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완벽한 완전한 자유란 어떤 것일까? 초경도 시작하지 않은 어린 딸을 강간해도 상관없다. 남의 집 어린 딸을 데려다가 강간하고, 남의 아내를 유인해서 불륜을 저지르고, 심지어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강간하고 약탈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떤 책임감도 죄의식도 가질 필요 없이 자기 마음대로 하면 된다.

 

'오징어게임'에서도 나왔을 것이다. 사람을 죽이면서도 그것이 신의 뜻이라 말하던 어느 성직자가. 새벽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지영의 생부의 직업 또한 목사였었다. 어려서부터 지영을 상습적으로 강간하고 아내마저 때려죽인 그는 신에게 용서를 구했고 용서받았다 말하고 있었다. 신의 뜻이므로. 신이 예정한 것이므로. 신이 용서했을 것이므로. 그러니 마음대로 해도 상관없다. 신이 대신해서 다 책임지고 용서해 준다.

 

그래서 역사상 가장 끔찍했던 범죄들은 거의 종교의 이름 아래 저질러지고 있었다. 사람을 고문하고, 학대하고, 강간하고, 가장 잔인한 수단으로 살해하면서, 그 재산까지 약탈하는 모든 행위가 신의 이름 아래 정당화되고 용서되었다. 그러므로 절대적인 신의 존재 아래 인간은 무한히 자유로울 수 있었다. 살인할 자유, 강간할 자유, 약탈할 자유, 고문할 자유 등등등... 대신 그만큼 사람들은 더욱 신에게 간절히 복종해야만 했다. 그러므로 가장 인간과 거리가 먼 이들이 가장 신에게 투철했었다. 신에게 철저할수록 인간과의 거리는 멀어졌었다. 그냥 인류사의 보편적 법칙이라 보면 된다.

 

과연 자유란 것이 인간에게 그저 좋기만 한 것인가. 그 대표적인 예로 흔히 드는 역사상의 사례일 것이다. 미국에서 노예를 해방시켰더니 정작 노예였던 흑인들이 옛주인을 찾아가서 쫓아내지 말라 하소연하더라. 노예로 있을 때는 그저 주인이 시키는대로만 하면 자신 뿐만 아니라 가족들까지 굶지 않고 몸을 누일 집까지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자유민이 되고 나니 그 모든 것을 자기 능력으로 해결해야 했다. 무엇보다 무엇을 해서 먹고 살아야 할 지 스스로 고민해서 선택해야만 했다. 과연 그것은 그들에게 자유로 여겨졌을 것인가.

 

이명박근혜 때는 좋았다. 전두환노태우때는 더 좋았다. KBS가 굳이 노태우에게 전대통령이란 호칭을 붙여 쓰는 이유인 것이다. 그때는 굳이 머리로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발로 뛰어 취재할 필요도 없었다. 어떤 뉴스가 나갈지는 안기부에서 결정했다. 어떤 뉴스를 보도해도 되는지 역시 정부에서 알아서 판단해서 결정해 주었다. 그에 대한 모든 책임은 정부에 있다. 자기들 책임이 아니다. 가짜뉴스가 방송을 타는 것도, 그로 인해 무고한 희생이 생기는 것도 역시 당시 정부의 잘못이지 자기들 잘못이 아니다. 그래서 세월호참사도 박근혜 정부의 잘못이지 언론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랬어야 했는데 민주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팩트체크란 예전엔 없던 것이었다. 그냥 언론이 보도하면 팩트다. 닭과 소가 교미해서 고양이가 태어났다 기사를 써도 언론이 보도햇으니 팩트여야 했다. 언론이 보도했으니 검찰이 증거를 찾았든 못찾았든 이재명은 배임이 되어야 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감히 언론이 보도한 내용에 대해 대중이 검증하며 나서기 시작한다. 사실이냐? 진짜냐? 구체적인 내용이 어떻게 되는가? 외신과 비교하며 비판하는 이들마저 생겨났다. 오죽하면 한겨레 기자가 자백하고 있었겠는가. 이명박근혜시절이 자기들에게도 더 나았다.

 

윤석열이 아예 대놓고 언론을 무시하고 억압함에도 오히려 언론이 미쳐 날뛰며 지지하는 이유인 것이다. 홍준표가 한국의 언론자유지수를 비판할 때 동조하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인 것이다. 언론의 자유란 누군가 시키는대로 가짜뉴스도 마음대로 퍼뜨릴 수 있는 자유인 것이다. 언론의 보도에 대해 언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대신 책임지는 자유인 것이다. 그 자유의 대가란 굴종이며 순종이다. 권력의 개가 되었을 때 언론은 비로소 최대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그래서 신이 되어야 한다. 무오류의 존재가 되어야 한다. 오히려 국민의힘처럼 다양한 억압수단을 동원해서 언론을 통제하려 하면 언론은 비로소 기뻐하게 된다. 자신들의 주인이 여기 있다. 오세훈을 신나게 비판하다가 광고로 억압하려 드니 한겨레가 찌그러드는 이유다. 민주당이었으면 어림도 없다. 국민의힘이니 가능하다. 민주당은 그저 고발만 해도 지랄인데 국민의힘은 그 고발을 몇 번을 반복해도 그저 순응할 따름이다. 나를 개로 만들어달라. 버러지로 다뤄달라. 민주당이 잘못한 것이다. 언론인들이 바라는 언론의 자유란 그런 자유가 아니었을 텐데.

