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테면 가해자가 직장상사고 피해자는 계약직이다. 절박한 가정사정을 알고 재계약을 미끼로 욕설 한 번 내뱉지 않고 자연스럽게 성관계를 맺게 되었다. 신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인가. 서로 합의에 의해 성관계를 맺었다 할 수 있는 것인가.


아는 사람이 - 혹은 교사이거나 혹은 성직자이거나 혹은 친척 어른이거나 - 취직을 시켜준다고 자신을 유인해서 밀실에 가두고는 강제로 성관계를 맺은 뒤 풀어주며 신고하면 안된다 협박했다. 그래서 경찰이 바로 앞에 있는데도 신고하지 않았다. 나중에 신고하면 성폭행이 아니게 되는 것일까?


종군위안부는 강제가 아니었다. 일본군이나 헌병이 피해자들을 강제로 끌고간 것이 아니라 업자들이 인신매매로, 혹은 속여서 그들을 군위안부로 만든 것이기 때문이었다. 다시 사례를 추가한다. 자신의 아들이 여자를 납치해서 자기 방에 가둔 채 상습적으로 성폭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모가 알았다. 하지만 말리지도 신고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도망치려는 여자를 잡아다 다시 아들의 방에 가두고 있었다. 부모는 강제를 사용한 것이 아닌가?


한국인의 성범죄에 대한 의식을 드러내는 기준이 되고 있을 것이다. 그나마 위안부니 이 정도로 끝난다. 수많은 성범죄에 대해 많은 한국의 대중들은 피해자의 꼬투리를 찾으려 애쓰고는 한다. 그래서 강제였는가. 전혀 동의할 의사가 없는가. 폭행이 없었다면 동의한 것이 아닌가. 그때 바로 신고하지 않았다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닌가. 죽을 때까지 두들겨맞고 온몸이 피투성이 멍투성이가 되어야 성폭행임을 인정한다. 종군위안부의 강제성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일본군이 직접 그들을 강제연행하고 납치했어야 한다. 현정부의 협상으로 겨우 말할 것들이 생겼다.


아마 한국에서 여성주의자들이 종군위안부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다면 바로 이런 부분에 대한 것들일 게다. 피해자들을 꽃으로 만든다. 순수한 소녀로 만든다. 순수한 폭력만을 남긴다. 순수한 권력에 의한 억압만을 남긴다. 그런 건 신화다. 그런 건 동화다. 현실이 아니다. 현실은 그보다 더 복잡하고 다양하며 더 추악하고 혐오스럽다. 단순화시킨 구조 속에 여성의 현실이 자리할 곳은 없다.


그럴만한 힘과 책임을 가진 일본정부가 묵인했다. 묵인했을 뿐만 아니라 감금과 감시에 협력했다. 오히려 주도하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굳이 직접 납치하라 지시하지 않아도 된다. 납치하더라도 자신들이 봐주겠다는 신호만 보내도 현실에서는 얼마든지 그 이상의 일들도 일어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정부가 가지는 힘이라는 것이다. 증거를 남기는 것은 아마추어나 하는 짓이다. 그럼에도 증거마저 적잖이 남기고 있었다.


어이가 없다. 강제가 아니었다. 강제연행이나 납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취직시켜주겠다 속인 뒤 강제로 위안부로 만든 사례를 말하면서도 그마저도 강제가 아니었다. 사기였다. 사기당했는데 어째서 원치 않는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는가.


내가 이래서 보수를 싫어한다. 이를테면 진보는 진실이고 보수는 사실이다. 진보는 때로 사실을 무시하고, 보수는 아예 진실에 관심조차 가지지 않는다. 이 또한 너무 단순화시킨 것일 테지만. 현정부의 공이다. 비로소 솔직해졌다. 역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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