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20년 쯤 되었을 것이다. 내가 자칭 진보를 자칭 진보라 부르며 욕하기 시작했을 때 대부분 내 말을 믿지 않았었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죽음에 분노해서 원망은 가지더라도 그래도 설마 대한민국에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 소수자를 위한 정치집단이 하나 쯤 있어야 하지 않는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충고까지 했었다. 개인적인 감정으로 그렇게 매도만 하지 말라. 그런데 어떤가.

 

그런 점에서 윤석열은 내게 매우 소중한 존재인 것이다. 보라. 하루가 멀다고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 소수자를 폄하하고 부정하는 발언을 일삼는데도 여전히 그에 대한 지지를 멈추지 않는 자칭 진보의 모습을. 서울대 청소노동자의 죽음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하던 정의당이 윤석열 지지자들에 대한 황운하의 발언은 바로 나서서 물어뜯고 있었다. 추미애의 말 한 마디도 그저 허투루 지나가지 않고 물어뜯은 이유도 추미애와 윤석열의 관계를 비춰 보면 바로 이해가 가는 상황이다. 이재명에 대해서는 연일 특검해야 한다며 도덕성을 물고 늘어지던 심상정이 윤석열에 대해서는 한 마디 못하고 침묵하고 있는 것을 보라. 원래 심상정이 출마한 이유였다. 진보정당의 대선후보로써 이재명 특검을 주장하는 모습을 계속 언론에 비춰 주기 위한 용도인 것이다. 그래서 한겨레가 심상정을 띄우려는 것이고. 이재명을 죽여야 윤석열이 산다.

 

오히려 윤석열의 발언에 대한 보도는 자칭 진보들이 언론도 아니라며 무시하는 소수 인터넷언론이나 지방언론들을 통해 더 많이 보도되고 더 강하게 비판받고 있는 중이다. 진보도 아니고 언론도 아니라더니 정작 자칭 진보가 해야 할 일을 그들이 대신 다 하고 있다. 자칭 진보란 것들은 한 걸음 물러서서 노동자들이야 뒈지든 말든 이재명만 아니면 된다는 태도를 일관할 뿐이다. 그래서 내가 저 새끼들 더 싫어하는 것이다. 나야말로 노동자니까.

 

윤석열 공약대로 하면 5년 전으로 돌아가게 된다. 하루 7시간 겨우 쉬어가며 7000원도 안되는 최저임금으로 세전 월 400을 찍던 그때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못하겠다 늦게 출근하거나 일찍 퇴근하면 바로 잘리고 만다. 그런데 저 새끼들은 이수정이 있고 윤석열이 여성주의에 호의적이니 그래도 좋다고 지껄이고 있는 중이다.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 소수자를 위한 진보정당? 대안세력? 개뿔. 저놈들이 그동안 그들을 위해 한 일이 도대체 무언데? 세월호도 검찰이 유가족 사찰 없다니까 아예 입 싹 다물고 더이상 언급도 않고 있다. 이후에도 꾸준히 세월호 언급해 주는 건 민주당 뿐이다.

 

오히려 윤석열로 인해 자칭 진보의 실체가 드러났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다행스런 일이다. 저놈들은 노동자나 사회적 약자 소수자를 위한 진보를 추구하는 놈들이 아니다. 보편적인 인권이나 자유, 평등 등에 대해서도 전혀 관심이 없다. 저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이미 자신들이 속한 기득권집단의 권리고 자유고 평등이다. 종부세에 대해 침묵하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처음 부유세를 신설하자며 공약으로 들고 나왔던 것이 바로 자칭진보였다. 좆까는 것들이다.

다들 아다시피 국민의힘은 '중대재해처벌법' 자체에 대해 부정적이다. 그래서 아예 입법 자체를 반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도 정의당을 비롯한 자칭진보는 후퇴한 내용이나마 통과시킨 민주당만을 비판했을 뿐 국민의힘에 대해서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었다. 심지어 정의당의 당대표가 국민의힘을 '노동존중의 정당'이라며 찬양하기까지 했었다. 물론 표결에서도 정의당은 국민의힘과 같은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무엇을 말하겠는가.

 

윤석열이 '중대재해처벌법' 자체를 손보겠다는 말까지 했음에도 황운하의 사소한 말실수 하나보다도 반응이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뭐든 윤석열과 관련해서는 반박성명을 알아서 내던 정의당과 반박기사를 써주던 자칭진보언론들이 이런 문제는 철저히 침묵한다. 원래 정체성이 같기 때문이다. 노동자는 가난해야 한다. 힘들어야 하고 차별받아야 한다. 죽어나가야 하고 고통받아야 한다. 그래야 자기들에게도 설 자리가 있다. 그래서 이번 정부 내내 최저임금과 근로시간, 대체휴일을 비롯한 모든 노동문제에 대해 정의당은 현정부와 철저히 각을 세운 것이었다.

 

하여튼 윤석열이 여기까지 자기 본색을 드러내고 있음에도 그나마 중도적인 한겨레조차 누가 되든 상관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저임금과 주 52시간 근로가 사라지고 중대재해처벌법이 원상복귀되더라도 자신들과는 상관없다. 그나마 진보언론이랍시고 눈치보는 행보가 이런 정도란 것이다. 그렇자면 그 깊은 진심은 무엇일까. 민주당은 사실 아닌 것 가지고도 오만 비난을 들어야 하는데. 그게 자칭 진보란 것이다. 버러지새끼들이다.

