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갈리아의 반사회적 행동을 보면서 혐오를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연민같은 것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한 마디로 그냥 불쌍하다. 오죽하면 저럴까. 이를테면 '헬조선'과 같은 것이다. 세상이 너무 거지같고 엿같으니 마냥 욕이고 마냥 조롱이다. 세상이 나를 미워한다면 나도 세상을 미워한다.
어떤 때 사람은 혐오라는 감정을 가지는가. 당장 자기 힘으로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면 굳이 혐오까지는 하지 않는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그럴 수 있다는 확신이나 하다못해 기대라도 가질 수 있다면 혐오보다는 분노를, 의지를, 희망을 가져 볼 수 있을 것이다. 확실히 불과 수십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현실에 불만이 있으면 어떻게든 바꾸려 했지 이렇게 가상공간에서 욕이나 하고 배설이나 하지는 않았었다.
그러고 보면 인터넷이란 어쩌면 권력을 위해서도 아주 편리한 지배도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욕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만다.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끼리 집단으로 욕하고 비난하고 조롱하는 것으로 마치 무언가 대단한 것을 마친 듯한 충족감마저 가진다. 오히려 인터넷에서 떠들수 있기에 중화된 감정이 현실에서 행동하는 것을 자제하게 만든다. 그나마 인터넷이라도 아니었다면 실제 현실에서 직접 부딪히고 싸우며 문제가 된 부분들을 바꾸려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지 않았을까.
당장 자기들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결국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그런데도 현실은 계속해서 자신을 괴롭힌다. 자신을 불편하게 만들고 기분나쁘게 만든다. 어쩌겠는가. 바로 메갈리아에 대한 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심리도 이와 같다. 자신들이 의도한대로 메갈리아를 어떻게 할 수 있었다면 단지 메갈리아와 연관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대상들에 대한 혐오와 증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을까. 자기 의도대로 마음대로 되는 대상이라면 차라리 경멸하고 차라리 무시한다.
진보진영에서 메갈리아를 비롯 일부 과격한 여성들의 반사회적인 언동들에도 불구하고 우호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가 하는 것이다. 헬조선을 부르짖는 다수 젊은이들에 대한 보수와 진보의 시각차이도 바로 같은 이유에서 존재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내면화하려는 시도와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거부감의 표현인 것이다. 메갈리아를 비판하는 대부분의 남성들 역시 현실에서 여성차별이 그렇게 심각하게 존재하지 않음을 역설하고 오히려 남성이 차별당하고 있다고 항변한다. 메갈리아나 메갈리아를 옹호하는 이들의 주장은 옳지 않다. 전혀 메갈리아에 동조하는 여성들에 대해 연민하거나 동정할 여지따위는 없다. 헬조선을 외치며 절망과 좌절에 짓눌린 젊은이를 보는 기성세대의 시각이다. 자기들이 보기에 젊은이들은 자기들처럼 충분히 노력하지 않는다.
일베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일베 뿐만 아니라 인터넷에서 흔히 보게 되는 한국과 한국인과 한국사회에 대한 비하와 보다 공격적인 표현들도 거의 같은 맥락이다. 한국이 싫다. 자신을 억압하고 자신을 괴롭히는 한국이 너무 싫다. 그런데 어떻게 할 힘이 자신에게는 없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도 자기로서는 모르겠다. 차라리 욕하고 만다. 차라리 비난하고 만다. 차라리 비하하고 조롱하고 모욕하는 것으로 모든 것을 대신한다. 슬픈 것이다. 그렇게밖에 자신의 불만과 불안을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은.
어째서 한국사회에는 지금처럼 혐오와 증오가 만연해 있는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가르치니까. 그렇게 만드니까. 가만히 있으라 윽박지른다. 그렇게 배운 탓에 인터넷에서도 가장 흔히 보게 되는 훈계가 바로 가만히 있으라는 것이다. 결국 많은 비판과 비난들을 요약하면 어째서 가만히 있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늬들이 가만히 있지 않은 탓에 내가 피곤하고 내가 불편하다.
사실 투쟁조차 아니다. 그런 생각조차 없다. 그래서 찻잔속의 태풍이다. 그래서 정작 인터넷을 벗어나면 메갈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관심을 가지는 사람조차 거의 없다. 이미 말했다. 인터넷에 떠도는 대부분의 텍스트들은 단지 배설에 지나지 않는다. 현실에서 어떤 유의미한 역할이나 영향을 줄 수 없는 무의미한 단어의 나열에 지나지 않는다. 인터넷에서 아무리 떠들어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거리로 나와 소수가 소란을 피워도 세상은 잔인할 정도로 무심하게 돌아간다. 그것을 너무나 잘 안다. 자기들이 어떻게 해도 세상은 바뀌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래서 더 절망한다. 그래서 더 좌절한다. 그래서 더 행동은 극단적이 된다. 제발 들어달라는 발버둥이다. 아예 무시하면 그 극단은 한계를 넘어서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것은 인간의 여러 본능 가운데 하나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 의미도 아니다. 그보다 더 비참한 것이 있을까.
그런데 사실 진보진영도 답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여러 사회적 이슈에 대한 진보진영의 대안들을 보라. 무슨 현실적 의미를 가지는가. 실제적 가치를 가지는가. 공허하고 허무하다. 그래서 더 혼란으로 빠져든다. 무엇을 하려는가. 무엇을 하게 되는 것인가. 아무것도 없이 말만이 난무한다.
말이 지나친 사회는 그래서 슬픈 것이다. 행위가 억압되었을 때 말은 늘어난다. 직접적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의 말이란 그냥 배설에 지나지 않는다. 자기들 안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인터넷은 그마저도 공유한다. 싸우며 만족한다. 서로를 욕하고 증오하며 길들여진다.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