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여튼 웃기는 것들이다. 지금도 일본 대졸 초봉 평균이 240만엔 정도라고 한다. 내가 1990년대 들었던 일본의 대졸 초임도 딱 그 수준이었다. 괜히 일본 경제 망했다는 게 아니다. 노동자의 임금도 물가도 전혀 오르지 않았다. 그냥 정체되어 있는 것이다. 진짜 디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한다면 바로 일본이다.

 

그래서 아베 정권에서도 별 지랄을 다했었다. 노동자의 임금을 높이고 물가를 올리고 그렇게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그런데 여전히 이 꼬라지인 것이다. 심지어 완전고용을 넘어 아예 일할 사람이 없어서 기업이 문닫을 지경이라면서도 현실은 여전히 이런 것이다. 그 결과가 내수의 감소와 저축의 저하다. 오죽하면 일본의 소비는 이미 은퇴한 단카이 세대가 거의 지탱하며 젊은 층은 저축마저 없는 경우가 많다 하겠는가.

 

한국의 최저임금인상은 실패했다. 그런 일본이니까 저따위 기사나 써제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처럼 한 30년 임금을 동결해 볼까? 물가도 동결해 볼까? 그러면 경제가 어떻게 되는지? 작년 일본이 마이너스 성장률을 무려 두 번이나 기록한 사실을 깡그리 무시한다. 그것도 한 번은 -0.7%였다. 그렇게 일본 경제가 잘 나가서 -0.7%다. 그 다음이 0.3%, 그래서 그런 기저 위에 올 1분기 0.6%였던 것이다. 높은 것 같지? 하여튼 한국 언론의 수준이란 게 이 모양이다.

 

일본이 오히려 고민이 많다. 임금을 억지로 올려보려 해도 안되고. 물가를 올려보려 해도 안되고. 재미있는 건 일본이 무려 233%나 되는 국가채무를 져가며 경기를 부양해 온 사실에 대해서는 침묵한다는 사실이다. 자국 엔화라 상관없다. 자국 국민들이 사들인 채무니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긴 그것도 요즘은 바뀌었구나. 언론이 병신이긴 하다.

사실 이것도 소득주도성장을 위한 정책의 하나일 것이다. 특히 저소득층이 많은 건설현장에서 임금체불이나 후려치기를 없애겠다. 대부분 최저임금의 영향을 받기에 당연하게 오른 만큼 급여도 오를 텐데 온전히 오른 만큼 다 받을 수 있도록 해주겠다. 당장 정부가 직접 관리할 수 있는 공공영역부터라도.

 

실제 건설현장 가 보면 그런 경우가 적지 않다. 나 역시 주위에 6개월치 공사대금을 몇 년이나 받지 못하다가 겨우 소송까지 해서 반만 받아낸 경우를 안다. 자기가 인부들을 끌고 다녔는데 덕분에 돈도 못 주고 빚쟁이만 되었다. 다만 그렇게 받은 돈으로 경마에서 불리겠다고 나섰다가 다 날리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은 반전일 것이다. 지금도 어디 갔는지 내 돈까지 떼먹고 잠적 중이다.

 

하긴 건설현장만일까. 공장은 어떨까. 알바는 어떨까. 자기 사정 어렵다고 노동자 임금 미루고 떼먹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여긴다. 네가 일을 못한 탓이다. 그러면 사정이 좋아지면 임금을 더 쳐주기라도 하는가. 오늘인가 중소기업들이 나서서 최저임금 낮추면 고용도 늘리고 기존노동자 임금도 올리겠다 약속한 것을 보고 코웃음부터 친 이유다. 그럴 놈들이면 최저임금 올리기 전에 영향받지 않을 만큼 월급도 올려줬겠지. 기존 노동자들도 최저임금인상으로 월급이 오르게 되었으니 저리 말하는 것이다. 최저임금이란 말 그대로 최소한의 임금인데 벌써 꽤 오래 다녔을 직원들까지 그 영향을 받는다. 그나마도 자기 사정을 이유로 혹은 미루거나 혹은 떼어먹거나. 

 

정말 좋아진 것이다. 그렇다면 건설현장 일도 해 볼 만하다. 아직은 공공부문 한정이지만 일한 만큼 떼먹힐 걱정 없이 더구나 최저임금 오른 만큼 받을 수 있다면 진짜 한 번 기대볼만할 것이다. 더구나 경기부양을 위해 앞으로 공공부문의 건설이 보다 늘어날 예정이라. 그렇게 수입이 확실하게 늘면 소비도 늘겠지.

 

소리소문없이 좋은 정책이 실행된다. 앞으로 사기업의 공사에서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기를. 도급계약에 있어서도 일정 이하로 후려치는 것을 막겠다 하니 건설사 입장에서는 이익이 줄겠지만 대부분 노동자나 영세한 업자들 입장에서 살 판 날 것이다. 그들이 바로 서민이다. 다른 서민이 있는 게 아니라. 지지한다. 최근 가장 좋은 정책이다.

요즘 은행이라면 돈 빌려주는 곳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지만 역시 은행은 돈을 맡아두는 곳일 것이다. 현금을 쌓아 둘수도 직접 들고 다닐 수도 없을 테니 은행에 일단 맡겨두었다가 필요할 때 찾아 쓴다. 그리고 일정 기간 이상 돈을 은행에 맡겨 놓으면 알량하나마 이자도 받을 수 있다. 아예 이자를 목적으로 일정기간 정기적으로 정해진 금액을 예금하는 상품도 있을 정도다. 그러면 묻는다. 은행은 어떻게 고객이 맡긴 돈을 불려 이자까지 지급할 수 있는 것일까?

 

이자만이 아니다. 은행에 속한 임직원들의 급여며 은행지점들이 지불해야 하는 임대료나 각종 공과금등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비용만 해도 상당할 것이다. 그런데도 주주에게 배당까지 하고 예금주들에게는 적으나마 이자까지 지급한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물론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고객이 맡긴 저금을 종잣돈으로 빌려주거나 혹은 직접 투자해서 이익을 남기는 것 또한 은행의 일이기도 하다. 아니 오히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쪽이 더 중요한 역할이자 기능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자본이란 곧 생산수단이며 은행은 그 자본을 공급하는 창구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필요한 자본을 보다 수월하게 확보할 수 있게 되면서 더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경제활동이 가능해진다. 은행을 포함한 금융이야 말로 자본주의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은행 뿐 아니라 대부분 금융이라고 하는 자체가 고객의 돈을 이용해서 돈을 버는 구조인 것이다. 보험이든 증권이든 기본은 거의 같다. 그렇다면 결국 고객이 맡긴 - 다시 말해 언젠가 고객에게 돌려줘야 할 돈으로 사업을 하고 있으니 은행은 고객에게 빚을 진 것인가. 근본적으로 맞다. 그래서 은행이 부실화되거나 심지어 파산하게 되면 맡겨놓은 자기 돈을 찾으려 사람들이 몰려들고는 하는 것이다. 이때 돈을 돌려받기 위해 은행을 찾은 고객들은 채무자들인 것이다. 갚지 못하면 결국 빚이 된다. 하지만 어째서 은행에 대해서는 빚을 진다 하지 않고 돈을 맡겨둔다 하는 것일까. 빌려준다 하지 않고 저금한다 말하는 것일까. 한 마디로 떼어먹힐 일이 없다는 확신 같은 것이다. 은행이 건재한 이상 언제 어느때든 자기가 필요하면 다시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 원래 고객이 받는 이자보다 은행이 대출로 받는 이자가 항상 더 높다.

