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뒤집겠다고 반란을 일으켜 놓고도 혹시라도 조정에서 달래겠다고 관직이라도 내리면 바로 그것부터 앞세우는 이유는 동경인 것이다. 나라 좆같고, 관리들 똥같고, 지주들 벌레같은 건 알겠는데 그래도 나도 한 번 저렇게 살고 싶은 욕심이 있는 것이다. 왕후장상에 씨가 없으니 나도 한 번 왕이 되고, 제후가 되고, 장군이 되고, 재상이 되어 보겠다. 그러니까 아예 조정에서 관직을 주지 않으면 자기가 먼저 무슨 장군입네 하며 벼슬을 갖다 붙이며 행세하려 드는 것이다. 

 

하물며 무지렁이 백성들도 그런데 같은 지배층이면 어떨까? 조선말기 부패한 관리에 반발하여 민란이 일어나면 양반 출신의 유지들은 문제가 된 관리를 쫓아낸 뒤 가장 먼저 조정에 상소를 올려 오로지 왕에게 충성할 뿐 다른 마음이 없음을 강조하고 있었다. 자기는 여전히 양반이며 조선이라는 질서의 일부이고 오로지 왕에게 충성하는 신하일 뿐이란 것이다. 오히려 이를 기회로 조정에 자신을 알릴 수 있지 않을까 부질없는 기대를 가져 보기도 한다. 프랑스혁명이나 러시아혁명에서도 당시의 현실에 분노하여 일어난 귀족이나 부유한 상공인 등 특권층이 없지 않았는데 항상 태도는 일관되었었다. 단지 그동안의 잘못들을 바로잡으려는 것일 뿐 나라를 아예 근본부터 뒤집으려는 것은 아니다. 쫓겨난 왕에게 동정적이고 기득권을 잃은 귀족들에 온정을 베풀며 선을 넘으려는 혁명동지들을 제어한다.

 

말한 적 있을 것이다. 한국 진보들에게 정당한 대한민국의 지배자는 보수세력이라고. 처음에는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어느새 그렇게 길들여지고 말았다. 더욱 군사독재와 목숨까지 내걸고 맞서 싸우던 기억마저 희미한 세대에 이르면 노태우 이후로는 그냥 평범한 권위주의 보수정권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이 모든 질서를 만들고, 모든 정의를 정의하고, 당연하게 이 사회의 주류라 할 수 있는 인물들은 거의 보수정당으로 모이고 있었다. 심지어 함께 민주화운동을 하던 이들 가운데 주류라 할 수 있는 상당수 인물들이 보수정당에 몸담고 있기까지 했었다. 그에 비하면 민주당이야 김대중이 대통령 하겠다고 전부도 아닌 일부만 데리고 뛰쳐나가 이어져 온 찌꺼기들이 아닌가 말이다. 당장 노동운동에서도 심상정이 김문수에 미치지 못하고, 민주화운동에서 이재오와 비견할 만한 인물이 민주당이나 정의당에 몇이나 있는가 말이다. 거기에 어지간한 박사, 검사, 판사, 하여튼 사짜 들어가는 엘리트들은 다 모여 있으니 인물은 보수정당이라는 말이 당연하게 들리는 것이다. 과연 자신이 비주류 진보진영에 있다면 이 가운데 누구와 더 친하게 가깝게 지내고 싶겠는가.

 

