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000년대 초반부터 지적되어 온 부분이다. 선진국형 경제일수록 서비스업의 비중이 높다. 그러나 선진국에서 말하는 서비스업이란 다양한 가치를 창출하는 생산형 서비스업을 다수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 비해 한국의 서비스업은 소비일변도다. 식당이나 술집이나 아니면 카페처럼.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여 그로부터 수익을 얻기보다 기존의 소비시장 안에서 경쟁을 통해 자기만의 이익을 늘려간다. 문제는 어떻게 해도 전체 시장의 소비규모는 일정하게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닭갈비가 맛있어도 닭갈비로 인해 전체 소비규모가 커지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새로운 가치를 통해 시장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밖에서 사먹던 금액 안에서 오늘은 매운탕 먹던 것을 내일은 닭갈비 먹는 식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런 한정된 시장 안에서 사업자만 제한없이 늘어나면 과연 어떻게 되겠는가?

 

한국의 기형적인 서비스업 구조에 대한 우려가 바로 여기서 출발하는 것이다. 결국 제로섬게임이다. 누군가 이익을 보면 한정된 시장 안에서 누군가는 이익을 보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그냥 이익만 얻지 못하면 끝인가. 고정비용이 있다. 다달이 벌어야 하는 최소금액이 있는데 그조차도 벌지 못하면 그때부터는 손해가 누적되는 것이다. 심지어 참여자가 너무 많은 경우 한정된 시간을 참여자 모두가 나눠야 하다 보니 기대할 수 있는 이익 자체가 감소하는 상황마저 벌어진다. 소수의 승자를 제외한 대부분이 도태되어 사라진다. 한국 자영업 평균존속기간이 몇 년이었더라?

 

그래서 변호사들도 변호사시험 합격자수를 제한하자 주장하는 것이다. 의사들도 의사 수 늘리겠다니 아예 국민들 목숨까지 볼모잡고 저항하고 나섰던 것이었다. 변호사든 의사든 지금보다 더 늘어나면 자기들 밥그릇이 줄어든다. 택시업종이 어려운 것도 과거 택시면허증을 너무 많이 발급한 부작용이란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그래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더 어렵게 창업도 했는데 시행착오도 겪어 볼 수 있게끔 일정한 기회를 줘 보자. 그러니까 최소한의 이익과 그를 통한 존속을 제도적으로 꾀해보자. 그 가운데 하나가 음식점 총량제일 수 있는 것이다.

 

이재명의 음식점 총량자 발언에 그럴싸하다 생각한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 여기는 이유인 것이다. 이미 모두가 알고 있다. 지금 이대로는 무분별한 음식점 창업으로 프랜차이즈 사업자들만 이익을 볼 뿐이란 사실을. 하고 싶어 창업하는 것이 아니다. 확고한 비전과 목표를 가지고 시작하는 것이 아닌 그냥 뭐라도 해보겠다고 무작정 시작하고 보는 것이 바로 음식점인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 음식점 사업자들은 전문성조차 갖추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다. 요리로 만들 줄 모르고, 당연히 요리를 맛볼 줄도 모르고, 서비스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 또한 결여되어 있다. 그것들을 채워주는 것이 그래서 프랜차이즈인 것이고, 따라서 그런 모든 걱정과 고민과 궁리를 대신하는 만큼 막대한 돈을 사업자들로부터 받아간다. 그래서 프랜차이즈의 지원을 등에 업었다고 그들 모두가 성공하는가? 자기 요리가 아니다. 자기 서비스가 아니다. 결국 프랜차이즈의 흥망에 개인의 운명까지 걸리고 만다. 그런 지금 상황이 과연 정상이라 할 수 있겠는가.

 

지금 야당에서 말하는 시장의 자유란 망할 자유인 것이다. 한정된 시장 안에 너도나도 무분별하게 뛰어들어 다같이 망해서 죽자는 자유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로 인한 피해는 또한 소비자 자신에게로 돌아간다. 어제까지 잘 다니던 단골가게가 사라진다. 이익이 나지 않아 식재료며 서비스며 비용을 낮추느라 질적으로 하락한 서비스를 같은 비용을 주고 구매해야 하는 경우마저 생길 수 있다. 흔히 하는 말이다. 음식 맛이 떨어졌다. 양이 줄었다. 서비스가 부실해졌다. 왜? 그럴만큼 이익이 보장되고 있지 않으니까. 지금 과연 음식점 창업에 뛰어들어서 돈을 버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 돈으로 겨우 일가족 먹고 살 수 있으면 그나마 성공이라 할 수 있을 정도다. 바꾸자는 것이다. 차라리 서비스업으로 창업하려면 다른 보다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방향을 모색해보자. 물론 정부와 지자체의 노력과 지원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단차원적으로 보지 말자는 것이다. 오죽하면 요식업계에서조차 논의해 볼만하다는 반응이 나왔겠는가. 아마 음식점 창업하려는 사람들 역시 비슷한 마음일 것이다. 이대로는 다 같이 죽을 뿐이다. 그게 20년도 더 전에 나온 이야기인데 아직까지 그저 시장의 자유만을 떠들고 있는 것이다. 변호사와 의사를 생각해 보라. 왜 변호사와 의사의 수에는 제한을 두는가. 그러면 어째서 음식점은 제한을 둬서는 안된다는 것인가.

 

당장 집근처를 돌아보자. 술안주 시켜먹으려 검색해 보니 전 집만 골목 하나에 셋인 듯하고, 닭갈비집도 그 비슷, 족발집은 5분 거리마다 한 서너개 되는 듯하다. 족발 먹는 사람이 설마 한 동네에 그리 많겠는가. 그래서 비싸지고, 그럼에도 어느날 보면 망해서 사라져 있는 것이다. 기자새끼들은 장난이나 칠 줄 안다. 버러지새끼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