 

국채란 역시 빚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국채의 채債는 빚 채인 것이다. 일단 빌렸으면 언젠가 돌려주어야 한다. 그래서 문제가 된다. 당장은 필요해서 돈을 빌렸지만 언젠가는 그 돈을 갚지 않으면 안된다. 당장은 빌린 돈으로 어떻게 필요한 곳에 쓸 수 있었지만 나중에 그것을 갚을 때 부담이 될 지 모른다. 하지만 그 돈을 빌리고 갚아야 하는 대상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무엇으로 빌리고 무엇으로 갚는가. 외채와 다르다. 외국에서 외화로 빌린 빚과는 성격이 전혀 다른 것이다. 언론이 그동안 집요하게 장난쳐 온 부분이기도 하다. 보유한 외화가 부족하면 자칫 나라가 부도날지도 모른다. 이미 1997년 IMF사태로 아직까지 트라우마로 남아있을 정도로 직접 겪어 본 바 있었다. 혹시 그리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넘은 공포마저 그래서 강하다.

 

그러나 국채란 자국의 화폐로 자국의 국민을 대상으로 빌리는 빚이란 것이다. 때로 그 대상이 중앙은행이 되면 국채는 중요한 통화정책의 수단으로 쓰이기도 한다. 중앙은행이 국채를 사들이는 만큼 정부는 더 많은 화폐를 시장에 공급할 수 있다. 이때 정부가 시장에 공급하는 화폐 역시 당연히 자국의 화폐인 것이다. 그래서 경제후진국의 경우 정부의 무분별한 국채발행으로 인해 급격한 인플레이션을 겪기도 한다. 화폐의 공급이 많아지면 그만큼 화폐의 가치는 떨어지고 물가는 오르게 된다. 그래서 누구에게 빌리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중앙은행에서 빌린다면 통화정책일 것이고, 시장에서 빌린다면 재정정책일 것이다. 시장이란 곧 국민이다. 외국인이라 할지라도 결국 발행국의 화폐로 바꾸어 국채를 사야 하기에 그 돈은 모두 국민의 자산으로부터 나오게 된다. 그러면 그 돈을 돌려주어야 할 대상은 누구이겠는가. 정부가 빚을 낸다면 누가 그 빚을 돌려받게 될 것인가.

 

국민인 것이다. 돈을 빌리는 것도, 그 돈을 갚아야 하는 것도 국민인 것이다. 빚을 지는 것도 국민에게 지는 것이고 빚을 갚는 것도 국민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결제는 자국의 화폐를 단위로 이루어진다. 기축통화고 뭐고 상관없다. 기축통화국만 자국의 화폐로 국채를 사고 파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정부가 빚을 지면 그만큼 장래에 국민 가운데 누군가 그 빚을 받아내게 된다. 그러면 그 돈은 어디로 가겠는가. 정부가 아예 빚을 갚을 능력이 안된다면 모를까 정부에 돈을 빌려준 만큼 결국 언젠가 이자까지 포함해 돌려받게 되는 것이다. 이 부분이 핵심이다. 그렇다면 과연 정부는 지금 돈을 빌린 만큼 다시 갚을 능력이 되는가. 만일 갚을 능력이 된다면 이것은 빚이라기보다 돈을 맡겨두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투자다. 국채란 그래서 자본소득을 바라는 개인에게 있어 상당히 훌륭한 투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마치 예금처럼 보험처럼 오히려 더 큰 이익과 함께 돌려받을 자산이 되는 것이다. 누구에게? 바로 국민에게.

 

괜히 상관없는 외국인들이 굳이 원화를 사들이면서까지 한국의 국채를 사모으려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그만큼 한국의 경제나 정부의 재정이 안정적이고 따라서 떼어먹힐 일 없는 안정적인 투자처로 여겨지는 때문이다. 돈을 빌려준다기보다 한국 정부의 신용을 믿고 한국 정부에 투자하는 것이다. 그보다는 한국 정부의 국채에 돈을 묻어두는 것이다. 기한이 다 되면 국채를 다시 돈으로 이자까지 더해서 돌려받을 수 있다. 아니 기한이 안되더라도 이자를 할인해서 다른 사람에게 팔아 이익을 남기고 자본을 회수할 수 있다. 그런 확실한 보장이 있다. 그래서 은행의 비유를 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정부에게 그만한 빚을 갚을 능력이 되는가. 된다고 여기니 외국인들도 기꺼이 돈까지 바꿔가며 너도나도 한국의 국채를 사들이려 하는 것이다.

 

굳이 원금을 갚을 필요도 없다. 국채는 그 자체로 화폐처럼 유통될 수 있다. 국채를 갚기 위해 새로 국채를 발행하고 그렇게 발행된 국채는 발행한 정부의 신용도에 비례해서 일정한 가치를 가지는 재화로서 시장에 유통된다. 결국 정부가 직접 갚아야 하는 것은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자비용밖에 없다. 일본이 200%가 넘는 국가채무에도, 미국 역시 막대한 재정적자에도 여전히 문제없이 국채를 발행하며 정부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다. 일본이나 미국 정도면 그동안의 경제성장만으로 그만한 이자비용 정도는 얼마든지 부담할 수 있다. 일본의 경우 그 한계가 아마 240% 남짓, 한국은 그보다 조금 부족한 200%이상까지 감당할 수 있다고 IMF는 평가하고 있다. 더구나 그 사이 경제가 그만큼 성장한다면 채무비율은 줄어들게 된다. 얼마전 국가총생산의 산정기준을 바꾼 결과 국가채무비율이 30% 중반으로 떨어진 것이 그 한 예다. 그러므로 더 중요한 것이 그렇게 빌린 채무를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가.

 

결국 정부의 재정이란 자국의 국민을 대상으로 쓰이게 될 돈이란 것이다. 굳이 경기부양씩이나 할 필요 없이 그저 국민을 대상으로 돈을 쓰는 것만으로 시장에는 돈이 돌게 된다. 그만큼 경제는 성장하게 된다. 경제가 성장하면 당연히 세수도 늘고 채무에 대한 부담도 줄어든다. 선순환일 때의 이야기다. 그렇다면 한국경제에 국가채무비율 60%가, 혹은 80%가 그렇게 심각할 정도로 큰 부담인가. 그만한 돈이 시장에 풀렸을 때의 긍정적인 효과에 비해서 심각할 정도로 큰 타격을 줄 것인가. 지난 1분기 성장률이 -0.4%를 기록했을 당시 정부지출이 거의 기여하지 못했던 점을 떠올려보라. 내수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정부지출이다. 정부의 재정정책은 그 자체로 이미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다만 정도가 지나칠 경우 앞서 말한 인플레이션의 우려까지 있다. 하지만 지금은 디플레이션을 걱정할 정도로 물가까지 안정적이다.

 

자기 금고처럼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국가의 재정을 책임지는 기재부 공무원이다 보니 들어오고 나가는 돈들이 마치 자기 책임처럼 여겨진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든 수입은 늘리고 지출은 줄여야 한다. 본능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채무를 늘려서는 안된다. 지출을 지금보다 더 늘려서는 안된다. 그리고 경제에 대해 무지한 언론은 그런 전문가인 기재부 공무원들이 말하는 바를 그대로 받아쓴다. 정부를 공격하기 위한 목적에서 함께 부화뇌동한다. 논란의 이유다. 국채란 무엇이고 어떤 성격의 것인가. 그것이 그렇게 한국경제에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인가. 얼마나 큰 위협이 될 것인가. 하지만 그런 것 없이 마치 개인이 지는 빚처럼. 갚지 않으면 당장 망하는 개인간의 채무처럼. 단편적이다. 일차원적이다. 언론의 기사도 지면도 딱 그 수준이다. 그러니까 겁주고 협박하고 절대 안된다고. 그로부터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다.