 

지금 당장이라도 기자들 목에 개목걸이 채우고 코에 뚜레를 걸어 끌고 다니면 좋아라 질질 쌀 놈들이 차고 넘칠 것이다. 기자란 사람이 아닌 때문이다. 사람이란 자유의지가 존재하고 존엄을 가지기에 사람일 텐데 저놈들은 그냥 버러지새끼들이다. 사람이 아닌 것을 사람취급해줬으니 보복을 당해도 할 말이 없다. 이 말도 몇 번 째 반복하는지 모르겠다.

심상정 씨발년이 또 어디서 지 똥파먹는 소리 지껄였던데, 뭐라더라? 민주당과 대선후보단일화는 없다고? 이 년이 이제 미쳤나? 당장 어디 가서 이재명이 홍준표와 단일화 추진한다 말해보라. 바로 정신병원 데려간다. 미쳤다고. 그동안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추진한 정책과 법안 가운데 정의당이 동의한 것이 과연 몇 개나 있는가 보란 말이다. 어떤 정책이든 법안이든 민주당이 내놓은 것은 무조건 반대부터 하고 봤었다. 그러면서 거의 대부분 국민의힘과 행보를 같이 하고 있었다. 정의당이 보기에 국민의힘이야 말로 노동존중의 정당이면서 여성존중의 정당이지 않았는가.

 

그동안 정의당이 보여 온 행보가 그랬다는 것이다. 정의당과 민주당은 가는 길이 다르다. 오히려 국민의힘과 가는 길이 같다. 심지어 당대표 경선을 하면서는 반민주당이야 말로 정의당의 정체성이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었다. 모든 사안에서 민주당에 반대하고 국민의힘 편에 서 왔었다. 민주당에 대해서는 사소한 꼬투리 하나도 놓치지 않으면서 국민의힘에 대해서는 어지간한 잘못도 그냥 침묵으로 넘어간다. 아예 앞장서서 옹호에 나서기도 했었다. 선거에서 후보단일화를 하는 것도 어느 정도 서로 정체성이나 노선이 유사하다 여겨서 그러는 것일 텐데, 과연 현재 민주당과 정의당 사이에 그만한 관계가 존재하긴 하는가. 당장 민주당 지지자들부터 정의당이라면 이를 가는 이들이 대부분일 테고, 정의당 역시 그동안 정의당의 반민주당 행보에 동의하며 남은 이들이 대부분일 텐데 이제와서 단일화한다고 시너지가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나부터도 그럴 경우 과연 민주당 후보에 투표해야 하나 망설이게 될 것이다. 정의당과 단일화한 후보라고?

 

염치를 모르는 것이다. 그동안 자기들이 민주당과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어떻게 해왔는가 자각이 없다. 아직도 민주당과 자신들이 한 묶음으로 여겨질 수 있다 여기는 것이다. 하긴 지령이었을 것이다. 언론이 지령을 내렸다. 선거가 다가온다. 그동안 국민의힘과 손잡고 반민주당을 정체성으로 삼아 온 시간들을 지우고 민주당과 한 묶음이 되어 민주당을 욕먹이는데 최선을 다하라. 중도표가 소중해지는 대선에서 극단적인 진보논리로 민주당을 오염시켜 중도층을 이탈케 만들어라. 언제부터 자칭 진보가 자기 머리로 생각했다고?

 

아무튼 버러지년이 지 생긴대로 똥파먹는 소리를 주제도 모르고 지껄이고 있는 중이다. 그동안 정의당이, 특히 심상정이 보인 행보들을 모두가 기억한다. 정의당은 국민의힘과 한 묶음이다. 용산참사의 책임은 철거민들에게 있고, 세월호 유가족을 사찰한 전정부의 행위는 무혐의이며, 김학의를 재수사한 것은 정권차원의 범죄다. 심지어 김학의를 출국금지시킨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퇴임 이후에도 책임을 져야만 할 중대한 사안이다. 모든 법안은 국민의힘 동의 아래 통과시켜야 한다는 주장 역시 일관되다. 욕을 빼고는 쓸 수 없는 쌍년인 것이다. 정의당 같은 년.

벌써 2000년대 초반부터 지적되어 온 부분이다. 선진국형 경제일수록 서비스업의 비중이 높다. 그러나 선진국에서 말하는 서비스업이란 다양한 가치를 창출하는 생산형 서비스업을 다수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 비해 한국의 서비스업은 소비일변도다. 식당이나 술집이나 아니면 카페처럼.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여 그로부터 수익을 얻기보다 기존의 소비시장 안에서 경쟁을 통해 자기만의 이익을 늘려간다. 문제는 어떻게 해도 전체 시장의 소비규모는 일정하게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닭갈비가 맛있어도 닭갈비로 인해 전체 소비규모가 커지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새로운 가치를 통해 시장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밖에서 사먹던 금액 안에서 오늘은 매운탕 먹던 것을 내일은 닭갈비 먹는 식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런 한정된 시장 안에서 사업자만 제한없이 늘어나면 과연 어떻게 되겠는가?

