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훈토론에서 기레기들 질문하는 수준 보아하니 저 대가리로 이해 가능한 건 딱 윤석열까지다.

 

홍준표도 아니다. 그래서 홍준표도 일부러 말도 거칠게 세게 하고 했던 것이다. 제대로 말해선 알아먹지 못한다.

 

인간은 딱 자기 수준에 맞는 권력만을 요구한다. 기레기가 요구하는 권력의 수준이다.

 

어째서 그렇게 박근혜를 향수하는지 알 것 같다. 한겨레도 그리 박근혜 그리워하더만.

 

저놈들 대가리 수준이 그렇다는 것이다. 이재명의 말을 도무지 못알아먹는다. 인간이 한심해진다.

이게 바로 언론이 말하는 언론의 자유란 것이다. 기득권과 붙어먹을 자유, 범죄를 저지를 자유, 언론이 검언유착과 유시민음해미수에 대해 소극적으로 - 나아가 물타기보도로 일관하는 이유인 것이다. 그래서 언론에게 검찰이란 김오수가 아닌 이미 퇴임한 윤석열인 것이고.

 

이번 선거는 언론과의 승부다라는 말을 하기 무섭게 언론이 스스로 보여주고 말았다. 윤석열에게 불리한 증거물압수나 그와 관련한 보도자료는 받지 않겠다. 그를 위해서 심지어 현직 검찰총장과도 맞다이뜨는 의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어디서? 한겨레, 경향이 포함된 법조팀 출입기자들이. 명분도 그럴싸하다. 언론인들과 통화한 핸드폰을 압수하는 건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킨다. 그러고보니 요즘 언론의 자유 잘 떠들던 언론이 있었던 듯하다.

 

아주 노골적이다.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들겠다. 언론이 대통령을 선택했다. 그러니 검찰도 따르라. 검찰총장도 따르라. 다시 말하지만 어디 가서 한겨레 진보라 하면 쳐맞는다니까. 저따위 짓거리에 최소 부화뇌동, 그러나 아마도 앞장섰을 한겨레가 과연 진보일까? 그러면 윤석열이 진보겠네?

 

이렇게 국민도 독자도 안중에 없는 것들이 바로 언론이란 것들이다. 그렇게 돈이며 향응이며 받아쳐먹고 그에 맞게 기사써주는 게 기레기 일이란 것이고. 그런 언론 믿고 이재명 물어뜯던 것이 바로 똥파리들. 똥파리의 뿌리가 어디인가 알겠지. 언론은 해체가 답이다. 좋은 기자는 죽은 기자 뿐이다. 기자가 인간인가? 해부학적으로는 인간일지 모르겠다.

 

하다하다 검찰과 붙어먹는 법조팀 기자들이 현직 검찰총장에게 들이받는 현실마저 보게 된다. 법과 정의를 위해서? 가치와 윤리와 진실을 위해서? 좆까고. 그냥 우리 좆꼴리는대로 내버려두라는 게 이유다. 그를 위해서 윤석열을 대통령 만들겠다는 노골적인 선언인 것이고. 아우 냄새 진동한다. 써글 것들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동안 자칭 진보들이 사회의 감시자 역할을 해 온 것도 사실이긴 했다. 사회 곳곳의 부조리와 모순을 파헤치고 그를 고발하고 비판해 왔었다. 그래서 과거 대선들 때는 어느 정도 자칭진보의 지원을 등에 업기도 했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그런 전제가 많이 바뀌었다. 특히 문재인 정부 들어서 검찰이 노골적으로 정치화하며 그 본색을 극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우리는 기득권은 아니지만 엘리트다.

 

자칭 진보가 같은 엘리트로서의 동류의식으로 검찰에 붙어 버렸다. 검찰의 말이야 말로 법이고 진리이고 정의라고 아예 자기 뇌를 파다가 쓰레기장에 불법투기해 버렸다. 그래서 사실상 모든 언론이 하나가 되고 말았다. 아마 검찰에 해묵은 원한이 있는 MBC를 제외한 모든 언론이 그러고 있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검찰 출신의 대통령후보가 나타났다. 하긴 경선부터 아주 물고빨고 하느라 이 인간이 도대체 뭐하는 인간인지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았다.