재미있지 않은가? 최저임금제와 52시간 근로제를 폐지하겠다는 윤석열의 발언에 대한 자칭 진보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최소한 적극 반대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들 발언 때문에라도 대통령 후보로서 자격에 문제가 있다는 식의 반응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반면 황운하의 윤석열 지지자들에 대한 발언은 바로 즉각적으로 격렬하게 튀어나온다.

 

재미있는 것은 바로 그 자칭 진보가 바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 지지자들을 4050 남성 기득권으로 정의하고 배제를 주장한 당사자들이란 것이다. 상대편의 지지층을 비하하고 매도한 것은 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습다. 아니 그래서 더 의문이 든다. 이런 식의 공격에 반응하는 것은 대개 당사자들이란 것이다. 나경원이 '달창'이라 했을 때도 정작 자칭진보들은 별 말이 없었다. 오히려 공조하는 놈들이 더 많았다. 남의 일이고 상대편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환웅하의 발언에 대해서는 어째서 그리 격렬히 반응했던 것일까? 황운하가 말한 대상에 자신들도 포함되어 있어서?

 

전부터도 말했었다. 자칭 진보는 최저임금이니 52시간 근로니 하는 것에 그리 크게 관심이 없다고. 심지어 중대재해법 같은 경우도 아예 법안 자체를 반대하는 국민의힘을 두고 '노동존중의 정당'이라 헌사할 정도로 그 입장이 국민의힘과 크게 차이가 없었다. 그래서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자칭 진보인 것이고. 그래서 정작 정의당 대선후보인 심상정도 윤석열은 내버려두고 이재명만 물어뜯고 있는 것이다. 윤석열을 당선시키기 위해 진보를 분열시키고자 출마한 것이니까.

 

그래서 과연 흥미롭다는 것이다. 과연 자칭 진보가 윤석열을 비판하는 순간이 올 것인가. 최소한 이재명과 비슷한 수준으로 윤석열을 공격하는 그 때가 오기는 할 것인가. 그럴 리 있나. 벌써 여기저기서 커밍아웃하며 윤석열 지지를 선언하기 시작했을 텐데. 그게 자칭 진보의 정체성이란 것이다. 이제 정의당에 남은 정체인 것이고. 웃기지도 않는다.

기억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자체로 아재 인증일 것이다. 아니 할재인증일까?

 

"우리는 민족중흥의 사명을 띄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되살려..."

 

국민교육헌장이다. 유럽의 계몽주의는 유교의 왕도정치에서 영향을 받아 나타난 사상이었다. 소수의 권력자, 지식인들이 다수의 무지한 백성들을 가르치고 올바로 이끌며 그들이 겪는 현실의 문제들을 해결해준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이성과 합리에 근거헤 국민을 위한다던 계몽주의 아래에서 계몽군주들은 절대왕정 때보다 더 강한 권위를 누리고 있었다. 당연했다. 절대왕정의 군주란 궁정의 군주였지만 계몽군주는 국민의 군주였기 때문이었다.

 

근대적인 국민교육이 시작된 것도 이 무렵부터였다. 그리고 당연하게 이때 계몽군주와 소수의 지배계급에 의해 시작된 국민교육은 그야말로 국민을 만드는 교육에 집중하고 있었다. 아직 촌락단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당시 사람들에게 국가라는 개념을 주입시키고, 그 국가의 상징으로써 군주를 충성의 대상으로 각인시켰다. 그러므로 모든 개인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더 효율적으로 자신을 희생하며 헌신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식들까지 가르쳤다. 1차세계대전이 일어나고 무산계급의 해방을 외치던 사회주의자들마저 자기 조국과 군주를 위해 기꺼이 자원해서 전장에 나가고 수도 없이 죽어나간 이유였었다.

 

바로 그런 근대의 기반 위에서 전체주의도 만들어진 것이었다. 국가의 모든 구성원은 국민이었다. 하나의 정체성과 하나의 목표와 지향을 가지고 하나로 단결해야 하는 객체들이었다. 그렇게 이념화했고 교육했고 선동했으며 마침내는 그를 동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전체주의 체제 아래서 독재자는 이전 어느 군주도 누리지 못한 최고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다. 과연 이전 어느 군주가 히틀러처럼 효율적으로 학살을 주도하고, 스탈린처럼 전국민을 조직화하여 수 천 만에 이르는 이들을 숙청할 수 있었겠는가. 마오쩌둥이 일으킨 문화대혁명 역시 거의 중국 전토에서 준동한 사건이었었다. 내가 곧 국가이고 내가 곧 정의이며 그러므로 내가 가리키는 것이 반드시 옳은 것이다.

 

한국 여성주의가 처음에는 일제와 그 다음에는 군사독재와 유착했던 이유인 것이다. 그들 역시 기득권이었다. 많이 배운 지식인이었고, 그 전에 무산자들을 착취하던 지주 자본가의 일원이었었다. 그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여성주의란 계몽의 주제였었다. 국민이란 그를 계몽해야 할 대상에 지나지 않았었다. 그러므로 강제로라도 여성주의를 받아들이도록 해야 한다. 여성주의에 복종하도록 해야 한다. 여성주의만이 선이며 그런 여성주의를 주장하는 자신들이 정의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은 그들의 위에서 군림하며 지도할 정당한 권리를 갖는다.

