 사실에 의미를 두어야 한다. 어찌되었거나 그냥 이긴 것도 아니고 아주 크게 이긴 선거인 것이다. 잘 자고 일어나 몸도 가뿐한데 머리도 가뿐하다. 이준석 그 인간은 좀 떨어져 줬으면 했는데... 사장 출신이라고 그 회사 출신들이 좋아할 것이라 마냥 생각하는 것도 단세포적이다. 좋은 소리만 듣는 사장은 오히려 드물다. 다음 선거에서는 제발... 그것 말고는 뭐... 어쨌거나 이겼다. 잘 이겼다.

지금 당장 부산에 가야 한다. 그런데 바로 앞에 히틀러가 모는 자동차와 예수가 타고 있는 자전거가 보인다. 부산에 급한 일이 있어 가야 하는데 과연 히틀러와 예수 가운데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아무리 그래도 히틀러보다는 예수가 낫다는 사람은 아직 여유가 있는 경우일 것이다. 오늘 안에 부산에 도착해야 하지만 굳이 아니더라도 상관없다면 히틀러가 아닌 예수를 선택하는 것이 낫다. 하지만 진짜 급해서 오늘 안에 부산에 가야 한다면 히틀러나 예수보다는 자동차인가 자전거인가가 더 중요할 것이다. 히틀러가 모는 차를 타더라도 어떻게든 오늘 안에 부산에 도착해야만 하기에 그리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가 싫어서가 아니라 자동차다 더 급하기 때문이다.

 

내가 흔히 쓰는 비유 가운데 하나다. 사장이 여러 직원들을 고용해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선택지가 주어진다. 법을 지키면서 양심대로 사업할 경우 매출이 줄어들 것이므로 직원 여럿을 잘라야 한다. 들키지 않는 범위에서 법을 어기고 양심을 속일 수 있다면 직원들에게 보너스도 얼마간 더 챙겨줄 수 있다. 직원들 입장에서 어떤 사장이 더 좋은 사장인가? 그야말로 부처님 예수님 공자님처럼 너무도 인격적으로 고결해서 아주 사소한 잘못도 찾아볼 수 없는 도덕적인 인물인가, 아니면 차라리 인간은 개차반에 쓰레기라도 사업을 잘 운영해서 직원들에게 필요한 급여와 복지를 제대로 챙겨줄 수 있는 인물인가?

 

사업체가 아닌 가정으로 넘어가 보자. 사흘을 굶었다. 가족들이 당장에라도 죽겠다고 울부짖고 있다. 그렇지만 차마 법을 어기고 양심을 속일 수 없기에 그냥 두고만 보는 가장과 차라리 나가서 도둑질이라도 하려는 가장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훌륭한 가장일 것인가? 물론 일을 해서 돈을 벌 수 있으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을 것이다. 당장 그럴 처지가 못되는 경우에 대한 것이다. IMF 당시 하던 사업이 망해서 길거리에 나앉을 상황이 되자 그래도 가족이 헤어질 수는 없다고 아이들까지 데리고 노숙자생활을 하던 가장이 있었다. 차라리 노숙자로 길거리에서 먹고 자더라도 부모로서 아이를 버릴 수는 없다. 나몰라라 시설에 맡길 수는 없다. 그 또한 가장으로서 그의 절박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뇌물을 밝히고 허구헌날 계집질에 하급자에게 폭력을 일삼지만 지략 만큼은 이순신인 인물과 너무나 청렴결백하고 인격적으로도 고결해서 모두의 존경을 받지만 전술능력만큼은 원균인 인물이 있다면 누구에게 수군을 맡길 것인가. 그것도 평화로운 시대가 아니라 전쟁이 한창인 와중에 수군통제사를 임명해야 하는데 인간이 쓰레기인 뛰어난 전술가와 인격적으로 훌륭한 멍청이가 있다면 누구에게 지휘권을 맡길 것인가. 그 연장에서 단순히 지키는 것만 생각하는 지휘관과 역습까지 생각하는 지휘관이 있다면 자신이 지향하는 바에 선택할 인물 또한 달라지는 것이다. 더 이상 무리하게 전쟁을 키우기보다 그저 적당히 지키고 나서 안정을 찾기를 바라는 경우와 반대로 이번 기회에 아예 다시는 덤비지 못하도록 큰 피해를 강요하거나 아니면 복속까지 염두에 두는 경우의 선택이 서로 달라지는 것이다.

