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이 증언을 거부해야 하는 상황에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으로 요긴하게 쓰일 수 있는 이유는 결국 하나다. 실제 사람의 기억은 불완전해서 불과 며칠 전의 일도 기억나지 않을 때가 많다. 몇 년 전, 아니 불과 몇 달 전에 내가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났고 무엇을 했는가 기억을 떠올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오죽하면 블로그에도 예전에 이미 썼던 글인데 기억이 나지 않아 다시 써서 올리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다. 심지어 불과 두 어 시간 전에 써서 올리고는 다시 써서 올렸다가 뒤늦게 보고 지우는 경우도 없지 않다. 치매다. 죽을 때가 된 것일까?

 

그러면 어째서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저 망각의 증언이 현실에서 상대를 기망하는 고약한 거짓말로 인식되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인가. 당연하다. 그럼에도 도저히 기억 못할 수 없는 내용들까지 기억하지 못한다 말할 때가 더 많기 때문이다. 억 단위의 돈이 오가고, 수많은 사람의 목숨줄이 달린 결정이 내려지고, 그 과정에서 절대 잊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들과 만나고 대화까지 나누었다. 정확한 날짜와 시간은 기억하지 못해도 그 사실 자체는 절대 잊을 수 없는 인상깊은 사건이었을 것이다. 그러면 보좌관과 아들 휴가연장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것은 어떨까?

 

2017년 대선을 치르고 여당의 당대표로서 추미애 장관이 얼마나 많은 크고 중요한 일들을 처리하고 있었을지 생각해 보라. 집권여당의 당대표가 그렇게 한가한 자리가 아니다. 아들이 병가를 내고 나와 수술받은 것이야 당연히 기억할 테고, 병가를 연장했던 사실도 물론 기억할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어떤 구체적인 일들이 있었는지 기억하기란 쉽지 않다. 그냥 지나가는 말로 담당장교에게 연락을 넣어서 휴가연장을 문의해 보라고 말한 정도라면 굳이 기억을 떠올릴 필요도 없는 사소한 일일 수 있는 것이다. 담당장교에게 부정한 청탁을 넣었거나, 부당한 외압을 행사했기에 혹시라도 주위에서 알게 될 것을 걱정했다면 기억하지 못할 수 있겠지만 규정에 따라 별 문제없이 처리된 일을 굳이 두고두고 기억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기억하지 못한 그 사실이 도덕적이나 법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사안도 아니다.

 

밝혀져서 안되는 사실을 기억나지 않는다 허위로 증언한 것이 아니란 것이다. 굳이 밝혀져도 상관없는 사소한 사실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 검찰이 해당 사실을 확보했음에도 굳이 법적으로 문제삼지 않았었다. 법적으로도 문제가 되지 않고, 도덕적으로도 그냥 문의를 넣으라 한 것이니 문제가 될 까닭이 없다. 단지 기억이 완전하지 못해서 당시 뭐라 중요하게 지시한 사실이 기억나지 않아서 그리 말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저 사실을 일찌감치 밝혔다고 뭐가 그리 크게 문제가 되겠는가. 전화번호를 건넸다고? 문의해보라 지시했다고? 그래서 어느 규정에 어긋나고 어떤 도덕적 가치에 위배되는데?

 

거짓말인지의 여부조차 확실치 않다는 것이다. 진짜 기억나지 않았던 것이면? 내 기억력으로도 3년 전 일이면 충분히 기억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그나마 워낙 변변치 않은 한가한 일상을 보내는 나니 그래도 대충은 기억나는 것이지 한창 바쁠 때면 글쎄 저런 정도 일이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 있을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래서 뭐가 문제라고? 어디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냐고? 그런데도 굳이 문제삼는 이유야 명확하다. 그렇게라도 문제삼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억 단위의 부정보다 그 사소한 한 마디가 더 정의감을 자극한다. 치매란 내가 아닌 언론이 문제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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