 

말하자면 국채란 세금 대신 여유가 되는 국민들에게 돈을 빌리는, 더 정확히 정부가 마치 은행처럼 채무라는 형식으로 시장에 남아도는 돈을 유치해서 그를 정부의 목적에 맞게 당장 필요한 곳에 쓰고자 하는 정책인 것이다. 어차피 직접 시장에서 소비에 쓰이지 않을 돈을 자본으로 시장에 직접 개입함으로써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그를 통해 세수라는 수입도 늘리는 수단인 것이다. 빚이라 하니 그냥 빚인 줄 알지만 빚이라고 다 같은 빚은 아닌 것이다. 만일 확실하게 이자까지 쳐서 돌려받을 보장만 있다면 오히려 돈을 빌려주는 쪽에서 사정해가며 빌려주는 경우란 것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심지어 외국인이 국채를 많이 사들이는 것마저 문제있다 비판하는 언론은 무엇하는 곳인가.

 

외국인들이 한국의 국채를 많이 사들인다. 이미 많이 보유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외국인들이 한꺼번에 국채를 팔거나 하면 상당한 위기가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 외국인들이 한국의 국채를 그토록 많이 사모으고 있는가 이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고약한 것이다. 도대체 국채란 무엇인지. 어떻게 발행하고 어떻게 쓰이는 것인지. 채무라면 어떤 식으로 상환하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알면서 그러는 것인지. 항상 답은 정해져 있지만. 썩을 것들이다.

그토록 보수언론이 한 목소리로 찬양하던 일본마저 지난 4월 무역수지가 90%나 감소하고 있었다. 여전히 미국과 유럽을 상대로는 흑자를 기록하고 있었는데 역시 중국에 대한 수출이 부진한 탓에 흑자폭이 줄어든 것이다.

 

비단 올 4월만이 아니다. 작년에도 무역수지는 적자였고, 지난 5월 상순 무역수지도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다. 현재 가장 큰 수출국가이면서 가장 큰 수입국가인 중국의 경기가 미중무역전쟁의 여파로 하강하면서 바로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일본만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수출로 먹고 사는 독일도 작년부터 올해까지 계속 경기가 안 좋았다. 모든 언론이 나서서 지난 1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라고 난리를 치지만 그것도 따지고 보면 지난 4분기 성장률이 1%에 이른 기저효과라 할 수 있었다. 그나마도 작년 3분기 성장률이 0.6%였는데 일본 독일과 비교하면 각각 작년 3분기와 4분기 -0.7%, -0.2%와 0.3%, 0%를 기록한 위에 올 1분기 각각 0.6%와 0.4%로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무슨 말이냐면 기저효과로 작년 성장률이 안좋았던 결과 그만큼 더 많이 성장한 것처럼 보인 것이고 반대로 한국의 경우는 작년 하반기 성장률이 높았던 탓에 상대적으로 성장률이 낮게 나오게 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가운데 하나다. 아니 사실 오해할 것도 없다. 성장률이라는 자체가 상대적인 것이다. 기존에 성장한 위에 새롭게 성장한 만큼을 비율로 나타낸 것이기 때문이다. 전분기에 성장률이 낮았다면 다음 분기에는 실적이 조금 낮아도 성장률은 높아질 수 있다. 반대로 전분기 성장률이 높았다면 그만큼 실적이 어지간히 좋아지지 않으면 성장률이 그만큼 높아지기가 힘들다. 그래서 경제규모가 일정 이상 되면 전처럼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저 중국마저 성장률은 해가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 중이다. 전년 3, 4분기에 각각 0.6%와 1.0%로 일본과 독일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기에 그만큼 1분기에는 상대적으로 수치가 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언론은 절대 이전 한국의 성장률이 훨씬 높았던 분기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미중무역전쟁의 여파로 국제무역이 줄고 있다. 세계의 공장이라는 중국이 제품을 생산해서 팔기 위해서는 그만큼 세계로부터 필요한 부품과 자원들을 수입해야 하는데 미국의 제재로 인해 수출길이 막히면서 내수까지 하강하기 시작한 탓이다. 세계시장에 제품을 내다파는 만큼이나 막대한 양을 사들이던 중국의 사정이 안좋아지면서 중국에 수출하던 나라들의 사정까지 덩달아 안좋아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 가장 먼저 독일과 일본이 직격탄을 맞고 뒤늦게 한국까지 그 대열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그나마 반도체 수출로 버티다가 반도체 가격까지 하락하며 중국에 대한 무역의존도가 그렇지 않아도 높은 한국마저 그 영향 아래 놓이게 된 것이다. 하지만 보수지나 경제지 모두 그런 국제경제의 사정따위 아랑곳 없이 오로지 최저임금을 올린 탓이다. 주당근로시간을 줄인 탓이다. 그래서 묻는다. 국제무역이 지금처럼 침체되고 물건을 만들어도 해외에 내다 팔 방법이 없을 때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물론 보수지나 경제지들은 말한다. 보수정치인과 지식인들도 그리 주장한다. 규제를 철폐하라. 최저임금 낮추고, 근로시간 늘리고, 그리고 기업을 옭죄는 규제부터 철폐하라. 그래서 과연 규제만 풀면 안되던 수출이 늘어나는가. 당장 수입할 사정이 안되는 중국이 그 규제들만 풀리면 더 많은 우리 제품을 사들이게 될 것인가. 그래서 어떤 분야에서 어떤 규제들을 풀어주면 최저임금 낮추고 근로시간 늘려줘도 국민들의 삶까지 비약적으로 좋아질 수 있게 될까. 물론 그에 대한 어떤 대안도 제시해주지 못한다. 당연하다. 그토록 규제완화를 외치던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에서도 경제가 한 번에 좋아지는 규제철폐나 완화같은 건 한 번도 해보지 못했었다. 그런 것이 있었으면 벌써 지난 정부들에서 써먹었을 것이다. 아니겠는가. 그냥 정부를 비판하면서 내세울 대안이 없으니 습관처럼 떠드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규제개혁은 벌써 IMF 당시부터 반복해서 읊어대는 레토릭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 그토록 보수지와 경제지들이 찬양해 마지않는, 보수정치인과 지식인들이 동경해 마지않는 일본의 사정을 살펴보자. 국민의 소득이 줄고 있다. 거시경제가 아닌 국민의 실질수입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 오히려 지난 수십년 전보다 노동자의 수입이 줄어들며 소비도 줄고 일본이 자랑하던 저축률까지 0%까지 떨어진 상태다. 그래서 일본이 자랑하던 내수시장마저 수입이 줄어들어 무역흑자가 유지되는 악순환을 이어가는 중이다. 아베도 그래서 몇 번이나 기업들이 노동자의 임금을 높여줄 것을 요구한 적이 있었다. 노동자의 실질 소득이 늘어야 소비도 늘고 일본의 경제도 다시 성장할 동력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완전고용에 오히려 일할 사람이 없어 폐업하는 기업이 생겨나는 상황에서도 노동자의 임금은 정체, 심지어 감소 중이다. 그럼 일본의 경제에는 미래가 있을 것인가.

