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일어났던 일이다. 아마 90년대까지인가 일본에서는 아직 아동포르노가 합법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성행위를 하거나 하는 건 일본에서도 불법이었고, 단지 성적으로 소비될 수 있는 누드나 속옷사진 등이 공공연히 대중적으로 유통되는 정도였다. 하지만 이 정도로도 다른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인생이 끝장날 정도의 처벌을 받아야 했었다. 그런데 어느 일본인이 하필 평소 즐겨보던 미성년자의 속옷사진을 무심코 가방에 넣고 유럽에 갔다가 그만 경찰에 걸리고 말았다. 그러면 해당 일본인은 해당 유럽국가와 일본 가운데 어느 쪽 법을 적용받아야 하는가.

 

그나마 일본과 국교를 맺고 외교관도 파견되어 있는 경우라면 어느 정도 보호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자국 국민이기에 자국의 법에 따라 자국에서 재판받고 처벌받게 하겠다. 당연히 정부로서는 자국의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충분히 할 수 있는 요구인 것이다. 그럼에도 해당 국가에서 자기네 영토 안에서 일어난 일이니 자기들 법으로 처벌하겠다 하면 사실 할 말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웜비어가 북한에서 자기네 법을 어겼다고 체포되어 재판받고 감옥에 갇히는 동안 세계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조차 강경하게 내놓으라 요구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싱가포르에서도 터키에서도 중국에서도 미국 기준으로 보자면 인권침해라 여길만한 상황이 적지 않았음에도 역시 그들 나라들의 법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미국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자기들의 룰을 따르지 않는 나라들에 함부로 찾아가지 말라 경고하는 정도가 고작이다.

 

그게 바로 주권이란 것이다. 내 땅에서 일어난 일이니 내 규칙대로 내가 알아서 하겠다. 작년엔가 북한에서 표류해 온 선박을 다시 북한으로 돌려보낼 때도 논란이 적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일단 국경을 넘어 왔으면 우리의 일인 것이다. 북한에서 무슨 일이 있었든 일단 우리 영해로 넘어온 이상 우리의 기준으로 판단해서 결론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북한이 요구한다고 바로 북한으로 돌려보내고 말았다. 즉 북한이 아무리 자기네 입장에서 용서못할 범죄자라고 돌려달라고 요구해봐야 우리 입장에서 아니라 여겨지면 거부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래도 북한은 말로 항의하는 이상 더이상 다른 행동을 취하지 못한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군사력을 동원해서 자기네 국민이라고 되찾아가려 했다가는 그 길로 바로 전쟁이다. 그때 왜 우리 정부가 우리의 기준에 따라 북한 표류자들을 처리하지 않고 북한으로 되돌려보냈느냐는 기준대로라면 북한이 자기네 입장에 따라 북한으로 넘어간 우리 국민을 어떻게 처리하든 그 순간 북한의 재량에 속하는 것이다. 물론 그 결과에 항의하는 것은 자국의 국민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는 정부로서 당연히 해야만 하는 의무이고 책임인 것이다.

 

어째서 북한이 한국 국민을 확보해서 심문하고 심지어 사살까지 하는데 한국 정부는 아무것도 않고 있었는가. 그러면 중국에서 중국의 법에 따라 처벌받고 있는 한국 국민을 위해 한국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물어봐야 한다. 미국은 어떨까? 일본은? 유럽은? 중동 국가들은? 다만 사후에 그 처리를 두고 평가하고 항의할 수는 있는 것이다. 상황이 고약하다는 것은 사살이라는 최악의 선택을 함으로써 되돌릴 수 있는 최소한의 여지조차 사라졌다는 것이다. 살아만 있다면 어떻게든 보상도 받고 억울함도 풀 수 있겠지만 일단 죽고 나면 모든 것이 불가능하다.

 

물론 북한을 하나의 국가로서 인정하지 않는 이들이 적지 않음을 안다. 북한이 주장하는 국가로서의 주권이나 영토에 대해 절대 인정할 수 없다는 이들이 아직 대한민국에는 상당하다. 그러므로 북한 주민들조차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으로 간주하고 보호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믿고 주장하고 싶어도 현실은 북한 또한 un에 대한민국과 함께 가입해 있는 국제적으로 승인된 독립국가란 것이다. 아직도 많은 나라들에 공관까지 두고 있다. 그런 북한의 주권과 영토를 아예 부정하고 마음대로 하는 것이 과연 국제사회에서 얼마나 용인될 수 있을 것인가. 그렇게 제멋대로 행동하고 그로 인해 실추될 대한민국의 국가적이미지와 신인도는 어떻게 할 것인가.

 

결국은 국제사회에서 국가라고 하는 주권의 단위가 가지는 의미를 알지 못하는 무지의 소치라 할 것이다. 정확히 모른다기보다 모른 척 하고 싶은 것일 게다. 그래서 관심없는 다수의 대중들을 현혹시켜 선동하려 한다. 일단 국경을 넘었고 상대의 주권이 미치는 영역으로 들어갔다. 이후 상대의 선택과 결정에 대해 평가할 수는 있어도 직접 개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저 미국조차 아무리 약소국이라고 그렇게 막나가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하긴 원래 일본의 식민지지배마저 찬양하던 것들이 바로 자칭 진보 자칭 보수들인 것이다. 그 뿌리가 어디 갈까? 우습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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