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타락은 무오류의 함정에 빠지면서부터 시작된다. 자기는 틀리지 않았다. 자기는 항상 옳다. 그러므로 자신에 대한 모든 비판은 잘못되었다. 전혀 자신에 대한 불편한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을 보려 한다.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가고서야 무엇이 문제인가를 깨닫는다. 아니 그런 상황에조차 무엇이 잘못이었는가 전혀 깨닫지 못하는 경우마저 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도 제정신 박힌 권력자라면 항상 그것부터 경계했다. 혹시라도 자기 주위에 듣기 좋은 소리만 들려주며 눈과 귀를 가리려는 이들이 있는 것은 아닌가.
언론이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그같은 듣기 불편한 소리들을 책임지고 하라는 것에 있다. 차마 자기는 하지 못하는 말들을 그들은 책임지고 할 수 있어야 한다. 설사 그것이 전혀 틀렸고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항상 가능성은 열려 있어야 한다. 다른 입장과 생각에 대해서도 충분히 숙고하며 오류를 줄여나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권력이, 그리고 사회가 타락하지 않을 수 있다. 항상 경계하며 깨어있는 상태로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단지 언론의 기사 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언론 자체를 아예 없애 버리려 한다. 언론이 자기가 듣고자 하는 말들만 들려주기를 바란다. 어떻게 되겠는가?
전제하자면 나는 지금 일고 있는 시사인 절독운동에 대해 말릴 생각이 전혀 없다. 자신의 신념이기도 하다. 자살도 당연한 개인의 권리다. 죽고자 하는 사람을 억지로 뜯어말릴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나라가 망할 때가 되면 망하는 것이다. 한 사회가 소멸할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소멸하는 것이다. 역사상 수도 없이 반복되어 온 그저 일상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시사인이 망하고 그동안 시사인이 담당해 왔던 타락한 기득권을 비판하고 견제하는 기능이 그만큼 약해지더라도 그것이 대중의 선택이라면 굳이 말리려 해서는 안된다. 어떻게든 된다. 어떻게 되는 결국 자신들이 책임질 문제다.
과거 나 자신이 안티조선운동에 대해 회의를 느껴야만 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과연 사람들이 조선일보를 거부하려 하는 것은 조선일보가 그동안 언론으로서의 양심을 저버린 행동을 반복해 왔기 때문인가. 아니면 단지 조선일보의 기사가 자기의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인가. 자기가 원하는 기사들만을 써달라는 것인가. 아니면 언론으로서 양심을 지키고 정도를 걸으라는 요구인가. 이번 시사인 절독사태로 분명해졌다. 기사의 내용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니 응징하려는 것이다. 자기의 마음에 드는 기사만을 쓰라는 강요인 것이다. 옳지 못하다. 아무리 조선일보라도 독자가 불편해 할 기사를 쓸 권리가 있다. 아니 그것은 의무다. 보수언론으로서 진보적인 대중이 싫어할만한 기사를 실음으로써 사회의 다른 부분을 비추어야 할 책임이 있다. 조선일보를 전혀 읽지 않으면서도 정작 안티조선운동에는 동참하지 않았던 나 자신의 현명함에 스스로 감탄하게 된다.
그래서 물으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언론이 그저 대중의 눈치를 보며 대중이 듣고자 하는 이야기만을 들려준다면 그 사회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대중이 거부한다고 거르고, 대중이 요구한다고 들려주는 그런 언론들만 남는다면 과연 이 사회는 어떻게 될 것 같은가? 그저 대중에 영합하는 언론들만 살아남아 여론을 만들게 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그런 예가 이미 있으니까. 바로 조선일보다. 조선일보가 강한 이유가 무엇인가. 결코 사회의 주류가 불편할만한 기사를 내지 않는다. 사회의 비주류도 납득할만한 논리들 안에 자신들의 주장을 교묘하게 싣는다. 정파의 이해를 떠나 조선일보의 기사를 읽었을 때 과연 그 내용 가운데 자신들을 거스르는 것이 얼마나 있었는가. 그래서 조선일보가 이 사회를 위해 무엇을 만들었고 무엇을 이루었는가.
과연 대중은 항상 옳은가. 불과 몇 년 전이었다. 바로 그 대중이 하나가 되어 한 연예인과 그 가족을 극단의 공포와 절망으로 몰아넣었던 사건이 있었다. 바로 '타진요사태'라 불리우는 일련의 소동이었다. 그때도 대중들은 말했다. 과연 수십만에 이르는 자신들이 어리석어서 전혀 사실을 오해하고 잘못된 진실로 부당하게 개인을 억압하고 있는 것인가. 다수의 자신들이 찾아낸 수많은 근거들이 자신들의 행위가 옳음을 입증하고 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가? 그리고 그때도 똑같이 같은 비판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대중은 이미 권력이다. 더구나 비주류라는 자의식으로 인해 어떤 비판도 견제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폭주하는 권력이다. 과연 대중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거부할 권리가 존재하는가. 대중이 아닌 독자이니 절독을 통해 자신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언론사를 응징하려는 것은 정당한가. 그렇다면 밥줄을 조여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억압하려는 정부는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인가. 대중이 옳고 대중이 하라는대만 한다면 언론이 존재할 이유는 무엇인가.