 

인플레이션은 나쁜 것이 아니다. 경제가 성장하면 그만큼 시장에 유통되는 화폐의 양도 늘어나고 그만큼 화폐의 가치가 떨어지며 물가도 올라가게 된다. 한 마디로 그만큼 화폐를 구하기가 쉬워진다는 뜻이다. 예전에는 쌀 한 가마로 겨우 교환할 수 있었던 돈을 이제는 쌀 한 말이면 남겨서 구할 수 있게 되었다. 화폐를 재화의 하나로 간주해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그래서 역시 일본 정부도 그동안 부단히 일본의 정체된 물가를 올리려 애써 왔었다. 올 초 물가가 너무 안 오르니 여러 경제지들에서도 디플레이션은 아닌가 우려하는 - 그보다는 신난 듯한 - 기사들을 내보내고 있었다. 그러면 그 인플레이션을 무엇이 주도해야 하는가. 기업의 생산인가. 아니면 개인의 소비인가. 지금 중국도 그동안의 경제성장의 결과로 인건비가 오르며 기업들이 견디지 못하고 이동하고 있는 중이다.

 

진짜 대안없이 떠들어대고 있는 중이다. 기껏 대안이라는 것이 IMF 이후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떠들어대던 이야기의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규제를 풀라. 시장에 맡기라. 그래서 지난 9년 간 보수정부 아래에서 그렇게 해 왔었다. 그래서 남은 것이 무엇인가. 그보다 과연 지금 경제의 진짜 문제가 무엇인가. 무엇이 한국 경제를 어렵게 만드는가. 사이비무당이 조상탓 무덤탓 전생탓 하듯 입만 열면 그저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이다. 그러니까 그래서 대안이 무엇인가 묻는 것이다. 지난 정부에서도 떠들던 그것 말고 새로운 방법들이다. 그래서 지금의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단순치 최저임금 낮추고 근로시간만 늘리고 기업들 하고 싶은대로 내버려두면 되는 것인가. 그래서 그들이 모범으로 삼는 지금 일본의 경제상황이 어떠한가. -0.4%로 이 난리들인데 무려 -0.7%다. 그나마도 작년 1분기에도 -0.2% 이후 겨우 0.6%성장했다가 -0.7%로 고꾸라진 것이다. 그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우습게도 그토록 세계경제가 좋다던 보수지나 경제지의 지면에는 이런 진짜 해외의 뉴스들은 아예 보도조차 안되고 있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독일과 일본의 경제가 어땠는지, 그리고 그 원인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제대로 된 보도를 찾아보기가 너무 어렵다. 그러니까 당당히 말하는 것이다. 세계의 경제는 좋은데 우리나라 경제만 안 좋다. 특히 우리처럼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들의 상황이 어떻게 바뀌었는가. 어쩔 수 없이 언론을 통해서만 경제를 이해할 수밖에 없는 개인들은 현혹될 수밖에 없다. 진짜 무엇이 문제이고 그 대안은 무엇인가.

 

사실 경제뉴스에 대해서만큼은 뉴스룸도 신뢰하지 않고 있다. 뉴스룸 기자들이 거의 중앙일보 출신들이다. 전문성도 없는데다 논조도 거의 중앙일보와 비슷하다. 사회정의는 알지만 경제정의는 알지 못한다. 경제현실은 더욱 알지 못한다. 참 답답한 것이다. 덕분에 시간 날 때마다 여기저기 경제뉴스 찾아다니느라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우리도 일본처럼 하자. 우리 대통령도 아베처럼 해야 한다. 일본을 보라. 일본을 배우자. 그래서 어떠한가. 하찮은 것이다. 저런 것들이 자칭 전문가들이다. 웃어야 하는 것인가. 이른 아침부터. 잠까지 설쳤는데. 

하여튼 이런 게 바로 보수의 민낯이라는 것이다. 물론 한국의 보수만이다. 그래도 문명화된 나라 가운데 아주 극단적인 부류를 제외하고 이와 같이 말하고 행동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고 할 수 있다. 보수야당의 대표는 군인더러 국방부의 명령도 듣지 말라고 말하더니 보수경제지라는 곳은 경제관료들더러 아예 정부를 무시하라는 듯 선동한다.

청와대와 국무위원들을 얼공이라 폄하하며 늘공인 경제관료들이 그들의 지시를 일방적으로 받는 상황을 안타까워한다. 경제라면 경제관료들이 전문가일 텐데. 그동안 이 나라의 경제를 이끌어 온 것이 바로 그들일 터인데. 그런데 일방적으로 통보만 받고 자신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시키는대로만 일해야 한다. 이 얼마나 부당한 상황인가. 그러나 원래 그러라고 공무원이란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정부 각부처 공무원들이란 기술자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업에서 신상품을 개발할 때 일선에서 생산을 담당하는 기술자들이 주도하는가. 아니 설사 기술자들이 새로운 상품을 개발해도 생산과 판매를 결정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경영자들인 것이다. 그래서 유능한 경영자들은 숙련된 기술자들보다 심지어 몇 천 배의 연봉도 받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보수경제지들도 그같은 숙련된 기술자들의 연봉이 너무 많다며 그동안도 비판해 온 것 아니던가 말이다. 하는 일에 비해 너무 많이 받는다. 아무리 숙련된 대체불가능한 기술자라도 그 역할에 비해 너무 많은 돈을 받는다. 공무원이라고 다를까?

결국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국민에 의해 선출된 '매일경제'가 말하는 얼공들인 것이다. 그러라고 선거를 치르고 국민들은 투표를 통해 자신들을 대신할 이들을 뽑는 것이다.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 그리고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이들이 방향을 제시하고 그에 따라 공무원들은 각자 자기의 전문분야에 따라 그를 실현할 방법을 찾고 만드는 것이다. 반드시 공무원들과 협의할 필요도 없다. 사전에 협의를 마쳐야 할 이유도 없다. 중요한 것은 정부가 하고자 하는 방향과 의지이고 그에 대한 기술적인 뒷받침이다. 그를 위해 공무원은 존재한다. 그런데 그것이 부당하다. 그러고보면 올 초 한 신출내기 공무원이 국채도 자기들 동의 없이 발행했다고 난리를 친 적이 있었다. 대통령도 청와대도 부총리도 자기들의 허락을 받고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괜한 것이었을까?

최배근 교수의 의심이 맞았다. 괜히 매일경제가 그와 같은 기사를 내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와 관련한 이야기가 경제관료들 사이에서 전부터 있어 왔었다. 그를 조금 더 극대화하기 위해 보수경제지가 힘을 보탠다. 자기들이 주인이다. 자기들이 주도한다. 그렇게 경제관료들이 관성대로 정책을 펴다가 망한 사례가 바로 이웃나라에 있는데도. 그래서 그 잘난 경제관료들 덕분에 이명박근혜 당시 나라살림이 조금 나아졌던가. 그때도 이명박 박근혜 탓이다. 이번에는 문재인 탓이다. 자기들 잘못은 없다. 편리하다. 기술자로서 권리는 요구하지만 그에 대한 책임은 모두 상급자에게 떠넘긴다. 그런 비열함을 오히려 언론이 부추긴다.

매일경제를 언론취급 않기는 했었다. 다만 그나마 한국경제보다는 덜 촌스럽다. 더 교활하고 더 치밀하다. 그럼에도 가끔씩 이렇게 속내를 거침없이 드러낸다. 원래 매일경제를 읽는 사람들도 그런 매일경제의 성향에 동의하는 이들일 것이다. 어째서 신문이 갈수록 팔리지 않는가. 갈수록 보수의 민낯만 드러나고 있는 듯하다. 국가도 체계도 질서도 원칙도 규범도 깡그리 무시한 채 아예 국가전복마저 기도한다. 쿠데타 아니면 무엇인가. 기술관료더러 선출된 권력을 무시하라 한다면. 그에 반항하라 부추긴다면.

문민통제란 비단 군을 상대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그 자체로 또 하나 권력이 될 수 있는 행정관료들도 그 대상이 되어야 한다. 선출된 권력에 의해 견제받고 통제되고 관리된다. 그것이 정상적인 나라다. 현대의 문명화된 국가다. 아직도 일제강점기에 머물러 있는 것인지. 황교안이나 매일경제나. 하긴 그런 인간들이니 이명박근혜가 그리 훌륭해 보였을 것이다. 수준을 본다.