 

이수정이 참 솔직하다. 아니 전부터도 신지예니 장혜정이니 열심히 솔직하게 떠들어대고 있었던 것이다. 남자라서가 아니다. 이수정의 아들은 특별하다. 당연하다. 있는 집에서 제대로 된 고차원적인 교육을 받고 자란 엘리트인 때문이다. 너희는 그렇지 못하다. 하다못해 이준석조차 그 수준에 이르지 못한다. 그러니 가르치겠다. 바꾸겠다. 자신의 논리와 주장 아래 가두겠다. 주체로서 이해하려 하기보다 객체로써 강제하려고만 한다. 누구의 방식과 닮았을까?

 

그래서 여성주의자들이 민주진영을 싫어하는 것이다. 자칭 진보가 여성주의와 손잡은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자칭 진보에 남은 것이라곤 여성주의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에 대해 자칭 진보가 뭘 하고 있었을까? 노동자들의 권익을 개선하기 위핸 최저임금인상이나 근로시간단축, 최근의 대체휴일에 대해서 자칭 진보들은 어디서 뭘 하고 있었을까? 오히려 중대재해법에 반대하는 국민의힘을 두고 노동존중의 정당이라고 찬양하던 놈들이다. 자기들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아예 법안 자체를 반대하는 국민의힘과 손잡은 놈들이었다. 

 

국민은 주체가 아니다. 개인은 주체가 될 수 없다. 그들이야 말로 계몽의 대상이다. 그런데 계몽의 대상이어야 할 국민들이 마치 주인처럼 설치고 다니고 있다. 한겨레가 괜히 민주당 싫어하는 게 아니란 뜻이다. 괜히 자기들 기사 트집잡는 지지자들 싫다고 덤벼라 문빠들을 시전한 것이 바로 한겨레였다. 너희 주제들이. 너희 따위들이. 그래서 저들은 정서적으로 국민의힘에 더 가까운 것이다. 성희롱이라면 성희롱이다. 성추행이라면 성추행이다. 근거를 요구하는 자체가 2차 가해다. 증거를 요구하는 자체가 2차가해다. 논리를 요구하는 자체가 2차가해다. 자살도 2차가해다. 아무것도 하지 마라. 그리고 KBS는 본격적으로 그 본색을 드러냈었다.

 

사실 지난 촛불정국부터 시작된 갈등이기도 하다. 같은 여성이다. 최순실마저 같은 여성이었다. 김건희도 여성이기에 감히 비판하려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오히려 김건희가 영부인이 되는 것이야 말로 여성주의의 승리일 수 있다. 윤석열을 비판하는 민주당 진영의 말꼬리를 핀셋으로 잡아 비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박근혜가 물러난 순간 여성주의와 민주진영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그것이 지금 여성주의가 적이 된 이유다.

 

아무튼 이수정 덕분에 더 확실해졌다.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었구나. 하긴 대부분 여성주의자들이 비슷할 것이다. 여성주의라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대부분 면면들이 거의 이런 부류들일 테니까. 무산자 남성 뿐만 아니라 무산자 여성까지도 저들에게는 단지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이 실제 겪고 주장하는 모든 현실들도 단지 계몽해야 할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여성주의에는 여성조차 없다. 혐오하는 이유다. 혐오하는 게 너무 당연하다. 

한 마디로 인권변호라는 건 돈이 안 된다. 그래서 박원순이 빚쟁이로 살았던 것이었다. 당연한 것이 자기 돈 내고 변호사 고용할 정도면 인권변호사가 나설 이유가 없다. 대부분 인권변호란 돈도 안되면서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는 사건들에 대해 수임료와 상관없이 자발적으로 변호에 나서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런 사건들 변호해 과연 최소한의 생활이라도 유지하는 게 가능하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권변호사라고 해도 평소에는 다른 변호사와 마찬가지로 일반재판을 맡아 변호를 하다가 필요하다 여기는 경우에만 인권변호에 나서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 일반재판들을 맡아 수임료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생활도 하고 사무실도 유지하면서 인권변호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변호사로서 재판에서 변호가 필요한 의뢰인이 있어서 의뢰를 받았는데 그 사건의 내용을 가지고 비판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경우일 것인가. 존속살인범이든 연쇄강간범이든 희대의 사이코패스든 재판에는 반드시 변호사가 동석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아예 변호사도 선임해서는 안된다고?

 

몰라서라기보다 또 지랄이란 것이다. 아주 악랄한 지랄이다. 대중의 무관심과 무지를 이용한다. 단어의 단편적인 뜻을 이용해서 의미를 극단적으로 순정화한다. 인권변호사란 이런 것이다. 인권이란 이런 것이다. 현정부에 대한 대부분 비판들이 그러했다. 코로나든 경제든 인권이든 뭐든 하여튼 가장 이상적인 상황을 전제하여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비판한다. 가장 이상적인 도덕성과 역량과 성과들을 전제한 뒤 그에 미치지 못하므로 비판해야 하는 것이다. 인권변호사는 수임하는 사건 모두가 인권과 관련된 것이어야 한다. 누가 정의했을까?

 

변협이 나서는 이유인 것이다. 인권변호사란 그런 것이 아니다. 변호사란 직업이 그런 것이 아니다. 기자는 사실을 취재해서 기사를 쓴다. 그 당연한 정의조차 지키지 못하는 기레기 새끼들이 남의 직업에 대해서는 참 버러지같이 엄격하다. 자칭 진보란 버러지 새끼들도 또 여기 한 마디씩 끼는 모양이다. 똥에는 버러지가 낀다. 그런데 똥에서 기어나온 버러지가 때로 비싼 옷을 더럽히기도 한다. 진짜 역겨운 것들이다.