 

한국의 기형적인 서비스업 구조에 대한 우려가 바로 여기서 출발하는 것이다. 결국 제로섬게임이다. 누군가 이익을 보면 한정된 시장 안에서 누군가는 이익을 보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그냥 이익만 얻지 못하면 끝인가. 고정비용이 있다. 다달이 벌어야 하는 최소금액이 있는데 그조차도 벌지 못하면 그때부터는 손해가 누적되는 것이다. 심지어 참여자가 너무 많은 경우 한정된 시간을 참여자 모두가 나눠야 하다 보니 기대할 수 있는 이익 자체가 감소하는 상황마저 벌어진다. 소수의 승자를 제외한 대부분이 도태되어 사라진다. 한국 자영업 평균존속기간이 몇 년이었더라?

 

그래서 변호사들도 변호사시험 합격자수를 제한하자 주장하는 것이다. 의사들도 의사 수 늘리겠다니 아예 국민들 목숨까지 볼모잡고 저항하고 나섰던 것이었다. 변호사든 의사든 지금보다 더 늘어나면 자기들 밥그릇이 줄어든다. 택시업종이 어려운 것도 과거 택시면허증을 너무 많이 발급한 부작용이란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그래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더 어렵게 창업도 했는데 시행착오도 겪어 볼 수 있게끔 일정한 기회를 줘 보자. 그러니까 최소한의 이익과 그를 통한 존속을 제도적으로 꾀해보자. 그 가운데 하나가 음식점 총량제일 수 있는 것이다.

 

이재명의 음식점 총량자 발언에 그럴싸하다 생각한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 여기는 이유인 것이다. 이미 모두가 알고 있다. 지금 이대로는 무분별한 음식점 창업으로 프랜차이즈 사업자들만 이익을 볼 뿐이란 사실을. 하고 싶어 창업하는 것이 아니다. 확고한 비전과 목표를 가지고 시작하는 것이 아닌 그냥 뭐라도 해보겠다고 무작정 시작하고 보는 것이 바로 음식점인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 음식점 사업자들은 전문성조차 갖추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다. 요리로 만들 줄 모르고, 당연히 요리를 맛볼 줄도 모르고, 서비스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 또한 결여되어 있다. 그것들을 채워주는 것이 그래서 프랜차이즈인 것이고, 따라서 그런 모든 걱정과 고민과 궁리를 대신하는 만큼 막대한 돈을 사업자들로부터 받아간다. 그래서 프랜차이즈의 지원을 등에 업었다고 그들 모두가 성공하는가? 자기 요리가 아니다. 자기 서비스가 아니다. 결국 프랜차이즈의 흥망에 개인의 운명까지 걸리고 만다. 그런 지금 상황이 과연 정상이라 할 수 있겠는가.

 

지금 야당에서 말하는 시장의 자유란 망할 자유인 것이다. 한정된 시장 안에 너도나도 무분별하게 뛰어들어 다같이 망해서 죽자는 자유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로 인한 피해는 또한 소비자 자신에게로 돌아간다. 어제까지 잘 다니던 단골가게가 사라진다. 이익이 나지 않아 식재료며 서비스며 비용을 낮추느라 질적으로 하락한 서비스를 같은 비용을 주고 구매해야 하는 경우마저 생길 수 있다. 흔히 하는 말이다. 음식 맛이 떨어졌다. 양이 줄었다. 서비스가 부실해졌다. 왜? 그럴만큼 이익이 보장되고 있지 않으니까. 지금 과연 음식점 창업에 뛰어들어서 돈을 버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 돈으로 겨우 일가족 먹고 살 수 있으면 그나마 성공이라 할 수 있을 정도다. 바꾸자는 것이다. 차라리 서비스업으로 창업하려면 다른 보다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방향을 모색해보자. 물론 정부와 지자체의 노력과 지원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단차원적으로 보지 말자는 것이다. 오죽하면 요식업계에서조차 논의해 볼만하다는 반응이 나왔겠는가. 아마 음식점 창업하려는 사람들 역시 비슷한 마음일 것이다. 이대로는 다 같이 죽을 뿐이다. 그게 20년도 더 전에 나온 이야기인데 아직까지 그저 시장의 자유만을 떠들고 있는 것이다. 변호사와 의사를 생각해 보라. 왜 변호사와 의사의 수에는 제한을 두는가. 그러면 어째서 음식점은 제한을 둬서는 안된다는 것인가.

 

당장 집근처를 돌아보자. 술안주 시켜먹으려 검색해 보니 전 집만 골목 하나에 셋인 듯하고, 닭갈비집도 그 비슷, 족발집은 5분 거리마다 한 서너개 되는 듯하다. 족발 먹는 사람이 설마 한 동네에 그리 많겠는가. 그래서 비싸지고, 그럼에도 어느날 보면 망해서 사라져 있는 것이다. 기자새끼들은 장난이나 칠 줄 안다. 버러지새끼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조선시대 노비나 백정이 왕이 되었다 생각해 보자. 혹은 변방으로만 떠돌던 야전의 무인이 왕위에 올랐다. 그래서 자기와 마음이 맞는 가까운 사람들을 측근에 두려 한다. 과연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노비와 가까우면 노비일 것이고, 백정과 마음이 맞으면 백정일 것이고, 야전군인이 좋다면 역시 야전군인일 터다. 그런 사람에게 과연 정승이니 판서니 관직을 주고 국정을 맡기는 것이 타당할 것인가. 