 

도덕성이란 여러 조건이 갖춰졌을 경우 선택지 가운데 하나일 수는 있어도 그것이 전부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인간은 불완전하기에, 생물로써 욕망과 충동의 지배를 받는 존재이기도 하기에 더욱 인간에게 완전한 도덕성을 바란다는 것은 불가능한 요구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소한 도덕적인 흠결이나 자신의 선과 정의의 기준에 맞지 않는 부분들을 찾았다고 실망하고 분노하는 것은 너무나 성급하고 심지어 어리석기까지 한 행동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 불완전함 가운데 어디까지 자신을 위해 허용하고 양해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니까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말하기 좋아는 자칭 중도들이 흔히 떠드는 말이 하나 있을 것이다. 정치란 도구다. 정치인이란 단지 수단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이다. 그 도구를 어디에 쓸 것인가. 그 수단을 어떻게 쓸 것인가. 도덕적이라고 드라이버로 철사를 휘는데 쓸 것인가. 도덕적이지 못하다고 구멍을 뚫는데 드릴이 아닌 펜치로 대신해 쓸 것인가. 그러니까 내가 정치에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진정 내가 정치에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러므로 나는 정치를 통해 무엇을 이루려 하는가.

 

이재명이 아니라 이낙연이었어도 내 월급 올려주고 일하는 시간 줄여주고 일하는 환경을 더 낫게 해준다면 그를 지지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내가 사는데 더 도움이 되고 이익이 된다면 이낙연이 아닌 윤석열이고 한동훈이라 해도 나는 기꺼이 지지할 수 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도덕적으로 순결한 무엇이 아닌 나에게 실제 도움이 되고 이익이 되는 정치이기 때문이다. 내가 더 마음놓고 풍요롭고 평화롭게 살 수 있다면 누가 되었든 그를 정치적으로 지지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사람에게 개인적으로 어떤 도덕적인 흠결이 있다고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것인가.

 

적당히 부정을 저질러도 결과적으로 국가 전체에 이익이 된다면 그 또한 양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적당히 부패하고 범법을 저질렀어도 결과적으로 국가와 사회 모두에 이익이 될 수 있다면 그 또한 용인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비례다. 그러므로 그를 통해 개인적으로 챙긴 것보다 공적으로 얼마나 크게 기여했는가를 따져보는 것이다. 그래서 양해하고 용인할 수 있다면 그 또한 정당하다. 과연 도덕적으로 완전하기 위해서 그같은 이익들을 포기하는 것이 얼마나 국가와 사회, 나아가 개인들을 위해 도움이 될 것인가.

 

그러고보면 프레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그같은 도덕성을 검증할 주체들의 기득권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한 마디로 언론이 자기들 영향력을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낸 프로파간다다. 도덕적으로 완전한 정치인만이 진정 지지할 가치가 있는 정치인이다. 따라서 도덕적으로 완전하지 못하다면 가치가 없는 정치인이다. 거기에는 개인이 정치를 통해 기대할 수 있는 지향이나 현실의 정책 같은 것은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이 그랬었다. 실제 현실에서 영향을 끼칠 정책적인 대안이나 실제 실력과는 상관없는 이미지에 모든 언론들이 올인하고 있었다. 심지어 진보를 자처하는 한겨레조차 진보적인 이념성보다는 개인의 도덕성을 명분삼아 윤석열 지지에 나서고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그렇게 윤석열을 지지한 결과가 무엇인가. 다수 임금노동자와 임금소득으로 생활해야 하는 그 가족들의 현실이 그 결과를 말해준다. 무엇이 더 중요하고 자신을 위해서도 더 시급할 것인가. 그래서 당시 윤석열의 이미지였던 공정과 상식이 얼마나 현실에서 개인들에게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었는가. 더구나 진보를 자처하던 2찍 진보들이라면.

 

그래서 참 한가하다 여기게 되는 것이다. 참 여유롭구나 부러워하면서도 한심하다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도덕적으로 둘 다 완전무결하지 못하니 아무도 선택하지 않겠다. 둘 중 누구라도 상관없다. 두 정당 모두 지향하는 바가 너무 다른데 번갈아 지지하는 것이 현명하다 여기기도 한다. 남의 일인 때문이다. 정치란 남의 일이라 여기는 때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자동차냐 자전거냐보다 히틀러인가 예수인가만 따지게 된다. 전쟁이 급박한데 지휘관의 인성이나 따지고 있는 그 한가로움이 중도란 이름으로 포장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생각하는, 그리고 바라는 정치적인 목표나 지향이란 무엇인가. 아마 대답을 못할 것이다. 아예 생각한 적이 없을 테니.

