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설상의 명검 간장과 막야에 대한 이야기다. 어느날 오나라의 명검장인 간장이 명검을 만들자 초나라 왕이 이를 빼앗기 위해 간장을 죽였다. 아내인 막야가 도망쳐서 유복자를 낳고 명검을 만드는 비법을 전하고 복수를 당부한 뒤 죽으니 아들이 역시 명검을 만들어 초나라왕에게 복수하고자 했다. 하지만 원수는 한 나라의 왕이었고 수만의 군사들이 지키고 있었기에 방법이 없어 고민하는데 길가던 협객 하나가 그를 보고는 자신이 복수를 도와주겠다며 대신 명검과 아들의 목을 달라고 했다. 아들이 기꺼이 이를 받아들여 명검과 자신의 목을 건네니 협객이 그 목을 가지고 초나라왕을 찾아가서 간장의 아들을 죽였다고 말하고는 기회를 봐서 자신의 목과 함께 왕의 목을 쳐서 아들의 목과 함께 끓는 솥 속에 떨구었더라. 이런 게 바로 복수란 것이다.

 

게르만족의 전설인 '니벨룽겐의 반지'에서도 사랑하는 남자의 복수를 위해 이민족을 끌어들여 한 나라를 멸망시키는 이야기가 나온다. 햄릿도 그렇게 자기가 원수라 여기던 삼촌을 죽이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고 끝내는 자신마저 목숨을 잃고 말았었다. 자기가 충성을 바치기로 한 주군의 복수를 위해 얼굴과 목소리까지 망가뜨리고 선비로써 자신의 명성과 체면마저 뒤로 한 채 비참한 몰골이 되어 기회만 노렸던 예양의 이야기도 유명하다. 그리고는 끝내 조양자의 옷이라도 베어야겠다며 벗어놓은 옷에 칼질을 하고 스스로 목숨까지 끊었었다. 복수란 것이다. 세상에 가장 강한 감정이 하나는 공포고 하나는 증오다. 상대의 존재 자체를 용납할 수 없다. 어떻게든 상대에게 대가를 돌려주어야 한다. 그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희생따위 아랑곳하지 않는다. 복수를 위해 스스로 원수에게 몸을 팔고, 가족마저 죽음으로 내몰고, 자신의 신세마저 망치는 이들이 어디 한둘인가. 

 

윤석열이 보이는 굳건한 지지율의 원천인 것이다. 복수해야 한다. 정권을 잃은 복수를 해야 한다. 그래서 뜨뜻미지근한 홍준표로는 안되는 것이었다. 확실하게 복수를 해 줄 윤석열을 원한 것이었다. 조국을 통해 직접 확인까지 시켜주었다. 조국에게 그랬던 것처럼 문재인도 윤석열이라면 확실하게 죽여 줄 수 있다. 민주당도 확실하게 조져 놓을 수 있다. 그런 당위 앞에서 다소의 무능이나 부패 같은 문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자칭 진보들이 자신들이 추구하는 진보적 가치와 전혀 상반되는 윤석열의 공약을 보고서도 한 마디 비판도 못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차라리 군사정권으로 시대가 역행하더라도 문재인만은 죽여야 한다. 민주당만은 거꾸러뜨려야 한다. 오세훈을 위해서 용산참사 발언에 침묵했던 것처럼, 윤석열과 관련한 모든 의혹들에 대해 침묵하는 것 역시 모두 그를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얼마간 더 흠결이 보인다고 저들이 입장을 바꿀 이유가 없다. 나라가 망하고 자기가 죽더라도 복수는 반드시 해야만 한다.

 

반면 이재명의 경우는 민주당 지지층에서마저 적극적으로 지지의사를 밝히지 못하는 이유부터가 자신의 신념과 가치, 이해와 관련한 어긋남 때문이었다. 문재인 정부를 신뢰할 수 없다. 민주당을 이대로 전적으로 믿고 지지할 수 없다. 이유를 보여주어야 한다. 이유를 확인시켜주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민주당을 지지하고 이재명에게도 표를 줄 수 있다. 윤석열의 과오만으로는 안된다. 가치와 지향이란 미래를 향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야 말로 민주당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재명이 영리하다는 이유다. 이재명의 행보는 철저히 여기에 맞춰져 있다. 윤석열에 대한 비판보다 자기가 만들어갈 대한민국에 대한 약속들에 집중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이완된 지지층을 결집시켜 49:51의 싸움으로 되돌려놔야 한다. 아무리 문재인 정부에 대한 반감이 강하더라도 자신의 현실과 미래까지 걸고 복수에 나서려는 사람이 절대 과반을 넘기기 힘들 것이다.

 

최근 이재명이 지지율에서 윤석열을 바짝 추격하고 나선 이유일 것이다. 윤석열의 지지율은 크게 변화가 없다. 대신 이재명의 지지율이 오르고 있다. 결집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이재명이 보인 행보에 지지층들이 다시 결집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이해하면 된다. 자칭 보수들의 윤석열에 대한 비판에 귀기울일 필요가 없다는 근거다. 어차피 저들은 윤석열의 인물을 보고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윤석열의 능력이나 자질, 인품 등을 보고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자칭 진보 역시 마찬가지다. 저들이 윤석열을 지지하는 이유는 오로지 하나 복수 뿐이다. 문재인을 죽일 수만 있다면 윤석열이 어떤 놈이든 자신들이 다 감당할 수 있다. 평소 윤석열 욕했다고 윤석열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란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당이 노려야 할 것은 그 사이에 있는 이해에 충실한 중도층과 민주당의 정체성에 공감하는 기존의 지지층이어야 한다.

 

이것 한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복수는 자신의 희생까지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복수를 위해서라면 세상이 멸망하더라도 기꺼이 웃으며 받아들일 수 있다. 문재인을 지키겠다던 자칭 문빠들이 어느새 윤석열의 편에서 그의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현실도 그런 연장이라 할 수 있다. 지난 경선에서의 사소한 불쾌감을 아직도 부여잡고 자신들이 지지한 대통령을 죽일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재명을 죽이기 위해 윤석열을 지지한다. 이재명만 죽일 수 있으면 문재인이야 죽든 말든 그들에게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그렇다. 감정은 때로 본능보다 지독하다. 이번 선거의 최대 구도일 것이다. 복수와 이해, 과거와 미래, 이재명도 알고 아마 윤석열도 알 터다. 정말 뭣같은 선거가 될 듯하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