 

하지만 태생이 완족이고 사족들로부터 교육받고 친분을 다져왔다면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여종을 강간했어도 선비일 것이고, 농민의 재산을 강탈했어도 대부일 것이며, 뇌물 좀 받았다고 양반의 신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실제 역사에서도 왕이 파견한 어사에 의해 비위가 드러나 파직당한 인물이 다시 복귀한 뒤 오히려 더 출세길에 올라 자신을 파직한 어사에게 보복한 예도 적지 않았다. 파직과 유배 정도야 죽지만 않으면 사대부로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에 걸맞는 장식일 수 있는 것이다.

 

박형준과 오세훈의 인사에 대해서만 철저히 침묵하는, 아니 이전 이명박근혜 정권에서도 인사에 대한 비판을 자제해 온 언론이 이번 정부 들어서만, 민주당 계열 인사들에 대해서만 유독 엄격해지는 이유인 것이다. 민주당 쪽 인사는 국정을 맡기기에 적합한 인사들이 아니다. 신분에서도 실력에서도 경력에서도 전혀 미치지 못한다. 그러므로 민주당 쪽 인사는 항상 부적절할 수밖에 없고, 국민의힘 인사는 어지간한 흠결이 없는 한 문제삼을 것이 없다.

 

문제는 민주당 쪽 인사들마저 비슷한 생각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정권을 잡으면 알아서 보수쪽 인사들을 찾아가고, 인사하고 안면을 트며, 양보함으로써 상대의 인정을 받겠다는 병신들이 오히려 많아지는 이유다. 박병식이 그 대표적인 예다. 유인태도 다르지 않다. 보수로부터 인정받아야 자격이 생기고 가치가 생긴다. 위청같은 놈들이다. 내가 태생이 비천했으니 고귀한 이들의 눈에 잘 보여야 그 비천함을 지울 수 있다. 

 

아무튼 박형준이 이번에 아주 재미있는 인사를 했던데 언론에서 찾아보기가 힘들다. 박형준 정도면 일개 지자체장 정도가 아닌 전국구 인물일 텐데도 그렇다. 오세훈은 어떨까? 그에 반해 이재명은 시장 시절 사기죄로 재판받던 공사사장을 경질했다는 의혹으로 오만 욕을 듣고 있는 중이다. 어째서 민주당 20년 집권이 필요한 것인가. 두 번도 부족하다. 세 번, 네 번, 아니 10번은 더 정권을 잡아야 이 꼬라지를 잡을 수 있다. 욕만 나온다.

바로 언론이 생각하는 검찰의 이미지인 것이다. 언론이 검찰개혁에 목숨걸고 반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언론이 배임이라면 배임으로 증거도 내놓고 기소도 해 준다. KBS는 요즘 정말 눈물이 핑 돌 정도다. 얼마나 애처롭게 부르짖는지 검찰놈들이 참 못된 놈들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언론이 배임이라는데 배임이라는 증거 하나 못 찾고, 기소도 못하고 있고, 이게 나라냐? 정의냐? 법이냐? 검찰이냐?

 

어쩌면 그래서 더 윤석열을 지지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윤석열 검찰 시절에는 언론이 원하는대로 검찰이 제깍제깍 증거도 조작해서 내놓고, 조작할 증거가 없으면 아무거라도 물어뜯을 건수를 찾아내고, 기소는 기본에, 법원과 손잡고 구속과 유죄판결까지 일사천리로 이루어준다. 그런 윤석열 검찰이기에 KBS를 비롯한 언론은 혀가 걸레가 되도록 똥꼬를 빨아제꼈던 것이었다.

 

다른 나라 해군이나 해양경찰은 해적도 잘만 잡는데 우리는 아닌가? 해적이 없으니 못잡는 것 아니던가? 없는 해적을 만들어서 잡을까? 도둑맞은 집이 없는데 경찰이니 당연히 도둑을 잡아야 한다면 경찰이 직접 도둑질 해야겠네?

 

증거가 없어서 못찾았다니까 검찰이 무능하단다. 부실수사란다. 그러니까 증거가 없어서 특검하자. KBS에 기대갖는 놈들이 다시 없는 병신들일 것이다. 하긴 다른 언론은 뭐가 다를까. 자칭 진보란 버러지새끼들은 어떻고?

 

검찰이 증거도 만들고 기소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한 언론은 정의롭다.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일 게다. 그러니까 언론이 쓰면 검찰은 반드시 없는 범죄도 만들어야 한다. 그게 언론과 검찰의 현주소다. 민주당이 개혁해야 하는 이유다.

언론이 주장하는 부동산공급확대란 한 마디로 재건축, 재개발이다. 자칭 공정론자들이 정부의 부동산정책을 비판하며 말하는 공급확대정책도 같다. 왜 자기 집으로 자기가 돈벌겠다는데 정부가 막아서는가? 재건축에 대한 규제와 제한을 풀라. 그 말은 뭔가? 주호영이 산 은마아파트가 그 몇 배의 이익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아파트 소유주들이 재건축을 바라는 이유는 한 가지다. 10층짜리가 20층 되고, 100세대 짜리가 200세대 된다. 여기에 구축이 신축으로 바뀌니 건설사와 나눠먹어도 남는 돈이 몇 배인 것이다. 그러면 건설사와 재건축조합이 재건축으로 얻는 이익은 지자체장에게 배임일까, 아닐까? 그렇게 재건축으로 최대 몇 천 억을 넘는 이익을 소수가 나눠가졌다면 배임이 되는가, 아닌가? 그러면 말할 것이다. 그 만큼 이익을 환수하면 되지 않는가. 그래서 반대한다. 시장질서에 위배된다.