중국 전설상의 명검 간장과 막야에 대한 이야기다. 어느날 오나라의 명검장인 간장이 명검을 만들자 초나라 왕이 이를 빼앗기 위해 간장을 죽였다. 아내인 막야가 도망쳐서 유복자를 낳고 명검을 만드는 비법을 전하고 복수를 당부한 뒤 죽으니 아들이 역시 명검을 만들어 초나라왕에게 복수하고자 했다. 하지만 원수는 한 나라의 왕이었고 수만의 군사들이 지키고 있었기에 방법이 없어 고민하는데 길가던 협객 하나가 그를 보고는 자신이 복수를 도와주겠다며 대신 명검과 아들의 목을 달라고 했다. 아들이 기꺼이 이를 받아들여 명검과 자신의 목을 건네니 협객이 그 목을 가지고 초나라왕을 찾아가서 간장의 아들을 죽였다고 말하고는 기회를 봐서 자신의 목과 함께 왕의 목을 쳐서 아들의 목과 함께 끓는 솥 속에 떨구었더라. 이런 게 바로 복수란 것이다.

 

게르만족의 전설인 '니벨룽겐의 반지'에서도 사랑하는 남자의 복수를 위해 이민족을 끌어들여 한 나라를 멸망시키는 이야기가 나온다. 햄릿도 그렇게 자기가 원수라 여기던 삼촌을 죽이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고 끝내는 자신마저 목숨을 잃고 말았었다. 자기가 충성을 바치기로 한 주군의 복수를 위해 얼굴과 목소리까지 망가뜨리고 선비로써 자신의 명성과 체면마저 뒤로 한 채 비참한 몰골이 되어 기회만 노렸던 예양의 이야기도 유명하다. 그리고는 끝내 조양자의 옷이라도 베어야겠다며 벗어놓은 옷에 칼질을 하고 스스로 목숨까지 끊었었다. 복수란 것이다. 세상에 가장 강한 감정이 하나는 공포고 하나는 증오다. 상대의 존재 자체를 용납할 수 없다. 어떻게든 상대에게 대가를 돌려주어야 한다. 그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희생따위 아랑곳하지 않는다. 복수를 위해 스스로 원수에게 몸을 팔고, 가족마저 죽음으로 내몰고, 자신의 신세마저 망치는 이들이 어디 한둘인가. 

 

윤석열이 보이는 굳건한 지지율의 원천인 것이다. 복수해야 한다. 정권을 잃은 복수를 해야 한다. 그래서 뜨뜻미지근한 홍준표로는 안되는 것이었다. 확실하게 복수를 해 줄 윤석열을 원한 것이었다. 조국을 통해 직접 확인까지 시켜주었다. 조국에게 그랬던 것처럼 문재인도 윤석열이라면 확실하게 죽여 줄 수 있다. 민주당도 확실하게 조져 놓을 수 있다. 그런 당위 앞에서 다소의 무능이나 부패 같은 문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자칭 진보들이 자신들이 추구하는 진보적 가치와 전혀 상반되는 윤석열의 공약을 보고서도 한 마디 비판도 못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차라리 군사정권으로 시대가 역행하더라도 문재인만은 죽여야 한다. 민주당만은 거꾸러뜨려야 한다. 오세훈을 위해서 용산참사 발언에 침묵했던 것처럼, 윤석열과 관련한 모든 의혹들에 대해 침묵하는 것 역시 모두 그를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얼마간 더 흠결이 보인다고 저들이 입장을 바꿀 이유가 없다. 나라가 망하고 자기가 죽더라도 복수는 반드시 해야만 한다.

 

반면 이재명의 경우는 민주당 지지층에서마저 적극적으로 지지의사를 밝히지 못하는 이유부터가 자신의 신념과 가치, 이해와 관련한 어긋남 때문이었다. 문재인 정부를 신뢰할 수 없다. 민주당을 이대로 전적으로 믿고 지지할 수 없다. 이유를 보여주어야 한다. 이유를 확인시켜주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민주당을 지지하고 이재명에게도 표를 줄 수 있다. 윤석열의 과오만으로는 안된다. 가치와 지향이란 미래를 향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야 말로 민주당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재명이 영리하다는 이유다. 이재명의 행보는 철저히 여기에 맞춰져 있다. 윤석열에 대한 비판보다 자기가 만들어갈 대한민국에 대한 약속들에 집중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이완된 지지층을 결집시켜 49:51의 싸움으로 되돌려놔야 한다. 아무리 문재인 정부에 대한 반감이 강하더라도 자신의 현실과 미래까지 걸고 복수에 나서려는 사람이 절대 과반을 넘기기 힘들 것이다.

 

최근 이재명이 지지율에서 윤석열을 바짝 추격하고 나선 이유일 것이다. 윤석열의 지지율은 크게 변화가 없다. 대신 이재명의 지지율이 오르고 있다. 결집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이재명이 보인 행보에 지지층들이 다시 결집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이해하면 된다. 자칭 보수들의 윤석열에 대한 비판에 귀기울일 필요가 없다는 근거다. 어차피 저들은 윤석열의 인물을 보고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윤석열의 능력이나 자질, 인품 등을 보고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자칭 진보 역시 마찬가지다. 저들이 윤석열을 지지하는 이유는 오로지 하나 복수 뿐이다. 문재인을 죽일 수만 있다면 윤석열이 어떤 놈이든 자신들이 다 감당할 수 있다. 평소 윤석열 욕했다고 윤석열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란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당이 노려야 할 것은 그 사이에 있는 이해에 충실한 중도층과 민주당의 정체성에 공감하는 기존의 지지층이어야 한다.

