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더듬어보자. 지난 2월 대구에서 신천지를 시발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할 당시 정의당 대표 심상정은 대통령 탄핵까지 언급하고 있었다. 어차피 너희는 대통령 탄핵을 못 막는다. 자신감이었을 것이다. 이대로 코로나19가 크게 확산되면 정부와 민주당의 지지율은 추락할 것이고 총선에서도 참패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미래통합당과 손잡고 민주당내 반문세력과 연대해서 대통령을 탄핵시키고 새로운 정권을 출범시킬 것이다.

 

마침 기회도 좋았다. 미래통합당은 여전히 지리멸렬한 상태였고 현직 대통령을 탄핵하고 새로운 정권을 세우기 위해서는 정의당의 협력이 어느때보다 필요한 상태였었다. 정의당이 잘만 협력하면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19로 지지율이 추락할 민주당을 더욱 궁지로 내몰아 미래통합당이 총선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둘 수도 있었던 것이었다. 대신 미래통합당이 지역구선거에서 승리하도록 돕는 대가로 비례투표와 이후 새로운 정부에서 정의당의 지분을 인정받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정의당의 계산과 달리 코로나19의 확산이 너무나 빠르게 잡히면서 오히려 정부와 여당의 지지율만 올려주고 말았다. 어떻게든 민주당의 의석을 줄여보려 발악했음에도 친민주당 성향의 의석까지 모두 더하면 180석이 넘는 그야말로 유례없는 압도적 승리를 거두고 있었다. 과연 정의당의 속마음이 어떻겠는가.

 

정의당 입장에서 맺힌 한과도 같은 것이다. 코로나19만 아니었다면. 코로나19만 그렇게 빨리 잡히지 않았다면. 코로나19가 당시 모두가 예상했던대로 더 크게 확산되어 나라 전체가 위험해졌더라면. 망령이란 과거의 한을 여전히 부여잡고 지금에라도 이루고자 하는 집착을 일컫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다시 코로나19가 크게 확산된다면. 코로나19가 크게 확산되어 사람이 수도 없이 죽어나가고 나라 경제까지 절딴나게 된다면. 그러면 다시 정부와 여당의 지지율은 폭락할 테고 혹시라도 민주당 내부의 반란표만 이끌어낼 수 있다면 미래통합당과 함께 대통령 탄핵도 노려 볼 수 있지 않을까. 대통령 탄핵을 주도한 정당으로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지 않겠는가.

 

집회의 자유라는 건 그냥 명분이다. 국민 한 사람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나라 전체를 파멸로 내몰 수 있는 전쟁까지 불사해야 한다는 주장처럼, 집회의 자유를 위해서 전국민을 코로나19의 위험에 노출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왜이겠는가. 그래야 문재인 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으니까. 민주당을 무너뜨릴 수 있으니까. 그래야지만 정당한 집권자인 보수세력이 정권을 잡은 아래에서 자신들도 올바로 진보적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미 그러기로 약속했는데 한 번 좌절되었으니 다시 그 약속을 이루기 위한 시도는 해 봐야 하는 것이다. 대통령을 탄핵하고 민주당을 해산하고 보수와 자기들 진보가 모든 것을 나누어 가진다.

 

이미 MBC PD수첩을 통해 당시 검찰의 의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상황이란 것이다. 그러면 검찰 혼자만 그런 계획을 가지고 있었을까? 하필 당시 탄핵을 외치던 인물이 셋 있었다. 하나는 심재철, 하나는 심상정, 그리고 다른 하나가 진중권이다. 진중권은 한겨레, 경향을 비롯한 자칭진보들과 연결된 인물이었다. 그리고 다시 그들이 하나가 되어 코로나19의 확산이 우려되는 상황에 태극기집회를 지지하고 나서고 있다. 우연이겠는가.

 

전쟁까지 불사해야 한다는 것이나, 코로나19의 확산도 감수해야 한다는 이 모든 것이 정의당과 자칭 진보의 절박한 인식과 목표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누구와 무엇을 위해 연대하며 그렇기 때문에 누구와 적대해야만 하는가. 궁극적으로 누구를 죽이려 하고 있는가. 대놓고 정경심 죽으라 하고 있는 중이란 것이다. 조국도 죽고, 윤미향도 죽고, 다 죽으라. 차라리 저주에 가깝다. 저런 것들이 과연 진보이기는 한가. 원래 저런 것들이었다. 새로울 것도 없다.

기득권이 기득권인 이유는 이미 그들이 한 사회의 주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득권을 가진 이들이 주류로써 한 사회의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기에 보수는 강한 것이다. 보수란 자체가 기존의 구조와 질서를 유지하자는 것이다. 기득권을 유지하자는 것이다. 반면 그 구조와 질서를 바꾸고자 하는 이들은 항상 소수로써 탄압받는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원래 약자에서 시작했거나, 기득권 가운데 변화를 주장하는 이들이 있어도 소수이기에 약자가 되어 버리거나. 그러면 어떻게 약자인 이른바 진보세력은 항상 역사에서 개혁과 심지어 혁명까지 이루어낼 수 있었던 것일까?

 

프랑스혁명 당시 같은 산악당에 속해 있었으면서도 로베스피에르와 당통, 마라, 에베르의 성향이나 지향은 모두 달랐었다. 심지어 당이 다른 라파예트나 베르니오, 브리소 등도 전혀 다른 목적과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러시아혁명을 일으킨 소비에트 또한 볼셰비키와 멘셰비키, 사회혁명당이라는 전혀 다른 성향을 가진 주체들의 연합이었다. 그리고 이들 소비에트는 혁명 초기 자신들의 적이라 할 수 있는 자본가와 지주들로 이루어진 임시정부와도 연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어째서였을까? 물론 혁명이 성공하고 그들은 서로 자신들이 추구하는 보다 선명한 지향을 위해서 다른 정파들을 숙청하며 권력을 독점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말하자면 과도적 연대였던 것이다. 일단 왕정을 무너뜨리기까지 서로 함께 손을 잡고 이후 각자 알아서 투쟁을 통해 승자를 가리자.

 

전국시대 소진이 주장한 합종이란 나머지 육국이 혼자서는 진을 막아내기 어려우니 여섯 나라가 힘을 합쳐 함께 진과 맞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진이 전국을 통일하고 각지에서 폭정에 항거하여 일어난 반란군들 역시 그래서 진을 무너뜨리기까지 목적을 함께하고 있었다. 그래서 진에 마지막까지 대항했던 초의 왕족인 회왕이 반진의 구심점 역할을 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물론 공동의 목표였던 진이 멸망하자 항우와 유방을 비롯한 각지의 세력들은 서로 자신의 목적을 위해 분열하여 싸우기 시작했다. 위라는 공동의 적을 상대하기 위해 삼국지에서 촉과 오가 서로 동맹을 맺은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상대가 강하면 약자끼리 손잡고 힘을 모아 함께 대항한다. 기득권이 기득권인 이유다. 아무리 시민들이 모두 거리로 쏟아져나와 물러나라 외쳐봐야 왕에게는 군대가 있었다. 파리와 모스크바를 제외하고도 고도로 발달한 국가조직이 왕정을 지탱하고 있을 터였다. 과연 자신들만의 힘으로 그 모두를 상대하여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인가.

 

물론 당장은 서로 성향도 지향도 다르다. 한 가지 사안에 대해서도 이해도 결론도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싸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싸움은 당장 눈앞에 있는 강적을 무너뜨리고 난 다음에 자기들끼리 결정낼 문제인 것이다. 나중에는 서로의 이해에 따라 대립하며 싸우더라도 당장은 국왕의 전제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귀족과 부유한 상인들이 함께 손잡고 국왕으로부터 받아냈던 마그나카르타도 그 한 예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일단 왕부터 꺾고 나서 자기들끼리의 문제는 자기들끼리 나중에 해결하자. 그래서 연대인 것이다. 그럼에도 서로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있기에 마지막에 서로 싸우기 전까지 강적을 물리치는 동안 함께 손잡을 수 있다. 거의 대부분 상대적으로 소수이고 약자였던 진보가 연대를 통해 사회의 변화를 꾀해 왔던 이유이기도 했다. 소수이고 약자인 진보도 연대를 통해 얼마든지 다수가 되고 강자가 될 수 있다. 내각제 아래에서 연정은 진보가 국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이기도 했었다.