 

한 방송사 뉴스에서 시간차로 나온 내용이다. 화천대유가 수 천 억 이익을 봤으니 대장동 개발은 배임이다. 그런데 한 편으로 공공개을 위주로 하고, 민간이익을 환수하려 하면 부동산시장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기사가 버젓이 보도되었다. 그러니까 과도한 민간이익을 환수하는 것은 부동산경기를 위축시키는 반시장정책인데, 민간이익을 더 환수하지 않았으니 이재명은 배임을 저지른 것이다.

 

더 어이가 없는 그보다 더 악랄했던 용산개발에 대한 언론의 태도란 것이다. 자칭 진보의 이중성도 여기서 드러난다. 오세훈이 용산참사는 철거민들 잘못이라 말했을 때 그를 비판한 자칭진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진짜 눈씻고 찾아봐도 진보를 자처하는 개인이나 단체 가운데 그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었다. 용산참사가 왜 일어났는가? 보상을 최소로 하여 개발사업자의 이익을 극대화시켜주기 위해서였다. 소수의 개발주체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경찰까지 나서서 철거민을 강제로 내쫓으려 한 결과였었다.

 

그나마 경찰이 나서면 다행인 것이다. 수많은 재개발 현장에서 철거민들이 맞닥뜨려야 하는 대상은 대부분 경찰조차 우습게 여기는 용역깡패들이었다. 사인들이 경찰을 대신해서 무고한 시민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저항하는 사람이 있으면 경찰이 나서서 대신 응징해 주었다. 그런 현실에 대해 정면으로 나서서 비판한 언론이... 그나마 MBC가 있었구나. 대부분 언론들은 저항하는 철거민들을 폭도로 몰아가기 일쑤였었다. 자칭진보도 있기는 했지만 오세훈의 발언을 통해 그들이 이미 자기부정에 나섰음을 확인했으므로 그 기억을 지운다. 그러던 언론이 재개발지역 주민들이 오른 땅값을 다 받지 못한 것을 걱정해주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홍준표가 말했다. 언론자유지수 세계 42위가 부끄럽다. 그래서 KBS도 민영화해야겠다. 그런 홍준표를, 나아가 국민의힘을 언론은 맹목적으로 지지한다. 한겨레조차 말한다. 이명박근혜 시절이 언론들에게는 더 좋았다. 저런 비판따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저런 취재같은 건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정부가 부르는대로 받아쓰고 정부의 책임으로 돌리기만 하면 자기들은 욕을 먹지 않았다. 원래 보도하지 않던 걸 보도하려니 자기부정이 자연스러워지는 모순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냥 국민의힘이 권력 잡고 자기들이 지금 짊어진 책임만 대신 가져가면 된다.

 

아무튼 웃기는 것이다. 한 쪽에서는 개발업자와 부동산소유주의 이익을 극대화해야 한다면서, 한 쪽에서는 그것을 배임이라 주장한다. KBS를 민영화해야 하는 이유다. 공영방송으로서 가치가 없다. 노태우 전대통령? 아주 지랄을 싸세요. 내가 선견지명이라 지금도 자랑하는 것이 KBS 파업에 코웃음쳤던 일이다. KBS 나부랭이가. 

 

그냥 대장동 뉴스 말고 다른 부동산 뉴스까지 하나로 엮어서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앞과 뒤가 다르다. 왼쪽과 오른쪽이 다르다. 그야말로 노완동이 썼다는 쌍수호박 그 자체다. 자기가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와 싸운다. 한겨레와 조선이 서로 싸우는 듯 민주당만 공격하는 것과 같다. 이런 걸 미친놈 발광이라 부른다. 버러지새끼들이란 말 밖에 할 말이 없다.

벌써 20년 가까이 지났다. 친노사이트 서프라이즈의 초창기 시절 편집장이던 공희준이 서프라이즈의 존재와 이른바 논객이라 불리던 이들에 대해 우려하는 것을 가까이서 들은 적이 있었다. 고작해야 인터넷사이트인데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며 집착한다. 이러다 오히려 안좋은 결과로 이어질지 모르겠다.

 

아니나 다를까 서프라이즈에서의 명성을 바탕으로 정치를 해보겠다며 벌써 시작부터 사조직을 만들고 공작을 부리던 놈들이 나타났었다. 아마 서프라이즈를 기억하는 사람은 대부분 그때 가담한 필명들을 기억할 것이다. 순진해서 나는 그런 짓거리들이 있는지도 처음에는 몰랐었다. 그리고 얼마 안있어서는 변희재의 친위쿠데타가 있었고, 서영석과 김동렬의 반격으로 변희재와 가깝던 일단의 인물들이 떨어져 나가는 사태도 벌어졌었다. 하지만 그건 고작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

 