 

검찰이 수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수 십억의 부당이익이 관여된 사건을 불기소종결하는데도 입다물고 있다. 하긴 자칭 페미들마저 김학의 사건을 검찰이 덮었는데 왜 재수사하냐고 퇴임후 대통령이 책임지라는 세상인 것이다. 윤석열은 입다물고 이재명만 떠든다. 이재명은 눈감고 윤석열에 대해서만 써댄다. 알려야 할 건 윤석열만 알리고 없는 사실까지 파헤치는 건 이재명만 한다. 공영방송인 KBS마저 이 지경이니 과연 어떻게 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것일까.

 

그야말로 검언의 총력에 민주당과 지지자들이 맞대응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언론도 알았다. 검찰과 함께면 민주시민도 얼마든지 노예로 만들 수 있다. 버러지로 만들 수 있다. 자기들 수준으로 끌어내릴 수 있다. 검찰 역시 언론이 함께면 똥을 싸든 설사를 뿌리든 모두 정의롭게 만들 수 있다. 여기에 판사까지 가세한다. 그런 선거다. 이 사회 부조리의 끝판왕격이다. 이 새끼들만 때려잡으면 우리 사회가 조금 더 정의롭게 돌아갈지 모른다.

 

긴장해야 할 것이다. 특히 민주당. 신문기사 보고 벌벌 떠는 짓거리 좀 이제 그만했으면 바랄 뿐이다. 언론은 좆밥 이전에 적이다. 적이 떠드는 소리 듣고 겁먹는 것은 똥파리들이나 하는 짓거리다. 이번 선거의 의미가 그렇다. 그래서 오세훈이 TBS를 조지고 언론이 침묵하는 것이다. 심지어 오세훈에게 광고로 쳐맞은 한겨레마저 무릎꿇고 반성하는 중인 것이다. 언론을 조져라. 이재명에게 바라는 하나다. 언론을 조지고 검찰을 조져라. 민주주의란 정의 위에 기능하는 것이다.

 

아무튼 윤석열 대선후보 되고 언론 기사가 더 가관이 되어 가는 것 같다. 하긴 딱 기자들 지적수준에 맞기는 하다. 명문대 출신에 출세만 하느라 머리에 든 건 아무것도 없다. 무운을 운이 없는 것으로 알아들은 그 수준과 얼마나 딱 맞아 떨어지는가. 심상정이야 문재인이랑 이재명 욕하려고 출마한 년이고. 윤석열 도우면서 그렇지 않아도 인기 떨어진 고양에서 거물로 자기 이미지를 다시 끌어올린다. 병신들이 참 많다. 씨바랄 겨울이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좀 배웠다는 인간들의 서울대에 대한 컴플렉스는 상상을 초월한다. 서울대를 나왔든 나오지 않았든 서울대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의식과 사고가 왜곡된다. 서울대는 특별하다. 그 가운데서도 법대, 그 가운데서도 사법고시 합격자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 수많은 경쟁자들을 이기고 오로지 자기 실력과 노력으로 최고의 자격을 손에 넣었다. 그것만으로 그 사람에 대한 평가는 끝난 것이다.

 

언론이 한때 조국 전장관을 물고 빨았던 이유였다. 그리고 한순간에 등을 돌린 이유이기도 했다. 아무것도 아니었다. 진짜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래봐야 사법고시도 합격하지 못한 교수나부랭이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고작 경희대 대통령 주위에서 그를 보좌하는 역할에 지나지 않았다. 역시 진짜는 사법고시에도 합격하고 대통령과도 맞짱뜰 수 있는 검찰총장이 아니겠는가. 정의당이 그나마 민주당과 우호적이던 입장을 뒤집고 본격적으로 국민의힘과 같은 배를 타기 시작한 기점이었다. 그래도 이 참에 진짜 서울대 대통령 한 번 만들어 봐야 하지 않겠는가.