IMF 당시 나같은 별 것 없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타격이었던 것은 바로 건설일자리의 실종이었다. 막말로 할 것 없으면 노가다나 한다고 했었다. 시골에서 갓 올라와서 아무 기반이 없는 사람들도, 사업이 망했거나 일자리가 잃어 막막해진 사람들도, 심지어 학생들조차 노가다로 용돈벌이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만큼 공사도 많았고 일자리도 충분했으며 무엇보다 덕분에 일당도 짭짤했었다. 그런데 IMF로 하루아침에 그런 일자리들이 자취를 감추었었다.

 

그러니까 1990년대 이전 한국기업들은 외국에 수출할 때 실적을 위해 적잖이 손해까지 감수하며 상품을 팔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1980년대 고도성장의 와중에도 공산품의 가격이 안정될 수 있었던 것도 정부의 압력에 기업들이 순응한 결과였다. 경제는 성장하는데 가격을 일정하게 유지하려면 당연히 그만큼 이익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면 기업들은 어떻게 정치권에 비자금으로 수천억씩 가져다 바치면서도 오히려 이익을 남기고 몸집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일까. 지금도 대부분 대기업들이 거의라 해도 좋을 정도로 하나씩 건설회사를 계열사로 거느리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이후 드러난 대부분 비자금사건들에서 기업들의 돈줄 역할을 했던 것이 바로 이들 건설회사들이었다.

 

일단 기업들이 권력자의 말만 잘 들으면 은행에서 특혜로 대출을 해준다. 그러면 그 대출한 돈으로 다른 것 않고 바로 부동산에 투자해서 돈을 번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정부 차원에서 개발계획이라도 세워지면 그 공사까지 맡으며 이익은 천정부지로 늘어나게 된다. 그 돈이 다시 정치권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이다. 딱 중국정부가 부동산을 이용해서 경기를 부양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면 된다. 차이라면 한국은 아예 화웨이나 샤오미 같은 기업들이 건설회사까지 거느리고 건설투자를 통한 이익까지 독점하고 있었다. 대신 중국정부는 기업들에 직접 보조금을 준다. 당시 한국정부는 대출과 부동산을 통한 특혜로 보조금을 대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아무것도 없는 대부분 서민들도 노가다라는 접근이 쉬운 일자리를 통해서 일정한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그러니까 말 그대로 할 짓 없으면 노가다나 한다는 말이 실제 현실이 되고는 했다는 것이다. 하루나 이틀 일을 공쳐도 어쩌다 하루 일을 나가면 그만큼의 벌이는 보장받을 수 있었다. 자기가 열심히만 하면 어떻게든 노가다를 통해서 자식들도 공부시키고 변변치는 않지만 자기 집도 아주 불가능한 꿈만은 아니었다. 기업은 기업대로 부동산 투자로 부족한 기술로 인한 상품생산과 판매 과정에서의 손실을 벌충하고 더불어 더 큰 이익을 위해 권력에 댈 수 있는 수입도 챙길 수 있었다. 서민들 또한 서민들대로 그를 통해 아쉬울 때 어떻게든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일자리를 가질 수 있었다. 그렇게 1990년대까지 한국경제는 성장해 온 것이었다. 기업들도 성장해 온 것이었다. 그래서 부동산불패의 신화도 생겨난 것이었다. 부동산이 있었기에 한국경제도 여기까지 성장했고 부동산이 가라앉으면 한국경제도 함께 가라앉는다. 부동산이 망하면 한국 경제도 끝나는 것이다. 바로 지금 보수언론과 경제지들이 부동산에 대한 강한 규제정책에 경기를 일으키는 이유다.

 

대기업 입장에서 부동산 경기가 살아야 건설을 통해 더 많은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 그리고 당연히 그런 과정에서 언론들에도 광고비 등으로 상당한 현금이 흘러간다. 더불어 개발계획을 사전에 입수할 수 있다면 언론이나 공무원이나 한 다리 걸쳐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건설을 통해 이익이 생기면 그 돈은 또 어디로 흘러가겠는가. 건설회사를 통해 만들어진 비자금이 마지막으로 흘러들어가는 곳은 결국 개발계획을 세우고 결정도 할 수 있는 주체일 것이다. 사실 제대로만 된다면 그렇게 나쁘다고만 볼 수 없을 것이다. 어찌되었거나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도 얻고 일정산 수입도 확보할 수 있었으니까. 다만 지속적으로 더 큰 이익을 얻으려다 보니 부동산 가격이 더이상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까지 오르게 된 것이 문제였다.

 

더이상 도시의 임금노동자들이 월급만 모아서 집을 사기란 불가능해지는 시기가 오고 말았다. 어지간히 고소득 직종이 아닌 이상 자식까지 낳아 기르며 돈을 모아 집을 산다는 것은 그냥 망상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래서 빚을 내도록 했다.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라. 최경환이 노골적으로 그렇게 정책을 펴기는 했지만 이전부터도 부동산을 지탱하는 것은 이미 부동산과 미래의 소득을 담보로 한 가계의 대출이었다. 그래도 대출을 받아서라도 집을 사면 일단 가격은 오를 테니까. 가격이 오르면 빚을 갚고도 어느 정도 이익이 남을 테니까. 그리고 그를 미끼로 더 많은 대출을 받게 하고 더 비싼 값에 아파트를 팔아치우려 한다. 악순환이었다. 그 결과 아파트 가격은 끝도 없이 오르고 그만큼 가계대출도 위험한 수준으로까지 늘어나게 되었다. 이래서는 안되겠다. 정부가 강력하게 아파트 가격을 안정화시키는 대책을 내놓은 이유였다. 하지만 아파트 가격이 오르지 않으면 건설사도 거기에 이익이 묶인 언론인이나 고위공무원에게도 문제가 생긴다.

 

규제를 풀라. 금리를 내리라. 화폐가치를 재조정하라. 그리고는 줍줍이니 하는 말로 대중을 선동한다. 아파트를 더 비싼 값에 사라. 로또분양이라더니 결국은 건설사들이 이익을 더 크게 남기고 더 비싼 값에 파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앞으로 오를 테니까. 장차 더 비싼 값에 팔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까 지금 더 비싼 값에 더 많은 이익까지 더해 자신들이 소유한 부동산을 사라. 언론의 경제와 부동산에 대한 기사를 보면 이런 일관성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예 분양가에 대한 규제까지 내놓게 된 것이었다. 난리가 난 것이다. 이러다 진짜 망하겠다.

 

그러고보면 한국 기업들이 기술개발이나 경쟁력 강화에 소극적이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을 것이다. 굳이 비싼 돈 들여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지 않더라도 부동산으로 그보다 더 큰 돈을 더 쉽게 벌어들일 수 있다. 경쟁력 같은 것에 굳이 신경쓰지 않아도 건설개발을 통해 더 안정적으로 돈줄도 확보할 수 있다. 그래서 더 저 발광들인 것이다. 부동산이 없으면 기업도 한국경제도 없다. 그렇게 믿고 있다. 당사자인 언론과 공무원 자신까지.