 

이것 한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복수는 자신의 희생까지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복수를 위해서라면 세상이 멸망하더라도 기꺼이 웃으며 받아들일 수 있다. 문재인을 지키겠다던 자칭 문빠들이 어느새 윤석열의 편에서 그의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현실도 그런 연장이라 할 수 있다. 지난 경선에서의 사소한 불쾌감을 아직도 부여잡고 자신들이 지지한 대통령을 죽일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재명을 죽이기 위해 윤석열을 지지한다. 이재명만 죽일 수 있으면 문재인이야 죽든 말든 그들에게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그렇다. 감정은 때로 본능보다 지독하다. 이번 선거의 최대 구도일 것이다. 복수와 이해, 과거와 미래, 이재명도 알고 아마 윤석열도 알 터다. 정말 뭣같은 선거가 될 듯하다.

전쟁이란 곧 상대의 의도를 부정하고 거부하는 것이다. 이른바 전장의 주도권이란 것이다. 내가 싸울 곳과 장소와 조건을 결정한다. 먼저 유리한 지점을 점령하고 내가 유리한 때에 내가 유리한 조건에서 싸우도록 상대에게 강요한다. 사실상 대부분 전략과 전술들은 그를 위한 기술에 지나지 않는다.

 

이순신이 부산으로 진격하라는 조정의 명령을 거부한 이유였다. 제갈량이 몇 배나 강한 위를 상대로 항상 공세를 펼칠 수 있었던 이유였다. 그리고 사마의가 그를 저지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일본군이 이미 진을 치고 방어를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친 부산으로 진격해봐야 이기더라도 피해만 클 뿐이었다. 위가 촉으로 넘어오지 않는 이상 전쟁을 결정할 권리는 오로지 촉군에 있었다. 하지만 촉이 기산을 넘어온 순간 주도권은 위로 넘어온다. 맞서 싸우지만 않으면 된다. 괜히 맞서 싸우다가 제갈량에 크게 혼난 것이 바로 단곡전투였다.

 

내가 유리한 전장이 있다. 기병이면 평지가 유리하고, 보병이면 산을 끼고 방어하는 것이 유리하다. 공격하는 입장이면 평지에서 회전을 펼치는 것이 유리하고, 방어하는 입장이면 성을 끼고 농성하는 것이 유리하다. 그래서 병자호란 당시 청군은 조선군에 유리한 조건을 허용하지 않기 위해 오로지 한양만 바라고 기습공격을 펼쳤던 것이었다. 중간에 산성들은 아예 무시했다. 잡다한 병력들은 무시한 채 오로지 한양만을 바라보고 기병을 동원해 돌격했었다. 그것이 자신들에 유리한 전장일 테니까. 반면 고수전쟁에서는 요하에서 평양이라는 지리적 거리를 이용해서 적의 주력을 끌어들여 괴멸시키는 승리를 거두기도 했었다. 누가 더 자신이 유리한 전장에서 상대의 불리를 강요하는가. 승리의 조건이다.

 

적이 뭔 생각을 하는가는 중요치 않다. 적이 그를 위해 어떤 계획을 세우고 준비했는가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하려 하고 그를 위해 어떤 조건들을 가지고 있는가다. 그러므로 자신은 무엇을 어디까지 할 수 있다. 그러면 그 안에서 상대를 자신의 싸움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국민의힘이 잘하고 민주당이 못하는 부분이었다. 차라리 우기더라도 국민의힘은 자기들 논리 안에서 자기들 주장 속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조건 위에서 모든 결정을 내리려 하고 있었다. 반면 민주당은 협치라는 이름 아래 그런 국민의힘이 준비한 전장에서 어렵게 끌려다니기 일쑤였다. 언론이 그리 몰아간 때문이라 하지만 의석차이가 거의 수 십 석 이상 나면 그런 변명도 의미없는 것이다.

 

해야 하면 한다. 할 수 있으며 한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너무 쉽고 간단한 논리다. 그래서 반대하면 짓밟고 넘어간다. 협상을 요구한다면 민주당에서 주도해서 협상을 끌어간다. 하긴 그런 게 리더십일 것이다. 대부분 평범한 개인들은 책임지고 그런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그런 결정을 자기 이름으로 내릴 수 있는 이들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는 것이다. 그 이름을 걸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행동에까지 옮겼기 때문에.

 

이재명이 민주당을 데리고 보였던 퍼포먼스에 대한 뒤늦은 생각이다. 이런 게 리더십이구나. 이런 게 없어서 그동안 민주당이 지지부진했던 것이구나. 이낙연이어서는 안되었다는 새삼스런 깨달음이기도 했다. 너무 국민의힘의 이야기를 들었다. 국민의힘의 입장에서 생각했다. 언론에 귀를 기울이고 언론의 주장까지 내면화했다. 될 일도 안된다. 해야 할 일도 못한다. 그만한 힘을 있는데 그 힘을 쓰지 못한다. 그럴 수 있고 그래도 된다면 그러면 된다. 너무 쉽지 않은가.