 

거기다 공범이라는 것도 있다. 지금껏 대통령후보로서 윤석열이 내세울 수 있는 이미지나 역량, 성과 들은 거의 언론이 합작해서 만들어 준 것이었다. 윤석열이 현정부와 민주당을 공격하는 동안 언론은 그와 협력하여 대선후보로서 그의 모든 것을 만들어 주었었다. 이제와서 그런 윤석열의 치부를 까발린다? 실체를 드러낸다? 그동안 해 온 일들이 있는 것이다. 그를 통해 이루어낸 결과들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윤석열을 부정하게 되면 그 모든 것들도 다 부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건 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실 말이 안되는 일이다. 현직 검찰총장이 사퇴하자마자 바로 특정정당의 대선후보로 나서다니. 그야말로 현직에 있을 때부터 이미 정치적 선택을 하고 있었다는 증거 아니겠는가. 그 명분으로 앞세웠던 자신에 대한 정치적 탄압 또한 법원의 판결을 통해 오히려 약소한 수준이었음이 드러났다. 그런데 언론들은 어떠했는가. 특히 진보라 자처하던 언론들의 태도가 어떠했는가. 민주당에 대해서는 그리 추상같던 언론들이 그런 부정한 행보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했었는가. 그를 위해서 자기 독자들을 기득권집단이라며 매도하던 게 바로 한겨레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후보인 것이다. 철저하게 치부를 감추고, 무능을 왜곡하고, 악행을 지우며. 그런데도 고작 언론에 휘둘리기 좋은 6070 중심의 당원투표에서 몰표를 받아 국민여론조사에서의 압도적 열세를 뒤집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마저도 민주당의 대선후보 경선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21만의 표가 움직여서 바뀐 결과였다. 그동안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를 공격하는데 공동전선을 이루고 있던 보수지지층에서조차 언론에 대한 신뢰도는 이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제 6070마저 물러나고 언론에 대한 불신이 더 큰 이후 세대들이 주류가 된다면 과연 언론은 어떻게 되겠는가.

 

아무튼 재미있는 것이다. 심상정이 윤석열을 위해 고발사주에 물을 타려 벌써부터 아주 필사적이다. 지금 공수처에서 수사 열심히 잘 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특검이란다. 그것도 이재명까지 묶어서 같이 특검하잔다. 무슨 의미겠는가. 특검이란 사법이 아닌 정치의 영역에 한 발 걸치고 있는 제도다. 정치적으로 해결하자. 이재명과 함께. 그러면 어떤 정치를 말하는 것이겠는가. 조국을 추방한 서울대의 연대는 어느때보다 굳다. 참 잘나셨다.

2012년 대선 당시 민주당의 후보였던 문재인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우려했던 것 가운데 하나가 권력의지가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권력을 가져야겠다는 필연적 동기가 부족하다. 내가 권력을 가져야 하는 이유와 권력을 가지고 무언가를 해내야겠다는 목적 모두가 권력자로서 많이 부족하다. 워낙 보통 사람이 가지는 욕망이나 감정과 거리가 먼 도덕적으로 초탈한 삶이 역설적이게도 권력자로서 약점으로 작용한 것이었다. 그런 약점을 많이 보완했다는 2015년 이후로도 그 근본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권력이란 여전히 두렵고 더러운 것이다.

 

아마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지지자들조차 느끼는 어떤 답답함의 이유일 것이다. 오세훈이나 박형준이 보이는 행보를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권력이 주어졌다. 그러므로 그 권력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내가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한다. 그런 결단과 행동에 주저나 망설임은 없었다. 내가 원하는 사람을 원하는 자리에 앉히고, 내가 원하는 것을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방식으로 실현한다. 누군가 그것을 비판하고 방해한다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억압하고 응징한다. 그에 비해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권한 안에서의 결정조차 망설이는 경우가 많았다. 자를 수 있으면 자르고, 윽박지를 수 있으면 윽박지르고, 거래할 수 있으면 거래한다. 어쩌면 권력자에게 너무나 당연한 그런 행위들이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어렵기만 했다.

 

권력에 대한 일반적인 두 가지 입장이 있다. 하나는 권력이란 두렵고 더러운 폭력이란 것이고, 또 하나는 권력이란 유용한 수단이며 도구란 것이다. 전자는 대개 도덕적으로 고결한 은자의 삶과 어울린다. 권력을 쥐어주겠다는 말에 오히려 귀를 씻고 더 깊은 곳으로 숨는 이들에게 오히려 권력이란 거추장스러운 무언가에 지나지 않는다. 자칫 그로 인해 자신이 지켜온 것들이 크게 변질되고 타락할 수 있다. 그래서 권력을 가지는 것은 전자가 아닌 후자인 경우가 많은 것이다. 자기 자신을 위해, 혹은 가문이나 당여를 위해서, 더 나아가서는 나라와 백성과 천하의 안위를 논하기 위해서. 그를 위해서 그들은 권력을 가져야 하고 그 권력을 유용하게 쓸 수 있어야 했다. 그것은 권력자로서 자격에 가까운 것이었다. 권력자가 권력을 두려워하고 제대로 쓸 줄 모르면 권력은 의미없어지는 것이다.