 

기업이 열심히 기술개발해서 좋은 상품을 해외에 팔아 돈을 벌어들이는 그런 이상적인 그림같은 것은 당시 권력과 언론이 만들어난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의 중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되도 않는 부실한 제품들을 어쩔 수 없이 싼값에 내다 팔며 그만큼을 정책적으로 대출과 부동산을 통해 보전해준다. 그런 정부의 지원과 배려에 힘입어 기업가들은 막대한 비자금과 함께 지금까지 성장해 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반기업정서인 것이다. 정부가 뭐라도 기업들에게 크게 위해를 가하거나 해서 반기업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든 과거 노무현 정부는 그런 건설투자로 기업들 현금 채워주는 짓은 크게 자제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기업이 돈 벌 수 있게 해달라. 안타까운 것은 그런 관성에서 벗어난 기업들일수록 지금더 잘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기업일수록 더욱 과거의 관성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경제는 위기여야 하고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것이 저들이 주장하는 이유인 것이다.

 

당장 보라. 야당과 언론이 내놓는 경제에 대한 대안이 무엇들인지. 경제가 위기라지만 어떻게 경제를 다시 살리겠다는 것인가. 사실 지금도 정부가 그러려고 마음만 먹으면 경제성장률을 최대 1%까지는 어떻게든 올릴 수 있다. 그래서 남는 것이 무엇인가. 그를 통해 한국경제가 얻게 될 이익이 무엇인가. 과거 이명박근혜 정부 당시의 경제지표를 애써 감추려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 먼 이야기도 아니다. 나도 멀쩡히 기억하고 있으니. 한심한 것이다.

아마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을 테지만 내가 군대 있을 때 병사들끼리 입버릇처럼 흔히 하는 말이 있었다. 어차피 위병소 나가면 다 아저씨다. 중대장이고 대대장이고 심지어 사단장 군단장 참모총장까지 일단 전역하고 나면 그냥 상관없는 아저씨에 지나지 않는다. 그야말로 국민개병제의 본질을 꿰뚫는 한 마디일 것이다. 시민으로서 징집되어 의무를 마치면 다시 시민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당시도 지휘관들이 병사들을 상대로 연설을 할 때 거의 빠지 않고 나오던 말이 병역을 마치면 다시 사회로 돌아가 국가를 위해 이바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치지 않고 건강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 당장은 일병 상병이지만 군대 오기 전 혹은 대학생이었고 혹은 직장인이었으면 혹은 자기 사업을 하던 사람이었을지 모른다. 군대를 제대하면 각자 자기 분야에서 국가를 위해 사회를 위해 역할을 하게 될 사람들이다. 몸 건강히 무사히 의무를 마치고 사회로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야 말로 지휘관인 자신들의 의무다.

그러고보면 역사상 많은 군대들에서 군기와 관련한 전통이나 문화 같은 것들이 각 군대가 속한 사회의 그것에 비례하고 있기도 했었다. 이를테면 시민의 권리가 높고 그런 시민을 대상으로 징집한다면 병사들에 대우도 무척 조심스럽지만, 시민의 지위가 낮고 심지어 징집도 아닌 모병이라면 계급이 낮은 병사들을 함부로 대하는 빈도가 높았다. 같은 추축국이었지만 독일과 일본의 병영문화가 달랐던 것이나 같은 연합국이었음에도 영국과 소련의 그것 또한 전혀 달랐던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시민사회가 그래도 성숙해 있었던 유럽국가들에 비해 소련이나 일본은 아직 그런 수준에까지 이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면 과연 우리나라는 어떨까? 그래서 과거 군지휘관이라는 것들이 개자식들이라 말하는 것이다. 진짜 개아들놈이고 개아비들이다. 과연 같은 국민이라고, 같은 존엄과 권리를 갖는 존재라고 여겼다면 그렇게 함부로 대하고 했었을까? 백선엽의 동생인 백인엽은 아예 재판도 없이 길에서 권총을 쏘아 즉결처분으로 부하를 살해하고는 했었다. 그래도 나라를 지키겠다고 모인 국민들을 물자를 빼돌려 굶주림과 추위로 내몬 끝에 수십만의 목숨이 사라지기도 했었다. 포로조차 없었다. 한국전쟁에서도 베트남전쟁에서도 공식적으로 한국군 포로는 없었다. 이름없이 죽어간 이들의 시신이라도 찾고자 하는 노력마저 빨갱이라던 김대중 정부 이전까지는 아예 생각도 않고 있었다. 이역만리에서 죽어간 병사들의 시신을 찾겠다고 막대한 비용을 들이고 외교적 노력을 아끼지 않는 미국과 비교되는 모습이다.  그냥 소모품이다. 마음대로 쓰고 버릴 수 있는 수단이고 도구다. 어차피 초기 한국군 장교 가운데 상당수는 조선인을 버러지취급하던 일본군이거나 만주군이었다.

첫단추를 잘못 꿴 탓이다. 조선을 멸시하던 친일파들이 군장교가 되어 그렇지 않아도 자신들을 곱지 않은 눈으로 보는 한국인들을 부하로 부리게 되었다. 가난하고 못배우고 아무 권력도 배경도 없는 누추한 주제들이 자신들의 지휘 아래 놓이게 되었다. 그렇게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도 조선인 출신 병사들을 가혹한 폭력으로 길들이려 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물려받아 아주 최근까지도 기껏 나라를 지키겠다고 끌려간 병사들은 사람취급도 제대로 받지 못했었다. 그나마 먹을 것도 부족해서 취사장에서 흘러나온 찌꺼기를 주워먹었다는 이야기는 부모세대에서 그냥 상식처럼 회자될 정도다. 최소한의 먹을 것과 입을 것조차 없이 그냥 우악스럽게 힘으로 찍어 눌러 명령에 복종하게만 했던 것이었다. 그나마 민주화 이후 조금 나아졌나 싶었더니 그것도 전통이라고 다시 기지개를 켜려 한다.

스스로 군인을 직업으로 선택한 이들이 아니었다. 군에 뼈를 묻으려 자발적으로 들어온 이들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징병제다. 스스로 원하지 않아도 국가가 필요에 의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일시적으로 제한하며 군인으로서 인신을 징발하여 사용한다. 물론 징발이란 상황이 종료되면 다시 돌려주어야 하는 대여의 개념에 가깝다. 소유가 완전히 국가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의무기간이 끝나면 다시 시민으로서의 모든 권리가 회복되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돌려줄 때까지 군은 최대한 최초의 상태와 같도록 유지할 책임을 가지는 것이다. 교육과 훈련을 포함한 모든 병영생활은 그것을 전제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런 위에 병사로서 최선의 전투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려면 돈이 드니까. 모든 장병이 특급전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야 지휘관으로서 너무 당연하다. 오히려 장병 개인으로서도 건강이 좋아지는 것이니 나쁜 것이라 할 수 없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혹시라도 그로 인해 다치거나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마저 침해당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그렇더라도 당사자의 동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하지만 과연 그를 위한 어떤 준비와 대비와 세심한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는가. 그래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정작 지휘부는 아무것도 하는 것 없이 오로지 장병들만을 자의로 설정한 목표로 내몰고 있었다. 다시 사회로 건강한 몸으로 돌아가야 할 이들을 자신들의 목표를 위해 일방적으로 다그치기만 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장병들이란 단지 부하들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그저 시키면 시키는대로 자신들이 원하는 목표를 위해 충실해야 하는 대상들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국민이기는 한가? 아니면 인간이기라도 한가?