 

이재명의 민주당을 기대하게 되는 이유인 것이다. 솔직히 이 부분에서는 이재명이 문재인 대통령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인격적으로는 분명 더 훌륭하다. 비교할 수 없이 더 훌륭한 것이 맞다. 하지만 정치란 인격을 도야하는 도량이 아닌 어느 한 편의 이해와 지향과 추구를 관철하는 전장인 것이다. 싸워서 이겨야 한다면 이기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 진심만으로 통하는 전장이란 항상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왕도가 안되면 권도로, 그도 안되면 패도로, 그래도 안될 것 같으면 마도의 힘이라도 빌려야 한다. 정정당당하게 패하고 죽는 것은 아무 책임없는 필부필부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협치하고 싶으면 국민의힘이 먼저 굽히고 나서라. 얼마나 이낙연의 민주당이 국민의힘에 얕보였으면. 언론도 하찮게 보고 비웃고 있었다. 그래서는 안된다. 우습게 보여서는 자신이 주장하는 바를 앞장서서 내세우지도 못한다. 이재명의 가치다. 민주당이 비로소 제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당대표가 소소한 잡놈이라 다행인 이유다. 오히려 송영길이 낫다.

베르베르 베르나르의 소설 '개미' 중에 개미를 좋아하다가 개미의 잔혹한 본능을 보고는 오히려 혐오로 돌아선 과학자가 한 사람 나온다. 오래전 내가 우연히 알게 된 사회복지 공무원 가운데 비슷한 이유로 복지의 대상이 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해 혐오감을 가지던 이들이 있었다. 가난한 사람은 이래야 한다. 소외된 사람은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들 또한 주체적인 사고를 하는 독립된 인격으로서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악착같이 현실에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거부하게 된다. 저런 건 내가 생각하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이 아니다.

 

이재명이 자기 부인을 위해 일정까지 취소했을 때 진중권이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일반 직장인들이 그랬다가는 잘린다. 그러라고 있는 연차다. 설사 연차 다 썼더라도 휴직이라는 제도도 있다. 휴직이 아니더라도 사정을 말하고 양해를 구한 뒤 출근을 늦출수도, 조퇴할수도, 아니면 결근하는 것도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내가 다니는 그리 대수롭지 못한 직장에서도 그런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런데도 굳이 진중권은 일반 직장인을 이야기했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진중권이 자칭진보이던 시절 머릿속에 이미지로 가지고 있던 일반 직장인의 모습이 그렇다는 것이다.

 

최저임금 논란이 한창이던 때 민주노총 위원장이란 놈이 '썰전'에 나와서 그런 개소리를 지껄인 적이 있었다. 편의점 알바들도 식대 교통비 받을 텐데 이런 비용들까지 최저임금에 산정하면 피해를 보게 될 것이다. 내가 편의점 알바 해 봤거든? 식대 없었다. 그나마 유통기한 지난 이른바 폐기 식품들을 거저 가져가서 먹을 수 있는 정도였다. 교통비? 세상에나 그런 훌륭한 소리를. 망상이다. 현실을 보지 않고 자기 머릿속에 구축된 이미지로 대상을 판단한다. 전에도 말한 적 있을 것이다. 어째서 자칭 진보는 무식한가. 사실을 사실 그대로 객관적으로 보려 하지 않고 주관적 이미지에 끼워맞춰 판단하려 한다. 드러난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기계적으로 조국에 대한 비난부터 쏟아내는 손석희가 그런 경우다. 내가 옳다고 여기므로 사실여부와 상관없다.

 

그래서다. 자칭 진보가 오히려 수구들과 더 가까이 지낼 수 있는 것은. 탈원전을 위해서는 원자력발전소가 여전히 지어지고 있어야 하고 오히려 더 늘어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점진적으로 탈원전이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탈원전을 주장하는 자체가 어색하다. 그래서 현정부의 탈원전을 비난하며 탈원전을 주장하는 이중성을 아무렇지 않게 보인다. 최저임금을 올려야 하는데 그러자면 노동자들이 먼저 낮은 최저임금으로 인해 곤란을 겪어야 한다. 대체휴일제를 도입하기 위해서도 대체휴일이 없어 어려워하는 노동자가 있어야 하는데 벌써 도입되어 실행되면 불편한 것이다. 그러므로 벌써 내가 복무하던 시절에도 사정이 있으면 사후결재를 전제로 휴가를 연장할 수도 있었지만 그런 일들이 현실에서 일어나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러자면 어째야 하는가? 자기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노동자, 사회적 경제적 약자들의 모습 그대로 국민들이 남아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칭 진보 입장에서 국민의힘은 '노동존중의 정당'이고 민주당은 아닌 것이다. 차라리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것이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보다 진보적 가치와 지향에 부합한다.

 

국민의힘이야 말로 대한민국의 정통권력이라는 저들의 인식도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이를테면 정상상태다. 사회적 약자들이 억압당하고 차별당하는 것이야 말로 저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정상상태인 것이다. 여기서 모든 진보운동이 출발하는 것이다. 김학의가 무죄가 되어야 여성운동도 가능하다. 김학의를 처벌할 수 있는데 여성운동은 의미가 없다. 일단 이명박과 박근혜 상태에서 그를 극복하고 혁신하기 위한 진보운동이 일어나야 하는데 그보다 하나라도 더 좋아져서는 자신들의 이해를 넘어서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들의 진보운동을 위해서라도 사회를 정상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정당한 권력이 지배해야 한다.

