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를 목적으로만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마치 객관식이나 단답형 문제처럼 평면적이고 단편적인 개념으로 단지 암기하고 마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된다. 이를테면 최근 논란이 된 계몽군주가 그 한 예가 될 것이다.

 

원래 군주란 것은 한 정치단위에서 최고의 권력자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구성원 모두에게 지배자이거나 대표자로 여겨졌던 것은 아니었다. 군주를 떠받치는 지지세력들에게는 대표자이되 지배자가 아니었고, 군주와 일체감을 느낄 수 없던 대부분 피지배자들에게는 지배자이되 대표자일 수 없었다. 

 

바로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 최근 뜨겁게 진행되고 있는 미국의 대선인 것이다. 미국의 대통령은 미국 국민의 대표자가 아니다. 미국 연방을 구성하는 각 주의 대표자다. 그렇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미국 국민들이 지지하는가가 아닌, 몇 명의 선거인단을 가지는 몇 개의 주가 지지하는가에 따라 선거의 결과가 결정된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도 그렇게 정당한 계승자가 있는 경우에조차 선제후들의 선거라는 절차를 통해서만 제위에 오를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도 그렇게 유력 영주들의 지지를 얻어보겠다고 영지까지 퍼주다가 가난뱅이로 전락한 국왕이 있었을 정도였고, 영국에서도 귀족들의 모임인 귀족원이 왕위의 계승에까지 깊이 관여하고 있었다. 반면 그렇게 선제후나 의회에 의해 선출된 왕들 가운데는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외국인도 적지 않았기에 일반 국민들과의 접점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적대관계에 있던 오스트리아의 황녀 출신이었다는 이유만으로 내내 수많은 구설에 휘말려야 했던 마리 앙트와네트처럼 정서적으로 국민들의 반감을 사는 경우까지도 상당했었다. 그런데 과연 그런 군주들이 권력을 가졌으니 지배자일 수는 있어도 국민을 대표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었겠는가.

 

물론 대부분의 시간 동안 군주들에게도 굳이 그래야 할 필요 같은 건 없었다. 군주들의 권력을 유지하고 강화하는데 필요한 금력과 무력 대부분이 바로 이들 자신을 지지하는 소수의 유력자들로부터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세 유럽에서 봉건영주들이란 곧 자신이 기사였고, 다수의 기사를 가신으로 거느리고 있던 이들이었다. 영주들이었기에 자신의 영주에서 거둬들인 세금이 곧 자신들의 경제적 기반이 되었고, 그를 다시 경우에 따라 군주에게 바침으로써 군주의 경제적 기반으로 삼을 수 있었다. 그래서 중상주의라는 것도 나오게 된 것이었다. 역시 역사교과서만 보다 보면 쉽게 오해하게 되는 부분일 것이다. 중상주의에서 말하는 부국강병이란 바로 군주 개인의 재정과 군사력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상인들의 매점매석으로 농민들이 굶어죽더라도 그 결과 자신의 주머니에 들어오는 세금만 늘어나면 다 좋은 것이다. 역시 그래서 중상주의란 것도 국민국가와는 전혀 거리가 멀다. 딱 조선왕조실록에서 화폐와 상업을 경계하며 사대부들이 올린 상소의 내용이 중상주의 시대 유럽에서 그대로 재현되었다 보면 된다.

 

그런데 최초의 국민개병제가 실시되고 총력전에 가깝게 국가의 모든 역량을 쏟아붓는 전쟁의 양상을 겪게 되면서 유럽 군주들의 그같은 인식에도 상당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일단 벌써 한참 전부터 군주에게 중요한 지지기반이었던 귀족들이 오히려 정치적인 경쟁자로서 성가시게 여겨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귀족들의 지지가 있었기에 왕위에도 오르고 왕권도 유지할 수 있었지만 한 편으로 그런 귀족들의 간섭이 권력을 휘두르는데 방해가 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전쟁을 치르다 보니 고도로 훈련된 전사집단이었던 귀족들의 필요성은 줄어들고 장차 징집되어 전장에 나서게 될 이전까지 백성이라 부르던 국민들의 필요성이 더 커지게 되었다. 더불어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도시의 상공업자들이 군주인 자신들에 내는 세금이 영지에서 거둬들이는 곡식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귀족도 영지도 이제는 더이상 군주인 자신을 위해 필요없어진 것은 아닌가. 그래서 나타난 것이 절대왕정이고 중상주의였다. 그리고 그 연장에서 중국의 영향으로 더 강력하게 국민과 밀착하여 그들의 자발적 복종을 이끌어내기 위한 일환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 바로 계몽군주였던 것이다. 한 마디로 그동안 귀족과 부자들에게 했던 그대로를 국민들에게도 베풀어 주겠다.