 

과연 진보에게 공동의 적은 누구인가? 연대할 대상은 누구인가? 누구와 어느만큼 공통점이 있고, 따라서 서로 연대할 수 있을 만큼 접점을 가지는가? 재미있지 않은가? 저 중국공산당조차 혁명을 준비할 때는 그토록 서로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 아나키스트와 연대하려는 시도까지 하고 있었다. 그래도 군벌들보다야 아나키스트 쪽이 자기들과 더 가깝지 않겠는가. 노동, 인권, 환경, 평화, 자유, 평등, 젠더 등 여러 진보이슈들에 있어 보다 성향상 가깝고 그래서 함께 연대할 수 있는 대상이 제도권에 누가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보수라는 말조차 애매해지는 국민의힘인가? 아니면 그래도 한때 민주화운동이며 진보운동도 함께했던 민주당일 것인가? 그렇다면 연대를 통해 타도해야 할 공동의 적은 누가 될 것인가? 항상 진보적 가치들에 대해 적대적이던 여전한 기득권집단인 국민의힘일 것인가, 그를 바꾸려는 민주당일 것인가?

 

사실관계만 살짝 뒤집으면 답은 바로 나오는 것이다. 어째서 민주당이 공동의 목표가 되는 것인가? 어째서 민주당을 무너뜨리기 위해 국민의힘과 연대해야 하는 것인가? 즉 누구와 더 공통점과 접점이 많고 누구와 더 적대하는 관계인가? 그래서 말하지 않았는가? 진보가 아니라고. 그냥 진보를 자처하는 것이라고. 그러니까 자칭 진보라 부르는 것이다. 누구와 더 가까운가? 누구와 더 많은 것들을 공유하고 있는가? 그러니까 그 공통의 목표를 위해 타도해야 하는 최우선 적은 누구일 것인가? 그러면 그들이 주장하는 진보적 가치란 무엇을 위한 진보적 가치인가? 일단 수구집단의 기득권을 지키고 그 아래에서 허락을 얻어 이루어내는 진보인 것이다.

 

가만 몇 년 전으로 시간을 되돌려보라. 지금 정부만 욕하고 있는 자칭 진보들 상당수가 당시 보수정부 아래에서 열심히 강연도 다니면서 진보운동에 매진하고 있었다. 정부가 제발 들어주기를. 보수정부에서 제발 자기들 목소리를 들어주기를. 투쟁은 없었다. 연대도 없었다. 하소연만 있을 뿐이었다. 어째서 자기들 주장을 들어주지 않는가. 그런데 민주정부에서는 그조차도 없다. 진보운동 자체가 사라졌다. 맹목적인 정부에 대한 증오와 혐오와 경멸의 감정과 배설만이 존재할 뿐이다. 진중권이 앞장서서 욕먹으니 가려진 것이지 다른 자칭 진보 인사들이라고 다르지 않다. 저들의 정체성에 이념과 지향이 서로 다르더라도 정서적으로 더 가까운 것은 보수정당이라는 증거인 것이다. 그래서 차라리 민주당 2중대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국민의힘 2중대가 되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2중대는 이미 국민의당이 있으니 3중대 쯤 될 테지만 첩이라도 좋다는 애닲은 사랑의 고백인 것이다. 바로 진보의 정체다.

 

정상적이라면 자신들이 주장하는 진보적 가치들을 현실로 이루어내기 위해서 가까운 연대의 대상부터 찾아야 하는 것이다. 누가 자신들과 가장 가깝고, 그러므로 자신들이 추구하는 바를 최대한 근사치로 이루어내는데 함께 협력할 수 있을 것인가. 온전히 모두 이루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현실적인 한계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최대한 가깝게 이루기 위해 목표를 공유할 수 있는 대상을 찾아 어느 정도 양보하며 공동의 전선을 만들어간다. 그러니까 그 대상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누구에게 더 정서적으로 동질감을 느끼고 있는가. 누구를 더 가까운 연대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는가. 그것이 바로 진보의 정체성인 것이다. 민주당인가? 아니면 국민의힘인가?

 

전부터 말해 온 내용인 것이다. 한국 진보의 진보란 쟁취하는 진보가 아닌 윤허받는 진보라고. 보수권력으로부터 허락받고, 보수언론으로부터 용인받아서, 보수기득권의 묵인 아래 이루어지는 진보인 것이다. 보수가 인정하지 않는 진보는 진보가 아니다. 보수가 허락하지 않는 진보도 진보가 아니다. 자칭 진보와 민주진영이 갈리는 부분이다. 보수와 싸우려는가? 보수의 허락을 받아내려는가? 정확히 보수가 아닌 수구기득권이다. 저들의 기득권을 인정하는가? 인정하지 않는가? 수구기득권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전쟁도 불사해야 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도 철회되어야 한다. 최저임금인상도 근로시간단축도 모두 좌절되어야만 한다. 역시 내 짐작이 맞았다. 작년 패스트트랙정국 당시 정의당이 시간을 끈 것은 연동형비례대표제가 아닌 검찰의 수사가 청와대에 타격을 주어 검찰개혁 자체가 무산되기를 바란 것이었다.

 

아무튼 흥미로운 부분일 것이다. 물론 너무 오랜 이제는 익숙해진 이야기다. 한국 진보의 정체성은 어디에 있는가? 한국 진보의 정체성은 무엇을 지향하는가? 누구와 함께 하는가? 그래서 나는 그들을 절대 진보라 부르지 않는다. 자칭 보수처럼 자칭 진보라 부를 뿐이다. 더 명확해졌다. 수구기득권의 인정을 받기 위해 정의연을 공격하며 위안부의 역사를 버리는 그 장면에서부터. 민주당 2중대는 싫지만 국민의힘 2중대도 아닌 3중대조차 기꺼이 받아들인다. 오히려 영광이지 않을까. 원래의 본색이 드러난 것이다. 연대의 대상이 그 정체성을 말해준다. 당연한 사실이다.

태평양전쟁 당시 역사적인 미드웨이 해전을 앞두고 미국 정보당국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분명 일본 함대가 미드웨이를 목표로 진격 중인 것 같기는 한데 확신을 못하겠다. 혹시 모를 가능성을 대비해서라도 보다 확실한 정보가 필요하다. 자칫 부정확한 정보를 근거로 잘못 판단할 경우 엉뚱한 곳에서 힘만 빼고 정작 일본군의 공격을 무방비한 상태에서 맞게 될 수 있었다. 그래서 미끼를 뿌렸다. 일본이 자신들의 무전을 감청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용해서 역정보를 흘린 것이었다. 미드웨이에 식수가 부족하다. 그리고 일본은 멋지게 미국의 의도대로 그 미끼를 물고야 말았다.

 

정보전에서 역정보는 기본중에 기본이다. 상대가 자신들의 정보를 다양한 경로로 획득할 것을 전제로 함정을 파 놓는 것이다. 잘못된 정보를 근거로 오판을 유도하거나, 혹은 상대의 반응을 이용해서 상대가 정보를 획득한 경로를 역추적할 수 있다. 아예 작정하고 흘린 잘못된 정보이기에 정보를 획득한 경로는 당연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멀쩡히 살아있는데도 사살되었다 여기고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하거나, 혹은 시신을 훼손하지 않았음에도 훼손되었다면서 대응에 나서는 경우를 가정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 시신을 훼손했다면 어떤 식으로 훼손되었는가 구체적인 내용까지 알고 있다면 어디서 어떤 경로를 통해 정보가 새어나갔는가 유추할 수 있다. 만일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정확한 정보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무심코 주고받는 대화를 들은 정도라면 그렇게 상세한 내용까지 파악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분명 실시간으로 지근에서 감청한 것이다.