 

이명박 때도 그래서 들었었다. 일단 아무나 지지하고서 반대하면 된다. 지지해서 당선시킨 다음 요구하고 반대하면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원래 주장하던 것부터 다르다니까. 평소 주장하던 내용들부터 자신의 요구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지지하고서 요구하고 반대하면 그에 따라줄 것이다. 아니면 지지를 철회하면 그만이다. 이미 당선되었는데? 

 

아무튼 언론들의 장난질에 제대로 놀아나는 꼬라지들이라는 것이다. 언론과 더구나 수사와 판결을 독점하는 사법카르텔이 이 사회의 정치마저 좌지우지하려 하고 있다. 거기에 자신의 판단을 맡긴 뒤 그것으로 자위하려 하고 있다. 나는 합리적이고 도덕적으로도 고결하다. 현실이 아니다. 정치가 왜곡되는 이유다. 거대서사는 디테일을 속인다. 진실이다.

 

 

그러니까 그동안 비례투표만이라도 진보정당에 주었던 많은 민주당 지지자들의 바람이란 아무래도 거대정당으로서 민주당이 보이기 힘든 보다 선명하고 적극적인 행보를 진보정당이 보여주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보다 선명하고 적극적인 진보적인 아젠다를 가지고 민주당을 왼쪽으로 끌어당기며 한 편으로 오른쪽의 보수정당을 함께 공격한다. 하지만 진보정당들의 선택은 항상 통진당을 제외하고는 민주당과 보수정당의 가운데에서 박쥐짓을 하는 것이었다.

 

몇 번이나 말했지만 원래 중용이라는 말의 의미는 쉽게 치우치거나 흔들리지 않는 확고하고 분명한 중심을 뜻하는 것이었다. 올곧고 올바른 기준이 똑바로 서 있으면 그것이 곧 중심이 되어 그로 인해 쉽게 주위에 휩쓸리거나 휘말리지 않고 자신을 지킬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 말이 잘못 이해되면서 그냥 양 극단의 가운데를 중용이라 여기게 되었다. 자기 자신의 중심이라고는 없이 주위에 의해 그 중간이 결정되고 그것이 곧 자신의 입장이 되고 마는 것이다. 하물며 그것이 진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말은 진보인데 행보는 보수와 수구의 중간에서 양자를 선택하는 것이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심지어 그 중간에서도 민주당 편든다는 말을 듣기 싫어서 거의 항상 수구와 행보를 같이하고 있었다. 

 

민주당 2중대가 되라는 것이 아니다. 민주당의 왼쪽에서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민주당을 진보로 끌어당기면서 진보적인 아젠다로 함께 보수정당과 싸우기를 기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민주당 2중대가 되는 길이라면서 민주당의 왼쪽을 포기하고 보수정당의 왼쪽에서 민주당과 싸우기를 선택한다. 과연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기 이전 후보시절부터 심심하면 떠들어댔던 반노동, 반소수자, 반환경적인 발언들에 대해서도 한 마디 비판조차 없었던 자칭 진보들을 유권자들은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과연 진보로써 보다 수구적인 현정부를 상대로 더욱 적극적으로 치열하게 싸울 대안으로 여길 것인가? 아니면 그냥 어차피 윤석열 정부 탄생의 조력자로서 여전히 민주당을 상대로만 싸우고 말 것이라 여기게 될 것인가? 그러면 선거의 가장 중요한 아젠다가 정권심판인 지금 녹색정의당의 위치란 무엇일 것인가?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뒤에도 민주당만 아니면 된다며 민주당 공격에만 몰두한 대가인 셈이다. 살아있는 권력이 바뀌었는데 정의당은 물론 2찍 진보 언론과 지식인 모두가 민주당과 이재명 공격에만 올인하다시피 하고 있었다. 간첩몰이를 당하는 와중에도 민주노총이 민주당 앞에서만 시위를 하는 모습부터가 그런 연장에 있는 것이다. 민주당만 아니면 된다. 민주당만 때려잡으면 된다. 그런데 이미 대중의 관심은 윤석열 정부의 폭주에 대해 어떻게 견제하고 심판할까 하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민주당만 때려잡겠다고 지랄하는 2찍 진보들에 대한 대중의 판단은 분명한 것이다. 저 새끼들이야 말로 윤석열 정부의 따까리들이다. 더이상 경향일보를 진보언론이라고 취급해주는 곳도 이제는 없지 않은가. 한겨레에 대한 평가도 다르지 않다. 민주당을 씨몰살해야 비판해야 할 살아있는 권력이 바뀌는 것이라 여기는 것들이다.