 

그래서 계몽군주가 나타난 시기는 국민을 더 효율적으로 동원하기 위한 국민교육과 보건이란 개념이 나타난 시기와 많이 맞물리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국민의 자발적 복종과 참여를 이끌어내어 자신을 위해 세금을 바치고 나가서 적과 싸우도록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니까 한 편에서는 고리대금으로 여성들을 매춘부로 전락시키면서, 한 편에서는 그 매춘부들을 위해 병원을 짓는 모순도 당연해지고 마는 것이다. 한 쪽에서는 국가가 아닌 왕실의 재정을 늘리기 위해서 온갖 착취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다른 한 쪽에서는 국민을 위한 복지정책들이 시도된다. 하긴 임금인상을 요구한다는 이유로 군대까지 동원해 노동자를 쏴죽이던 카네기나 록펠러가 나중에 사회사업가가 되어 자선사업도 열심히 했던 것을 생각하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즉 계몽군주가 그나마 역사적으로 그나마 전보다 낫다고 여겨지는 것은 이유야 어찌되었든 결과적으로 국민들의 삶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된 것이 있다는 사실 하나 때문인 것이지 군주로써 이전과 다른 어떤 결정적인 차이가 있어서가 아니란 것이다. 여전히 계몽군주 시절의 그것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었음에도 혁명 이전 러시아 사회가 가장 낙후되어 있었다는 점을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나폴레옹 3세 역시 하는 짓거리나 해놓은 결과 역시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음에도 평가는 크게 갈리고 마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근대로 접어드는 19세기 말에 계몽군주라니. 하물며 20세기에. 더구나 21세기도 한참 지난 지금에.

 

18세기면 아직 근대 이전인 근세, 즉 전근대사회란 것이다. 그러니까 계몽군주라고 마음대로 이것도 저것도 아무것이나 다 마음먹은대로 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당사자가 죽고 자식이 왕위를 물려받으면 다시 이전으로 되돌리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했었다. 그래서 근대 이후에는 그렇게 군주 개인의 자의에 맡기는 전근대적인 통치제제가 아닌 보다 고도의 정치제도가 발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 계몽군주가 칭찬이 될 수 있다는 것인가. 무려 세종대왕까지 거슬러올라가는 개념이란 것이다. 그리고 역사상 계몽군주라고 항상 옳고 바른 정책만 펼쳤던 것도 아니고. 모든 정책이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것이었던 것도 아니다.

 

한 페이지로 다 설명하려니 생기는 문제인 것이다. 아마 세계사 교과서에서 계몽군주와 관련해서 몇 페이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중상주의도 부국강병만 설명하지 그 부국강병이 무엇을 가리키는가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심지어 군주 개인의 주머니를 위해 인신매매까지 한다. 자국 국민을 잡아다 용병으로 팔아치우는 경우마저 있었다. 상인들이 너무 폭리를 취하는 바람에 먹고 살기 힘들어진 농민들이 봉기를 일으키자 군대를 보내 잔인하게 진압하기도 했었다. 아, 그러고 보니 고종도 많이 닮았는데. 21세기에 계몽군주라 불렸다고 좋아하라니.

 

시험만 잘보면 병신이 된다는 대표적인 사례인 것이다. 기자새끼들 분명 시험은 잘봐서 대학도 좋은 데 갔을 텐데 계몽주의란 말뜻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논픽션의 뜻도 모르는 수준들이니 더 말할 것도 없다. 유시민 이사장이 잘못한 것이다. 기자놈들 대가리 수준을 제대로 이해하고 단어를 선택해 썼어야 했는데.

 

유럽 근대에 어째서 사회주의나 아나키즘같은 기존의 구조를 파괴하려는 시도가 나타나게 되었는가 이해해보면 답은 나온다. 아직도 19세기식 자유주의를 떠드는 놈들에게 너무 과분한 요구일 테지만. 웃기지도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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