 

북한군의 무전을 듣고도 군이 바로 대응하지 않았던 이유였다. 첫째 실제 일어난 일인지 확신이 없었다. 북한이 의도적으로 한국군의 감청여부를 파악하고 이용하거나 혹은 대응하기 위해 흘린 역정보일 수 있었다. 자칫 북한이 의도적으로 흘린 역정보일 경우 괜한 성급한 대응으로 한국군의 감청사실만 북한에 알리고 마는 결과를 낳을 수 있었다. 아무리 뻔히 서로의 무전을 실시간으로 감청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도 그것을 실제로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인 것이다. 더구나 심지어 그렇게 북한이 역정보로 흘린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북한을 외교적으로 비난하거나 했을 경우 오히려 역공을 맞을 수 있었다. 불법적으로 자신들의 무전을 감청하는 것도 모자라서 자기들이 잘못 파악한 정보를 근거로 오히려 북한을 비난까지 하고 있었다. 아무리 국제사회에서 철저히 고립되어 있는 북한이라지만 상황이 그렇게 되면 명분상 꽤나 어려운 상황에 내몰릴 수 있다. 그러니 신중해야 한다.

 

확실히 언론이 편들어주니 편하다. 군이 애써 감추고자 했던 첩보자산을 언론에서 대놓고 떠들어도 비판하는 언론 하나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MBC 혼자 무엇이 문제인가 짚어주고 있을 뿐 공영방송이라는 KBS마저 같이 떠들면 떠들었지 그것이 얼마나 중대한 문제인가 지적도 비판도 하지 않는다. 한 시간이면 사실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렇게 쉬우면 첩보전이란 필요가 없다. CIA도 KGB도 다 의미가 없다. 국정원은 왜 있는가? 실시간으로 무전을 확보했어도 그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로를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가운데는 실제 북한 내부의 협력자 - 이른바 휴민트를 통한 추가적인 확인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다양한 경로를 통해 확보한 첩보들을 교차해서 철저하게 검증하고 나면 비로소 확실해진 정보를 근거로 다음 단계를 진행하게 되는 것이다. 한 사람의 생명 정도가 아닌 국가적인 이익이 걸린 사안인데 그렇게 허투루 허술하게 움직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언론이 개새끼라서 그렇다. 국민의힘은 그래도 된다. 돈을 3천억을 해 쳐먹든, 재산을 11억을 속이든,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훼손하든, 심지어 불과 몇 년 전 월북자를 사살하고 기념비까지 세웠던 사실마저 철저히 지운 채 의도적으로 여론을 몰아간다. 그래도 되니까 국민의힘은 그렇게 한다. 그래도 되는 것을 보니까 정의당도 자칭 진보들도 그대로 따라간다. 자칭 진보언론들도 보수언론이 쓰는대로 대세니까 그냥 우루루 몰려다닐 뿐이다. 박용진을 이해한다. 김해영도 이해한다. 현실이 이런데 언론이 얼마나 두렵게만 여겨지겠는가.

 

북한이 진짜 의도적으로 거짓 정보를 흘려서 한국의 정보력을 떠 본 것이라면 주호영이 제대로 넘어가 준 것이란 뜻이다. 의도적으로 한국이 감청하는 경로를 파악하기 위해 '연유'란 단어를 쓴 것이라면 제대로 그 경로를 확인시켜 준 것이다. 실제 무전 주파수를 비롯해 암호까지 모두 바꿨다고 한다. 이것 뚫으려면 다시 상당한 시간과 비용과 수고를 들여야만 한다고 전하고 있다. 누구를 위한 것인가? 확실히 현직 주사파와 전직 북한 고위외교관이 몸담고 있는 정당답다 할 것이다. 그러면 언론은? 정부가 싫으면 나라도 팔아먹을 수 있는 것인가.

 

주식 할 때도 마찬가지다. 찌라시로 돈다고 그대로 믿고 투자하는 멍청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있어도 일찌감치 돈 다 잃고 떨어져 나간지 오래다. 확인해야 한다. 어디가 좋다. 어디가 좋지 않다. 그러니까 어디를 사고 어디를 팔아야 한다 떠도는 말들을 액면 그대로 믿지 않고 한 번 더 의심한 뒤 확실해지면 돈을 움직인다. 주식할 때도 그래야 하는데 하물며 한 나라의 이해가 걸린 문제라면야. 그래도 사람의 생명이 우선 아닌가? 그러니까 진짜 지금 사람이 죽고 사는지 그것부터 확인하고 나서의 문제란 것이다. 너무 기본이라 설명하기도 애처롭기만 하다. 진짜 병신같다.

나라를 뒤집겠다고 반란을 일으켜 놓고도 혹시라도 조정에서 달래겠다고 관직이라도 내리면 바로 그것부터 앞세우는 이유는 동경인 것이다. 나라 좆같고, 관리들 똥같고, 지주들 벌레같은 건 알겠는데 그래도 나도 한 번 저렇게 살고 싶은 욕심이 있는 것이다. 왕후장상에 씨가 없으니 나도 한 번 왕이 되고, 제후가 되고, 장군이 되고, 재상이 되어 보겠다. 그러니까 아예 조정에서 관직을 주지 않으면 자기가 먼저 무슨 장군입네 하며 벼슬을 갖다 붙이며 행세하려 드는 것이다. 

 

하물며 무지렁이 백성들도 그런데 같은 지배층이면 어떨까? 조선말기 부패한 관리에 반발하여 민란이 일어나면 양반 출신의 유지들은 문제가 된 관리를 쫓아낸 뒤 가장 먼저 조정에 상소를 올려 오로지 왕에게 충성할 뿐 다른 마음이 없음을 강조하고 있었다. 자기는 여전히 양반이며 조선이라는 질서의 일부이고 오로지 왕에게 충성하는 신하일 뿐이란 것이다. 오히려 이를 기회로 조정에 자신을 알릴 수 있지 않을까 부질없는 기대를 가져 보기도 한다. 프랑스혁명이나 러시아혁명에서도 당시의 현실에 분노하여 일어난 귀족이나 부유한 상공인 등 특권층이 없지 않았는데 항상 태도는 일관되었었다. 단지 그동안의 잘못들을 바로잡으려는 것일 뿐 나라를 아예 근본부터 뒤집으려는 것은 아니다. 쫓겨난 왕에게 동정적이고 기득권을 잃은 귀족들에 온정을 베풀며 선을 넘으려는 혁명동지들을 제어한다.

 

말한 적 있을 것이다. 한국 진보들에게 정당한 대한민국의 지배자는 보수세력이라고. 처음에는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어느새 그렇게 길들여지고 말았다. 더욱 군사독재와 목숨까지 내걸고 맞서 싸우던 기억마저 희미한 세대에 이르면 노태우 이후로는 그냥 평범한 권위주의 보수정권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이 모든 질서를 만들고, 모든 정의를 정의하고, 당연하게 이 사회의 주류라 할 수 있는 인물들은 거의 보수정당으로 모이고 있었다. 심지어 함께 민주화운동을 하던 이들 가운데 주류라 할 수 있는 상당수 인물들이 보수정당에 몸담고 있기까지 했었다. 그에 비하면 민주당이야 김대중이 대통령 하겠다고 전부도 아닌 일부만 데리고 뛰쳐나가 이어져 온 찌꺼기들이 아닌가 말이다. 당장 노동운동에서도 심상정이 김문수에 미치지 못하고, 민주화운동에서 이재오와 비견할 만한 인물이 민주당이나 정의당에 몇이나 있는가 말이다. 거기에 어지간한 박사, 검사, 판사, 하여튼 사짜 들어가는 엘리트들은 다 모여 있으니 인물은 보수정당이라는 말이 당연하게 들리는 것이다. 과연 자신이 비주류 진보진영에 있다면 이 가운데 누구와 더 친하게 가깝게 지내고 싶겠는가.