 

최근 송영길의 행보를 통해서도 더욱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문재인 대통령도 해야 할 때는 한다. 해야만 한다면 한다. 정도를 걸으며 명분 앞에서 망설이거나 하는 경우란 오히려 드물다. 하지만 때로 권도로 돌아가고 패도를 밟아야 할 때는 망설임이 느껴진다. 여전히 권력이란 문재인 대통령에게 두렵기만 한 것일까. 꺼려지기만 하는 것일까. 그에 비해 소소한 속물 송영길은 거대여당의 대표란 자리를 얼마나 얄밉도록 자신을 위해 잘 활용하고 있는가. 차라리 정치인으로서는 송영길이 문재인 대통령보다 낫지 않은가. 그 도덕적인 고결함이나 목적과 동기의 숭고함을 배제했을 때 권력 그 자체를 대하는 자세만큼은 정치인으로서 송영길이 훨씬 윗줄에 있는 듯 보인다.

 

아마 송영길이었다면 윤석열이 저렇게 미쳐 날뛰도록 보고만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천시장 시절 보여주었었다. 철저하게 자기 사람들만 챙기느라 시정을 망치고 시민들로부터 원망과 비난을 듣던 모습에서. 그러나 그런 행보조차 당시 송영길은 너무나 당연했고 당당했었다. 마치 지금 오세훈이나 박형준을 보는 것처럼. 그래서 정치인이란 것일까. 그래서 이재명에게 기대를 가지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오히려 송영길보다도 더 권력이란 수단을 재량껏 사용하면서도 그 동기와 목적까지 분명하다. 이기에 소아와 대아가 있다면 이재명은 대아적 이기주의자일 것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것이 오로지 자신의 목적이며 자신의 이유다. 그를 위해 얼마든지 권력을 가지고 그 권력을 이용할 수 있다.

 

수구보수와 수구진보 모두가 이재명의 대통령당선을 저지하고 나서는 이유일 것이다. 노무현과는 다르다. 문재인과도 전혀 다르다. 오히려 이재명은 그동안 보수진영에서 집권해 왔던 권력자들과 닮아 있다. 충실하게 자기에게 주어진 권한과 역량을 활용해서 오로지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집요함과 악랄함이 있다. 그런 이재명에게 180석 여당까지 배후에 주어진다면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 검찰마저 지금 시점에서는 이재명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재명에게 밉보이면 자칫 검찰이란 조직 자체가 날아가 버릴 수 있다.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문재인은 아니었다. 문재인에게 권력이 주어진다고 나에게 위해가 가해질 것이란 두려움 같은 건 느끼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이재명이면 자기에게 무슨 짓을 할 지 두려워하고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이재명으로의 권력교체란 이유일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연장이지만 문재인 정부와 전혀 다른 정체성의 정부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오히려 그래서 기대가 크다. 노무현과 문재인의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었음을 지지자들 스스로 깨닫고 있었으니. 괴물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괴물의 방식이 필요하다. 기대하는 이유다. 부디.

벌써 10년도 더 지난 모양이다. 당시 내가 어느 글에서 그리 말한 적이 있었다. 기자가 지성을 가리키던 시대는 끝났다.

 

말 그대로였다. 배워야 기자를 했고, 공부해야 기자를 했다. 대학 졸업장 한 장 가지고는 어림도 없었다. 치열하게 궁리하고 학습하고 스스로 고민한 끝에 자신과 세상에 대한 답을 찾아냈어야 했다. 어제의 답이 오늘의 답이 아니고, 오늘의 답이 내일의 답이 아니다. 그런 기자들이 쓴 기사는 한 시대를 바꾸기도 했었다.

 

하지만 전공공부보다 토익이며 취업시험공부가 더 중요한 시대에 그런 지성 같은 건 더이상 의미가 사라진지 오래다. 기자란 것도 그저 취업시험 잘 치러서 점수만 높게 받으면 될 수 있는 흔한 직업이 되고 말았다. 더욱 기자라는 사명감도 기자로서 살기 위한 노력도 기자가 된 이후에는 의미가 없어지고 만다. 