서프라이즈에서 지역주의를 가지고 싸우더니 동프라이즈가 떨어져 나오고, 정치사이트가 돈이 될 것 같으니 스탠딩이며 브레이크뉴스 같은 떨거지들이 생겨나고, 여기에 동프라이즈에서마저 떨어져나온 극단주의자들이 남프라이즈를 만들었다. 유시민과 정동영의 갈등을 서프라이즈 유력논객 사이의 분쟁으로까지 번지며 노하우21로 따로 뭉치기도 했었다. 친노의 기반인 서프라이즈를 지키겠다며 집단으로 몰려다니며 린치와 테러를 일삼던 이른바 완장맨들도 있었다. 실제 테러를 저질렀다는 게 아니라 아예 사이트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몰려다니며 아주 집요하게 괴롭히던 놈들이었다. 그것을 그놈들은 정의구현이라 여겼고 대다수 이용자들도 그들을 크게 지지하고 있었다. 내가 노무현 지지마저 포기하고 아예 학을 떼며 서프라이즈를 뛰쳐나온 이유였다. 도저히 저런 정신상태들과는 같이 어울리지 못하겠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아마 당시 완장맨 가운데 똥파리로 이어진 놈들도 제법 되지 않겠는가. 그만큼 하는 짓이 닮았다. 무언가 자기만의 논리를 생산하기보다 타인에 대한 증오와 저주로써 자신의 신념과 지향을 대신했다. 이재명에 반대하는 것이 정의이며, 따라서 이재명을 지지하는 이들을 증오하고 저주하는 것이 선이다. 그래서 문파라면서 문재인 대통령마저 제명하고, 이낙연을 지지했으면서 이제는 그 지지마저 철회한다. 차라리 이재명을 찍느니 홍준표나 윤석열을 지지하겠다. 조국을 연민하고 문재인을 지켜야 한다던 놈들이 이제와서 이재명 싫다고 문재인 죽이겠다는 윤석열을 지지한다. 그런 논리와 가치의 파탄은 어디서부터 비롯되는가.

 

김찬식이라면 익히 아는 이름이다. 서프라이즈 시절 오프라인에서 몇 번 만나기도 했었다. 하긴 김찬식 뿐인가. 드루킹이 서프라이즈시절 뽀띠였었다. 정치하겠다고 기웃거리다 패가망신한 놈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미키루크는 정동영 옆에서 박스떼기를 주도한 나부랭이였었다. 고작 인터넷따위에. 인터넷에서 얻은 명성 따위에. 자기들끼리 자가발전한 논리와 주장과 신념에 도취되어서. 결국 이렇게 흘러가는구나.

 

공희준이야 아마 지금 변희재와 같이 어울리고 있을 것이다. 공희준 자신도 말한 바 있었다. 다른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경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 짓 말고 벌어먹고 살 방법이 없다. 인터넷이란 한정된 공간에서 한정된 주체들과만 공감하며 자가발전하는 사이 정작 일상의 상식과는 멀어지는 것이 아닌가. 정치가 사람을 망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연마된 편협함이 사람을 괴물로 만드는 것이다. 그 뿌리에 서프라이즈가 있었다. 이제는 인터넷이 있다.

 

내가 기자 장용진을 그리 신뢰하지 않는 이유다. 예전 권순욱이 그랬었다. 뭔가 도취된 것 같다. 당시 비슷한 행태를 보이던 자칭 논객들을 많이 보았었다. 과연 그가 하는 주장들에 진심이 담겨 있는가. 이제와서 이낙연이 이재명과 한 팀이 된다니 아예 그에 대한 지지마저 포기하고 반민주로 일관하는 자칭 문파들을 보며 떠오르는 생각이다. 너무 익숙하다. 너무 닮아 있다. 그래서 공희준도 결국 그 길을 가고 마는 것인가.

 

내가 그다지 사회적으로 존중받지 못하는 최저임금이나 겨우 받는 일을 하면서도 오히려 진중권 나부랭이들에 대해 우월감을 가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현실을 딛고 서 있다. 현실 위에서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그 안에 내 글과 내 주장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유롭다. 당당할 수 있다. 누가 뭐라든 내 삶은 오롯이 나의 소유로 존재한다.

 

모든 악은 확신에서 비롯된다. 의심없는 믿음이야 말로 모든 악의 시작일 것이다. 하물며 불신을 믿고, 증오를 믿고, 혐오를 믿고, 공포를 믿는다. 자칭 진보가 어찌 저처럼 수구의 주구로 전락했는가. 자기 논리가 없기 때문이다. 자기 주장이 없기 때문이다. 현실에 기반하지 않은 때문이다. 허구는 허구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오래전 서프라이즈에 대해 내가 혼자서 했던 말이었다. 아마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지 모르겠다. 

 

병신은 병신이다. 어쩌면 오랜 깨달음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넓고 병신은 많다. 사람이 다양한 만큼 병신들도 다양하다. 그들을 정의할 한 마디는 오롯이 그들이 병신이란 사실 뿐이다. 과연 이낙연이 늦게라도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까. 오랜 기억을 떠올린다. 그리 유쾌한 기억은 아니다. 결국 이리 흘러간다.

역시나 진짜 오래전의 일이다. 아주아주 오래전 전쟁은 없어야 한다며 전쟁사를 좋아하는 내 취미마저 비판하던 자칭진보가 있었다. 전쟁사를 좋아하는 것도 전쟁을 좋아하는 것이다. 전쟁을 찬양하고 미화하는 것이다.

 

하도 짜증나서 한 마디 했었다.

 

"전쟁에 반대하기 위해서라도 전쟁을 알아야 한다."