 

더구나 자칭 진보 가운데 진짜 없이 살아 진보인 경우는 거의 드물다는 것이다. 당연하게 경제적으로 빈곤할수록 보수적인 성향이 강해지는 그대로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먹고 살 만하니 진보적 이념에도 관심을 가지고, 더구나 돈도 안되는 진보운동에도 투신할 수 있는 것이다. 당장 먹고 살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인력시장에 나가봐야 하고, 쥐꼬리 반토막만한 월급 받아 보겠다고 하루 12시간 13시간도 일해야 하는 입장에서 심지어 자기 돈 들여가며 진보운동을 한다는 게 가능하기는 한 일인가 말이다. 하루종일 1인시위를 한다고 피켓들고 서 있는 것조차 그만한 절박함이나 여유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란 것이다. 2016년 겨울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갔을 때도 나는 일하느라 TV뉴스로만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진보운동 열심히 해서 사회적으로 이름도 날리고 정치적으로 한 자리 할 수 있게 되려면 도대체 어떤 조건과 배경을 가져야 한다는 것인가. 실제 그래서 진보정당 인사들 보면 당장 자기나, 혹은 주위에서 상당히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활동을 뒷받침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 나는 못한다. 최소한 자칭 진보들마저 가난을 조롱할 정도가 되면 저들처럼은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인 것이다. 그렇게 민주당 2중대라는 말에는 질색팔색을 하면서도 보수 2중대라는 말에는 무덤덤하기만 하다. 정의당만 그런 것이 아니다. 진중권을 비롯한 자칭 진보 지식인들 역시 대부분 마찬가지다. 진중권만 특별한 게 아니라 차라리 보수진영의 대선후보로 꼽히더라도 민주당의 어용소리는 들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자칭 진보 지식인들의 자존심인 것이다. 차라리 이명박과 박근혜를 추종한다는 말은 모욕이 되지 않는데 문재인을 지지한다는 말은 모욕이 되는 것이 자칭 진보 언론의 긍지이기도 한 것이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질서고 정의니까. 

 

말하자면 자칭 진보 입장에서 민주당이란 찬탈자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문재인이며 노무현은 그런 찬탈자들의 수괴에 지나지 않는다. 나폴레옹은 비웃음을 샀어도 나폴레옹 3세는 황제의 일족으로 예우를 받았던 것처럼 수 십 년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김대중 정도만 예외일 뿐이다. 오죽하면 노무현 죽었을 때 한겨레 편집국에서 환호성이 들려왔다는 이야기까지 있었겠는가. 실제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지인의 경우 죽을 만해서 죽었다며 진짜 내 앞에서 비웃음을 보이기도 했었다. 과연 자칭 진보 가운데 이명박이나 박근혜에 대해 그 정도 증오와 혐오의 감정을 드러낸 경우가 얼마나 있었는가. 오히려 세월호 참사까지 들먹이며 박근혜를 동정하려는 이들마저 있는 상황이다. 왜? 박근혜는 적통이니까. 그런 점에서 이명박이 억울한 부분도 있는 것이다. 박정희의 딸이라는 이유로 진보에서조차 박근혜만 다르게 대우한다. 생물학적인 여성이라는 점은 여성주의의 이념과도 일치한다.

 

원래 진보정당과는 다른 부분은 몰라도 한반도 평화와 역사문제에 대해서는 이해를 같이 해 왔을 것이다. 그래도 북한과는 최대한 군사적 대립을 지양하고 화해와 협력을 통해 항구적인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가져와야 한다. 그런데 어떤가? 북한과 전쟁을 해서라도 월북한 자국민을 구해와야 한다. 누가 한 말일까? 박근혜를 추종하는 보수세력의 집회를 오히려 국민의힘보다 더 강하게 지지하며 개최금지를 비판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혹시라도 국민의짐 2중대라는 말을 듣는다면 차라리 영광이다. 한겨레에 조선일보 2중대라 하면 가장 신뢰받고 영향력있는 언론의 아류란 말에 기뻐하는 이유와 같다. 즉 진보와 자칭 진보를 구분하는 기준은 하나라 할 수 있다. 진중권이 부끄러운가? 혹은 국민의힘 2중대가 되어 있는 정의당을 부끄러워 하는가? 안타깝게도 내가 아는 자칭 진보 가운데 그런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차라리 이명박근혜가 더 나았다. 서민의 말은 그런 무의식을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진중권이 세월호참사를 들먹이는 것도 문재인과 같은 찬탈자에게 대권이 돌아간 사실에 대한 비애일 것이다. 그러면 그들만의 의식인가? 정의당의 최근 행보를 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자칭 진보언론들이 배설하는 기사들을 보면 그 답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칭이다. 드디어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원래 그랬고 앞으로도 그랬을 그들의 정체성이다.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입시를 목적으로만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마치 객관식이나 단답형 문제처럼 평면적이고 단편적인 개념으로 단지 암기하고 마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된다. 이를테면 최근 논란이 된 계몽군주가 그 한 예가 될 것이다.

 

원래 군주란 것은 한 정치단위에서 최고의 권력자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구성원 모두에게 지배자이거나 대표자로 여겨졌던 것은 아니었다. 군주를 떠받치는 지지세력들에게는 대표자이되 지배자가 아니었고, 군주와 일체감을 느낄 수 없던 대부분 피지배자들에게는 지배자이되 대표자일 수 없었다. 

 

바로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 최근 뜨겁게 진행되고 있는 미국의 대선인 것이다. 미국의 대통령은 미국 국민의 대표자가 아니다. 미국 연방을 구성하는 각 주의 대표자다. 그렇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미국 국민들이 지지하는가가 아닌, 몇 명의 선거인단을 가지는 몇 개의 주가 지지하는가에 따라 선거의 결과가 결정된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도 그렇게 정당한 계승자가 있는 경우에조차 선제후들의 선거라는 절차를 통해서만 제위에 오를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도 그렇게 유력 영주들의 지지를 얻어보겠다고 영지까지 퍼주다가 가난뱅이로 전락한 국왕이 있었을 정도였고, 영국에서도 귀족들의 모임인 귀족원이 왕위의 계승에까지 깊이 관여하고 있었다. 반면 그렇게 선제후나 의회에 의해 선출된 왕들 가운데는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외국인도 적지 않았기에 일반 국민들과의 접점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적대관계에 있던 오스트리아의 황녀 출신이었다는 이유만으로 내내 수많은 구설에 휘말려야 했던 마리 앙트와네트처럼 정서적으로 국민들의 반감을 사는 경우까지도 상당했었다. 그런데 과연 그런 군주들이 권력을 가졌으니 지배자일 수는 있어도 국민을 대표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었겠는가.

 

물론 대부분의 시간 동안 군주들에게도 굳이 그래야 할 필요 같은 건 없었다. 군주들의 권력을 유지하고 강화하는데 필요한 금력과 무력 대부분이 바로 이들 자신을 지지하는 소수의 유력자들로부터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세 유럽에서 봉건영주들이란 곧 자신이 기사였고, 다수의 기사를 가신으로 거느리고 있던 이들이었다. 영주들이었기에 자신의 영주에서 거둬들인 세금이 곧 자신들의 경제적 기반이 되었고, 그를 다시 경우에 따라 군주에게 바침으로써 군주의 경제적 기반으로 삼을 수 있었다. 그래서 중상주의라는 것도 나오게 된 것이었다. 역시 역사교과서만 보다 보면 쉽게 오해하게 되는 부분일 것이다. 중상주의에서 말하는 부국강병이란 바로 군주 개인의 재정과 군사력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상인들의 매점매석으로 농민들이 굶어죽더라도 그 결과 자신의 주머니에 들어오는 세금만 늘어나면 다 좋은 것이다. 역시 그래서 중상주의란 것도 국민국가와는 전혀 거리가 멀다. 딱 조선왕조실록에서 화폐와 상업을 경계하며 사대부들이 올린 상소의 내용이 중상주의 시대 유럽에서 그대로 재현되었다 보면 된다.