다시 말하지만 대중의 그같은 움직임에 대해 굳이 막거나 말릴 생각같은 것은 조금도 없다. 어차피 남의 일이다. 그들의 선택이고 그들의 판단이다. 어떻게 되든 그들의 일이다. 그 결과가 나에게까지 영향을 미쳐도 결국 그들 자신들의 일일 뿐이다. 단지 내 일이기도 하기에 이리 비판만 할 뿐이다. 과연 대중에게는 언론에 대한 독자로서의 권리만을 존재하는가. 언론사 하나가 아닌 언론 전체라 보았을 때 대중은 독자가 아닌 공동체의 시민이 된다. 언론에 대한 권리만이 아닌 책임까지 함께 갖는다. 언론으로서 자신의 양심을 지키며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는 언론에 대해 대중은 그들을 보호하고 응원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런 건강한 언론들이 사회를 건강하게 만든다. 언론은 개인의 사유물이 아니다. 단지 사주 개인의 사유물에 불과하다는 원시적 자본주의의 논리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비판이 가해지는 이유다. 그래서 그들은 옳지 않다. 양심적인 언론 하나가 그들 개인의 권리보다 사회적으로 더 중요하다.
그래서 다시 묻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과연 시사인의 기사들이 언론으로서의 양심을 저버린 이해와 영합으로서만 쓰여진 것이었는가. 단지 누군가가 두려워서, 혹은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 언론으로서의 양심과 상관없이 쓰여진 기사들이었는가. 그들은 단 한 번이라도 언론인으로서 자신들의 양심과 신념을 배신했는가. 과연 그들이 쓴 기사의 내용이 옳았는가를 묻는 것이 아니다. 바른 입장에서 쓰여진 것이었는가를 묻는 것이 아니다. 그 동기다. 그 의도다. 그 목적이다. 하지만 언론인으로서 자신의 양심에 충실한 기사를 썼어도 대중의 입맛에 맞지 않기에 응징되어야 한다면 과연 언론인들은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기사를 쓸 수 있을 것인가. 대중의 눈치를 보는 언론이 과연 어떤 진실을 대중들에 들려줄 수 있을 것인가. 권력의 눈치도 자본의 눈치도 보지 않기에 대중의 눈치도 보지 않는다. 그것이 괘씸죄가 된다. 그래서 살아남는 언론들이란 과연 어떤 언론들인가. 그런 언론들만을 바라는 것인가.
하기는 그래서 메갈사태 이후 조선일보에 대한 재평가주장이 인터넷상에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정파적 이해를 떠났을 때 자신들이 가장 듣고싶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언론이 어디인가 하는 것을. 조선일보에 굳이 반대만 하지 않는다면 조선일보가 들려주는 듣기 좋은 이야기들 속에 자신들은 항상 편할 수 있다. JTBC도 한겨레도 오마이도 경향도 시사인마저 자꾸 자기들이 듣기 싫은 소리만을 강요한다. 조선일보는 다르다. 어째서 조선일보가 일등신문인가. 어째서 조선일보가 이 사회의 여론을 좌지우지하는 위치에까지 올랐는가. 세상이 거저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한국사회의 수준에는 조선일보가 딱이다. 그저 대세가 그렇다 하니 안티조선에 동참했을 뿐, 내가 회의했던 그대로 그들의 행동은 조선일보에 오히려 더 잘 어울린다.
언론이 대중의 눈치를 본다. 혹시라도 망하기 싫어 대중들의 눈치를 보며 그들이 보고자 하는 듣고자 하는 기사들만을 내놓는다. 대중은 승리의 환호를 지른다. 대중이 언론을 지배한다. 대중이 여론을 지배한다. 끔찍하다. 다수가 모인다고 그것이 정의가 되지는 않는다. 다수가 머리를 맞댄다고 항상 옳은 결론만을 내리지 않는다. 대중이 옳다. 다수니까 옳다. 다수의 힘을 아무 거리낌없이 사용한다. 물론 그것은 자신들의 권리이기도 하다. 책임을 무시한 권리를 전횡이라 부른다. 무엇이 남을까. 바보들은 답이 없다. 현재에는 이유가 있다. 혐오스런 이유다. 저들이 대한민국을 만들고 있다.
아무튼 덕분에 시사인을 정기구독해야 하는가 심각하게 고민하는 중이다. 그다지 서로 이념이나 성향이 달라서 굳이 사서 볼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 자신의 이념이나 성향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그럼에도 기득권에 굴하지 않고 진실을 파헤치려 노력하는 언론 하나다. 아주 작은 힘이라도 그런 언론을 살릴 수 있다면. 서로 주장하는 바가 달라도 한 번 쯤 진지하게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최소한 조선일보처럼 언론을 빙자하여 사익을 추구하는 그런 무리들과는 다를 테니까.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민주시민으로서의 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