 

그래서 한 편으로 저들은 민중을 혐오하는 것이다. 노동자라면 마땅히 자신들에 도움을 구걸해야 하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라면 당연히 자신들에 온정에 감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들끼리 북적북적 으쌰으쌰 새로운 대안을 찾고 하나씩 바꾸어 나가려 하고 있다. 오죽하면 자칭 진보에게 40% 가까운 민주당 지지자는 국민도 아니다. 그토록 혐오와 차별을 반대한다는 자칭 진보가 이들에 대해서만큼은 거리낌없이 증오와 저주의 발언을 내뱉을 수 있는 이유다. 대상이다. 주체가 아니다. 그런 대상 주제에 스스로 무언가를 하려 하는 것이 얼마나 끔찍스럽고 혐오스럽겠는가.

 

자칭진보 단체가 이번 대선에서 윤석열을 지지하고, 자칭 진보언론들이 그를 홍보하고 나서는 이유인 것이다. 심상정이 유독 이재명에게만 각을 세우고 윤석열은 무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겨레 역시 윤석열의 공약에 대해 적극적으로 비판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반기고 있을 것이다. 윤석열이 당선되고 윤석열의 공약대로 되어야만 비로소 자신들이 진보로써 바로 설 수 있다. 진중권이 변절한 것이 아니란 이유다. 변절이라기보다는 자칭 진보로써 더 선명해지려는 의도에 가깝다. 정의당과 한겨레가 과연 진중권과 다를 게 무엇인가. 원래 그런 부류들이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90년대 초까지 대학교 축제에서 락밴드를 보기 힘들었다. 락이란 미제국주의의 음악이었기 때문이다. 안치환이 락을 한다 했을 때 화제가 된 이유였다. 민중가수 출신인 안치환이 락을 한다는 자체가 화제가 되었을 정도로 운동권과 락은 거리가 있었다. 그런데 많은 민중가요들이 역시 미국 태생인 포크에 빚을 지고 있을 텐데?

 

음악 뿐만 아니라 읽는 책이며 보는 영상을 가지고도 지랄하는 선배들이 학교에는 적지 않았었다. 이른바 의식화란 것이다. 제대로 정신이 박힌 대학생이라면 이런 노래를 듣고, 책을 읽고, 영상을 봐야 한다. 학교 안에서 프락치라 의심된다고 집단으로 린치한 끝에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 괜히 일어난 것이 아니란 것이다.

 

그나마 힘이 없으니 출연거부인 것이다. 하긴 오세훈이 한겨레 광고 끊었다고 정의당이 논평을 내늘 걸 본 적이 없다. TBS 지원금을 끊었다고 비판하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없다. 민주당이 언론사나 기자를 고소고발하면 언론탄압이고 국민의힘이 대놓고 힘으로 언론을 찍어누르는 건 정당한 권리행사다. 자신들에 비판적인 언론사를 찾아가 직접 대화와 토론을 통해 입장을 밝히기보다 출연거부를 통해 그 존재와 영향력을 위축시키겠다. 힘이 없으니 출연거부지 힘이 생기면 도대체 뭘 어쩌겠다는 것일까.

 

심상정이 말하는 단일화가 의미없다는 이유가 여기서도 나오는 것이다. 국민의힘이나 검찰이 언론을 협박하고 회위하고 억압하는 것에 대해서는 한없이 침묵하며 오히려 그를 닮으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에 비해 민주당은 조금만 언론에 비판적이어도 탄압이라는 극단적이 표현까지 쓰고 있었다. 과연 저들이 말하는 언론의 자유란 무엇인가. 그보다 저들에게 정서적으로 가까운 유대의 대상은 누구일 것인가.

 

아무튼 나도 김어준 개새끼라 여기지만 그렇다고 공당이 되어 자기들에 비판적인 말 몇마디 했다는 이유로 출연거부까지 하는 걸 보고는 저 새끼들 또 저 지랄이라는 말 밖에 할 말이 없다. 저들이 바라는 언론의 자유다. 그리고 그들이 생각하는 용인할 수 있는 자유의 한계인 것이다. 광주왜곡과 세월호 비난은 상관없지만 심상정 비판은 안된다. 씨발년들.

춘추시대 최초의 패자였던 제환공, 그러나 그 말로는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굶어죽다니. 그리고 시신까지 한참동안 방치되어 구더기가 잔뜩 슬어 있었다 한다. 관중과 포숙아를 재상에 임명하여 전성기를 연 군주였지만 그가 말년에 임명한 재사가 수초, 개방, 역아였던 때문이다. 

 

역사상 자신의 무능에도 신하를 잘 두어 성세를 이룬 군주가 적지 않았다. 아마 삼국지의 유선도 그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유비의 고명을 받은 제갈량과 그 제갈량의 추천으로 재상에 오른 장완과 비의가 보좌하는 동안 촉한은 몇 배나 강한 조위를 군사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무시할 수 없는 나라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비의까지 죽고 유선이 직접 인선하여 재상을 임명하고 국정을 이끌어야 할 상황이 되자 모든 것이 반전되었다. 괜히 유선의 아명인 '아두'가 바보의 대명사가 된 것이 아니다. 군주 자신의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주변의 인재의 도움을 받은 성세는 결국 그 한계를 맞이하게 된다. 하물며 과연 자신이 능력이 안되는데 능력있는 인재를 등용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가.