 

그런데 최초의 국민개병제가 실시되고 총력전에 가깝게 국가의 모든 역량을 쏟아붓는 전쟁의 양상을 겪게 되면서 유럽 군주들의 그같은 인식에도 상당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일단 벌써 한참 전부터 군주에게 중요한 지지기반이었던 귀족들이 오히려 정치적인 경쟁자로서 성가시게 여겨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귀족들의 지지가 있었기에 왕위에도 오르고 왕권도 유지할 수 있었지만 한 편으로 그런 귀족들의 간섭이 권력을 휘두르는데 방해가 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전쟁을 치르다 보니 고도로 훈련된 전사집단이었던 귀족들의 필요성은 줄어들고 장차 징집되어 전장에 나서게 될 이전까지 백성이라 부르던 국민들의 필요성이 더 커지게 되었다. 더불어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도시의 상공업자들이 군주인 자신들에 내는 세금이 영지에서 거둬들이는 곡식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귀족도 영지도 이제는 더이상 군주인 자신을 위해 필요없어진 것은 아닌가. 그래서 나타난 것이 절대왕정이고 중상주의였다. 그리고 그 연장에서 중국의 영향으로 더 강력하게 국민과 밀착하여 그들의 자발적 복종을 이끌어내기 위한 일환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 바로 계몽군주였던 것이다. 한 마디로 그동안 귀족과 부자들에게 했던 그대로를 국민들에게도 베풀어 주겠다.

 

그래서 계몽군주가 나타난 시기는 국민을 더 효율적으로 동원하기 위한 국민교육과 보건이란 개념이 나타난 시기와 많이 맞물리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국민의 자발적 복종과 참여를 이끌어내어 자신을 위해 세금을 바치고 나가서 적과 싸우도록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니까 한 편에서는 고리대금으로 여성들을 매춘부로 전락시키면서, 한 편에서는 그 매춘부들을 위해 병원을 짓는 모순도 당연해지고 마는 것이다. 한 쪽에서는 국가가 아닌 왕실의 재정을 늘리기 위해서 온갖 착취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다른 한 쪽에서는 국민을 위한 복지정책들이 시도된다. 하긴 임금인상을 요구한다는 이유로 군대까지 동원해 노동자를 쏴죽이던 카네기나 록펠러가 나중에 사회사업가가 되어 자선사업도 열심히 했던 것을 생각하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즉 계몽군주가 그나마 역사적으로 그나마 전보다 낫다고 여겨지는 것은 이유야 어찌되었든 결과적으로 국민들의 삶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된 것이 있다는 사실 하나 때문인 것이지 군주로써 이전과 다른 어떤 결정적인 차이가 있어서가 아니란 것이다. 여전히 계몽군주 시절의 그것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었음에도 혁명 이전 러시아 사회가 가장 낙후되어 있었다는 점을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나폴레옹 3세 역시 하는 짓거리나 해놓은 결과 역시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음에도 평가는 크게 갈리고 마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근대로 접어드는 19세기 말에 계몽군주라니. 하물며 20세기에. 더구나 21세기도 한참 지난 지금에.

 

18세기면 아직 근대 이전인 근세, 즉 전근대사회란 것이다. 그러니까 계몽군주라고 마음대로 이것도 저것도 아무것이나 다 마음먹은대로 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당사자가 죽고 자식이 왕위를 물려받으면 다시 이전으로 되돌리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했었다. 그래서 근대 이후에는 그렇게 군주 개인의 자의에 맡기는 전근대적인 통치제제가 아닌 보다 고도의 정치제도가 발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 계몽군주가 칭찬이 될 수 있다는 것인가. 무려 세종대왕까지 거슬러올라가는 개념이란 것이다. 그리고 역사상 계몽군주라고 항상 옳고 바른 정책만 펼쳤던 것도 아니고. 모든 정책이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것이었던 것도 아니다.

 

한 페이지로 다 설명하려니 생기는 문제인 것이다. 아마 세계사 교과서에서 계몽군주와 관련해서 몇 페이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중상주의도 부국강병만 설명하지 그 부국강병이 무엇을 가리키는가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심지어 군주 개인의 주머니를 위해 인신매매까지 한다. 자국 국민을 잡아다 용병으로 팔아치우는 경우마저 있었다. 상인들이 너무 폭리를 취하는 바람에 먹고 살기 힘들어진 농민들이 봉기를 일으키자 군대를 보내 잔인하게 진압하기도 했었다. 아, 그러고 보니 고종도 많이 닮았는데. 21세기에 계몽군주라 불렸다고 좋아하라니.

 

시험만 잘보면 병신이 된다는 대표적인 사례인 것이다. 기자새끼들 분명 시험은 잘봐서 대학도 좋은 데 갔을 텐데 계몽주의란 말뜻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논픽션의 뜻도 모르는 수준들이니 더 말할 것도 없다. 유시민 이사장이 잘못한 것이다. 기자놈들 대가리 수준을 제대로 이해하고 단어를 선택해 썼어야 했는데.

 

유럽 근대에 어째서 사회주의나 아나키즘같은 기존의 구조를 파괴하려는 시도가 나타나게 되었는가 이해해보면 답은 나온다. 아직도 19세기식 자유주의를 떠드는 놈들에게 너무 과분한 요구일 테지만. 웃기지도 않는 것이다.

얼마전 KBS 기자들이 모여 만든 유튜브채널 '댓글읽어주는 기자들'에서 의사들의 진료거부에 대해 이리 말한 적 있다. 정부의 정책에 분명 문제가 있을 것이다. 정부가 분명 잘못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의사들은 그런 부분들에 대해 국민들에 알리기보다 진료거부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러고보니 그런 이야기가 돌고 있었다. 진보와 보수, 종편과 공중파를 막론하고 거의 모든 기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한 가지 가치가 바로 반문이라고. 일단 문재인 정부부터 부정하고 봐야 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와 여당인 민주당부터 부정하고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여부는 그 다음이다. 진실 또한 그런 다음에 의미가 있다. 그래서 뭐가 문제인지 자신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분명 정부가 잘못하고 있을 것이라 단정하고 그 부분을 지적하지 않는 의사들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실과 상관없이 정부를 비판하는 자신들은 옳다.

 

언론들이 하는 여론조사라는 것도 그렇다. 군규정에 이미 연가는 병사 개인의 권리로써 언제 어떻게 쓰든 지휘관들 역시 특별한 이유가 없는 이상 적극적으로 보장해주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휴가 도중 사정이 생겨서 복귀할 수 없을 것 같으면 부대에 전화를 걸어 허락을 구하는 것은 규정이 바뀌기 전에도 부대장의 재량으로 얼마든지 가능한 사안이었다. 심지어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휴가가 병가가 아닌 개인의 연가 가운데 일부를 당겨서 쓴 휴가라는 사실조차 어떤 언론도 제대로 전하고 있지 않는 중이다. 그래야지만 군인 이전에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누린 것이 아닌 특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군인은 사람이 아니다. 개나 돼지다. 아니 그만도 못한 도구고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아파도 군대에서 아파야 하고 뒈져도 군대에서 뒈져야 한다. 실제 추미애 장관의 아들이 쓴 휴가를 특혜라며 비판하는 이들의 주된 논리 가운데 하나가 병신이 되더라도 일단 복귀부터 하고 난 다음에 다시 휴가를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남의 귀한 아들이다. 귀한 아들이기 이전에 당당한 이 나라의 국민이고 시민인 것이다. 자기가 원해서 간 군대도 아닌데 그 군대에서 몸까지 상해서 나오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 최소한 몸이라도 멀쩡하게 제대할 수 있도록 최대한 보장해주는 것이 맞지 않는가. 그런데 이미 오래전에 그러도록 모든 규정이 바뀌었는데 그 사실을 전하지 않는다. 군은 여전히 나라를 위한 도구이고, 따라서 나라를 위해 복무하다 뒈져도 영광으로 여겨야 하는 것이다. 평생 장애가 남는 경우가 있더라도 군의 규정이 그러하니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된다. 당연하게 그래서는 안되는 것인데 그렇게 여기도록 방치하고 오히려 부추긴다. 검찰이 불기소결정을 내리니까 비판하는 놈들이 지랄하더라. 이제부터는 아프면 전화로 휴가연장해도 되겠다고. 된다고. 그러면 나라꼴 어떻게 되겠느냐고. 빌어먹을 개자식들.