뒤늦게 소식을 듣고 분노한 이유일 것이다. 같은 인간으로, 국가의 이름으로 지켜야 할 국민이며 시민이며 인간임을 알았다면 절대 그런 식으로 행동할 수 없었을 것이다. 먼저 묻고 동의를 구하고 최대한 모든 준비와 대비를 마친 다음 철저한 관리를 통해 안전하게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비용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시키면 해야 하니까. 명령하면 따라야 하니까. 그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정작 병사들이 주특기교육을 받을 시간조차 없이 체력단련에만 매달리게 해서, 오히려 그로 인해 몸과 마음이 지치고 심지어 부상까지 당하게 하면서 이루고자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그러면 군기가 엄정해지고 군사력도 강해지는가. 주특기란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전문적인 훈련을 뜻하는 것이다. 대검들고 뒤엉켜 싸우는 그런 시대의 전투를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평가할 가치조차 없다. 혹시 모르겠다. 수십년 전 사람이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던 시절이라면 참군인이라 여겨질지도. 그나마 사람만을 수단으로 도구로 삼아 지탱하던 시절이었다면 훌륭한 지휘관으로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이고 시민이고 무엇보다 인간이었다. 과연 단지 징집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수단으로 도구로 소모되고 만 개인이 다시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인가. 단 한 사람이라도 그러지 못한 경우가 있다면 그 책임은 무거운 것이다. 국민을 위해 군이 존재하지 군을 위해 국민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딱 전두환 시절까지만 어울린다. 그만큼 막장인 시대였다. 이렇게나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치욕스럽다.

언론이, 정치권이, 기업과 공무원들이 저토록 하나가 되어 추경에 반대하고 금리인하를 주장하며 심지어 리디노미네이션까지 들먹이던 이유는 오직 한 가지다. 부동산을 띄우자. 어떻게든 부동산 경기를 살리자. 그래서 당장 내가 소유한, 그리고 내가 지을 아파트의 가격을 올려서 돈을 벌어보자. 아니 그보다 어떻게 해도 안될 것 같으면 차라리 가격 좋을 때 얼른 팔아서 최악의 상황을 면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줍줍이라고 한다. 사실 무순위청약이란 그렇게 크게 의미가 없는 것이다. 무순위청약이란 자체가 리스크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 그냥 청약 넣어 놓고 조건이 안맞는다 싶으면 계약을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대신 그렇게 청약에 당첨되어 이미 아파트가 있는데 다시 아파트가 늘어나면 바로 종부세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과연 청약에 당첨됐다고 지금처럼 규제가 심한 상황에 아파트 가격이 얼마나 오를지도 확실치 않은 상황에 만만치 않은 종부세까지 맞게 된다. 그래서 불과 재작년 모든 언론들이 똘똘한 한 채를 부르짖었던 것 아니던가.

 

하지만 워낙 언론들이 한 목소리로 분위기를 띄운 탓일까. 부동산 가격이 들썩이고 있다. 아파트 가격이 오르고 있다. 하락은 끝났다. 앞으로 계속 오르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당장 자칭 서민들부터 안달하기 시작한다. 지금 아파트를 사지 않으면 다시 돈 벌 기회는 없을 것이다. 지금 당장 빚을 내서라도 아파트를 사두지 않으면 더이상 자신들에게 기회란 없을 것이다. 정부의 부동산대책을 비판한다. 서민을 죽이는 정책이다. 서민이 돈을 벌 수 있는 사다리를 걷어차는 정책이다. 다시 부동산 규제를 풀고 아파트 값이 오르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 진짜 서민인가는 모르겠다. 다만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최근 부쩍 늘고 있다.

 

아마 바람잡이들일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그런 바람잡이들에 넘어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대부분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지금은 때가 아니니 기다리라 말하는데도 굳이 싸지도 않은 가격에 아파트를 사려는 사람들이 있다. 믿고 있는 것이다. 아파트 값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아파트 값은 앞으로도 계속 오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설사 능력이 되지 않더라도 반드시 사야만 한다. 참여정부도 여기에 당했었다. 아파트 가격이 오르면 분노하다가도 오히려 아파트 가격을 잡으려 하면 마치 자기 주머니돈을 빼앗아가는 양 분노하던 서민들에 의해서. 그것을 의도하는 것이 언론, 기업, 정치인, 공무원 기타등등이다. 그래야 자기들이 돈을 벌 수 있다.

 

지난 정부에서 해 오던 일들이다. 이명박 정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경제성장률을 지탱한 것은 오로지 건설투자였었다. 그 가운데서도 아파트건설이었었다. 가계에서 막대한 빚을 내서 비싼 아파트를 산 결과 건설사와 땅주인과 투기꾼들만 돈을 벌고 있었다. 그 투기꾼들의 정체를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금 아파트 가격을 띄우려 안달하는 그들과 얼마나 다른가. 그러니까 추경 필요없다. 금리 낮춰야 한다. 리디노미네이션으로 화폐가치를 떨어뜨려야 한다. 결론은 부동산으로 경기를 부양하고 대출 쉽게 받고 현물가치를 높이는 인플레이션을 일으켜야 한다. 넘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서민들이기 때문이다. 저들이 먼저 돈을 벌고 그 뒤를 따라 설거지를 한다.

 

하여튼 아파트 가격 떨어뜨리는 것이 반서민정책이라니. 과도하게 대출을 이용해서 다수의 부동산을 매점하고 시장을 교란하는 이들을 견제하기 위한 대출규제가 서민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정책이다. 어제까지 위험한 수준의 가계부채를 걱정하고 있었다. 여전히 늘고 있는 가계부채를 이유로 정부를 비판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돈을 벌 수 있게 대출규제를 풀고 부동산 규제를 풀라. 다행히 아직 다수는 아닌 것 같지만.

 

그냥 이익공동체인 것이다. 언론이든 기업이든 정치인이든 공무원이든. 공무원 출신 임명직 후보자들의 재산내역을 한 번 보라. 그래도 공무원 가운데 승진시켜서 장관이라도 시키려 하면 바로 걸리는 것이 부동산이다. 언론은 다를까. 대부분 재벌들은 건설사를 계열사로 거느리고 있다. 정치인은 어떨까. 그리고 서민이란 그들이 만든 질서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이미 많은 서민들이 그 매트릭스를 깨고 현실을 직시하고 있을 테지만. 재미있는 현상이었다.

그냥 간단히 주변에서 정년을 맞아 직장을 그만두는 사람들 나이를 떠올려보면 될 것이다. 법으로 정해지기는 60세까지일 텐데 대부분 50대 중반 쯤 정년을 맞고는 한다. 그러면 정년을 맞아 퇴직하고 사람들은 무엇을 할까?

 

그래서 그동안 써왔던 자영업자의 문제와도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냥 모아놓은 돈에 퇴직금에 연금 받아서 그저 집에서 취미생활이나 하며 지내면 될 텐데 아직 한국사회에서는 그것이 안된다. 높은 사교육비용에 자식 기르느라 모아놓은 돈도 얼마 없고, 퇴직금과 연금에 기대서만 살기에는 장래도 불안하다. 그래서 마냥 손놓고 놀수만 없으니 선택하게 되는 것이 바로 자영업이다. 평생 월급 받으며 직장생활만 하던 사람이 선택한 자영업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동네에도 편의점이 하나 있다. 사장이 정년퇴직을 하고 퇴직금 받아서 차린 것이다. 바로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같은 프랜차이즈의 편의점이 하나 들어서 있다. 조금 범위를 넓히면 집에서 10분 거리 안에 7개나 되는 편의점이 자리하고 있다. 대개 정년퇴직하고 시작하는 자영업이란 이런 것이다. 별다른 전문적인 지식이나 경험도 없고, 당연히 기술 같은 것도 없다. 그래서 가장 만만한 것이 당시 유행하는 프랜차이즈인 것이다. 자영업에 필요한 지식도 경험도 기술도 심지어 대중이 인지할 수 있는 브랜드까지 대신 제공해준다. 문제는 그런다고 과연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어째서 자영업자의 폐업률이 그토록 높은 것인가. 당연하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인상과 관련한 논란에서도 드러난 바 있지만 한국사회는 세계적으로도 자영업자의 비율이 유독 높은 나라 가운데 하나다. 인구도 한정되어 있고 소득도 성장한다지만 정해져 있는데 그를 상대로 매출을 올려야 하는 소비성 자영업자의 비율만 유독 높다. 그래서 자영업의 수익성도 낮고 그래서 상당수가 영세한 수준을 면하지 못한다. 결국에 폐업하고 마는 자영업자의 수도 해마다 상당할 정도다. 고개만 돌리면 보이는 것이 죄다 치킨집인데 도대체 치킨집들은 어디다 얼마나 팔아서 이익을 남기는 것인가. 그런데도 언제까지 멀쩡히 이익을 남기며 사업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인가. 하긴 그나마 치킨 팔아서 가족을 부양하고 아이들까지 가르치려면 더 힘들어졌을 것이다.