 

아무튼 그 결과가 1%도 안되는 지지율이니 그야말로 정의구현이라 할 수 있겠다. 혹시나 하는 기대에 표를 주었던 민주당 지지층들의 냉정한 판단인 것이다. 그런 주제에 민주당 지지자들이 자기들에게도 교차투표할 것을 기대했다니 대가리가 똥인지 구더기인지 생각이란 걸 할 능력이 되는가 의심이 될 정도다. 물론 그렇게 읽지 말라 한겨레가 발악을 해도 굳이 돈을 주고 구독해 읽는 민주당 지지자가 아직 적지 않으니 착악을 할 만도 하다. 민주당 지지자는 병신에 호구다. 그러니 결과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심상정 보지 않아도 되어 속시원한 사람이 너무나 많다. 너무 시원하다. 

안양 국민의힘 후보들의 선거 플래카드들이 진짜 재미있다. 아무래도 사는 동네가 동안 쪽이다 보니 그쪽 후보들만 보고 있는 중인데, 한 눈에도 지금 누가 쫄리는가가 바로 들어온다. 아니 선거 플래카드에 상대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만 큼지막하게, 그것도 '팩트'라는 단어까지 넣어 걸어 놓는 건 무슨 센스란 말인가.

 

물론 그런 심리를 노린 전략일수도 있을 것이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로 하여금 마음놓고 투표장에 가지 말라고 일부러 그러는 것일 수 있다. 그러므로 일단 투표는 한다. 그 전에 진짜 없어 보인다. 다른 후보는 몰라도 심재철이면 이 동네에서 몇 선이나 했던 그래도 중진을 넘어 원로급 정치인일 텐데 이 무슨 없어 보이는 행동인지. 아마도 다른 지역도 비슷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한동훈이 200석을 들먹이며 민주당 200석만 막으면 이기는 거라고 밑밥을 깔고 있지.

 

아무튼 플래카드 걸어놓은 것 볼 때마다 웃음만 계속 새어 나온다. 아 이 새끼들 진짜 쫄리는구나. 하긴 그러니까 임종석이 아무말없이 선거운동 도우며 다니고 있을 테지. 판세가 불리하면 괜히 자기 목소리 한 번 내겠다고 지랄할 새끼거든. 김부겸이 조용한 이유도 이것일 게다. 그렇게 조용한 건 아닌 것 같지만.

 

결론은 투표해야 이긴다는 것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듯 지지율이 90%를 넘어도 투표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일단 투표부터 하고 뭘 해도 하려고. 날도 좋고 참 할 것도 많은데 선거까지 이기면 그보다 좋을 수 없을 듯. 기대가 만빵이다. 반드시 이기자!

솔직히 말하면 이제는 유인태라는 인간이 어디서 뭘하던 인간이었는지 기억조차 가물하다. 국회의원을 한 번 하기는 한 것 같은데 그게 언제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뭔 일만 있으면 민주당 원로랍시고 불러다 인터뷰를 듣는다. 왜일까? 유인태란 인간이 절대 민주당을 위해 좋은 소리를 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언론에서 인터뷰를 따면 거의가 민주당에 안 좋은 소리들 뿐이다. 그것을 혹은 쓴소리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라고 부르는 것이기도 할 터다.

 

민주당 국회의원 가운데 언론이 좋아하는 인사들 대부분이 그런 경우들이다. 어째서 자칭 중도, 자칭 진보들이 박용진의 낙천에 그토록 실망하고 분노까지 드러냈었겠는가. 언론이 항상 좋게 써주기 때문이다. 좋은 이미지로 포장해 써주니 민주당 지지자가 아닌 입장에서 박용진은 그저 좋은 정치인으로만 여겨지는 것이다. 과거 조경태가 그랬었고, 금태섭도 그런 부류였었다. 금태섭을 포함한 조금박해가 이슈마다 언론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던 이유도 그 내용이 대부분 민주당에 불리한 것들이었던 때문이었다. 그래야만 불러주고 그래야지만 기사도 좋게 써 준다. 그래서 고민정이나 김한규, 그리고 최근에는 서영교가 저 지랄들 하는 것이다. 그래야 언론에 좋은 이름으로 한 번 더 나올 수 있을 테니까.