 

그렇게 어떤 언론도 사실을 말하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여론조사란 것이다. 병사들이 당연하게 누려야 할 권리로 무엇이 있는가. 병사들이 어디까지 군인 이전에 시민으로서, 인간으로서 자신의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것인가. 정치인이기 이전에 추미애 장관도 대한민국의 국민이며 시민이다. 국민으로서 당연히 보장되어야 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정치인의 아들이라고 시민 이전에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마저 박탈당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 자체를 지워버림으로써 특혜로 만든다. 이미 군규정에 연가는 마음대로 쓸 수 있도록 되어 있고, 아픈 병사가 있으면 최대한 치료가 될 수 있도록 보장해주도록 되어 있음에도 그 사실을 쏙 지운 채 아예 그런 건 없는 것처럼 기사를 쏟아내고는 그를 근거로 여론조사를 한다. 보아하니 추미애 장관에 부정적인 여론들은 야권 지지자 아니면 군이란 곳이 어떤 곳인지 모르는 이들이란 것이다. 바로 언론이 여론조사를 이용하는 방식이다.

 

조국 전장관도 마찬가지였었다. 윤미향 의원과 정의연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었다. 이를 두고 정의당은 국민정서의 문제라 하더라. 한겨레 경향 이 새끼들도 지들이 그따위로 기사를 쓰고는 국민의 정서가 그러하니 결단하라 지랄을 한다. 몰라서가 아니다. 모를 수가 없다. 정의연 논란 당시 한겨레가 직접 취재를 하고 인터뷰까지 했음에도 조선일보가 제기한 의혹을 사실로 전제하고 해명을 요구하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언론이 여론을 만들려 할 때는 어떤 언론도 예외가 되어서는 안된다. 더구나 그 대상이 문재인 정부나 민주당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앞서도 언급하지 않았는가. 사실관계도 확인하지 않고 다짜고짜 정부가 잘못하고 있을 것이라 단정부터 짓고 이야기를 시작하더라고. 그나마 KBS에서 제정신 박혔다는 놈들이 저러고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만 거꾸러뜨릴 수 있으면. 민주당만 무너뜨릴 수 있으면. 그래서 사실관계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하나가 되어 사실들을 보도하지 않는 형태로 묻고 왜곡하는 것이다. 그래도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자위하고 있겠지. 단지 다른 이유로 있는 사실을 보도하는데 소홀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여론조사를 한다. 철저히 사실을 감춘 상태에서 왜곡된 정보만을 집중해서 흘리고는 여론조사의 결과로 정부와 여당을 압박하려 한다. 박용진이 용기가 있어 소장파가 아니란 것이다. 그냥 비겁한 것이다. 당원이나 지지자보다 언론이 더 센 듯하다. 언론의 눈에 들어야 자기 정치생명이 더 길어질 것 같다. 김해영은 아닐까? 원래 민주당엔 그런 중심없는 개새끼들이 적지 않았었다.

 

여론조사가 의미없는 정도를 넘어 악의적이란 이유인 것이다. 이번 공무원 피살사건에 대한 여론조사도 마찬가지다. 의도적으로 월북사실을 빼고 여론조사를 한다. 월북했을지 모른다는 가능성만으로도 여론이 크게 출렁일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써 월북이란 단어를 지우고 더구나 공무원이 북한군에 피살당한 사실만 남기고 여론조사를 한다. 그래서 그렇게 한 여론조사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의미가 있다. 자기들이 월북사실만 끝까지 뉴스로 내보내지 않는다면. 그래서 피살자의 형을 계속해서 언론에 등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래야 월북을 뉴스에서 지울 수 있다.

 

그러니까 한겨레를 이해하려면 조선일보를 보라고 말하는 것이다. KBS의 의도를 이해하려면 가세연을 보면 된다. SBS는 그냥 일베라 보면 된다. 목적은 같다. 오마이뉴스가 지금에조차 철저하게 김재련을 감싸고 도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저들의 목적은 하나다. 다시 정당한 집권세력인 보수세력이 정권을 잡게 하는 것. 민주당은 찬탈자다. 자칭 진보들이 민주당 정부에서 습관처럼 하던 진보운동조차 접은 채 정부만 욕하고 있는 이유인 것이다. 아무리 진보의 실현을 바라더라도 정당한 왕위계승자에게 요청해야 하는 것이지 찬탈자와 결탁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차라리 수 천억을 해 처먹은 보수정당 정치인은 비판하지 못해도 고작 자기 연가 며칠 늘려 쓴 부분은 세상에 다시 없을 범죄처럼 비난을 쏟아낸다. 그나마 박덕흔이 보수진영의 주류에서 벗어나 있으니 비판기사도 나오는 것이지 아니었다면 어림도 없다.

 

아무튼 아주 고약스럽다는 것이다. 그래서 웃기는 것이 민주당 지지자들이 '댓글 읽어주는 기자들'을 보면서 물고 빠는 댓글을 달고 있는 꼬라지란 것이다. 현정부를 지지하는 인간들이 현정부의 잘못을 확신하는 예단을 가진 놈들을 기대하며 지지한다? 그냥 기자는 다 같다고 보면 된다. 언론은 다 같다. 좋은 언론인은 다 뒈졌다. 버러지 새끼들이다.

실제 일어났던 일이다. 아마 90년대까지인가 일본에서는 아직 아동포르노가 합법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성행위를 하거나 하는 건 일본에서도 불법이었고, 단지 성적으로 소비될 수 있는 누드나 속옷사진 등이 공공연히 대중적으로 유통되는 정도였다. 하지만 이 정도로도 다른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인생이 끝장날 정도의 처벌을 받아야 했었다. 그런데 어느 일본인이 하필 평소 즐겨보던 미성년자의 속옷사진을 무심코 가방에 넣고 유럽에 갔다가 그만 경찰에 걸리고 말았다. 그러면 해당 일본인은 해당 유럽국가와 일본 가운데 어느 쪽 법을 적용받아야 하는가.

 

그나마 일본과 국교를 맺고 외교관도 파견되어 있는 경우라면 어느 정도 보호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자국 국민이기에 자국의 법에 따라 자국에서 재판받고 처벌받게 하겠다. 당연히 정부로서는 자국의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충분히 할 수 있는 요구인 것이다. 그럼에도 해당 국가에서 자기네 영토 안에서 일어난 일이니 자기들 법으로 처벌하겠다 하면 사실 할 말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웜비어가 북한에서 자기네 법을 어겼다고 체포되어 재판받고 감옥에 갇히는 동안 세계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조차 강경하게 내놓으라 요구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싱가포르에서도 터키에서도 중국에서도 미국 기준으로 보자면 인권침해라 여길만한 상황이 적지 않았음에도 역시 그들 나라들의 법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미국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자기들의 룰을 따르지 않는 나라들에 함부로 찾아가지 말라 경고하는 정도가 고작이다.