 

무운을 빈다가 운이 없기를 빈다로 들렸다라... 차라리 몰라서 그리 썼다 했으면 좋을 것을 구구하게 늘어놓는 변명이 더 구차하다. 그런 주제에 남들 깔 때는 그리 독하고 악하기만 했을 테지.

 

기자가 왜 버러지인가. 기자를 존중할 이유가 없는 이유란 무엇인가. 기자는 과연 인간이긴 한가. 고민의 답도 필요없다.

 

아무나 기자가 되는 시대다. 새삼 확인한다. 저런 새끼들이 무식을 자랑할 수 있는 언론의 자유라니. 썅.

정치인 뿐만 아니라 대부분 사람들은 그저 평범하다. 적당한 정의감에, 적당한 도덕률에, 적당한 신념에, 적당한 가치에, 적당한 자기희생까지. 정의감에 불타면서도 그를 위해 포기해야 하는 자기의 이익이란 한계가 있고, 또한 자기의 이익을 지키더라도 양보할 수 있는 도덕과 윤리의 선이 있다. 그러므로 그 안에서 각자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정의를 지키고, 도덕을 지키고, 신념과 가치를 지키고, 자기의 이익도 포기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그렇다고 모두가 같은 것은 아니고 그런 평범함조차 더 잘 활용하고 못하는 사람이 나뉘게 된다. 그 적당함을 아는 것이다. 자기의 위치를 알고, 자기가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하는 바를 알고, 그러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바도 자연히 알고 추구할 수 있다. 적당한 속물이란 것이다. 주위에 누가 있는가, 지금 자기의 위치가 어떻고 상황과 여건이 어떤가,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서는 안되는가. 적당히 상승욕도 있고, 적당히 권력욕도 있고, 적당히 이익도 밝히면서, 적당히 정치인으로서 사명과 지향이란 것도 갖는다. 한 편으로 보잘 것 없는 놈팽이지만 현실에서는 이런 인간도 보기가 매우 어렵다. 이익에 휘둘리면서도 사명을 쫓는다는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최근 민주당이 바뀌었다. 이낙연 시절과는 비교도 안되게 기민하고 교활하게 여러 사안들에 대응하고 있다. 이낙연의 그림자가 걷히면서부터였다. 대선후보경선에서 이낙연이 전처럼 힘을 쓰지 못하게 된 것을 확인하고부터 송영길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래서 말했던 것이었다. 송영길은 그저 소소한 속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만 굳건하면 다른 생각 없이 그저 지지자들 하자는대로 쫓을 가능성이 높다. 문재인 대통령과 척지는 것이 이익이 되지 않는다 판단한다면 너무나 수순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이재명을 쫓아 자기가 할 수 있는 바를 한다.

 

원래 치사한 인간이다. 때로 비열하고 때로 비겁하다. 악랄하다 싶을 때도 있다. 점잔만 떨지 않는다. 그렇다고 너무 선을 넘지도 않는다. 그것이 지금의 민주당이다. 딱 적당한 속물들에 어울리는 적당한 정치행보다. 문재인이나 노무현과는 다르다. 이재명과도 다르다. 그게 바로 송영길의 장점이다. 다만 지금 상황이 그런 여건을 만든 것이지 송영길의 대단함은 아니라는 것이 소소한 속물의 한계일 것이다. 일단 지금은 잘하고 있으므로.

 

이낙연이 병신인 것인지 송영길이 대단한 것인지. 하지만 송영길이 그다지 대단한 위인이 못되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래도 홍영표보다는 나은 결과가 되었다. 어쩌면 우원식보다도 지금의 송영길이 훨씬 나은지도 모르겠다. 잘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의 그릇을 키운다면 그 허튼 야망이 결실을 보게 될 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지금 정치판에 송영길만한 인물도 드물 것이니. 재선 이상 가운데 누가 있을까? 한국 정치의 처참한 현실이기도 하다.

