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시대 최초의 패자였던 제환공, 그러나 그 말로는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굶어죽다니. 그리고 시신까지 한참동안 방치되어 구더기가 잔뜩 슬어 있었다 한다. 관중과 포숙아를 재상에 임명하여 전성기를 연 군주였지만 그가 말년에 임명한 재사가 수초, 개방, 역아였던 때문이다. 

 

역사상 자신의 무능에도 신하를 잘 두어 성세를 이룬 군주가 적지 않았다. 아마 삼국지의 유선도 그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유비의 고명을 받은 제갈량과 그 제갈량의 추천으로 재상에 오른 장완과 비의가 보좌하는 동안 촉한은 몇 배나 강한 조위를 군사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무시할 수 없는 나라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비의까지 죽고 유선이 직접 인선하여 재상을 임명하고 국정을 이끌어야 할 상황이 되자 모든 것이 반전되었다. 괜히 유선의 아명인 '아두'가 바보의 대명사가 된 것이 아니다. 군주 자신의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주변의 인재의 도움을 받은 성세는 결국 그 한계를 맞이하게 된다. 하물며 과연 자신이 능력이 안되는데 능력있는 인재를 등용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가.

 

중국 명왕조의 정통제가 가장 신임했던 인물은 환관인 왕진이었다. 글도 한 줄 못 읽는 무식쟁이였지만 그러나 정통제를 어려서부터 보살핀 인물이었기에 나중에 왕진의 무능으로 인해 적군에 포로로 잡혔다가 황위까지 잃었음에도 복위하고 나서 그 복권을 시도했을 정도로 정이 깊었다. 하마트면 그때 정통제만 포로로 자히는 것이 아니라 아예 명 자체가 망할 뻔 했었다. 그리고 그 정통제가 복위하여 천순제가 되었을 때 가장 먼저 한 일도 그때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충신 우겸을 죽이는 것이었다. 장거정의 보좌를 받아 다시 성세를 회복하던 명을 수렁에 빠뜨린 만력제는 말할 것도 없다. 장거정이 부패했다는 이유로 아예 국정을 돌보지 않아 명은 다시 일어설 수 없을 만큼 피폐한 지경에 이르고 만다.

 

벨리사리우스란 역사에 남을 명장을 거느리고도 그를 의심하여 홀대한 유스티니아누스는 어떨까? 유스티니아누스는 그 자신도 역사에 남을 뛰어난 황제였지만 그러나 벨리사리우스란 명장을 휘하에 두고 거느릴 정도의 인물은 아니었다. 그래서 벨리사리우스의 말년 역시 상당히 비참했었다. 항상 그와 비교되는 이순신 또한 선조의 의심과 견제로 수많은 고초를 겪어야 했었다. 하긴 그러고보면 유선도 황호의 참소를 믿고 전장에 있던 제갈량을 소환하기도 했으니 자기보다 뛰어난 인물을 밑에 두고 거느린다는 건 권력자에게도 상당히 난이도 높은 과제일 것이다.

 

한 마디로 알아야 한다. 삼국지에서 유비가 그렇게 멍청하게 묘사되지만 유비가 살아있을 적 그의 부하들은 감히 함부로 유비를 속이거나 이용할 마음을 먹지 못했었다. 조조와 비견할만한 당대의 영웅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비 휘하에는 간신이라 할 만한 인물조차 없었다. 조조 역시 그 자신은 다시 없을 개자식이었지만 그 휘하에 그를 속이거나 이용하려는 간신은 없었다. 최소한 맥락은 알아야 속지 않고 이용도 당하지 않는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이 있어야 의심하지 않고 충실하게 그 역량을 활용할 수 있다. 무엇보다 누가 뛰어난 인재인지 알아볼 안목이 있어야 한다. 그 또한 오로지 자신의 역량을 근거로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대본이 없으니 연설도 하지 못한다. 가벼운 인삿말이라도 할 수 있다. 농담으로 분위기라도 띄울 수 있다. 그러고보니 인간의 지능이란 사회화와 관련이 있다고 했었다.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만들고 유지해나가는가, 아니 그 관계를 이해하고 자신의 위치를 정립하는가 하는 고도의 연산을 위해 인간의 지능은 발달해 왔었다. 그 최소한의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그저 멍하니 기다리고만 있다. 그러고보니 딱 자칭 진보가 좋아할만한 인재상이기는 하다. 자칭 진보가 왜 윤석열을 물고빠느라 정신없는지 알겠다. 말했듯 자칭진보도 텍스트와 레퍼런스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병신들이 대부분이거든. 텍스트와 레퍼런스에 종속되어 자기 사고와 판단까지 잃은 버러지들이다.

 

박근혜가 괜히 최순실따위에 휘둘려 권력을 그따위로 방기하고 남용했겠는가. 그런데도 자기가 전문가들 기용해서 전적으로 맡기고 책임만 모두 지겠다. 전두환도 그랬었다. 그런데 전두환도 그렇게 무능한 인물은 아니었다. 자기가 사악해서 그렇지 대본 없이는 말도 못하는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당장 문재인 대통령만 해도 주위에서 당대표시절부터 함께했던 경제전문가들이 사라지자 홍남기 따위에게 잡혀 휘둘리고 있는 것을 보라. 자기가 경제전문가가 아니니 홍남기가 하는 말에 어쨌든 설득당하고 따라갈 수밖에 없다. 

 

해당 분야의 전문가라고 전문적인 지식은 해박할지 몰라도 그 의도까지 항상 정직하고 선한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이용해 사익을 취하려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더구나 전문가라고 그가 추구하는 방향이 항상 모두를 위해 옳을 것이란 보장도 없다. 그것을 통제하고 감시하고 관리하는 게 바로 리더의 역할일 터다. 하지만 사신이 그럴 역량이 되지 않는다. 어떻게 되겠는가.

 

정도전이 재상총재제를 주장한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왕은 하늘이 내리는 것이다. 즉 혈통에 의해 계승되는 것이다. 그러니 왕의 핏줄이 왕이 되었다고 항상 선량하고 유능하리란 보장이 없다. 그러므로 왕은 그저 명분과 정통성을 가지고 그 자리를 지키고 능력과 성품을 검증받은 재상이 그를 보좌하도록 한다. 아, 왕이었지. 손에 왕자 쓰고 있었던가. 왕이라면 그래도 된다. 하늘이 내린 존재니까. 선량할 필요도 유능할 필요도 없다. 그냥 왕의 핏줄이면 된다. 그래서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다. 하긴 윤석열도 서울대라는 왕의 혈통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서울대 빼고 뭐가 있는가. 그런데도 서울대니까. 서울대는 뭐든 잘한다. 서울대 출신들의 자부심이다. 자칭 진보까지 윤석열 지지에 나서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니까 서울대고 사법고시 출신인 자신이 왕이 되어 재상을 유능한 사람으로 임명하겠다. 시대착오도 이런 시대착오가 없다. 바닥이 너무 얕다. 절망적일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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