 

그게 바로 주권이란 것이다. 내 땅에서 일어난 일이니 내 규칙대로 내가 알아서 하겠다. 작년엔가 북한에서 표류해 온 선박을 다시 북한으로 돌려보낼 때도 논란이 적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일단 국경을 넘어 왔으면 우리의 일인 것이다. 북한에서 무슨 일이 있었든 일단 우리 영해로 넘어온 이상 우리의 기준으로 판단해서 결론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북한이 요구한다고 바로 북한으로 돌려보내고 말았다. 즉 북한이 아무리 자기네 입장에서 용서못할 범죄자라고 돌려달라고 요구해봐야 우리 입장에서 아니라 여겨지면 거부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래도 북한은 말로 항의하는 이상 더이상 다른 행동을 취하지 못한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군사력을 동원해서 자기네 국민이라고 되찾아가려 했다가는 그 길로 바로 전쟁이다. 그때 왜 우리 정부가 우리의 기준에 따라 북한 표류자들을 처리하지 않고 북한으로 되돌려보냈느냐는 기준대로라면 북한이 자기네 입장에 따라 북한으로 넘어간 우리 국민을 어떻게 처리하든 그 순간 북한의 재량에 속하는 것이다. 물론 그 결과에 항의하는 것은 자국의 국민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는 정부로서 당연히 해야만 하는 의무이고 책임인 것이다.

 

어째서 북한이 한국 국민을 확보해서 심문하고 심지어 사살까지 하는데 한국 정부는 아무것도 않고 있었는가. 그러면 중국에서 중국의 법에 따라 처벌받고 있는 한국 국민을 위해 한국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물어봐야 한다. 미국은 어떨까? 일본은? 유럽은? 중동 국가들은? 다만 사후에 그 처리를 두고 평가하고 항의할 수는 있는 것이다. 상황이 고약하다는 것은 사살이라는 최악의 선택을 함으로써 되돌릴 수 있는 최소한의 여지조차 사라졌다는 것이다. 살아만 있다면 어떻게든 보상도 받고 억울함도 풀 수 있겠지만 일단 죽고 나면 모든 것이 불가능하다.

 

물론 북한을 하나의 국가로서 인정하지 않는 이들이 적지 않음을 안다. 북한이 주장하는 국가로서의 주권이나 영토에 대해 절대 인정할 수 없다는 이들이 아직 대한민국에는 상당하다. 그러므로 북한 주민들조차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으로 간주하고 보호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믿고 주장하고 싶어도 현실은 북한 또한 un에 대한민국과 함께 가입해 있는 국제적으로 승인된 독립국가란 것이다. 아직도 많은 나라들에 공관까지 두고 있다. 그런 북한의 주권과 영토를 아예 부정하고 마음대로 하는 것이 과연 국제사회에서 얼마나 용인될 수 있을 것인가. 그렇게 제멋대로 행동하고 그로 인해 실추될 대한민국의 국가적이미지와 신인도는 어떻게 할 것인가.

 

결국은 국제사회에서 국가라고 하는 주권의 단위가 가지는 의미를 알지 못하는 무지의 소치라 할 것이다. 정확히 모른다기보다 모른 척 하고 싶은 것일 게다. 그래서 관심없는 다수의 대중들을 현혹시켜 선동하려 한다. 일단 국경을 넘었고 상대의 주권이 미치는 영역으로 들어갔다. 이후 상대의 선택과 결정에 대해 평가할 수는 있어도 직접 개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저 미국조차 아무리 약소국이라고 그렇게 막나가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하긴 원래 일본의 식민지지배마저 찬양하던 것들이 바로 자칭 진보 자칭 보수들인 것이다. 그 뿌리가 어디 갈까? 우습지도 않다.

회사에서 주말에 건물 보수공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업체와 계약까지 맺은 것을 알고 있는데 정작 일요일에 당직이라 출근해서 보니 아예 시작도 하지 않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실 여기서부터 대부분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느끼기 시작했을 것이다. 주말에 공사하기로 계약까지 마쳤는데 일요일이 되었는데도 아예 시작도 하지 않았다면 중간에 다른 변동사항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혹시 모를 변동사항에 대해 먼저 파악하는 것이 우선인 것이다. 그런데도 당장 공사가 시작되지 않았으니 계약한 업체에 전화부터 걸어서 따져묻기부터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미 말했을 것이다. 아무리 당나라 군대고 군기가 오분전도 아닌 개판 자체라 하더라도 금요일에 복귀하기로 한 병사가 보이지 않는데 아무일없이 지나간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제아무리 외출외박이 자유로운 카투사라 하더라도 자기가 원해 간 군대가 아닌데 언제 어디서 어떻게 누가 멋대로 근무지를 이탈할 줄 알고 인원점검을 그냥 건너뛰는가. 더구나 자기 중대도 아니다. 남의 중대 병사다. 복귀일이 지났는데 보이지 않는다면 병장회의라는 것도 있다는데 그 부대 선임에게 물어 확인하는 것이 우선인 것이다. 만일 진짜 복귀하지 않았는데 인원점검을 하지 않아 그냥 넘어간 것이라면 부대 전체가 뒤집힐 사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짜고짜 상황파악 없이 전화부터 걸었다. 그래서 그렇게 건 전화가 실제 어떤 실질적인 의미를 가진다는 것인가. 근무 대충 섰다는 증거 말고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어차피 휴가연장을 결정할 권한은 해당 장교에게 있는 것이다. 당직사병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권한을 가진 간부가 결정한 사안들에 대해 확인하고 보고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미 휴가연장은 며칠 전에 결정이 났고, 그래서 휴가복귀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해당 중대에서는 조용히 지나가고 있었다. 단지 중대가 다르기에 그 사실을 모르고, 또한 확인하려고도 하지 않고 전화를 걸어서 다그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권한은 장교가 가지고, 세부적인 내용은 소속 중대에서 다 알 텐데, 중대도 다르고 권한도 없는 당직사병의 통화 하나가 무슨 대단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인가. 오히려 회사에서였다면 야단맞을 일이다. 인수인계도 제대로 하지 않은 이전 당직자 뿐 아니라 사실확인조차 않고 다짜고짜 전화부터 건 그 성급함에 책임을 물을 상황인 것이다.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한 것처럼 대장보다 위에 병장이 있다고 그 통화에 의미를 부여하고 애써 논란을 끌고가려 한다.

 

거짓말이라고 대단하게 무슨 중대한 비위를 감추려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 정당하게 시민의 권리로서 군대 간 자식을 위해서 원칙에 따라 절차를 문의한 사실을 잘못 증언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 정도야 잊을 수도 있는 것이지. 그런 사소한 일들까지 몇 년이 지나서 시시콜콜 기억하는 사람은 오히려 현실에 거의 드물다. 결과적으로 불법이 아니었다지 않은가. 심지어 도덕적으로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정치인이라고 일반 시민과 다른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면 시민으로서 자신의 권리를 누리는 자체를 도덕적으로 비난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박용진이나 정의당이나 워낙 진보를 자처하다 보니 지금 대한민국이 아직 봉건사회에 머물러 있다 여기는 모양이다. 정치인은 봉건시대의 귀족과 같다. 특별한 신분인 귀족에게는 그에 어울리는 특별한 의무와 책임이 지워져야 한다. 아닌가?

 

그냥 아무 의미도 가치도 없는, 근무 개판 선 결과 성급하게 걸었던 전화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미 이전에 권한을 가진 이가 결정을 내리고 확인까지 해 주었고, 혹시 모를 오해를 없애기 위해 나중에 다시 찾아가 당직사병에게 사실을 재차 전달했던 것이었다. 과연 그 사이에 당직사병이 전화를 걸었다고 달라지는 사실이 뭐가 있는가. 그로 인해 새삼 법적이거나 도덕적인 책임이 발생하기는 한다는 것인가.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인가. 진짜 대장 위에 병장이 있다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면 일개 병장의 전화에 의미를 부여할 이유가 있기는 한 것인가.

 

면제들이라 그렇다. 하긴 요즘 기자놈들 집안 어지간하지 않으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한다 하더라. 부동산 문제에 대해 자칭 진보언론까지 나서서 지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좌파도 돈없으면 못한다. 정의당 주요 인사들 면면을 보라. 진짜 가난해서 진보인 사람은 진보정당에서 오히려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니 현역으로 갔다고 군생활을 제대로 했을 리 없다. 직장생활이라고 제대로 하고 있을 리 없다. 내가 모르면 없는 것이다. 내가 알지 못하면 아닌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생각한 대로 문제라면 문제가 된다. 병신들인가? 면제인 이유를 알 것 같다. 벌레새끼들.

