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의 공식입장이야 어떻든 나는 확신한다. 박근혜 사면에 최소한 더불어민주당 대표 송영길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아니라면 하필 그 며칠 전 윤석열이 민주당 정권의 과오라며 굳이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총장에 임명되었던 사실을 들출 이유가 없었다. 차라리 그것은 문재인 정부의 인사실패에 가까웠다. 하지만 박근혜가 사면되면서 문재인 정부의 과오는 그가 검찰총장까지 될 수 있었던 배경인 박근혜 정부에 대한 적폐수사까지 소급하게 되었다. 박근혜를 잡아넣고 그 대가로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총장이 되고 마침내 국민의힘 대선후보까지 될 수 있었다.

 

윤석열의 지지율이 떨어지자 언론들은 진보와 보수 할 것 없이 안철수와의 단일화를 띄우려 노력 중이다. 안철수와 단일화해서 그 지지율을 끌어들이면 지금의 열세를 뒤집을 수 있다. 문제는 그게 그리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열심히 군불을 지피는데 전혀 화제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안철수라는 이름의 무게감이 불과 몇 주 전과 비교해서도 부쩍 커진 때문이다. 언제 협상이 어려운가. 현상과 전쟁이 쉽게 끝나지 않는 것은 서로 위치가 대등하기 때문이다. 서로 가진 역량의 차이가 적기에 쉽게 결론이 나기 어려운 것이다. 불과 몇 달 전까지 뭐하자고 또나오는가 비웃음만 사던 안철수가 어느새 이재명과 윤석열의 뒤를 이어 또다른 이슈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안철수가 누구와 연대하는가. 어떻게 지금 대선정국에서 최대의 정치적 이익을 챙길 수 있을 것인가. 당선은 어렵더라도 연정까지 가능하지 않을까. 어떻게? 송영길이 밑밥을 깔아 두었기 때문이다.

 

안철수는 이재명과는 감정이 없다. 이재명과는 얼마든지 손을 잡을 수 있다. 이전까지 완전히 민주당의 반대편에서 수구정당인 국민의힘 말고는 연대할 대상이 없는, 그래서 선택지가 제한된 군소후보에서 이제는 국민의힘은 물론 민주당과도 손잡을 수 있는 그야말로 중간지대의 맹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여전히 문재인 정부에 적대적으로 민주당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지만 그렇다고 굳이 국민의힘에만 매달릴 필요가 없다. 국민의힘이 안철수와 단일화를 하려 해도 그만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면 과연 국민의힘은 안철수가 요구하는대로 대가를 지불할 수 있을 것인가. 약속할 수는 있을 것인가. 그렇다고 지금 상황을 그대로 내버려두면 윤석열의 지지율이 빠지는 만큼 안철수의 지지율이 오르고, 안철수의 지지율이 오르는 만큼 윤석열의 지지율이 빠지는 악순환만 계속될 것이다. 

 

새삼 감탄하게 되는 이유다. 송영길의 아이디어인지 아니면 민주당 내 정치인 누군가의 생각인지는 지금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실제 실행한 것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전까지 없었다. 김대중 이래로 민주당 정치인 가운데 이렇게 더럽게 정치하는 놈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김한길은 민주당 내부의 정치인이나 세력들에게만 더러웠다. 김대중에게 정치를 잘못 배운 탓이다. 진짜 제대로 민주당에도 정치꾼이 나타났다. 국민의힘에는 그동안 많았었다. 워낙 그쪽으로 특화된 놈들이었으니. 염치도 체면도 돌아보지 않고 이익이 되면 일단 저지르고 본다. 그래도 언론은 침묵한다. 자칭 진보들이 그런 걸 굳이 짚고서 비판하는 꼴을 못 봤다. 그런데 소소한 소인배 송영길이 민주당에서는 드물었던 그같은 캐릭터를 보여주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얼핏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과연 지금 민주당이 민주당이 맞는 것인가.

 

그새 많이 늙은 모양이다. 예전 이따위로 정치했으면 바로 욕부터 박았을 것이다. 정치 더럽게 한다. 그런데 그만큼 절박한 탓에 욕보다는 차라리 칭찬부터 하게 된다. 소소한 소인배 송영길이 그래서 무척이나 소중하다. 민주당에도 이런 정치인이 필요했다. 필요한 때 필요한 인물이 당대표 자리에 앉아 있다. 대부분 당대표로서 판단과 결정들이 정치공학적으로 민주당에 이익이 되고 있다. 정치란 원래 더러운 것인가. 머리로 알았지만 이제 가슴으로 동의한다. 잘하고 있다는 뜻이다. 평가는 과정이 아닌 결과에 하는 것이다. 이기는 것이 무조건 최선이고 최고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