 

김부겸과 홍익표는 당을 위해서도 절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어째서 저쪽 장단에 맞춰 입을 열고 또 행동으로 보이고 있는가. 이동형이 제대로 봤더만. 홍익표 이번에 당선되기가 쉽지 않다. 즉 이번에 낙선하면 이후 주욱 낭인으로 정치권 주변을 기웃거려야 하는 것이다. 배지를 달고 있을 때는 의원님, 의원님 하다가도 뱃지 떨어지 언제 본 적 있냐는 인간이 태반인 세태에서 이제 영광을 볼 일도 거의 남지 않은 저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이란 무엇이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다음 선거를 위해서라도 언론에 좋게 이름이 올라야 하고, 아예 다시 원내로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으면 불러주는 곳이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유인태와 금태섭은 좋은 본보기라 할 수 있다. 민주당에 불리한 소리를 떠들면 언론이 불러주고 좋게 써 준다. 살 날도 얼마 남지 않은 입장에서 이보다 더 좋은 선택이 있을 것인가.

 

그래서 정치인으로서 더이상 미래를 기약할 수 없게 된 처지의 인간을 당의 주요 보직에 올려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해찬처럼 해 볼 것 다 해 보고 은퇴한 것이면 모르겠는데 둘 모두 해 놓은 것도 없는데 거의 타의로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꿈을 접어야 했던 경우다. 평균수명도 길어져서 앞으로 살 날도 많이 남아 있는데 그러면 이후로 무엇을 어떻게 하며 자신의 삶을 꾸려가야 할 것인가. 그래서 민주당을 까는 것이다. 민주당을 욕하는 것이다. 임종석도 그런 한 예다. 임종석도 아는 것이다. 더 이상 자기에게는 정치인으로서 미래가 없다. 윤석열을 검찰총장에 올린 인간이 당의 공천을 가지고 지랄할 수 있는 염치가 그것을 말해준다. 정치인으로서 미래가 없으니 민주당 원로라는 간판을 달고 종편에나 열심히 출연하겠다. 얼마나 좋은가? 과거 운동권의 아이돌이 민주당 욕하는데 앞장서고 있으니. 과거 김지하가 그런 위치에 있었다. 강준만과 최장집도 그렇게 소환되는 과거의 인물들일 것이다.

 

민주당 정치인들이 유독 은퇴할 때가 되면 정신이 나가는 이유일 것이다. 원래 성향을 되찾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김부겸은 대구에 출마하기 전에 이미 한나라당 당적을 가지고 활동한 바 있는 인물이다. 결국에 홍익표도 선당후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시세에 떠밀려 험지로 나가게 된 경우일 것이다. 아니라면 과연 선거가 힘들다고 저 지랄을 할 수 있겠는가.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는 민주당을 위하는 원로가 드문 이유인 것이다. 그런 놈들이 태반에 환경조차 그렇다. 그런 점에서 이해찬이 너무 신기하고 고맙달까. 거의 이해찬 하나 있다. 그게 민주당의 역사다.

 

뭐 새삼스럽지도 않다. 유관순이 어떻게 독립운동의 상징이 되었는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평생을 바치다 순국한 여성운동가가 유관순 말고도 많았었다. 그 가운데는 어쩌면 더 크고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이들도 적지 않았었다. 그런데도 어째서 유관순만이 기억되고 있는 것인가? 별 것 없다. 해방이 되고 새로운 권력과 결탁한 이화여대 출신들이 자기 모교에도 독립운동가가 있지 않을까 찾아보니 결국 거스르고 거슬러 유관순 하나가 나오더라는 것이다. 유관순 정도를 제외하면 일제강점기 이화여대의 존재란 그저 친일파의 자식들이 대를 이어 친일을 하던 온상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해방이 되고 김활란을 주축으로 낙랑클럽을 열었고, 지금도 김활란을 계승하고자 발악하고 있는 것일 게다.