 

굳이 자영업이 아니더라도 나이 먹고 취직할 수 있는 일자리라는 것이 안정적이기도 급여가 충분하기도 쉽지 않다. 노인들이나 하는 일로 여겨졌던 경비원마저 최근에는 40대 이상도 그다지 선호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당장 구인광고를 보더라도 은퇴할 나이의 50대 이상까지 대상으로 하는 일자리란 거의 찾기 불가능하다. 하물며 안정적이고 수입도 많은 일자리는 그냥 없다고 보면 된다. 자영업을 따로 해 본 적도 없고 제대로 된 일자리도 찾지 못한 퇴직자들의 경제상황이란 그렇다면 과연 어떨 것인가. 사업소득도 줄고 임금소득도 줄었는데 그러면 자산가치는 그대로일 것인가.

 

인구구조의 변화에 따른 가계소득의 변화에 대한 단순한 도식일 것이다. 50대 이상의 인구가 늘었다. 다시 말해 정년을 앞뒀거나 이미 정년을 맞은 인구의 수가 늘어났다. 그러면 그동안 다니던 안정적인 직장에서 나온 이후 퇴직자들의 삶과 그들의 경제환경은 어떻게 바뀌어갈 것인가. 소득분위에서 하위 20%를 차지하는 가구에서 가장의 평균연령이 63세가 넘어간다는 사실을 유념해 봐야 한다는 이유다. 이를 중요하게 눈여겨 본 전문가가 겨우 손으로 꼽을 정도라는 것이 한국사회의 수준을 말해준다 할 것이다. 언제부터 50대 이후, 심지어 60대 이후의 고연령자들이 안정적으로 고소득을 누리며 풍요롭게 살았었는가. 고령화가 가속화된다는 것은 그런 경제적으로 열악한 처지의 사람들이 갈수록 더 늘어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정작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는 이들은 그런 세대들을 위한 일자리정책마저 부정한다. 정부가 세금으로 노인일자리를 만든다. 그러니까 언제부터 노인들이 자유롭게 시장에서 일자리를 구했느냐고.

 

그냥 핑계가 아니다. 실제 현실이다. 나이 먹으면 진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나이 40만 넘어도 구인광고 보면 갈 수 있는 자리가 겨우 손으로 꼽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더 급여도 적고, 노동조건도 열악하고, 심지어 현재의 거주조차 유지할 수 없는 그런 일자리가 거의 대부분이다. 그런 상황은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 가속화된다. 고령화사회란 그런 의미인 것이다. 알면서도 무시하거나 아니면 아예 알려고 하지 않거나. 지금 기사를 쓰고 있는 기자새끼들도 나이 쳐먹으면 어차피 비슷한 상황일 것이란 뜻이다. 하긴 그래서 취재원 협박해서 돈이나 뜯고 그 돈으로 부동산 사서는 가짜기사나 써대는 것이겠지만. 기자일 때 벌어놔야 나이 먹어서 아쉬운 소리 않는다.

 

고연령인구의 수가 늘면 경제적 빈곤층도 따라서 늘게 된다. 사업소득도 임금소득도 줄어든, 그로 인해 자산마저 줄어든 저소득층의 인구가 갈수록 늘어갈 수밖에 없다. 이를 대비해야 하는데 오히려 그것을 막아서고 있다. 전문가란 것들이. 언론이란 것들이. 그리고 국민 자신들이. 무지하거나 혹은 사악하거나.

 

어째서 정부는 굳이 세금까지 써가며 고령자들을 위한 일자리를 늘리고 있는 것인가. 굳이 그래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모두가 이어진다. 자영업 문제며 최저임금 문제까지. 그래서 경제다. 알아야 하는 것들만 모른 체 한다. 역겹다.

지난 4월 10년만이라던 경상수지적자 가운데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49억달라가 넘는 주식배당수지다. 한 마디로 한국 국민이 외국에 투자해서 벌어들인 배당소득에 대한 외국인들이 한국 기업에 투자해서 벌어들인 배당소득의 수지다.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배당소득으로 가져가는 소득이 딱 50억 달러에서 1000만 달러 모자른 49억 9천 달러다. 뭔 말인가. 세계화 시대에 한국 기업이 돈을 벌면 한국기업에 투자한 외국인도 돈을 번다.

 

그러니까 소득주도성장에 대해 보수언론과 정치인, 지식인들이 반대하는 진짜 이유라는 것이다. 실제 경제신문 1면에 나기도 했었다. 기업의 순이익이 줄었다. 소득주도성장으로 노동자의 임금도 늘고 하청기업에 지불해야 할 비용도 늘어나니 기업들의 순이익이 전년에 비해 크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국가주의적인 관점에서 그 기업들에 투자한 주주 가운데 또한 상당수가 외국인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작년 결산을 마치고 배당을 하는데 무려 50억 달러에 가까운 돈이 외국으로 빠져나갔다. 그냥 순익 줄이고 노동자의 임금으로 지급했으면 한국에 남았을 돈이다.

 

그러고보니 경상수지 적자를 줄이는 방법도 간단하다. 기업의 순익을 낮추고 배당을 줄이면 당연하게 본원소득수지가 개선되며 경상수지적자도 줄어들 것이다. 사실 경상수지 적자라지만 수출이 줄어든 상태에서도 무역은 여전히 흑자다. 해외로 빠져나가는 돈이 더 많다. 그 돈 만큼 차라리 더 많은 인력을 고용하고 임금과 복지를 높여줌으로써 내국인인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몫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한다. 그러면 경상수지적자가 그만큼 해소되겠지.

 

말장난인 것이다. 오히려 본질을 흐리고 있다. 이미 한국 기업들의 주요대주주 가운데 외국계 자본이 적지 않으며 한국 기업의 이익은 또한 그같은 외국계 자본들의 이익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저 한국 기업이 더 많은 이익을 올리면 한국기업에도 좋다. 한국 기업에 좋으면 한국에도 좋다. 하지만 그 순익 가운데 상당수는 외국으로 흘러간다. 외국계 자본과 한국 노동자 과연 누구에게 그 이익이 돌아가야 할까. 그래서 한 편으로 계급이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외국계 자본의 이익이 같은 한국인 노동자의 이익보다 더 중요하다. 그것이 한국 경제를 걱정하는 언론과 정치인들의 진짜 속내다.

 

한국 국민 개인들에 직접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한국경제에도 이익이다. 한국이라는 나라에도 이익이다. 생각을 바꿀 때가 되었다. 무려 49억 9천만 달러다. 순수하게 빠져나간 돈만이 아닌 들어온 것보다 더 많이 나간 돈만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상수지적자다. 이것만 아니었어도 6억 정도의 적자는 충분히 흑자로 돌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도 나라경제 나라경제 하길래 국가주의적으로 해석해 봤다. 의미가 없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