 

실제 전쟁사나 군사무기를 좋아하는 마니아 가운데, 그것도 그 수준이 높을수록 반전주의자의 비중이 높아진다. 전쟁을 알면 알수록 전쟁에 대해 비판적이 되는 것은 지성을 가진 인간이라면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기 때문이다. 그런대도 그 개새끼는 내게 이렇게 씨부렸다.

 

"전쟁을 반대하기만 하면 되지 굳이 전쟁을 알 필요는 없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소리 아닌가? 페미니즘 쌍년들이 입만 열면 떠드는 게 바로 이따위 소리다. 사실여부는 상관없다. 진실여부도 의미없다. 그냥 여성주의면 된다. 입쳐닫고 자기들 떠드는 소리를 듣기만 하면 된다. 반박이라도 하려 하면 생난리를 부린다. 남성우월주의다. 반여성주의다. 그래서 이준석에게도 쳐발리는 것이다. 무식하니까.

 

자칭진보의 사고란 게 그렇다. 먼저 결론이 있다. 그리고 그 결론에서 이어지는 논리가 있다. 그러나 굳이 결론에 이르기까지 논거를 찾을 필요는 없다. 그래서 무식하다. 내가 괜히 자칭진보들 무식하다 하는 게 아니다. 벌써 오래전부터 자칭 진보새씨들 무식하다고 아주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한겨레나 경향 같은 자칭 진보언론들이 전문성이 필요한 기사들에서 개소리를 늘어놓는 것도 그래서 아주 당연하게 여겼었다. 원래 무식한 새끼들이 자기 신념만 앞세워 기사를 쓰니 오히려 그러는 게 너무 당연하다. 

 

이념이란 것이다. 바로 세상을 가늠하는 잣대인 것이다. 이 세계에 대한 이런 이해와 지향이 있다. 그러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것이 진보다. 그러므로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이 잣대에 의해 가늠되어야 한다. 그 정의에서 벗어나는 모든 것은 따라서 오로지 악이고 거짓이다. 어쩌면 대한민국 사회에서 가장 이념적인 집단이 바로 자칭진보일 것이다. 자칭보수가 의도적으로 이념의 탈을 쓰고 연기한다면 자칭진보는 진심이다.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사실도 진실도 상관없이 오로지 자신만의 잣대로 세상을 본다는 것은. 더이상 알려고도 이해하려고도 않고 결론에만 의지해 행동하려 하는 것은.

 

진짜 몰라서일수도 있는 것이다. 정확히 알려 하지 않기 때문일 수 있는 것이다. 알 필요가 없다. 알아서도 안된다. 미리 그리 결론을 내려 버린다. 이미 답은 나와 있다. 진보의 이념에 이 사안에 대한 판단은 분명하다. 권력이 잘못되었다. 대통령이 잘못했다. 집권여당에 잘못이 있다. 그러므로 야당의 편에서 권력을 비판한다. 그것이 진보다.

 

야당이 군대를 동원해서 쿠데타를 일으키고 수많은 무고한 시민을 학살해도 그들이 권력을 잡기 전까지 그들은 야당의 편에 서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김학의의 편에도 설 수 있었던 것이다. 권력을 비판해야 하기에 그 권력이 수사한 김학의를 감싸고, 김학의를 수사한 검사마저 공격할 수 있는 것이다. 김학의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가는 상관없다. 중요한 건 권력을 비판해야 한다는 진보의 사명인 것이다.

 

그래서 한 편으로 탈원전을 주장하면서 현정부의 탈원전을 비판할 수 있는 것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주장하면서 인국공을 비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최저임금인상과 근로시간단축을 주장하다가 정장 현정부에서 시행하니 반대하고 나서는 것이다. 대체휴일 역시 그래서 반대하고 있었다. 일본군위안부문제도 정의연의 전대표가 민주당 국회의원이 되었으니 박근혜나 이명박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이 옳았다는 것이 저들의 지금 판단이다.

 

행위의 목적이 서울대 집권에 있다면 행위의 논리는 바로 이런 무지와 신념에서 나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이 지금 자칭진보를 지배하는 정신이다. 새삼 전두환의 인권과 명예까지 생각할 수 있는 이유인 것이다. 결론이 이유를 만들고 논리로 이어진다. 학벌들이 좋다 보니 머리까지 좋다. 개새끼가 머리가 좋으면 머리좋은 개새끼가 된다.

 

때로 자칭보수들은 그나마 말이라도 통하지만 자칭진보는 그조차도 안된다 말하는 이유인 것이다. 말로 해도 말을 알아먹지 못하니 말로 당할 수 없다. 이제는 진보란 가치마저 저버렸으니 말할 것도 없다. 쌍년쌍놈들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자칭진보들이 자신들이 우월한 이유라고 앞세우곤 했던 것이 바로 학력이었었다. 진보쪽에 고학력자, 그 가운데서도 명문대 출신들이 많다. 특히 서울대 출신들이 많다. 전부터 내가 말해왔던 자칭진보를 싫어하게 된 이유라는 것도 바로 여기서 비롯되었다. 일부러 일상에서 거의 쓰이지도 않는 전문용어를 섞어가며 최신의 논문과 저작을 들먹이는 것은 그들이 자신의 지적수준을 과시하기 위한 아주 흔한 표현방식이라 할 수 있었다. 더불어 그를 통해 상대의 무지를 비웃고 무시하기 위한 의도 또한 다분히 포함되어 있다.