군에서도 새로운 장비를 개발할 때면 다양한 환경에 대한 적응성을 테스트한다. 더 춥고, 더 덥고, 더 습하고, 더 건조하고, 더 거칠고, 더 혹독한 환경에서 제대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가 시험하는 것이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한계를 드러내며 도태되는 경우도 생겨난다. 얼어서 터지고, 열기에 늘어지고, 습기에 녹슬고, 모래에 마모되고, 그리고 그런 과정들을 거치며 하나씩 문제를 해결해나간다. 그런데 누군가 말한다.

 

"당신은 지금 기계를 학대하고 있다."

 

원래 불속에서 작동하도록 되어 있는 기계다. 수 백 도 고온엣도 문제없이 작동해야만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는 장비다. 그런데 뜨거운 불속에 넣었다고 학대라 한다면 어째야 하는가. 얼음을 깨며 나가야 하는 쇄빙선을 시험하기 위해 얼음속에 내던졌다고 학대라 한다면 과연 쇄빙선의 성능은 어떻게 확인해야 하는 것인가. 마찬가지로 넘어져도 알아서 일어날 수 있도록 설계된 로봇을 시험한다고 넘어뜨린 것을 학대라 한다면 로봇을 모시고 살아야 한다는 말인가.

 

세상에 병신이 많지만 기자만한 병신도 흔치 않다. 하긴 그 기자만도 못한 병신도 있다. 공감능력이라? 생명이 살 수 없는 해저 만 미터 심해로 내려거야 하는 잠수정까지도 공감능력이 없다 떠들 지능인 셈이다. 산소 없는 우주로 우주선을 날려보내는 이유가 무얼까? 하다하다 이런 것까지 논란의 대상이 되는구나. 막걸리 먹겠다고 뚜껑을 비틀어 땄으니 나도 막걸리병을 학대한 것인가. 지랄도 이쯤 되면 경지에 올랐다 할 수 있겠다.

 

농담인 줄 알았다. 설마 진짜 이런 게 언론에서 기사로 나왔을 줄이야. 여기에 부화뇌동하는 버러지새끼가, 그것도 대학까지 나왔다는 놈들 가운데 있었을 줄이야. 저딴 것을과 같은 호모 사피에스 사피에스란 사실만으로도 부끄러워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다. 그런데도 이따위 기사를 써제끼는 언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윤석열따위의 똥꼬나 빨아제끼는 자칭진보란 것도 어이없기는 마찬가지다. 아침부터 욕만 나온다.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기준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정부의 재정정책이다. 재정을 확대해서 개인의 경제까지 보장하는가, 아니면 재정을 축소하고 개인을 자유의 영역에 맡기는가.

 

코로나19로 많은 개인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런 상황에 재정을 풀어 이들의 삶을 보조해야 하는가, 그런 와중에도 재정을 아끼며 그들의 삶을 시장에만 맡겨야 하는가. 심상정은 말한다. 재정을 아끼고 각자 재량에 맡기자.

 

하긴 작년 광화문집회에 대해서도 정의당은 입장을 밝힌 바 있었다. 정부는 더 이상 개인의 방역에 개입하지 말라. 방역은 개인에게 맡기고 정부는 가만히 있으라. 진보일까?

 

이런 년과 단일화를 이야기한다는 자체가 어이가 없는 것이다. 민주당이 보수라면 정의당은 극우다. 재정을 확대해야 한다는 민주당이 보수인데 재정을 긴축해야 한다는 정의당이 진보일 리 있는가.

 

오히려 더 과감한 재정정책을 주문해야 했다. 100만원이 아니라 200, 300, 그 이상을 주장했어야 옳다. 그래도 과연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피해를 모두 메울 수 있을까. 그런데 말한다. 돈 주지 마라. 나라 곳간 빈다.

 

신문만 보며 정치하기 때문이다. 엘리트들 하는 소리만 들으며 정치하기 때문이다. 진보의 정치는 현실에 있지 않다. 엘리트의 말에 있다. 자신들도 엘리트이고자 하니.

 

이제 민주당이 진보정당이라 말해도 좋을 것 같다. 왼쪽이 치워졌다. 진보가 사라졌다. 하긴 원래 진보란 없었다. 진보라 자처하는 버러지들만 있었을 뿐. 심상정이 자백했다. 대한민국에 진보는 없다. 쌍년. 좆까는 년이다.