상대가 가진 정보를 확인하면 정보를 획득한 경로 역시 상당부분 역추적이 가능하다. 이를테면 사과가 빨갛다는 말과 사과는 빨갛다는 말은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뜻으로 쓰인 말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사과가 빨간데 그것을 누가 언제 어떻게 확인했는가는 여기서 사과를 가리키는 조사의 차이만으로도 유추가 가능한 것이다. 

 

혹은 실무자가 사후에 보고하는 과정에서 알았을 수도 있다. 아니면 일선 사병 가운데 무심코 자신이 겪은 일들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새어나온 것일 수 있다. 아니면 한국군에 회유된 정보원이 있어서 일부러 알아내서 전달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디서 어떻게 새어나갔는가를 안다면 당연히 더이상 그쪽으로 정보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니까 현장을 감청한 것인가? 아니면 지휘부나 혹은 부대간의 무전을 감청하던 도중 우연히 새어나간 것인가? 아니면 내부에 배신자가 있는 것인가? 그리고 알아냈다. 한국군이 서해해상에서 북한군의 무전을 모조리 실시간으로 감청하던 중이었다.

 

물론 모든 무전을 암호화하고 나아가 아예 감청 자체가 불가능하도록 체계를 갖추는 것은 상당한 비용과 수고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경제적으로나 기술적으로 낙후된 북한이 그러고자 마음먹는다고 하루아침에 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기껏 장비를 들여놓더라도 유지는 커녕 다른 데 비싸게 팔아 주머니나 채우지 않을까 걱정해야 하는 것이 지금 북한의 현실이다. 다만 어디서 어떻게 정보가 새어나갔는가를 안다면 그를 통해 역정보를 흘리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2차세계대전 당시 영국이 모든 독일의 스파이들을 체포해서 구금하지 않고 일부는 남겨서 역정보를 흘리는 통로로 이용했던 것이 그 한 예일 것이다. 혹시라도 자신들이 독일의 암호체계를 완전히 해독해낸 사실을 알게 될까봐 일부러 몇 번은 독일의 의도대로 넘어가는 희생도 감수해야 했었다.

 

단적인 예로 정권이 바뀌고 북한과의 관계를 국내정치에 이용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진 정부가 들어선다면 사소한 몇 가지 역정보만으로도 국내정치를 혼란에 빠드릴 수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의도적으로 잘못된 정보를 흘려 한국 정부가 그를 인용토록 함으로써 양자간 대화에서 우위를 점할 빌미로 삼을 수도 있는 것이다. 감청 자체를 차단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런 식으로 감청으로 획독한 정보를 오염시키는 것도 군당국으로서는 곤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뭐가 사실이고 뭐가 거짓인지 알 수 없게 된다면 그만큼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는데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게 된다. 

 

그래서 공개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해당 상임위 소속 국회의원들에게만 비공개로 정보를 전달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결국 야당과 언론에 의해 정부가 애써 감추려 했던 모든 내용들이 모두에게 알려지고 말았다. 당연히 북한도 알았을 것이다. 한국군이 서해상에서 그 정도로 정교하게 자신들의 무전을 감청하고 있었구나. 앞으로 정보가 새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고, 나아가 어떻게 자신들에 유리하게 그 사실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할 근거가 생긴 것이다. 필요하다면 중국과 러시아에 손을 벌려 도움을 구할 수도 있다. 중국 입장에서도 그 정도는 얼마든지 들어주어도 크게 상관이 없는 수준일 것이다.

 

어째서 정부가 그토록 신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인가. 군과 정보당국이 그토록 느리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인가. 물론 미국와의 정보공유도 중요했을 것이다. 미국과 정보자산을 공유하며 자신들이 감청한 사실에 대한 보다 확실한 근거들을 확보한다. 다 날아갔다. 저따위가 보수라 불리는 것들이다. 보수는 개뿔. 진보가 자칭인 이유가 있다.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이 증언을 거부해야 하는 상황에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으로 요긴하게 쓰일 수 있는 이유는 결국 하나다. 실제 사람의 기억은 불완전해서 불과 며칠 전의 일도 기억나지 않을 때가 많다. 몇 년 전, 아니 불과 몇 달 전에 내가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났고 무엇을 했는가 기억을 떠올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오죽하면 블로그에도 예전에 이미 썼던 글인데 기억이 나지 않아 다시 써서 올리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다. 심지어 불과 두 어 시간 전에 써서 올리고는 다시 써서 올렸다가 뒤늦게 보고 지우는 경우도 없지 않다. 치매다. 죽을 때가 된 것일까?

 

그러면 어째서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저 망각의 증언이 현실에서 상대를 기망하는 고약한 거짓말로 인식되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인가. 당연하다. 그럼에도 도저히 기억 못할 수 없는 내용들까지 기억하지 못한다 말할 때가 더 많기 때문이다. 억 단위의 돈이 오가고, 수많은 사람의 목숨줄이 달린 결정이 내려지고, 그 과정에서 절대 잊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들과 만나고 대화까지 나누었다. 정확한 날짜와 시간은 기억하지 못해도 그 사실 자체는 절대 잊을 수 없는 인상깊은 사건이었을 것이다. 그러면 보좌관과 아들 휴가연장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것은 어떨까?

 

2017년 대선을 치르고 여당의 당대표로서 추미애 장관이 얼마나 많은 크고 중요한 일들을 처리하고 있었을지 생각해 보라. 집권여당의 당대표가 그렇게 한가한 자리가 아니다. 아들이 병가를 내고 나와 수술받은 것이야 당연히 기억할 테고, 병가를 연장했던 사실도 물론 기억할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어떤 구체적인 일들이 있었는지 기억하기란 쉽지 않다. 그냥 지나가는 말로 담당장교에게 연락을 넣어서 휴가연장을 문의해 보라고 말한 정도라면 굳이 기억을 떠올릴 필요도 없는 사소한 일일 수 있는 것이다. 담당장교에게 부정한 청탁을 넣었거나, 부당한 외압을 행사했기에 혹시라도 주위에서 알게 될 것을 걱정했다면 기억하지 못할 수 있겠지만 규정에 따라 별 문제없이 처리된 일을 굳이 두고두고 기억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기억하지 못한 그 사실이 도덕적이나 법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사안도 아니다.

 

밝혀져서 안되는 사실을 기억나지 않는다 허위로 증언한 것이 아니란 것이다. 굳이 밝혀져도 상관없는 사소한 사실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 검찰이 해당 사실을 확보했음에도 굳이 법적으로 문제삼지 않았었다. 법적으로도 문제가 되지 않고, 도덕적으로도 그냥 문의를 넣으라 한 것이니 문제가 될 까닭이 없다. 단지 기억이 완전하지 못해서 당시 뭐라 중요하게 지시한 사실이 기억나지 않아서 그리 말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저 사실을 일찌감치 밝혔다고 뭐가 그리 크게 문제가 되겠는가. 전화번호를 건넸다고? 문의해보라 지시했다고? 그래서 어느 규정에 어긋나고 어떤 도덕적 가치에 위배되는데?

 

거짓말인지의 여부조차 확실치 않다는 것이다. 진짜 기억나지 않았던 것이면? 내 기억력으로도 3년 전 일이면 충분히 기억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그나마 워낙 변변치 않은 한가한 일상을 보내는 나니 그래도 대충은 기억나는 것이지 한창 바쁠 때면 글쎄 저런 정도 일이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 있을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래서 뭐가 문제라고? 어디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냐고? 그런데도 굳이 문제삼는 이유야 명확하다. 그렇게라도 문제삼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억 단위의 부정보다 그 사소한 한 마디가 더 정의감을 자극한다. 치매란 내가 아닌 언론이 문제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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