 

중국 명왕조의 정통제가 가장 신임했던 인물은 환관인 왕진이었다. 글도 한 줄 못 읽는 무식쟁이였지만 그러나 정통제를 어려서부터 보살핀 인물이었기에 나중에 왕진의 무능으로 인해 적군에 포로로 잡혔다가 황위까지 잃었음에도 복위하고 나서 그 복권을 시도했을 정도로 정이 깊었다. 하마트면 그때 정통제만 포로로 자히는 것이 아니라 아예 명 자체가 망할 뻔 했었다. 그리고 그 정통제가 복위하여 천순제가 되었을 때 가장 먼저 한 일도 그때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충신 우겸을 죽이는 것이었다. 장거정의 보좌를 받아 다시 성세를 회복하던 명을 수렁에 빠뜨린 만력제는 말할 것도 없다. 장거정이 부패했다는 이유로 아예 국정을 돌보지 않아 명은 다시 일어설 수 없을 만큼 피폐한 지경에 이르고 만다.

 

벨리사리우스란 역사에 남을 명장을 거느리고도 그를 의심하여 홀대한 유스티니아누스는 어떨까? 유스티니아누스는 그 자신도 역사에 남을 뛰어난 황제였지만 그러나 벨리사리우스란 명장을 휘하에 두고 거느릴 정도의 인물은 아니었다. 그래서 벨리사리우스의 말년 역시 상당히 비참했었다. 항상 그와 비교되는 이순신 또한 선조의 의심과 견제로 수많은 고초를 겪어야 했었다. 하긴 그러고보면 유선도 황호의 참소를 믿고 전장에 있던 제갈량을 소환하기도 했으니 자기보다 뛰어난 인물을 밑에 두고 거느린다는 건 권력자에게도 상당히 난이도 높은 과제일 것이다.

 

한 마디로 알아야 한다. 삼국지에서 유비가 그렇게 멍청하게 묘사되지만 유비가 살아있을 적 그의 부하들은 감히 함부로 유비를 속이거나 이용할 마음을 먹지 못했었다. 조조와 비견할만한 당대의 영웅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비 휘하에는 간신이라 할 만한 인물조차 없었다. 조조 역시 그 자신은 다시 없을 개자식이었지만 그 휘하에 그를 속이거나 이용하려는 간신은 없었다. 최소한 맥락은 알아야 속지 않고 이용도 당하지 않는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이 있어야 의심하지 않고 충실하게 그 역량을 활용할 수 있다. 무엇보다 누가 뛰어난 인재인지 알아볼 안목이 있어야 한다. 그 또한 오로지 자신의 역량을 근거로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대본이 없으니 연설도 하지 못한다. 가벼운 인삿말이라도 할 수 있다. 농담으로 분위기라도 띄울 수 있다. 그러고보니 인간의 지능이란 사회화와 관련이 있다고 했었다.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만들고 유지해나가는가, 아니 그 관계를 이해하고 자신의 위치를 정립하는가 하는 고도의 연산을 위해 인간의 지능은 발달해 왔었다. 그 최소한의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그저 멍하니 기다리고만 있다. 그러고보니 딱 자칭 진보가 좋아할만한 인재상이기는 하다. 자칭 진보가 왜 윤석열을 물고빠느라 정신없는지 알겠다. 말했듯 자칭진보도 텍스트와 레퍼런스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병신들이 대부분이거든. 텍스트와 레퍼런스에 종속되어 자기 사고와 판단까지 잃은 버러지들이다.

 

박근혜가 괜히 최순실따위에 휘둘려 권력을 그따위로 방기하고 남용했겠는가. 그런데도 자기가 전문가들 기용해서 전적으로 맡기고 책임만 모두 지겠다. 전두환도 그랬었다. 그런데 전두환도 그렇게 무능한 인물은 아니었다. 자기가 사악해서 그렇지 대본 없이는 말도 못하는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당장 문재인 대통령만 해도 주위에서 당대표시절부터 함께했던 경제전문가들이 사라지자 홍남기 따위에게 잡혀 휘둘리고 있는 것을 보라. 자기가 경제전문가가 아니니 홍남기가 하는 말에 어쨌든 설득당하고 따라갈 수밖에 없다. 

 

해당 분야의 전문가라고 전문적인 지식은 해박할지 몰라도 그 의도까지 항상 정직하고 선한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이용해 사익을 취하려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더구나 전문가라고 그가 추구하는 방향이 항상 모두를 위해 옳을 것이란 보장도 없다. 그것을 통제하고 감시하고 관리하는 게 바로 리더의 역할일 터다. 하지만 사신이 그럴 역량이 되지 않는다. 어떻게 되겠는가.

 

정도전이 재상총재제를 주장한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왕은 하늘이 내리는 것이다. 즉 혈통에 의해 계승되는 것이다. 그러니 왕의 핏줄이 왕이 되었다고 항상 선량하고 유능하리란 보장이 없다. 그러므로 왕은 그저 명분과 정통성을 가지고 그 자리를 지키고 능력과 성품을 검증받은 재상이 그를 보좌하도록 한다. 아, 왕이었지. 손에 왕자 쓰고 있었던가. 왕이라면 그래도 된다. 하늘이 내린 존재니까. 선량할 필요도 유능할 필요도 없다. 그냥 왕의 핏줄이면 된다. 그래서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다. 하긴 윤석열도 서울대라는 왕의 혈통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서울대 빼고 뭐가 있는가. 그런데도 서울대니까. 서울대는 뭐든 잘한다. 서울대 출신들의 자부심이다. 자칭 진보까지 윤석열 지지에 나서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니까 서울대고 사법고시 출신인 자신이 왕이 되어 재상을 유능한 사람으로 임명하겠다. 시대착오도 이런 시대착오가 없다. 바닥이 너무 얕다. 절망적일 정도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