정권 초부터 한겨레는 주장해 왔었다. 지금 정부는 언론을 홀대하고 탄압하는 부정한 정부다. 도덕적으로도 정책적으로도 파탄상태인 무능한 정부다. 차라리 이명박근혜가 더 나았다. 한겨레 기자가 직접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이니 의심하지 않아도 좋다. 한겨레도 박근혜 정부 때가 더 나았었다. 그래서 국민의힘과 손잡았던 것이었다.

 

그동안 한겨레의 보도논조는 일관됐었다. 국민의힘의 문제는 큰 것도 축소하고, 민주당의 문제는 없는 것도 키워 보도한다. 그래서 월성원전과 김학의 수사가 정권차원의 불법이 되었던 것이었다. 역시 한겨레가 유튜브채널을 통해 당당히 떠든 내용이다. 검찰이 이미 무혐의 결론을 낸 김학의를 재수사한 자체가 정권차원의 문제가 될 수 있다. 심지어 퇴임 이후 문재인 대통령에게 책임이 돌아갈 수 있다. 그러니 김학의를 수사했다는 이유로 이성윤 지검장의 고검장 승진까지 정의당이 비판하고 나섰던 것이었다. 이유야 다른 것 없었다. 그래야지만 문재인 정부가 망하고 다시 자신들이 좋았었던 국민의힘 정부가 들어설 테니까.

 

그래서 자기들이 직접 취재하고서도 정의연 논란 당시 한겨레가 조중동만 쫓아서 기사를 냈었던 것이었다. 오히려 자신들이 취재한 내용은 뒤에 사족처럼 붙이고 조중동이 퍼뜨린 의혹들이 기정사실인 양 추궁하는 기사만을 내보내고 있었다. 그러므로 차라리 박근혜 정권의 위안부협상이 정의연의 위안부운동보다 피해자를 위해 더 나은 선택이지 않았는가. 이전의 이명박이나 김영삼이 일본과 합의하여 내놓으려 했던 방안들에 대한 재평가도 그렇게 이루어졌다. 그런 연장에서 윤석열과 오세훈을 구하기 위한 자발적 오보의 총대까지 한겨레가 직접 맸던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윤석열의 경우 모르고 오보를 냈던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모르고 낸 오보라면 한겨레의 성격 상 그냥 무시하고 지나갔을 가능성이 높다. 의도적으로 낸 오보이기에 사과조차 유례없이 굴욕적인 모습으로 내보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거의 오체투지에 가까운데, 과연 한겨레가 그동안 오보를 냈다고 그렇게 대대적인 사과를 내놓은 적이 있었는가 돌아보면 그 의도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를 통해 위기에 몰렸던 윤석열이 다시 자기 권위를 세울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오세훈 역시 내곡동 투기의혹의 당사자로 곤란에 처하자 한겨레가 인터뷰 내용을 왜곡해서 내보냄으로써 반격의 빌미까지 만들어 주고 있었다. 아마 한겨레의 오보가 아니었다면 어렵사리 증언에 나선 시민이 거의 모든 언론에 의해 매도당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랬던 한겨레가 오세훈을 사소하게나마 비판했다면 당사자로서 기분이 어떻겠는가.

 

지난 보궐선거내내 한겨레의 입장은 확고했었다. 민주당의 패배야 말로 정의의 구현이다. 아니 지난 총선에서도 입장은 한결같았다. 민주당의 패배야 말로 민주주의의 승리이고 정의의 실현이다. 민주당만 빼고 투표하라. 그 말은 곧 당시 자칭진보의 공통된 입장이기도 했었다. 그래서 민주당의 잘못은 없는 것도 부풀리고 오세훈의 문제들은 철저히 은폐축소왜곡해 보도했었다. 심지어 그를 전후해서 한겨레에는 민주당지지자들이야 말로 운동권기득권이라는 일베와 상통하는 내용의 칼럼까지 실렸을 것이었다. 이 놈들이 언론을 죽이고 한겨레를 죽인다. 그렇기 때문에 정의구현을 위해서라도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이기고 정권까지 잡아야 한다. 말하자면 동맹이었다. 처음부터 한 편이었다기에는 그동안 걸어온 길이 달랐으니 동맹이란 말이 어울릴 것이다.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를 타도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자칭 진보와 수구는 손을 잡는다. 그런데 그런 한겨레가 오세훈을 비판하고 나섰으니 당사자로서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 다수 언론들이 오세훈의 한겨레에 대한 노골적인 탄압에 대해 침묵하는 이유인 것이다. 그동안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에서 있었던 거의 모든 언론들이 탄압이라 부르던 어떤 행위들보다도 강력한 탄압일 테지만 그러나 어떤 언론도 한겨레의 편에 서려 하지 않는다. 당연하다. 이것은 언론과 권력간의 문제가 아니라 동맹 내부의 신의문제인 것이다. 동맹을 맺었으면 신의를 지켜야 하는데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한겨레가 그 신의를 어기고 나선 것이었다. 그래서 응징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언론들도 이를 언론탄압으로 여기지 않는다.