 

4.19 당시 다른 대학들 모두 수업을 거부하고 교수들까지 거리로 나섰는데 이화여대만 미적거리던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80년대 모든 대학들이 반독재투쟁에 동참하고 있는 가운데 오로지 이화여대만은 패션의 첨단을 걷고 있었다. 그때 이화여대에서 전통처럼 이어지던 행사 가운데 하나가 바로 청년장교들과 함께하는 댄스파티였었다. 그리고 그런 이화여대 출신들이 다시 세상으로 나오면 혼인을 통해 유력자와 연결되며 그를 배경삼아 여성주의의 선봉에 서고 있었다. 군대를 갔다 온 예비역 청년이 자기도 군대 가지 않고 다른 사람들처럼 청춘을 즐기며 자신의 미래를 위한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말했을 때 경멸어린 표정으로 '그래서요?'라 반문할 수 있었던 정신머리는 바로 그런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자신들은 뿌리부터 다른 신분이다.

 

아니나다를까... 물론 그렇지 않은 이화여대 학생이나 졸업생들도 그동안 적지 않았었다. 실제 민주화운동에 투신하고, 여성으로서 김활란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반대하던 이들도 그동안 상당했었다. 하지만 그래봐야 뿌리가 뿌리다. 전통이 전통이다. 아무리 그래도 김활란을 비판하려면 정중하게 예의갖춰서 하라. 김활란 동상을 세우고 김활란상을 제정하던 당시 이화여대 출신 여성주의자들이 주장하던 논란의 연장에 있는 것이다. 아무리 친일을 했어도 여성주의의 시조라 할 만한 분인데 너무 비판만 하지 말라. 여성주의에 공이 큰 만큼 친일전력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예우를 갖추어 대해야 한다. 펨코가 아주 적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친일을 해도 여성은 봐주어야 한다. 이화여대 총학이 그리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화여대 총학만이 아니다. 총동문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여성주의에서 이화여대가 차지하는 위상이 그러한 것이다. 그나마 친일과 친독재의 전통에 반발하던 여성주의의 갈래가 무력화된 지금 여성주의는 이화여대 출신들이 주장해 온 김활란 신원을 대의로 똘똘 뭉쳐 있는 상황이다. 검찰독재에 그나마 비판적인 것 같았던  MBC와 JTBC까지 친일파 김활란을 모욕적으로 비판했으니 사퇴해야 한다고 지랄하고 나서는 이유인 것이다. 친일파라도 여성이라면 그 태도가 달라야 한다. 이완용에 그런 것처럼, 혹은 노덕술에 그런 것처럼, 이광수나 최남선에 그런 것처럼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김활란이 이화여대 출신들을 정신대로 내보내고 동원해서 미군 장교들을 접대했었는데 그 사실이 여성들에게 수치심과 환멸을 느끼게 할 수 있으니 아예 언급조차 해서는 안된다.

 

이화여대 총학이나 여성주의자들의 주장 가운데 인정할 만한 부분이 하나 있기는 하다. 성상납이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기는 하다. 김활란이 이화여대 출신들로 미군장교들에게 성상납을 했다는 주장은 당사자의 여성으로서, 아니 하나의 인격으로서 자기의 성에 대한 자기결정권 자체를 부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대부분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이고, 대가를 받고서 자신의 성에 대한 결정권을 행사한 것이다. 한 마디로 매매춘이었다. 단지 김활란과 모윤숙은 포주로써 그를 위한 기회를 제공했을 뿐이다. 그리 주장하고 싶은 것일 게다. 낙랑클럽이라는 명백한 사실에 대해 성상납이라는 표현만 문제삼는 것은. 일제강점기에는 일제에 몸을 팔았고, 군정기에는 미군장교들에 몸을 팔았고, 군사독재시기에는 독재권력에 정신을 팔았었다. 그 또한 자기결정권인데 비하하는 것은 부당하다. 그리 주장하고 싶은 것일 게다.

 

아무튼 이화여대에 대한 평가를 종결짓는 한 마디 성명일 것이다. 정유라에 그리 분노한 것은 단지 자신들과 급이 맞지 않는다 여겼기 때문인 것이다. 김활란을 비판하려 해도 정중하게 해야 한다? 김활란을 비판하더라도 모욕하거나 조롱해서는 안된다? 그로 인한 피해자들도 언급해서는 안된다? 여성만 특별해야 한다? 사과한 민주당 관계자들도 병신은 병신이다. 결국 민주당 내부의 여성주의자들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것들은 당도 지지자도 없는 그냥 여성주의자들일 뿐이다. 당헌당규 고쳐서 당내 당직자 인선에도 당원들이 감시하고 관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여성주의자는 악이다. 민주당의 암이다. 이화여대 출신들은 다시 써서는 안된다. 확신이다. 역사와 전통을 잇는다. 이화여대의 정체성이다.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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