 

최근 자칭진보들이 앞장서서 국민의힘을 옹호하고 민주당을 공격하는 듯 비치는 진짜 이유인 것이다. 정확히 윤석열이 난동을 부리던 시점부터 어느새 자칭진보들이 진보란 자신의 스탠스를 버리기 시작했다. 오히려 진보라는 자신의 포지션을 민주당을 효과적으로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긴 이낙연부터가 처음부터 윤석열과 손잡은 정황을 보이고 있었으니.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러고보니 벌써부터 윤석열과 자칭진보의 유착에 대해 내가 그리 설명한 바 있었을 것이다. 서울대 대통령 만들기다.

 

어째서 그토록 집요하게 악랄하게 조국전장관을 죽이려 들었었는가? 당연하다. 조국이 가지는 서울대, 그것도 법학교수라는 명분을 지우기 위해서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을 받아먹었어야 할 이낙연이 벌써부터 문재인 대통령과 선을 그으려 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서울대 대통령인데 경희대를 배경삼을 수는 없다. 서울대는 오롯이 서울대로써 대통령에 오를 수 있어야 한다. 더불어 문재인 정부에서 서울대의 그림자를 지우는 역할도 한다. 그러므로 이제 남은 서울대는 오롯이 윤석열과 검찰 뿐이다. 이제 윤석열만 대통령으로 만들면 오롯한 서울대 대통령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오랜 숙원이었다. 대한민국 모든 분야를 점령하다시피 주도해 온 서울대가 단 하나 가지지 못한 타이틀이 바로 대통령이었으니. 대한민국 권력의 최정점 대통령만은 서울대도 가져 보지 못했었다.

 

경실련에 이어 참여연대까지 이재명 공격에 나섰다고 들었다. 그러려니 한다. 경실련이나 참여연대가 대장동 개발과 관련한 내용을 몰라서 그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니 실제 모를 수도 있다. 굳이 알려고 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면 어째서 굳이 알려고도 않은 사안을 가지고 정치적인 입장을 드러내려 하는 것인가. 윤석열 대통령만들기다. 더 정확히 중앙대 대통령 저지다. 고려대는 납득할만 하고 서강대라 하지만 전직 대통령의 딸이니 이해할만한데, 고졸에 경희대에, 다음은 중앙대라면 서울대 입장에서 자존심 상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만은 막자.

 

그냥 자칭진보 아무나 붙잡고 30분만 대화를 나눠보면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진중권이 어째서 전두환 비석을 밟는 행위를 비판하며 윤석열 옹호에 나섰겠는가? 진중권과 자칭진보가 이미 가는 길이 다르다 여긴다면 크게 착각하는 것이다. 그동안 진중권과 정의당의 행보에는 크게 차이가 없었다. 경향일보와 한겨레일보의 논조 또한 큰 맥락에서 일치하고 있었다. 자칭 진보가 윤석열의 전두환 발언을 비판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학벌사회란 것이다. 혈연만큼이나 지독한 것이 바로 학연으로 얽힌 인맥이다. 당연한 수순이다. 좆같아 문제지.

서울대 출신과 만나면 표현만 다를 뿐 항상 보고듣고느끼게 되는 한 마디일 것이다.

 

"내가 서울대인데 어딜 네가 감히!"

 

참고로 이화여대도 비슷한 심리를 가지는 모양이다. 영화 '타짜'에 나온 대사 그대로다. 내가 이화여대 나왔는데!

 

남들 못가는 서울대다. 가고 싶다고 아무나 갈 수 없는 곳이 서울대다. 그 서울대를 나왔다. 하물며 그 서울대 나와서 누구나 이름만 대면 알만한 신문사의 기자가 되었고 정치인까지 되었다. 검찰이 되어 총장자리까지 올랐다. 그런데 감히 경희대 따위가. 감히 중앙대 따위가. 그것도 이재명은 심지어 검정고시출신이기까지 하다.

 

그런 내가 패배를 인정한다? 내 잘못을 인정한다? 윤석열이 그동안 했다던 망언들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하면 된다. 내가 너희들과 다르게 살려고 사법고시 공부해서 검찰까지 되었다. 나만큼 노력않은 너희들은 그 정도 벌은 받아도 된다.

 

한 마디로 그래서 2030 공정무새들이 윤석열을 지지하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공정에서 윤석열은 승자다. 그러므로 그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은 정당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법고시는 부활해야 하고, 자신들에게도 윤석열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권리를 주어야 한다. 사법고시존치론자와 공정론자는 거의 일치한다 보면 된다. 저러려고 어렵게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고 사법고시도 합격하는 것인데 저럴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말실수가 말실수가 아니고, 패배가 패배가 아닌 이유다. 잘못은 잘못이 아니어야 하고, 패배는 패배가 아니어야 한다. 어쩌면 너무 상식적이다. 자칭 2030 공정론자들의 주장과도 닮아 있는 이유다. 하긴 그래서 자칭진보도 윤석열에 달라붙어 있는 것인가. 대놓고 떠들더만. 이번 선거는 홍준표와 윤석열 가운데서 당선자가 나와야 한다고.

 

학력지상주의 사회의 단면인 셈이다. 저런 놈들이 이 사회 엘리트라고 거들먹거리고 다녔다. 한심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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