 

한 마디로 한겨레가 자초한 상황이란 것이다. 비유하자면 박근혜 정부에서 조선일보 편집국장이 날아간 상황과 비슷하다 할 수 있다. 차라리 처음부터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논조를 견지해 왔으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민주당이든 국민의힘이든 잘못한 건 무조건 밝히고 욕한다는 애초의 입장을 지켜왔다면 오히려 더 지지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겨레는 그런 중립과 객관이라는 언론의 본분을 저버리고 진보라는 가치마저 저버린 채 국민의힘의 편에서 기사를 써 왔었다. 지금도 기억한다. 최저임금 올려서 중소자영업자 어려워졌다는 조선일보의 기사를 받아 중소자영업자의 어려움을 취재한 기사를 1면에 싣던 정권 초반의 한겨레를. 1면의 제목부터 비슷했었다. 그래서 최저임금인상이 잘못되었다는 뜻인가. 이전까지 최저임금 올려야 한다던 주장과 배치되지만 아무런 문제의식도 없다. 그런 기사를 수도 없이 써왔던 한겨레였기에 갑작스런 오세훈 비판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동맹으로서 신의를 배신한 것이다.

 

노무현 정부 당시 한겨레를 같은 편으로 여겼던 지지자들의 심정과 비슷하다 보면 될 것이다. 차라리 조중동이야 원래 그런 놈들이니 그러려니 하겠지만 한겨레는 같은 편인 줄 알았는데 더 악랄하게 등에 칼을 꽂고 비틀기까지 하고 있었다. 노무현더러 죽으라고 등떠미는 칼럼을 쓰고, 죽고 난 다음에는 놈현관장사라는 막말까지 써가며 조롱했다. 물론 이제는 한겨레가 뭔 기사를 내든 배신감에 치를 떨 지지자따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원래 그런 놈들이다. 원래 한겨레는 조중동과 한 몸이었다. 돈없는 조중동이 한경오란 말이 그래서 나온 것이다. 조중동이 되고 싶은 한경오라는 말이 더 정확했을 것이다. 그래서 오세훈의 행동에도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도 진실도 보도하지 않는 언론 아닌 언론의 같은 편에 대한 공격은 응징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어차피 편들어 줘봐야 나는 4050기득권으로 한겨레 입장에서 타도의 대상일 뿐이란 것이다. 한겨레 기자들 스스로 그런 예전 독자들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사명감까지 갖고 있다는 것이다. 한겨레의 입장을 동정하기에는 한겨레 자신의 에고가 너무 강하다. 더구나 조금만 숙이고 원래의 동맹을 회복하면 문제없이 전과 같이 광고도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민주당이 존재하는 한 자칭진보와 수구의 동맹이 사라질 일은 없으니. 이번에는 어떻게 오세훈에게 용서를 빌까 그것만 궁금할 뿐이다. 옷이라도 벗고 등에 채찍질하며 그 앞에 무릎꿇고 빌까?

 

지금도 자칭 진보들은 주장한다. 민주당이 언론을 탄압한다. 문재인 정부가 언론을 탄압한다. 국민의힘이 기자를 고소하고 고발하고 기자회견장에서 쫓아내도 그것은 언론탄압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명박근혜 때가 언론 입장에서 더 좋았다. 더 자유로웠고 더 대우도 받았다. 그래서 자칭 진보들도 오세훈의 광고중단에 가만히 입다물고 있는 것이다. 언론의 자유를 위해서다. 그래서 오세훈의 탄압도 기꺼이 용인할 수 있는 것이다. 아마 한겨레의 입장도 비슷하지 않을까. 신의를 저버린 한겨레의 잘못이지 언론에 대한 탄압은 아니다. 그런 놈들이란 얘기다. 우습지도 않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