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을 테지만 내가 군대 있을 때 병사들끼리 입버릇처럼 흔히 하는 말이 있었다. 어차피 위병소 나가면 다 아저씨다. 중대장이고 대대장이고 심지어 사단장 군단장 참모총장까지 일단 전역하고 나면 그냥 상관없는 아저씨에 지나지 않는다. 그야말로 국민개병제의 본질을 꿰뚫는 한 마디일 것이다. 시민으로서 징집되어 의무를 마치면 다시 시민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당시도 지휘관들이 병사들을 상대로 연설을 할 때 거의 빠지 않고 나오던 말이 병역을 마치면 다시 사회로 돌아가 국가를 위해 이바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치지 않고 건강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 당장은 일병 상병이지만 군대 오기 전 혹은 대학생이었고 혹은 직장인이었으면 혹은 자기 사업을 하던 사람이었을지 모른다. 군대를 제대하면 각자 자기 분야에서 국가를 위해 사회를 위해 역할을 하게 될 사람들이다. 몸 건강히 무사히 의무를 마치고 사회로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야 말로 지휘관인 자신들의 의무다.

그러고보면 역사상 많은 군대들에서 군기와 관련한 전통이나 문화 같은 것들이 각 군대가 속한 사회의 그것에 비례하고 있기도 했었다. 이를테면 시민의 권리가 높고 그런 시민을 대상으로 징집한다면 병사들에 대우도 무척 조심스럽지만, 시민의 지위가 낮고 심지어 징집도 아닌 모병이라면 계급이 낮은 병사들을 함부로 대하는 빈도가 높았다. 같은 추축국이었지만 독일과 일본의 병영문화가 달랐던 것이나 같은 연합국이었음에도 영국과 소련의 그것 또한 전혀 달랐던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시민사회가 그래도 성숙해 있었던 유럽국가들에 비해 소련이나 일본은 아직 그런 수준에까지 이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면 과연 우리나라는 어떨까? 그래서 과거 군지휘관이라는 것들이 개자식들이라 말하는 것이다. 진짜 개아들놈이고 개아비들이다. 과연 같은 국민이라고, 같은 존엄과 권리를 갖는 존재라고 여겼다면 그렇게 함부로 대하고 했었을까? 백선엽의 동생인 백인엽은 아예 재판도 없이 길에서 권총을 쏘아 즉결처분으로 부하를 살해하고는 했었다. 그래도 나라를 지키겠다고 모인 국민들을 물자를 빼돌려 굶주림과 추위로 내몬 끝에 수십만의 목숨이 사라지기도 했었다. 포로조차 없었다. 한국전쟁에서도 베트남전쟁에서도 공식적으로 한국군 포로는 없었다. 이름없이 죽어간 이들의 시신이라도 찾고자 하는 노력마저 빨갱이라던 김대중 정부 이전까지는 아예 생각도 않고 있었다. 이역만리에서 죽어간 병사들의 시신을 찾겠다고 막대한 비용을 들이고 외교적 노력을 아끼지 않는 미국과 비교되는 모습이다.  그냥 소모품이다. 마음대로 쓰고 버릴 수 있는 수단이고 도구다. 어차피 초기 한국군 장교 가운데 상당수는 조선인을 버러지취급하던 일본군이거나 만주군이었다.

첫단추를 잘못 꿴 탓이다. 조선을 멸시하던 친일파들이 군장교가 되어 그렇지 않아도 자신들을 곱지 않은 눈으로 보는 한국인들을 부하로 부리게 되었다. 가난하고 못배우고 아무 권력도 배경도 없는 누추한 주제들이 자신들의 지휘 아래 놓이게 되었다. 그렇게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도 조선인 출신 병사들을 가혹한 폭력으로 길들이려 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물려받아 아주 최근까지도 기껏 나라를 지키겠다고 끌려간 병사들은 사람취급도 제대로 받지 못했었다. 그나마 먹을 것도 부족해서 취사장에서 흘러나온 찌꺼기를 주워먹었다는 이야기는 부모세대에서 그냥 상식처럼 회자될 정도다. 최소한의 먹을 것과 입을 것조차 없이 그냥 우악스럽게 힘으로 찍어 눌러 명령에 복종하게만 했던 것이었다. 그나마 민주화 이후 조금 나아졌나 싶었더니 그것도 전통이라고 다시 기지개를 켜려 한다.

스스로 군인을 직업으로 선택한 이들이 아니었다. 군에 뼈를 묻으려 자발적으로 들어온 이들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징병제다. 스스로 원하지 않아도 국가가 필요에 의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일시적으로 제한하며 군인으로서 인신을 징발하여 사용한다. 물론 징발이란 상황이 종료되면 다시 돌려주어야 하는 대여의 개념에 가깝다. 소유가 완전히 국가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의무기간이 끝나면 다시 시민으로서의 모든 권리가 회복되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돌려줄 때까지 군은 최대한 최초의 상태와 같도록 유지할 책임을 가지는 것이다. 교육과 훈련을 포함한 모든 병영생활은 그것을 전제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런 위에 병사로서 최선의 전투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려면 돈이 드니까. 모든 장병이 특급전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야 지휘관으로서 너무 당연하다. 오히려 장병 개인으로서도 건강이 좋아지는 것이니 나쁜 것이라 할 수 없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혹시라도 그로 인해 다치거나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마저 침해당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그렇더라도 당사자의 동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하지만 과연 그를 위한 어떤 준비와 대비와 세심한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는가. 그래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정작 지휘부는 아무것도 하는 것 없이 오로지 장병들만을 자의로 설정한 목표로 내몰고 있었다. 다시 사회로 건강한 몸으로 돌아가야 할 이들을 자신들의 목표를 위해 일방적으로 다그치기만 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장병들이란 단지 부하들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그저 시키면 시키는대로 자신들이 원하는 목표를 위해 충실해야 하는 대상들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국민이기는 한가? 아니면 인간이기라도 한가?

뒤늦게 소식을 듣고 분노한 이유일 것이다. 같은 인간으로, 국가의 이름으로 지켜야 할 국민이며 시민이며 인간임을 알았다면 절대 그런 식으로 행동할 수 없었을 것이다. 먼저 묻고 동의를 구하고 최대한 모든 준비와 대비를 마친 다음 철저한 관리를 통해 안전하게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비용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시키면 해야 하니까. 명령하면 따라야 하니까. 그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정작 병사들이 주특기교육을 받을 시간조차 없이 체력단련에만 매달리게 해서, 오히려 그로 인해 몸과 마음이 지치고 심지어 부상까지 당하게 하면서 이루고자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그러면 군기가 엄정해지고 군사력도 강해지는가. 주특기란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전문적인 훈련을 뜻하는 것이다. 대검들고 뒤엉켜 싸우는 그런 시대의 전투를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평가할 가치조차 없다. 혹시 모르겠다. 수십년 전 사람이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던 시절이라면 참군인이라 여겨질지도. 그나마 사람만을 수단으로 도구로 삼아 지탱하던 시절이었다면 훌륭한 지휘관으로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이고 시민이고 무엇보다 인간이었다. 과연 단지 징집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수단으로 도구로 소모되고 만 개인이 다시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인가. 단 한 사람이라도 그러지 못한 경우가 있다면 그 책임은 무거운 것이다. 국민을 위해 군이 존재하지 군을 위해 국민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딱 전두환 시절까지만 어울린다. 그만큼 막장인 시대였다. 이렇게나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치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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