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사례, 어느 가게에서 사람을 구하며 여성의 외모를 조건으로 걸었다. 외모에 자신있는 분. 그에 대한 남성들의 반응이 재미있다.
"서비스업에서 종업원의 외모를 따지는 것이 무엇이 잘못인가."
둘째 사례, 어느 거대극장기업에서 여성아르바이트들에게 외모에 대한 과도한 요구를 강제하는 것에 대한 대응도 비슷하다.
"보다 많은 손님을 유치하고 만족을 주기 위해서라도 외모에 대한 강요는 필수적이다."
아마 여기까지 썼어도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거의 다수일 것이다. 설마했다가 달린 댓글들 보며 경악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셋째 사례, 바로 강남역 살인사건 당시 공포에 떠는 여성들에 대한 준엄한 윽박지름이다.
"도대체 남자가 뭘 어쨌다고 남자를 잠재적 가해자취급 하는가."
심지어 여성들이 늦은 밤 길을 가다가 남성을 보고서 걸음을 재촉하는 것마저 타박한다. 자기가 무슨 죄인이라도 되는가. 하지만 여성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
성범죄가 일어나고 그 시각이 밤이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여자가 뭐한다고 그런 늦은 시간에 겁도 없이 돌아다니는가."
대개는 같은 사람이다. 밤늦게 어느 골목에서 여성이 자기를 보고 걸음을 재촉하면 범죄자 취급하는 것 같아 기분나쁘고, 그러면서 밤늦게 조심없이 돌아다니다 안좋은 일을 당하면 그것은 주의하지 않은 자신의 잘못이고.
어느새 메갈리아를 이해하게 되는 이유다. 기껏해야 텍스트다. 당장 컴퓨터 모니터만 꺼도 현실에서 아무 영향력도 가지지 못하는 그냥 글에 불과하다. 그런데 메갈리아에 동조하거나 최소한 그들을 적대할 수 없는 수많은 페미니스트조차 아닌 여성들에게는 그런 모든 것이 당장 사진이 겪어야 하는 현실들이다. 어쩔 수 없이 타고나는 것인데도 외모를 가지고 줄세우기당하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성형이라도 하면 성형했다고 조리돌림당하고. 바로 문밖을 나서는 것도 두려운 현실에 조심하면 조심한다고 그것으로 공격당한다. 어쩌란 것인가.
물론 여자가 예쁘면 좋다. 남자도 잘생기면 좋다. 그 사실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빼어난 외모를 반드시 필요로 하는 분야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외모란 자기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성형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외모는 유전적 요인에 의해 거의 결정된다. 태어난 순간 자신의 의지나 노력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외모는 결정된다. 그렇다고 성형이 공짜인 것도 아니다. 단지 주위의 시각적 만족을 위해 여성은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 자신의 외모를 가꾸어야 하고 그것이 취업의 전제조건이 된다. 일을 하는데 자격요건이 된다. 어째서 자기가 결정하지 않은 일로 자기가 책임져야 하는가.
선진국에서 외모에 대한 차별을 다양한 법과 제도를 통해 강력하게 제한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기가 결정할 수 없는 타고난 것들에 대해 책임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그것이 보기 좋으니까. 그래야 보기 좋으니까. 여성을 단지 수단으로 여긴다. 여성을 오로지 자신의 타고난 외모에 종속시키려 한다. 여성을 대상으로 여긴다. 아무 문제의식 없이. 그러면서도 자신들은 여성을 차별한 적 없다. 당연하다. 그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니까. 기왕에 찾은 극장에서 예쁘고 단정한 차림에 특정한 패티쉬까지 충족시키는 여종업원이 있으면 자기가 즐거울 것이다.
그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많은 여성들은 바로 그런 것들에 분노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분노는 '헬조선'과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이라는 현실 그 자체에 대한 부정과 증오로 나타나고 있다. 남성들을 자신들로부터 분리시킨다. 남성을 철저히 대상으로 만든다. 그럼으로써 여성인 자신들만 남는다. 차라리 여성들끼리 살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을 정도로 남성위주의 사회는 자신들에게 고통과 굴욕일 뿐이다.
당연히 남성인 필자는 여성들의 그같은 생각이나 입장에 대해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다. 한때는 여성들을 많이 이해하고 있다고 착각한 적이 있었다. 말 그대로 착각이다. 그래서 그냥 남성우월주의자이기를 자처한다. 아마 그쪽이 더 맞을 것이다. 그러고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어째서 여성들이 필자의 선의를 몰아주는가 서운하던 것에서 그럴 수밖에 없는 그들의 처지를 그들의 입장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개별의 행동과 말들에 대해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헤아리려 노력한다. 다 맞지는 않다. 최소한 실수는 줄일 수 있다.
어째서 아직까지 메갈과 관련해서 인터넷이 이토록 뜨거운가. 자기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여성들에 대해 어쩌면 여성들보다 자신들이 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여성들은 더이상 사회로부터 억압도 차별도 받고 있지 않다. 그래서 위의 세 가지 사례를 말한 것이다. 자신들이 하는 행위들은 차별도 억압도 아니다. 자신들이 바라는 페미니즘만을 인정하겠다는 태도 역시 폭력이 아니다. 그러면 무엇일까?
진보지식인과 언론에서 차라리 메갈리아의 편에서 그에 적대적인 남성들을 오히려 비판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메갈리아에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최소한의 공감대를 가지는 여성들의 현실을 최대한 이해한다. 그리고 그런 여성들을 공격하는 남성들이야 말로 그런 현실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자신들은 정의라 생각하지만 그것이야 말로 메갈리아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였다. 메갈리아에 대한 비판보다 그것이 더 시급하다.
자신은 진보적이라 생각한다. 상식적이고 정의롭다 생각한다. 세상에 제일 무서운 사람이 바로 상식적이고 정의로운 사람들이다. 다른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다른 주장과 생각을 인정하지 않는다. 자신이 정의다. 자신이 알고 자신이 생각하는 그것이야 말로 보편이며 상식이다. 그래서 더 잔인하고 포악해질 수 있다. 진보를 부정한다. 여성주의자들을 부정한다. 부패와 부조리의 근원들에 투항하려 한다. 메갈리아에 반대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보수에 투표할 수 있다. 진보의 잘못이 아니다. 자신들이 처음부터 보수였기 때문이다. 자신들조차 모르던 솔직한 속내를 드러내고 만다.
자기가 자신을 보지 못한다. 자기가 자기를 알지 못한다. 모든 시작은 여기서부터다. 그러면 메갈리아는 옳은가. 방법은 잘못되었다. 목적도 잘못되었다. 그러나 동기는 이해할 수 있다. 그를 공격하는 쪽은 동기조차 이해할 수 없다. 자신들은 그래도 옳다. 끝나지 않는 평행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