더구나 자칭 진보 가운데 진짜 없이 살아 진보인 경우는 거의 드물다는 것이다. 당연하게 경제적으로 빈곤할수록 보수적인 성향이 강해지는 그대로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먹고 살 만하니 진보적 이념에도 관심을 가지고, 더구나 돈도 안되는 진보운동에도 투신할 수 있는 것이다. 당장 먹고 살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인력시장에 나가봐야 하고, 쥐꼬리 반토막만한 월급 받아 보겠다고 하루 12시간 13시간도 일해야 하는 입장에서 심지어 자기 돈 들여가며 진보운동을 한다는 게 가능하기는 한 일인가 말이다. 하루종일 1인시위를 한다고 피켓들고 서 있는 것조차 그만한 절박함이나 여유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란 것이다. 2016년 겨울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갔을 때도 나는 일하느라 TV뉴스로만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진보운동 열심히 해서 사회적으로 이름도 날리고 정치적으로 한 자리 할 수 있게 되려면 도대체 어떤 조건과 배경을 가져야 한다는 것인가. 실제 그래서 진보정당 인사들 보면 당장 자기나, 혹은 주위에서 상당히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활동을 뒷받침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 나는 못한다. 최소한 자칭 진보들마저 가난을 조롱할 정도가 되면 저들처럼은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인 것이다. 그렇게 민주당 2중대라는 말에는 질색팔색을 하면서도 보수 2중대라는 말에는 무덤덤하기만 하다. 정의당만 그런 것이 아니다. 진중권을 비롯한 자칭 진보 지식인들 역시 대부분 마찬가지다. 진중권만 특별한 게 아니라 차라리 보수진영의 대선후보로 꼽히더라도 민주당의 어용소리는 들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자칭 진보 지식인들의 자존심인 것이다. 차라리 이명박과 박근혜를 추종한다는 말은 모욕이 되지 않는데 문재인을 지지한다는 말은 모욕이 되는 것이 자칭 진보 언론의 긍지이기도 한 것이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질서고 정의니까. 

 

말하자면 자칭 진보 입장에서 민주당이란 찬탈자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문재인이며 노무현은 그런 찬탈자들의 수괴에 지나지 않는다. 나폴레옹은 비웃음을 샀어도 나폴레옹 3세는 황제의 일족으로 예우를 받았던 것처럼 수 십 년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김대중 정도만 예외일 뿐이다. 오죽하면 노무현 죽었을 때 한겨레 편집국에서 환호성이 들려왔다는 이야기까지 있었겠는가. 실제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지인의 경우 죽을 만해서 죽었다며 진짜 내 앞에서 비웃음을 보이기도 했었다. 과연 자칭 진보 가운데 이명박이나 박근혜에 대해 그 정도 증오와 혐오의 감정을 드러낸 경우가 얼마나 있었는가. 오히려 세월호 참사까지 들먹이며 박근혜를 동정하려는 이들마저 있는 상황이다. 왜? 박근혜는 적통이니까. 그런 점에서 이명박이 억울한 부분도 있는 것이다. 박정희의 딸이라는 이유로 진보에서조차 박근혜만 다르게 대우한다. 생물학적인 여성이라는 점은 여성주의의 이념과도 일치한다.

 

원래 진보정당과는 다른 부분은 몰라도 한반도 평화와 역사문제에 대해서는 이해를 같이 해 왔을 것이다. 그래도 북한과는 최대한 군사적 대립을 지양하고 화해와 협력을 통해 항구적인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가져와야 한다. 그런데 어떤가? 북한과 전쟁을 해서라도 월북한 자국민을 구해와야 한다. 누가 한 말일까? 박근혜를 추종하는 보수세력의 집회를 오히려 국민의힘보다 더 강하게 지지하며 개최금지를 비판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혹시라도 국민의짐 2중대라는 말을 듣는다면 차라리 영광이다. 한겨레에 조선일보 2중대라 하면 가장 신뢰받고 영향력있는 언론의 아류란 말에 기뻐하는 이유와 같다. 즉 진보와 자칭 진보를 구분하는 기준은 하나라 할 수 있다. 진중권이 부끄러운가? 혹은 국민의힘 2중대가 되어 있는 정의당을 부끄러워 하는가? 안타깝게도 내가 아는 자칭 진보 가운데 그런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차라리 이명박근혜가 더 나았다. 서민의 말은 그런 무의식을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진중권이 세월호참사를 들먹이는 것도 문재인과 같은 찬탈자에게 대권이 돌아간 사실에 대한 비애일 것이다. 그러면 그들만의 의식인가? 정의당의 최근 행보를 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자칭 진보언론들이 배설하는 기사들을 보면 그 답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칭이다. 드디어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원래 그랬고 앞으로도 그랬을 그들의 정체성이다.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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