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란 곧 상대의 의도를 부정하고 거부하는 것이다. 이른바 전장의 주도권이란 것이다. 내가 싸울 곳과 장소와 조건을 결정한다. 먼저 유리한 지점을 점령하고 내가 유리한 때에 내가 유리한 조건에서 싸우도록 상대에게 강요한다. 사실상 대부분 전략과 전술들은 그를 위한 기술에 지나지 않는다.

 

이순신이 부산으로 진격하라는 조정의 명령을 거부한 이유였다. 제갈량이 몇 배나 강한 위를 상대로 항상 공세를 펼칠 수 있었던 이유였다. 그리고 사마의가 그를 저지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일본군이 이미 진을 치고 방어를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친 부산으로 진격해봐야 이기더라도 피해만 클 뿐이었다. 위가 촉으로 넘어오지 않는 이상 전쟁을 결정할 권리는 오로지 촉군에 있었다. 하지만 촉이 기산을 넘어온 순간 주도권은 위로 넘어온다. 맞서 싸우지만 않으면 된다. 괜히 맞서 싸우다가 제갈량에 크게 혼난 것이 바로 단곡전투였다.

 

내가 유리한 전장이 있다. 기병이면 평지가 유리하고, 보병이면 산을 끼고 방어하는 것이 유리하다. 공격하는 입장이면 평지에서 회전을 펼치는 것이 유리하고, 방어하는 입장이면 성을 끼고 농성하는 것이 유리하다. 그래서 병자호란 당시 청군은 조선군에 유리한 조건을 허용하지 않기 위해 오로지 한양만 바라고 기습공격을 펼쳤던 것이었다. 중간에 산성들은 아예 무시했다. 잡다한 병력들은 무시한 채 오로지 한양만을 바라보고 기병을 동원해 돌격했었다. 그것이 자신들에 유리한 전장일 테니까. 반면 고수전쟁에서는 요하에서 평양이라는 지리적 거리를 이용해서 적의 주력을 끌어들여 괴멸시키는 승리를 거두기도 했었다. 누가 더 자신이 유리한 전장에서 상대의 불리를 강요하는가. 승리의 조건이다.

 

적이 뭔 생각을 하는가는 중요치 않다. 적이 그를 위해 어떤 계획을 세우고 준비했는가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하려 하고 그를 위해 어떤 조건들을 가지고 있는가다. 그러므로 자신은 무엇을 어디까지 할 수 있다. 그러면 그 안에서 상대를 자신의 싸움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국민의힘이 잘하고 민주당이 못하는 부분이었다. 차라리 우기더라도 국민의힘은 자기들 논리 안에서 자기들 주장 속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조건 위에서 모든 결정을 내리려 하고 있었다. 반면 민주당은 협치라는 이름 아래 그런 국민의힘이 준비한 전장에서 어렵게 끌려다니기 일쑤였다. 언론이 그리 몰아간 때문이라 하지만 의석차이가 거의 수 십 석 이상 나면 그런 변명도 의미없는 것이다.

 

해야 하면 한다. 할 수 있으며 한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너무 쉽고 간단한 논리다. 그래서 반대하면 짓밟고 넘어간다. 협상을 요구한다면 민주당에서 주도해서 협상을 끌어간다. 하긴 그런 게 리더십일 것이다. 대부분 평범한 개인들은 책임지고 그런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그런 결정을 자기 이름으로 내릴 수 있는 이들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는 것이다. 그 이름을 걸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행동에까지 옮겼기 때문에.

 

이재명이 민주당을 데리고 보였던 퍼포먼스에 대한 뒤늦은 생각이다. 이런 게 리더십이구나. 이런 게 없어서 그동안 민주당이 지지부진했던 것이구나. 이낙연이어서는 안되었다는 새삼스런 깨달음이기도 했다. 너무 국민의힘의 이야기를 들었다. 국민의힘의 입장에서 생각했다. 언론에 귀를 기울이고 언론의 주장까지 내면화했다. 될 일도 안된다. 해야 할 일도 못한다. 그만한 힘을 있는데 그 힘을 쓰지 못한다. 그럴 수 있고 그래도 된다면 그러면 된다. 너무 쉽지 않은가.

 

이재명의 민주당을 기대하게 되는 이유인 것이다. 솔직히 이 부분에서는 이재명이 문재인 대통령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인격적으로는 분명 더 훌륭하다. 비교할 수 없이 더 훌륭한 것이 맞다. 하지만 정치란 인격을 도야하는 도량이 아닌 어느 한 편의 이해와 지향과 추구를 관철하는 전장인 것이다. 싸워서 이겨야 한다면 이기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 진심만으로 통하는 전장이란 항상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왕도가 안되면 권도로, 그도 안되면 패도로, 그래도 안될 것 같으면 마도의 힘이라도 빌려야 한다. 정정당당하게 패하고 죽는 것은 아무 책임없는 필부필부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협치하고 싶으면 국민의힘이 먼저 굽히고 나서라. 얼마나 이낙연의 민주당이 국민의힘에 얕보였으면. 언론도 하찮게 보고 비웃고 있었다. 그래서는 안된다. 우습게 보여서는 자신이 주장하는 바를 앞장서서 내세우지도 못한다. 이재명의 가치다. 민주당이 비로소 제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당대표가 소소한 잡놈이라 다행인 이유다. 오히려 송영길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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